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여름은 고개를 저었다.“여기서 보면 안 돼요?”부승희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여름아, 이건 어른들이 하는 게임이야.”“알아요. 만약 키스하거나 더 과격한 행동을 한다면 저는 눈을 가릴게요.”부승희는 침묵했다.“...”‘됐어. 뭔가 이 아이는 귀엽고 장난기 있는 느낌이랄까.’부승희는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알았어. 그럼 여름이를 데리고 같이 놀자.”그녀는 가정부에게 시켜서 변여름에게 안대와 마스크를 가져다주었다. 변여름은 순순히 받아 들고 자세를 바르게 앉았다.게임에 참여한 사람은 이미 열 명이었고 부승희는 아직 참여할 사람이 적다고 느껴 더 많은 사람을 불러야 한다고 급히 말했다. 한우빈에게 여자를 데려오라고 했지만 한우빈은 여자가 어디 있겠냐며 아무 여자나 불러야 했다.“내가 부르는 거보다 우리 이 도련님이 부르면 얼마든지 올 수 있을 텐데.”“헛소리하지 마.”이승우가 한우빈의 말을 끊었다.“난 언제나 조용하고 정직한 사람이야. 어떻게 그렇게 많은 사람을 부를 수 있겠어?”모두가 웃었고 부승희는 이승우를 째려보았다.양시연이 말했다.“사람도 많고 이제 시작해도 돼요.”부승희는 양시연에게 윙크를 하며 말했다.“시연 씨 되게 기대하는 눈치네요.”양시연은 손을 흔들며 말았다.“저는 그저 여러분이 나중에 과하게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여름이도 있으니까요.”변여름은 현장에서 장비를 착용했다.양시연은 침묵했다.“...”부승희는 어깨를 으쓱했다.연정훈 부부와 부승원 외에는 모두 게임에 능숙한 사람들이었고 반우희는 예외였다. 그녀는 흥분한 생태였고 또한 모르는 사람은 죄가 없는 법이었다.예전에 양주 첫 번째 모임에서 그녀는 당당히 노래를 불렀고 그때부터 그녀의 뻔뻔한 정도가 얼마인지를 알 수 있다.게임이 시작되기 전에 부승희는 일부 벌칙을 준비시키라고 했다.“고마 주스, 고등어 국물, 불닭 과자, 감자.”반우희는 호기심에 가득 차 물었다.“감자도 벌칙이에요?”부승희는 말했다.“우희 씨, 세 번 연
반우희는 고민할 것도 없이 말했다.“임신이에요.”모두가 일제히 양시연을 바라보자 그녀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그때 변여름이 차분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그녀의 말투는 마치 백과사전을 읊는 듯했다.“인간의 임신과 동물의 출산 후 회복 기간은 많이 다르니까 그렇게 쉽게 임신할 수 없어요.”순간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침묵했다.“...”반우희는 어색하게 웃음을 지었다.모두가 알다시피 부승희는 술에 취한 척하면서도 속에 품은 의도가 뻔히 보였다. 그녀는 변여름에게 이어폰을 끼우게 하더니 다시 장난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우린 당연히 시연 씨가 임신이 아니라는 걸 알죠. 사실 내가 물어보려던 건... 흠...”부승희는 턱을 괴고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연정훈을 바라보았다.“연정훈 오빠, 벌써 100일이 지났는데... 두 사람 다시 관계를 가졌어?”양시연은 순간 멈칫했다.‘다시...관계를 가졌냐고?’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뭐라는 거예요.”부승희는 손뼉을 치며 웃었다.“이 정도 질문은 괜찮잖아?”양시연은 얼굴을 돌리며 투덜거렸다.“누가 그런 걸 알고 싶어 하겠어요.”그러나 사람들은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고 그저 웃을 뿐이었다.그런 분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부승희는 다시 연정훈에게 시선을 돌렸다.“오빠, 말해 봐.”연정훈은 짧지만 단호하게 답했다.“없어.”양시연은 고개를 돌렸지만 얼굴은 점점 더 붉어졌다.주변 사람들은 다소 놀란 기색이었다. 그녀가 전에 큰 부상을 당했지만 이 정도 시간이 지나면 이미 괜찮아졌을 거로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때 부승희가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연정훈에게 다가가 물었다.“오빠 누구 문제인 거야?”연정훈은 여유롭게 대답했다.“이건 다음 벌칙에서 물어볼 질문이야.”부승희는 혀를 차더니 박수를 치며 말했다.“두고 보자고.”그러면서 다시 게임을 진행했고 반대편에서 한우빈이 불만스럽게 오늘에 게임이 재미없다며 중얼거렸다.“자리에 있는 여자는 제수씨 아니면 형수잖아요.”“괜찮아요. 남자
