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일은 나중에 알려줄게. 지금은 묻지 마.”공수이는 본인이 말하기 싫은 일이라면 아무리 부추겨도 말하지 않는 윤구주의 성격을 알기에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 형님 말 들을게요.”“근데 은설아 씨랑은 어떻게 아는 사이야?”은설아와 공수이가 함께 있는 걸 봤을 때부터 이상하다고 느꼈던 윤구주가 물었다.곤륜 지역에서 금방 나온 녀석이 어떻게 은설아랑 함께 있었던 건지 윤구주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형님, 이 일은 말하자면 이야기가 길어요. 그날 형님을 찾으러 간 뒤 길에서 차 두 대를 보게 됐는데 마침 두 예쁜 누나가 나쁜 놈한테 돈을 뜯기고 있더라니까요.”공수이는 은설아를 만나게 된 일을 자세히 설명했다.윤구주는 공수이의 말을 듣고 자초지종을 이해했다.“그러니까 은설아 씨를 네가 구한 거네?”“네, 맞아요!”공수이가 기쁘게 말했다.“저 사실 예쁜 누나 좋아해요!”“뭐라고? 은설아 씨를 좋아한다고?”공수이의 말에 윤구주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왜 그러세요 형님? 좋아하면 안 돼요? 누나 예쁘잖아요! 그리고 사람도 엄청 좋고요! 멍청이가 아닌 이상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잖아요!”멍청이라는 단어까지 쓰며 말하는 공수이에 윤구주는 또 그의 딱밤을 때렸다.“형님, 왜 또 때리세요? 전 그저 멍청이가 아닌 이상 예쁜 누나를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했지. 형님을 말한 게 아니잖아요?”그에 윤구주는 눈을 부라리며 속으로 생각했다.‘이 바보야, 입 닥쳐! 날 말하는 게 아니면 누굴 말하는 건데?’하지만 공수이는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형님은 어떻게 예쁜 누나를 알게 된 거예요? 두 사람 꽤 친한 사이인 것 같아 보이던데요.”은설아와의 관계를 알려주고 싶지 않았던 윤구주는 대충 얼버무렸다.“나도 은설아 씨를 안 지는 얼마 안 돼.”“아하, 그렇군요. 근데 형님, 그거 아세요? 예쁜 누나가 마음이 예쁘기만 한 게 아니라 몸도 만 명 중에 한 명 나올락 말락 한 수련 성체예요! 스승님께 전에 예쁜 누나 같은 음량 성체는 이중
윤구주의 말을 듣고 공수이는 흡족한 웃음을 지었다.공수이의 마음속의 신 같은 존재인 윤구주의 허락이었기에 공수이는 그 어느 때보다도 기뻐했다.“아차, 하마터면 이 일을 잊을 뻔했네!”신나게 말하던 공수이가 갑자기 이마를 치자 윤구주가 의아한 듯 물었다.“왜 그러는데?”“방금 위층에 있을 때 경호원들이 말하는 걸 들으니 어떤 놈이 예쁜 누나랑 안고 있다고 그랬어요. 그래서 빨리 내려온 건데 도대체 어떤 놈이 나랑 여자를 뺏으려고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형님, 예쁜 누나가 어떤 놈이랑 안고 있었는지 보셨어요?”욕을 하며 계속해서 묻던 공수이의 말이 끝나자마자 윤구주는 공수이의 엉덩이를 발로 찼다. “형님, 왜 차세요?”그에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던 공수이는 엉덩이를 만지며 억울한 표정으로 윤구주를 쳐다봤다.“네가 매를 벌어서!”윤구주는 더 말하지 않고 고개를 돌리고는 걸어갔다.“형님은 왜 갑자기 이러시는 거야? 내가 언제 건드리기라도 했나? 형님께서 곤륜 지역을 떠나신 후 고생을 많이 하셔서 이렇게 화가 많이 쌓인 걸 거야.”공수이는 중얼거리며 윤구주를 따라갔다.화려한 인테리어의 돈킹 호텔 로비에서는 은설아가 기쁜 마음으로 윤구주를 기다리고 있었다.계속 보고 싶었던 윤구주를 보는 오늘이 은설아에게는 이 반년 중에서 가장 기쁜 날이었다.얼굴에는 행복한 미소를 짓고 윤구주가 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는 지금의 은설아는 마치 사랑에 빠진 소녀 같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윤구주가 공수이를 데리고 왔다.“구주 씨, 얘기 다 나눴어요?”윤구주가 웃으며 대답했다.“네.”“오늘 드디어 구주 씨를 만나서 너무 기뻐요! 구주 씨, 오늘은 내가 살게요.”“미안한데 제가 다른 일이 있어서 밥은 같이 못 먹을 것 같아요.”윤구주는 은설아의 요청을 정중히 거절했다.“구주 씨, 이렇게 빨리 떠나시는 거예요?”윤구주의 거절에 밝게 웃던 은설아의 얼굴은 순식간에 실망한 표정으로 변했다.“급한 일이라서 꼭 가봐야 해요.”애초에 윤구주가 이번에 온 것도
