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6화

Author: 끝없는 한빛
유준서는 헛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돌려 거울 속을 바라봤다. 정다름의 얼굴은 차가웠다.

기분이 좋지 않은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는 화가 난 그녀의 포동포동한 얼굴을 보는 것이 좋았다.

그는 간질간질한 이를 세게 악물었다. 포동포동하고 보드라운 그녀의 볼살을 꼬집어 터뜨려야 마음속의 이 알 수 없는 간지러움이 해소될 것만 같았다.

무소음 헤어드라이기는 악의적인 유준서의 웃음소리를 덮을 수가 없었다.

정다름은 그저 못 들은 척하며 할 일에만 더 집중할 뿐이었다.

그의 조금 긴 머리는 스타일리시하게 다듬어져 있었다. 회사에서는 늘 포스 넘치는 올백 머리를 했지만, 머리를 감은 후 손질하지 않으면 그냥 부드럽게 흐트러진 머리가 되었다.

이마 앞의 잔머리가 조금 긴 편이었기에 드라이기를 할 때 정다름의 손가락이 머리카락을 파고들면서 애매한 분위기가 소리 없이 퍼져나갔다.

유준서는 무거운 눈꺼풀을 버티며 거울 속의 사람을 바라봤다. 가끔 머리카락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촉감에 그는 졸음이 쏟아졌다.

몇 분 후 정다름은 드라이기를 내려놓았다.

“대표님, 다 됐습니다.”

아무 반응이 없어 고개를 돌려보니 유준서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손이 머리를 받쳐주지 않아 머리가 점점 바닥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정다름은 급히 손을 내밀어 그의 머리를 받쳐 들다가 무의식적으로 손을 빼고는 수건을 가져와 그의 얼굴을 받쳤다.

“대표님, 일어나세요. 침대에서 주무셔야 합니다.”

그녀의 목소리에 유준서는 미간을 찌푸리며 불편한 수건을 던져버리고는 정다름의 손을 뺨에 가져다 댔다.

“하.”

차갑고 부드러운 촉감이 편안한 듯 그는 신음을 내뱉었다.

“머리 만져줘. 머리 아파.”

유준서는 눈도 뜨지 못하고 몽롱한 상태로 요구했다.

그러나 정다름은 조마조마했다. 유준서가 지금 당장이라도 눈을 뜨고 두 사람의 스킨십을 볼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의 피부가 너무 뜨겁고 정신도 흐릿한 상태였기에 그의 요구를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그의 이마를 문질렀다. 그는 얌전히 있지 않고 그녀의 손길을 따라 머리를 움직이며 차가운 기운을 쫓았다.

정다름은 하는 수 없이 강제로 그를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숨을 죽인 채 그의 허리를 감싸고는 비틀거리며 크고 무거운 몸을 침대 위로 부축했다.

손에 흥건한 땀을 닦기 위해 손을 드는 순간 누군가 그녀의 손을 낚아챘다.

유준서가 빤히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

“계속 만져줘.”

정다름은 깜짝 놀랐다. 제멋대로 허리를 만졌다고 욕설을 퍼부을까 봐 무서웠지만 걱정과 달리 그는 바로 눈을 감았다.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춥지 않게 이불을 잘 덮어준 그녀는 침대 옆에 앉아 열심히 그의 이마와 귀를 문질렀다.

흐릿한 스탠드의 불빛은 애매모호하면서도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유준서는 따뜻한 손길에 점차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정다름은 가벼워진 숨결로 탐욕스럽게 그의 수려한 얼굴을 바라봤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그를 만지고 그의 곁을 지키는 건 7년 동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순간이었다. 그녀의 마음은 복잡한 감정들이 뒤섞여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지금 이 순간만을 위해서라도 그녀는 제멋대로 그의 곁에 온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녀는 본인이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여자를 무서워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고집스럽게 그의 곁에 왔기에.

