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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8화

Author: 재인
“걱정하지 마.”

아마도 주씨 가문에서 애원하러 왔을 거다.

강하리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지만 결국 구승훈의 손을 떨쳐냈다.

구승훈은 텅 빈 손을 바라보며 낮은 웃음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괜히 몰래 비밀연애를 하는 느낌이었는데 딱히 나쁘지는 않았다.

강하리가 자신을 마음속에 품고 있다는 확신만 있다면 그는 비밀 연인이 되어도 만족스러웠다.

구승훈은 저도 모르게 혀를 찼다.

언제부터 이렇게 한심한 인간이 된 걸까.

주씨 가문 사람들은 선처를 호소하러 왔고 심지어 주호준까지 자리에 있었다.

석미란이 한 짓에 대해 고소하긴 했어도 결국 벌금으로 마무리될 거다.

하지만 주씨 가문 체면이 달린 일인데 손자가 식물인간이 된 후 며느리가 고소당해 법정에 서는 것까지 지켜볼 수가 없었다.

거실에는 여러 사람이 있었다.

심씨 가문의 세 어르신과 그 맞은편에는 주호준과 석미란, 석연란까지 있었다.

심씨 가문 세 어르신의 표정은 별로 좋지 않았다.

강하리는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곧장 걸어갔다.

“우리 집안 어르신들 힘들게 할 필요 없어요. 내 일에 대해선 이분들도 어쩌지 못하니까요. 아니면 주씨 가문과 했던 약속도 없던 일로 할 거예요. 이번 일에 대한 제 결정은 바뀌지 않을 테니까 이만 돌아가세요.”

강하리는 말을 마친 후 뒤돌아 위층으로 올라갔다.

주호준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B시에서 존경받는 인물로 꼽히던 그가 어린 후배에게 이런 말을 들은 것은 처음이었다.

석미란은 창백한 얼굴로 강하리의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강하리!”

그녀가 포효하듯 강하리에게 소리치자 강하리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석미란을 바라봤다.

“여사님, 할 말 있으세요?”

“꼭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야겠어?”

강하리가 비웃었다.

“제가 매정해요? 여사님에 비하면 전 아무것도 아닌 줄 알았는데요.”

“너...”

석미란은 분노했다.

그저 어딘가에서 튀어나와 핏줄도 모르는 잡것이 아닌가.

정양철의 자식이 아니면 심미현이 밖에서 놀아난 외간 남자의 씨겠지.

결국은 사생아에 불과한데 자기를 무척 대단하게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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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819화

    석연란은 흠칫하며 다소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 뒤돌아보았다.“아버님, 하실 말씀 있으세요?”심문석은 고개를 돌려 구승훈을 바라보았다.“승훈아, 방금 그 말 무슨 뜻이냐?”구승훈의 차가운 눈빛이 석연란을 노려보았다.“어르신께서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하리가 임신했을 때 사고를 당한 이유가 여사님이 문씨 가문에 알려줬기 때문이에요.”석연란이 증오가 가득한 눈빛으로 구승훈을 노려보았지만 구승훈은 그녀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았다.심문석의 분노는 순식간에 최고조에 달했다.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하리를 해친 사람 중에 심씨 가문 사람까지 있을 줄이야!그는 너무 화가 나서 곧바로 지팡이를 휘둘렀고 석연란이 비명을 질렀다.“아버님, 저보다 외부인인 저 사람 말을 더 믿으세요?”구승훈은 콧방귀를 뀌었다.“문연진 진술서 가져올까요?”석연란은 순식간에 말을 바꾸었다.“아버님, 그때는 정말 강하리가 우리 심씨 가문 사람이 될 줄 몰랐어요.”하지만 그 한마디로 심문석의 화가 풀릴 리 없었다.심씨 가문 사람이 아니면 마음대로 죽여도 된단 말인가.문씨 가문은 애초에 좋은 사람들이 아닌데 그들에게 소식을 알렸다는 건 강하리와 아이를 죽이는 것과 마찬가지였다!“너, 당장 심씨 가문에서 꺼져. 이제부터 우리 심씨 가문에 너 같은 사람은 없어!”석연란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변했다.정말 심씨 가문에서 쫓겨난다면 앞으로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겠나.“아버님, 어떻게 태어났는지도 모를 사생아 때문에 절 심씨 가문에서 쫓아낸다고요? 전 심씨 가문 며느리예요!”화가 난 심문석은 단번에 그녀의 얼굴에 따귀를 날렸다.“어디 한 번 더 지껄여봐!”석연란은 곧바로 입을 다물었지만 여전히 속으로 불만이 가득했다.‘강하리는 사생아가 맞잖아.’심미현이 그렇게 오래 밖을 떠돌았는데 외간 남자와 가진 아이일 수도 있지 않나!백아영은 옆에 있던 도우미를 힐끗 쳐다보았다.“손님 배웅해요. 앞으로 석씨 가문 사람들이 오면 바로 쫓아내요.”석연란이 뭐라고 더 말하려는데 도우미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820화