서울의 도로 위.윤구주가 앞에서 걸어가고 있었고 공수이는 원한에 가득 찬 눈빛으로 뒤에서 따라가고 있었다.은설아를 떠난 후 마음이 좋지 않았다.어쩔 수 없다.공수이의 첫사랑이었으니 말이다.겨우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윤구주가 공수이를 끌고 나와버린 것이다.“형님, 저는 예쁜 누나가 너무 좋은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해요?”조용히 따라 걷던 공수이가 갑자기 물었다.“그 생각은 없애는 게 좋을 거야.”“네? 형님, 그게 무슨 말이에요?”“다른 뜻은 없어, 그저 네가 나중에 속상해할까 봐 그러는 거야.”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묻는 공수이에 윤구주는 굳이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속상해한다고요? 그럴 리 없어요. 예쁜 누나가 그렇게 예쁘고 또 사람도 좋은데 어떻게 속상할 수가 있어요?”한동안 투덜거리던 공수이가 잠시 후 다시 입을 열었다.“유일하게 절 속상하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바로 예쁜 누나가 절 사랑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거겠죠! 형님께서 보시기엔 제가 어디가 모자라요? 예쁜 누나가 좋아하는 사람을 왜 이기지 못하는 건지. 예쁜 누나가 좋아하는 나쁜 자식한테는 이미 여자 친구가 있다고 들었어요. X발, 예쁜 누나가 어떻게 이런 나쁜 자식을 좋아할 수 있어요? 안 그래요, 형님?”공수이는 계속 윤구주에게 말했지만 의도치 않게 저격을 당한 윤구주는 어이가 없었다.이 자식이 지금 자신을 나쁜 자식이라고 한 것인가?이런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녀석이!“언젠가 그 나쁜 자식을 만나게 된다면 꼭 때려눕혀 버릴 거예요! 예쁜 누나에게 상처 준 대가를 똑똑히 알려줄 거예요!”공수이는 한편으로는 말을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주먹을 꽉 쥐었다.“수이야, 말 다 했어? 다 했으면 빨리 따라오기나 해.”윤구주는 공수이가 재잘거리는 것을 듣기 싫다는 듯 말 한마디를 남기고는 다시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공수이는 윤구주가 가는 것을 보고 그저 따라갔다.“형님, 밖에서 6년 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예쁜 형수님은 찾으셨어요? 형님처럼
윤구주는 공수이의 말을 듣고 깨달았다.그렇다.윤구주는 하마터면 공수이가 제자백가 중 공씨 가문의 세자라는 것을 잊을 뻔했다.제자백가 중에서 제일 유명하고 대표적인 공씨 가문의 유도는 화진에서 전통이 오래됐고 문하생이 아주 많았다.그러니 서울에서 윤구주를 찾는 것은 공수이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윤구주는 더 물어보지 않고 작은 별장으로 들어갔고 공수이도 윤구주의 뒤를 따라갔다.얼마 지나지 않아 윤구주는 공수이를 데리고 정원에 도착했다.“누구세요?”두 사람이 들어오자마자 용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저하? 저하를 뵙습니다, 저하의 귀환을 환영합니다!”용민이 윤구주인 것을 보고 즉시 참배를 했다.그때 소리를 들은 철영, 재이, 정태웅, 그리고 민규현이 달려 나오기 시작했다.“저하!”그러고는 모두 윤구주를 보고 인사를 올렸다.입으로는 윤구주를 외치고 있었지만 사실 그들의 시선은 모두 윤구주 뒤에 있는 공수이에게로 향해있었다.“왜 또 이 스님이에요? 어떻게 저하와 함께 있는 거죠?”정태웅이 첫 번째로 물었다.공수이는 아무렇지 않게 윤구주의 옆에 서 있으며 사람들의 궁금해하는 시선에 우물쭈물하지도 않고 놀라지도 않았다.자신의 등장이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말이다.모든 사람들이 의아해하고 있었을 때 윤구주가 걸어 나오며 말했다.“모두 꼬맹이를 전에 본 적 있지?”윤구주가 말한 것은 공수이였기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저하, 이 꼬마 스님은 누구세요?”정태웅이 묻자 모두들 공수이를 의아하다는 듯 쳐다봤다.“얘는 전부터 알고 지내던 동생이야.”윤구주가 이 말을 하고 고개를 돌려 말했다.“수이야, 이리 와서 인사해.”수이?이 이름을 들은 정태웅이 참 독특한 이름에 흠칫하며 놀랐다.공수이가 웃으며 앞으로 걸어 나와 말했다.“여러분, 안녕하세요! 공수이라고 하고 법호는 만천이에요.”이 말을 듣고 정태웅이 먼저 뿜었고 다른 사람들도 특이한 이름에 넋을 잃었다.“이제 금방 오게 됐는데 앞으로 형님, 누님 잘 부탁드립니다!”