부승원은 체면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라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겠지만 만약 그가 공개된 자리에서 규칙을 어기라고 한다면, 그것 역시 따르지 않을 것이다.모두가 연정훈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해하며 지켜보고 있었고 이승우는 계속해서 그를 압박했다.부승원이 조용히 술을 마시며 움직이지 않자 반우희는 손을 들었다.부승희가 물었다.“우희 씨, 무슨 일이에요?”반우희가 대답했다.“부승원 씨에게 강제로 입맞춤을 신청할게요.”모두가 침묵했다.“...”방 안은 웃음소리로 가득 찼고 부승원은 잠시 침묵했다. 그의 정직한 표정이 잠시 억지로 유지되는 듯했다.‘순진하구나.’반우희는 한우빈에게 물었다.“한우빈 씨, 저 해도 될까요?”한우빈은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안 돼요.”“네?”한우빈은 반우희를 놀리듯 말했다.“우희 씨, 규칙을 어기려고 하는 거죠? 내가 동의하려면 먼저 세 잔의 고마 주스를 마셔야 해요.”“너무 잔인하네요.”노지혜는 어깨를 떨며 그 기회를 틈타 변백호의 품에 파고들었다.변여름은 입술을 삐죽이며 생각했다.‘애교쟁이.’양혁수는 거의 잠이 들었지만 그녀의 행동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곧 눈을 가려야 할 거야.”결국 반우희는 머뭇거리며 대답했다.“좋아요. 마실게요.”변여름은 그녀에게 고마 주스를 건넸고 반우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빨대 3개를 달라고 했다. 한 번에 다 마실 생각이었다.모두가 속으로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3 2...’반우희가 빨대를 입에 물려는 순간 옆에 앉아 있던 사람이 갑자기 그녀를 끌어당겼다.그녀는 반응할 새도 없이 큰 손이 반우희의 얼굴을 돌려 따뜻한 입술이 그녀의 입술에 닿았다.반우희는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그 순간 부승원은 진심으로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입술을 반우희에게 완전히 맞췄다. 단순히 살짝 닿은 것이 아니라 진지하고 깊은 키스였다.연정훈은 잠시 양시연을 바라보았고 양시연은 그의 품에 기대어 평온을 가장했다.부승희와 이승우는 가까이 가서 구경하며 플래시가 계속
게임이 계속되는 동안 몇 차례 실패를 거듭하자 양혁수는 졸음이 싹 달아나더니 결국 포기한 듯 변백호의 허리를 단단히 감싸 안았다.“가만히 있어요. 내가 할게요.”변백호는 당황하며 욕설을 내뱉었다.“양혁수 씨, 대체 어디를 만지는 거예요?”“내가 어디를 만질 수 있겠어요?”양시연과 주변 사람들은 폭소를 터뜨렸고 남자들은 차마 그 장면을 직시할 수 없었다.우여곡절 끝에 탁구공을 배까지 운반하자 반우희가 가장 먼저 박수를 쳤다.“와 두 분 생각보다 잘 어울리는데요?”부승희도 맞장구치며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두 분 다 훈훈하니까 보기 좋아요.”그 순간 부승원의 시선이 반우희에게 잠시 머물렀다.양시연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사실 나 예전부터 변백호 씨가 양혁수를 짝사랑하는 게 아닌지 의심했어요. 뭔 일만 있으면 도와주잖아요?”양혁수는 능글맞게 웃으며 변백호를 바라봤다.“방금 나랑 그렇게 오랫동안 붙어 있었는데 아주 좋았겠네요?”변백호는 질색하며 단호하게 말했다.“꺼져요.”‘진짜 뻔뻔하네.’양혁수와 변백호의 티격태격하는 모습에 방 안은 다시 웃음으로 가득 찼다.다음 라운드에서 양시연이 왕을 뽑았다. 혹시라도 자신이 걸릴까 봐 조마조마했던 그녀는 비교적 쉬운 벌칙을 정했다.“2번과 4번이 듀엣으로 러브송을 부르기!”뜻밖에도 2번과 4번은 변백호와 부승희였고 별로 어려운 미션도 아니라 두 사람은 가볍게 자리에서 일어나 노래를 골랐다.부승희는 편곡된 ‘사랑’이라는 곡을 선택했는데 뜻밖에도 변백호도 그 노래를 알고 있었다.“서로가 함께 잠이 들고 나비처럼 함께 날아가네. 온 정원에 봄빛 내려 우릴 감싸안았지. 가만히 스님에게 여인이 예쁜지 물어보았네.”두 사람의 목소리는 모두 듣기 좋았고 함께 부르니 더 매력적이었다.방 안에는 부드러운 분위기가 감돌았고 사람들은 노래를 들으며 조용히 대화를 나눴다.그중에서도 노지혜만이 턱을 괴고 보석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변백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나쁜 놈. 지난번
