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과 속이 다른 비서의 모든 챕터: 챕터 1 - 챕터 10

30 챕터

제1화

“이런 농염한 옷차림으로 비서 일을 하겠다고? 어떻게 하겠다는 거지?”유준서는 대범한 자세로 가죽 소파에 앉아 있었다. 소파에 아무렇게 걸쳐 놓은 팔 주위로는 차가운 한기가 감돌았다.그는 위험하고도 그윽한 눈빛으로 정다름을 쳐다봤다.“그 풍만한 몸매로 하겠다는 건가?”유준서는 웃는 것 같기도, 웃지 않는 것 같기도 한 얼굴로 모욕적인 말을 내뱉으며 눈앞에 서 있는 신입 비서를 공격했다.그는 정다름이 개인 비서로 남아 늘 그와 함께할 것이라고 확신했다.그러나 그녀는 아무 표정 없이 한참 동안 그를 쳐다보다 몸을 돌렸다.순간 확신으로 가득 찼던 유준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벌떡 일어나 그녀가 열었던 문을 거칠게 눌러 닫으며 문 위로 몰아붙였다.“어디 가려고?”그의 나지막한 목소리에는 위압감이 가득했다.정다름은 고개를 돌리며 그의 시선을 피했다.그녀의 행동에 화가 치밀어 오른 유준서는 그녀의 턱을 움켜쥐며 강제로 시선을 맞췄다.“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야? 지난번처럼 기어올라봐! 설마 H시로 보냈다고 원망이라도 하는 거야?”그의 질문에도 정다름은 여전히 눈을 내리깐 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유준서는 오랫동안 그녀를 보지 못한 사람처럼 집어삼킬 것 같은 이글이글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봤다.그녀의 고집스럽고도 차가운 태도에 유준서는 조바심이 났다.“도대체 언제 올 거야?”유준서는 고개를 숙인 채 그녀에게 다가갔다. 굶주린 눈빛은 그녀의 붉은 입술에 멈췄다. 그는 이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벌써 보름이나 지났어. 네가 돌아와서 먼저 잘못했다고 하면 그때 나한테 대들었던 일은 없었던 일로 할게.”말이 끝나는 순간 정다름은 갑자기 힘껏 그를 밀쳐내며 격렬하게 저항했다.하마터면 그녀를 놓칠 뻔했던 유준서는 화를 참지 못하고 그녀의 두 손을 잡아 머리 위로 들어 올려 문 위에 고정했다.날카롭고도 혼란스러운 그의 눈빛은 붉은 입술을 뚫어져라 쳐다봤다.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더욱 거세진 저항 속에 거칠게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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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정다름은 멈칫하더니 이내 몸을 돌려 면봉에 특수 구강 소독제를 묻히며 말했다.“입 벌리세요.”그녀의 말에 유준서는 독사처럼 음흉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차갑게 웃었다.“명령하는 거야?”아래로 내리뜨린 정다름의 눈초리가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더욱 차가워진 목소리로 다시 한번 말했다.“대표님, 입 벌려주세요.”그러자 유준서는 불쾌한 얼굴을 드러냈다.“지금 한마디 했다고 그러는 거야? 짜증 난 얼굴로?”정다름은 천천히 손을 내려놓더니 마침내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봤다. 눈에는 난감함과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대표님, 제가 치료해 드리는 게 싫다면 비서실장님이 문 앞에 계시니 비서실장님에게 부탁하겠습니다.”말을 마친 그녀는 몸을 돌려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그 모습을 본 유준서는 무의식으로 손을 뻗었다. 찰랑거리는 긴 머리가 그의 손에 잡혔다.“아!”낮은 신음이 들려왔다. 그녀는 고개를 기울인 채 몸을 돌렸다. 방금까지 차가웠던 눈동자에는 이슬이 맺혀 있었다.너무 세게 잡아당겼나?하지만 자업자득이야!유준서는 그녀의 긴 머리를 잡아당기며 거만하게 말했다.“네게 그런 결정을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그의 말에 정다름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더니 돌아와 면봉을 상처 난 그의 입술에 갖다 댔다.그녀가 눈앞에 있다. 그가 애원하지 않아도 제 발로 얌전히 돌아왔다.