모두 공수이를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 구경하듯 훑어보았다.“꼬마 스님, 진짜 이름이 수이야? 이름이 참 독특해.”정태웅이 먼저 앞으로 나와 물었다.“네!”공수이는 한 번도 자신의 이름을 싫어한 적도 없었고 또 자신의 이름은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독특한 이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우리 저하하고는 어떻게 알게 된 사이인지 물어봐도 될까?”정태웅이 또 묻자 공수이가 바로 대답했다.“제 형님이신데 어려서부터 따라다녔었어요!”“저하를 형님이라고 부른다고?”“네! 곤륜 지역에서 저희 형제들은 모두 형님이라고 불러요!”공수이가 또 말했다.곤륜 지역이라고 말하자마자 정태웅은 흠칫했다.옆에 있던 민규현, 천현수, 그리고 무표정이었던 남궁서준도 곤륜 지역을 들었을 때는 표정에 살짝 변화가 나타났다.화진 곤륜 지역은 모든 무인들이 추구하는 무술의 성지가 아닌가!곤륜 지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절세 노마 외에 많은 화진의 천재들뿐이었다. 여러 지역 금기의 땅과 이어져 있는 곤륜 지역은 무인들이 모두 추구하는 성지였으며 동시에 무인들의 금기의 땅이기도 했다.눈앞에 있는 이 얌전해 보이는 공수이가 화진에서 제일 신비로운 곤륜 지역에서 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네가 화진의 무술 성지 곤륜 지역에서 왔단 말이야?”정태웅은 놀라서 입이 크게 벌어졌다.“네! 왜 그러세요? 형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으셨어요?”공수이가 질문에 정태웅이 고개를 저었다.“소문에 의하면 곤륜 지역은 우리 화진의 무술의 성지인데 그 안에는 많은 절세 강자들이 숨어있다고 하던데 이게 사실이야?”정태웅이 물었다.“이건 맞아요. 하지만 그곳은 정말 재미가 하나도 없어요!”공수이가 투덜댔다.“곤륜 지역이 재미가 없다니? 거긴 화진의 무술의 성지라고! 모든 무인들이 가고 싶어 하는 금기의 땅이라고!”정태웅이 어이없어했다.“쳇, 무슨 성지긴요. 아무튼 난 너무 심심했어요!”공수이가 말하고는 눈을 깜빡이며 먼 곳에 있는 서울의 높은 빌딩을 보며 말했다.“그래도 큰 도시가
당분간은 금기의 술법을 배울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정태웅이 말했다.“그럼 무슨 보물이 있는지 보여줄 수 있어?”“아하, 잘 물어보셨어요! 제가 다른 건 없어도 보물은 엄청 많거든요!”제자백가의 공씨 가문의 세자로서 공수이가 한 말은 허세가 아니었다.공수이가 말을 하고 낡은 가방을 열자 정태웅은 공수이의 낡은 가방만 뚫어져라 쳐다봤다.옆에 있던 민규현, 천현수, 용민, 철영, 그리고 재이까지 모두 궁금해하며 속으로 생각했다.‘이렇게 낡은 가방에 무슨 보물이 있다는 거지?’공수이가 낡은 가방을 열고 안에 있는 물건을 꺼내기 시작했다.얼마 되지 않아 공수이는 가방에서 물건을 몇 개 꺼냈다.도자기 병에 든 단약, 갑옷 그리고 장갑이었다.“이건 용역 단약인데 우리 스승님께서 만드신 무인이 복용하면 효과가 아주 좋은 단약이에요! 이건 화서갑이라고 하는데 칼이고 총알이고 다 막아낼 수 있어서 상대가 대가 경지 아래라면 머리를 베지 않는 이상 아무 문제 없어요! 이건 신풍장갑이라고 하는데 곤륜 지역에서 사는 질풍 늑대의 가죽으로 만든 거예요. 이걸 끼면 주먹 속도가 최소 두 배는 빨라질 수 있어요!”공수이가 보물을 일일이 소개하자 정태웅 등 사람들은 모두 그 자리에서 넋을 놓고 있었다.“진짜야? 수이야, 우리를 속이면 안 돼.”단약, 갑옷과 장갑 모두 보기에는 너무나도 평범해 보였기에 정태웅이 먼저 의심하고 나섰다.“못 믿겠으면 사용해 보던가요.”공수이가 말에 정태웅은 반신반의의 태도로 걸어가 그 많은 물건 중에서 신풍장갑을 골랐다.그 신풍장갑은 검은색이었는데 위에 있는 코팅은 이미 다 떨어진 상태였다.만약 공수이가 보물이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길가에 던져도 정태웅은 줍지도 않을 것이다.한번 시도해 본다는 마음으로 정태웅은 신풍장갑을 손에 꼈는데 신기하게도 장갑을 끼자마자 가벼운 느낌이 두 팔을 감돌았다.마치 두 팔이 아무런 제한도 받지 않는 것 같은 느낌에 정태웅이 기쁘게 소리쳤다.“헐, 이런 가벼운 느낌 죽이는데!”“주먹 한 번 날려보
정태웅은 공수이의 말을 듣고 공수이를 끌어안고 그의 대머리에 뽀뽀를 했다.“수이야, 넌 정말 너무 좋은 사람이야! 앞으로 넌 내 롤모델이야!”정태웅이 기뻐서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공수이는 칭찬을 듣고 웃으며 고개를 돌려 다른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이리 와서 보세요. 마음에 드는 보물이 있으면 가져가세요! 저한테 아직 많이 있어요!’공수이는 말을 하며 손을 낡은 가방에 넣어 휘적이더니 또 많은 보물들을 꺼냈다.단약, 법기, 심지어 병기도 있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공수이가 안에서 희귀한 병기를 꺼냈다.은색 긴 검 하나, 쌍창 하나,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기만 해도 무서워지는 방망이까지 꺼냈다.공수이가 가방에서 이렇게 많은 물건을 꺼내는 것을 보고 모두 놀랐다.