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각오한 피할 수 없는 결전이었다.앞의 50여 명의 세가 절정고수들은 모두 6년 전의 잔당들이었다.그들은 6년 전 윤구주를 처치하고자 했으나 그 능력이 부족했다.이제 6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 그들은 마침내 기회를 맞이했다.“죽여라!”사람들 속에서 마치 미륵보살 같은 비만한 절정이 포효하자 세가의 절정들은 하나둘 혈을 태우기 시작했다.그 순간, 노룡산은 완전히 절정의 전장이 되었다.연혈지법이 연이어 펼쳐지며 세가의 잔당 절정들은 다시 한번 경지를 한 단계 올렸다.“미쳤어, 저들은 모두 미쳤어! 젠장, 6년 전의 노마들이 목숨을 걸고 구주왕과 맞서려 하다니!”전쟁터 백 장 밖에 있던 배씨 가문의 원로 절정고수가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연혈지법! 젠장, 구주왕을 죽이기 위해 저렇게까지 하다니!”배씨 가문의 세자 배도찬도 놀란 표정으로 전장을 바라보았다.전에 세가 잔당들은 단순히 윤구주를 처치하겠다고 외쳤다면 지금은 완전히 다른 상황이었다.이들은 분명히 윤구주와 함께 멸망할 각오를 한 것이었다.연혈지법이 일단 시작되면 그 결과는 필연적으로 죽음의 싸움이 되기 때문이다.“오십여 명의 절정이 동시에 혈을 태우다니, 옛날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미친 짓은 처음이군!”한편, 반 씨 가문 쪽에서도 한 명의 건장한 절정 고수가 무겁게 입을 뗐다.“대장로님 보기에 오늘 우리 화진의 진국지왕이 버틸 수 있을까요?”반 씨 가문의 다른 절정 고수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대장로라 불리는 건장한 노인은 심각한 얼굴로 하늘에 떠 있는 윤구주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무겁게 대답했다.“구주왕은 비록 육기를 연달아 펼쳤지만 결국 두 주먹으로 여러 손을 막기는 어려울 거야. 하물며 저자들은 이미 모두 혈을 태우기 시작했으니 내 생각엔...”반 씨 가문의 사람들도 영리한 사람들이니 대장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결말을 눈치챘다.“하아! 마씨 가문이 저렇게 재주가 좋을 줄은 몰랐어. 6년 전의 세가 잔당들을 저렇게 많이 모아놓은 것도 모자라 구주 군신을
천현수도 이때 말을 꺼냈다.현장에 있던 사람들 중 유일하게 말이 없는 이는 남궁서준이었다. 그는 그저 쨍하고 남궁 세가에 전해 내려오는 유용검을 뽑아 들었다.유용검이 칼집에서 빠져나오자 칼에서 진동하듯 검명의 울림이 퍼져 나왔고 그의 몸에서도 살벌하게 일렁이는 검의 기운이 발산되었다.마치 이 녀석은 언제든지 공격을 퍼부을 것 같은 기세였다.모두가 긴장하고 있을 때, 대머리 공수이가 갑자기 중얼거리며 말했다.“겁낼 거 없어요! 저들이 혈을 태운다고 한들 우리 형님은 이길 수 없어요!”공수이의 말에 민규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네 말은 저 세가 잔당들이 혈을 태워도 우리 저하를 상대할 수 없다는 뜻이냐?”공수이는 청석 위에 앉아 작은 풀 한 가닥을 입에 물고 씹으며 천연덕스럽게 말했다.“저것들이 어디서 튀어나와 우리 형님한테 덤비는 건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오늘 저것들이 배로 늘어난다 해도 전부 죽게 될 거라는 겁니다. 믿기지 않으면, 기다려보세요!”공수이의 태연한 모습에 민규현과 정태웅, 그리고 천현수 등 사람들은 반신반의하며 하늘에 있는 윤구주를 올려다보았다.하늘 위에 우뚝 서서 육기를 펼친 그는 마치 신과도 같은 위엄을 뽐내고 있었다.“윤구주 네놈이 아무리 강해도 우린 모두 연혈지법을 펼쳤으니 오늘은 네 마지막 날이 될 것이야!”주씨 가문의 두 다리를 잃은 주형권은 한마디 외친 후 두 손으로 결을 쥐어 하늘에 있는 청동 나침반에 주입했다.현기가 주입되자 청동 나침반은 급작스럽게 커지기 시작하더니 강대한 육도 절정의 기운이 그 안에서 쏟아져 나왔다.본래 오악 수준에 불과했던 주형권은 혈을 태우자 완전히 육도의 반열에 올랐던 것이다.연혈지법이 발동되자 그의 머리카락은 눈에 띄게 하얗게 변했고 얼굴도 함께 시들어가며 늙어갔다.이것이 바로 연혈지법의 대가였다.하지만 그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그가 말했듯, 오늘 죽더라도 그는 윤구주를 끌고 함께 묻힐 것이다.주형권이 공격을 시작하자 나호봉의 사도인도 일갈하더니 온몸에
