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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는 말이 벌이 되었다

사랑한다는 말이 벌이 되었다

By:  목화Completed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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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이던 강호준을, 나는 그저 가볍게 가지고 놀았다. 그가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게 되었을 때도 먼저 이별을 고한 건 나였다. 그리고 몇 년 후. 성공한 사업가가 된 강호준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집안이 몰락해 모든 것을 잃은 나와 결혼했다.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내가 정말 복도 많다고. 하지만 아무도 몰랐다. 강호준이 밤마다 다른 여자를 집으로 데려온다는 것을. 그런데도 나는 울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런 내 모습에 강호준이 먼저 미쳐 갔다. 결국 그는 첫사랑 백유연에게 아이까지 갖게 했다. 그래도 내가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자, 강호준은 나를 거칠게 벽으로 몰아붙였다. “넌... 대체 나를 사랑하기는 해?” 그러던 어느 날. 나와 백유연의 양수가 같은 날 터졌다. 나는 처음으로 강호준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를 사랑한다고 인정하며, 제발 병원에 데려다 달라고 애원했다. 그러자 강호준은 기쁜 얼굴로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럴 줄 알았어. 이 거짓말쟁이.” 하지만 다음 순간, 그는 나를 매정하게 밀쳐냈다. 그리고 백유연을 품에 안은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조금 있다가 병원에 보내 줄게.” 그리고 차갑게 덧붙였다. “아이 낳는 고통 정도는 견뎌. 나한테 거짓말한 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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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제1화

눈앞에 남은 것은 황급히 멀어지는 강호준의 뒷모습뿐이었다.

아랫배를 찢는 통증에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면서, 나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터진 양수가 허벅지를 타고 쏟아지며 바닥에 흥건하게 물자국을 만들었다.

힘겹게 손을 들어 조금 떨어진 곳에 선 가사도우미를 향해 갈라진 목소리로 외쳤다.

“빨리 병원에 데려다줘...”

가사도우미는 난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사모님, 대표님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반드시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제 마음대로 움직였다가는...”

“마음대로 못 한다고?”

나는 아랫배를 감싸 쥔 채 통증으로 떨리는 목소리를 겨우 냈다.

“나나 아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강호준도 이모님을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지금 당장 병원에 데려다줘요!”

겁을 먹은 가사도우미는 그제야 허둥지둥 밖으로 향했다.

하지만 현관에 닿기도 전에 강호준의 수행비서인 최재범이 앞을 가로막았다.

“사모님이 곧 출산하실 것 같아요. 당장 병원으로 모셔야 합니다.”

가사도우미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최재범은 바닥에 흥건한 양수를 내려다본 뒤, 고통으로 일그러진 내 표정에 시선을 두었다. 말투는 지나치게 차분했다.

“대표님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모님은 임신을 내세워 또 억지를 부리시는 겁니다. 우선 안방으로 모시고 쉬게 하세요.”

“더 늦으면 아이가 잘못돼요! 최 비서가 책임질 수 있어요?!”

남은 힘을 전부 끌어모아 상체를 일으킨 뒤 최재범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최재범은 깍듯하게 허리를 숙이며 가짜 미소를 지었다. 눈에는 온기라고는 전혀 없었다.

“사모님, 대표님은 유산 위험으로 입원한 백유연 씨 곁에 계십니다. 대표님께서 직접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대표님의 성정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누구도 대표님 지시를 거스를 수 없습니다.”

“아이가 나오려고 해요! 아이는 기다릴 수 없다고요!”

진통이 다시 덮쳤다. 날카로운 칼이 아랫배 안쪽을 사정없이 휘젓는 듯했다.

온몸을 웅크릴 만큼 아팠고, 식은땀이 옷을 흠뻑 적셨다.

“뭘 멀뚱히 보고 있어요? 어서 사모님을 침대로 옮겨요.”

최재범이 날카롭게 호통쳤다.

가사도우미 두 명이 달려들었다. 배가 아프다는 내 호소도 무시한 채 양팔을 억지로 붙들어 안방으로 끌고 갔다.

그때 뜨거운 액체가 내 다리 사이로 흘러내렸다.

내가 고개를 숙이자 피가 보였다.

“피! 피가 나잖아요!”

나는 미친 듯이 가사도우미 한 명의 손을 붙잡고 울부짖었다.

