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ICIAR SESIÓN이사회에서의 승리 직후 지우가 잡앗던 손끝의 저릿한 여운이 아직 식지 않은 문리은,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자신도 모르게 지우와 식사를 하러 가고 있었다. "일은 그만하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던 서지우 전무는 문리안 변호사를 고급 레스토랑이 아닌 , 자신이 자주 가던 한적한 곳, 호젓한 한옥 국수집으로 데려갔다. 리안은 서지우가 엄청난 분위기의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온갖 폼을 잡으며 자신에게 한껏 끼를 부릴 줄 알았다가, 의외로 조용한 한옥의 국수집을 좋아한다는 것에 조금 놀랐다. 더구나 들어올때 주인장이 반갑게 서지우를 맞이하는 단골집이라는 점에 의외로 소박한 취향이라 여기며 어쩌면 그동안 자신이 서지우 전무를 너무 펌하하며 색안경을 끼고 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에 부딪치는 소나무들의 소리가 정다운 조용한 방 안. 고급 레스토랑은 아니였지만 통창으로 보이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풍경이 고즈넉하고 운치가 있는 한옥 식당은 또다른 색다른 분위기가 정겹고 깔끔한 그런 곳이였다. 왜 서지우 전무가 이곳을 좋아하는지, 또 단골이 되었는지 이해가 되는 느낌이었다. 리안도 이곳이 좋았으니까... 이 곳이 첫데이트(?)의 장소로 영원한 추억의 장소가 될 수 있을만큼... 연인과 단둘이 자주 오기 좋은 곳이라 생각했다. 국수가 나오자 서지우는 국수 그릇에 갖은 고명을 잔뜩 얹어 리안에게 건네 주었다. 서른네살 어른 남자의 푸근한 츤데레 매력에 리안은 지금껏 밀어내기만 하던 마음을 서서히 내려놓고 있었다. 스물여섯이 되도록 공부만 하느라 연애는 커녕 이런 소소한 챙김을 받아본 적이 없는 리안은 심장이 자꾸만 몽글몽글해져 왔다. "문 독사,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으니, 많이 먹어요... 그동안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아. 내가 너무 속이 상하네..." 서지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국수 한 그릇과 모듬전 한 바구니가 다시 상 위에 놓였다. 먹성이 좋은 리안은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전무님도 드실 중
태산 그룹 본사 대형 이사회장.웅장한 대리석 테이블 주위로 주요 임원진과 이사진들이숨을 죽인 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그 상석 부근, 과거에는 권력의 실세인 것마냥 거들먹거리던 최강민 전무와하늘 높은 줄 모르고 콧대를 높이 세우던 윤채린 변호사는이제 사색이 된 얼굴로 이사회장 구석에 처박히듯 앉아 있었다.이미 앞선 회의와 법무 검토 과정에서자신들이 파놓았던 독소 조항의 실체와 비리 흔적들이 낱낱이 까발려진 탓에,두 사람의 콧대는 완전히 꺾여 바닥을 기고 있었다.그럼에도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최강민이식은땀을 흘리며 이사진들을 향해 억지 항변을 하려 입술을 달싹였다. "아, 아닙니다! 이건 서지우 전무 측이 저를 모함하기 위해 악의적으로 조작한……!" "입 다무세요, 최강민 전무님."서지우 전무가 냉혹하고 결연한 눈빛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묵직한 저음을 뱉어내었다.이사회장의 공기가 단숨에 얼어붙었다.