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구주는 기지에 도착했다. 그 소장은 그제야 흥주에서 발생한 일을 보고했다. “조양국이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 화진의 규조를 대놓고 훔쳐 가고 우리 흥주도 그들의 국토라고 주장하며 우리가 그들의 땅을 침범했다고 합니다. 지금 군사를 일으켜 흥주를 노리고 있습니다.” 소장이 보고했다. 흥주 사령관은 이 일을 처리하러 갔다. 흥주 전역이 경계 상태에 들어가고 군대는 모두 분계선으로 이동하여 구변산에 집결했다. 외적을 분계선 밖에서 막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이미 일부 적군이 분계선을 넘어온 상태였다. “조양국? 남북 두 나라 모두 소란을 피우려는 건가?” 현모가 물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주로 북양국이고 남양국은 견해를 밝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어떤 행동을 할지 알 수 없습니다.” 소장이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 조양국은 그런 배짱이 없어. 그냥 어중이떠중이들이 무슨 큰 일을 할 수 있겠어? 역사를 따지면 남북 두 나라는 원래 우리 화진의 속국이었다.” 윤구주는 차갑게 비웃었다. 전에 그가 왕으로 책봉될 때 두 나라는 아첨하며 비위를 맞추기에 바빴다. “왕의 뜻은 뒤에 다른 지시자가 있다는 건가요?” 이때 청해가 나서서 분석했다. “아마도 빙신전이 뒤에서 지시한 것 같습니다. 아뇨, 곤륜 구역에는 신격이 인간 세계에 나라를 세우는 것을 금지했어요. 하지만 성자는 황제의 제자로서 아직 신위를 받지 못했으니 엄밀히 따지면 곤륜 구역의 사람이 아니에요.” 비록 청해는 빙빙 돌려 말했지만 모두가 이해했다. 성자가 나라를 세우려 한다는 것이다. 흥주가 바로 그 국토다. 그리고 신이 직접 인간 세상을 간섭하지 못하게 하는 신규는 사실 인간 세상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곤륜 구역의 세력을 제한하기 위한 것이었다. 만약 신들이 모두 나와서 나라를 세우면 세상은 혼란에 빠질 것이다. 질서가 무너지면 이미 배분된 이익이 영향을 받을 것이다. “왕, 제가 나설까요?” 현모의 눈에서 살기가 번뜩였다. 그는 조양국을
문씨 가문의 사람들을 매수한 적이 있고 또 육도진과 관계를 맺었기에 후에 윤구주가 새로운 국주가 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이에 따라 윤구주가 흥주에 오자 주승진은 감히 구주왕을 만나지 못했다. 구주왕의 심기를 건드려 목숨을 잃을까 봐 두려웠다. 마침 남조국이 문제를 일으키자 그는 구변산에 숨어 국사를 빌미로 윤구주의 반응을 탐색했다. 하지만 군령이 전해지자 주승진은 즉시 이 군령의 숨은 뜻을 이해했다. 한 마디로 국가에 충성하고 국가를 위해 일한다면 다른 일은 원칙을 어기지만 않으면 구주왕이 일일이 따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승진은 무릎을 꿇고 윤구주가 있는 방향으로 머리를 조아리며 감탄했다. “역시 구주왕이네. 내가 소인배였어.” 곧이어 주승진은 일어났다. 평소 교활하던 그가 지금은 매우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명령을 내렸다. “군령은 절대적이다! 우리 화진 분계선에 들어온 자들은 모두 적으로 간주하여 즉시 처형하라!” “네!” 장군들은 일제히 대답했다. 구변산 방어선은 전면 경계 상태에 들어갔다. 이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화진 군부에 속하지 않은 한 부대가 구변산 방어선에 들어왔고 지금은 구변산맥의 태백산 아래에 도착했다. 이는 태백산 순찰대가 이들을 발견하고서야 주승진에게 소식을 전한 것이었다. 이때, 한 통의 편지가 주승진의 부장에 의해 군영으로 전달되었다. 주승진은 이미 그들이 누구인지 짐작하고 있었다. 편지에 크게 쓴 남궁 가문이라는 네 글자를 보자 그의 동공이 흔들렸다. 남궁 세가는 화진의 오래된 세가로 현재 입장은 불분명하지만 남궁 세가의 후계자이자 화진 제일의 어린 검술자 남궁서준은 구주왕과 각별한 친분이 있다. 주승진은 곧바로 편지를 뜯었다. 편지는 남궁 세가의 가주인 남궁인이 직접 쓴 것이었다. [화사령, 조양의 두 나라가 꿈틀거리며 최근 우리 화진을 자주 도발하고 우리 화진 분계선을 침범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도 알다시피 이 두 작은 나라는 자신들의 일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데 감히 우리