“어서 병원으로 데려가줘요. 더 늦으면 아이가 정말 위험해요!”

“사모님, 제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우선 김 박사님부터 부르겠습니다.”

가사도우미는 죄책감 어린 표정으로 내 손을 힘껏 떼어 냈다.

“김 박사님은 필요 없어요. 병원에 가야 해요!”

“사모님, 제발 흥분하지 마세요. 최 비서님께 다시 여쭤보겠습니다.”

말을 마친 가사도우미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밖으로 달려갔다.

뼛속까지 파고드는 통증이 뱃속을 갈랐다. 식은땀과 피, 양수가 뒤섞여 벨벳 카펫을 흠뻑 적셨다.

시간은 하염없이 흘렀지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피를 흘리는 몸을 끌고 힘겹게 침대 가장자리까지 옮긴 뒤, 막 들어온 오영자의 옷자락을 움켜쥐고 울었다.

“집사님, 빨리 가서 알아봐 주세요. 더는 못 버티겠어요...”

오영자는 안타까운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모님, 조금만 참으세요. 당장 재촉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몸을 돌리자마자 최재범이 오영자의 앞을 막아섰다.

최재범이 천천히 다가왔다. 피로 얼룩진 카펫을 본 눈에 망설이는 기색이 스쳤지만, 이내 차가운 기색만 남았다.

“김 박사님부터 진찰하게 하세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김문태가 왕진 가방을 들고 빠르게 들어왔다.

가사도우미 몇 명이 달려들어 버둥거리는 내 팔다리를 짓눌렀다.

“놔요! 병원에 갈 거예요!”

나는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 눈물과 식은땀이 뒤섞여서 뺨을 타고 흘렀다.

“아이는 더 기다리면 안 돼요!”