윤구주가 단칼에 세 명의 세가 절정고수를 쓰러뜨린 후, 사방에서 그를 향해 공격이 쏟아졌다.문득 그의 뒤에서 네 명의 절정의 고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세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로 이루어진 이들은 모두 이중천의 내공을 지니고 있었으며 각자 다른 무기를 사용했다.그중에서도 맨 앞에 있는 남녀는 용봉쌍환을 들고 있었다.기이한 용봉쌍환은 살기를 뿜어내며 윤구주를 뒤에서 기습하려 했지만, 윤구주는 마치 뒤에 눈이라도 달린 듯 용봉쌍환이 날아오는 것을 감지하고 몸 표면에 금빛 보호막을 펼쳤다.보호막이 용봉쌍환의 공격을 막아낸 후 윤구주는 큰 손으로 네 사람을 향해 눌렀다.“부자술, 가둬라!”황금빛 부적 하나가 그의 손바닥 안에서 떠올랐다.부적이 나타나는 순간, 원형의 부진은 네 명의 고수들을 단숨에 묶어버렸다.“위험하다! 빨리 물러서라!”그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흑면 노인이 부진에 갇힌 순간, 급히 외치며 도망치려 했지만, 윤구주는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화련금안, 태워라!”윤구주의 금빛 눈동자에서 혼을 삼킬 듯한 불꽃 연꽃이 뿜어져 나와 네 고수를 향해 날아갔다.금빛 연꽃이 그들의 몸에 닿자 네 명의 입에서 참혹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눈 깜빡할 사이에 그들의 몸은 금빛 불꽃에 타버려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뼈조차 남지 않는 모습이었다.살육은 계속되었다.비록 끊임없이 절정의 고수들이 윤구주의 봉왕팔기에 죽어갔지만, 여전히 수많은 절정의 고수들이 몰려왔다.“죽여라!”“그를 처치하라!”천지를 뒤흔드는 외침이 끊이지 않았다.이미 연혈지법을 펼친 절정고수들은 오늘의 전투가 죽음을 각오한 싸움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들은 죽음을 알면서도 윤구주를 먼저 처치하려 했다.수십 명의 절정고수가 일제히 윤구주를 향해 돌진했다. 우르릉하는 소리와 함께 윤구주의 앞에 있던 금빛 방패가 처음으로 금이 가는 징후를 보였다.어쩔 수 없었다!혼자서 수십 명의 절정고수를 상대하는 것은 확실히 버티기 힘든 일이었다.“윤구주 이놈
이렇게 많은 세가의 잔당 절정고수들의 포위 공격에 윤구주는 하늘에 우뚝 서 있었지만, 금빛 방패는 이미 전부 깨진 상태였다.사실이 보여주다시피 윤구주가 아무리 봉왕팔기의 육기를 펼쳤다 해도 이렇게 많은 세가 절정고수들의 연합 공격을 막을 수 없었다.더군다나 그들 모두 연혈지법을 펼친 상태였으니까.“윤구주 이놈, 아직도 버틸 셈이냐?”연혈지법으로 육도 경지에 도달한 주형권은 하늘의 진판을 조종하며 교만하게 외쳤다.윤구주는 냉소를 지었다.“너희들 따위가?”나호봉의 사 도인이 날카롭게 외쳤다.“죽음이 눈앞에 다가왔음에도 큰소리치다니? 오늘 네가 아무리 강해도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그래? 그럼 오늘 누가 죽고 사는지 두고 보자!”윤구주의 입에서 우레와 같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곧이어 그의 몸에서 천지를 멸망시킬 듯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이 기운은 이전의 봉왕팔기의 기운을 초월하는 듯했는데 마치 다른 곳에서 온 것 같았다.동시에 주변의 천지 원기도 마치 빨려오듯 사방에서 몰려들어 윤구주의 몸에 들어갔다.그뿐만 아니라 노룡산 주변 산맥의 천지 원기도 전부 몰려와 마치 회오리바람처럼 윤구주의 몸에 들어왔다.지금의 윤구주는 원기의 자기장이 된 것 같았다. 점점 더 많은 천지의 원기가 모여들면서 그의 몸 주변에 3장 크기의 원기 자기장이 형성되었다.“젠장, 저 녀석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가장 먼저 놀란 것은 두 다리를 잃은 주형권이었다.그가 하늘에 조종하던 청동 진판도 엄청난 위험을 감지했는지 통제를 벗어나려는 듯 격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주변의 천지 기운을 빨아들이고 있는 것 같아!”채 씨 노파도 소리쳤다.“큰일 났어! 전해지는 바로는 천지 기운을 끌어당기는 자는 적어도 절정의 하삼품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고 하던데, 설마 저 녀석은 칠살 절정 아니면 팔부 절정이란 말인가? 심지어 더 강대할지도...”이 말을 한 것은 장 씨 세가의 장영록이었다.말과 동시에 그의 뺨에 지렁이처럼 붙어 있는 칼자국도 떨고 있는 것 같
그 기운은 온 노룡산을 완전히 덮어버린 건 물론 현장에 있는 모든 세가의 잔당 절정의 고수들을 뒤덮었다.모두의 마음을 떨리게 하는 멸세의 기운이 그들의 마음속에 나타났다.이 제팔기는 마치 세상을 멸망시키려는 듯한 위세였다.“제팔기! 저자가 봉왕팔기의 제팔기를 펼쳤다고?”장 씨 세가의 장영록이 가장 먼저 눈을 크게 뜨고 외쳤다.“제기랄, 이 기운은 너무 강해!”수련이 상대적으로 약한 절정고수 하나는 기운을 버티지 못한 듯 말하고 있는 와중에도 얼굴이 점점 하얗게 질려갔다.그러다가 마침내 입가에서 피가 흘러나왔다.그 외의 다른 절정고수들도 윤구주가 제팔 기를 펼치자 모두 심장이 떨리고 숨조차 쉴 수 없는 상태에 빠져들었다.“저기 봐! 저하께서 봉왕팔기의 제팔기를 펼쳤어!”백 장 떨어진 곳에 있던 정태웅은 눈이 튀어나올 듯 흥분하며 외쳤다.민규현, 천현수도 그 장면을 보고 감격의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봉왕팔기, 드디어 저하의 마지막 기술을 보게 되는구나!”민규현도 감격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그의 가장 가까운 형제들도 윤구주의 제팔기를 보는 건 처음이었다.