주승진은 마침내 기운을 차렸다. 한편, 윤구주는 주승진이 전해준 편지를 받았다. “남궁 가문이 태백산으로 갔어!” 윤구주는 더 이상 침착할 수 없었다. 남궁 가문은 그의 계획을 알지 못했다. 남궁 가문은 단지 구주왕이 곤륜 구역의 두 대신전을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압박감을 느끼고 있어 흥주를 돌볼 여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윤구주가 이미 흥주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몰랐다. “주인님, 남궁 세가 말인가요? 그 가문에는 남궁서준만이 그래도 좀 쓸 만하죠. 하지만 그 녀석은 아직 어린데 뭘 하러 갔대요? 목숨을 바치러 갔어요?” 옆에 있던 청해는 입을 쩝쩝거리며 말했다. 말은 거칠지만 현실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이번 사건은 남궁 가문 하나가 목숨을 내놓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윤구주는 이전 청관 전투에서 남궁 가문이 왜 사람을 보내지 않았는지 궁금했는데 이제야 알았다. 그들은 흥주 전투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제 보니 미리 출발해야겠군.” 윤구주는 즉시 현모를 데리고 태백산으로 향했다. 정보가 부족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다. 남궁서준은 화진의 큰 인재다. 비범한 인재이자 왕실에서 봉한 어린 후작이다. 화진 무술의 미래를 이끌 인물이며 윤구주가 친동생처럼 여기는 동료다. 그는 절대 위험에 빠져서는 안 된다. 흥주 군무는 주승진에게 맡긴 윤구주는 곧바로 현모와 함께 출발했다. 원래 청해도 따라가려 했지만 윤구주는 그를 흥주에 남겨 두고 지키게 했다. 이것은 청해에게는 좋은 소식이었다. 그가 쓸모가 있다는 뜻이었다. 이용당하는 것은 두렵지 않지만 이용당할 가치조차 없는 것이 더 두려운 것이다. 태백산은 구변산의 최고봉으로 산의 절반은 조양국에 속해 있다. 따라서 조양국이 원한다면 곤륜 구역의 사람들이 여기서 수련해도 화진은 간섭할 수 없다. 이 눈 덮인 산은 빙신전의 황자 제자가 수련하고 은둔하는 곳이다. 하얀 도포를 입고 검을 메고 있는 한 무리의 검객들이 산을 오르고 있었다. 그들은 곤
세 부대가 동시에 움직이는 동안, 태백산의 기상이 갑자기 변하며 대폭설이 내리기 시작했다. 한 층의 붉은 빛이 번쩍였고 수백 리 밖에서도 이 빛을 볼 수 있었다. 아무도 이 갑작스러운 붉은 빛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다. 태백산 기슭에서 윤구주와 현모가 동시에 붉은빛을 보았다. “왕, 이건 봉인 술법인 것 같아요.” 현모가 의심하며 말했다. “그래, 빙신전의 놈들이 이미 남궁 가문을 발견한 모양이야. 그 술법은 내외계의 연결을 차단하기 위한 거야. 이 폭설도 그들이 일으킨 것이다.” 윤구주는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만약 이 술법이 수련자가 발동한 것이라면 윤구주는 그것을 파괴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술법은 어떤 법기를 통해 천지의 기운을 끌어와 발동된 것이고 그 법기는 매우 잘 숨겨져 있어 윤구주의 신념술로도 탐지할 수 없었다. 따라서 술법을 파괴할 수 없었다. 윤구주가 황자 제자의 궤변을 비난하는 순간, 또 다른 술법이 더해져 윤구주의 신념술에도 영향을 미쳤다. “신념술에도 문제가 생겼어. 나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도면 그 법기의 등급이 낮지 않아.” 윤구주는 진지하게 말했다. “왕, 그럼 남궁 가문의 사람들은...” 현모는 눈살을 찌푸렸다. 남궁 가문은 단지 무술 세가일 뿐이다. 전통 무술은 곤륜 구역의 수도 세력과 비교할 수 없다. 둘 사이의 격차가 너무 커서 두 사람이 도착하기 전에 남궁 가문이 전멸할까 봐 걱정되었다. “남궁 가문의 사람들은 정말 안 되겠어. 가주도 겨우 팔부 동천 신급 경지에 진입했고 그 외의 남궁 가문 고수들은 단지 무술 대가일 뿐이야. 단련도 제대로 되지 않아 수련자를 만나면 죽을 수밖에 없어. 하지만 남궁서준은 실력이 많이 늘었어. 위험에 처하면 내가 도착할 때까지 버틸 수 있을 거야.” 윤구주가 말했다. “서준 동생이요? 지금 어떤 경지에 올랐는지 궁금하네요.” 현모의 눈이 반짝였다. 남궁서준은 4대 군신과도 매우 친한 사이였다. “왕, 지금 핵심은 남궁 가문이 우리가 온
폭설은 산을 오르는 것에 큰 영향을 주었다. 더 심각한 것은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이다. 지금 시간은 오후 3시밖에 되지 않았다. 계절을 감안하면 5시나 6시가 되어야 해가 지는 시간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른 시간에 어둠이 내려앉았고 산 중턱의 남궁 가문 일행은 손을 뻗어도 손이 보이지 않았다. 중대 병사들은 탐조등을 켰지만 그래도 시야는 매우 나빴다. 그때,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며 한기를 느꼈다. 모두가 몸을 떨었다. 일행 중 청포를 입은 사람의 등의 검이 자동으로 칼집에서 빠져나왔다. “아버지, 살기가 느껴집니다.” 그 사람은 일행 맨 앞에 있는 남궁인에게 경고한 후, 천천히 청포를 벗고 바람 속으로 던져 버렸다. 청포를 벗자 약간 앳된 얼굴이 드러났다. 겨우 열다섯, 열여섯 살 정도로 보였다. 그는 다름 아닌 비범한 인재, 어린 후작, 남궁 가문의 후계자 남궁서준이었다. 남궁서준은 갑옷을 입고 있었다. 그것은 아주 오래전 그의 윤구주 형이 준 갑옷이었다. 갑옷은 곤륜 구역에서 만들어졌다. 화공두타를 위해 직접 제작했으며 곤륜 구역의 신철 청석으로 만들어졌다. 