양시연은 노지혜가 카드를 나누는 모습을 보며 부승희에게 눈빛으로 신호를 주려 했지만 부승희가 너무 술을 마셔서 경계심이 떨어져 그녀의 눈빛을 놓쳤다.결국 마지막 판에서 부승희가 걸렸고 이승우가 카드를 던졌을 때 부승희는 순간 멍해졌다.노지혜는 왕으로서 웃으며 종이 한 장을 뽑더니 원래 3겹으로 되어 있던 종이를 풀어 얇은 한 장을 꺼냈다. 그리고 그들에게 종이로 입맞춤하라고 했지만 종이는 절대로 찢어지면 안 된다고 요구했다.그 종이는 나비의 날개처럼 얇아서 조금만 다쳐도 찢어질 정도였다.노지혜가 말했다.“입맞춤해서 종이가 찢어지면 그때는 두 번 입맞춤하고 종이가 찢어지지 않을 때까지 해야 해요.”그녀는 세 장의 나비 날개처럼 얇은 종이를 펼쳐 보이며 부승희에게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신뢰를 주려 했다.부승희는 침을 삼켰고 술기운이 확 사라졌다.모두가 그녀와 이승우를 주목했고 이승우는 무덤덤하게 술잔을 내려놓고 손으로 머리를 받치며 고개를 들고 그녀를 바라봤다.‘어떻게 해야 하지?’‘뭘 어떻게 하긴.’부승희는 그를 한 대 때리고 싶은 마음이었다.‘정말 재수 없네. 마지막 판에서 이렇게 걸리다니.’부승희가 말했다.“우리 진 거니까 고마 주스를 마시며 벌칙을 받을게요.”변여름은 이번엔 직접 주스를 주지 않고 게임 규칙을 읽기 시작했다.“언니, 게임 시작할 때 혁수 형이 말했잖아요. 결혼한 사람을 제외하고 다른 사람은 벌칙을 자진해서 요청할 수 없다고.”부승희는 어이없었다.“...”‘뭐야. 양혁수는 너의 조상이라도 돼? 양혁수의 말을 다 기억하고 있네.’부승희는 입만 뻐끔거렸고 그때 노지혜가 말을 이었다.“언니, 혹시 게임을 할 엄두가 없는 거예요?”‘엄두가 없다고? 내 사전에는 그런 단어가 있을 리가 없어. 그건 불가능해.’부승희는 발이 묶인 듯한 상황에서 더 이상 빠져나갈 수 없었다. 그녀는 이승우와 불편한 상황이 되지 않으려 했고 어쩔 수 없이 새로운 친구인 변백호에게 눈길을 보냈다.변백호는 부승희와 노래를 부른 뒤 그녀
이승우가 말을 마치자마자 부승희는 손을 휙 빼냈고 손등으로 이승우의 뺨을 찰싹 때렸다.쨕!너무 높지 않은 소리였지만 주변 모든 사람이 그 소리를 들었다.한우빈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뭐야, 왜 손찌검까지 하는 거야?”“손찌검인지 다른 건지는 모르지.”양혁수가 농담 섞인 목소리가 들려오자, 부승희는 이를 꽉 깨물고 소파 등받이에 몸을 푹 기대 얼굴이 보이지 않게 가렸다.이승우도 이런 부승희를 따라 추욱 몸을 늘어뜨리더니 부승희의 옆으로 찰싹 달라붙었다.부승희는 이승우를 아니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옆으로 살짝 움직였다.그러자 이승우도 그 옆으로 움직였다.부승희는 차가운 시선으로 경고를 날렸지만 이승우는 당황하지도 않고 얼굴을 들이밀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술을 많이 마셔서 그런가 손놀림이 예전 같지 않네?”“오빠 정말 내 손에 죽어볼래?”‘정말 물에 빠져도 입만 동동 뜰 사람이야.’이승우는 웃음을 터뜨렸다. 소파 쿠션으로 둘 사이를 갈라놓은 부승희는 애써 꾹꾹 참으며 말했다.“할 일이 남아 이만 가볼게. 함부로 그 입 놀리면 알지?”그리고 부승희는 자리에서 일어섰다.이승우는 두 눈을 감고 있었지만 정확하게 부승희의 손목을 잡아당겼다.다시 원위치로 돌아온 부승희는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뭐 하자는 거야?”“널 위해 거짓말하는 거면 나도 이득이 있어야 하지 않겠어?”“이득은 무슨.”‘양심이라는 게 있긴 한 건가?’이승우는 고개를 돌려 부승희와 시선을 마주했다.“내가 너한테 호감이 있다고 해서 이렇게 함부로 대하는 건 아니지. 나도 한성격 하는 사람인데 결국 참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네 체면 구기면 어떡해?”“그러기만 해봐.”“나도 그러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괜히 오기 부리지 말고 우리 좋게 말로 하자.”부승희는 이승우에게 잡힌 손목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얼굴이 시뻘게진 이승우를 보며 술을 적지 않게 마셨다는 게 떠올랐다.그러니 술주정뱅이한테 무슨 말을 하겠는가? 양시연 무리만 있었으면 몰라도 다른