하지만 정말 어쩔 수가 없었다. 그리움에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7년의 짝사랑, 매일 밤 그 순간으로 돌아가고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릴 때마다 그를 향한 그리움으로 견뎌왔었다.

그녀는 골목길에서 불량배인 친구들의 손에서 본인을 구해준 그를 영원히 잊지 못한다.

그녀를 지옥에서 구해낸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다.

그녀를 위해 불량배인 친구들과 싸우고 본인의 신분으로 명문가 출신의 범인들을 감옥에 보낸 사실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의 신분으로 그들이 마땅한 처벌을 받게 하지 않았다면 집안이 좋은 그 나쁜 인간들은 절대 처벌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무거운 형벌을 받았다. 그 뒤에는 분명 유준서의 뒷받침이 있었기에 그동안 죄 없는 여학생들에게 저질렀던 악행까지 다 까발려져 처벌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정다름은 불행 중 다행으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더욱 행운인 건 유준서를 만났다.

그녀는 유준서를 평생 사랑할 것이다.

여성 공포증이 있는 그가 여자가 그에게 욕망을 갖는 것을 혐오한다. 그렇기에 그녀는 그저 본인의 진심을 잘 숨겨두는 수밖에 없었다. 그저 그의 곁에 있을 수 있는 것만으로 만족했던 그녀였지만...

지금 마음속 깊은 곳에 존재해서는 안 될 욕심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는 것 같았다.

정다름은 그의 가늘고 하얀 손을 바라보며 마음속의 욕망을 억눌렀다. 두려움과 욕망이 거세게 부딪혔지만, 그녀는 가까스로 그것을 눌러 담았다.

그녀는 마음을 잘 숨기고 그와 거리를 두겠다는 다짐을 해 놓고 지금 와서 그에게 키스하고 싶다는 욕망이 싹트는 본인이 뻔뻔스럽게 느껴졌다.

그녀는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다시는 그에게 키스할 기회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정다름은 두려움과 갈등, 그리고 갈망이 교차하는 눈빛으로 그 손을 바라봤다. 그녀는 그렇게 30분 동안 가만히 있었다. 온몸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난 영원히 널 해치지 않을 거야.”

그녀는 자신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낮게 속삭였다. 혹시나 그가 듣고 두려워하고 역겨워할까 봐 걱정되기도 했지만, 이런 욕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본인에게 전하는 경고이기도 했다.

그녀는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가며 문을 닫았다. 두 사람 사이를 차단하고 그녀의 욕심을 끊어버렸다.

정다름은 벽에 기댄 채 가쁜 숨을 몰아쉬며 피가 나도 모를 정도로 손등을 세게 깨물었다. 그녀는 쓰라린 눈물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계속 고개를 들어 올렸다.

끊임없이 숨을 크게 내쉬던 그녀의 눈빛이 점차 차분해졌다. 그녀는 스스로에게 경고했다.

“절대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되고 만져서도 안 돼. 무너지고 무서워할 거야. 그냥 계속 이렇게만 해.”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욕심이 불타올라도 필사적으로 참아낼 것이다. 그에게 상처 주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따뜻한 아침 햇살이 숨 막히는 어둠을 점차 집어삼켰다.

눈부신 해가 떠오르자마자 찬란한 햇빛이 집 안으로 쏟아졌다.

식탁에 엎드려 매우 불편한 자세로 잠을 자던 정다름은 햇살이 얼굴 위로 떨어지자,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떴다.

그녀는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손을 들어 시계를 확인했다. 아직 아침 5시가 조금 넘는 시간이었다.

약간 어지러운 머리를 부여잡고 있다가 순간 무언가 떠오른 그녀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다리에서 느껴지는 저릿한 느낌에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윽.”

그녀는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아냈지만, 고통스러운 표정은 숨길 수가 없었다.

밤새 앉아서 잠을 잤기 때문에 다리가 저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저릿한 느낌에 그녀는 소름이 끼쳤다.