갑옷은 법기에 속하며 불 속성을 가지고 있어 물 속성을 억제하는 특성이 있다. 이 갑옷을 남궁서준은 한 번도 입어본 적이 없었다. 항상 보물처럼 간직해 왔다. 이제 이 갑옷을 입은 것은 이번 작전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것이었다. 슉! 검이 칼집에서 빠져나왔고 검의가 삼척 청봉에 모였다. 검 안에는 신화가 타오르고 있었다. 갑자기 남궁인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는 아들이 이렇게 진지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이는 적의 실력이 매우 강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남궁인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외쳤다. “남궁 가문, 검진을 펼쳐라!” 백 명의 검이 칼집에서 빠져나왔고 남궁인도 세가에서 전해 내려오는 검을 뽑아 검진의 선두에 서서 진을 주관했다. 남궁 가문이 이렇게 긴장하자 따라온 중대 병사들도 긴장했다. “1소대, 2소대, 3소대, 모두 전투 위치로 이동해! 잘 지켜봐!
‘이것이 정말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인가? 드라마에서 묘사되는 무림 고수들보다도 더 강력해!’ 이 한 방의 검술로 중대 병사들이 감탄을 자아냈지만 남궁인은 기쁘지 않았다. 그는 검기가 정확하게 목표물에 명중했지만 제대로 된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아챘다. 검기가 닿자마자 사라져 버렸다. 남궁서준의 이 한 방이 엄청 강력했다. 화진 무술계에서 이를 막을 수 있는 자는 없었다. 심지어 그의 아버지조차도 막을 수 없었다. 남궁서준의 검술은 구주왕에게서 전수받은 것이었다. 구주왕의 봉왕팔기는 완전히 깨우치지 않고 그중 하나만 배워도 화진에서 무적이 될 수 있다. 만약 윤구주와 같은 경지에 이르러 한 기술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든다면 곤륜 구역에서도 이름을 날릴 수 있다. 하지만 이 한 방조차도 상대를 뚫지 못했다. “제 검기가 이 살기를 뚫지 못했어요. 이 기운은 어딘가 익숙한데. 기를 형체로 만드는 것은 인간 세상의 기술이 아니에요.” 남궁서준은 진지하게 말했다. 으르렁! 남궁서준이 이 자가 누구인지 떠올리려고 할 때 앞에서 무시무시한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백 장 크기의 백호가 모두의 시야에 들어왔다. 절세의 흉기가 밀려왔고 남궁 가문의 검진은 이 흉악한 기운에 의해 바로 무너졌다. 중대 병사들도 상황이 좋지 않았다. 그들은 이런 흉물을 본 적이 없었다. 이 장면은 너무나도 환상적이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남궁인의 눈은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그가 놀란 것은 흉악한 기운 때문이 아니었다. 이것은 곤륜 구역 수신전의 공법이었다. “이건 단절된 성수인이에요. 구주 형님이 성수결을 얻은 후 이를 자신의 통솔하에 있는 4대 군신에게 전수했죠. 현모는 방어에 능하고 주작은 암살에 능하며 백호는 살육을 주관하죠. 4대 군신 중에서도 가장 흉악한 자예요.” 남궁서준은 말하며 검날을 가볍게 문지르고 있었다. “헉! 그럼 이 자가 백호다. 하지만 백호는 구주왕의 사람 아닌가? 우리 화진의 군신인데 어떻게 우리를
곧이어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그리고 절단된 사지가 날아갔다. 피가 눈밭에 떨어지며 눈부신 광경을 연출했다. 한 명 또 한 명의 남궁 가문 고수들이 쓰러졌다. 중대 병사들도 칼날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무술 고수들을 상대하기 위해 그들은 출발 전 방탄복 안에 강판을 추가로 넣었지만 칼날 앞에서는 종이처럼 무너졌다. 칼날이 내리치며 인체가 절단되었고 심지어 손에 든 무기도 함께 잘려 나갔다. 병사들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죽는 것은 너무나 억울했다. 많은 병사가 수류탄을 들고 백호에게 자폭하려고 달려갔지만 몇 걸음도 가지 못하고 칼날에 의해 잘려 나갔다. “천강호체!” 남궁서준은 긴급히 방어 검술을 발동했다. 기로 몸을 보호하며 백 미터의 결계를 형성해 두 부대를 간신히 보호했다. 일 분도 되지 않아 인원이 절반 이상 죽거나 다쳤다. 중상을 입은 자들은 제외하고도 움직일 수 있는 자는 고작 50여 명뿐이었다. 주변에서 금속 충돌음이 연속적으로 들려왔고 칼날이 검기에 부딪히며 불꽃이 튀었다. 남궁서준의 얼굴은 창백해졌다.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방어뿐이었다. 만약 혼자였다면 반격할 여지가 있었겠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버리고 갈 수는 없었다. 남궁인은 아들이 그들을 보호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아챘고 그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서준아! 올 때 내가 너에게 뭐라고 했는지 잊었어? 오늘은 남궁 가문을 모두 버려도 화진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해! 우리를 신경 쓰지 마. 만약 빙신전의 마인을 처단할 수 있다면 아비는 구천 아래에서도 눈을 감을 수 있어!” “아버지!” 남궁서준은 이를 악물었다. 남궁인은 그를 가장 아끼는 아버지였다. 남궁인 외에 다른 남궁 가문 사람들도 모두 남궁서준의 가족이었다. “남궁서준! 진정한 강자가 되려면 이 관문을 넘어야 해. 너 화진 제일의 검이 되고 싶지 않았니?” 남궁인은 남궁서준이 망설이는 것을 보고 다시 큰 소리로 외쳤다. 망설일 시간이 없었