김문태는 무표정하게 상태를 살핀 뒤, 흰 알약 몇 개를 꺼내 오영자에게 먹이라고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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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눈앞에 남은 것은 황급히 멀어지는 강호준의 뒷모습뿐이었다.아랫배를 찢는 통증에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면서, 나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터진 양수가 허벅지를 타고 쏟아지며 바닥에 흥건하게 물자국을 만들었다.힘겹게 손을 들어 조금 떨어진 곳에 선 가사도우미를 향해 갈라진 목소리로 외쳤다.“빨리 병원에 데려다줘...”가사도우미는 난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사모님, 대표님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반드시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제 마음대로 움직였다가는...”“마음대로 못 한다고?” 나는 아랫배를 감싸 쥔 채 통증으로 떨리는 목소리를 겨우 냈다.“나나 아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강호준도 이모님을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지금 당장 병원에 데려다줘요!”겁을 먹은 가사도우미는 그제야 허둥지둥 밖으로 향했다.하지만 현관에 닿기도 전에 강호준의 수행비서인 최재범이 앞을 가로막았다.“사모님이 곧 출산하실 것 같아요. 당장 병원으로 모셔야 합니다.” 가사도우미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최재범은 바닥에 흥건한 양수를 내려다본 뒤, 고통으로 일그러진 내 표정에 시선을 두었다. 말투는 지나치게 차분했다.“대표님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모님은 임신을 내세워 또 억지를 부리시는 겁니다. 우선 안방으로 모시고 쉬게 하세요.”“더 늦으면 아이가 잘못돼요! 최 비서가 책임질 수 있어요?!”남은 힘을 전부 끌어모아 상체를 일으킨 뒤 최재범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최재범은 깍듯하게 허리를 숙이며 가짜 미소를 지었다. 눈에는 온기라고는 전혀 없었다.“사모님, 대표님은 유산 위험으로 입원한 백유연 씨 곁에 계십니다. 대표님께서 직접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대표님의 성정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누구도 대표님 지시를 거스를 수 없습니다.”“아이가 나오려고 해요! 아이는 기다릴 수 없다고요!”진통이 다시 덮쳤다. 날카로운 칼이 아랫배 안쪽을 사정없이 휘젓는 듯했다.온몸을 웅크릴 만큼 아팠고, 식은땀이 옷을 흠뻑 적셨다.“뭘 멀뚱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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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이게 뭐예요?” 나는 정신없이 고개를 저었다. “안 먹어요. 내 아이를 죽이려는 거예요?”“자궁수축억제제입니다. 복용하면 진통이 가라앉을 겁니다.”“안 돼요! 그럼 아이가 산소를 못 받는다고요!”김문태는 여전히 차가운 표정으로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박사님 아내도 곧 출산할 때가 됐죠? 지금 여기 누워 있는 사람이 아내라면, 똑같이 이 약을 먹일 수 있어요? 천벌을 받을까 두렵지도 않아요?!”극심한 통증을 참으며 최재범을 노려봤다.“나나 아이에게 정말 무슨 일이 생기면 최 비서가 전부 책임져야 해요. 강호준은 절대 최 비서를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김문태와 최재범이 눈을 마주쳤다. 마침내 나를 병원으로 옮기겠다고 입을 열려던 때, 최재범의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강호준이었다.최재범은 전화를 받자마자 깍듯하게 대답했다. 얼굴에 남아 있던 망설임도 완전히 사라졌다.“사모님도 들으셨지요.” 최재범의 말에는 난처한 기색만 묻어났다. “대표님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반드시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돕기 싫어서가 아니라 저로서도 어쩔 수 없습니다.”최재범은 말을 마치고 오영자에게 눈짓했다.가사도우미 두 명이 내 어깨를 눌렀다. 억지로 입을 벌리는 사이 오영자가 알약을 밀어 넣었다.나는 필사적으로 토해 내려고 했지만, 약은 이미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그리고 눈물이 소리 없이 흘렀다. 천장을 바라보다가 돌연 웃음이 터졌고, 웃을수록 눈물은 더 세차게 쏟아졌다.“그래. 오늘 일을 똑똑히 기억해 둬! 내 아이가 잘못되면 죽어서라도 너희를 끌고 지옥까지 갈 거야!”