    “할아버지, 그때 연정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다면 제가 용서 안 해요.”그렇게 말한 뒤 강하리는 돌아서서 위층으로 향했고 구승훈은 자리에서 일어나 심문석을 부축했다.“어르신, 하리 일로 죄책감 느끼지 마세요. 하지만 나중에 제가 심씨 가문 셋째에게 손을 대도 절 원망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심문석은 한숨을 쉬었다. 셋째 며느리를 제대로 정신 차리게 해줄 필요는 있었다.그는 손을 내저었다.“난 이제 늙어서 참견하고 싶지 않아.”강하리가 방에 들어서기 바쁘게 구승훈이 뒤따라 들어왔다.“화났어?”그는 다가가 강하리를 품에 끌어안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강하리의 표정이 어두웠다.“언제 알았어?”구승훈은 잠시 침묵했다.“며칠 전에.”말을 마친 그는 다소 찔리는 게 있는 듯 덧붙였다.“숨기려던 게 아니라 이 일로 네가 그때 겪었던 아픔을 다시 떠올릴까 봐 걱정돼서 그랬어.”강하리가 시선을 바닥으로 보냈다.“나 연정이 보러 갈래.”구승훈이 단번에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진짜 화났어”강하리는 고개를 저었다.화가 났지만 구승훈 때문이 아니었다.“아니.”그렇게 말한 뒤 그녀는 구승훈의 손을 뿌리쳤다.그런데 문 앞에 다다랐을 때쯤 구승훈이 ‘쾅’ 문을 닫자 강하리는 그를 힐끗 쳐다봤다.구승훈은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남자는 긴 팔로 그녀를 뒤에서 감싸며 낮게 말했다.“걱정하지 마, 내가 너희 두 사람 괴롭힌 놈들 하나하나 다 처리해 줄 테니까.”강하리는 코끝이 시큰거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구승훈이 웃었다.“갑자기 얌전해지니까 적응이 안 되네.”강하리가 그를 노려보았다.“나가! 오늘 밤에 내 방으로 들어오지 마.”구승훈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 괜히 말했다. 잘 나가다가 왜 그런 말을 해서는!하지만 오늘 밤 그를 이 방에서 내보내는 것도 절대 불가능했다.“연정이 데리고 올게.” 남자는 말을 마친 후 강하리의 입술에 입을 맞추고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강하리가 그의 속내를 모를 리 없었다.아기를 핑계 삼아 또다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821화

    강하리는 욕실에서 나오자마자 구승훈에게 안겼다.아직 연정이를 안고 있었기 때문에 구승훈이 엄마와 딸을 동시에 안은 것과 다름없었다.강하리는 깜짝 놀라 비명을 터뜨리며 서둘러 연정이를 품에 끌어안았다.반대로 갑작스럽게 안긴 연정이는 오히려 깔깔대며 웃었다.“구승훈, 무슨 짓이야 또!”구승훈의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렸다.“두 사람 안아주는 건데 무슨 짓이냐니?”강하리가 그를 노려보았다.“내려줘. 연정이 놀라잖아.”구승훈의 눈빛이 번뜩였다. 연정이는 헬기에서 내려올 때도 무서워하지 않았다.하지만 차마 강하리에게 그 상황에 대해서 말할 수 없었다.“이게 너한테는 놀란 걸로 보여?”연정이는 구승훈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고사리 같은 손으로 박수를 치기까지 했다.“...”강하리는 입가에 차오른 말을 삼켰다.연정이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이렇게 행복하게 자라야 할 아이인데.’구승훈은 강하리가 마침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며 연정이를 향해 눈썹을 치켜들었다.역시 아빠의 사랑스러운 딸이다.구승훈은 모녀를 한참 동안 안고 있다가 내려놓았다.연정이는 침대에 내려놓을 때조차 구승훈에게 안아달라고 졸랐고 구승훈은 다가가서 또다시 한참을 안아주었다.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연정이의 옷을 정리하던 강하리가 고개를 돌려 부녀가 함께 웃고 장난치는 모습을 보고는 잠시 멈칫했다.이내 고개를 숙이는 순간 그녀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번졌다.구승훈은 그녀의 미소를 똑똑히 보았고 연정이를 안은 채 강하리에게 곧장 다가갔다.“하리야.”남자가 나지막이 부르자 강하리는 얼떨결에 고개를 들었고 미처 반응할 틈도 없이 구승훈이 턱을 잡고 입을 맞추었다.단순히 입 맞추는 건 이제 아무렇지도 않았다.하도 많이 해서 뭐라고 하기도 지쳤지만 연정이가 있으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강하리가 씩씩거리며 그를 밀어냈다.“딸 앞에서 무슨 짓이야!”구승훈이 웃으며 말했다.“가족끼리는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걸 가르치는 것뿐이야.”강제로 입 맞추면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822화