이때까지 계속 유룡검을 들고 있던 남궁서준도 윤구주의 제팔기를 보더니 얼굴의 살기가 줄어들고 기쁨으로 바뀌었다.“봉왕팔기, 이것이 바로 저하의 진정한 실력이란 말인가? 대박! 너무 강력해!”천현수가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모두가 윤구주의 제팔기 신통에 넋이 나가 있을 때 공수이가 갑자기 한마디를 내뱉었다.“제팔기 정도가 뭐 대수라고! 다들 눈 크게 뜨고 잘 보세요! 우리 큰형님께서 이제부터 진짜 필살기를 쓸 테니까!”공수이는 이렇게 말하고는 눈을 번쩍 뜨고 윤구주를 바라보았다.“뭐라고? 저하께 마지막 필살기가 더 있다고?”정태웅이 놀라며 공수이에게 물었다.옆에 있던 민규현과 천현수 그리고 줄곧 침묵하던 남궁서준도 모두 공수이를 향해 진짜냐는 의문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헐, 제발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요!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요?”공수이는 형제들이 하나같이 의문으
뭐라고?“제9기?”윤구주가 제9기 적선을 펼치자 모두가 경악했다.제압을 당하고 있던 세가 잔당고수들뿐만 아니라 윤구주의 형제들조차 충격에 휩싸였다.그리고 배씨 가문, 반 씨 가문 그리고 적성루에서 줄곧 걱정스레 지켜보고 있던 화진의 육 공주 이홍연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어떻게 이럴 수가? 봉왕팔기는 여덟 가지 신통만 있는 것이 아니었나... 어떻게 제9기가 있을 수 있지?”장 씨 세가의 장영록이 이 말을 내뱉는 순간, 얼굴에 난 칼자국은 점점 더 아파져 왔다. 그는 귀신을 본 듯한 표정으로 하늘에 있는 윤구주를 바라보았다.“그러게! 젠장,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제9기가 있을 수 있지?”팔이 잘린 채 씨 노파도 놀라서 외쳤다.이 순간 그들 말고도 민규현, 정태웅 등 형제들도 하나같이 멍해졌다.“제9기? 저하의 봉왕팔기에 어떻게 제9기가 있을 수 있지?”정태웅은 흥분해서 말하면서도 눈은 공수이를 바라보았다.공수이는 웃으며 말했다.“진작에 말했잖아요. 큰형님의 제9기는 여덟 기법을 하나로 합쳐 이루어낸 적선술이에요! 이 기술이 펼쳐지면 구오 절정도 초월하여 진정한 선인이 될 수 있죠!”공수이의 말이 끝나자 정태웅, 민규현 등 형제들은 모두 멍해졌다!구오 절정을 초월한다고?그렇다면 윤구주의 수련경지가 이젠 절정의 경지를 넘어 완전히 다른 차원에 이르렀다는 말인가?적선?하늘 위의 윤구주를 다시 바라보니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더 이상 절정의 기혈이 아니라 멸세의 기운을 품은 무시무시한 선기였다.이 끔찍한 멸세의 선기는 세가의 잔당고수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을 뿐만 아니라 윤구주의 형제들도 강렬한 위험의 기운을 감지했다!마치 그들도 위험에 처한 것처럼 말이다.“내 능력을 알고 싶다 했지? 그렇다면 오늘 너희 이 개미 같은 놈들에게 보여주마!”윤구주의 패기 넘치는 말과 함께 그는 손가락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죽어라!”끔찍한 회색 멸세의 기운이 손끝에서 한 줄기 빛으로 응축되었다.이 한 줄기 빛에 천지가 변했
“대장로님, 오늘 현명하신 판단 덕분에 우리가 이 일에 휘말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 반 씨 가문은 아마 멸족했을 겁니다!”반 씨 가문의 절정 고수가 대장로에게 말했다.백발이 성성한 대장로가 말했다.“이제야 그가 왜 화진의 제일 인왕으로 불리는지 알겠느냐?”반 씨 가문의 모든 사람은 깊은 침묵에 잠겼다.윤구주가 손가락 하나로 세가의 많은 절정고수를 처단한 뒤, 마씨 가문의 세자 마동한의 얼굴은 귀신이라도 본 듯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말도 안 돼. 세상에. 저 녀석은 도대체 무슨 신통을 펼쳤길래 저렇게 강력하단 말인가!”마동한은 자신이 목격한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오늘 그는 수많은 제자백가의 세가들을 불러모았고 또 6년 전의 노마 수십 명과도 손잡았다. 이 모든 게 윤구주를 죽이기 위함이었다.하지만 지금...윤구주는 손가락 하나로 십수 명의 절정고수를 멸살했다. 그것도 전혀 힘들이지 않고 말이다. 이 광경은 미동한 조차도 자신의 눈을 의심하게 만들었다.“동한아, 당장 물러나라!”갑자기 긴박한 목소리가 마동한의 몸에서 터져 나왔다.그 목소리에는 두려움과 공포가 가득 차 있었다.“무슨 일입니까, 스승님?”그 목소리는 급히 말했다.“저자가 이미 이런 경지에 도달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내 말을 들어라! 당장 퇴각해! 그렇지 않으면,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 마씨 가문은 전멸할 것이야!”“네? 스승님, 그 정도로 심각할까요? 아무리 그래도 저 녀석은 혼자뿐이고 우리 쪽엔 절정 고수가 수십 명이나 있지 않습니까?”마동한은 마음속으로 여전히 불복했다.“바보 같은 놈! 내가 아까 저놈에게서 어떤 기운을 느꼈는지 아느냐?”몸 안에서 음산한 목소리가 말했다.“뭔데요?”마동한이 물었다.“선... 선기다!”선기?이 단어를 듣는 순간, 마동한의 동공이 한순간에 크게 열렸다.“그렇다! 천여 년 전, 우리 마씨 가문의 한 조상이 그 경지에 도달했었지! 이런 경지는 세간에서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고 전해지고
