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전 튕겨 나갔던 자운각의 검은 머리 초극 절정이 화내며 말했다.“원한이 없다고? 너희들이 내 아들을 죽이려는데 원한이 없을 수 없지.”윤신우는 차갑게 웃었다.“뭐? 네 아들이라고?”이 말을 듣는 순간, 자운각의 검은 머리 초극 절정은 깜짝 놀랐다.“윤구주가 네 아들이란 말이냐? 구주왕이?”이 말이 나왔을 때 자운각뿐만 아니라 현문의 사람들조차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이놈아, 이제 알겠니?”불같은 성질의 윤창현이 내뱉은 말이었다.천하제일의 구주왕이 윤씨 일가 윤신우의 아들이란 사실을 몰랐던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6년 전, 곤륜에서 왕으로 봉해졌을 때 윤구주는 윤씨 일가와 관계를 끊기 위해 자신이 윤씨 일가 출신이란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그가 윤씨 일가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함구한 탓에 사람들은 윤구주가 고아라고 생각했다.이 때문에 이윤구주가 화진 최고의 일가인 윤씨 일가 핏줄이란 사실을 사람들은 모를 수밖에 없었다.“신우야, 내가 오늘 이 자리에 나온 것은 구주왕을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무도 3대 서열에 대한 정의를 되찾고 싶어서야. 네 아들이 문벌과 세가를 학살했다는 사실을 세상 사람들이 다 알아.”자운각 검은 머리 절정이 서둘러 말했다.윤신우가 지난 30년 동안 너무 유명해져 있어서 자운각의 사람들은 감히 그를 건드릴 엄두를 내지 못했다.자운각 정산의 대장로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는 한 윤신우와 맞서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나 다름없었다.“정의라.”윤신우가 웃으며 말했다.“너희 두 종문이 내 아들을 죽이려 한 것도 모자라 이제 겨우 열몇 살에 불과한 아이까지도 죽이려 하는데 무슨 얼어 죽을 정의란 말이냐?”윤신우의 목소리는 크지는 않았지만, 그의 말에 자운각의 초극 절정은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말 그대로 자운각 사람들은 뻔뻔하기 짝이 없었다.꼬맹이를 죽이려고 초극 절정을 한꺼번에 4명이나 동원했으니, 내로남불이나 다름없었다.“윤 주인님, 조금 전에는 저희가 실례를 범
마왕의 분노를 목격한 자운각의 사람들은 전부 넋이 나갔다.오악 수준의 초극 절정 강자는 윤신우의 앞에서 맥을 추지 못했다.윤신우의 용맹한 모습을 본 천현수는 침을 꿀꺽 삼키면서 말했다.“저하의 아버님은 저하와 참 비슷하신 것 같아요.”민규현은 웃으며 말했다.“당연하지. 부전자전이라는 말이 있잖아.”“그렇네요.”윤신우는 자운각의 초극 절정 강자를 단번에 쓰러뜨린 뒤 기세등등하게 자운각 쪽으로 걸어갔다.“젠장, 지난 30년간 조용히 지냈더니 내가 아주 만만한 줄 아나 봐? 자, 이번에는 또 누가 설치려고 할지 궁금하네!”윤신우가 실력을 보여 주자 자운각의 제자들은 전부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그중 절정 강자인 노인 한 명은 더는 물러날 곳이 없는 것 같자 참지 못하고 말했다.“윤신우 씨, 우리 종문을 향해 선전 포고를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그러시는 건가요?”그 노인은 기운이 엄청 강했다.그녀가 고함을 지르자 무지막지하게 사악한 살기가 느껴졌다.그러나 그녀가 입을 열자마자 윤신우가 손을 들어 그 노인의 뺨을 가격했다.퍽!안타깝게도 그 노인은 윤신우의 일격을 막을 수가 없었다.윤신우의 따귀 한 번에 노인은 머리가 박살 나서 즉사했다.“감히 날 협박하는 거야? 난 30년 전 정산의 조사를 1대1로 상대했었어. 그런데 그냥 나이만 많은 당신이 감히 내 앞에서 큰소리를 치는 거야?”그 말 한마디에 자운각의 사람들은 전부 얼이 빠졌다.윤신우는 30년 전 정산의 조사를 1대1로 상대했다고 말했다.솔직히 믿기 어려웠다.윤신우는 과연 인간이 맞을까?종문의 조사들은 다들 괴물과 다름없었다. 그런데 윤신우는 30년 전 정산의 조사를 1대1로 상대했다고 말했다.윤신우가 패기 넘치게 등장한 후 자운각과 현문의 사람들은 모두 덜컥 겁이 났다.다들 감히 앞으로 나설 수가 없었다.오악 수준의 강자들도 윤신우를 상대하지 못하는데 과연 누가 그의 상대가 될까?“다들 겁을 먹어서 주눅이 든 거야? 왜 나서서 말하는 사람이 없지?”윤신우는 기가 죽