유준서는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부지 하나 갖고 뭘 그렇게 오래 꾸물댄 거야? 김태진이 갔으면 7일 만에 깔끔하게 끝냈을 일인데 정 비서는 보름이나 걸려? 정 비서, 능력이 그거밖에 안 돼?”정다름의 손이 살짝 떨렸다.“스읍!”갑작스러운 고통에 유준서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그는 거의 품에 안긴 정다름을 보며 사납게 말했다.“정다름, 일부러 그랬지?”정다름은 신체 접촉을 피하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노력했다. 그러나 결국 두 손이 그의 가슴에 닿았다.“흠.”낮은 신음과 함께 유준서의 숨소리가 무거워지기 시작했다.매서운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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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윽, 정다름!”유준서의 괴이한 말투에 정다름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그녀의 손가락은 어느샌가 그의 입속에 들어가 있었다.의료용 장갑을 끼고 있었지만 정다름은 깜짝 놀랐다.급히 몸을 바로 세워 자신의 손을 빼던 정다름은 의자 위에서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의자에서 떨어지려던 순간 강한 힘이 느껴지는 팔이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 유준서는 그녀를 한 손으로 안아 내려놓았다.정다름은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시더니 이내 그를 세게 밀어내며 물러섰다. 그리고 목구멍까지 올라온 비명이 새어나가지 않게 이를 악물었다.그러나 그녀의 얼굴에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왜 그렇게 놀라서 피하는 거야?”낯빛이 완전히 어두워진 유준서가 이를 악물며 물었다.황급히 피하는 그녀의 모습에 유준서는 본인이 더러운 물건이라도 된 것 같았다!정다름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긴장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다.하지만 그녀는 유준서가 화를 낼까 봐 더 두려웠다. 그에게 마음이 있어 일부러 그에게 안겼을 거라고 생각할까 봐 두려웠고, 그녀를 역겨워할까 봐 그녀를 내쫓을까 봐 두려웠다.정다름은 애써 마음을 가다듬으며 더욱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죄송합니다, 대표님. 방금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했습니다. 약은 다 발랐으니 다른 시키실 일 더 없으시면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그녀는 허둥지둥 돌아서다 하마터면 벽에 부딪힐 뻔했다.돌아가겠다는 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유준서는 급히 심하게 기침하며 허약한 목소리로 말했다.“나 배고파. 죽 끓여줘.”그의 말에 정다름은 발걸음을 멈췄다.“가사도우미 업체에 전화해서 바로 사람 보내라고 하겠습니다.”“네가 해.”유준서의 거친 목소리에 정다름은 멈칫하더니 몸을 돌려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봤다.그러자 유준서는 비아냥거리며 말했다.“정 비서, 설마 보름 출장 갔다 왔다고 본업을 잊은 건 아니지?”“아닙니다. 대표님의 개인 비서로 대표님의 일상생활을 돌보는 것이 제 업무입니다. 지금 바로 준비하겠습니다.”말하며 밖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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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유준서의 말투는 강경했다.“네 대표가 누군지 잊은 거야? 네 모든 업무는 그냥 평범한 동료에게 보고할 것이 아니라 가장 먼저 대표인 나에게 보고해야 하는 거야.”정다름은 그 순간이 불편했다. 그와의 거리가 너무 가까운 탓에 말할 때의 호흡이 그대로 그녀에게 전해졌기 때문이다. 뜨거운 열기에 그녀는 얼굴이 달아오르고 심장이 두근거렸다.“알겠습니다. 다음부터는 가장 먼저 대표님에게 보고하겠습니다.”