“후퇴! 모두 후퇴해!” 견배영은 그들이 백호를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람을 구하지 못할망정 자신들까지 위험에 빠질 수 있었다. 부대는 전속력으로 후퇴했다. 견배영은 공중 사격을 명령했다. 목적은 소음을 내어 구주왕에게 그들이 여기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었다. 탕 탕 탕! 30여 대의 전투기가 화력을 퍼부었다. 산 아래의 윤구주와 현모는 소리를 듣고 즉시 이곳으로 날아왔다. 화력은 폭설을 일으켜 눈사태가 발생했다. 굴러내려 온 눈더미는 아래의 일행을 휩쓸었고 헬리콥터도 급히 상승했다. 몇 분 후, 현모와 윤구주가 근처에 도착했다. 공중에 떠 있는 현모와 윤구주는 아래를 내려다보았지만 눈사태로 인해 남궁 일행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전법의 영향이 점점 강해지고 있어. 젠장, 신념술이 완전히 먹히지 않아.” 윤구주는 욕을 내뱉었다. 사람을 찾을 수 없었지만 백호의 살기는 여전했다. “왕, 이건 백호의 성수인이에요! 설마 백호도 문씨 가문에게 혼을 빼앗긴 건가요?” 현모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정말 그렇다면 문씨 가문은 죽어 마땅했다. “아니, 자세히 봐. 백호의 성수인 안에 빙신전의 부적이 침투해 있어. 아마도 빙신전이 백호의 천술을 통제한 것 같아.” 윤구주는 눈으로 탐색하며 말했다. 백호의 성수인은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신념술이 영향을 받아 배후의 인물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태백산이 이렇게 큰데 윤구주가 산 전체를 옮길 수도 없었다. 그래서 윤구주는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다. “이 전법은 천지의 기운과 연결되어 있어. 내가 여기의 지맥을 잠시 봉인하면 돼. 아니, 지맥은 땅 아래에 있으니 하늘의 기운을 봉인하자.” 윤구주는 봉왕팔기 중 하나인 봉천파진을 발동하려 했다. 바로 그때, 깊은 산속에서 한 통의 전음이 들려왔다. 이 소식을 들은 윤구주의 얼굴이 변하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 녀석이 스스로 자신을 노출해 나를 유인하다니. 날 전혀 신경 쓰지 않는구나.” 그리고 천지
단 한 걸음,그 한 걸음만 넘기면, 그는 곧 성급 바로 직전 경지에 이른다.그리고 그 마지막 문턱을 박살내는 순간 반쯤 성인이 된 경지, 반성급이다!지금 이 자리, 그 반성급 경지에 선 자는 바로 인마라고 불리는 무명이었다.“과연... 화진의 인황, 구주왕이라 불릴 자격은 있군. 하지만 너도 알겠지. 지금 네 수준으론 몸을 직접 이 판에 던지지 않는 이상 나랑 맞붙을 자격조차 없어. 네가 그 잘난 원신출체를 어떻게 하겠다는지 구경이나 해보자고. ”무명이 입꼬리를 비틀며 코웃음쳤다.팔기귀일에 도달한 윤구주의 전투력은 이미 황의 지경을 뛰어넘었다.하지만 무명과의 경지 차이는 여전히 너무 컸다.실력은 분명 엄청났지만 격이 다르였다.지금 상태로도 보통의 황자의 경지까지 초월한 상태지만 무명을 상대하긴 아직 한참 부족했다.심지어 무명이랑 싸울 실력은커녕 참마검조차 손에 제대로 못 잡는 게 현실이었다.“팔기로 부족하다면... 제구기는 어때? 구기:적선!”부우우우웅!윤구주의 온몸을 하얀 선기가 감싸는 순간 방금 전까지만 해도 비웃고 있던 무명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뭐라고? 이건 네 따위가 쓸 수 있는 기술이 아니잖아! ”그 순간, 무명조차 숨을 삼켰다.이건 상식의 틀을 깨부수는 광경이었다.근대에 들어서면서 도에 대한 수련는 사실상 약해졌다.그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세상에 흐르는 천지영기가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봉신전쟁 당시, 상상을 초월하는 영기가 소모됐고 그 전쟁이 끝난 후 곤륜구역은 세상의 영기 90%를 신계에 봉인해버렸다.거기서 마음껏 영기를 탕진한 것도 모자라 바깥의 산수들까지 무분별하게 빨아들인 탓에세상의 영기는 걷잡을 수 없이 줄어들고 말았다.결국 세상은 고위 수련자가 태어나기 어려운 구조가 되었다.그래서 화진에선 500년에 한 번 황자가 나올까 말까 할 정도이고 황자의 경지에 도달하는 건 지독하게 어려운 일이었다.임정설이 황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처음부터 그가 강해서가 아니라 윤구주를 돕기 위해 왕