“도자인지 뭔지 하는 넌? 왜? 안 꿇을 거야?”윤신우의 시선이 별안간 현문의 도자 손형재에게로 향했다.남궁서준의 검에 뺨을 베인 손형재는 피가 흐르는 뺨을 부여잡은 채로 얼어붙었다.결국 그는 분노를 애써 억누르며 구진철처럼 내키지 않는 얼굴로 윤신우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너 같은 쓰레기가 감히 굴복하지 않을 수 있겠어? 창현진인이 아니었다면 난 오늘 널 반드시 죽였을 거야. 퉤, 도자는 무슨. 창현진인의 눈에 문제가 생겼나 봐. 치료를 좀 받으라고 해야겠어.”윤신우는 욕지거리를 하면서 고개를 돌려 자운각 쪽을 바라보았다.“당신들은?”자운각은 이미 절정 강자 여러 명을 잃었다. 현문까지 순순히 무릎을 꿇었으니 자운각도 어리석은 선택을 할 수는 없었다.그들은 생각할 틈도 없이 다들 윤신우의 앞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남궁서준의 공격 때문에 중상을 입은 자운각의 현지욱도 마찬가지였다.현지욱이 조금 전보다 훨씬 얌전해지자 윤신우는 웃으며 말했다.“현문의 그 같잖은 도자보다는 낫네.”현지욱은 칭찬을 받게 되자 웃어 보였다. 그러나 감히 섣불리 입을 열 수는 없었다.“좋아. 오늘은 종문 조사들의 체면을 봐서 당신들을 더 이상 추궁하지 않겠어. 대신 똑똑히 들어. 만약 다음번에 또 이런 일이 생긴다면 그때는 모조리 죽여버릴 거야. 도자든, 현지욱이든, 영재든 상관없어. 한 명도 가만두지 않을 줄 알아. 만약 불만이 있다면 당신들 조사들에게 날 찾아오라고 해.”윤신우는 패기 넘치게 말한 뒤 손을 흔들었다.“다들 꺼져.”윤신우가 그렇게 말하자 현문과 자운각 사람들은 곧바로 도망쳤다.다들 그곳에 더는 있고 싶지 않았다.마왕 윤신우의 심기를 거스를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들이 도망치려고 할 때 갑자기 윤창현의 입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세가의 개자식들, 감히 도망치려고 해? 다들 거기 서!”윤창현은 분노에 찬 고함을 지르더니 한 마리 매가 되어 현문을 따라왔던 6명의 세가 잔당에게로 날아갔다.그 6명은 문씨 일가의 편이 된 뒤로
“하지만 저 자식들은 구주를 죽이려고 하지 않았습니까?”윤창현은 여전히 납득하지 못했다.“둘째 형님, 큰 형님 말대로 하세요. 정말로 종문과 싸우게 된다면 우리 화진의 무도는 크게 혼란스러워질 겁니다.”이때 윤정석이 걸어 나오면서 말했다.“흥, 내가 그런 걸 신경이나 쓸 것 같아? 뭐가 됐든 난 내 조카 구주가 괴롭힘당하는 걸 절대 용납할 수 없어. 구주를 괴롭히는 놈들은 내가 모조리 죽일 거야!”윤창현은 거칠게 말했다.윤창현이 불같이 화를 내는 모습에 윤정석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윤신우가 도착한 뒤 한차례 대전이 종식되었다.이때 재이, 용민, 철영이 빠르게 윤신우의 앞으로 걸어가서 정중하게 그를 향해 예를 갖추었다.“주인님을 뵙습니다! 저희는 작은 주인님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벌을 내려주십시오!”윤신우는 세 사람을 힐끗 보고 말했다.“이 일은 너희 탓이 아니야. 그러니 다들 일어나.”세 사람은 반성하듯이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로 꼼짝하지 않았다.“일어나라고 했으니 그냥 일어나.”윤정석은 세 사람이 일어나려고 하지 않자 그들에게 다가가서 말했다.“감사합니다, 주인님!”세 사람은 그제야 서둘러 일어났다.세 사람이 일어난 뒤 윤신우는 걸음을 옮겨 남궁서준, 민규현, 천현수, 그리고 겁을 먹고 얼굴이 창백해진 은설아를 향해 다가갔다.그들은 윤신우가 다가오자 본능적으로 자세를 바로 하면서 존경 어린 눈빛을 해 보였다.그들 모두 윤신우가 윤구주의 친아버지라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너희들은 구주의 형제들이냐?”윤신우는 웃으며 말했다.“그렇습니다!”민규현의 대답에 윤신우는 흡족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좋아, 좋아. 구주에게 너희 같은 형제들이 있다니 참으로 다행이구나. 일단 너희는 날 따라 윤씨 일가로 돌아가자꾸나.”윤신우가 말했다.‘뭐라고? 윤씨 일가로 돌아가자고?’그 말에 다들 흠칫했다.결국 민규현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가주님의 은혜는 항상 마음에 새기고 있겠습니다. 하지만 저하께
“휴.”윤신우는 깊이 한숨을 쉰 뒤 입을 열었다.“연수야, 날 탓할 거니?”윤신우의 눈가 쪽으로 바람이 불어왔다. 그 순간 윤신우는 눈이 살짝 시큰거렸다....흑여산맥 근처의 한 마을.그 마을의 가장 호화로운 룸살롱 안에서 아주 듣기 싫은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그 목소리는 정태웅의 것이었다.화려한 불빛이 번쩍이는 룸 안, 짙은 화장을 한 여자들이 그곳에 앉아서 장난을 치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여자들 사이에는 얼굴이 빨갛고 온몸에서 술 냄새를 풍기는 스님 한 명이 있었다. 그는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의 흰 가슴에 안겨서 행복하게 양주를 마시고 있었다.그 스님은 정태웅과 함께 있던 공수이였다.공수이는 몰래 곤륜에서 빠져나온 뒤 완전히 향락에 빠졌다. 그는 술도 실컷 마시고, 고기도 원 없이 먹었으며 이젠 매일 예쁜 여자들을 만나려고 했다.그는 여자가 없는 날은 헛된 하루라고 말하기도 했다.“스님 오빠, 어젯밤 정말 대단하던데요? 제 친구들 모두 스님 오빠 때문에 아직도 침대 위에서 일어나질 못하고 있어요.”스님을 안고 있던 붉은 머리카락의 여자는 비록 나이가 좀 있는 듯했지만 아주 매력적이었다.