오늘 윤구주는 이미 말했었다. 이 자리에 있는 자들 중 감히 손을 쓰는 자는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특히 마동한 이 마씨 가문의 세자는 처음부터 제자백가를 소집하고 문 씨 세가에 붙었으니 윤구주가 그를 가만둘 리 없었다.“끝났다! 들켜버렸어!”마동한의 몸속에서 그 음산한 목소리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스승님,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요?”겁에 질린 마동한이 급하게 스승에게 물었다.그의 몸속에 숨어 있던 늙은 목소리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지금 유일한 희망은 모든 함께 손을 써서, 네 목숨을 바꾸는 것뿐이야...”이 말을 듣자 마동한은 완전히 절망에 빠졌다.모든 절정고수가 나서야 겨우 자신의 목숨 하나를 구할 수 있다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쿵!마동한이 도망갈 길이 없게 된 후, 하늘에 있던 윤구주는 갑자기 손가락으로 사방을 가리켰다.“진역, 열려라!”쿵, 쿵, 쿵, 쿵!네 개의 결계 장벽이 곧바로 노룡산 전쟁터 전체를 막아버렸다.이것은 윤구주의 진역 결계였다.금빛으로 빛나는 결계는 현장에 있던 모든 세가의 잔당고수들과 마씨 가문의 모든 자를 완전히 가둬두었다.결계 주위에서 솟구쳐오르는 파멸의 기운이 모든 세가 잔당들을 짓누르자 결계에 갇힌 모든 세가 절정고수들은 하나같이 떨기 시작했다.“빌어먹을! 진역 결계로 우리 모두를 가두었어.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 거지?”윤구주가 진역 결계를 펼치자 한 세가의 잔당 절정고수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설마 우리를 학살하려는 건가...”다른 절정 고수가 두려움에 떨며 입을 열었다.학살이라는 두 글자가 언급되자 살아남은 삼십여 명의 세가 잔당 절정고수들은 하나같이 절망에 빠졌다.“다들 겁낼 것 없어. 우린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저놈 하나 당해내지 못할까!”이때 한쪽 팔이 잘린 채 씨 노파가 사기를 북돋우며 말했다.말을 마친 후 그녀는 음산한 눈빛으로 하늘에 있는 윤구주를 바라보았다.“윤구주! 네가 아무리 강해도 오늘 우리 모두를 죽이지는 못할 것이다!”말하면서
하지만 한 계단씩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난관들도 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만약 윤구주와 맞서야 하는 적의 입장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차분히 계단을 오르는 윤구주는 마치 깊은 심연 그 자체였을 것이다.그의 강력함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가 올라올수록 위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압박감에 휩싸였다.검종의 검객들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윤구주는 이미 사백 계단까지 올라와 있었다.하지만 사백 계단쯤으로는 아무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화진의 또 다른 황자 구주왕의 후계자였으니까.윤구주가 오백 계단을 밟는 순간 모든 이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응시했다.눈길을 떼지 못한 채 그의 오름을 지켜보았다.오백일…… 오백이십! 오백오십! 오백구십구!“마침내 구구관에 도달했다.”“칠구는 수겁이요 구구는 극히 넘기기 어려운데.”진정한 고수들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과연 윤구주가 이 한 걸음을 쉽게 넘을 수 있을지 모두가 궁금해했다.윤구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그가 본 것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마치 화진의 온 세상 같았다.한눈에 화진의 대지와 산천이 모두 담겼다.눈앞에 펼쳐진 화진의 아름다운 대지는 숨 막히는 광경이었다.하지만 동시에 이 끝없는 강산 곳곳에 묻혀 있는 수많은 해골도 함께 보였고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비장함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윤구주의 내면을 감지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이 곧바로 그의 곁에 나타났다.