“수이야. 너 그 가방은 도대체 뭐야? 어떻게 이렇게 많은 물건을 꺼낼 수 있는 거야? 이건 말이 안 되잖아.”공수이의 낡은 가방은 그냥 책가방 크기였지만 안에 담고 있는 물건은 상상 이상이었기에 정태웅이 놀라며 물었다.그에 공수이는 웃으며 말했다.“이건 백보 가방이라는 거예요! 안에 공간이 엄청 커서 차 한 대도 넣을 수 있어요!”“그렇게 대단한 가방이야?”백보 가방을 처음 들어본 정태웅이 감탄하자 공수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지금 모든 사람들은 공수이에게 홀딱 반해버린 상태였다.무술의 성지 곤륜 지역에서 나온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지 이제야 알게 된 그들은 공수이가 백보 가방에서 또 무언가를 꺼내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그리고 용민, 철영, 천현수, 그리고 민수현까지 모두 자신이 원하는 것을 고르기 시작했다.어쨌거나 이 보물들은 자신들한테 효과가 어마어마하니 빨리 자신이 원하는 보물을 선택해 가지는 것이 이득이었다.천현수가 선택한 것은 화서갑이었는데 방어에 효과적이었고 용민과 철영은 각자 마음에 드는 병기를 선택했고 민규현은 그저 단약을 선택했다.“이 누님 예쁘시네요.”공수이는 빨간색 치마를 입고 있는 섹시한 몸매의 재이를 보며 칭찬을 하기 시작했다.재이는
아침 일찍부터 정태웅이 공수이에게 묻자 공수이는 대머리를 만지며 말했다.“얼마나 강하냐고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근데 저 육도 절정 아래는 다 죽일 수 있어요.”뭐라고?육도도 죽일 수 있다고?“세상에!”정태웅은 놀라서 하마터면 땅바닥에 꿇을 뻔했다.“이건 정상 아니에요? 그때 곤륜 지역에서 형님께서 14살이었을 때 지역 외에 칠살 노마도 죽이셨어요. 전 아무것도 아니에요.”공수이가 말하는 것을 듣고 정태웅은 벽에 머리를 박아 죽고 싶었다.세상에나!현대세계에서는 육도, 칠살 절전이면 최고 경지에 도달한 존재였다.근데 왜 공수이의 말에서는 마치 애송이처럼 들리는 건지 공수이가 그렇게 강한가 싶어 정태웅은 고개를 들고 공수이를 다시 자세히 쳐다봤다.공수이는 하얗고 예쁘게 생긴 얼굴에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아 전혀 그 정도로 강해 보이지 않았다.정태웅이 이렇게 속으로 생각하고 있을 때 공수이가 갑자기 고민에 빠졌다.그리고 공수이는 정태웅이 어이없어할 만한 물음을 던졌다.“태웅이 형, 누군가를 좋아하면 직접 마주 보고 알려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문제를 생각하고 있던 정태웅은 공수이가 물어보는 것을 듣고 웃었다.“너 좋아하는 사람 있어?”정태웅이 눈을 둥그렇게 뜨고 묻자 공수이가 고개를 끄덕였다.“근데 넌 스님이잖아.” 정태웅은 어이가 없었다.“스님이면 뭐요? 스님은 누군가를 좋아하면 안 돼요?”“스님은 세속을 버리고 술과 고기도 끊고 색욕도 끊어야 한다고 그러던데?”“쳇, 난 안 끊을 거예요. 그걸 다 끊으면 무슨 재미로 살아요!”정태웅의 말에 공수이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공수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정태웅은 엄지를 척 들어 올렸다.“근데 수이야, 누굴 좋아하는데? 나한테 말해봐 봐. 내가 또 인기남이거든. 어떤 스타일의 여자든지 다 나한테 빠지면 꼼짝도 못 한단 말이지.”정태웅은 뱃살을 치며 허세를 부렸다.“태웅이 형 진짜 그렇게 대단하세요?”“그럼 당연하지!”순식간에 눈을 빛내며 묻는 공수
하지만 한 계단씩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난관들도 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만약 윤구주와 맞서야 하는 적의 입장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차분히 계단을 오르는 윤구주는 마치 깊은 심연 그 자체였을 것이다.그의 강력함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가 올라올수록 위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압박감에 휩싸였다.검종의 검객들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윤구주는 이미 사백 계단까지 올라와 있었다.하지만 사백 계단쯤으로는 아무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화진의 또 다른 황자 구주왕의 후계자였으니까.윤구주가 오백 계단을 밟는 순간 모든 이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응시했다.눈길을 떼지 못한 채 그의 오름을 지켜보았다.오백일…… 오백이십! 오백오십! 오백구십구!“마침내 구구관에 도달했다.”“칠구는 수겁이요 구구는 극히 넘기기 어려운데.”진정한 고수들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과연 윤구주가 이 한 걸음을 쉽게 넘을 수 있을지 모두가 궁금해했다.윤구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그가 본 것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마치 화진의 온 세상 같았다.