“사모님이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시니 진정제를 놓으세요. 사모님과 아기가 다치면 안 됩니다. 집사님, 잘 지켜보세요.”최재범은 미간을 찌푸린 채 김문태와 오영자에게 지시하고 돌아섰다.나는 더는 저항하지 않았다. 굵고 긴 주삿바늘이 팔을 파고드는 것도 그대로 내버려뒀다.강호준에게는 친자식보다 첫사랑이 훨씬 더 소중하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백유연의 아이를 지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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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오영자가 핸드폰에 대고 비위를 맞추는 웃음을 흘렸다.“걱정하지 마세요. 이미 자궁수축억제제도 먹였습니다. 대표님 지시는 반드시 지키겠습니다.”[다행이네요.] 백유연의 말에는 승리감이 가득했다. [조금 있다가 언니가 또 아파하면, 통증도 멎게 하고 강 대표가 돌아올 때까지 버티게 할 방법이 하나 있어요.]“무슨 방법입니까?” 오영자가 다급하게 물었다.나는 숨을 죽인 채 핸드폰을 노려봤다. 백유연이 또 무슨 끔찍한 생각을 꺼낼지 두려웠다.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돌변했다.[머리를 아래로, 두 다리를 위로 향하게 해서 매달아 두세요. 5분쯤 지나면 나오려던 아이가 다시 안으로 밀려 들어갈 거예요.] [굵은 밧줄로 아랫배 밑을 세게 조이면 더 오래 버틸 수 있고요. 그래도 안 되면...]백유연은 일부러 말끝을 높였다. [아예 꿰매 버리는 방법도 있잖아요. 어떤 수를 써서라도 강호준이 돌아갈 때까지 기다리게 하세요.]나는 죽을힘을 다해 고개를 저었지만 막힌 신음 소리밖에는 낼 수 없었다.오영자는 새하얗게 질린 채 굳어 있었다. 어렵게 입을 열었을 때는 목소리마저 떨렸다.“그건 안 됩니다. 큰일이 날 수 있어요...”[큰일이라니요?]백유연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제가 살던 곳에서는 아이를 좋은 때에 맞춰서 낳으려고 다들 그렇게 했어요. 갓난아이의 생명력이 얼마나 질긴데요.]백유연은 두어 번 숨을 고른 뒤 말을 이었다.[강 대표도 바로 옆에 있어요. 전부 강 대표의 뜻이에요. 직접 전화해서 전하라고 했어요. 미정 언니가 질투하고 떼쓰는 버릇을 이번에 반드시 고쳐 놓겠대요.][제 아이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지켜야 한다고도 했고요. 마음이 약해져서 저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강 대표가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나는 쏟아지는 피와 진통도 잊은 채 가사도우미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고 울부짖었다.“아니야! 강호준이 나와 아이에게 이럴 리 없어. 거짓말하지 마, 이 악독한 여자야! 오 집사, 저 말을 믿으면 안 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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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바닥에는 내 피가 길게 끌린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뱃속의 아이도 위험을 느꼈는지 갑자기 미친 듯이 발로 배를 차기 시작했다.거센 진통이 다시 밀려왔다. 나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할 만큼 아팠다.가사도우미들은 결국 내 머리가 아래로 향하도록 철제 프레임에 거꾸로 매달았다.머릿속이 요란하게 울렸다. 아이가 배 안에서 거칠게 몸부림쳤고, 눈앞에는 검은 점들이 어지럽게 떠다녔다.내 눈물이 이마를 타고 흘러 땀에 젖은 머리카락으로 스며들었다.“강호준, 빨리 돌아와서 나를 봐. 정말 이렇게까지 모질게 굴 거야?”“강호준, 더는 못 버티겠어. 우리 아이가 정말...”“...”의식이 흐려질 무렵, 강호준이 예전처럼 웃으며 내게 다가오는 환영이 보였다. 이마에 입을 맞추는 손길도, 다정한 목소리도 그때와 같았다.“앞으로 내가 너와 아이를 지켜 줄게. 울지 마.”“너를 위해서라면 전부 버릴 수 있어. 내 목숨까지도.”떨리는 손을 뻗었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강호준에게는 닿지 않았다.아랫배를 조인 밧줄에서 끔찍한 통증이 번지며 흐려지던 정신을 끌어당겼다.잠시 뒤 가사도우미들이 나를 철제 프레임에서 거칠게 끌어내렸다. 내 등이 바닥에 거칠게 부딪히며 온몸의 뼈가 모조리 부서지는 듯했다.배를 묶은 밧줄은 살 속까지 파고들면서 진통을 더욱 심하게 만들었다.내 몸을 웅크릴수록 밧줄은 더 단단히 조여 왔다. 내장이 전부 으스러질 것 같은 고통이었다.바로 그때 다리 사이가 찢어지는 듯 아래로 쏠렸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오영자를 불렀다.“빨리... 아이가 정말 나오려고 해...”막 문을 열고 들어온 젊은 가사도우미 지민이 입을 틀어막고 비명을 질렀다.“집사님, 아이가... 아이 머리가 보여요! 당장 병원에 가야 해요!”오영자는 새하얗게 질린 채 방 안만 정신없이 오갔다.