“구주야 화진의 산천을 잘 살펴봐! 천하의 용맥은 모두 화진에서 비롯되었고 이 한 획 한 획은 백성의 척추와 같다! 눈에 비치는 물의 맑고 흐림은 중요하지 않아. 지나치게 눈 부신 빛은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너무 어두운 밤은 희망을 앗아가기 마련이지.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화진의 이 산천은 영원히 굳건히 서 있을 거야. 왜냐하면 푸른 산마다 묻혀 있는 충신의 뼈와 넋들이 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까.”서요산 검종 종주는 윤구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 온
진인들은 말했다. 임정설이 만약 집념을 내려놓는다면 육백 계단까지도 오를 수 있을 거라고.장인 대진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집념을 놓는다면 더 이상 화진의 국주가 아니지. 바로 이런 끈질긴 의지가 있기에 그분이 화진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다른 진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운명이란 그런 법이다. 아마도 집념을 놓았다면 임정설은 오백 계단조차 오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이때 임정설은 아직 남아 있는 절반의 계단을 바라보며 씁쓸히 미소 지었다. “어쩌면 여기서 멈춰야겠구나.”임정설은 다시 뒤를 돌아 윤구주를 바라보았다. 그가 자기 자식이자 동료처럼 여기는 윤구주가 과연 몇 계단을 오를지 궁금했다.깊은 생각에 잠긴 임정설이 곧바로 말을 꺼냈다.“구주야 이제 네가 올라서 봐! 화진의 구주왕다운 실력을 보여줘! 적어도 나보다는 못하면 안 되지 않겠냐?”아래에 서 있던 윤구주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원래 그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국주의 바람이라면 흔쾌히 도전할 마음이었다.“명 받들겠습니다!” 윤구주는 말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계단을 밟아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기 시작했다.구주왕이 등천로에 도전했다는 소식에 서요산 검종 전체가 술렁였다.검객은 물론이고 잡일을 돕는 제자들까지 모두 금정에 모여들어 그의 모습을 보고자 했다.심지어 하늘 위 어둑한 구름 사이에서도 한 쌍의 법안이 열렸다. 바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 환영이었다.임정설이 먼저 정상에 올랐고 장인 대진인을 포함한 일곱 진인과 서요산의 모든 제자들은 화진의 황자를 향해 몸을 숙여 예를 갖추었다.“모두 일어나시오. 그대들이 없었다면 화진은 이미 혼란 속에 빠졌을 것이오. 진정 국가와 화진을 위해 헌신한 것은 바로 그대들입니다.” 임정설은 화진의 모든 백성을 대표할 순 없지만 왕실을 대표하여 임 씨 일족의 지도자로서 서요산 검종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국주께서 과찬입니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방식대로 묵묵히 힘썼을 뿐입니다. 화진의 백
일곱 진인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들은 국주가 이미 등황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사백 계단은 쉽게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과연 그들의 예상대로 임정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오르며 오백 계단을 가볍게 밟아 올랐다. “오백 계단을 밟으면 등황의 경지에 오를 수 있습니다. 우리 일곱 진인 중에서도 오직 장인 대진인께서만 과거에 오백 계단에 오르셨고, 현재 서요산에 살아계신 유일한 오백 계단 수련자이십니다. ” 한 진인이 감탄하며 말했다.이 말을 듣자 옆에 있던 백호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선임 도사님 그러면 그 도사님도 황자란 말씀입니까? ”“하하! 우리 서요산에서는 외부의 그런 칭호를 쓰지 않아요. 우리 사이에서는 그를 반신이라고 부릅니다.” 진인들이 웃으며 말했다.청해가 옆에서 덧붙였다. “서요산 검종에서 말하는 반선이 황자를 뜻하는 거야. 근데 그 서요산 반선 진짜 어마어마하게 강한 인물이거든. 예전에 곤륜 구역에서 귀한 영약 찾으러 들어왔다가 우리 빙신전 전주랑 빙황 두 명이 같이 상대했는데도 둘 다 거의 죽을 뻔했어. 결국 아사 신전한테까지 도움 요청해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지.”“뭐라고?”백호는 놀라서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진짜 그렇게 강한지 의문이 들었다.