“생각해 봤는데 고작 야식은 조금 억울한 것 같아.”“이 손 놓고 말해!”“대화는 여기까지. 말로는 내가 너한테 상대도 되지 못하잖아.”“오빠 정말... 읍!”부승희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소파 뒤의 사람들은 두 사람의 움직임에 집중하느라 모두 조용해졌다.양혁수는 고개를 돌려 고양이처럼 두 눈을 반짝이는 변여름을 바라봤다.그리고 몰래 혀를 쯧쯧 하며 말했다.“여름아?”변여름은 빠르게 고개를 돌렸고 양혁수는 변여름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그 의미를 알아차린 변여름은 빠르게 고개를 숙이고 두 손으로 헤드셋을 움켜쥐었다.‘아무것도 안 들린다... 아무것도 안 들려...”“...”이어서 또 찰싹 손을 내리치는 소리가 들려왔다.‘세상에 너무 아프겠다.’부승원은 미간을 꾹꾹 누르다가 말했다.“이승우.”소파에서 입을 맞추던 두 사람은 드디어 행동을 멈췄다. 부승희는 이승우의 품에 안겨 꼼짝도 하지 못했고 두 손도 잡혀 아예 움직이지 못했다.부승원의 경고에 이승우는 하던 행동을 멈추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두 사람의 거친 호흡 소리가 들려오고 부승희는 시선으로 사람을 잡아먹을 것처럼 이승우를 노려보았다.이승우는 침을 꿀꺽 삼키면서 입술을 매만졌다.지금 쿵쿵 뛰는 심장 소리만 들려왔고 입술 끝엔 옅은 알코올 향이 남아 있었다. 이승우는 평소에 위스키도 단맛만 골라 마셨고 부승희는 그 단 향이 사라지지 않아 여러 번 침을 삼켜도 여운이 남았다.‘젠장! 감히 어떻게 나한테!’부승희가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버둥거리자 이승우는 아예 부승희를 소파에 눕혀 버렸다.부승희는 깜짝 놀라 손을 빼내 이승우의 가슴을 밀쳤다.‘정말 미친 거 아니야?’이승우는 양손으로 지탱한 채로 부승희를 내려다보았고 턱을 살짝 세우더니 부승희더러 제 입술을 보라고 시늉했다.“네가 물어뜯었나 봐 너무 아파.”부승희는 두 눈을 꼭 감고 속으로 욕을 읊조렸다.“오빠가 자초한 거잖아.”이승우는 술기운이 확 올라왔고 방금 상황을 떠올리며 점점 더 용기가 생겼다.
큰 공간에는 소파에 몸을 숨긴 두 사람이 내는 소리를 제외하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그러나 한참이 지나도록 두 사람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부승희와 이승우는 몰라도 다른 사람들은 점점 민망해졌다.양시연은 귓불을 붉힌 채로 연정훈의 품에 꼭 안겨 있었다.그러다가 참다못한 연정훈이 양시연을 끌어당기며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우린 아이 보러 가봐야 하니까 먼저 가볼 게.”그리고 빠르게 자리에서 벗어났다.남은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눈치를 챘다.아이 보러 가는 게 아니라 아이 만들러 가는 것임을.그리고 그 뒤를 따라나선 건 한우빈과 한우빈의 파트너였다. 그 여자는 다정하게 한우빈에게 물었다.“우빈 씨 아까 먹던 감자칩 아직도 매워요?”‘당연히 맵지. 매워 죽겠어.’한우빈을 술을 입에 털어 넣더니 여자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섰다.“머리가 아파서 먼저 올라가서 쉴게.”“...”그리고 양혁수는 그 상황에 관심이 없었기에 어린 친구나 책임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변여름의 헤드셋을 똑똑 두드리며 이만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했다.그러자 변여름은 얌전히 그 뒤를 따랐다.그다음으로는 변백호였다. 변백호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노지혜는 꼬리처럼 그 뒤를 졸졸 따랐다.부승원은 마지막까지 자리에 남았으며 친오빠로서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잔을 세게 테이블에 쾅 하고 내려놓았다.그 소리에 소파의 움직임이 조금 멈췄다.“승희야.”“오빠, 난 괜찮으니까 먼저 가봐!”부승희는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정말 어이가 없네.’부승원은 숨을 길게 내쉬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반우희를 잡아당겼다.“이만 가자.”반우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뒤를 따라갔다.불과 1분 안으로 방은 비워졌다.부승희는 제 위를 올라탄 이승우를 보며 너무 화가 나 머리를 세게 내리칠까 했다.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먼저 예상 한 이승우는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섰다.부승희도 소파를 잡고 몸을 일으켰다.이승우는 빠르게 도망갔고 부승희는 놓치지 않고 뒤를 쫓았다.