지우는 이사진들을 향해 두툼한 최종 감사 보고서와 함께,결정적인 파일 하나를 프로젝터 대형 화면에 띄웠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진짜 이유는, 지난 몇 달간 우리 태산 그룹 내부를 좀먹으며 M&A 본계약을 가로채려던 파렴치한 비리와 음모에 대한 최종 처분을 내리기 위해서입니다."지우의 호령과 함께, 회의실 스피커를 통해최강민과 윤채린이 음지에 모여 해외 페이퍼 컴퍼니와독소 조항 조작을 모의했던 그날의 생생한 녹취록이 다시 한번 적나라하게 울려 퍼졌다. — "이번 계약서 제14조 단서에 그 조항 확실히 박아두지. 서지우와 그 놈이랑 엮여 있는 문 변호사까지 한방에 매장해 버리는 거야." ㅡ "네. 전무님. 확실하게 준비해 두겠습니다. 걱정마세요. 저에게도 갚아야 할 빚이 있으니, 두 사람 모두 매장 되도록 확실히 조치해 두겠습니다." — "크흐하하, 완벽해! 아주 싹을 말려버리자고."이사회장은 단숨에 무거운 침묵에 휩싸였다.최강민과 윤채린의 얼굴에는 더 이상 피할 곳이 없다는절망감만이 짙게
태산 그룹 본사 전무실.평소라면 차분하고 엄숙한 기류가 감돌아야 할 널찍한 집무실 안은,어쩐지 서지우 전무가 직접 공수해 온 한정식 야식의 고소한 냄새와두 사람만의 달달한 텐션으로 부드럽게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지우는 턱을 괸 채, 자신 앞에서 맛있게 음식을 먹는 문리안 변호사의 모습을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하염없이 바라보며속으로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이렇게 잘 먹는 것만 봐도 좋은 걸 보니……아... 내가 진짜 이 가시나한테 완전히 눈이 멀긴 멀었나 보네.’그간 차갑고 도도하기만 하던 '문 독사'가 자신의 앞에서 무장해제된 채 오로지 먹는 것에 집중하는 모습이세상에서 제일 예뻐 보였다.지우가 숟가락을 쥐여주며 더 먹으라고 권하던 바로 그 찰나였다.쾅―! 덜컥―!"거기 그대로 동작 그만. 야, 이 자식아!"세상의 평화를 무참히 깨부수어지듯,전무실의 방문이 엄청난 소리를 내며 거칠게 활짝 열려 젖혀졌다.갑작스러운 침입에 지우와 리안은 깜짝 놀라며동시에 문쪽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그곳에는 서씨 문중 안주인이자 서지우의 모친인 한 여사가위풍당당한 자태로 서 있었다.한 여사는 들어오자마자 아들의 얼굴이나 상황 파악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지우의 목덜미를 사정없이 쥐어잡으며 번득이는 눈으로 노려보았다."야, 이 녀석아! 네가 엄마 전화를 이틀 연속으로 씹어? 배가 아주 불러 터졌어, 응? 니가 감히 내 전화를 무시해?! 집에는 왜 여태껏 안 들어와서 엄마를 회사까지 오게 해??""아우야야! 어머니! 목덜미! 지금 어머니 손에 목덜미 잡힌 사람 나이 서른넷 먹은 아들이거든요?! 회사 직원들 보면 어쩌시려고.... 이게 무슨 해괴망측한 짓입니까!"지우가 아프다고 엄살을 부리며 허우적거렸지만,한 여사의 매서운 손아귀 힘은 풀릴 줄 몰랐다."이 야심한 시각에 직원은 무슨.... 죄다 퇴근했지...?! 어...?"아들의 콧대를 꺾어놓으려던 한 여사는이윽고 이 방의 낯선 풍경을 발견했다.화려한 한정식 요리
태산 그룹 본사 법무팀의 늦은 밤 야근.최근 M&A 방어전 이후로 사내 업무는 한결 안정을 찾았지만,완벽주의자 문리안 변호사는 다음 분기 자회사 감사 리스크 검토 서류를 마무리하느라또다시 퇴근 시간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로펌 내 대형 서재 안쪽,높은 선반에 꽂힌 과거 판례집을 찾기 위해 리안은이동식 알루미늄 사다리 위로 조심스럽게 올라갔다.삐걱―.낡은 바퀴가 미끄러지며 사다리가 크게 한 번 휘청였다."앗……!"중심을 잃은 리안이 비틀거리는 순간,그대로 바닥으로 고꾸라질 뻔한 위태로운 찰나...