나는 고통으로 힘이 빠진 몸을 움직이지도 못한 채 오영자를 바라봤다.“제발! 더 늦으면 아이가 죽어!”오영자가 손을 들었다. 눈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바늘과 실을 가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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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밖에서 강호준의 누나 강서희의 날 선 목소리가 들려왔다.방 안의 공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가사도우미들은 황급히 손을 놓고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오영자는 핏기 없이 굳어 있었다. 피 묻은 두 손을 옷자락에 문지른 탓에 옷까지 붉게 얼룩졌다.강호준은 어린 시절 부모를 잃었고, 강서희와 강호준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자랐다.강호준이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데에는 누나의 도움이 절반 이상이었다.강씨 집안에서는 강서희의 말이 강호준의 말보다 더 큰 힘을 지녔다.강서희의 시선이 배에 선명한 보랏빛 밧줄 자국과 피로 젖은 침대, 다리 사이에 그대로 매달린 피 묻은 바늘과 실을 훑었다.다리 사이로 고인 피 사이로 아이의 머리카락까지 희미하게 보였다. 강서희는 비틀거리며 문을 짚으면서, 목소리마저 형편없이 떨렸다.“누가 이런 짓을 해도 된다고 했어?!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악독할 수 있어!”“대... 대표님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꼭 기다리라고 하셔서...”오영자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강서희의 손바닥이 양쪽 뺨을 연달아 후려쳤다. 오영자의 입가에서 피가 흘렀다.“또 백유연이 꾸민 짓이구나!” 강서희는 분노로 온몸을 떨었다. “나한테는 저런 냉혈한 동생이 없어. 강씨 집안에도 아내와 아이를 죽이려 드는 짐승은 필요 없어!”“우리 올케는 엄연히 호준의 아내야! 감히 이런 짓을 해? 올케와 내 조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백 배로 갚게 할 거야.” “남은 평생을 감옥에서 보내게 해주겠어! 당장 올케를 병원으로 옮겨!”가사도우미들이 허둥대며 내 몸에 감긴 밧줄을 풀었다.밧줄이 느슨해지자 짓눌렸던 배가 갑자기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더 많은 피가 허벅지를 타고 쏟아졌다. 다리 사이는 여전히 견딜 수 없을 만큼 아팠다.강서희가 빠르게 달려와 침대 곁에 무릎을 꿇었다. 목소리는 제대로 이어지지도 못했다.“미안해. 내가 너무 늦었어. 너를 이렇게 고생시켜서 미안해. 조금만 버텨. 제발 아무 일도 없어야 해!”그녀는 붉어진 눈시울을 보고 손을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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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하지만 미정 언니는 성격이 거칠잖아. 언니가 나한테 무슨 짓이라도 하면...”말이 끝나자 강호준의 오른쪽 눈꺼풀이 불길하게 떨렸다. 가슴 한쪽도 가는 바늘에 찔린 듯 아련하게 아팠다.강호준은 미간을 문지르면서도 단호하게 말했다.“미정은 질투심 때문에 떼를 쓰는 것뿐이야. 조금 아파도 참으면 돼. 아직 출산 예정일도 멀었어. 이번 기회에 제멋대로인 성격을 고쳐야지.”“강씨 집안의 안주인이라면 사리를 분별하고 지켜야 할 선도 알아야 해. 생각이 정리되면 내 뜻을 이해할 거야.”‘미정은 부족함 없이 자란 부유한 집안의 딸이고, 집안 배경도 조건도 빠지는 것이 없으니까... 괜찮을 거야.’‘반면 유연은 목숨을 걸고 나를 구해 준 적이 있는데... 지금도 어렵고 외롭게 사는 유연을 어떻게 또 고통받게 내버려 둘 수 있겠어?’‘아이가 태어나면 내가 미정에게 더 잘해 주고 충분히 보상하면 돼.’강호준은 문득 떠오른 게 있는 듯 백유연의 손에서 제 손을 빼며 부드럽게 달랬다.“유연아, 우선 푹 쉬어. 집에 가서 미정 상태만 보고 금방 돌아올게.”“호준아.” 백유연은 강호준의 소매를 붙잡고 작게 흐느꼈다.“의사 선생님이 아직 아이가 위험할 수 있다고 했어. 빨리 돌아와 줘. 나 무서워...”“알았어.” 강호준은 백유연의 손을 떼어 내고 병실 밖으로 빠르게 걸어 나갔다.운전하는 내내 아이가 태어나면 미정을 가장 좋은 산후조리원에 보내고, 실력 있는 산후도우미와 보육 도우미를 붙여 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출산용품과 육아용품도 모조리 최고급으로 준비할 생각이었다.신호를 기다리던 중 맞은편에서 구급차 한 대가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왔다. 날카로운 경보음이 고막을 아프게 찔렀다.스쳐 가는 차창 너머로 강서희와 닮은 모습이 언뜻 보였다. 강서희는 몹시 다급한 표정이었다.불길한 생각이 강호준의 머리를 파고들었다. ‘설마...’‘아니야. 오후에도 최재범과 통화했어. 