침대 시트를 교체하지 않아 방안에는 아직도 그 향이 가시지 않았다. 양혁수는 단팥죽이 끓는 동안 서둘러 시트를 교체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단팥죽의 단 향이 코를 자극했다.양혁수는 한 그릇 따라 변여름에게 건넸고 변여름은 소파에 나른하게 누워 양혁수가 한입씩 떠먹여 주는 걸 삼켰다.그렇게 천천히 기운을 되찾은 변여름은 또다시 장난기가 발동했다.양혁수의 품에 안겨 양혁수의 핸드폰을 뒤적이던 변여름이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마주했다.양혁수는 변여름의 두 볼을 쭉 잡아당기며 이 순간의 행복을 즐겼다.그런데 변여름이 꽤 진지한 얼굴로 이런 질문을 하는 게 아니겠는가?“오빠, 정말 무슨 약이라도 먹은 거 아니에요?”양혁수는 인상을 팍 찌푸리다가 시간을 확인하고는 바로 무슨 의미인지 알아차렸다.싸늘해진 양혁수의 시선에 변여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약을 따로 챙겨 먹지 않은 거면 너무 오랫동안 금욕해서 그런 거 아니에요?”“...”양혁수는 변여름이 이어서 어떤 질문을 할지 눈에 뻔했고 미리 준비해 둔 떡을 집어 냉큼 변여름의 입에 넣었다.변여름은 입안 가득 우물거렸고 반쯤 남긴 떡은 양혁수가 처리했다.“계속 까불면 너 이거 다 먹일 거야.”변여름이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이 떡 전부요?”“...”역시 못 말리는 변여름이라 생각하며 양혁수는 입안 가득 떡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술 도장을 꾹 찍었다.어느새 해가 뜰 시간이 되었지만 두 사람은 하나도 졸리지 않았다.한참 꼭 붙어 있다 보니 또 어느새 애매모호한 분위기가 흘러나왔다.양혁수는 변여름을 위해서라도 관심사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변여름이 핸드폰을 뒤적이며 말했다.“시연 언니가 아직 새해 인사를 보내지 않았네요?”질투하는 듯한 변여름의 말투가 오늘따라 더 귀엽게 느껴졌다.하지만 지금 말을 잘못하면 변여름이 삐질 게 뻔했으니 양혁수는 말을 가려서 하기로 했다. 그래서 한참 말을 골라 입을 열었다.“시연이는 새해 당일에 인사를 보내는 편이야. 우리 가족들도 대부분 그렇게 하거든. 너
거사를 치르기 전에 변여름도 나름 많은 조사를 걸쳐 충분히 준비를 마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겪어보니 실전과 이론은 큰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된다.변여름은 자신이 주동권을 잡으려 노력했지만 모두 가볍게 양혁수에게 들통이 나 물거품이 되었다.양혁수는 변여름의 두 손을 잡아 머리 위로 고정시켰고 변여름이 점차 반항할 생각도 하지 못할 때까지 꼭 붙잡아줬다.변여름의 머릿속에는 양혁수가 거친 숨을 내쉬며 귓가에 뱉은 말뿐이었다.“긴장하지 말고 힘 풀어.”긴장을 풀자 바로 쾌감이 이어졌다.처음 사과를 베어 문 에덴에 이런 기분이었을까, 변여름은 눈앞이 흐릿해지고 이 세상과는 단절된 쾌감만 느껴졌다.변여름은 나른하게 침대에 누웠고 잠시 의식을 되찾고 양혁수와 시선을 마주했다.양혁수는 변여름 이마의 땀을 닦아주고 또 달래듯 입술에 키스했다.금방 지나갈 소나기같았지만 또 벼락이 치고 폭우가 쏟아졌다.양혁수도 쾌감에 절여 절로 미소가 나갔지만 자꾸 변여름을 놀렸다.그러자 변여름이 바로 양혁수의 입술을 깨물었다.양혁수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두 사람의 자세를 바꿔 또 새로운 쾌감을 찾았다.변여름은 촉촉해진 눈가로 양혁수를 바라봤고 마치 처음 치즈를 선물 받은 고양이가 어디서부터 손을 대면 좋을지 몰라 망설이는 것 같았다.“네가 자세 바꾸고 싶다며?”양혁수는 손을 뻗어 변여름의 머리를 쓸어내리며 나른한 시선으로 유혹했다.“자, 네가 원하는 대로 해봐.”변여름은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아까도 변여름에게 기회를 줄 것처럼 굴다가 또 선수를 빼앗아 본인이 흐름을 주도했었다. 그렇게 반복되는 농락에 변여름은 이제 그럴 마음도 사라졌다.하지만 양혁수가 얌전히 누워주니 변여름은 또 덮칠 마음이 스멀스멀 생겼다.‘내가 잡아먹어야지!’서로를 탐닉하고 뜨거운 숨을 몰아 내쉬기를 반복했고 어느샌가 이불도 바닥 위로 떨어져 있었다.변여름은 저도 모르게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고 입술을 막아도 걷잡을 수 없었다.결국 변여름은 이불에 얼굴을 묻어버렸고 지금 본인