    “하리야, 넌 거짓말하면 귀가 빨개지더라.”강하리는 고개를 돌려 구승훈에게 베개를 집어 던졌다.“입든지 말든지!”구승훈이 어떻게 안 입을 수가 있나.강하리가 그의 옷을 사준 지 얼마 만인가.고작 잠옷인데 24시간 내내 입고 싶은 정도였다.구승훈이 욕실로 들어가 문을 닫자 강하리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연정이에게 분유를 타서 먹이고 아이를 달래서 재웠다.구승훈이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 연정이는 이미 잠든 뒤였다.밖으로 나오자 소파에 이불 세트가 놓여 있는 것이 보였지만 구승훈은 곧장 침대로 걸어가 강하리가 반항하든 말든 이불을 들춰 그대로 누운 뒤 강하리를 품에 끌어안고 뽀뽀했다.“강 대표님, 내가 이부자리 따뜻하게 해줄게.”강하리는 이런 뻔뻔함에 그저 감탄할 뿐이었다.여름이 다 되어 가는데 이부자리를 따뜻하게 해준다는 핑계를 대는 뻔뻔함에 기가 막혔다.“남들은 구 대표님이 이런 사람인 거 알까?”구승훈은 그녀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었다.“이런 모습은 강 대표님만 볼 수 있지.”그렇게 말하면서 그의 큰 손이 잠옷을 들치며 들어왔다.강하리의 몸이 흠칫하며 황급히 그의 손을 잡았다.“구승훈!”하지만 구승훈은 아랑곳하지 않고 곧장 탐스럽고 부드러운 살결을 어루만졌다.“만지기만 할게. 너무 그리웠어.”강하리는 온몸이 불타오르는 것 같았다.특별한 시기라 남자의 손길에 곧바로 짜릿한 감각이 밀려왔지만 지금은 그녀의 몸도, 주해찬의 상황도 그들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그런데 구승훈이 곧장 몸을 뒤집어 덮쳐오더니 그대로 거친 키스를 퍼부었다.“하고 싶지?”구승훈은 강하리를 내려다봤고 강하리는 참지 못하고 그를 발로 찼다.구승훈이 나지막이 웃었다.“몸 괜찮아지면 해줄게.”강하리는 얼굴이 화끈거렸다.구승훈은 고개를 숙이고 귓불을 깨물며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강 대표님께서 날 안마기로 써도 되는데.”강하리는 그대로 구승훈을 옆으로 밀어냈다.“계속 그럴 거면 나가!”구승훈은 그녀가 짜증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823화

    강하리는 숨이 턱 막힌 채 잠시 당황하다가 겨우 대답했다.“네, 금방 갈게요.”전화를 끊자마자 강하리는 이불을 걷어 올리고 서둘러 드레스룸으로 들어갔다.구승훈이 그녀에게 다가갔다.“같이 가자.”강하리는 그를 바라보다가 잠시 후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은 서둘러 문을 나섰고 나오자마자 다른 방에서 나오던 백아영과 마주쳤다.“할머니, 우리 병원 가는 동안 연정이 좀 봐주세요.”백아영이 고개를 끄덕이기도 전에 두 사람은 밖으로 나갔고 가는 길에 강하리는 조금 불안했다.사실 주해찬이 깨어나기를 고대하고 있었지만 막상 깨어나자 후유증은 없을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구승훈은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이제 깨어났다니까 걱정하지 마. 다른 건 문제 될 게 없어.”강하리는 짧게 대꾸하면서도 여전히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두 사람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의사가 주해찬의 진찰을 끝낸 뒤였다.주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중환자실 밖에 모여 있었고 강하리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구승훈을 돌아봤다.구승훈은 다소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이젠 깨어났는데 그래도 네 곁에 있으면 안 돼?”강하리는 잠시 침묵했다.“조금만 더 기다려.”구승훈은 혀를 차더니 곧 강하리의 턱을 잡고 입맞춤했다.“보상의 의미로 하는 키스.”강하리는 그를 바라보다가 뒤돌아 중환자실 쪽으로 걸어갔다.석미란은 강하리의 붉게 물든 입술을 보자마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망할 년은 역시 어쩔 수 없나 봐. 그새를 못 참았어?”강하리는 무시하고 의사 선생님을 향해 곧장 걸어갔다.“선생님, 해찬 선배 상태는 어때요?”의사의 얼굴이 그리 밝지 않자 강하리의 마음이 다소 무거워졌다.“주해찬 씨가 깨어났고 의식도 회복했는데 다리에 감각이 없어요.”강하리의 머리가 윙윙거렸다.“무슨 말씀이세요?”의사는 필름을 들고 설명해 주었다.“아직 울혈이 뭉쳐 신경을 누르고 있는 것 같아요.”“그럼 회복할 수는 있나요?”“말씀드리기 어렵네요.”그 말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824화

    “구승훈, 내가 처음부터 말했잖아. 선배가 괜찮아지면 노력해 보자고. 지금 선배가 괜찮지 않은데 내가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당신이랑 만날 수가 없어.”“그 자식이 네가 책임져야 할 사람이야? 하리야, 네가 책임질 사람은 나랑 연정이야.”강하리는 그의 시선을 외면하며 한참 후에야 나지막이 말했다.“미안해.”말을 마친 후 그녀는 구승훈을 떼어내고 뒤돌아 그대로 가버렸다.혼자 남겨진 구승훈이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강하리, 너 정말 이기적이야.”자기 마음 편해지자고 다른 사람 감정은 아랑곳하지 않는 이기적인 사람.강하리는 잠시 발걸음을 멈췄지만 그것도 잠깐일 뿐 계속해서 걸어 나갔다.이기적인 사람일지도 모른다.하지만 주해찬을 무시할 수 없는 건 사실이었다.주해찬은 중환자실에서 하루를 더 보낸 후 일반 병동으로 옮겨졌고 강하리는 심호흡을 한 뒤 병동 문을 열고 들어갔다.강하리를 본 주해찬의 눈빛이 살짝 밝아졌다.“하리야, 왔어?”강하리는 고개를 끄덕였다.“선배, 미안해요. 나 때문에 이렇게 됐네요.”주해찬은 잠시 침묵했다.“나 때문에 네가 힘들게 됐지.”깨어나서 정양철의 이야기를 들은 순간부터 그는 당시의 교통사고가 정양철이 자신을 입막음하기 위해 꾸민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다만 강하리가 연루될 줄은 몰랐다.이미 주씨 가문 사람들에게 모든 상황을 이야기했지만 그의 어머니는 여전히 강하리를 원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주해찬은 마음속으로 죄책감을 느꼈다.“엄마가 그동안 심한 말을 많이 했지?”강하리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을 돌렸다.“이미 의사 선생님께 치료 부탁했으니까 괜찮아질 거예요, 선배.”주해찬이 미소를 지었다.“하리야, 구승훈이랑 화해했어?”그가 지금 알고 싶은 건 강하리가 구승훈과 화해했는지 여부였다.만약 화해하지 않았다면 그에게도 기회가 남아있지 않을까?강하리가 시선을 바닥으로 보냈다.“아뇨. 선배, 저 내일 다시 보러 올게요.”주해찬은 고개를 끄덕였다.강하리가 병동에서 나오자 멀지 않은 곳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825화