한눈에 화진의 대지와 산천이 모두 담겼다.눈앞에 펼쳐진 화진의 아름다운 대지는 숨 막히는 광경이었다.하지만 동시에 이 끝없는 강산 곳곳에 묻혀 있는 수많은 해골도 함께 보였고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비장함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윤구주의 내면을 감지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이 곧바로 그의 곁에 나타났다.“구주야 화진의 산천을 잘 살펴봐! 천하의 용맥은 모두 화진에서 비롯되었고 이 한 획 한 획은 백성의 척추와 같다! 눈에 비치는 물의 맑고 흐림은 중요하지 않아. 지나치게 눈 부신 빛은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너무 어두운 밤은 희망을 앗아가기 마련이지.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화진의 이 산천은 영원히 굳건히 서 있을 거야. 왜냐하면 푸른 산마다 묻혀 있는 충신의 뼈와 넋들이 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까.”서요산 검종 종주는 윤구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 온
진인들은 말했다. 임정설이 만약 집념을 내려놓는다면 육백 계단까지도 오를 수 있을 거라고.장인 대진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집념을 놓는다면 더 이상 화진의 국주가 아니지. 바로 이런 끈질긴 의지가 있기에 그분이 화진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다른 진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운명이란 그런 법이다. 아마도 집념을 놓았다면 임정설은 오백 계단조차 오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이때 임정설은 아직 남아 있는 절반의 계단을 바라보며 씁쓸히 미소 지었다. “어쩌면 여기서 멈춰야겠구나.”임정설은 다시 뒤를 돌아 윤구주를 바라보았다. 그가 자기 자식이자 동료처럼 여기는 윤구주가 과연 몇 계단을 오를지 궁금했다.깊은 생각에 잠긴 임정설이 곧바로 말을 꺼냈다.“구주야 이제 네가 올라서 봐! 화진의 구주왕다운 실력을 보여줘! 적어도 나보다는 못하면 안 되지 않겠냐?”아래에 서 있던 윤구주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원래 그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국주의 바람이라면 흔쾌히 도전할 마음이었다.“명 받들겠습니다!” 윤구주는 말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계단을 밟아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기 시작했다.구주왕이 등천로에 도전했다는 소식에 서요산 검종 전체가 술렁였다.검객은 물론이고 잡일을 돕는 제자들까지 모두 금정에 모여들어 그의 모습을 보고자 했다.심지어 하늘 위 어둑한 구름 사이에서도 한 쌍의 법안이 열렸다. 바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 환영이었다.임정설이 먼저 정상에 올랐고 장인 대진인을 포함한 일곱 진인과 서요산의 모든 제자들은 화진의 황자를 향해 몸을 숙여 예를 갖추었다.“모두 일어나시오. 그대들이 없었다면 화진은 이미 혼란 속에 빠졌을 것이오. 진정 국가와 화진을 위해 헌신한 것은 바로 그대들입니다.” 임정설은 화진의 모든 백성을 대표할 순 없지만 왕실을 대표하여 임 씨 일족의 지도자로서 서요산 검종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국주께서 과찬입니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방식대로 묵묵히 힘썼을 뿐입니다. 화진의 백
일곱 진인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들은 국주가 이미 등황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사백 계단은 쉽게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과연 그들의 예상대로 임정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오르며 오백 계단을 가볍게 밟아 올랐다. “오백 계단을 밟으면 등황의 경지에 오를 수 있습니다. 우리 일곱 진인 중에서도 오직 장인 대진인께서만 과거에 오백 계단에 오르셨고, 현재 서요산에 살아계신 유일한 오백 계단 수련자이십니다. ” 한 진인이 감탄하며 말했다.이 말을 듣자 옆에 있던 백호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선임 도사님 그러면 그 도사님도 황자란 말씀입니까? ”“하하! 우리 서요산에서는 외부의 그런 칭호를 쓰지 않아요. 우리 사이에서는 그를 반신이라고 부릅니다.” 진인들이 웃으며 말했다.청해가 옆에서 덧붙였다. “서요산 검종에서 말하는 반선이 황자를 뜻하는 거야. 근데 그 서요산 반선 진짜 어마어마하게 강한 인물이거든. 