공수이는 안목이 높은 편이었다.여자는 몸매가 아주 좋았다.그녀는 흰색 셔츠에 검은색 스타킹과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었는데 어른스럽고 관능적이었다.“그건 아주 당연한 일이에요. 난 오늘도 즐길 거예요.”스님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말아요. 오늘 밤에는 내가 어울려줄게요. 난 작은 야수 같은 당신을 정복할 거예요!”여자는 그렇게 말하면서 일부러 가슴을 내밀어 보였다.공수이는 술을 잠깐 마시더니 갑자기 마이크를 들고 노래를 부르는 정태웅을 향해 말했다.“태웅 형님, 구주 형님은 아직도 아무 소식이 없는 건가요?”“바보야! 흑여산맥 접경지대의 병사들이 그랬잖아. 저하께서는 이미 강성으로 돌아갔다고!”정태웅이 대답했다.“그렇군요!”공수이는 그제야 이마를 탁 치며 그 사실을 떠올렸다.사실 두 사람은 이미 흑여산맥으로
“태웅 형님, 무슨 상황이에요? 조금 전까지 즐겁게 술을 마시더니 왜 갑자기 가야 한다는 거예요?”공수이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물었다.“서울에 문제가 생겼어. 이 바보야! 우리는 지금 당장 돌아가야 해!”정태웅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뭐?’그 말을 들은 공수이는 순간 술이 깼다.“서울에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거예요?”공수이는 잠깐 생각한 뒤 물었다.“아까 우리 형님께서 전화가 왔어. 종문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고 형님 일행을 죽이려고 했다고 말이야.”정태웅은 주먹을 꽉 움켜쥐면서 화가 난 얼굴로 말했다.종문이라는 말에 공수이는 입을 비죽였다.“겨우 종문일 뿐이잖아요? 무서워할 것 없어요!”곤륜에서 몰래 빠져나온 공수이는 종문 따위 두렵지 않았다.그러나 정태웅은 달랐다.“수이야, 잊었어? 저하께서는 지금 서울에 계시지 않아. 지금 서울에는 우리 형님 일행만 있다고. 종문이 정말로 그들을 죽이려고 한다면 누가 막을 수 있겠어?”정태웅이 어두워진 표정으로 말했다.그 순간 공수이는 조금 깨달았다.정태웅의 말대로 윤구주는 지금 서울에 있지 않았고, 가장 강한 그도 서울에 없었다.서울에는 민규현, 천현수와 다른 몇 명의 사람들만 있을 뿐이었다.만약 종문에서 그들을 공격한다면 큰일이었다.“세상에! 구주 형님께서 서울에 계시지 않다는 걸 깜빡했어요!”공수이는 그렇게 말하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가자. 얼른 서울로 돌아가야 해.”공수이는 서둘러 여자들 틈 사이에서 빠져나와 출발 준비를 했다.“스님 오빠, 어디로 가는 거예요?”두 사람이 황급히 떠나려고 하자 그들의 뒤에 있던 룸살롱 아가씨들이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공수이는 고개를 돌리더니 다시 그들에게로 달려가서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의 뺨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난 중요한 일을 하러 가야 해요. 일을 다 마치면 다시 돌아올게요. 꼭 날 기억해야 해요!”공수이는 여자에게 입을 맞춘 뒤 서둘러 정태웅과 함께 룸살롱을 떠났다.밖으로 나온 뒤 공수이는
서울 황성.윤구주가 설국을 화진의 속국으로 만든 뒤로 황성은 아주 떠들썩했다.특히 여섯째 공주 이홍연은 매우 기쁘고 즐거웠다.이렇게 엄청난 공을 세운 사람이 다름 아닌 그녀가 좋아하는 윤구주였기 때문이다.그러나 현재 이홍연은 조금 답답했다.그녀는 윤구주가 얼른 돌아오기만을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설국 일을 처리하기 위해 화진을 떠난 지 일주일이 거의 다 돼가는데 윤구주는 여전히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화진의 여섯째 공주인 이홍연은 그 때문에 흑여산맥에 연락까지 해봤다. 그러나 흑여산맥 쪽에서는 윤구주가 일찌감치 떠났다고 전했다.이러한 상황에 이홍연은 속이 타들어 갔다.“이 자식 대체 또 어디로 간 거야? 설마 또 여자 꼬시러 간 건가?”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결국 이홍연은 아버지를 찾으러 가기로 마음먹었다.이내 이홍연은 금란 대전 밖에 도착하게 되었다.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저 멀리 우상 육도진과 내시 총관 한진모가 금란 대전 밖에 서 있는 게 보였다.예전이었다면 육도진과 한진모는 아버지와 함께 있었을 것이다.그런데 지금 두 사람은 밖에 있었고 그 때문에 이홍연은 조금 의문이 들었다.“육도진 우상! 두 분 여기서 뭐 하세요?”이홍연은 그들에게 다가가면서 물었다.육도진과 한진모는 이홍연이 다가오는 걸 보고 미소 띤 얼굴로 그녀를 향해 예를 갖추었다.“공주님을 뵙습니다!”“여기서 뭐 하고 계세요? 왜 아버지와 함께 안에 있지 않는 거예요?”이홍연이 물었다.“공주님, 국주님께서는 지금 귀한 손님과 얘기를 나누고 계십니다. 그래서 여기서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육도진이 말했다.귀한 손님?그 말에 이홍연은 조금 호기심이 생겼다.그녀는 아름다운 눈동자를 깜빡이면서 금란 대전 쪽을 바라보았다.“얼마나 귀한 손님이길래 두 분까지 밖으로 내보낸 거예요?”이홍연은 답답한 마음에 물었다.그녀의 앞에 있는 두 사람 중 한 명은 화진의 우상이고 다른 한 명은 황성의 최고 절정 강자였다.그런데 그녀의 아버지는 귀한 손님을 대
