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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Author: 봄은어디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송여준의 두 눈을 바라보니 유하늘은 웃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마치 그녀가 듣지 말아야 할 말을 듣고 상처라도 받았을까 봐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면서 정작 본인은 그녀를 수도 없이 실망을 안겨주었다.

혼인신고를 한 척하고, 권아람이 귀국하자마자 바로 그녀를 자신의 비서로 고용하고, 유하늘의 몸이 좋지 않을 때 먼저 권아람부터 챙기고...

그 모든 것들이 유하늘의 마음이 문드러지게 했다.

유하늘은 시선을 거두며 덤덤히 말했다.

“거기 가기 전부터 몸이 좋지 않았어. 그래서 바 앞에서 쓰러진 거야. 아무것도 못 들었어.”

송여준이 안도하기도 전에 유하늘이 갑자기 물었다.

“그런데 내가 들으면 안 되는 얘기라도 했어? 왜 그렇게 불안해해?”

유하늘의 눈빛은 맑고 솔직했다.

그 순간 송여준은 흠칫했다.

그는 친구들이 내뱉던 선 넘는 황당한 농담들과, 그들에게 그런 말을 하지 말라며 성질을 부렸다가 결국에는 친구들과 안 좋게 헤어졌던 걸 떠올리고는 애써 웃어 보였다.

“아니. 내가 술을 많이 마셨었는데 네가 그 모습을 보고 날 걱정하거나 나한테 화가 났을까 봐.”

유하늘은 송여준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그럴 리가.”

송여준은 더 자연스럽게 미소 지어 보이며 은근히 화제를 돌렸다.

“나 걱정 안 되는 거야? 아니면 나한테 화가 나지 않은 거야?”

예전에도 송여준은 이런 식으로 장난을 많이 쳤었다.

그러면 유하늘은 애교를 부리면서 해명하거나, 송여준이 또 자신을 놀린다며 화가 난 척했었다.

그러나 이젠 그러지 않았다.

송여준은 그녀의 남편이 아니니 애교를 부릴 필요가 없었고 그가 밖에서 술을 많이 마신다고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그건 권아람이 해야 할 일이었다.

이때 문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의사가 심각한 표정으로 검사결과지를 들고 들어왔고 송여준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미소를 거두고 말했다.

“선생님, 검사 결과 어떤가요?”

유하늘은 순간 흠칫했다.

‘검사?’

의사가 그녀가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얘기할지도 몰랐다.

유하늘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일어나 앉았다.

의사는 검사결과지를 확인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검사 결과 유하늘 씨는 여러 수치가 정상 범위를 벗어났어요. 그리고 자주 코피를 흘려서 몸이 더 허약해지고 있어요. 이런 상황이 계속되다가는 빈혈이 점점 더 심해져서 더 자주 쓰러지게 될지도 몰라요.”

침대 시트를 쥐고 있던 유하늘의 손에 힘이 풀렸다.

‘하긴.’

뇌 CT를 찍지 않는다면 일반적인 검사로는 뇌종양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송여준은 안도하지 않았다. 그는 유하늘이 걱정된 나머지 가슴팍이 눈에 띄게 오르락내리락했다.

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

“코피를 흘리는 건 무엇 때문인가요?”

“그건 확실하게 말씀드리기 어려워요. 날씨가 건조해서일 수도 있고, 밤을 자주 새서 몸에 무리가 간 걸 수도 있고, 알레르기 때문일 수도 있거든요. 혈액 검사 한번 해보실래요?”

의사는 유하늘을 바라보며 물었고, 유하늘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지난번에 검사해 보니까 몸에 무리가 가서 그런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의사는 고개를 끄덕인 뒤 몇 마디 당부한 후 그녀를 도와 바늘을 뽑았다.

유하늘은 침대맡에 기대어 쉬었다.

송여준은 검사결과지를 몇 번이나 자세히 살펴보더니 휴대전화를 꺼내 어떤 수치가 높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일일이 검색했다.

유하늘은 열심히 검색하는 송여준의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럴 필요 없다고, 내 앞에서 다정한 남편인 척할 필요 없다고, 역겹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결국 유하늘은 에둘러 말했다.

“나 잘래.”

“그래.”

송여준은 떠날 생각이 없는 건지 겉옷을 챙겨 입으며 옆에서 그녀를 간호하려고 했다.

송여준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했다.