마기가 검종 제자들의 혼백에 침투하자 그 순간 제자들의 몸에서 시커먼 마기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이를 목격한 장인 대진인은 망설임 없이 즉시 결단을 내렸다. 오염된 제자들을 그 자리에서 곧바로 정화해 버린 것이다.“모든 제자들아, 입문 첫날 내가 분명히 말했을 것이다. 서요산은 찬란한 성지 화진 정통의 계승지다. 정은 사악함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정은 사악함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말은 바로 서요산 제자들이 평생 가슴에 새기며 살아가는 도의였다.입문과 동시에 깨달음을 얻은 그들은 언젠가 반드시 도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저 화진 정통의 수호자가 되기 위해서였다.그 순간 진요탑 외곽에서는 7대 진인을 중심으로 전 종문 제자들이 목숨을 걸고 진요탑을 사수하고 있었다.하늘을 뒤덮을 듯한 마기의 기세는 점점 거세져 어느새 검종의 경내 전역을 삼켜버렸다.검종 제자들은 마기를 막아내면서도 동시에 진요탑의 결계를 유지해야 하는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정도를 지키는 일은 그만큼 고통스럽고 힘든 투쟁이었다.산 아래 상황도 마찬가지로 치열했다.온갖 요괴와 귀신들이 들이닥치는 가운데 임정설은 황운을 등에 업고 이씨 가문의 국운을 모두 모아 홀로 수백만 마기를 막아서고 있었다.백호는 마인으로 완전히 변신해 광란의 충격 속으로 몸을 던졌고, 스스로 마를 품은 채 적진을 난도질했다.청해는 천뢰신술을 펼쳐 수만 개의 천뢰를 무기로 변환시켜 온갖 사도와 악귀를 쓸어내기 시작했다.그 무렵 진요탑 내부에서 풍무극의 기세는 이미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구주야, 내 한계에 도달했다. 이제 내 500년 수련의 혼을 너에게 바치겠다."”풍무극의 준비는 이미 완료되었다.그는 미리 준비해 둔 제천 법기를 꺼냈고 전법이 발동되는 순간 그의 육신은 산산조각 부서졌다.그의 정기와 천지 정기를 모두 품은 찬란한 진신 영혼은 한 자루의 참마검으로 변해 윤구주 앞에 떠올랐다.“풍 종주...” 윤구주는 입술을 깨물었다.슬프고 아쉬
윤구주가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새로운 국운의 기운이 그의 발밑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그가 진요탑의 문에 도달했을 무렵 모든 국운이 윤구주에게 집중되었다.윤구주의 주변으로는 천인신광이 펼쳐져 있었다.이 순간만큼은 그가 천지의 주재자 화진의 영겁을 관통한 유일한 존재였다.윤구주는 홀로 진요탑 안으로 들어섰다.겉보기에 거대한 산 같았던 진요탑의 내부는 참혹한 말세의 풍경이었다. 땅은 끝없이 펼쳐진 용암으로 뒤덮여 있었고 하늘에서는 강줄기가 거꾸로 흘러내리고 있었다.불과 물이 충돌할 때마다 하늘과 땅을 뒤흔드는 격렬한 폭발이 일어났다. 그리고 거꾸로 흐르는 강물 위에 한 노인이 앉아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백발이 성성한 그 인물은 다름 아닌 서요산 검종의 종주였다.밖에서 보이던 강건한 중년의 모습은 단지 화신에 불과했으며, 본체는 수백 년 전부터 이 진요탑에서 마인을 봉인해 왔다.서요산 검종 종주는 극도로 지쳐 있었고 이제는 마지막 호흡으로 버티고 있었다.“드디어 왔구나.” 서요산 검종 종주는 허약한 전음으로 말을 건넸다.“오백 년 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종주님.” 윤구주는 고개를 숙였다.풍무극은 현 서요산의 종주이자 당대 최고의 영웅, 화진 제일 검으로 불리던 남자였다.원래는 풍속을 다루는 수련자로 젊은 시절엔 검 하나로 화진을 호령한 사내로 알려졌다.그의 검은 아무도 궤적을 볼 수 없었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였다.하지만 500년 전 마인이 봉인되고 서요산의 조사가 승천한 후, 풍무극은 서요산의 거자로서 종주의 자리를 이어받았다.그날 이후 진요탑에 몸을 묻고 마인과의 싸움을 500년간 지속해 왔다.풍을 다루던 그였지만 지속적인 봉인을 위해 익숙하지 않은 수속까지 수련하며 지금까지 버텨왔다.그가 마도에 빠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이미 기적이었다.“그래도 괜찮다. 다행히 이 시대에 또다시 인황이 나왔으니. 화진은 연달아 두 명의 인황을 배출했다. 임정설이 인황에 등극한 지금 쇠락하던 이씨 가문의 국운이 다시 살아났다. 그가 천지의
