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석이 모습을 드러내자 모든 무인들이 무릎을 꿇었다.조경석은 경멸 어린 표정으로 무인들을 힐끗 훑어본 뒤 입을 열었다.“오늘 제가 이곳에 온 건 천하 무인들에게 말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앞으로 여러분들은 함께 손을 잡고 한 사람을 상대할 겁니다. 그 사람은 문벌을 해치고 세가를 없애려고 했으며 우리 3대 무도 서열을 안중에 두지 않는 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3대 서열은 반드시 그를 죽여야 합니다.”조경석이 그렇게 얘기하자 그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무인들은 곧바로 말했다.“선배님께서 명령을 내리신다면 저희는 그 사람을 반드시 죽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선배님, 어떤 정신 나간 놈이 감히 우리 무도 3대 서열에 불경을 저지른 겁니까?”사람들 중에서 누군가 물었다.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무인들은 최근 벌어진 일들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그들은 그저 재미를 위해서 온 것이었다.자운각의 조경석이 그들의 질문에 대답했다.“그는 한때 우리 화진의 구주왕이었습니다.”‘뭐라고?’“구주왕이요?”구주왕이라는 말에 그 자리에 있던 무인들은 몸을 흠칫 떨었다.“구주왕은 이미 돌아가시지 않았습니까?”“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있는 거죠?”사람들 중에서 누군가 의문을 드러냈다.“아뇨. 그는 죽지 않았어요. 그가 문벌을 해치고 세가를 없애려고 했으며 우리 3대 무도 서열을 적으로 돌리려고 했습니다.”조경석이 다시금 말했다.그 말을 들을 무인들은 전부 충격을 받았다.“세상에, 구주왕이 살아있다니 정말 놀랍네요. 그런데 그는 우리 화진의 호국 군신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무도 3대 서열을 존경하지 않고 심지어 우리를 처단하려고 하는 거죠?”“그러게요!”누군가 다시금 의문을 드러냈다.“구주왕은 비록 우리나라를 위해 공을 세웠으나 아주 교만한 자입니다. 그는 천하에 자기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자입니다. 우리 무도 3대 서열의 천 년 가까이 되는 역사는 안중에도 없죠. 그리고 그는 공공연히 서울에서 문벌과 세가를 공격했습니다. 우리 무도
그들은 각각 공수이와 정태웅이었다.두 사람이 나타나자 정태웅은 우선 눈을 가늘게 뜨면서 입을 열었다.“수이 동생, 수이 동생은 출가한 사람이니 욕을 하면 안 돼.”희고 깨끗하게 생긴 공수이가 말했다.“태웅이 형님 말씀이 맞습니다.”말을 마친 뒤 공수이는 합장하면서 미소 띤 얼굴로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에게 말했다.“아미타불, 조금 전에는 제 언행이 부적절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러분께 사과하도록 하겠습니다.”스님이 갑자기 그렇게 얘기하자 그곳에 있던 무인들 모두 당황했다.갑자기 한밤중에 두 남자가 나타날 줄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당신들은 누구지? 왜 멋대로 이곳에 온 거야?”류성균은 호통을 치면서 공수이와 정태웅을 바라보며 말했다.“제 이름은 알 필요 없습니다. 어차피 얘기해도 당신들은 모를 테니까요. 대신 제가 오늘 여기에 온 이유를 얘기하겠습니다. 아까 누가 제 형님을 죽이겠다고 했죠?”공수이의 말에 사람들은 모두 분노했다.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무인이었고 공수이는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그들을 욕했다. 그러니 어떻게 참을 수 있겠는가?”“대머리, 감히 이곳에서 난동을 부려?”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어깨에 큰 칼을 올려놓고 있던 남자였다.그 남자는 그렇게 얘기하면서 기세등등하게 앞으로 한 걸음 걸어 나갔다.“방금 절 뭐라고 불렀어요?”“하하! 대머리라고 했다. 왜?”남자가 그렇게 얘기하자 공수이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공수이는 곧 움직였다. 너무 빨라서 잔영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공수이가 움직였고 이내 비명이 들려왔다. 다들 눈이 휘둥그레진 채 조금 전 공수이를 대머리라고 놀렸던 건장한 남성을 바라보았다. 그의 가슴팍에 구멍이 하나 생겼다.그 구멍은 공수이가 주먹을 날려 남긴 상처였다.공수이가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을 꿰뚫자 건장한 남자는 비명을 질렀다.“미친놈이 감히 날 대머리라고 부르다니.”공수이는 남자의 가슴에 상처를 내더니 곧이어 남자의 머리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곧이어 그는 한주먹