그녀는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고 난 뒤에야 다리를 움직일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몸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비만인 그녀는 조금만 움직여도 온몸에 땀이 났다. 굳게 닫힌 방문을 바라보던 정다름은 결국 손님용 화장실을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그는 그녀에 대한 경계심이 강했다. 전에는 그녀의 손길이 닿는 것이라면 뭐든 싫어하고 용납하지 않았다. 최근 두 달 동안 겨우 상태가 조금 나아졌기에 그녀는 그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편안히 잠들어 있는 유준서의 상태를 확인하던 정다름은 조심스럽게 그의 이마를 만졌다. 열이 많이 내린 상태였다. 그녀는 그제야 안심하고 방을 나올 수 있었다.

그녀는 트렁크에서 갈아입을 옷을 꺼내 챙긴 뒤 휴대폰을 갖고 밖으로 나갔다.

주택가에는 24시간 영업하는 목욕탕이 있었다. 그녀는 바로 그곳으로 달려가 우유 마사지까지 받았다. 온몸을 깨끗이 씻어내자, 온몸의 피로가 풀리는 것만 같았다.

두 시간이 지난 뒤 정다름은 잠에서 깬 유준서가 그녀가 집에 없는 것을 알고 또 화를 낼까 봐 무서워 아침에 먹을 음식을 사서 급히 돌아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미 한발 늦었다.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atest chapter

  • 겉과 속이 다른 비서   제30화

    정신을 차린 정다름의 깜빡이는 눈동자 속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감격스럽고도 정중하게 입을 열었다.“영원히 잊지 않을 거예요.”오재하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다름 씨가 계속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갔으면 좋겠어. 고민이 생긴다면 언제든 찾아와.”“난 언제나 기다리고 있으니까.”그는 손을 들어 자연스럽게 정다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두 사람이 알고 지낸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처음으로 느끼는 오재하의 손길이었다.깜짝 놀란 정다름은 몸을 돌려 안전벨트를 푼 뒤 감사 인사를 했다.“고마워요, 재하 오빠. 오늘은 급한 일이 있으니까 집에 초대하지는 않을게요. 나중에 환영 파티 겸 정식으로 식사 대접할게요.”오재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가의 주름이 선명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그래, 그럼 다름 씨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을게.”차에서 내린 정다름은 그를 향해 손을 흔들고는 집으로 올라갔다.오재하는 그녀의 머리카락이 닿은 손을 매만지며 조용히 중얼거렸다.“급할 거 없어. 여기까지 왔으니까. 기회는 많아.”그녀의 육감적인 몸매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그는 차를 몰고 떠났다.회사, 대표 사무실의 문을 두드리던 김태진은 흰죽을 갖고 사무실로 들어갔다.그는 조심스럽게 유준서의 낯빛을 살피며 말했다.“대표님, 조금이라도 드세요.”유준서는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안 먹어. 가지고 나가.”그 말에 김태진은 필사적으로 말을 내뱉었다.“정 비서가 죽이랑 반찬들을 가져다...”정 비서란 말에 번쩍 고개를 드는 유준서의 모습에 김태진은 가슴이 철렁했다!역시, 정 비서 이야기를 하니까 반응을 보여.그렇다면 역시 음식 문제가 아니라 음식을 가져다줬던 사람이 문제였던 거야?김태진은 눈물이 났다. 3년 동안 대표의 곁을 지킨 그였지만 겨우 반년 일한 부하 직원 하나 이기지 못했다.테이블 위의 아직 김이 모락모락한 음식을 보던 유준서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무슨 얘기 했어?”김태진은 바로 대답했다.“그냥 어떤 음식으로 준비하