예전에 곤륜 구역에서 귀한 영약 찾으러 들어왔다가 우리 빙신전 전주랑 빙황 두 명이 같이 상대했는데도 둘 다 거의 죽을 뻔했어. 결국 아사 신전한테까지 도움 요청해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지.”“뭐라고?”백호는 놀라서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진짜 그렇게 강한지 의문이 들었다.일곱 진인 중 가장 나이 많은 그 진인은 백호의 단순한 반응에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그가 바로 그 반선이었다. 다만 백호가 워낙 세상 물정에 둔감하여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놀라기만 하고 있었다.그사이 임정설은 이미 오백오십 계단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이 단계에 이르자 임정설도 거의 극한에 도달했다.“역시 직접 올라와 봐야 이 압력을 제대로 실감하는구나! 오백사십 계단까진 무리 없었는데 오백오십 계단에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구나.”지금 임정설을 압박하는 것은 단순한 술도의 압력만이 아니었다.과거의 온갖 기억들이 마장이 되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일곱 진인은 모두 임정설의 기운이 혼란스러워진 것을 느꼈다.“장인 사형, 국주님께서 심마에 걸리셨군
청해의 눈길이 자주색 도포를 입은 진인에게로 향했다.서요산검종에서 종주를 제외한 나머지 일곱 명의 진인이 가장 높은 수련을 가지고 있으며 평소 종문 내의 모든 일은 이들 일곱 명이 책임지고 있다.기세는 마치 대강의 파도가 넘실대듯 깊고 끝이 보이지 않는 산과 숲처럼 무한히 이어져 있었다. 그의 수련은 깊이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서요산 7대 진인의 수련이 극 신급 절정이라고 들었는데 지금 보니 그 말이 너무 가볍게 들리네요. 귀하의 수련은 적어도 극 신급 절정 후반에 다다랐군요.”청해는 세 명의 진인에게 경의를 표하며 몸을 굽혔다.“서요산의 전통은 천 년을 자랑하며 그 깊이는 변함없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반면 곤륜 구역은 스스로 신을 자처한 이후로 계속해서 내분을 일으켰습니다. 수련을 통해 세상을 떠난 후 도를 깨닫는다는 말처럼 곤륜 구역은 천하의 영기와 천물을 흡수했지만 제 생각에는 도를 얻지 못한 곳입니다. 지금 당신이 화진에게 올바른 수를 두는 것은 맞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극 신급 절정 후반도 절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한 진인이 답례하며 말했다.그때 몇몇 사람들은 서요산 검객들의 함성에 이끌려 사방을 살폈다. 백호가 사백 계단을 올라갔다는 소식이었다.“대단한데요. 서요산이 전성기였을 때도 사백 계단을 오른 이는 드물었어요. 우리 몇몇 진인들도 입문 시에 사백 계단을 넘은 적은 없었죠.”몇몇 진인들이 칭찬했다.이는 백호가 미래에 매우 큰 가능성을 지녔음을 의미했고 적어도 극 진경 후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극 진경 후반은 곤륜 구역에서 신전의 전주가 될 수 있는 실력이다.지금 사백 계단에 오른 백호는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 완전히 의지로 버티며 강력한 정신력으로 계속해서 오르고 있었다.그러나 아무리 강한 운명을 지녔다 해도 천지의 이치를 막을 수는 없다.사백오십 계단에 도달했을 때 백호는 결국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의식을 잃은 것은 시험이 끝났다는 신호였고 백호는 곧 깨어났다.“겨우 사백오십 계단이라니
서요산 검객들이 모두 그 무인의 정체를 궁금해하자 진인도 더 이상 뜸 들이지 않고 말했다.“저분은 구주왕 휘하의 화진 군신이자 국방부 대장 백호 장군이시다.”검객들은 모두 입이 벌어진 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군신의 명성은 당연히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보호하는 영웅이었으니까.“정말 구주왕 휘하의 군신이라니!”“역시 저런 굳센 의지가 그냥 나온 게 아니었어! 수많은 전장을 누빈 명장다운 모습이다!” 서요산 검객들은 백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현재 백호는 이미 삼백이십 계단을 돌파한 상태였다. 백호가 혼자 주목을 독차지하는 걸 본 청해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고 계단에 발을 내디뎠다.처음 백 계단은 청해도 육신의 힘으로 버텼다. 하지만 백 계단을 넘자 육체만으로는 견디기 어려워졌다. 그는 술법으로 대응하려 했지만 평소 쓰던 빙신전의 신술이 계단 위 술법에는 통하지 않았다.“역시 화진의 서요산 검종은 보통이 아니구나. 이 등천로에선 일반 술법이 먹히지 않으니 천지 영기에 대한 깨달음으로 맞설 수밖에 없겠어.” 