    구승훈은 침대 위에서 얼굴이 변해가는 주해찬을 차갑게 바라보았다.주해찬은 심호흡을 하며 침착하려 애썼다.사실 엄마가 찾아가 다그치는 모습은 상상할 수 있었다.애초부터 강하리를 미워했고 이번엔 자신이 강하리를 보호하느라 혼수상태에 빠져 식물인간이 될 뻔했다.그 태도가 얼마나 무례했을지, 강하리에게 얼마나 듣기 싫은 말을 많이 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주해찬은 다소 쓴웃음을 지었다.강하리가 내심 그에게 더 거부감을 느끼진 않을까.조금 전 구승훈과 아직 화해하지 않았다는 강하리의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아직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젠...내심 들떠 있던 주해찬의 기분이 순식간에 바닥으로 가라앉으며 고개를 돌려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하지만 어쨌든 이건 다 나랑 하리 사이의 일이고 구 대표님과는 아무 상관 없는 일이잖아요?”구승훈의 얼굴에는 여전히 차가운 미소가 가득했다.“그럼 주해찬 씨는 그 다리로 평생 하리를 붙잡아 둘 생각인가요?”주해찬은 한참을 구승훈을 바라보다가 말을 꺼냈다.“하리가 동의했다는 건 받아들인다는 뜻 아니겠어요?”몸이 다친 걸로 강하리의 발목을 잡을 생각은 없었다.애초에 강하리를 구해줬을 때도 대가를 바라고 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강하리가 다시 구승훈에게 돌아가는 건 원하지 않았다.이 남자가 강하리에게 준 게 상처 말고 또 뭐가 있을까.구승훈과 함께하기보다는 차라리 다른 남자를 찾길 바랐다.이젠 심씨 가문 아가씨인데 어떤 남자든 마음만 먹으면 찾을 수 있을 테니까.피식 웃은 주해찬은 약간의 이기심도 있었다.그녀가 계속 자신의 곁에 머물다 보면 언젠가 자신을 사랑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구승훈은 그의 생각을 꿰뚫어 본 듯한 표정이었다.“주해찬 씨, 정말 이대로 하리를 곁에 둘 수 있다고 생각해요?”말을 마친 그는 똑바로 서서 주해찬을 내려다보았다.“하리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 텐데요.”남자는 말을 마친 후 돌아서서 문밖으로 나갔다.주해찬은 한참 동안 그의 뒷모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826화

    “구승훈, 나한테 시간을 좀 줘.”“얼마나? 1년? 2년? 아니면 평생? 하리야, 네 마음속엔 나랑 연정이가 네 선배보다 못하다는 거야?”하지만 강하리는 구승훈을 바라보기만 했고 구승훈은 피식 웃었다.“그래, 알겠어.”그는 손수건을 꺼내 강하리의 눈물을 조금씩 닦아주었다.“울지 마, 마음 아프잖아.”강하리는 멈췄던 눈물이 다시 쏟아져나왔고 구승훈은 낮은 웃음을 지었다.“하리야, 앞으로 언젠가는 네가 나를 누구보다 먼저 생각해 주면 좋겠어.”말을 마친 구승훈은 강하리의 손을 놓아주고 문밖으로 나가려고 몸을 돌렸다.강하리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눈물을 흘렸다.같은 시각 반대편에 있던 진시연도 이 모든 장면을 지켜봤다.병원에서 나온 구승훈은 다소 암울한 미소를 지으며 지친 듯 차 옆에 기대어 담배에 불을 붙였다.진시연이 밖으로 나오자 고개를 숙인 채 담배를 피우는 남자의 옆모습이 보였다.“구승훈 씨.”구승훈은 조금의 감정도 없는 차가운 눈빛으로 시선을 들어 그쪽을 바라보았고 진시연은 미소를 지으며 구승훈 앞에 섰다.구승훈은 무심하게 연기를 내뿜었다.“진시연 씨, 할 말 있어요?”진시연은 그와 나란히 차 옆에 기대어 섰다.“방금 봤어요. 강하리 씨랑 싸웠어요?”구승훈은 콧방귀를 뀌었다.“진시연 씨는 매일 이렇게 한가한가요? 그렇게 한가하면 머리나 검사해 보지 그래요.”말을 마친 그가 문을 열고 차에 올라타자 진시연의 얼굴에 머금었던 미소가 굳어버렸다.구승훈이 이토록 매몰차게 말할 줄이야.“구승훈 씨, 그쪽 기분이 안 좋은데 왜 저한테 화풀이에요?”하지만 구승훈은 곧바로 시동을 걸고 차를 몰았다.자동차 배기가스를 정통으로 맞은 진시연은 화가 나서 발을 쿵쿵 굴렀다.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강하리는 안에서 들리는 웃음소리에 가던 걸음을 잠시 멈추고 들어보니 진시연의 목소리였다.강하리가 방으로 들어가자 진시연이 연정이와 장난치는 게 보였다.연정이는 보기 드물게 웃지도 않은 채 보행기에 앉아 있다가 강하리가 다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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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1085화