“내가 한의사한테 여쭤볼게. 기가 허할 때 어떤 약을 먹으면 좋을지 말이야. 걱정하지 마. 그 한의사 진짜 실력 좋거든. 맥 한번 짚어보면 어디가 아픈지 바로 알 수 있어.”

유하늘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송여준과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곧 죽을 사람이 한약을 먹을 필요가 있을까?

송여준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지 못하고 그녀에게 이불을 덮어주었다.

“자. 내가 옆에 있을게.”

유하늘이 거절하려는데 갑자기 문밖에 누군가 나타났다.

“나 들어가도 돼? 내가 두 사람 방해한 거 아니지?”

시선을 드니 권아람이 환자복을 입고 미소 띤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부드럽고 맑아 보였다.

송여준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 심장 아파서 침대에 누워서 쉬어야 한다며. 여긴 왜 왔어?”

다급히 권아람에게로 향하는 송여준의 모습에 유하늘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권아람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설명했다.

“병실에만 있는 건 답답해서 밖에서 산책하고 있었는데 여준 씨 차가 보이더라고. 그 뒤로 여준 씨가 하늘 씨를 병원에 왔다는 걸 알게 됐어.”

권아람은 몸을 돌리며 송여준의 뒤를 바라보았다.

“하늘 씨, 괜찮아요?”

유하늘은 멈칫했다.

그들은 전혀 친하지 않은데 왜 권아람은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친한 척하는 걸까?

유하늘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해요.”

권아람은 가방을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별말씀을요. 여준 씨 아내면 제 사람이랑 다름없죠.”

권아람은 웃으면서 송여준을 향해 눈을 깜빡였다.

송여준은 부자연스러운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며 유하늘의 반응을 살폈다. 그녀가 화를 내기라도 할까 봐 두려운 듯이 말이다.

유하늘은 진짜 부부인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한 명은 그런 일 따위 없다는 듯이 뻔뻔하게 굴었고, 다른 한 명은 도둑이 제 발 저려서 안절부절못했다. 유하늘은 정말 웃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권아람 씨, 이만 돌아가시죠. 저는 이만 자려고요.”

권아람은 유하늘이 자신을 쫓아내도 신경 쓰지 않고 앞으로 걸어가며 가방 안에서 뭔가를 꺼냈다.

“저 먹을 거 가져왔어요. 시간이 많이 늦었는데 배고프죠? 이거 먹고 배 좀 채워요.”

권아람은 가방 안에서 바나나 하나와 함께 투명한 도시락통을 꺼냈다. 도시락 안에는 소고기와 채소들이 들어 있었다.

송여준은 웃었다.

“다 영양가 있는 것들이네. 고마워.”

“우리 사이에 고맙다는 말은 안 해도 돼. 여준 씨를 위해서라면... 그리고 여준 씨 아내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지.”

권아람은 도시락을 열어 유하늘의 앞에 내려놓았다.

유하늘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전 안 먹어요.”

유하늘이 딱딱한 말투로 대꾸하자 권아람은 눈에 띄게 당황하며 속상한 듯 조심스럽게 입술을 깨물었다.

“혹시 저한테 화가 난 거예요?”

유하늘은 솔직하게 말했다.

“전 권아람 씨랑 친하지 않잖아요. 그리고 입맛도 없고 다른 사람이 준 걸 막 먹고 싶지는 않아요. 이해하셨나요?”

“미안해요. 제가 너무 제멋대로였네요. 여준 씨가 먹을 걸 챙겨줄 텐데 제가 괜한 걱정을 했네요.”

권아람은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숙이며 입술을 깨물었다.

송여준은 유하늘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으며 말했다.

“하늘아, 아람이는 너 생각해서 그런 거잖아.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유하늘은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나랑 친하지 않다는 건 사실이잖아. 내가 뭐 틀린 말 했어?”

권아람이 다급히 도시락을 들고 일어났다.

“그만해. 괜히 나 때문에 하늘 씨랑 싸우지 마. 두 사람 나 때문에 싸우면 내 마음이 더 불편해. 하늘 씨가 안 먹는다고 하니까 이건 내가 챙겨갈게.”

권아람은 가방 안에 도시락을 넣다가 실수로 뭔가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본능적으로 그것을 본 유하늘은 바닥에 떨어진 서류를 보고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그것은 혼인관계증명서였다.

그건 아무런 예고도 없이 유하늘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녀는 두 사람이 반응하기 전에 서둘러 서류를 주워서 확인해 보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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