말을 마친 정다름은 접시를 갖고 조리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그때 유준서가 그녀의 팔을 낚아챘다. 역시 꿈속에서와 똑같이 보드랍고 매끄러운 살결의 촉감이 느껴졌다.깜짝 놀란 정다름은 무의식적으로 발악했다.아직 고열 상태라 정신이 혼미한 유준서는 여전히 그 꿈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꿈속에서처럼 또 이렇게 그를 거부하다니, 분노를 억누를 수가 없었다.그가 꿈속에서처럼 그녀의 두 손을 잡자 정다름의 손에 들려 있던 접시가 떨어지면서 산산조각이 났다.주방에 울려 퍼지는 맑은소리에 고열로 본인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던 유준서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손을 놓았다.정다름은 급히 쪼그려 앉아 깨진 접시 조각들을 주웠다. 그녀의 심장은 미친 듯이 요동치고 있었고 얼굴은 어느새 빨개져 있었다. 그런 본인의 모습을 들킬까 봐 두려웠던 그녀는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그만해.”유준서는 고개를 숙여 그녀를 바라봤다.머리가 혼란스러웠던 정다름은 그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아랑곳하지 않는 그녀의 태도에 유준서는 참지 못하고 낮게 소리쳤다.“그만 주우라고!”“앗!”고함소리에 깜짝 놀란 정다름은 깨진 접시 조각에 손가락을 베었다. 상처 부위에서는 붉은 피가 솟구쳐 흘렀다.유준서는 그녀의 손목을 확 낚아채 망설임 없이 그녀의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갔다.그의 행동에 다급해진 정다름은 그동안 억누르던 감정은 저편에 던져둔 채 다른 한 손으로 그의 가슴을 밀며 거부했다.“하지 마세요!”그녀의 말에 유준서의 눈이 벌게졌다.“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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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그녀는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녀가 처음으로 그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뭐지, 이제 연기를 안 하겠다는 건가?유준서는 차갑게 그녀를 쳐다봤다.“정다름, 네가 온 첫날부터 경고했지. 내가 시키는 대로 하라고. 내 말 듣기 싫으면 꺼지든가.”“지금 당장 물건들 주워 담아!”그의 말에 그녀는 온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 유준서의 차가운 눈 밑에 의기양양함과 조롱의 빛이 감돌았다.그는 그녀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해고였다. 끈질기게 그의 옆에 붙어있는 이유 역시 다른 목적 때문이기에 그것 또한 당연한 일이었다.이렇게 쫓겨난다면 그녀를 보낸 사람도 아마 그녀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정다름의 눈가가 빨개졌다. 그에게서 가장 두려운 말을 듣자마자 공포가 슬금슬금 그녀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하지만 이제 겨우 그의 곁에 머물 수 있게 된 그녀였기에 그에게 의심받고 괴롭힘을 당해도 끝까지 버틸 것이다.매일 그의 곁에서 그를 지켜보고 그를 챙겨줬기에 욕심은 더욱더 커져 더 이상 그의 곁을 떠날 수가 없게 되었다.정다름은 고개를 숙인 채 천천히 몸을 돌려 바닥의 약상자를 들더니 쪼그리고 앉아 흩어진 약품들을 하나씩 주워 담았다.그 모습에 왠지 모르게 잔뜩 굳어졌던 유준서의 등에 긴장이 풀렸다.그는 승리한 왕처럼 소파에 기대어 앉아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약간 통통한 그녀의 허리를 바라봤다.그녀가 물건을 다 주워 담자, 유준서는 그녀에게 말할 틈을 주지 않고 바로 입을 열었다.“배고프니까 죽 가져와.”정다름은 약상자를 잘 챙겨놓은 뒤 빠른 걸음으로 나갔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그에게 들킬까 봐 두려웠다.유준서는 짜증스럽게 아픈 이마를 문지르며 낮게 거친 말을 내뱉고는 몸을 일으켜 따라 나갔다.정다름은 불을 끄고 죽을 몇 번 휘저은 다음 그릇에 담아 한쪽에 놓아두었다. 그리고 밑반찬 몇 가지를 접시에 담아 식탁으로 가져갔다.벽에 기댄 채 팔짱을 끼고 서 있던 유준서는 계속 그녀의 행동을 지켜봤다.