    구승훈이 의미를 알 수 없는 웃음을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 쪽을 바라보았다.물 흐르는 소리가 막 멈춘 참이었다.그는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향했다. 살균 티슈로 손을 닦는 강하리의 모습이 차가운 벽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싫어하는 이유가.. 조시욱 때문이야?”구승훈은 무릎을 꿇고 강하리 앞에 앉아 그녀의 턱을 잡아올렸다.“대답해 봐, 조시욱을 위해 몸을 지키겠다는 거냐고?”강하리는 고개를 쳐들며 비웃었다.“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묻는 건데요?”구승훈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휠체어를 돌려 화장실을 나서는 그녀의 등 뒤에서 구승훈은 한참이나 멍을 때렸다. 구승훈이 다시 정신을 차린 건 병실 문이 열리고 심준호와 백아영, 조시욱이 들어와서였다.구승훈을 본 심준호와 백아영의 눈빛이 칼날처럼 날카로웠다.예전에는 무슨 일이 있든 심준호가 먼저 구승훈에게 상황을 묻고 강하리와 화해할 수 있도록 조율하려 했다.하지만 이번 일 이후 심준호는 단 한 번도 구승훈을 찾지 않았다.그건 구승훈에 대한 더 말할 나위 없는 실망을 의미했다.백아영은 당장이라도 구승훈의 뺨을 때리고 싶었지만 수십 년간 유지해 온 품격과 매너로 화를 억눌렀다.세 사람이 강하리와 함께 연정이 주위에 둘러앉자, 병실 한구석에 있던 구승훈은 마치 외부인 같이 느껴져 굳은 표정으로 병실을 나와 유리 창가에 서서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뒤늦게 찾아온 심준호가 말을 꺼냈다.“일은 다 정리됐어?”구승훈은 낮게 대답했다. “거의.”비록 여초연의 주변이 완전히 정리되진 않았지만 그녀를 손아귀에 넣고 있는 이상 큰문제는 없었다.“하리랑 조시욱 일은 너도 알고 있겠지. 승훈아, 너한테 양심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이제 그만 하리 인생에서 나가줘.”구승훈은 멈칫하다 이내 비웃듯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강하리 인생을 방해한다고? 준호야, 세상 사람들은 몰라도 넌 알잖아, 어떻게 된 일인지.”“알면 뭐 하냐? 구승훈, 우리 하리가 몇 번이나 목숨을 잃을 뻔했는데 그걸로도 부족해?”심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1084화

    강하리의 몸이 순간 굳어졌다.무의식적으로 구승훈을 밀쳐내려 했지만 연정이의 웃음소리에 잠시 망설였다.아직 열이 가시지 않은 구연정은 강하리와 구승훈을 보고 흥분했던 것도 잠시, 곧 다시 기운이 빠졌다.구연정은 힘없이 구승훈 어깨에 기댄 채 한 손은 구승훈의 옷자락을, 다른 한 손은 강하리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구승훈은 눈썹을 치켜들며 강하리를 바라봤지만 강하리는 그의 시선을 외면했다.그가 한숨을 내쉬며 무언가 말하려는 찰나 의사가 검사 결과를 들고 들어왔다.“강 대표님, 아가씨는 현재 바이러스 감염으로 보입니다. 며칠 입원이 필요할 것 같아 이미 병실은 준비해두었습니다. 곧 간호사가 안내해 드릴 겁니다.”강하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수고 많으셨습니다.”병실에 도착하자마자 연정이는 곧 깊은 잠에 빠졌다.강하리는 침대 곁에 앉아 연정의 손을 꼭 잡고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보았다.구승훈은 다른 한쪽에서 의사와 연정이의 상태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있었다.의사가 떠난 뒤에야 그는 강하리 옆으로 돌아왔다.“의사 말로는 보기보다 심각하진 않대. 너무 걱정하지 마.”하지만 강하리는 여전히 연정이의 손을 놓지 않은 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구승훈이 그녀 곁에 앉아 손을 잡으려 하자 강하리는 황급히 그 손을 빼냈다.“이제 돌아가요. 나랑 아주머니가 있으면 돼요.”구승훈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조시욱이 오기 편하게 나더러 가라는 거야?”강하리는 분노에 찬 눈빛으로 구승훈을 노려보다가 이내 비웃듯 말했다.“여기 남아 있으면 임 선생님이 화내지 않을까?”구승훈은 끝내는 강하리의 손을 잡고서 말했다.“내가 말했잖아. 임 선생이랑은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너 정말 나 못 믿는 거야?”그의 목소리엔 억눌린 분노가 담겨 있었다.강하리가 이를 악물고 손을 빼내려 하자 구승훈이 낮게 말했다.“움직이지 마. 연정이 깼어.”강하리는 움직임을 멈추고 급히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연정이는 여전히 곤히 자고 있었다.분노에 찬 강하리를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1083화