죽이겠다는 말에 그 자리에 있던 무인들 모두 넋이 나갔다.갑자기 튀어나온 스님이 이렇게 용맹할 줄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다들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정태웅이 입을 열었다.“수이 동생, 이 멍청한 놈들과는 대화를 나눌 필요가 없어. 그냥 다 죽이면 돼.”“네? 그러면 그냥 다 죽이면 되는 건가요?”공수이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정태웅은 팔짱을 끼면서 말했다.“당연하지. 이 빌어먹을 놈들은 감히 우리 저하를 공격하려고 했어. 죽어 마땅한 놈들이지. 그러니까 그냥 바로 죽이면 돼.”공수이는 그 말을 듣고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네. 그러면 태웅이 형님 말대로 할게요!”말을 마친 뒤 공수이는 고개를 돌려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무인들을 쭉 보았다.“태웅이 형님이 오늘 다 죽이라고 했으니 이제 모두 죽도록 해요!”공수이의 거만한 모습에 아무리 성격이 좋은 무인들도 참을 수가 없었다.게다가 그들은 적어도 수백 명이었다.“이 스님이, 죽고 싶은가 봐!”“다들 같이 달려들어서 저 대머리를 죽입시다!”한 대가 경지의 중년 무인이 고함을 질렀고 곧이어 모든 무인들이 무기를 빼 들고 공수이를 공격하려고 했다.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향해 달려들려고 하자 공수이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아미타불, 다들 운이 좋지 않으시네요.”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한줄기 금빛이 되었다.공수이의 공격은 아주 심플하고 강력했다.그는 오직 두 주먹만 썼다.그의 두 주먹은 검이나 칼보다도 더 무시무시했다.그가 주먹을 한 번 휘두르면 그 무게가 몇백 킬로그램 정도는 되었다.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주변 공기가 찢기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그런 무시무시한 주먹이 무인들의 몸에 닿는 것은 마치 폭탄으로 개미를 터뜨려 죽이는 것처럼 오히려 힘을 낭비하는 셈이다.“끄아아악!”주먹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십여 명의 무인들이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고깃덩이가 되었다.무사 경지도, 대가 경지도 그의 주먹 한 방에 목숨을 잃었다.살육은 계속되었다.오십여 명의 무인들이 눈
엄청난 힘이 모여 무시무시한 강기로 이루어진 벽을 만들면서 공수이의 일격을 막아내려고 했다.그러나 곤륜 출신의 공수이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강기로 이루어진 벽은 나타나자마자 공수이의 주먹을 막고 부서졌다.“끄아아악!”네 사람의 비명이 잇달아 들어왔다. 류성균의 곁에서 그를 지키던 대가 경지의 노인 네 명은 공수이의 공격을 받고 몸의 모든 구멍에서 피를 흘리며 즉사했다.대가 경지의 강자 네 명이 전부 죽자 류성균은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곧이어 그는 청동검을 빼 들었다.검을 쥔 류성균은 곧바로 공수이를 공격했다.쏟아지는 빗줄기 같은 공격들이었다.그러나 공수이는 전혀 피하지 않았다. 그의 몸에서 갑자기 거북이 등껍질 같은 형태의 금빛 보호막이 생겼다.보호막이 생기자 공수이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자, 어디 한번 해 봐요. 날 찌를 수 있겠어요?”류성균은 신급 경지였다.자극을 받은 그는 이를 악물고 청동검을 휘둘렀다.댕강!청동검은 공수이의 거북이 등껍질에 닿는 순간 댕강 소리와 함께 부러졌다.‘어?’“내 검이...”류성균이 충격에 빠져 있을 때 공수이는 그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공수이의 주먹에 담긴 힘의 위력을 느낀 류성균은 겁을 먹고 급히 뒤로 물러나면서 크게 외쳤다.“조경석 선배님, 구해주십시오!”자운각 출신의 조경석은 류성균이 죽기 직전에 몸을 움직여서 공수이를 공격했다.쿵!검은색을 띤 손바닥이 절정의 힘을 품은 채로 공수이를 습격했다.“쯧쯧, 절정 수준이네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절정은 제게 아무것도 아니에요.”공수이는 조경석의 검은색 손바닥은 쳐다보지도 않고 주먹을 휘둘렀다.주먹이 닿기도 전에 주먹에 담긴 힘이 먼저 느껴졌다.막강한 권의는 하늘을 찢을 듯했다.주먹이 휘둘러지는 순간, 조경석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그의 공격이 파괴되었을 뿐만 아니라 공수이의 주먹은 그의 모든 장기를 망가뜨릴 듯했다.“풉!”조경석은 피를 토하면서 멀리 날아가더니 바닥에 세게 부딪쳐서 큰 구덩이를 만들었다.절