  • 겉과 속이 다른 비서   제29화

    「정 비서, 몸은 좀 괜찮아요? 괜찮으면 지금이라도 출근할 수 있어요?」마침 오재하와 점심을 먹고 있던 정다름은 문자 알림에 바로 휴대폰을 확인했다.「오늘 하루 휴가 냈잖아요. 출근은 힘들 것 같아요. 무슨 일 있어요?」정다름이 문자를 보내자마자 바로 답장이 왔다.「대표님 오늘 컨디션이 장난이 아니에요. 너무 힘들어요ㅠㅠ 점심 식사도 다 바닥에 내팽개쳤어요. 제가 고른 음식들이 입에 안 맞는가 봐요.」그의 문자를 본 정다름은 입술을 오므리고 한참 머뭇거렸다. 끼니를 거르는 유준서가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비서실장님, 걸쭉하게 끓인 흰죽을 드려보세요. 밑반찬이랑 같이 드리면 아마 드실 거예요. 잊지 말고 약도 챙겨드리세요.」김태진은 다시 대표 사무실에 들어갈 생각을 하니 몸서리가 났다. 그 무시무시한 곳에는 다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정 비서, 오늘 정말 출근 안 할 거예요?」정다름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망설여졌다. 출근하고 싶었다. 그 사람을 달래며 밥을 먹게 하는 것만으로도 좋았다.하지만 그녀의 답장은 마음과 달랐다.「안 할 거예요.」문자를 보낸 그녀는 바로 무음 모드로 변경하고 휴대폰 화면이 보이지 않게 휴대폰을 엎어놓았다.조용히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오재하는 그녀가 휴대폰을 내려놓고서야 입을 열었다.“급한 일이라도 있어?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라면 얼른 가봐. 나 때문에 이러고 있지 말고.”그러자 정다름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는 잔을 들어 올리며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오늘 휴가 냈는데 마침 재하 오빠가 온 거예요. 자, 환영 인사는 술 대신 음료수로 한잔 올릴게요.”오재하가 들어 올린 잔이 그녀의 잔과 부딪히며 맑은소리가 울려 퍼졌다.“세월 참 빠르네. 처음 널 만났을 때는 아직 어린아이였는데 이제는 이렇게 커서 오빠도 환영해 주고.”오전 내내 편안한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힐링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 느낌이었다.정다름은 손으로 턱을 받쳐 든 채 달콤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어릴 때부터 지금까

  • 겉과 속이 다른 비서   제28화

    몸이 안 좋다고 했잖아?몸이 안 좋으면 쓸데없는 남자랑 쇼핑할 것이 아니라 집에서 쉬어야 하는 거 아니야?근데 저 남자는 누구지?유준서는 휴대폰을 꺼내 정다름의 별스타를 뒤졌다. 하지만 반년 동안 거의 올린 게시물이 없는 그녀의 별스타에는 개인적인 사진 한 장 없었다.때문에 그는 그녀의 사진을 갖고 점원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씨X!”분노를 억누를 수 없었던 유준서는 바로 관제실로 향했다.대표를 알아보지 못한 보안 요원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밖으로 내쫓으려고 하자 유준서는 보안 요원에게 발길질했다.“꺼져.”황급히 달려온 총괄 책임자가 그 모습을 보고는 바로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죄송합니다, 대표님. 아직 신입이라서 아무것도 모릅니다.”가슴이 답답한지 옷깃을 잡아당기던 유준서는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CCTV 돌려. 이 밀크티 가게의 반 시간 전 CCTV 빨리 돌려봐.”더는 지체할 수 없었던 책임자는 급히 기술자에게 명령했다.“잠깐.”유준서가 갑자기 그들의 행동을 제지했다.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사람들의 눈빛이 그에게로 향했다.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유준서 본인조차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그 여자가 정다름이 맞든 아니든 그게 중요해?그 여자가 정다름이라고 해도 남자랑 웃고 떠들든 말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지?왜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여기까지 온 거야?유준서는 본인의 모습이 그저 우스웠다.그 여자가 진짜 정다름이라고 해도 그가 응당 화를 내야 할 부분은 휴가 신청 사유가 거짓말이라는 사실이었다.그녀는 일개 직원일 뿐, 그녀가 몸이 안 좋든 거짓말로 휴가 신청을 하고 남자와 데이트하든 그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됐어.”유준서는 어두운 낯빛으로 몸을 돌려 나갔다.대표의 살기등등한 행동에 깜짝 놀라 감히 숨조차 크게 내쉬지 못하던 관제실 사람들은 관제실을 떠나는 대표의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회사로 돌아온 유준서의 얼굴은 나갈