별일이 있다는 말은 없었잖아. ‘미정은 분명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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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해. 미정은 멀쩡하게 침대에 누워 있을 거야.’‘욕을 하고 날 때려도 괜찮아. 무사하기만 하면 돼.’강호준은 머릿속에 아내와 결혼하던 날의 모습이 불쑥 떠올랐다.그날, 아내는 눈부시게 웃으며 말했다. “호준아, 너와 결혼하는 걸 후회하지 않아. 나를 아끼고 지켜 줄 책임감 있는 남자라는 걸 아니까.”그 말을 떠올리자 강호준의 심장이 찢어질 듯 아팠다.차가 멈추기도 전에 문을 열고 대저택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여보...” 몇 번을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오영자가 겁에 질린 채 안방에서 뛰어나왔다.강호준은 오영자의 옷깃을 움켜쥐었다. 차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면서 목소리는 심하게 잠겨 있었다.“집사람은 어디 있어?” 오영자는 온몸을 떨며 더듬더듬 대답했다.“사모님은... 병원으로 가셨습니다.”“왜 병원에 갔어? 똑바로 말해!”더는 화를 참지 못한 강호준은 오영자를 발로 걷어차 쓰러뜨린 뒤 안방으로 달려갔다.안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침대를 뒤덮은 선명한 피와 바닥에 길게 이어진 핏자국, 물자국만이 눈에 들어왔다.철제 프레임과 밧줄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피가 묻은 실까지 남아 있었다.강호준은 머리를 감싸 쥔 채 그 자리에 무너져서 통곡했다. 아내가 얼마나 끔찍한 고통을 겪었을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다.‘그렇게 버티기 힘들었으면 왜 나한테 전화하지 않은 거야?’‘최 비서와 오 집사는 왜 나한테 알리지 않았지?’수많은 의문이 머릿속에 가득했지만 지금은 그러고 있을 틈조차 없었다.‘당장 미정을 만나야 해! 내 여자와 아이 모두 반드시 살아야 해!’“너희 죗값은 돌아와서 치르게 해 주겠어!”강호준은 오영자를 한 번 더 걷어찬 뒤 비틀거리며 일어나 밖으로 내달렸다.‘미정아, 제발 무사해.’...수술실 앞까지 휘청거리며 달려온 강호준은 누군가의 부축을 받는 강서희를 발견했다. 강서희의 눈은 수술 중을 알리는 붉은 등에 고정되어 있었다.강호준은 강서희에게 달려들어 소매를 붙잡았다. 목소리는 잔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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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강호준은 바닥을 짚고 일어나 수술 동의서를 낚아챘다. 떨리는 손으로 서명하며 울부짖었다.“제 혈액형이 맞습니다. 필요한 검사를 바로 할 테니 제 피라도 쓰세요. 제발 산모와 아이를 꼭 살려주세요!”1인 중환자실에서 나는 다리 사이를 붕대로 감싼 채 미동도 없이 누워 있었다. 온몸에는 여러 관이 연결돼 있었고, 수액이 투명한 줄을 따라 천천히 떨어졌다.병실 안에는 의료기기가 규칙적으로 울리는 소리만 낮게 퍼졌다.강호준은 침대 앞에 무릎을 꿇고 아내의 손을 꼭 잡았다. 침대 가장자리에 얼굴을 묻은 채 어깨를 계속 떨었다.얼마 뒤 강호준은 몸을 벌떡 일으켰다. 곁에 서 있던 경호원들에게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했다.“그날 집에 있었던 관련자 전원을 한 명도 빠짐없이 데려와.”강호준은 진상을 철저히 밝혀 내게 설명하고, 아내를 해친 모든 사람에게 반드시 죗값을 치르게 할 생각이었다.조사가 끝나자 모든 증언은 단 한 사람, 백유연을 향했다.오랫동안 폭력에 시달렸고, 부모마저 세상을 떠나서 가엾기만 하다던 여자였다.강호준이 평생 지켜 주겠다고 맹세했던, 온순하고 다정한 여자이기도 했다.강호준은 백유연이 미정에게 이토록 잔혹한 짓을 했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다. 부드러운 모습 아래에 이토록 독한 마음을 숨기고 있었다는 것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비서 최재범마저 백유연의 편에 서서 자기 아내에게 그토록 냉혹하게 굴었다.그 모든 일을 저지를 배짱도, 사람들을 움직일 권력도 결국 강호준이 쥐여 준 것이었다.강호준은 병원 밖 흡연 구역에 서서 담배를 연달아 피웠다. 표정은 기이할 만큼 담담했다.마지막 담배를 비벼 끈 뒤에야 백유연의 병실로 천천히 걸어갔다.문을 열자마자 백유연과 시선이 마주쳤다.강호준이 들어오는 것을 본 백유연은 곧바로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호준아, 왔어? 선생님이 아이 상태는 좋대. 그래도 이틀 정도 더 지켜봐야 한다고 그러셨어.”“미정 언니는 어때?” 백유연은 강호준의 팔을 잡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반응을 살폈다.