일곱 진인 중 가장 나이 많은 그 진인은 백호의 단순한 반응에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그가 바로 그 반선이었다. 다만 백호가 워낙 세상 물정에 둔감하여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놀라기만 하고 있었다.그사이 임정설은 이미 오백오십 계단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이 단계에 이르자 임정설도 거의 극한에 도달했다.“역시 직접 올라와 봐야 이 압력을 제대로 실감하는구나! 오백사십 계단까진 무리 없었는데 오백오십 계단에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구나.”지금 임정설을 압박하는 것은 단순한 술도의 압력만이 아니었다.과거의 온갖 기억들이 마장이 되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일곱 진인은 모두 임정설의 기운이 혼란스러워진 것을 느꼈다.“장인 사형, 국주님께서 심마에 걸리셨군
청해의 눈길이 자주색 도포를 입은 진인에게로 향했다.서요산검종에서 종주를 제외한 나머지 일곱 명의 진인이 가장 높은 수련을 가지고 있으며 평소 종문 내의 모든 일은 이들 일곱 명이 책임지고 있다.기세는 마치 대강의 파도가 넘실대듯 깊고 끝이 보이지 않는 산과 숲처럼 무한히 이어져 있었다. 그의 수련은 깊이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서요산 7대 진인의 수련이 극 신급 절정이라고 들었는데 지금 보니 그 말이 너무 가볍게 들리네요. 귀하의 수련은 적어도 극 신급 절정 후반에 다다랐군요.”청해는 세 명의 진인에게 경의를 표하며 몸을 굽혔다.“서요산의 전통은 천 년을 자랑하며 그 깊이는 변함없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반면 곤륜 구역은 스스로 신을 자처한 이후로 계속해서 내분을 일으켰습니다. 수련을 통해 세상을 떠난 후 도를 깨닫는다는 말처럼 곤륜 구역은 천하의 영기와 천물을 흡수했지만 제 생각에는 도를 얻지 못한 곳입니다. 지금 당신이 화진에게 올바른 수를 두는 것은 맞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극 신급 절정 후반도 절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한 진인이 답례하며 말했다.그때 몇몇 사람들은 서요산 검객들의 함성에 이끌려 사방을 살폈다. 백호가 사백 계단을 올라갔다는 소식이었다.“대단한데요. 서요산이 전성기였을 때도 사백 계단을 오른 이는 드물었어요. 우리 몇몇 진인들도 입문 시에 사백 계단을 넘은 적은 없었죠.”몇몇 진인들이 칭찬했다.이는 백호가 미래에 매우 큰 가능성을 지녔음을 의미했고 적어도 극 진경 후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극 진경 후반은 곤륜 구역에서 신전의 전주가 될 수 있는 실력이다.지금 사백 계단에 오른 백호는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 완전히 의지로 버티며 강력한 정신력으로 계속해서 오르고 있었다.그러나 아무리 강한 운명을 지녔다 해도 천지의 이치를 막을 수는 없다.사백오십 계단에 도달했을 때 백호는 결국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의식을 잃은 것은 시험이 끝났다는 신호였고 백호는 곧 깨어났다.“겨우 사백오십 계단이라니
서요산 검객들이 모두 그 무인의 정체를 궁금해하자 진인도 더 이상 뜸 들이지 않고 말했다.“저분은 구주왕 휘하의 화진 군신이자 국방부 대장 백호 장군이시다.”검객들은 모두 입이 벌어진 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군신의 명성은 당연히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보호하는 영웅이었으니까.“정말 구주왕 휘하의 군신이라니!”“역시 저런 굳센 의지가 그냥 나온 게 아니었어! 수많은 전장을 누빈 명장다운 모습이다!” 서요산 검객들은 백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현재 백호는 이미 삼백이십 계단을 돌파한 상태였다. 백호가 혼자 주목을 독차지하는 걸 본 청해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고 계단에 발을 내디뎠다.처음 백 계단은 청해도 육신의 힘으로 버텼다. 하지만 백 계단을 넘자 육체만으로는 견디기 어려워졌다. 그는 술법으로 대응하려 했지만 평소 쓰던 빙신전의 신술이 계단 위 술법에는 통하지 않았다.“역시 화진의 서요산 검종은 보통이 아니구나. 이 등천로에선 일반 술법이 먹히지 않으니 천지 영기에 대한 깨달음으로 맞설 수밖에 없겠어.” 청해는 몸을 감싸고 있던 현빙을 거두고 오로지 자신의 속성 영기로만 버티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막상 올라 보니 이 등천로가 얼마나 어려운지 제대로 실감했다. 이백 계단쯤 오르자 벌써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계단마다 한계를 시험하는 느낌이었다. 올려다보니 백호는 여전히 계단 위로 나아가고 있었다. 청해도 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서요산 검객들도 청해의 수준을 알아보고 속삭였다. “저 이역인은 정말 대단한 내력의 소유자다! 기운이 이미 진인 급에 가까워! 극 신급 절정의 수련자임이 분명해!”이에 대해 진인은 신비롭게 꾸미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 “저자는 곤륜 구역 빙신전의 부 전주 청해다. 경지가 매우 높지. 지금 빙신전은 우리 화진에 귀속되었고 청해 역시 구주왕 휘하의 부하가 되었다. 얼마 전 서울 방어전에서 청현과 목숨까지 걸고 사투를 벌인 끝에 죽을 고비를 넘겼으