어디선가 커다란 그림자가 쏜살같이 나타나더니,눈 깜짝할 사이에 리안의 허리를 뒤에서 단단히 안아 잡았다.한 손으로는 책장 단단한 모서리를 짚고,다른 한 손으로는 리안의 가냘픈 허리를 제 품에 꽉 밀착시키듯 감싸 안은 남자.바로 서지우 전무였다."잡았다.……."지우의 낮고 묵직한 저음이 리안의 귓가를 간지럽혔다."하여간, 잠시만 눈을 떼면 이렇게 위험에 처하니 원…… 이거야 원, 불안해서 변호사무실에 사람을 두고 살 수가 있어야 말이지."지우의 넓고 단단한 가슴에 등 뒤가 완전히 밀착된 리안은숨이 턱 막힌 듯 헙 소리를 내며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그의 몸에서 풍겨오는 짙고 아득한 우디 향과34세 어른 남자 특유의 뜨거운 체온이 온몸을 감싸 안았다.지우 역시 말은 툭툭 내뱉고 있었지만,손끝으로 전해져오는 리안의 가냘픈 떨림과 좁아진 품 안의 온기를고스란히 느끼며 하염없이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나, 진짜 미쳤나 봐. 이 독사 변호사한테 아주 단단히 꽂혀 있는 게 분명해…….'지우의 머릿속에서 거대한 종이 울렸다.'아…… 나 제대로 빠졌구나, 문 변호사에게. 이렇게 심장이 계속 미쳐 날뛰면, 이러다 정말 심장마비 오는 거 아니겠어?'너무 긴장한 나머지 리안은 고개를 뒤로 돌려 지우를 똑바로 올려다보지도 못한 채,자신의 허리를 감싼 그의 커다란 손목과 셔츠 깃만 애꿎게 내려다보며 잘게 떨었다."저…… 전무님, 제
태산 그룹 본사에서 치열했던 M&A 방어전과긴장감이 맴돌던 회의가 모두 끝나고 며칠 후 늦은 오후.퇴근 시간에 맞춰 회사 근처의 한적하고 아늑한 골목길 테라스 카페에서,강수아는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며 문리안 변호사를 기다리고 있었다.잠시 후, 칼단발을 단정하게 정돈한 리안이지친 기색을 살짝 숨긴 채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와 수아의 앞에 마주 앉았다."리안아, 이쪽이야! 고생 많았어, 진짜."환한 미소로 맞이하는 수아의 얼굴을 보자,그제야 긴장이 탁 풀린 것인지 리안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두 사람은 아메리카노와 달콤한 조각 케이크를 주문한 뒤,최근 회사에서 벌어졌던 살벌한 독소 조항 공방전과아슬아슬했던 위기의 순간들에 대해 가볍게 이
태산 그룹 본사 대회의실.방금 전 문리안 변호사의 예리한 지적으로독소 조항의 실체가 수면 위로 드러나며회의실 분위기가 한 차례 거세게 요동친 직후였다.순간적으로 당황했던 윤채린 변호사는이내 얼굴을 굳히며 어떻게든 판을 다시 뒤집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하지만 그보다 더 빠르게, 회의실 문이 묵직한 소리를 내며 활짝 열렸다.끼익― 쾅!걸음걸이마다 서늘한 살기와 압도적인 권위가 뿜어져 나오는 인물,다름 아닌 최강민 전무였다.그는 여유로운 비웃음을 머금은 채회의실 안으로 성성걸 걸어 들어와 상석 쪽으로 다가왔다."아니, 본사 회의실이 어째 이리 소란스럽나 했더니……."최강민은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이사진들을 슥 훑어본 뒤,리안을 향해 날카로운 시선을 던졌다."문 변호사님, 아무리 자기가 맡은 파트라고 해서 그렇지. 계약 체결을 코앞에 두고 이런 식으로 분위기를 흐트러뜨리는 건 좀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윤 변호사님 말이 맞습니다. 경험이 일취월장하지 못한 신참이이런 대형 프로젝트를 흔들려니 눈에 뵈는 게 없나 봅니다."최강민이 가세하자, 위축되었던 윤채린도다시 용기를 얻은 듯 핏대를 세우며 거들었다."맞습니다, 최 전무님! 계약서 본문의 전체적인 흐름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지엽적인 문구 하나 가지고 트집을 잡으며 전체 프로젝트를 와해시키려는 건 명백한 월권이자 업무 방해입니다. 