“그렇군요! 그러면 그 검선이라고 불리는 서요산의 선배가 정말로 그렇게 대단하신 분이지 제가 직접 봐야겠어요!”이홍연은 그렇게 말하면서 금란 대전 쪽으로 달려갔다.이홍연이 금란 대전으로 달려가던 순간, 갑자기 흰색 검광이 금란 대전 안에서 나왔다.그 흰색 빛은 아주 빠르게 움직였다.흰색 빛 위로 푸른색 옷을 입은 사람이 큰 검을 밟고 서서 금란 대전 안에서 밖으로 나왔다.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그 사람의 용모가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큰 검을 밟고 서 있던 그 사람은 눈 깜짝할 사이에 황성에서 사라졌다.“세상에! 검선이에요!”비검을 밟고 서 있는 사람을 본 아름다운 화진의 여섯째 공주 이홍연은 작은 입술을 크게 벌리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소리를 질렀다.육도진과 한진모는 고개를 들어 그 사람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육도진은 감탄하며 말했다.“역시 서요산 검종 출신답네요!”바로 이때 금란 대전 안에서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육도진 우상, 안으로 들어와.”그것은 화진 국주의 우렁찬 목소리였다.그 목소리를 들은 육도진은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네, 알겠습니다.”이내 육도진과 한진모, 이홍연이 금란 대전 안으로 들어갔다.아주 호화로운 왕좌 위에 국주가 앉아 있었다.“아버지!”이홍연은 안으로 달려 들어간 뒤 화진의 국주 앞에 섰다.“넌 여긴 웬일이냐?”국주는 자신이 가장 아끼는 딸을 보이 갑자기 찾아오자 참지 못하고 물었다.이홍연은 입을 비죽이며 말했다.“아버지를 찾아왔죠! 조금 전 육도진 우상의 말씀을 들어보니까 서요산 검종 출신의 손님을 접견하셨다면서요? 그게 정말이에요?”국주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그래. 조금 전에 만났었단다.”“세상에! 아버지, 얼른 말씀해 보세요. 그 검선은 어떻게 생겼나요? 정말 소문처럼 못 하는 것이 없을 정도로 아주 대단한가요?”이홍연은 궁금한 듯 말했다.국주는 호탕하게 웃었다.“누가 너에게 그들이 못 하는 게 없다고 한 거냐?”“네? 다들 그렇게 말하던데요. 그리고
하지만 한 계단씩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난관들도 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만약 윤구주와 맞서야 하는 적의 입장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차분히 계단을 오르는 윤구주는 마치 깊은 심연 그 자체였을 것이다.그의 강력함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가 올라올수록 위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압박감에 휩싸였다.검종의 검객들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윤구주는 이미 사백 계단까지 올라와 있었다.하지만 사백 계단쯤으로는 아무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화진의 또 다른 황자 구주왕의 후계자였으니까.윤구주가 오백 계단을 밟는 순간 모든 이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응시했다.눈길을 떼지 못한 채 그의 오름을 지켜보았다.오백일…… 오백이십! 오백오십! 오백구십구!“마침내 구구관에 도달했다.”“칠구는 수겁이요 구구는 극히 넘기기 어려운데.”진정한 고수들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과연 윤구주가 이 한 걸음을 쉽게 넘을 수 있을지 모두가 궁금해했다.윤구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그가 본 것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마치 화진의 온 세상 같았다.한눈에 화진의 대지와 산천이 모두 담겼다.눈앞에 펼쳐진 화진의 아름다운 대지는 숨 막히는 광경이었다.하지만 동시에 이 끝없는 강산 곳곳에 묻혀 있는 수많은 해골도 함께 보였고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비장함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윤구주의 내면을 감지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이 곧바로 그의 곁에 나타났다.“구주야 화진의 산천을 잘 살펴봐! 천하의 용맥은 모두 화진에서 비롯되었고 이 한 획 한 획은 백성의 척추와 같다! 눈에 비치는 물의 맑고 흐림은 중요하지 않아. 지나치게 눈 부신 빛은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너무 어두운 밤은 희망을 앗아가기 마련이지.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화진의 이 산천은 영원히 굳건히 서 있을 거야. 왜냐하면 푸른 산마다 묻혀 있는 충신의 뼈와 넋들이 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까.”서요산 검종 종주는 윤구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 온