청해는 몸을 감싸고 있던 현빙을 거두고 오로지 자신의 속성 영기로만 버티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막상 올라 보니 이 등천로가 얼마나 어려운지 제대로 실감했다. 이백 계단쯤 오르자 벌써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계단마다 한계를 시험하는 느낌이었다. 올려다보니 백호는 여전히 계단 위로 나아가고 있었다. 청해도 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서요산 검객들도 청해의 수준을 알아보고 속삭였다. “저 이역인은 정말 대단한 내력의 소유자다! 기운이 이미 진인 급에 가까워! 극 신급 절정의 수련자임이 분명해!”이에 대해 진인은 신비롭게 꾸미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 “저자는 곤륜 구역 빙신전의 부 전주 청해다. 경지가 매우 높지. 지금 빙신전은 우리 화진에 귀속되었고 청해 역시 구주왕 휘하의 부하가 되었다. 얼마 전 서울 방어전에서 청현과 목숨까지 걸고 사투를 벌인 끝에 죽을 고비를 넘겼으
백호는 아직도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어느덧 이백오십 계단까지 올라왔다. 이 단계부터는 실체화된 술법이 몸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계단 하나를 오를 때마다 바람, 불 번개와 같은 속성의 영기가 점점 강해졌다. 여기서부터는 육신 횡련의 수련자는 강력한 체질로 버티고 술도 재능이 뛰어난 수련자는 천지 영기를 다루는 능력으로 버텨야 했다. 한마디로 각자의 능력에 따라 갈리는 구간이었다. 어느 한 분야라도 특출나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백호는 술도에는 재능이 없었기 때문에 오로지 강인한 육체 하나로 견디고 있었다.웅!성수의 피가 진동하며 백호의 몸을 지탱했다. 각종 속성의 영기가 몰아쳤지만 백호는 성수혈의 힘을 빌려 억지로 앞으로 나아갔다.수련자에게 있어서 성수의 혈맥이나 법보 등은 모두 신체 외적인 재능으로 간주하지만 그렇다고 이것들이 꼼수나 편법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천 가지 변화와 만 가지 신통력이 있어도 결국 만법은 한 가지로 귀결된다. 법기든 혈맥이든 이를 감당하는 것은 결국 본인의 몫이다. 천지 영기를 이용한 술법도 결국은 그 힘을 감당할 수 있어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며 감당하지 못하면 반드시 반작용을 맞게 된다. 따라서 수련의 길에는 애초에 편법이란 존재하지 않았다.성수 혈맥 같은 천지의 보물은 보통 사람이 함부로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윤구주의 도움을 받았다 하더라도 결국 이를 감당하는 건 백호 자신이었다. 성수 혈맥의 힘을 온전히 감당하며 백호는 결국 삼백 계단까지 올라섰다.계단의 꼭대기 근처에는 이미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이 여럿 서 있었다. 서요산 검종은 근대에 들어 삼백 계단을 넘는 인재가 드물었다. 최근 백 년 동안 삼백 계단을 넘은 사람이 고작 열 명 남짓이었고 그중 대부분이 삼백여 계단에서 멈췄다. 그런데 지금 백호는 삼백이십 계단까지 올라선 것이다. 이 정도면 서요산 검종 전체가 떠들썩해질 만한 성과였다.이런 제자가 나타난다면 종문 전체가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래서 서요산의 진인들까
“한 사람의 품성을 제대로 살피지도 않고 마구잡이로 그렇게 많은 수련자를 키워낸다면 결국 천하의 마인을 직접 만들어 내는 꼴이 아니겠어?”청현이 바로 그 실패한 예다. 서요산 검종 종주가 청현의 천재성을 아까워한 나머지 그의 인성을 무시하고 양성한 끝에 결국 역도를 만들어 낸 것이다.“그럼 저하 서요산에 입문한 무술 무인들은 평균적으로 몇 계단까지 오르는지 아십니까?” 백호가 호기심에 물었다. 윤구주는 잠시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무술 무인의 정확한 데이터는 모르지만 검종 종주와 잡담할 때 들어보니 검종 제자들의 수준이 갈수록 떨어져서 천 년 전만 해도 평균 삼백 계단 정도였는데 요즘엔 백 계단도 못 오른다고 하더구나. 가끔 삼백 계단을 오르는 자라도 나오면 검종 전체가 몇 년은 떠들썩할 정도라고 했어.”“구백구십구 계단까지 있는 시험인데 천 년 전 전성기에도 겨우 삼백 계단이요?” 백호는 입술을 삐죽이며 서요산 검종의 수준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때 한 번 도전해 볼 생각이야?” 윤구주는 흥미롭게 백호를 바라보았다. 백호는 당장이라도 도전하고 싶은 마음에 윤구주의 허락을 구한 뒤 바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한 계단 두 계단... 오십 계단까지는 아무 어려움도 없었다. 백호는 오십 계단에 서서 사람들을 향해 서요산 검종이 별것 아니라며 놀려댔다. 하지만 육십 계단쯤 올랐을 때 처음으로 압력을 느꼈다. 마치 몸 위에 작은 차 한 대가 올라탄 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백호에게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백 계단에 도달하자 압력이 갑자기 커졌다. 등에 작은 승용차 대신 소형 트럭이 올라탄 듯한 느낌이었지만 아직 백호의 한계에도 가지 못했다.“근래 사람들의 평균이 백 계단도 못 넘는 이유가 이제야 이해가 되네요. 예전의 무인 횡련은 황제도 오를 수 있었지만 요즘 무인 횡련은 죽어라 노력해도 소형 트럭 하나 못 버티는 수준이니 말입니다.”백호는 농담을 던지며 계속해서 계단을 올라