공수이는 정태웅의 말을 듣고 깨달았다.“그렇군요! 하지만 걱정하지 말아요. 여기 살아있는 사람이 한 명 있잖아요.”공수이는 그렇게 말하면서 웃는 얼굴로 겁에 질려 바닥에 주저앉은 류성균을 가리켰다.류성균은 겁을 먹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상태였다.조금 전 절정 강자인 조경석마저 공수이의 주먹 한 방에 죽었는데 신급 강자인 그 역시 당연히 단숨에 죽을 것이다.“죽이지 말아줘. 제발 날 죽이지 말아줘!”류성균은 죽음을 앞두게 되자 서둘러 바닥에 무릎을 꿇고 공수이와 정태웅을 향해 고개를 조아리며 사정했다.“죽고 싶지 않아? 좋아! 그러면 내가 질문할 테니 당신은 대답해. 당신의 대답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가만두지 않을 줄 알아!”정태웅은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좋아. 내가 아는 것이라면 전부 말할게.”류성균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얘기해. 누가 무인들을 소집해서 우리 저하를 상대하려고 한 거야?”정태웅이 물었다.“자운각이야!” 류성균이 대답했다.“조금 전 죽은 그 자식이야?”정태웅은 계속해 물었다.“그래.”그 말을 들은 정태웅은 주먹을 꽉 쥐면서 욕을 했다.“젠장, 종문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같잖은 문벌과 세가까지 감히 우리 저하를 상대하려고 해?”정태웅은 잠깐 고민한 뒤 계속해 물었다.“너희 말고 또 누가 우리 저하를 상대하려고 하지?”“아주 많아! 내가 아는 바에 의하면 적어도 만 명은 될 거야. 그리고 지금 전국 각지의 문벌, 세가 사람들이 서울로 오고 있어.”류성균은 솔직히 말했다.폐황령이 내려진 뒤 서울은 완전히 개방되었다.3대 무도 서열은 윤구주를 상대하기 위해 전국의 모든 무인들을 서울로 초대했다.윤구주에게 따져 묻겠다는 일념으로 말이다.그 말을 들은 정태웅은 미간을 한껏 찡그렸다.“제기랄, 다들 미친 거야? 감히 우리 저하를 상대하려고 해?”공수이는 옆에 서서 경멸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태웅이 형님, 걱정할 게 뭐가 있습니까? 찾아오는 놈들은 전부 죽이면 되지 않습니까?”정태웅은 대답하지
“좋아요!”그렇게 두 사람은 계속해 다른 세 개의 무인 집결지로 향했다.그날 밤은 무인들의 운이 좋지 않던 밤이다.그들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이유는 종문의 기를 살려줌과 동시에 서울에서 거만을 떨기 위해서였다.그런데 그날 밤 공수이와 정태웅처럼 말이 통하지 않는 미친놈들을 마주하게 될 줄은 생각지 못했다.오늘 밤 서울의 다른 세 곳에서는 아주 잔혹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죽은 자들은 모두 무인이었고, 그중 무인들이 가장 많았던 집결지에는 무인들의 시체 300구 정도가 발견되었다.시체들은 모두 끔찍한 모습으로 훼손되어 있었고 일부 시체는 머리가 부서졌다.하룻밤 사이에 거의 천여 명쯤 되는 무인들이 죽었다....날이 서서히 밝기 시작했다.윤씨 일가의 저택.“형님, 동쪽과 북쪽에서도 무인들이 살해당했다고 합니다. 저희가 심어둔 사람들이 전한 소식에 따르면 죽은 사람들 모두 전국 각지에서 서울로 모여든 문벌, 세가 사람들이라고 합니다.”거실 안, 윤창현은 소식을 얻은 뒤 곧바로 윤신우에게 보고했다.“누가 죽인 건지 알아냈어?”윤신우는 평온한 목소리로 물었다.“아직은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중3품쯤 되는 초극 절정인 것 같습니다.”윤창현이 말했다.윤신우는 그 말을 듣고 미간을 찌푸렸다.“종문 쪽에서는 반응이 있었어?”“아직은 없습니다. 자운각 쪽에서는 오늘 밤 3명의 하급 절정을 잃었다고 합니다.”윤창현이 말했다.“자운각? 6대종문 중에서 가장 먼저 나선 것이 자운각일 줄이야.”윤신우의 입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형님, 안 좋은 소식이 하나 있습니다.”윤창현이 갑자기 말했다.“무슨 소식이야?”윤신우가 물었다.“전해지는 데 따르면 전에 형님께서 종문을 공격한 뒤로 6대종문 절정 수준의 늙은 괴물들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게다가 형님을 상대할 거라고 했답니다!”윤창현은 어두운 얼굴로 얘기했다.“날 상대하겠다고?”윤신우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30년이나 되었으니 몸을 잘 풀
천하제일이라고 적힌 금빛 현판을 본 순간 공수이는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대단하네요! 우리 형님의 집안이 이렇게 대단했군요! 하지만 이상하네요. 우리 형님은 집안이 이렇게 대단한데 왜 이곳이 아니라 굳이 그 허름한 집에서 살았던 걸까요?”공수이는 아주 중요한 질문을 했다.“쉿!”공수이가 말을 마치자마자 정태웅은 서둘러 그에게 조용히 하라고 눈치를 줬다.“왜 그래요?”공수이는 황급히 조심스럽게 물었다.“잠시 뒤 안으로 들어가면 말조심해. 우리 저하께서는 아주 오래전 집안 사람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어. 그래서 지금까지도 자신이 윤씨 일가 자제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해. 그러니까 꼭 말조심해야 해.”정태웅은 상황을 설명했다.“그렇군요!”공수이는 그 말을 듣고 머리를 벅벅 긁었다.“휴, 대단한 집안들은 다 이런가 봐. 수이 동생, 잠시 뒤에 말조심해야 한다는 것만 명심해. 윤씨 일가의 가주님의 심기를 건드려서는 안 돼. 절대!”정태웅은 공수이에게 신신당부했다.공수이는 고개를 힘껏 끄덕이면서 대꾸했다.“네, 알겠어요!”두 사람은 밖에서 대화를 나눈 뒤에야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이제 막 날이 밝았기 때문에 두 사람은 정문이 아니라 담을 넘어서 안으로 들어갔다.