마인이 출현하면 곤륜 구역조차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서요산 검종의 진요탑은 이미 오백 년 동안 그 자리를 굳건히 지켜왔다.이는 곧 그 마인이 오백 년 동안 진요탑 안에 봉인되어 있었음을 의미했다.“우리가 가진 유일한 이점은 저 마인이 지난 오백 년간 수련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그 오백 년 동안 분명 무언가를 '깨달았을' 가능성도 있겠지요. 정도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사도가 존재하는 법입니다. 만약 그가 이곳을 벗어나 다시 한번 돌파에 성공하여 진정한 성인의 경지에 오른다면… 그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예전 우리 종문의 선대 종주께서 이 마인을 직접 봉인하셨습니다. 하지만 선대 종주께서는 진요탑만으로는 그를 완전히 봉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찍이 아셨지요. 그래서 마침내 구천으로 비상하셔서 바깥 세계에 존재한다는 신기를 찾기 위해 떠나신 것입니다.”장인 대진인이 비밀을 털어놓자 임정설은 왜 그 옛날 서요산 검종을 창립한 선조가 갑자기 사라졌는지 이해했다.“구천을 비상했다고? 전설 속 그 이야기 설마 전부 사실이었단 말인가? 이 세상 위에 더 위대한 세계가 있다는 건가?” 임정설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을 이었다.“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들은 바로는 성인이란 육지에서 신선이 된 자를 이르는 말이고 준성은 그보다 한 단계 아래 반쯤 신선이 된 존재라 하더군요. 우리보다 더 풍부한 영기의 세계가 과연 존재하는지는 이 몸 역시 감히 짐작할 수 없습니다.” 장인 대진인은 고개를 저었다.그때였다.진요탑이 거칠게 흔들렸고 모든 호법 제자의 얼굴이 딱딱해졌다.수련이 부족한 제자 몇몇은 그 자리에서 마기의 침식으로 피를 토했다.“모든 제자에게 고한다. 나와 함께 현문을 수호하라.” 장인 대진인이 친히 자리에 앉아 온 종문의 기운을 모아 마인을 억제하기 시작했다.마인은 일시적으로 제압되었지만 산 밖의 요괴들과 악귀들은 마기의 부름을 받아 사방팔방에서 서요산으로 몰려들고 있었다.임정설은 이제 자신이 이곳에 온 진짜 이
“저하,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그를 죽여야 합니까? 저자의 기운이 이토록 흉악한데 성수의 혈기로 진압할 순 없습니까?” 백호는 이미 싸우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안 된다. 너희 네 명이 함께라면 잠시나마 억누를 수는 있겠지만, 너희는 그저 성수의 정혈을 가졌을 뿐이니 마인을 완전히 없애려면 성수가 직접 나타나야 한다. 지금 이 세상에 성수가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스럽다.”윤구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말을 마친 윤구주는 곧장 진요탑 쪽으로 향했다.백호와 임정설, 청해가 함께 가서 돕고자 했으나 장인 대진인이 그들을 가로막았다.“이 마인은 오직 구주만이 상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중요한 임무가 있습니다. 국주님, 곧 전투가 시작될 터인데 서요산의 진법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 호법의 중임을 몇 분께 맡기겠습니다.”장인 대진인이 임정설에게 경건하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좋다. 오늘 이 자리에서 목숨을 바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저 마인을 죽이고야 말겠다.” 임정설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황자의 위엄을 한껏 드높였다.화진의 존망이 걸린 일이라면 임정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하지만 마기가 몰려와 서요산 전체를 뒤덮고 세상이 오직 흑백 두 가지 색깔만으로 변해버리며 그 끔찍한 살기가 강림했을 때 임정설마저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떨렸다.“이 마인의 기운이 이렇게까지 무서울 줄이야.” 임정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마기로 가득 찼고 윤구주마저 그 기세에 눌리고 있었다.진요탑에서 흘러나온 마기는 실체가 되어 넘쳐흘렀다. 마기가 나타나자 서요산을 지키는 모든 검종 제자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어떤 제자는 순간적으로 십여 년을 늙어버렸다.수련이 부족하면 수명으로라도 채워야 하는 참혹한 상황이었다.웅웅.하늘에는 먹구름이 밀집했고 그 안에서 요괴의 번개가 끊임없이 터졌다.“이젠 영기조차 요기로 변하고 있다. 풍수 비술로 보건대 머지않아 이곳에서 요마가 출현하겠구나.” 임정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요산 외부에서 짙은 요기