문 변호사님,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이 거대한 계약을 흔들고 있는 겁니까?"최강민과 윤채린이 한통속이 되어리안을 향해 동시에 날 선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두 사람의 거센 압박과 이사진들의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하는 시선 속에서,리안은 잠시 숨이 턱 막히는 것을 느꼈다.비록 자신이 객관적인 사실을 밝혀냈음에도,그룹 내 실세인 최강민까지 나서서 마녀사냥의 화력을 키우자압박감은 배가 되었다.바로 그때.탕―!회의실 테이블이 울릴 정도로 무겁고 둔탁한 소리가 회의실 전체를 강타했다.모든 시선이 일제히 소리의 진원지로
“은수아 학생. 출석 안 합니까?” 강의실을 채운 백여 명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의 뒷덜미에 꽂혔다. 하지만 수아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귓가에서 거대한 이명이 일었다. 단상 위에 서 있는 남자. 은테 안경 너머로 지독하려치만 냉정하게 빛나는 저 눈동자. 맞춤 수트를 자로 잰 듯 차려입은 한국대 식물생명공학과 교수, 서지완. ‘말도 안 돼.’ 수아의 손끝이 작게 떨렸다. 온몸의 피가 바닥으로 웅덩이치며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저 목소리를 안다. 저 단단한 어깨를, 제 살결을 파고들던 그 뜨거운 체
술을 마신 지 채 십 분도 지나지 않아, 지완은 몸 안쪽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이상 열기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단순한 취기가 아니었다. 척추를 타고 올라온 뜨거운 불길이 뇌를 난도질하는 기분이었다. 가슴이 터질 것처럼 뛰었고, 거친 숨이 입술 사이로 새어 나왔다. 눈앞이 흐려지고 온몸의 세포가 비명을 지르며 무언가를 갈망하고 있었다. “……서지우. 술에, 무슨 짓을 한 거냐.” 지완이 붉게 충혈된 눈으로 지우의 덜미를 잡으려 했지만, 손가락 끝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형, 미안. 근데 형을 위해서야.
“엄마, 대박 사건이라니까? 형이 여자한테 눈이 돌아갔어. 그것도 아주 제대로.” 서울 성북동의 거대한 저택, 서지우는 수화기 너머의 어머니에게 흥분된 목소리를 낮추어 속삭였다. 지방의 한 한적한 카페 구석, 지우의 손에는 채원의 신상명세서와 조사 보고서가 들려 있었다. 강수아, 스물둘. 지방 국립대 농업생명과학과 과수석. 부모 없이 홀로 키워준 이모의 교통사고 수술비를 대기 위해 잠시 밤거리로 흘러든 불쌍하고 올곧은 여자. 평생 얼음 조각 같던 형 서지욱이 매일 밤 노래방 구석에서 그 미련한 짓을 하
서지완의 인생은 단 한 번도 흐트러진 적이 없었다. 자식을 학문의 도구로 여기는 엄격한 집안에서, 그는 늘 자를 잰 듯 완벽한 장남이어야 했다. 감정은 사치였고 이성은 법이었다. 서른넷이 되도록 그 어떤 여자에게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건 대단한 절제력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흥미가 없었다. 심장이 뛰지 않으니 동요할 일도 없었다. 친구들의 등쌀에 밀려 이 유흥가 지하의 퀴퀴한 노래방에 앉아 있을 때까지만 해도, 지완은 제 인생이 통째로 뒤흔들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오, 새로 온 애냐? 얼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