그런데 두 사람이 정원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무시무시한 절정 기운을 가진 사람 두 명이 그들을 맞이했다.“어떤 놈이 감히 윤씨 일가에 멋대로 발을 들인 것이냐?”청색 옷을 입은 두 청년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태웅이 형님, 조심하세요!”상대방의 실력이 모두 절정 수준이라는 걸 눈치챈 공수이는 빠르게 움직여 가장 앞에 섰다.그의 몸 위로 금빛의 거북이 등껍질이 나타났고 무시무시한 힘을 지닌 두 손바닥을 막아냈다.청색 옷을 입은 두 노인은 공수이가 그들의 일격을 막아내자 살짝 놀라워했다.“이 자식, 내 공격을 막았어? 그래, 그러면 어디 한번 이것도 막아 봐!”그 말과 함께 앞에 있던 건장한 노인이 손을 움직였다. 곧 넘실대는 청색 현기가 거대한 손이 되
두 노인이 떠난 뒤 정태웅은 그제야 서둘러 입을 열었다.“창현 어르신, 저희 형님들께서 이곳에 계신 걸까요?”“그래. 내가 안내해 주마.”윤창현은 말을 마친 뒤 곧바로 그들을 안내해 주었다.이내 두 사람은 윤창현을 뒤따라서 안마당에 도착하게 되었다. 안마당에 도착하자마자 천현수가 보였다.“천현수, 내가 돌아왔어!”정태웅은 기쁘게 말하면서 천현수를 향해 달려갔다.그런데 천현수는 정태웅의 뚱뚱한 엉덩이를 발로 걷어찼다.천현수에게 걷어차인 천현수는 엉덩이를 잡고 억울한 얼굴로 말했다.“젠장, 왜 날 걷어차는 거야?”“왜? 안 돼? 얘기해 봐. 그동안 어딜 갔었던 거야?”천현수는 노기등등해서 물었다.정태웅은 당연히 할 말이 없었다.그에게 잘못이 있었으니 말이다.정태웅은 중얼대며 말했다.“난... 나는... 밖에 나가서 좀 놀았어. 그래도 제때 돌아왔잖아...”“제때 돌아오긴! 두 사람이 떠난 뒤 우리 아군이 하마터면 전멸될 뻔한 거 알아?”천현수는 계속해 그를 욕했다.“그래, 내가 잘못했어. 그러니까 이제 그만 화 풀어. 형님은 괜찮으셔?”정태웅은 뻔뻔한 사림이었기에 천현수에게 욕을 먹고 서둘러 그의 팔을 잡으며 물었다.천현수는 당연히 진심으로 정태웅을 원망하지 않았다.그는 화를 낸 뒤 말했다.“형님은 괜찮으셔.”민규현 등 사람들이 괜찮다는 걸 알게 된 정태웅과 공수이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천현수, 화내지 마. 나랑 수이 동생이 어젯밤 그 빌어먹을 놈들을 단단히 혼쭐내줬어. 우리가 대신 화풀이를 한 거로 생각해 줘.”정태웅은 어젯밤 공수이와 둘이 문벌, 세가 사람들을 죽인 사실을 자랑스럽게 얘기했다.두 사람의 얘기를 들은 윤창현은 흠칫했다.“어젯밤 서쪽, 북쪽에서 무인들을 죽인 사람들이 너희 둘이었어?”“헤헤, 맞습니다!”정태웅은 웃으며 대답했다.두 사람의 대답을 들은 윤창현은 다시 한번 공수이를 힐끔 보았다.어젯밤 전투에서 천여 명의 무인들이 죽었다. 심지어 그들 중 대부분이 세가와 문벌 출신의 절정 강자였
“저하,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그를 죽여야 합니까? 저자의 기운이 이토록 흉악한데 성수의 혈기로 진압할 순 없습니까?” 백호는 이미 싸우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안 된다. 너희 네 명이 함께라면 잠시나마 억누를 수는 있겠지만, 너희는 그저 성수의 정혈을 가졌을 뿐이니 마인을 완전히 없애려면 성수가 직접 나타나야 한다. 지금 이 세상에 성수가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스럽다.”윤구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말을 마친 윤구주는 곧장 진요탑 쪽으로 향했다.백호와 임정설, 청해가 함께 가서 돕고자 했으나 장인 대진인이 그들을 가로막았다.“이 마인은 오직 구주만이 상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중요한 임무가 있습니다. 국주님, 곧 전투가 시작될 터인데 서요산의 진법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 호법의 중임을 몇 분께 맡기겠습니다.”장인 대진인이 임정설에게 경건하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좋다. 오늘 이 자리에서 목숨을 바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저 마인을 죽이고야 말겠다.” 임정설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황자의 위엄을 한껏 드높였다.화진의 존망이 걸린 일이라면 임정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하지만 마기가 몰려와 서요산 전체를 뒤덮고 세상이 오직 흑백 두 가지 색깔만으로 변해버리며 그 끔찍한 살기가 강림했을 때 임정설마저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떨렸다.“이 마인의 기운이 이렇게까지 무서울 줄이야.” 임정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마기로 가득 찼고 윤구주마저 그 기세에 눌리고 있었다.진요탑에서 흘러나온 마기는 실체가 되어 넘쳐흘렀다. 마기가 나타나자 서요산을 지키는 모든 검종 제자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어떤 제자는 순간적으로 십여 년을 늙어버렸다.수련이 부족하면 수명으로라도 채워야 하는 참혹한 상황이었다.웅웅.하늘에는 먹구름이 밀집했고 그 안에서 요괴의 번개가 끊임없이 터졌다.“이젠 영기조차 요기로 변하고 있다. 풍수 비술로 보건대 머지않아 이곳에서 요마가 출현하겠구나.” 임정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요산 외부에서 짙은 요기