도가는 인연이라는 두 글자를 대단히 중히 여긴다.그의 한 번의 인연, 한 번의 생각은 곧 만백성의 생사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윤구주가 정상에 오르자 앞서 온 다른 이들과는 달리 서요산 검종의 모든 이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여 깊은 존경을 표했다. 그들이 경배한 대상은 단순한 한 인간이 아니라 구주의 저하, 화진의 인황, 오방 천지의 주재자였다.“모두 일어나십시오. 제가 오늘 서요산에 온 이유는 오직 진요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진요탑 안의 마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문 씨 세가의 역심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마인을 죽여야만 문 씨 세가의 야심도 함께 근절할 수 있습니다.”윤구주는 서요산 검종의 모든 제자를 향해 엄숙하게 말했다.이번 서요산 행차의 목적은 바로 문 씨 세가의 역심을 뿌리째 뽑는 것이었다.검종 제자들이 앞장서 일행을 이끌었고 모두가 금정을 지나 뒷산으로 향했다.뒷산에 막 들어서자마자 음산한 기운이 얼굴을 스쳤다.후산 중앙에는 높이 오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산이 서 있었는데 그 산은 무려 구백구십구 개의 쇠사슬로 단단히 봉인되어 있었다.이 쇠사슬은 그저 평범한 사슬이 아니었다. 절반은 땅속의 지맥과 연결되어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하늘 높이 떠올라 천지의 영기를 끌어모으고 있었다.이런 수준의 봉인이라면 설령 윤구주 자신이 여기에 갇혀 있다고 해도 빠져나가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이처럼 견고한 고진마저 지금은 마인의 사기로 조금씩 부식되어 가고 있었다. 본래는 영기가 흘러넘치는 명산이었으나 지금은 온 서요산이 마인의 기운에 물들어 음침하고 괴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이 강렬한 악기운을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모두 얼굴을 찌푸렸다.솟구치는 사기를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찌푸렸다.최근 몇 대에 걸쳐 입종한 서요산의 제자들은 이런 마인의 사기와 요마의 위협 속에서 수련해야 했다.천지의 영기조차 마인의 기운에 오염되어 수련에 큰 지장을 주었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남은 현
이 말을 듣자 모든 이들은 천 년 전 마지막으로 나타난 그 성인이 바로 서요산 검종에서 나왔음을 깨달았다.“짐은 서요산 검종의 선대 종주께서 우화등선하셨다고만 들었는데 그저 떠도는 신화 속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더니 은 성인의 경지에 이르신 것이었군.” 임정설이 깊은 감탄과 함께 말했다.구백 계단 윤구주는 이미 전설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하지만 그 전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구백삼십 계단 사십 계단을 오르면서 윤구주의 발걸음은 오히려 더욱 가벼워졌고 그가 세우는 기록은 사람들의 상식을 계속해서 뒤흔들었다.구백팔십 계단을 지나 정상까지 겨우 십여 계단만 남은 그 순간 윤구주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구백구십구 계단에 이르러 결국 완전히 멈추었다.드디어 한계에 도달한 것인가?모두가 숨을 죽이고 윤구주를 지켜봤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분명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시험일 터였다.윤구주는 미간을 찌푸린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십여 분을 견뎌냈다. 사람들은 그가 언제 다시 계단을 오를지 초조하게 기다렸다.마침내 윤구주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됐습니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넘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시험을 포기하지요.”말을 마치고 계단에서 내려서는 순간 청석 계단 아래에서 강력한 영기가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쳤고 곧바로 서요산을 감싸던 어둠의 기운을 깨끗이 몰아냈다.오랫동안 음울했던 서요산 상공은 순식간에 환해졌고 수백 킬로미터에 걸쳐 맑은 하늘이 펼쳐졌다.서요산의 모든 이들은 충격에 빠져 넋을 잃었다.그제야 그들은 윤구주가 왜 그토록 여유롭게 올라올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처음부터 서요산의 청석 계단이 가진 진법의 힘을 계속해서 억누르고 있었다.“참으로 대단하신 신위군요! 우리 서요산의 청석 진법마저 제압하셨다니! 마지막 한 걸음을 분명 넘으실 수 있었을 텐데 혹시 강제로 넘었다가 진법이 견디지 못해 영기가 새 나가고 진법이 무너져 진요탑까지 영향을 미칠지 걱정하신 건 아닌가요?” 장인 대진인이