백호는 아직도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어느덧 이백오십 계단까지 올라왔다. 이 단계부터는 실체화된 술법이 몸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계단 하나를 오를 때마다 바람, 불 번개와 같은 속성의 영기가 점점 강해졌다. 여기서부터는 육신 횡련의 수련자는 강력한 체질로 버티고 술도 재능이 뛰어난 수련자는 천지 영기를 다루는 능력으로 버텨야 했다. 한마디로 각자의 능력에 따라 갈리는 구간이었다. 어느 한 분야라도 특출나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백호는 술도에는 재능이 없었기 때문에 오로지 강인한 육체 하나로 견디고 있었다.웅!성수의 피가 진동하며 백호의 몸을 지탱했다. 각종 속성의 영기가 몰아쳤지만 백호는 성수혈의 힘을 빌려 억지로 앞으로 나아갔다.수련자에게 있어서 성수의 혈맥이나 법보 등은 모두 신체 외적인 재능으로 간주하지만 그렇다고 이것들이 꼼수나 편법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천 가지 변화와 만 가지 신통력이 있어도 결국 만법은 한 가지로 귀결된다. 법기든 혈맥이든 이를 감당하는 것은 결국 본인의 몫이다. 천지 영기를 이용한 술법도 결국은 그 힘을 감당할 수 있어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며 감당하지 못하면 반드시 반작용을 맞게 된다. 따라서 수련의 길에는 애초에 편법이란 존재하지 않았다.성수 혈맥 같은 천지의 보물은 보통 사람이 함부로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윤구주의 도움을 받았다 하더라도 결국 이를 감당하는 건 백호 자신이었다. 성수 혈맥의 힘을 온전히 감당하며 백호는 결국 삼백 계단까지 올라섰다.계단의 꼭대기 근처에는 이미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이 여럿 서 있었다. 서요산 검종은 근대에 들어 삼백 계단을 넘는 인재가 드물었다. 최근 백 년 동안 삼백 계단을 넘은 사람이 고작 열 명 남짓이었고 그중 대부분이 삼백여 계단에서 멈췄다. 그런데 지금 백호는 삼백이십 계단까지 올라선 것이다. 이 정도면 서요산 검종 전체가 떠들썩해질 만한 성과였다.이런 제자가 나타난다면 종문 전체가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래서 서요산의 진인들까
“한 사람의 품성을 제대로 살피지도 않고 마구잡이로 그렇게 많은 수련자를 키워낸다면 결국 천하의 마인을 직접 만들어 내는 꼴이 아니겠어?”청현이 바로 그 실패한 예다. 서요산 검종 종주가 청현의 천재성을 아까워한 나머지 그의 인성을 무시하고 양성한 끝에 결국 역도를 만들어 낸 것이다.“그럼 저하 서요산에 입문한 무술 무인들은 평균적으로 몇 계단까지 오르는지 아십니까?” 백호가 호기심에 물었다. 윤구주는 잠시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무술 무인의 정확한 데이터는 모르지만 검종 종주와 잡담할 때 들어보니 검종 제자들의 수준이 갈수록 떨어져서 천 년 전만 해도 평균 삼백 계단 정도였는데 요즘엔 백 계단도 못 오른다고 하더구나. 가끔 삼백 계단을 오르는 자라도 나오면 검종 전체가 몇 년은 떠들썩할 정도라고 했어.”“구백구십구 계단까지 있는 시험인데 천 년 전 전성기에도 겨우 삼백 계단이요?” 백호는 입술을 삐죽이며 서요산 검종의 수준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때 한 번 도전해 볼 생각이야?” 윤구주는 흥미롭게 백호를 바라보았다. 백호는 당장이라도 도전하고 싶은 마음에 윤구주의 허락을 구한 뒤 바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한 계단 두 계단... 오십 계단까지는 아무 어려움도 없었다. 백호는 오십 계단에 서서 사람들을 향해 서요산 검종이 별것 아니라며 놀려댔다. 하지만 육십 계단쯤 올랐을 때 처음으로 압력을 느꼈다. 마치 몸 위에 작은 차 한 대가 올라탄 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백호에게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백 계단에 도달하자 압력이 갑자기 커졌다. 등에 작은 승용차 대신 소형 트럭이 올라탄 듯한 느낌이었지만 아직 백호의 한계에도 가지 못했다.“근래 사람들의 평균이 백 계단도 못 넘는 이유가 이제야 이해가 되네요. 예전의 무인 횡련은 황제도 오를 수 있었지만 요즘 무인 횡련은 죽어라 노력해도 소형 트럭 하나 못 버티는 수준이니 말입니다.”백호는 농담을 던지며 계속해서 계단을 올라