도가는 인연이라는 두 글자를 대단히 중히 여긴다.그의 한 번의 인연, 한 번의 생각은 곧 만백성의 생사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윤구주가 정상에 오르자 앞서 온 다른 이들과는 달리 서요산 검종의 모든 이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여 깊은 존경을 표했다. 그들이 경배한 대상은 단순한 한 인간이 아니라 구주의 저하, 화진의 인황, 오방 천지의 주재자였다.“모두 일어나십시오. 제가 오늘 서요산에 온 이유는 오직 진요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진요탑 안의 마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문 씨 세가의 역심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마인을 죽여야만 문 씨 세가의 야심도 함께 근절할 수 있습니다.”윤구주는 서요산 검종의 모든 제자를 향해 엄숙하게 말했다.이번 서요산 행차의 목적은 바로 문 씨 세가의 역심을 뿌리째 뽑는 것이었다.검종 제자들이 앞장서 일행을 이끌었고 모두가 금정을 지나 뒷산으로 향했다.뒷산에 막 들어서자마자 음산한 기운이 얼굴을 스쳤다.후산 중앙에는 높이 오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산이 서 있었는데 그 산은 무려 구백구십구 개의 쇠사슬로 단단히 봉인되어 있었다.이 쇠사슬은 그저 평범한 사슬이 아니었다. 절반은 땅속의 지맥과 연결되어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하늘 높이 떠올라 천지의 영기를 끌어모으고 있었다.이런 수준의 봉인이라면 설령 윤구주 자신이 여기에 갇혀 있다고 해도 빠져나가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이처럼 견고한 고진마저 지금은 마인의 사기로 조금씩 부식되어 가고 있었다. 본래는 영기가 흘러넘치는 명산이었으나 지금은 온 서요산이 마인의 기운에 물들어 음침하고 괴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이 강렬한 악기운을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모두 얼굴을 찌푸렸다.솟구치는 사기를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찌푸렸다.최근 몇 대에 걸쳐 입종한 서요산의 제자들은 이런 마인의 사기와 요마의 위협 속에서 수련해야 했다.천지의 영기조차 마인의 기운에 오염되어 수련에 큰 지장을 주었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남은 현
이 말을 듣자 모든 이들은 천 년 전 마지막으로 나타난 그 성인이 바로 서요산 검종에서 나왔음을 깨달았다.“짐은 서요산 검종의 선대 종주께서 우화등선하셨다고만 들었는데 그저 떠도는 신화 속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더니 은 성인의 경지에 이르신 것이었군.” 임정설이 깊은 감탄과 함께 말했다.구백 계단 윤구주는 이미 전설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하지만 그 전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구백삼십 계단 사십 계단을 오르면서 윤구주의 발걸음은 오히려 더욱 가벼워졌고 그가 세우는 기록은 사람들의 상식을 계속해서 뒤흔들었다.구백팔십 계단을 지나 정상까지 겨우 십여 계단만 남은 그 순간 윤구주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구백구십구 계단에 이르러 결국 완전히 멈추었다.드디어 한계에 도달한 것인가?모두가 숨을 죽이고 윤구주를 지켜봤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분명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시험일 터였다.윤구주는 미간을 찌푸린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십여 분을 견뎌냈다. 사람들은 그가 언제 다시 계단을 오를지 초조하게 기다렸다.마침내 윤구주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됐습니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넘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시험을 포기하지요.”말을 마치고 계단에서 내려서는 순간 청석 계단 아래에서 강력한 영기가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쳤고 곧바로 서요산을 감싸던 어둠의 기운을 깨끗이 몰아냈다.오랫동안 음울했던 서요산 상공은 순식간에 환해졌고 수백 킬로미터에 걸쳐 맑은 하늘이 펼쳐졌다.서요산의 모든 이들은 충격에 빠져 넋을 잃었다.그제야 그들은 윤구주가 왜 그토록 여유롭게 올라올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처음부터 서요산의 청석 계단이 가진 진법의 힘을 계속해서 억누르고 있었다.“참으로 대단하신 신위군요! 우리 서요산의 청석 진법마저 제압하셨다니! 마지막 한 걸음을 분명 넘으실 수 있었을 텐데 혹시 강제로 넘었다가 진법이 견디지 못해 영기가 새 나가고 진법이 무너져 진요탑까지 영향을 미칠지 걱정하신 건 아닌가요?” 장인 대진인이