“병원에 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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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백유연은 바닥에 주저앉아서 정신없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네가 어떻게 그걸 알아?”“내가 마음먹고도 알아내지 못할 일은 없어. 예전의 내가 어리석어서 네 말만 전부 믿었을 뿐이야.”강호준은 말을 멈추고 백유연을 사납게 내려다봤다.“이제 내게 너는 아무것도 아니야. 미정이 당한 고통을 천 배, 만 배로 돌려주겠어!”“안 돼!” 백유연은 바닥을 기어와 강호준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울며 애원했다.“다시는 안 그럴게. 예전에 너를 구해 준 일만 생각해서 한 번만 용서해 줘.”“날 구했다고?” 강호준은 분노하며 백유연의 손을 발로 걷어찼다. “그날 나를 구해 준 사람은 미정이었어. 이미 전부 확인했어!”강호준은 고개를 돌려 경호원들에게 고함쳤다.“이 여자를 집으로 끌고 가서 8시간 동안 거꾸로 매달아. 굵은 밧줄로 배를 조이고 2시간 동안 전기 충격을 줘.”“뱃속의 아이가 죽을 때까지 몸을 꿰매 놓고, 마취도 병원 이송도 허락하지 마. 마지막에는 두 다리를 못 쓰게 만든 뒤 강에 버려. 살아남든 죽든 내 알 바 아니야!”백유연은 미친 듯이 달려들어 강호준을 때리려 했지만, 경호원들이 팔을 꺾으면서 바닥에 무릎을 꿇렸다.“강호준, 너야말로 잔인해! 내가 이렇게까지 할 수 있게 만든 사람이 바로 너야! 너희 둘이 웃으면서 잘 사는 모습을 볼 때마다 미칠 것 같았어.”“원래 전부 내 것이어야 했다고! 내 것을 되찾으려 한 게 뭐가 잘못이야? 너도 나를 사랑했잖아!”강호준은 백유연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손을 들어 끌고 나가라고 지시했다.“내 아이는 죄가 없어. 아이에게 이러면 안 돼!”“반드시 천벌을 받을 거야! 내가 죽어서도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여자의 저주와 욕설은 복도 끝으로 점점 멀어졌다. 다음날 경호원이 백유연이 벌을 받는 영상을 가져왔다. 강호준은 화면 속 참상을 보며 차갑게 웃고는 중환자실로 향했다....강호준은 내 손을 들어 자신의 뺨에 갖다 댔다. 목소리가 울음에 잠겨 있었다.“여보,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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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강호준의 미소가 그대로 굳었다. 입술을 달싹거렸지만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눈물이 창백한 뺨을 타고 흐르면서 피가 번진 상처 위로 섞였다.나는 강호준의 소매를 힘껏 움켜쥐었다. 목소리는 갈라져서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다. “설마... 아이가 없는 거야?”“대답해. 정말 내 아이가 죽은 거야?!”강호준은 온몸을 떨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거센 통증으로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졌다.“전부 내 잘못이야... 여보, 자기가 회복하면 우리 다시 아이를 갖자. 앞으로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다 하겠다고 맹세할게.”“안 돼!” 제왕절개 부위가 다시 벌어지는 듯했고, 다리 사이에서는 뼈를 파고드는 통증이 솟구쳤다. 나는 손등의 주삿바늘과 가슴에 붙은 모니터 선을 거칠게 떼어 내고 충혈된 눈으로 강호준을 노려봤다.“모두 너 때문이야! 네가 내 아이를 죽였어! 네 아이이기도 했잖아. 아무 죄도 없는 아기였다고! 나가.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마!”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호준은 가슴을 움켜쥐고 피를 토했다. 상처에서도 피가 더 거세게 쏟아지면서, 금세 거즈를 흠뻑 적셨다.“강 대표님, 지금 바로 수술해야 합니다! 더 늦으면 목숨을 잃습니다!” 의료진이 소리치며 강호준을 일으켜 세우려고 했다.강호준이 갑자기 웃었다. 피가 묻은 치아가 드러났다.“내 아내에게 진 빚이야. 갚아야 해. 내 목숨을 내놓더라도...”강호준이 손을 들어 내 뺨을 만지려 했지만, 나는 거칠게 고개를 돌리면서 피했다.이내 강호준의 머리가 옆으로 꺾이며 완전히 의식을 잃었다.응급 카트가 굴러가는 소리와 의료진의 외침이 뒤엉켜 병실을 가득 채웠다.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베개가 눈물에 젖어들면서 지나간 기억들이 한꺼번에 밀려왔다.강호준은 평생 나와 아이에게 잘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백유연이 다시 나타나자, 백유연이 불쌍하게 살았고 의지할 사람도 없다며 돌봐 주겠다고 했다. 선을 넘는 일만은 절대 없을 거라고도 장담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강호준은 밤마다 집에 들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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