진인들은 말했다. 임정설이 만약 집념을 내려놓는다면 육백 계단까지도 오를 수 있을 거라고.장인 대진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집념을 놓는다면 더 이상 화진의 국주가 아니지. 바로 이런 끈질긴 의지가 있기에 그분이 화진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다른 진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운명이란 그런 법이다. 아마도 집념을 놓았다면 임정설은 오백 계단조차 오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이때 임정설은 아직 남아 있는 절반의 계단을 바라보며 씁쓸히 미소 지었다. “어쩌면 여기서 멈춰야겠구나.”임정설은 다시 뒤를 돌아 윤구주를 바라보았다. 그가 자기 자식이자 동료처럼 여기는 윤구주가 과연 몇 계단을 오를지 궁금했다.깊은 생각에 잠긴 임정설이 곧바로 말을 꺼냈다.“구주야 이제 네가 올라서 봐! 화진의 구주왕다운 실력을 보여줘! 적어도 나보다는 못하면 안 되지 않겠냐?”아래에 서 있던 윤구주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원래 그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국주의 바람이라면 흔쾌히 도전할 마음이었다.“명 받들겠습니다!” 윤구주는 말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계단을 밟아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기 시작했다.구주왕이 등천로에 도전했다는 소식에 서요산 검종 전체가 술렁였다.검객은 물론이고 잡일을 돕는 제자들까지 모두 금정에 모여들어 그의 모습을 보고자 했다.심지어 하늘 위 어둑한 구름 사이에서도 한 쌍의 법안이 열렸다. 바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 환영이었다.임정설이 먼저 정상에 올랐고 장인 대진인을 포함한 일곱 진인과 서요산의 모든 제자들은 화진의 황자를 향해 몸을 숙여 예를 갖추었다.“모두 일어나시오. 그대들이 없었다면 화진은 이미 혼란 속에 빠졌을 것이오. 진정 국가와 화진을 위해 헌신한 것은 바로 그대들입니다.” 임정설은 화진의 모든 백성을 대표할 순 없지만 왕실을 대표하여 임 씨 일족의 지도자로서 서요산 검종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국주께서 과찬입니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방식대로 묵묵히 힘썼을 뿐입니다. 화진의 백
일곱 진인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들은 국주가 이미 등황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사백 계단은 쉽게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과연 그들의 예상대로 임정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오르며 오백 계단을 가볍게 밟아 올랐다. “오백 계단을 밟으면 등황의 경지에 오를 수 있습니다. 우리 일곱 진인 중에서도 오직 장인 대진인께서만 과거에 오백 계단에 오르셨고, 현재 서요산에 살아계신 유일한 오백 계단 수련자이십니다. ” 한 진인이 감탄하며 말했다.이 말을 듣자 옆에 있던 백호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선임 도사님 그러면 그 도사님도 황자란 말씀입니까? ”“하하! 우리 서요산에서는 외부의 그런 칭호를 쓰지 않아요. 우리 사이에서는 그를 반신이라고 부릅니다.” 진인들이 웃으며 말했다.청해가 옆에서 덧붙였다. “서요산 검종에서 말하는 반선이 황자를 뜻하는 거야. 근데 그 서요산 반선 진짜 어마어마하게 강한 인물이거든. 예전에 곤륜 구역에서 귀한 영약 찾으러 들어왔다가 우리 빙신전 전주랑 빙황 두 명이 같이 상대했는데도 둘 다 거의 죽을 뻔했어. 결국 아사 신전한테까지 도움 요청해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지.”“뭐라고?”백호는 놀라서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진짜 그렇게 강한지 의문이 들었다.