변여름은 낮에 물건을 뒤적이다가 양혁수가 서랍에 새로 준비해 둔 걸 발견했었다.양혁수가 참 보수적이라 생각했지만 변여름은 그런 점도 귀엽게 느껴져 눈치껏 본인이 준비한 물건은 서랍에 넣어두지 않았다. 뭐든지 차근차근 순서를 밟는 게 좋을 것 같았다.그러나 갑자기 자신을 안아 들고 위층으로 향하는 양혁수를 보며 변여름은 의아해졌다.‘오늘 밤엔 순정남이 아닌 건가? 아, 벌써 기대돼.’그러나 위층으로 올라가서 키스도 한참 했지만 시작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변여름이 양혁수의 품 안에서 기어 나오며 말했다.“오빠, 먼저 샤워나 할래요?”“...”‘이 흐름이 아닌데.’양혁수는 쯧 하고 혀를 차다가 변여름을 잡고 다시 아래에 깔았다.또 쉴 틈 없는 키스가 이어지고 변여름은 온몸이 나른해졌으며 입가가 얼얼해질 무렵, 양혁수가 마지막으로 입가에 뽀뽀하고 욕실로 향했다.변여름은 몰래 한숨을 푹 내쉬었다.‘그래. 내가 기다리지 뭐.’얌전히 침대에 누운 변여름은 다리를 달달 떨며 시간을 보냈다.그때, 양혁수가 준비해 둔 옷으로 갈아입고 걸어왔다.바로 변여름에게 다가간 양혁수는 순식간에 변여름을 이불 안에서 꺼내 안아 들었다.‘뭐야 샤워하러 간 거 아니었어? 또 준비한 게 있나 보네?’의아해하는 변여름의 생각을 읽고 양혁수는 입술에 도장을 꾹 찍고 욕실로 향했다.“같이 씻자.”변여름은 깜짝 놀라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욕실 안에는 뜨거운 김이 가득해 시야가 흐릿했다.양혁수는 어제 무슨 이유인지 안방에 새로 가구를 배송받았었다. 목재로 된 흔들의자였는데 하나는 안방에 두었고 특수 코팅을 거친 의자는 욕실에 두었다. 변여름은 안방에 둔 흔들의자에 누워 햇살을 느껴봤는데 그 기분이 아주 좋았다. 그러나 욕실에 둔 의자에 누우면 마치 발가벗겨진 생쥐 꼴이 되는 기분이 들었다.변여름은 욕실로 향하는 내내 별 별 난 생각이 다 들었지만 양혁수를 상대로 그런 음흉한 상상을 하면 안 된다고 자신을 채찍질했다.그러나, 변여름은 곧 자신의 상상이 틀리지 않았
누가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고양이 하나 때문에 그렇게 혼을 내던 오빠 친구가 오늘엔 제 옆에 앉아 평범한 여느 연인들처럼 자신을 잘 부탁한다고 인사하는 것을.변여름은 다른 사람에겐 흥미를 잃었고 오직 양혁수만 눈에 보였다. 그리고 너무 기분이 좋은 나머지 술이 술술 넘어갔다.회식을 끝내고 근처를 걸으니 거리에서 새해 느낌이 물씬 났다. 변여름은 양혁수의 손을 잡고 길을 걸으며 노래를 흥얼거렸다.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털썩 누워서도 양혁수의 이름을 불러댔다.“양혁수... 혁수 오빠...”대체 뭘 어떻게 더 해야 이렇게 커진 제 마음을 다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른다. 변여름은 정말 하늘만큼, 땅만큼 양혁수가 좋았다.올해는 양혁수가 근 10년 동안 가장 기대되는 새해라고 할 수 있다.새해에 맞춰 양홍두도 세운시로 향해 양지원과 함께 새해를 보내기로 했다.그리고 양혁수는 양지원에게 곧 변여름과 함께 세운시를 찾아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겠다고 말했다.새해 전날, 집사는 양혁수의 기분이 퍽 좋은 걸 발견하고 다 같이 만두도 빚고 송편도 빚을 것을 제안했다.변여름도 아침 일찍 양씨 가문을 찾아 일을 거들었다.양혁수는 집 안팎을 돌아다니며 새해 분위기가 물씬 나는 조명이나 인테리어를 세팅했다.“조명을 켜기엔 아직 일러요. 조명은 오후부터 켜야 한다고 했어요.”변여름은 어디에서 들은 정보를 한 손에 만두를 쥔 채로 양혁수에게 말했다.양혁수는 사다리 위에 서서 말했다.“누가 그래? 우린 우리만의 법을 따르는 거야.”양혁수는 변여름을 달래듯 말했다.“꼬맹이는 얼른 가서 만두 빚고 있어. 예쁘게 빚으면 내가 새해 용돈도 챙겨줄게.”집사는 괜히 큰소리하는 양혁수를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양씨 가문 남자들, 누구 하나 큰소리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을 텐데.’그러나 변여름은 고개를 끄덕였고 또 양혁수를 향해 손을 휘휘 저었다.사다리 아래까지 내려온 양혁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왜?”변여름은 바로 이때다 싶어 양혁수의 두 볼에
양지원은 바로 세운시로 돌아갔다.양씨 가문에는 오직 변여름과 양혁수만 남겨졌고 그날 밤부터 변여름은 아주 자연스레 양혁수의 방을 드나들었다.며칠 뒤면 새해인지라 연구실도 곧 휴가가 시작될 것이다. 변여름은 하루 시간을 내어 선물을 들고 연구실을 찾았다.선배들은 변여름이 영영 돌아오지 않을 줄만 알았는데 돌아온 변여름을 보며 아주 기뻐했고 선물을 받으며 어디에 다녀왔는지, 무엇을 했는지 물었다.“연애하고 왔어요.”솔직한 변여름의 대답에 사람들은 조금 당황했고 과거에 변여름에게 고백했었던 선배는 마음이 부서졌다.교수님은 변여름의 교제 상대가 누구인지 궁금해했다.“저희 오빠 친구예요.”‘그래. 오래 붙어있을수록 정분이 나는 법이지.’사람들은 변여름의 옆자리를 차지한 그 상대가 궁금했고 교수님도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말했다.변여름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고 점심시간이 되자 도시락을 들고 양혁수를 찾아갔다.“회식?”양혁수는 변여름이 연구실 사람들한테 인기가 많은 게 의외라는 생각을 했다.하지만 좀 더 생각을 해보니 고작 며칠 사이에 얼굴도 보지 못한 제 비서와 사이좋게 지내는 걸 보며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변여름이 말했다.“남자 친구 생겼다고 말했거든요.”그러자 양혁수는 변여름이 자랑하고 싶어 하는 걸 바로 눈치챘다.그리고 불현듯 과거에 변여름이 연구실 선배한테 고백을 받았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변여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한두 사람이 아니었는걸요.”어깨를 으쓱거리는 변여름을 보며 양혁수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한두 사람이 아니었다?”“네!”“어떤 사람이었는데? 다들 똑똑할 거고, 뭐 잘생겼어?”“똑똑하기도 하고 잘생기기도 했죠.”옆에서 문서를 정리하던 비서가 그 말을 듣고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대표님, 예쁘고 요리도 잘하시는 여름 씨가 얼마나 인기가 많겠어요. 대표님이 조심하셔야겠네요.”변여름이 양혁수를 힐끔 훔쳐보자 양혁수가 바로 연기를 이어갔다.“그러게. 갑자기 짜증이 나서 입맛이 하나도