그러나 그녀는 그에게 눈길 한번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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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유준서는 헛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돌려 거울 속을 바라봤다. 정다름의 얼굴은 차가웠다.기분이 좋지 않은 게 분명했다.하지만 그는 화가 난 그녀의 포동포동한 얼굴을 보는 것이 좋았다.그는 간질간질한 이를 세게 악물었다. 포동포동하고 보드라운 그녀의 볼살을 꼬집어 터뜨려야 마음속의 이 알 수 없는 간지러움이 해소될 것만 같았다.무소음 헤어드라이기는 악의적인 유준서의 웃음소리를 덮을 수가 없었다.정다름은 그저 못 들은 척하며 할 일에만 더 집중할 뿐이었다.그의 조금 긴 머리는 스타일리시하게 다듬어져 있었다. 회사에서는 늘 포스 넘치는 올백 머리를 했지만, 머리를 감은 후 손질하지 않으면 그냥 부드럽게 흐트러진 머리가 되었다.이마 앞의 잔머리가 조금 긴 편이었기에 드라이기를 할 때 정다름의 손가락이 머리카락을 파고들면서 애매한 분위기가 소리 없이 퍼져나갔다.유준서는 무거운 눈꺼풀을 버티며 거울 속의 사람을 바라봤다. 가끔 머리카락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촉감에 그는 졸음이 쏟아졌다.몇 분 후 정다름은 드라이기를 내려놓았다.“대표님, 다 됐습니다.”아무 반응이 없어 고개를 돌려보니 유준서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손이 머리를 받쳐주지 않아 머리가 점점 바닥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정다름은 급히 손을 내밀어 그의 머리를 받쳐 들다가 무의식적으로 손을 빼고는 수건을 가져와 그의 얼굴을 받쳤다.“대표님, 일어나세요. 침대에서 주무셔야 합니다.”그녀의 목소리에 유준서는 미간을 찌푸리며 불편한 수건을 던져버리고는 정다름의 손을 뺨에 가져다 댔다.“하.”차갑고 부드러운 촉감이 편안한 듯 그는 신음을 내뱉었다.“머리 만져줘. 머리 아파.”유준서는 눈도 뜨지 못하고 몽롱한 상태로 요구했다.그러나 정다름은 조마조마했다. 유준서가 지금 당장이라도 눈을 뜨고 두 사람의 스킨십을 볼 것만 같았다.하지만 그의 피부가 너무 뜨겁고 정신도 흐릿한 상태였기에 그의 요구를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그의 이마를 문질렀다.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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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잠에서 깨어난 유준서는 약간 어리둥절했다. 아픈 머리를 어루만지며 답답한 느낌에 연신 심호흡을 하자 코끝에 익숙한 향기가 맴돌았다.그는 순간 멈칫했다. 필름이 끊긴 사람처럼 머릿속에 자잘한 장면들이 연속으로 스쳐 지나갔다.그 장면들이 진짜로 일어난 일들인지 아니면 꿈꾼 건지 분간이 되지 않은 듯 그의 낯빛이 극도로 어두워졌다.하지만 그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정다름을 찾았다. 심지어는 정다름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는커녕 어두운 낯빛으로 침대에서 내려와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거실, 식당, 주방 그 어디에도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처음부터 이곳에 발을 들인 사람이 없었던 것처럼 깔끔했다.설마 내가 진짜 어제 고열 때문에 착각했던 걸까?그 여자는 아직 돌아오지 않은 걸까?이런 생각에 유준서는 미간을 찌푸렸다.모닝 성깔이 한발 늦게 찾아온 듯 그는 의자를 발로 걷어차더니 화가 잔뜩 나서 침실로 향했다. 그러다 현관을 지나치는 순간 눈길을 끄는 무언가에 홱 고개를 돌렸다.은회색의 트렁크였다.유준서는 트렁크를 빤히 쳐다보다 천천히 손님방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손님방을 향해 걸어갔다.그는 무의식적으로 숨을 죽이며 조심스럽게 문손잡이를 돌려 손님방의 문을 열었다.그러나 상상과 달리 침대에 누워있는 포동포동한 여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그 침대 역시 누군가가 잠을 잔 흔적이 없이 깔끔했다.