일곱 진인 중 가장 나이 많은 그 진인은 백호의 단순한 반응에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그가 바로 그 반선이었다. 다만 백호가 워낙 세상 물정에 둔감하여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놀라기만 하고 있었다.그사이 임정설은 이미 오백오십 계단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이 단계에 이르자 임정설도 거의 극한에 도달했다.“역시 직접 올라와 봐야 이 압력을 제대로 실감하는구나! 오백사십 계단까진 무리 없었는데 오백오십 계단에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구나.”지금 임정설을 압박하는 것은 단순한 술도의 압력만이 아니었다.과거의 온갖 기억들이 마장이 되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일곱 진인은 모두 임정설의 기운이 혼란스러워진 것을 느꼈다.“장인 사형, 국주님께서 심마에 걸리셨군
청해의 눈길이 자주색 도포를 입은 진인에게로 향했다.서요산검종에서 종주를 제외한 나머지 일곱 명의 진인이 가장 높은 수련을 가지고 있으며 평소 종문 내의 모든 일은 이들 일곱 명이 책임지고 있다.기세는 마치 대강의 파도가 넘실대듯 깊고 끝이 보이지 않는 산과 숲처럼 무한히 이어져 있었다. 그의 수련은 깊이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서요산 7대 진인의 수련이 극 신급 절정이라고 들었는데 지금 보니 그 말이 너무 가볍게 들리네요. 귀하의 수련은 적어도 극 신급 절정 후반에 다다랐군요.”청해는 세 명의 진인에게 경의를 표하며 몸을 굽혔다.“서요산의 전통은 천 년을 자랑하며 그 깊이는 변함없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반면 곤륜 구역은 스스로 신을 자처한 이후로 계속해서 내분을 일으켰습니다. 수련을 통해 세상을 떠난 후 도를 깨닫는다는 말처럼 곤륜 구역은 천하의 영기와 천물을 흡수했지만 제 생각에는 도를 얻지 못한 곳입니다. 지금 당신이 화진에게 올바른 수를 두는 것은 맞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극 신급 절정 후반도 절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한 진인이 답례하며 말했다.그때 몇몇 사람들은 서요산 검객들의 함성에 이끌려 사방을 살폈다. 백호가 사백 계단을 올라갔다는 소식이었다.“대단한데요. 서요산이 전성기였을 때도 사백 계단을 오른 이는 드물었어요. 우리 몇몇 진인들도 입문 시에 사백 계단을 넘은 적은 없었죠.”몇몇 진인들이 칭찬했다.이는 백호가 미래에 매우 큰 가능성을 지녔음을 의미했고 적어도 극 진경 후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극 진경 후반은 곤륜 구역에서 신전의 전주가 될 수 있는 실력이다.지금 사백 계단에 오른 백호는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 완전히 의지로 버티며 강력한 정신력으로 계속해서 오르고 있었다.그러나 아무리 강한 운명을 지녔다 해도 천지의 이치를 막을 수는 없다.사백오십 계단에 도달했을 때 백호는 결국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의식을 잃은 것은 시험이 끝났다는 신호였고 백호는 곧 깨어났다.“겨우 사백오십 계단이라니
서요산 검객들이 모두 그 무인의 정체를 궁금해하자 진인도 더 이상 뜸 들이지 않고 말했다.“저분은 구주왕 휘하의 화진 군신이자 국방부 대장 백호 장군이시다.”검객들은 모두 입이 벌어진 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군신의 명성은 당연히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보호하는 영웅이었으니까.“정말 구주왕 휘하의 군신이라니!”“역시 저런 굳센 의지가 그냥 나온 게 아니었어! 수많은 전장을 누빈 명장다운 모습이다!” 서요산 검객들은 백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현재 백호는 이미 삼백이십 계단을 돌파한 상태였다. 백호가 혼자 주목을 독차지하는 걸 본 청해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고 계단에 발을 내디뎠다.처음 백 계단은 청해도 육신의 힘으로 버텼다. 하지만 백 계단을 넘자 육체만으로는 견디기 어려워졌다. 그는 술법으로 대응하려 했지만 평소 쓰던 빙신전의 신술이 계단 위 술법에는 통하지 않았다.“역시 화진의 서요산 검종은 보통이 아니구나. 이 등천로에선 일반 술법이 먹히지 않으니 천지 영기에 대한 깨달음으로 맞설 수밖에 없겠어.” 청해는 몸을 감싸고 있던 현빙을 거두고 오로지 자신의 속성 영기로만 버티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막상 올라 보니 이 등천로가 얼마나 어려운지 제대로 실감했다. 이백 계단쯤 오르자 벌써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계단마다 한계를 시험하는 느낌이었다. 올려다보니 백호는 여전히 계단 위로 나아가고 있었다. 청해도 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서요산 검객들도 청해의 수준을 알아보고 속삭였다. “저 이역인은 정말 대단한 내력의 소유자다! 기운이 이미 진인 급에 가까워! 극 신급 절정의 수련자임이 분명해!”이에 대해 진인은 신비롭게 꾸미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 “저자는 곤륜 구역 빙신전의 부 전주 청해다. 경지가 매우 높지. 지금 빙신전은 우리 화진에 귀속되었고 청해 역시 구주왕 휘하의 부하가 되었다. 얼마 전 서울 방어전에서 청현과 목숨까지 걸고 사투를 벌인 끝에 죽을 고비를 넘겼으