도법의 깊이는 워낙 심오해서 임정설조차 제대로 가늠할 수 없었다.“쉽게 말씀드리자면 구주는 천지의 운기를 완전히 장악한 데다가 하늘이 직접 영광을 내리신 거죠.” 장인 대진인이 말했다.임정설은 이 말을 듣고 비로소 이해한 듯 말했다.“대진인의 말은 윤구주가 바로 하늘이 점지한 사람이라는 뜻인가?”“맞습니다. 우리 화진 사람들은 운명의 갈림길에 서면 본심에 따라 도법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깁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사는 다하고 하늘의 뜻을 따르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윤구주는 분명 큰 복을 타고났지만 그 엄청난 복을 감당할 힘도 필요합니다.”대진인이 설명했다.말이 끝날 무렵 윤구주는 이미 육백삼십 계단을 거뜬히 올라와 있었다.한 걸음도 멈추지 않고 더욱 확고한 걸음으로 계속 전진했다.그의 발걸음마다 천지의 기운이 응축되었다.어느 순간 서요산의 계단조차 윤구주의 기세를 가두지 못했다. 그는 마치 천지를 밟으며 오르는 듯했다.곧이어 그는 칠백 계단마저 돌파했다.칠백 계단이란 천 년 전 서요산의 전성기에도 극소수만이 도달할 수 있었던 경지였다. 지금 만약 윤구주가 구주왕이 아니라 일반 수련자였다면 이 기록만으로 서요산 전체가 들썩였을 것이다. 만일 윤구주가 서요산에 입문을 원했다면 서요산은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 그를 키웠을 것이며 서요산 검종의 다음 종주 자리는 당연히 그에게 돌아갔을 것이다.그러나 이미 칠백 계단에 이르렀음에도 윤구주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칠백오십 계단 팔백 계단 팔백오십 계단!그는 끊임없이 정상의 기록을 깨며 전설을 써 내려갔다.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윤구주 앞에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을 것 같았다. 이쯤 되자 장인 대진인조차 감히 그를 함부로 평가할 수 없었다.왜냐하면 자신도 과거에 겨우 칠백 계단에 그쳤으니 팔백 계단을 오른 사람을 감히 평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윤구주는 멈추지 않고 계속 올라갔다. 마치 천지를 흔들어 이 강산을 뒤엎어버리겠다는 기세였다.그리고 마침내 구백 계단에 이르렀다.“구백
하지만 한 계단씩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난관들도 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만약 윤구주와 맞서야 하는 적의 입장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차분히 계단을 오르는 윤구주는 마치 깊은 심연 그 자체였을 것이다.그의 강력함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가 올라올수록 위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압박감에 휩싸였다.검종의 검객들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윤구주는 이미 사백 계단까지 올라와 있었다.하지만 사백 계단쯤으로는 아무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화진의 또 다른 황자 구주왕의 후계자였으니까.윤구주가 오백 계단을 밟는 순간 모든 이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응시했다.눈길을 떼지 못한 채 그의 오름을 지켜보았다.오백일…… 오백이십! 오백오십! 오백구십구!“마침내 구구관에 도달했다.”“칠구는 수겁이요 구구는 극히 넘기기 어려운데.”진정한 고수들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과연 윤구주가 이 한 걸음을 쉽게 넘을 수 있을지 모두가 궁금해했다.윤구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그가 본 것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마치 화진의 온 세상 같았다.한눈에 화진의 대지와 산천이 모두 담겼다.눈앞에 펼쳐진 화진의 아름다운 대지는 숨 막히는 광경이었다.하지만 동시에 이 끝없는 강산 곳곳에 묻혀 있는 수많은 해골도 함께 보였고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비장함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윤구주의 내면을 감지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이 곧바로 그의 곁에 나타났다.“구주야 화진의 산천을 잘 살펴봐! 천하의 용맥은 모두 화진에서 비롯되었고 이 한 획 한 획은 백성의 척추와 같다! 눈에 비치는 물의 맑고 흐림은 중요하지 않아. 지나치게 눈 부신 빛은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너무 어두운 밤은 희망을 앗아가기 마련이지.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화진의 이 산천은 영원히 굳건히 서 있을 거야. 왜냐하면 푸른 산마다 묻혀 있는 충신의 뼈와 넋들이 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까.”서요산 검종 종주는 윤구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 온