  • 겉과 속이 다른 비서   제27화

    팔찌를 책상 위로 내던진 유준서는 입꼬리에 미소를 머금은 채 담배를 피웠다. 담배 두 대를 피운 그는 다시 불쾌한 감정이 치솟아 짜증스럽게 이마를 만지더니 담배를 끄고는 끊어진 팔찌를 챙겨 밖으로 나갔다.그 모습을 본 김태진은 급히 일어서며 물었다.“대표님, 어디 가세요? 차 준비할까요?”유준서는 괜찮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그는 한 손에 외투를 들고 바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따라올 필요 없으니까 할 일 해.”직접 운전해서 백화점으로 온 유준서는 주얼리 가게를 찾아 들어가 팔찌를 계산대 위로 던지며 말했다.“고쳐.”대표인 걸 알아챈 점원은 급히 팔찌를 챙겼다.“가장 실력이 좋은 전문가에게 맡겨. 끊어졌던 흔적은 안 보이게.”차가운 유준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네, 대표님.”유준서는 VIP룸에 앉아 단방향 유리 밖의 남자와 여자들을 바라봤다. 그냥 짜증이 나기만 했다.점원에게 감사 인사를 한 오재하는 새로 산 전자제품을 들고 정다름과 가게에서 나왔다.“다름 씨, 촌놈인 나와 함께 쇼핑해 줘서 고마워.”그의 말에 정다름은 웃으며 말했다.“촌놈이라뇨? 제 살던 곳은 촌구석이 아니라고요.”그녀의 말에 어리둥절해 있던 오재하도 따라서 웃기 시작했다.“맞아, 우리가 살던 곳은 촌구석이 아니라 좋은 곳이지.”우스갯소리로 한 소리였기에 그는 그들이 같은 곳에서 왔다는 사실을 깜빡했었다.밀크티 가게를 지나던 오재하가 다시 입을 열었다.“2시간 넘게 쇼핑했는데 아이스크림이나 먹으면서 잠깐 쉴까?”정다름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입을 열려는 순간 오재하가 먼저 말했다.“네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은 내가 기억하고 있으니까 앉아서 기다려.”아이스크림을 사러 가는 오재하를 보던 정다름은 앉아서 휴대폰을 꺼내 확인했다. 그에게 온 전화나 문자는 없었다.그녀는 씁쓸한 듯 아랫입술을 오므렸다.대체 뭘 기대한 거지?원래부터 그녀에게 전화를 안 하는 사람이었다.“짠, 네가 좋아하던 맛 맞지?”오재하는 두