백호는 아직도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어느덧 이백오십 계단까지 올라왔다. 이 단계부터는 실체화된 술법이 몸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계단 하나를 오를 때마다 바람, 불 번개와 같은 속성의 영기가 점점 강해졌다. 여기서부터는 육신 횡련의 수련자는 강력한 체질로 버티고 술도 재능이 뛰어난 수련자는 천지 영기를 다루는 능력으로 버텨야 했다. 한마디로 각자의 능력에 따라 갈리는 구간이었다. 어느 한 분야라도 특출나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백호는 술도에는 재능이 없었기 때문에 오로지 강인한 육체 하나로 견디고 있었다.웅!성수의 피가 진동하며 백호의 몸을 지탱했다. 각종 속성의 영기가 몰아쳤지만 백호는 성수혈의 힘을 빌려 억지로 앞으로 나아갔다.수련자에게 있어서 성수의 혈맥이나 법보 등은 모두 신체 외적인 재능으로 간주하지만 그렇다고 이것들이 꼼수나 편법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천 가지 변화와 만 가지 신통력이 있어도 결국 만법은 한 가지로 귀결된다. 법기든 혈맥이든 이를 감당하는 것은 결국 본인의 몫이다. 천지 영기를 이용한 술법도 결국은 그 힘을 감당할 수 있어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며 감당하지 못하면 반드시 반작용을 맞게 된다. 따라서 수련의 길에는 애초에 편법이란 존재하지 않았다.성수 혈맥 같은 천지의 보물은 보통 사람이 함부로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윤구주의 도움을 받았다 하더라도 결국 이를 감당하는 건 백호 자신이었다. 성수 혈맥의 힘을 온전히 감당하며 백호는 결국 삼백 계단까지 올라섰다.계단의 꼭대기 근처에는 이미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이 여럿 서 있었다. 서요산 검종은 근대에 들어 삼백 계단을 넘는 인재가 드물었다. 최근 백 년 동안 삼백 계단을 넘은 사람이 고작 열 명 남짓이었고 그중 대부분이 삼백여 계단에서 멈췄다. 그런데 지금 백호는 삼백이십 계단까지 올라선 것이다. 이 정도면 서요산 검종 전체가 떠들썩해질 만한 성과였다.이런 제자가 나타난다면 종문 전체가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래서 서요산의 진인들까
“한 사람의 품성을 제대로 살피지도 않고 마구잡이로 그렇게 많은 수련자를 키워낸다면 결국 천하의 마인을 직접 만들어 내는 꼴이 아니겠어?”청현이 바로 그 실패한 예다. 서요산 검종 종주가 청현의 천재성을 아까워한 나머지 그의 인성을 무시하고 양성한 끝에 결국 역도를 만들어 낸 것이다.“그럼 저하 서요산에 입문한 무술 무인들은 평균적으로 몇 계단까지 오르는지 아십니까?” 백호가 호기심에 물었다. 윤구주는 잠시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무술 무인의 정확한 데이터는 모르지만 검종 종주와 잡담할 때 들어보니 검종 제자들의 수준이 갈수록 떨어져서 천 년 전만 해도 평균 삼백 계단 정도였는데 요즘엔 백 계단도 못 오른다고 하더구나. 가끔 삼백 계단을 오르는 자라도 나오면 검종 전체가 몇 년은 떠들썩할 정도라고 했어.”“구백구십구 계단까지 있는 시험인데 천 년 전 전성기에도 겨우 삼백 계단이요?” 백호는 입술을 삐죽이며 서요산 검종의 수준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때 한 번 도전해 볼 생각이야?” 윤구주는 흥미롭게 백호를 바라보았다. 백호는 당장이라도 도전하고 싶은 마음에 윤구주의 허락을 구한 뒤 바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한 계단 두 계단... 오십 계단까지는 아무 어려움도 없었다. 백호는 오십 계단에 서서 사람들을 향해 서요산 검종이 별것 아니라며 놀려댔다. 하지만 육십 계단쯤 올랐을 때 처음으로 압력을 느꼈다. 마치 몸 위에 작은 차 한 대가 올라탄 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백호에게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백 계단에 도달하자 압력이 갑자기 커졌다. 등에 작은 승용차 대신 소형 트럭이 올라탄 듯한 느낌이었지만 아직 백호의 한계에도 가지 못했다.“근래 사람들의 평균이 백 계단도 못 넘는 이유가 이제야 이해가 되네요. 예전의 무인 횡련은 황제도 오를 수 있었지만 요즘 무인 횡련은 죽어라 노력해도 소형 트럭 하나 못 버티는 수준이니 말입니다.”백호는 농담을 던지며 계속해서 계단을 올라