진인들은 말했다. 임정설이 만약 집념을 내려놓는다면 육백 계단까지도 오를 수 있을 거라고.장인 대진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집념을 놓는다면 더 이상 화진의 국주가 아니지. 바로 이런 끈질긴 의지가 있기에 그분이 화진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다른 진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운명이란 그런 법이다. 아마도 집념을 놓았다면 임정설은 오백 계단조차 오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이때 임정설은 아직 남아 있는 절반의 계단을 바라보며 씁쓸히 미소 지었다. “어쩌면 여기서 멈춰야겠구나.”임정설은 다시 뒤를 돌아 윤구주를 바라보았다. 그가 자기 자식이자 동료처럼 여기는 윤구주가 과연 몇 계단을 오를지 궁금했다.깊은 생각에 잠긴 임정설이 곧바로 말을 꺼냈다.“구주야 이제 네가 올라서 봐! 화진의 구주왕다운 실력을 보여줘! 적어도 나보다는 못하면 안 되지 않겠냐?”아래에 서 있던 윤구주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원래 그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국주의 바람이라면 흔쾌히 도전할 마음이었다.“명 받들겠습니다!” 윤구주는 말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계단을 밟아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기 시작했다.구주왕이 등천로에 도전했다는 소식에 서요산 검종 전체가 술렁였다.검객은 물론이고 잡일을 돕는 제자들까지 모두 금정에 모여들어 그의 모습을 보고자 했다.심지어 하늘 위 어둑한 구름 사이에서도 한 쌍의 법안이 열렸다. 바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 환영이었다.임정설이 먼저 정상에 올랐고 장인 대진인을 포함한 일곱 진인과 서요산의 모든 제자들은 화진의 황자를 향해 몸을 숙여 예를 갖추었다.“모두 일어나시오. 그대들이 없었다면 화진은 이미 혼란 속에 빠졌을 것이오. 진정 국가와 화진을 위해 헌신한 것은 바로 그대들입니다.” 임정설은 화진의 모든 백성을 대표할 순 없지만 왕실을 대표하여 임 씨 일족의 지도자로서 서요산 검종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국주께서 과찬입니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방식대로 묵묵히 힘썼을 뿐입니다. 화진의 백
일곱 진인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들은 국주가 이미 등황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사백 계단은 쉽게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과연 그들의 예상대로 임정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오르며 오백 계단을 가볍게 밟아 올랐다. “오백 계단을 밟으면 등황의 경지에 오를 수 있습니다. 우리 일곱 진인 중에서도 오직 장인 대진인께서만 과거에 오백 계단에 오르셨고, 현재 서요산에 살아계신 유일한 오백 계단 수련자이십니다. ” 한 진인이 감탄하며 말했다.이 말을 듣자 옆에 있던 백호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선임 도사님 그러면 그 도사님도 황자란 말씀입니까? ”“하하! 우리 서요산에서는 외부의 그런 칭호를 쓰지 않아요. 우리 사이에서는 그를 반신이라고 부릅니다.” 진인들이 웃으며 말했다.청해가 옆에서 덧붙였다. “서요산 검종에서 말하는 반선이 황자를 뜻하는 거야. 근데 그 서요산 반선 진짜 어마어마하게 강한 인물이거든. 예전에 곤륜 구역에서 귀한 영약 찾으러 들어왔다가 우리 빙신전 전주랑 빙황 두 명이 같이 상대했는데도 둘 다 거의 죽을 뻔했어. 결국 아사 신전한테까지 도움 요청해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지.”“뭐라고?”백호는 놀라서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진짜 그렇게 강한지 의문이 들었다.일곱 진인 중 가장 나이 많은 그 진인은 백호의 단순한 반응에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그가 바로 그 반선이었다. 다만 백호가 워낙 세상 물정에 둔감하여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놀라기만 하고 있었다.그사이 임정설은 이미 오백오십 계단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이 단계에 이르자 임정설도 거의 극한에 도달했다.“역시 직접 올라와 봐야 이 압력을 제대로 실감하는구나! 오백사십 계단까진 무리 없었는데 오백오십 계단에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구나.”지금 임정설을 압박하는 것은 단순한 술도의 압력만이 아니었다.과거의 온갖 기억들이 마장이 되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일곱 진인은 모두 임정설의 기운이 혼란스러워진 것을 느꼈다.“장인 사형, 국주님께서 심마에 걸리셨군