전에 임정설은 구오 지존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나라를 위해 힘쓰며 수모를 견뎌내고 살아남으려 했다.하지만 이제 황제가 된 그는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다.그 탓에 이번 관문 앞에서 그는 망설였다.살아 있는 자만이 통과할 수 있는 관문이었다.죽음을 마음에 품은 자는 절대로 넘어설 수 없는 관문이었다.그 자리에 있던 사람 중 청해만이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생각했다.‘황제가 되면 곤륜 구역에서 최고 경지에 도달하는 건데. 기뻐해도 모자랄 판에 왜 죽음을 택하려는 거지?’“저하, 국주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듯합니다. 저하도 사랑하던 이에게 배신당했어도 결국 극복해 나갔잖습니까.”백호도 이해하지 못했다.그는 여전히 국주보다는 왕이 더 낫다고 여겼다.“네가 뭘 안다고 그런 말을 함부로 내뱉느냐.” 윤구주가 단호하게 말했다.백호는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그는 어리숙하고 말솜씨도 없기에 생각나는 대로 말했을 뿐이다.“내가 문아름에게 배신당한 건 억울한 일이지만 나는 그녀에게 잘못한 게 없다. 오히려 그녀가 날 배신한 거다. 하지만 국주는 그 반대였지. 그가 그녀를 저버린 거야. 정이 깊으면 오래가지 못하고 지혜가 지나치면 오히려 상처를 입는다. 이 세상에서 가장 쓰라린 후회는 가진 뒤 잃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생사를 달리하게 되는 것이다.” 윤구주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만약 소채은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자신도 제정신이 아닐 거라고 느꼈다.“그럼 복수하면 되지 않나요?” 백호가 어리둥절하게 물었다.이때 청해가 눈치를 채고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상대가 너무 강해서 못 이기는 거지. 황제에 오르기 전까진 제대로 맞붙을 힘도 안 돼. 오르고 나서도 이길 수 있을지 장담 못 하고.”윤구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딱 그 말이 맞았다.“그럼 우리가 국주님 대신 복수해 드리면 되잖아요? 국주님은 제 왕이기도 하지만 제 윗사람이기도 하잖아요.”백호가 고개를 갸웃했다.“하하! 만약 세상 사람들이 다 너처럼 솔직하다면 이런
인간이 나쁜 짓을 거듭해 양심을 잃으면 부끄러움도 사라진다. 예전 같으면 아무렇지 않았을 테지만, 지금은 윤구주를 따라 명예심이 생기면서 죄책감도 느끼게 된 청해에게 이 원한의 전법은 고통스럽기만 했다. 물론 곤륜역 한 신전의 부전주로서 정신이 붕괴할 정도는 아니었다.네 사람은 이 원한의 전법도 가볍게 넘어섰다.이때 전법에 관심을 가졌던 임정설이 무언가를 눈치챘다.“구주야, 서요산의 전법은 우연히 들어온 자를 쫓아내는 동시에 수련자의 의지를 시험하는 것이었어. 서요산은 의지력이 확고한 자들만 끌어들인다는 것을 미리 들어 알고 있다. 이게 바로 서요산이 제자를 선발하는 방식인가 보구나.”“그렇습니다. 매년 화진 무도계 사람들이 서요산에 찾아오지만 성공한 자는 극히 드뭅니다. 실패자들 중 십중팔구는 산기슭에서 죽음을 맞이하죠. 어떤 문턱은 넘지 않는 것이 복이 될 때가 있습니다. 모르는 것이 약이죠. 현실을 알고도 바꾸지 못하는 것이 가장 괴로운 법이니까요. 이 관문을 넘는다고 해도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면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입니다.”윤구주의 말이 끝나자 세 번째 전법이 나타났다.첫 번째와 두 번째 전법은 이곳에 들어온 이들을 돌려보내려고 만든 것이지만 세 번째 전법은 달랐다. 이 전법은 살기로 가득 찬 죽음의 전법이었다.평범한 사람들은 여기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이곳까지 온 자들도 앞길의 위험을 보고 함부로 들어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눈 앞에 펼쳐진 죽음의 길을 보고도 들어가는 자는 스스로 죽음을 원하는 자라서 그런 자들에게 죽음을 내리는 것은 오히려 덕을 쌓는 일이었다.하지만 무도로 도를 깨우치려는 수련자라면 이 관문을 넘기 위해 반드시 목숨을 걸어야 한다. 버텨내야만 수도의 길에 들 수 있고 실패하면 그 후과를 받아들여야 한다.전법 안은 살기로 가득했다. 생기와 영기가 세상을 이롭게 하지 못할지라도 살기와 죽음의 기운은 목숨을 앗아갈 것이 분명했다.진법 내부에는 수많은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무도계에 이름을 날렸던 강자들의 유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