전에 임정설은 구오 지존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나라를 위해 힘쓰며 수모를 견뎌내고 살아남으려 했다.하지만 이제 황제가 된 그는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다.그 탓에 이번 관문 앞에서 그는 망설였다.살아 있는 자만이 통과할 수 있는 관문이었다.죽음을 마음에 품은 자는 절대로 넘어설 수 없는 관문이었다.그 자리에 있던 사람 중 청해만이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생각했다.‘황제가 되면 곤륜 구역에서 최고 경지에 도달하는 건데. 기뻐해도 모자랄 판에 왜 죽음을 택하려는 거지?’“저하, 국주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듯합니다. 저하도 사랑하던 이에게 배신당했어도 결국 극복해 나갔잖습니까.”백호도 이해하지 못했다.그는 여전히 국주보다는 왕이 더 낫다고 여겼다.“네가 뭘 안다고 그런 말을 함부로 내뱉느냐.” 윤구주가 단호하게 말했다.백호는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그는 어리숙하고 말솜씨도 없기에 생각나는 대로 말했을 뿐이다.“내가 문아름에게 배신당한 건 억울한 일이지만 나는 그녀에게 잘못한 게 없다. 오히려 그녀가 날 배신한 거다. 하지만 국주는 그 반대였지. 그가 그녀를 저버린 거야. 정이 깊으면 오래가지 못하고 지혜가 지나치면 오히려 상처를 입는다. 이 세상에서 가장 쓰라린 후회는 가진 뒤 잃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생사를 달리하게 되는 것이다.” 윤구주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만약 소채은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자신도 제정신이 아닐 거라고 느꼈다.“그럼 복수하면 되지 않나요?” 백호가 어리둥절하게 물었다.이때 청해가 눈치를 채고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상대가 너무 강해서 못 이기는 거지. 황제에 오르기 전까진 제대로 맞붙을 힘도 안 돼. 오르고 나서도 이길 수 있을지 장담 못 하고.”윤구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딱 그 말이 맞았다.“그럼 우리가 국주님 대신 복수해 드리면 되잖아요? 국주님은 제 왕이기도 하지만 제 윗사람이기도 하잖아요.”백호가 고개를 갸웃했다.“하하! 만약 세상 사람들이 다 너처럼 솔직하다면 이런
인간이 나쁜 짓을 거듭해 양심을 잃으면 부끄러움도 사라진다. 예전 같으면 아무렇지 않았을 테지만, 지금은 윤구주를 따라 명예심이 생기면서 죄책감도 느끼게 된 청해에게 이 원한의 전법은 고통스럽기만 했다. 물론 곤륜역 한 신전의 부전주로서 정신이 붕괴할 정도는 아니었다.네 사람은 이 원한의 전법도 가볍게 넘어섰다.이때 전법에 관심을 가졌던 임정설이 무언가를 눈치챘다.“구주야, 서요산의 전법은 우연히 들어온 자를 쫓아내는 동시에 수련자의 의지를 시험하는 것이었어. 서요산은 의지력이 확고한 자들만 끌어들인다는 것을 미리 들어 알고 있다. 이게 바로 서요산이 제자를 선발하는 방식인가 보구나.”“그렇습니다. 매년 화진 무도계 사람들이 서요산에 찾아오지만 성공한 자는 극히 드뭅니다. 실패자들 중 십중팔구는 산기슭에서 죽음을 맞이하죠. 어떤 문턱은 넘지 않는 것이 복이 될 때가 있습니다. 모르는 것이 약이죠. 현실을 알고도 바꾸지 못하는 것이 가장 괴로운 법이니까요. 이 관문을 넘는다고 해도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면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입니다.”윤구주의 말이 끝나자 세 번째 전법이 나타났다.첫 번째와 두 번째 전법은 이곳에 들어온 이들을 돌려보내려고 만든 것이지만 세 번째 전법은 달랐다. 이 전법은 살기로 가득 찬 죽음의 전법이었다.평범한 사람들은 여기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이곳까지 온 자들도 앞길의 위험을 보고 함부로 들어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눈 앞에 펼쳐진 죽음의 길을 보고도 들어가는 자는 스스로 죽음을 원하는 자라서 그런 자들에게 죽음을 내리는 것은 오히려 덕을 쌓는 일이었다.하지만 무도로 도를 깨우치려는 수련자라면 이 관문을 넘기 위해 반드시 목숨을 걸어야 한다. 버텨내야만 수도의 길에 들 수 있고 실패하면 그 후과를 받아들여야 한다.전법 안은 살기로 가득했다. 생기와 영기가 세상을 이롭게 하지 못할지라도 살기와 죽음의 기운은 목숨을 앗아갈 것이 분명했다.진법 내부에는 수많은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무도계에 이름을 날렸던 강자들의 유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