청해의 눈길이 자주색 도포를 입은 진인에게로 향했다.서요산검종에서 종주를 제외한 나머지 일곱 명의 진인이 가장 높은 수련을 가지고 있으며 평소 종문 내의 모든 일은 이들 일곱 명이 책임지고 있다.기세는 마치 대강의 파도가 넘실대듯 깊고 끝이 보이지 않는 산과 숲처럼 무한히 이어져 있었다. 그의 수련은 깊이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서요산 7대 진인의 수련이 극 신급 절정이라고 들었는데 지금 보니 그 말이 너무 가볍게 들리네요. 귀하의 수련은 적어도 극 신급 절정 후반에 다다랐군요.”청해는 세 명의 진인에게 경의를 표하며 몸을 굽혔다.“서요산의 전통은 천 년을 자랑하며 그 깊이는 변함없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반면 곤륜 구역은 스스로 신을 자처한 이후로 계속해서 내분을 일으켰습니다. 수련을 통해 세상을 떠난 후 도를 깨닫는다는 말처럼 곤륜 구역은 천하의 영기와 천물을 흡수했지만 제 생각에는 도를 얻지 못한 곳입니다. 지금 당신이 화진에게 올바른 수를 두는 것은 맞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극 신급 절정 후반도 절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한 진인이 답례하며 말했다.그때 몇몇 사람들은 서요산 검객들의 함성에 이끌려 사방을 살폈다. 백호가 사백 계단을 올라갔다는 소식이었다.“대단한데요. 서요산이 전성기였을 때도 사백 계단을 오른 이는 드물었어요. 우리 몇몇 진인들도 입문 시에 사백 계단을 넘은 적은 없었죠.”몇몇 진인들이 칭찬했다.이는 백호가 미래에 매우 큰 가능성을 지녔음을 의미했고 적어도 극 진경 후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극 진경 후반은 곤륜 구역에서 신전의 전주가 될 수 있는 실력이다.지금 사백 계단에 오른 백호는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 완전히 의지로 버티며 강력한 정신력으로 계속해서 오르고 있었다.그러나 아무리 강한 운명을 지녔다 해도 천지의 이치를 막을 수는 없다.사백오십 계단에 도달했을 때 백호는 결국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의식을 잃은 것은 시험이 끝났다는 신호였고 백호는 곧 깨어났다.“겨우 사백오십 계단이라니
서요산 검객들이 모두 그 무인의 정체를 궁금해하자 진인도 더 이상 뜸 들이지 않고 말했다.“저분은 구주왕 휘하의 화진 군신이자 국방부 대장 백호 장군이시다.”검객들은 모두 입이 벌어진 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군신의 명성은 당연히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보호하는 영웅이었으니까.“정말 구주왕 휘하의 군신이라니!”“역시 저런 굳센 의지가 그냥 나온 게 아니었어! 수많은 전장을 누빈 명장다운 모습이다!” 서요산 검객들은 백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현재 백호는 이미 삼백이십 계단을 돌파한 상태였다. 백호가 혼자 주목을 독차지하는 걸 본 청해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고 계단에 발을 내디뎠다.처음 백 계단은 청해도 육신의 힘으로 버텼다. 하지만 백 계단을 넘자 육체만으로는 견디기 어려워졌다. 그는 술법으로 대응하려 했지만 평소 쓰던 빙신전의 신술이 계단 위 술법에는 통하지 않았다.“역시 화진의 서요산 검종은 보통이 아니구나. 이 등천로에선 일반 술법이 먹히지 않으니 천지 영기에 대한 깨달음으로 맞설 수밖에 없겠어.” 청해는 몸을 감싸고 있던 현빙을 거두고 오로지 자신의 속성 영기로만 버티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막상 올라 보니 이 등천로가 얼마나 어려운지 제대로 실감했다. 이백 계단쯤 오르자 벌써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계단마다 한계를 시험하는 느낌이었다. 올려다보니 백호는 여전히 계단 위로 나아가고 있었다. 청해도 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서요산 검객들도 청해의 수준을 알아보고 속삭였다. “저 이역인은 정말 대단한 내력의 소유자다! 기운이 이미 진인 급에 가까워! 극 신급 절정의 수련자임이 분명해!”이에 대해 진인은 신비롭게 꾸미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 “저자는 곤륜 구역 빙신전의 부 전주 청해다. 경지가 매우 높지. 지금 빙신전은 우리 화진에 귀속되었고 청해 역시 구주왕 휘하의 부하가 되었다. 얼마 전 서울 방어전에서 청현과 목숨까지 걸고 사투를 벌인 끝에 죽을 고비를 넘겼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