    구승훈은 강하리의 턱을 쥔 채 엄지로 그녀의 분홍빛 입술을 거칠게 문질렀다.입술이 붉게 충혈되자 강하리는 구승훈의 손을 힘껏 뿌리쳤다.“구승훈 씨, 그만해요. 연정이 보러 가는 길에 추태 부리고 싶지 않아요.”구승훈은 이를 갈며 말했다.“그럼 조시욱은 안아도 되고 난 안 되는 거야? 조시욱은 널 만져도 되고 난 안되는 거냐고!”“그래요!”강하리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앞으로 누구든 가능할 수 있어도 구승훈 씨 당신만은 절대 안 돼요!”그녀는 이 말을 하면 구승훈이 분노하며 문을 박차고 나갈 줄 알았다. 사실 그걸 바라기도 했다.하지만 뜻밖에도 화가 머리끝까지 난 구승훈은 몸을 낮춰 무릎을 꿇었다. 강하리는 아직 걸을 수 없는 상태였고, 발목에는 여전히 붕대가 감겨 있었다. 그래서 요즘엔 털실 슬리퍼 하나만 신은 채 다녔다.아까 구승훈이 강하리를 안고 차에 태울 때 슬리퍼 한 짝이 옆으로 벗겨졌었다. 구승훈은 몸을 낮춰 그 슬리퍼를 주워 조심스럽게 그녀의 발에 신겨 주었다.그의 큰 손이 그녀의 발목을 감싸며 아주 조심스럽고 부드럽게 움직였다. 마치 조금만 세게 다뤄도 그녀가 아플까 봐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강하리는 순간 그 손끝에서 묘한 애틋함을 느꼈다. 하지만 곧 그런 감정을 느낀 스스로가 우스워 웃음이 난 강하리 발을 움츠렸다.그럼에도 구승훈은 손을 놓지 않고 슬리퍼를 신긴 뒤 다시 강하리를 안아 휠체어에 앉혔다.“말도 안 되는 부탁인거 아는데...”구승훈이 그녀를 휠체어에 앉히고 나서 속삭였다.“제발 나한테 너무 차갑게 하지 말아 줘, 부탁이야.”강하리는 입술을 꾹 다문 채 전혀 마음을 열 기색이 없었다.“그럼 적어도 다시 쟁취할 기회라도 줘, 응? 강 대표?”“구승훈 씨, 대체 왜 이러는 건데요? 이렇게 헤어졌다 만났다, 당신은 안 질려도 나는 질렸어요. 그만 좀 해요. 내가 부탁할게요.”말을 마친 강하리는 스스로 휠체어를 밀어 응급실 쪽으로 향했다.구승훈은 한숨을 내쉬며 그녀 옆으로 다가가 휠체어를 대신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1082화

    구승훈의 동작이 너무 빨라 강하리는 미처 반응할 새도 없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차 안에 앉아 있었다.“구승훈 씨!”강하리가 소리쳤다. “나 혼자 갈 수 있어요.”구승훈이 비웃으며 말했다.“어떻게 가? 조시욱이 데려다준대? 다른 남자랑 내 딸 보러 가겠다는 거야?”강하리는 말문이 막혔다. 문이 쾅 닫히는 소리와 함께 구승훈은 그녀의 휠체어를 접어 트렁크에 싣고 있었다.조시욱은 막무가내인 구승훈을 막으려다 아까 전화 받던 강하리의 불안한 표정이 떠올라 막지 않았다.“연정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야? 나도 같이 갈게.”구승훈이 동작을 멈추고는 싸늘하게 웃었다.“조 도련님은 매일 이렇게 한가한가 보지?”말을 마친 구승훈은 휠체어를 트렁크에 던져 넣고는 차에 올라 그대로 출발했다.달리는 차 안에서 강하리는 창밖만 응시한 채 구승훈 쪽으로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구승훈은 조용히 운전하면서 가끔 백미러로 강하리를 살펴보았다.“아까... 아프지 않았어?”강하리는 마치 듣지 못한 것처럼 창밖만 보며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물음은 공허하게 차 안을 맴돌 뿐이었다.구승훈은 계속하여 말을 이어갔다.“의사 말로는 이제 재활 치료 들어가야 한다던데, 치료사는 예약했어?”“했어요.”강하리는 낮은 소리로 대답했다.딸을 보러 가는 길에 더 이상 구승훈과의 그 어떠한 불필요한 갈등도 피하고 싶었다. 잠시나마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것도 그녀에겐 너무 힘들었다.“이 차에 임 선생은 태운 적 없어.”구승훈의 뜬금없는 한마디에 강하리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설명할 필요 없어요. 신경 안 써요.”그 한마디에 구승훈의 하려던 말들이 전부 목에 걸려버렸다.그는 깊게 숨을 쉬며 말했다.“임 선생과는 아무 사이도 아니야. 단지 여초연의 시선을 흐리려고 잠깐 곁에 뒀을 뿐이야.”강하리의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렸다.한때 그녀는 구승훈이 이런 한 마디라도 해주기를 바랐다. 설령 지금처럼 단순하고 허술한 변명이라도 좋았다. 그랬더라면 그녀는 혼자서 괴로워하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1081화