  • 겉과 속이 다른 비서   제26화

    운전기사는 손목시계를 힐끗 쳐다봤다. 곧 9시였다. 그들은 정 비서가 사는 아파트 입구에서 한 시간 넘게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는 어두운 낯빛으로 뒷좌석에 앉아 있는 남자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대표님, 제가 정 비서님에게 전화라도 해볼까요?”유준서는 말없이 계속 아파트 대문을 쳐다봤다. 정다름이 나온다면 그가 못 봤을 리 없을 것이다.손목시계를 확인한 그는 조용히 시간을 계산했다.평소 그녀는 대표인 그보다 빨리 회사에 왔다. 이동 시간을 20분으로 계산한다면 일반적으로 8시 20분에 집을 나설 것이다.하지만 7시 50분부터 9시까지 기다렸지만,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7시 50분 전에 출근했을 리는 없고, 이미 9시인데 대체 뭘 하는 거야?아픈가?늦잠을 잤나?아니면 화가 나서 출근하기 싫은가?왠지 모르게 뛰어 올라가 문을 부숴서라도 그녀를 만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기 위해 유준서는 손가락을 움켜잡았다. 팔찌를 쥐고 있던 손바닥에서 통증이 느껴졌다.그는 시선을 거두며 차갑게 말했다.“출발해.”운전기사는 바로 차에 시동을 걸었다.어젯밤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마음속에 궁금증이 피어올랐다.아침 일찍 데리러 오라고 하고, 정 비서 집 밑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기다려 놓고도 전화 한 통을 못 하게 하는 것이 너무 이상했다.9시 20분,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유준서는 정다름의 자리가 비어 있는 것을 보고 기분이 더욱 불쾌해졌다.어느새 일어나 있던 김태진이 그에게 보고했다.“대표님, 안녕하세요. 정 비서는 몸이 좋지 않아서 방금 저에게 휴가 신청을 했습니다.”몸이 안 좋아?하, 진짜 몸이 안 좋은 거야 아니면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은 거야?일을 이대로 할 거면 그냥 때려치우는 게 낫지.유준서의 매서운 눈빛이 김태진의 얼굴에 떨어졌다.“네가 허락했어?”온몸에 소름이 끼친 김태진은 바로 대답했다.“정 비서는 그동안 휴가를 낸 적이 없습니다. 오늘은 정말 몸이 안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H시에 돌아와서 쉬지

  • 겉과 속이 다른 비서   제25화

    정다름은 고개를 끄덕였다.“물론이죠.”“그렇다면 오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건 이제 그만하는 건 어때? 너무 서먹해 보여.”오재하는 상처받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따라서 가볍게 웃던 정다름은 마지막으로 진료소를 떠날 때처럼 오재하를 불렀다.“재하 오빠.”얼굴의 웃음기가 더욱 짙어진 오재하는 그녀의 기분이 한결 풀린 것 같아지자, 본론으로 들어갔다.“왜 기분이 안 좋았어?”맑은 공기를 마셔서일까 아니면 몇 번이나 우울한 감정에 빠져있던 그녀를 구해준 선생님 때문에 마음이 놓여서일까, 그녀는 전처럼 두렵거나 답답하지 않았다.“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여자를 싫어해서 저를 안 믿어요.”그녀의 말에 오재하 입꼬리의 웃음기가 굳어졌다.마음속에 세찬 파도가 요동치고 있어도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짝사랑하던 그 사람을 만난 거야?”정다름은 고개를 끄덕였다.오재하의 눈빛은 더욱 그윽해졌다. 그는 진즉에 알고 있었다. 이렇게 고집스러운 성격의 아이가 남몰래 한 사람을 몇 년 동안 짝사랑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한발 늦었다.하지만 모두가 짝사랑일 뿐이기에 조급해할 필요는 없었다. 결과는 운명과 행동에 달린 것이다.여러 감정을 간신히 억누른 오재하는 그녀의 정곡을 찔렀다.“그렇다면 네가 슬프거나 무서운 게 뭐야?”정다름은 코끝이 시큰거렸다.“제가 여자여서 그 사람이 내쫓을까 봐 무서워요. 그에게 안정감을 주지 못한 제가 원망스럽기도 하고요.”이미 그 남자 곁으로 간 건가?오재하의 눈동자가 반짝였다.“그 사람은 왜 여자를 싫어하는 거야?”유준서의 개인적인 일을 함부로 말하고 싶지 않았던 정다름은 두루뭉술하게 둘러댔다.“어디에서나 빛나는 사람이기에 수작을 부리는 여자들이 귀찮아서요.”잠깐 침묵에 빠진 오재하는 솔직하게 말했다.“조건이 뛰어난 남자라면 일반적으로 여자를 싫어하지 않아. 심리적 문제가 있는 경우라면 예외겠지.”그의 말에 정다름은 갑자기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봤다.그러자 그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