새벽이 되도록 양혁수의 방에는 열기가 뜨거웠다.딸깍.헤드 등을 켜고 변여름이 이불 안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고 주변을 살폈다.얼마 지나지 않아 양혁수가 화장실에서 돌아와 자연스레 변여름의 몸을 닦아줬다.변여름은 자꾸 양혁수를 훔쳐봤고 양혁수는 손을 뻗어 이런 변여름의 머리를 꾹 눌렀다.그러자 변여름은 양혁수의 베개에 얼굴을 묻고 비비며 입꼬리를 올렸다.이어 욕실에서 샤워 소리가 들려오자 왠지 양혁수가 만족하지 못해 홀로 해결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그런 생각을 하며 침대 옆 서랍을 열어보니 손목시계 따위만 있을 뿐 남은 콘돔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양혁수가 많이 자제한 것 같았다.‘이럴 줄 알았으면 집에 있는 걸 통째로 갖고 오는 건데.’그리고 그때 욕실 문이 열리고 양혁수가 돌아왔다.변여름은 얌전히 누워있다가 양혁수의 품에 꼭 안겼다.양혁수의 체향을 느끼며 변여름은 두 눈을 감고 얼굴을 비볐고 목 언저리에 뽀뽀하려 했다.그러나 양혁수가 변여름을 제지했다.“지금 뭐 해?”“왜요?”양혁수는 제 목에 있는 흔적을 가리켰고 새길 때는 몰랐지만 샤워하고 나니 따끔거리는 게 느껴졌다.변여름이 지난번처럼 또 정도 없이 세게 흔적을 남긴 모양이었다.하지만 이번 모양과 색깔이 너무 마음에 들어 변여름은 미안한 마음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오빠 다음엔 반대편도 해줄게요.”“...”양혁수가 떨떠름한 표정을 하고 있는데 변여름이 취조하듯 방금 잠자리가 만족스러웠냐고 물었다.“오빠, 나 다른 것도 배웠는데 오빠만 좋다면... 읍!”양혁수는 바로 변여름의 입을 막았다.“...”‘풉. 부끄러워하긴.’양혁수는 본인이 오빠로서 리드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이 꼬맹이한테 놀아나고 있는 것 같았다.“잠이나 자!”그래서 고작 이런 일로 무게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흥. 오늘은 이만 물러선다.’변여름은 얌전히 몸을 돌렸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자꾸 치근덕거렸다.“오빠가 많이 보수적이라는 걸 알고 있는데요
변여름은 말재주가 뛰어났고 그대로 두면 분명 더 큰 소동을 일으킬 기세였다.양혁수는 그녀를 다잡아보려 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변여름은 밀고 당기기에 능했고 결국 늘 그가 그녀를 달래는 쪽이었다. 변여름을 제압하려면 그가 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녀를 유혹하는 것뿐이었다.하지만 서로가 진심을 담기 시작하면 결국 누가 누구를 먼저 유혹한 건지조차 흐려진다.어느새 그녀는 그에게 기대어 그를 천천히 침대로 이끌었다.양혁수는 조용히 누워 있었고 변여름은 이불 속에서 조심스레 머리를 내밀었다. 표정은 잔잔했지만 눈동자에는 설렘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그가 움직이기도 전에 그녀는 익숙한 듯 그의 팔을 벌리고 조용히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이내 그의 온기를 안은 채 잠이 들었다.양혁수는 차갑게 굴어보려 했지만 몸은 정직하게 그녀의 이마에 키스했다.키스가 끝나자 그는 스스로의 입을 때리고 싶을 만큼 후회가 밀려왔다.저녁이 되면 변여름은 양혁수 곁에서 말이 많아졌다. 그녀는 그와 감정을 나누고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부터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까지 전부 들려주었다. 작은 머릿속은 놀라울 만큼 명확했고 양혁수가 확신하지 못하던 일들을 종종 먼저 짚어내곤 했다.그러다 보면 두 사람의 입술은 자석처럼 끌려붙었고 전에는 양혁수가 불씨를 조심스럽게 다룰 수 있었지만 지금은 더 이상 그럴 수 없었다.변여름을 집에 데려온 첫날 밤 양지원을 마주친 이후의 느낌은 이전과는 달랐다. 그녀를 몸 아래에 눕히고 얼굴을 감싸안은 채 키스하자 변여름은 그의 몸에 다리를 스치듯 비볐고 그는 순간적으로 치솟는 충동을 느꼈다.자신의 반응을 깨달은 그는 재빨리 움직임을 멈췄다.변여름에게 들킬까 봐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조명의 밝기를 낮추며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막 눕자마자 변여름의 부드러운 몸이 다시 양혁수의 품에 파고들었고 변여름은 그의 어깨에 기대어 그를 바라보았다.양혁수는 고개를 돌려 그녀의 시선을 마주했으며 단 한 번의 눈 맞춤으로 그녀가 이미 모든 것을 알