전에 임정설은 구오 지존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나라를 위해 힘쓰며 수모를 견뎌내고 살아남으려 했다.하지만 이제 황제가 된 그는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다.그 탓에 이번 관문 앞에서 그는 망설였다.살아 있는 자만이 통과할 수 있는 관문이었다.죽음을 마음에 품은 자는 절대로 넘어설 수 없는 관문이었다.그 자리에 있던 사람 중 청해만이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생각했다.‘황제가 되면 곤륜 구역에서 최고 경지에 도달하는 건데. 기뻐해도 모자랄 판에 왜 죽음을 택하려는 거지?’“저하, 국주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듯합니다. 저하도 사랑하던 이에게 배신당했어도 결국 극복해 나갔잖습니까.”백호도 이해하지 못했다.그는 여전히 국주보다는 왕이 더 낫다고 여겼다.“네가 뭘 안다고 그런 말을 함부로 내뱉느냐.” 윤구주가 단호하게 말했다.백호는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그는 어리숙하고 말솜씨도 없기에 생각나는 대로 말했을 뿐이다.“내가 문아름에게 배신당한 건 억울한 일이지만 나는 그녀에게 잘못한 게 없다. 오히려 그녀가 날 배신한 거다. 하지만 국주는 그 반대였지. 그가 그녀를 저버린 거야. 정이 깊으면 오래가지 못하고 지혜가 지나치면 오히려 상처를 입는다. 이 세상에서 가장 쓰라린 후회는 가진 뒤 잃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생사를 달리하게 되는 것이다.” 윤구주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만약 소채은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자신도 제정신이 아닐 거라고 느꼈다.“그럼 복수하면 되지 않나요?” 백호가 어리둥절하게 물었다.이때 청해가 눈치를 채고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상대가 너무 강해서 못 이기는 거지. 황제에 오르기 전까진 제대로 맞붙을 힘도 안 돼. 오르고 나서도 이길 수 있을지 장담 못 하고.”윤구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딱 그 말이 맞았다.“그럼 우리가 국주님 대신 복수해 드리면 되잖아요? 국주님은 제 왕이기도 하지만 제 윗사람이기도 하잖아요.”백호가 고개를 갸웃했다.“하하! 만약 세상 사람들이 다 너처럼 솔직하다면 이런
인간이 나쁜 짓을 거듭해 양심을 잃으면 부끄러움도 사라진다. 예전 같으면 아무렇지 않았을 테지만, 지금은 윤구주를 따라 명예심이 생기면서 죄책감도 느끼게 된 청해에게 이 원한의 전법은 고통스럽기만 했다. 물론 곤륜역 한 신전의 부전주로서 정신이 붕괴할 정도는 아니었다.네 사람은 이 원한의 전법도 가볍게 넘어섰다.이때 전법에 관심을 가졌던 임정설이 무언가를 눈치챘다.“구주야, 서요산의 전법은 우연히 들어온 자를 쫓아내는 동시에 수련자의 의지를 시험하는 것이었어. 서요산은 의지력이 확고한 자들만 끌어들인다는 것을 미리 들어 알고 있다. 이게 바로 서요산이 제자를 선발하는 방식인가 보구나.”“그렇습니다. 매년 화진 무도계 사람들이 서요산에 찾아오지만 성공한 자는 극히 드뭅니다. 실패자들 중 십중팔구는 산기슭에서 죽음을 맞이하죠. 어떤 문턱은 넘지 않는 것이 복이 될 때가 있습니다. 모르는 것이 약이죠. 현실을 알고도 바꾸지 못하는 것이 가장 괴로운 법이니까요. 이 관문을 넘는다고 해도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면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입니다.”윤구주의 말이 끝나자 세 번째 전법이 나타났다.첫 번째와 두 번째 전법은 이곳에 들어온 이들을 돌려보내려고 만든 것이지만 세 번째 전법은 달랐다. 이 전법은 살기로 가득 찬 죽음의 전법이었다.평범한 사람들은 여기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이곳까지 온 자들도 앞길의 위험을 보고 함부로 들어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눈 앞에 펼쳐진 죽음의 길을 보고도 들어가는 자는 스스로 죽음을 원하는 자라서 그런 자들에게 죽음을 내리는 것은 오히려 덕을 쌓는 일이었다.하지만 무도로 도를 깨우치려는 수련자라면 이 관문을 넘기 위해 반드시 목숨을 걸어야 한다. 버텨내야만 수도의 길에 들 수 있고 실패하면 그 후과를 받아들여야 한다.전법 안은 살기로 가득했다. 생기와 영기가 세상을 이롭게 하지 못할지라도 살기와 죽음의 기운은 목숨을 앗아갈 것이 분명했다.진법 내부에는 수많은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무도계에 이름을 날렸던 강자들의 유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