    구승훈과 헤어진 후로 그녀는 두번 다시 그곳에 가지 않았다.“왜 갑자기 거기에 가고 싶어진 거야?”조시욱이 무심한 듯 물었다.강하리는 창밖을 바라보다가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시욱 선배, 해찬 선배가 뭐라고 말했어요?”조시욱은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사실은 별말 없었어. 그냥 국내에 며칠밖에 머물지 못하니까 내게 틈틈이 널 돌봐 달라고 했지.”강하리의 눈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선배는 항상 걱정이 많아.”“하리야, 사실 나는...”“시욱 선배.”강하리가 말을 끊었다.“그만해요.”조시욱은 하려던 말을 다시 삼켰다. 그는 길가에 차를 세우고 강하리를 돌아보며 말했다.“왜? 구승훈 때문이야? 정말 구승훈에게 다시 기회를 주려는 거야?”강하리는 창밖에서 시선을 거두며 말했다.“그 사람과는 상관없어요.”조시욱은 쓴웃음을 지었다.“그럼 왜 자신에게 새롭게 시작할 기회를 주지 않는 건데?”강하리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시욱 선배, 나도 새로운 삶을 시작할 거예요. 하지만 진심으로 누군갈 다시 좋아하거나 새 감정을 쌓을 마음의 여유가 없어요. 미안해요, 일찍 말했어야 했는데... 장 회장님께도 희망을 품게 하지 말았어야 했어요.”조시욱은 말하고 싶었다. 괜찮다고, 기다릴 수 있다고. 하지만 그 말도 결국 삼켜야 했다. 어떤 말은, 그냥 그녀에게 부담만 줄 뿐이었다.그는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알겠어. 할아버진 걱정 마, 내가 설명할게. 그럼 다른 감정은 일단 치워두고 우리 친구는 될 수 있잖아?”강하리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고마워요.”조시욱은 더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은 씁쓸했다.주해찬이 부탁했다는 건 모두 거짓이었다.처음 임무를 함께 할 때부터 그의 마음은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협상장에서 여유롭고 능숙하게 대처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시선을 뗄 수 없었다.하지만 그녀에게 이미 남자친구가 있다는 걸 알고는 마음을 접어야 했다.강하리가 어르신 생신 파티에 모습을 드러내고 아주머니의 생신 파티에 나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1080화

    구승훈은 순간 말이 막혔다.“하리야, 제발... 나한테 한 번만 더 기회를 줄 수 없어?”그의 목소리엔 분명한 간절함이 실려 있었다.하지만 강하리의 눈빛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가요.”그녀는 다시 한번 담담하게 말했고 구승훈은 쓴웃음을 지으며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마지막으로 조용히 한마디를 건넸다.“너무 무리하지 마. 에비뉴 쪽 일은 내가 처리해 둘게.”강하리는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돌렸고 조시욱은 그대로 그녀를 밀고 자리를 떠났다.구승훈은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정신을 차린 듯 몸을 돌려 진료실로 들어갔다.“강하리 씨의 상태를 좀 알고 싶습니다.”의사는 잠시 당황한 듯 멈칫했다.병원 안에선 이미 구승훈과 강하리에 관한 얘기가 돌 만큼 돌았다.사랑스러웠던 커플이 순식간에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됐다는 말들이었다.강하리가 수술할 때 구승훈은 오지도 않았고 입원하는 내내 찾아온 건 한 번뿐이었으며 오늘 깁스 푸는 날에도 옆에 있어 준 사람은 다른 남자였다.그래서 의사는 솔직히 말해 구승훈이 강하리를 완전히 내쳐버린 줄 알았다.‘이런 여자를 놓친 건 눈이 먼 건가... 양심이 없는 건가...’의사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구승훈이 직접 찾아와 그녀의 상태를 묻는다는 게 당황스러웠다.“상처 회복은 꽤 잘 되고 있어요. 다만 완전 회복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재활 치료가 오래 걸릴 수도 있고요...”반쯤은 형식적인 설명이 끝난 뒤 구승훈은 반 시간쯤 지나서야 진료실에서 나왔다.그는 2층 복도 끝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1층 로비에서 강하리는 조시욱과 함께 웃으며 조 회장과 이야기를 나누며 병원을 나서고 있었다.그 모습을 바라보는 그의 마음 한구석은 시리도록 쓰렸다.그때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고 바로 그 순간 강하리는 숨이 턱 막히는 듯 살짝 멈춰 섰다.고개를 돌려 위층을 올려다보았지만 보이는 건 남자의 뒷모습뿐이었다.그 시선을 따라 조시욱도 뒤를 돌아보았지만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1079화

    그가 말을 마치자마자 진료실 문이 안에서 열렸고 강하리가 휠체어를 밀며 천천히 나왔다.구승훈과 마주친 것이 놀랍지도 않은 듯한 그녀의 표정엔 그 어떤 변화도 없었다.그저 조시욱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가요. 오늘 조 회장님께서 건강검진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같이 가봐요.” 그러자 조시욱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 말을 아직 기억하고 있었어? 우리 할아버지가 아시게 되면 분명 오늘 밤 내내 그 얘기만 하실걸.”강하리는 여전히 미소를 머금고 있었지만 아무도 보지 못하는 그늘진 표정 속 그 웃음은 희미하기 짝이 없었다.“하리야.”구승훈이 낮은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그러자 조시욱은 발걸음을 멈추고 아래를 내려다보며 물었다.“둘이 잠깐 이야기할래?”하지만 구승훈은 이미 그녀에게 다가와 무릎을 꿇고 앉았다.그러고는 방금 깁스를 푼 그녀의 팔을 조심스레 감싸 쥐었다.“아직도 아파?”단 한 마디였지만 거기에 담긴 감정은 지독할 정도로 절절했다.그러나 강하리의 마음속엔 이 말이 오히려 조롱처럼 다가왔고 그동안 꾹 눌러왔던 분노와 상처가 그 순간 와르르 무너져버렸다.그녀는 눈가가 시큰해지며 치밀어 오르는 감정에 숨이 턱 막혔다.‘아프냐고? 정말 이젠 웃기지도 않네. 사고가 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는데 이 자식은 이제 와서 상처가 다 아물어갈 무렵에야 묻네. 아프냐고?’구승훈의 긴 손가락은 그녀의 손목을 조심스럽게 감싸고 있었지만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그는 망설이다가 감싸진 붕대를 살짝 만지려 했으나 강하리는 재빨리 팔을 빼냈다.“손대지 마요.”강하리의 붉어졌던 눈가는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고 마음은 이미 굳어진 상태였다.“역겨워요.”구승훈의 손은 허공에 멈춰 선 채 얼어붙었고 그는 마치 부서질 듯한 표정으로 강하리를 바라보았다.“그때 내가 몇 초 망설였다는 이유로 그래? 하리야, 설마 진심으로 내가 임희주를 선택할 거라고 생각해?”강하리는 눈을 내리깔며 감정을 숨겼고 가슴 깊숙이 파고든 통증도 억눌렀다.그러고는 쓴웃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1078화