도법의 깊이는 워낙 심오해서 임정설조차 제대로 가늠할 수 없었다.“쉽게 말씀드리자면 구주는 천지의 운기를 완전히 장악한 데다가 하늘이 직접 영광을 내리신 거죠.” 장인 대진인이 말했다.임정설은 이 말을 듣고 비로소 이해한 듯 말했다.“대진인의 말은 윤구주가 바로 하늘이 점지한 사람이라는 뜻인가?”“맞습니다. 우리 화진 사람들은 운명의 갈림길에 서면 본심에 따라 도법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깁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사는 다하고 하늘의 뜻을 따르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윤구주는 분명 큰 복을 타고났지만 그 엄청난 복을 감당할 힘도 필요합니다.”대진인이 설명했다.말이 끝날 무렵 윤구주는 이미 육백삼십 계단을 거뜬히 올라와 있었다.한 걸음도 멈추지 않고 더욱 확고한 걸음으로 계속 전진했다.그의 발걸음마다 천지의 기운이 응축되었다.어느 순간 서요산의 계단조차 윤구주의 기세를 가두지 못했다. 그는 마치 천지를 밟으며 오르는 듯했다.곧이어 그는 칠백 계단마저 돌파했다.칠백 계단이란 천 년 전 서요산의 전성기에도 극소수만이 도달할 수 있었던 경지였다. 지금 만약 윤구주가 구주왕이 아니라 일반 수련자였다면 이 기록만으로 서요산 전체가 들썩였을 것이다. 만일 윤구주가 서요산에 입문을 원했다면 서요산은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 그를 키웠을 것이며 서요산 검종의 다음 종주 자리는 당연히 그에게 돌아갔을 것이다.그러나 이미 칠백 계단에 이르렀음에도 윤구주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칠백오십 계단 팔백 계단 팔백오십 계단!그는 끊임없이 정상의 기록을 깨며 전설을 써 내려갔다.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윤구주 앞에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을 것 같았다. 이쯤 되자 장인 대진인조차 감히 그를 함부로 평가할 수 없었다.왜냐하면 자신도 과거에 겨우 칠백 계단에 그쳤으니 팔백 계단을 오른 사람을 감히 평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윤구주는 멈추지 않고 계속 올라갔다. 마치 천지를 흔들어 이 강산을 뒤엎어버리겠다는 기세였다.그리고 마침내 구백 계단에 이르렀다.“구백
하지만 한 계단씩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난관들도 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만약 윤구주와 맞서야 하는 적의 입장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차분히 계단을 오르는 윤구주는 마치 깊은 심연 그 자체였을 것이다.그의 강력함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가 올라올수록 위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압박감에 휩싸였다.검종의 검객들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윤구주는 이미 사백 계단까지 올라와 있었다.하지만 사백 계단쯤으로는 아무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화진의 또 다른 황자 구주왕의 후계자였으니까.윤구주가 오백 계단을 밟는 순간 모든 이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응시했다.눈길을 떼지 못한 채 그의 오름을 지켜보았다.오백일…… 오백이십! 오백오십! 오백구십구!“마침내 구구관에 도달했다.”“칠구는 수겁이요 구구는 극히 넘기기 어려운데.”진정한 고수들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과연 윤구주가 이 한 걸음을 쉽게 넘을 수 있을지 모두가 궁금해했다.윤구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그가 본 것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마치 화진의 온 세상 같았다.한눈에 화진의 대지와 산천이 모두 담겼다.눈앞에 펼쳐진 화진의 아름다운 대지는 숨 막히는 광경이었다.하지만 동시에 이 끝없는 강산 곳곳에 묻혀 있는 수많은 해골도 함께 보였고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비장함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윤구주의 내면을 감지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이 곧바로 그의 곁에 나타났다.“구주야 화진의 산천을 잘 살펴봐! 천하의 용맥은 모두 화진에서 비롯되었고 이 한 획 한 획은 백성의 척추와 같다! 눈에 비치는 물의 맑고 흐림은 중요하지 않아. 지나치게 눈 부신 빛은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너무 어두운 밤은 희망을 앗아가기 마련이지.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화진의 이 산천은 영원히 굳건히 서 있을 거야. 왜냐하면 푸른 산마다 묻혀 있는 충신의 뼈와 넋들이 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까.”서요산 검종 종주는 윤구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 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