양혁수의 ‘착하지’라는 한마디에 변여름의 입꼬리는 하늘까지 닿을 듯 환하게 올라갔다.그녀는 사람의 마음을 꿰뚫는 데 능했고 사실 그가 자신을 놀리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특히 밤 11시 30분이 넘도록 그가 나타나지 않자 아마도 자신이 먼저 찾아오기를 기대하며 방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로 생각했다.‘아이고.’변여름은 그의 장난에 넘어가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간질이는 마음을 안고 그녀는 문가에 서서 발끝을 들어 여러 번 밖을 내다보았다.밤이 깊어 12시가 다 되어도 그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자 그녀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고 외투를 걸쳐 입은 채 문을 열고 나섰다.양씨 가문의 저택은 워낙 넓어서 그녀가 양혁수의 방에 닿기 위해선 한 층 아래로 내려가 길게 이어진 복도를 걸어야 했다.몰래 발걸음을 옮겨 문 앞에 선 그녀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문고리를 돌렸다. 예상대로 잠겨 있지 않았다.문을 열고 들어선 방 안은 숨 막힐 듯 어두웠다.침실은 더 깊은 어둠에 잠겨 있었고 그녀는 익숙한 감각과 뛰어난 시력에 의지해 침대를 더듬어 앉았지만 그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변여름은 숨을 죽인 채 주변을 감지했고 방 안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혹시 오빠가 나를 찾으러 간 걸까?’그렇게 생각하며 조용히 침대에서 내려왔다.작은 거실로 발걸음을 옮기던 중 무언가가 벽에 부딪히는 소리가 두 번 울렸다. 그녀는 즉시 멈춰 섰다.달빛이 비추는 거실 그 한쪽 소파 팔걸이에 몸을 기댄 양혁수가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그는 침실 문을 빠져나온 그녀가 멈추는 순간까지 눈을 떼지 않았고 입가에 짙은 미소가 번졌다.그의 손에는 라이터가 들려 있었고 그는 그것을 가볍게 던지며 조용히 그녀에게 다가갔다.변여름은 품에 안긴 이가 양혁수라는 걸 분명히 알고 있었지만 그가 갑작스레 뒤에서 안아오는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이어진 그의 키스가 그녀의 옆얼굴에 가볍게 닿자 그녀는 본능적으로 숨을 멈췄다.양혁수는 평소 그녀가 마음껏 표현하게 두었지만 자신이 먼저 유혹
식사가 끝나자 양지원의 마음속에는 여러 감정이 스쳐 지나갔지만 이제야 비로소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식사 후 그녀는 아래층 소파에 편히 앉아 야경을 바라보며 시간을 재어 양석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위층에서는 양혁수와 변여름 사이에 또다시 작은 충돌의 기운이 맴돌기 시작했다.양지원이 집에 머무는 동안 양혁수는 변여름과 같은 방에 머무를 수 없었다.변여름은 몹시 언짢은 기분이었다. 그가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 휴대전화에는 세 글자의 짧은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양혁수.]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끝내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꽤 화가 난 모양이네. 성까지 붙여 부르다니.’풀네임으로 불린 건 처음이라 문득 그것도 꽤 재미있었다.수건을 툭 던지고 침대에 앉은 그는 변여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화났어?]잠시 후 변여름에게서 한 장의 사진이 도착했다.사진 속에는 줄에 매달린 막대 인형이 있었고 그 옆에서 날아온 주먹이 인형의 배를 강하게 가격하고 있었다. 인형 옆 상자에는 화살표가 가리키고 있었고 상자 안에는 ‘양혁수’라는 이름이 또렷이 적혀 있었다.양혁수는 순간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어디서 배운 거야? 너희 천재들은 이런 것도 다 할 줄 아는 거야?]예전에 변여름은 허예나의 이름으로 그와 채팅할 때 일부러 평범한 여고생처럼 꾸미며 어색하고 오래된 이모티콘을 보내곤 했었다.하지만 지금은 달랐다.그녀는 모든 걸 이해했고 재치 넘치고 독특한 이모티콘으로 그의 휴대폰을 장악했다.[이런 게 아주 유용하죠.]변여름이 말했다.[그러니까. 이제는 원격으로도 때릴 수 있지.]양혁수가 답장을 보냈다.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영상 통화가 걸려왔다.양혁수는 전화를 받았다.화면 속 변여름은 침대 머리맡에 기대 앉아 있었고 아마 두 손으로 휴대전화를 들고 있었는지 아래에서 위로 비추는 각도는 썩 좋지 않았다.양혁수가 웃으며 말했다.“집에 재밌는 공간 많잖아. 잠 안 오면 나가서 산책이라도 해.”“나가기 싫어요.”변여름은 기운 없이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