“씨X!”유준서는 힘껏 문을 열고 들어가 믿기지 않는 듯 손님방의 욕실로 달려 들어갔다. 그는 노크도 없이 거칠게 문을 열었지만 역시나 아무도 없었다.유준서의 낯빛은 소름 끼칠 정도로 어두워졌다.이곳에 트렁크가 있는 것을 보아 그녀가 돌아온 것은 분명했다.어제 분명 내 곁을 지키라고 했는데 내 말을 무시해?그는 이를 갈며 차가운 웃음을 내뱉었다.“좋아, 출장 한번 다녀왔다고 이제 내 말은 듣지도 않겠다는 거지!”그때 출입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유준서는 몸을 홱 돌려 성큼성큼 밖으로 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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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유준서는 두 손을 식탁 위에 올려둔 채 그녀를 바라봤다.“다이어트도 안 하면서 왜 밥을 안 먹는 거야?”어제저녁에도 그녀에게 식사를 권했지만 먹지 않았던 게 어렴풋이 기억났다.“돌아오면서 먹었어요.”정다름이 말했다.단둘이 밥을 먹는 것으로 인해 그가 불편함을 느끼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굶고 싶지도 않았기에 돌아오면서 그녀는 이미 자기 몫을 먹었다.유준서는 고개를 숙여 눈앞의 음식을 바라봤다. 입맛이 없었다.정말 밥을 먹었나? 아니면 분풀이하는 건가?혹시 본인을 괴롭히고 H시의 엉망진창인 프로젝트를 그녀에게 떠맡겨서 원망하는 걸까?하지만 먼저 그에게 대든 것은 그녀였다. 게다가 제멋대로 H시에서 열흘 넘게 더 머물다 온 것에 대해서도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화가 치밀어 오른 유준서는 젓가락을 내던지더니 외투를 갖고 밖으로 나갔다.그의 행동에 깜짝 놀란 정다름은 홱 고개를 돌렸지만, 그의 모습은 이미 모퉁이로 사라지고 있었다.“대표님?”그녀는 급히 쫓아가며 물었다.“아침 안 드세요?”화가 난 유준서는 대답도 없이 차가운 낯빛으로 신발을 갈아신었다.그 모습을 본 정다름도 급히 허리를 숙여 신발을 갈아신었다.유준서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의 행동을 지켜봤다. 또다시 하얗고 보드라운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왔다.대체 저딴 치마를 왜 입는 거지?그는 참지 못하고 차갑게 비아냥거렸다.“정 비서, 지금 이대로 출근할 거야? 그렇다면 대표인 내게 의상 지적을 할 자격은 충분한데?”그러자 정다름이 대답했다.“출장 갈 때 유니폼을 챙기지 않았습니다. 회사에 여벌이 있으니, 회사에 도착하면 바로 갈아입겠습니다.”그녀의 사정 따위 봐줄 생각이 없었던 유준서는 거침없이 차가운 말을 내뱉었다.“회사가 네 집이야?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게?”그가 또 기분이 상했다는 걸 눈치챈 정다름이었지만 이번에는 도저히 이유를 알 수 없었다.“그럼 한 시간만 휴가를 내고 집에 가서 갈아입고 와도 될까요?”그녀는 인내심 있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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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정다름은 본인의 손을 보여줬다. 그리고 차갑게 목소리를 억누르며 부드러운 말투로 달랬다.“대표님, 보세요. 제가 그런 게 맞다니까요. 제 잇자국이잖아요. 보세요.”뻣뻣하게 굳은 유준서의 얼굴은 점차 풀리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니 역시 잇자국이 일치했다.내가 아니어서 다행이야!얼어붙은 온몸에 피가 도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유준서는 정다름에게서 한 발짝 물러서며 말했다.“왜 그랬어?”정다름은 거짓말을 했다.“어젯밤에 대표님의 곁을 지키는데 잠이 쏟아져서요. 혹시 대표님이 찾으시는데 못 들을까 봐 정신 차리라고 깨문 거예요.”그러자 유준서가 이상한 낯빛으로 물었다.“이렇게 내 걱정을 했어?”그의 말에 깜짝 놀란 정다름은 성실하게 대답했다.“대표님이 화가 나서 제 월급을 깎으면 안 되니까요.”얇은 입술을 꽉 오므리던 유준서는 정다름에게서 두 걸음 떨어진 곳에서 차가운 분위기를 풍겼다.정다름도 조용히 트렁크를 갖고 가장 멀리 떨어진 구석에 서서 그와의 안전거리를 유지했다.