    구승훈의 시선은 줄곧 조시욱과 강하리의 뒷모습을 좇고 있었다.두 사람이 병원 진료동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본 뒤에야 그는 마침내 앞에 서 있는 여자를 돌아보았다.“석 여사님,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가요?”석미연은 여전히 온몸을 값비싼 명품으로 휘감은 채 늘 그렇듯 강하리에 대한 반감이 가득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승훈 씨, 나한테 그렇게 차갑게 굴 필요 없잖아. 우리 사이에 무슨 깊은 앙금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예전에 좀 불편했던 일도 다 그 여우 같은 강하리 때문이잖아. 안 그래?”석연란의 비아냥 섞인 말투에 구승훈의 눈빛이 즉시 어두워졌다.“석 여사님, 우리 사이가 그렇게 친했었나요? 감히 승훈 씨라고 부를 정도로요?” 그는 날카롭게 말을 이었다.“그리고 강하리는 분명히 심씨 가문의 당당한 맏딸입니다. 그런 사람을 여우니 뭐니 부르는 석 여사님은 남의 가정 깨고 들어온 입장인데... 여사님 같은 사람이야말로 여우가 아닌가요? 주제 파악은 하셔야죠.”그 말은 단 한 치의 여지도 없이 날카롭고 무례했다.원래 석미연은 구승훈과 적당히 말 섞으며 거리를 좁히고 싶었다.조시욱이 강하리 곁에 있는 건 그냥 잠시 눈먼 남자의 실수라 여겼다.하지만 만약 자신이 심연청을 구승훈에게 시집보낼 수만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강하리가 갖지 못한 남자, 강하리를 버린 남자가 결국은 심연청과 결혼하는 거라면 그보다 통쾌한 복수는 없을 터였다.그런데 뜻밖에도 구승훈은 말을 시작하자마자 그녀를 뼈도 못 추릴 정도로 심한 말을 뱉었다.“구승훈, 감히 나한테 그런 말을 해?”그녀가 이를 악물며 소리치자 구승훈은 더는 감정을 숨기지 않고 냉정한 눈빛을 드러냈다.“제가 사람 보는 눈이 없는 건가요. 아니면 석 여사님이 스스로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는 건가요? 제가 다시 기억나게 해드릴까요? 과거에 당신들과 당신 동생들이 벌인 짓들... 제 손에는 아직도 증거들이 수두룩하죠.”그렇게 말하고 그는 더는 미련 없이 병원 안으로 걸음을 옮겼고 석연란은 그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1077화

    천아름은 강하리의 휠체어를 밀며 복도를 따라나섰다.그런데 하필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하자마자 위층에서 내려오는 구승훈과 준봉을 마주쳤다.이번엔 강하리도 굳이 피하려 들진 않았다.에비뉴 대표실이 이곳에 있는 이상 앞으로 구승훈과는 자주 마주치게 될 터였다.자꾸 피하는 게 오히려 더 부자연스러울 뿐이었다.엘리베이터 안은 고요했고 기계 소리만이 낮게 울릴 뿐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강하리는 내내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조시욱과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었고 구승훈은 묵묵히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를 바라보았다.핸드폰 화면 안, 조시욱과의 채팅창은 대화가 빼곡히 쌓여 있었다.그걸 보는 순간 구승훈은 입안부터 가슴까지 다 쓰려왔다.‘매일 같이 이렇게 대화를 주고받는 걸까?’그는 참다못해 먼저 입을 열었다.“속은 좀 괜찮아졌어?”강하리는 문자를 입력하던 손끝을 멈칫하더니 대꾸하지 않았다.구승훈은 짧게 웃음을 흘렸다.“조시욱이랑 있으면... 토할 일은 없나 보네?”그 말에 강하리는 피식 웃었다.“구승훈 씨, 원하는 대답이 뭔데요? 말해봐요. 제가 맞춰줄게요.”그는 입술을 꾹 다물었고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말해봤자 자존심만 더 상할 뿐이었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천아름이 먼저 휠체어를 밀고 나섰고 밖에서는 이미 조시욱이 기다리고 있었다.그 모습을 바라보던 준봉은 구승훈을 흘끗 보더니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그러자 구승훈이 문득 입을 열었다.“점심 약속 취소해.”그리고는 아무 말 없이 조시욱의 차를 따라나섰다.차 안.조시욱은 조심스럽게 달콤한 디저트를 하나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이거 좀 먹어. 깁스 풀고 나서 맛있는 거 사줄게.”디저트를 바라보던 강하리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시욱 선배, 난... 나 오늘 오후에 F 국으로 출장 가요. 갖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요. 사 올게요.”그는 그녀의 말을 가로막듯 웃으며 말했다.강하리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디저트도 받지 않았다. “제가 지금 무슨 얘기 하려는지 알겠죠.”조시욱은 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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