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자 정다름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그의 모습에 그녀도 감히 엘리베이터를 나가지 못했다.엘리베이터 문은 빠르게 닫혔다. 정다름은 걱정이 되었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무표정한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대표님, 안 내리세요?”그녀의 목소리에 유준서는 마침내 정신을 차린 사람처럼 손을 들어 버튼을 눌렀다.그러나 엘리베이터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다시 펜트하우스의 버튼이 눌려 있었다.그녀는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감히 묻지 못했다.“여기서 기다려.”펜트하우스에 도착하자 유준서는 이 한마디만 던져둔 채 집 안으로 들어갔다.그녀가 따라오지 못하게 했다. 정다름은 세게 손등을 내려쳤다. 고민과 후회가 쌓여 넘쳐흐를 것만 같았다.유준서는 그녀가 잘 챙겨놓은 약상자를 찾았다. 약상자를 한참 동안 뒤진 끝에 마침내 흐릿한 어젯밤 기억 속의 그 연고를 찾았다.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한참이나 연고를 쳐다봤다. 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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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유준서는 기분이 더욱 불쾌해졌다. 머리가 아파 난 그는 아예 머리를 받쳐 들고 눈을 감았다. 짜증 나는 그 두 사람의 모습을 조금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유준서의 옆에 올라탄 김태진은 낌새가 이상한 대표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기에 최대한 그와 거리를 두었다.이미 그녀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운전기사는 그녀의 집 밑에 차를 세웠다.오는 길 내내 숨조차 제대로 내쉬지 못하던 김태진은 바로 차 문을 열고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기사님, 앉아계세요. 정 비서님의 짐은 제가 내릴게요.”두 사람이 차에서 내리자, 유준서는 환기를 시키기 위해 차 창문을 내렸다.김태진은 작은 목소리로 정다름을 원망했다.“정 비서, 일부러 그랬죠?”정다름 역시 작은 목소리로 사과했다.“죄송해요. 비서실장님은 3년 동안 대표님의 곁을 지키셨고 저는 겨우 반년밖에 안 된 신입이잖아요. 게다가 대표님은 여성 공포증이 있으시니까 월급쟁이인 저희가 지킬 건 지켜야죠. 안 그래요?”김태진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화가 난 대표를 상대하는 건 3년 동안 대표의 곁을 지킨 그라도 두려웠다.하지만 진짜 정다름을 원망하는 것은 아니었다. 일을 하는 동안 그녀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고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는지 그는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그녀는 강인한 사람이었다. 종잡을 수 없는 대표를 지금까지 참고 견디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진즉에 그만뒀을 것이다.“트렁크를 위까지 올려다 드릴까요?”그러자 정다름은 트렁크를 받아 들며 말했다.“괜찮아요. 바로 내려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김태진은 그녀가 옷을 갈아입기 위해 집에 가는 것을 알고 있었다.“정 비서, 오늘 정말 아름다워요.”그는 방금 하지 못한 칭찬을 참지 못하고 작은 목소리로 내뱉었다.정다름이 자신감 넘치는 여자아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몸매 때문에 이런 예쁜 옷을 감히 입지 못하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이런 사복은 거의 입지 않았다.오늘 그녀의 의상은 정말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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