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을 들은 정태웅이 눈이 벌게져서 소리쳤다."저는 그딴거 신경 쓰지 않습니다. 화진이 혼란에 빠지든 말든 저는 형수님이 복수를 해야겠습니다. 형수님을 그렇게 만든 자식들을 제가 찢어 죽여야겠다고요."정태웅이 이성을 잃고 소리치자 곁에 있던 박창용이 그를 혼냈다."그만하시오! 전하의 지시에 따르시오.""박창용, 왜 이렇게 겁쟁이가 됐어? 형수님이 저렇게 됐는데 설마 하나도 화가 나지 않는다고? 예전에 천하를 호령하며 만명의 병사를 이끌고 전쟁에 나가던 그 패기는 다 어디로 간 거야?"정태웅이 박창용을 도발하자 그가 순간 화를 참지 못하고 앞으로 나서며 정태웅의 멱살을 잡았다. "너 이자식 지금 나한테 겁쟁이라고 했어? 너 나한테 죽고 싶어?""왜, 한 번 해 볼래? 내가 널 무서워 할 것 같아?"정태웅과 박창용이 금방이라도 싸우려고 들자 윤구주가 크게 소리쳤다."다들 그만해!"그 말이 마치 어떤 주문이라도 되는 듯 금방이라도 검을 뽑을 것 같았던 두 사람이 순간 자리에 멈췄다.윤구주가 두 사람을 매섭게 노려보더니 입을 열었다."나를 생각해서 그런다는 거 알아. 하지만 기억해. 내가 살아있는 이상 나는 이 화진의 왕이야.그러니까 나는 왕으로서 화진의 백성들을 돌 보지 않을 수 없어.""그리고 이 복수는 나 혼자서도 충분해.""군형은 말할 것도 없고 나라를 쓸어 버린다고 해도 나 혼자서 충분해."그 패기 어린 말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침묵했다.그래.윤구주가 어떤 사람인가? 열개의 나라를 상대로도 혼자서 싸울 수 있는 사람인데 겨우 군형 하나가 뭐 대수라고."그러니까 지금 당장 진정해.""특히 정태웅, 민규현 그리고 천현수. 너의 세 사람.""너희는 암부에 있는 사람들이니까 우리랑은 신분이 달라. 너희가 암부의 정예병들을 움직이면 국방부에서 난리가 나게 될 거야. 그래서 서로 전쟁이 일어나는 걸 정말 보고 싶은 건 아니겠지?"윤구주의 호통에 세 사람이 고개를 떨구었다."다들 똑똑히 기억해. 나 윤구주, 왕으로 태어
조용한 방 안.안색이 창백한 소채은은 여전히 혼수상태로 침대에 누워 있었고 그 옆으로 다가가 윤구주가 그녀의 차가운 손을 꼭 쥐었다. 그가 눈시울을 붉혔다. 그녀는 반나절 전까지만 해도 기뻐하며 자신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잔인하다는 천시고중에 당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윤구주는 지금 이 상황이 견딜 수 없었다. 게다가 두 사람은 곧 결혼 하기로 약속까지 했었다. "채은아."윤구주가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를 부르며 그녀의 차가운 손을 꼭 잡았다.그러자 누워 있던 소채은이 그의 마음을 전해 듣기라도 한 듯 기다란 속눈썹을 움찔 떨더니 눈물 한방울을 흘렸다.그녀의 눈물을 본 윤구주의 가슴이 찢어질 듯 했다."채은아.""걱정하지 마. 내가 널 꼭 살려 줄게.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살려 줄테니까..."말을 마친 윤구주가 자신의 팔을 내밀고는 그 위에 손가락으로 한 줄 그었다. 그러자 그의 팔에 혈흔이 비치는가 싶더니 피가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는 지금 자신의 피로 소채은을 살리려 하고 있었다.알고 보니 윤구주가 말했던 유일한 치료 방법은 바로 자신의 체내에 있는 기운을 소채은에게 보내는 것이다. 왜냐하면 신급의 기운을 담고 있는 혈액이 그녀의 몸 속에 있는 천시고충을 죽일 수 있었으니까. 윤구주는 현재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신급의 경지에 올라 있었다.그리고 그가 수련한 '구양진용결'에는 몸을 보호하는 효과도 있었기에 그의 피는 소채은의 체내에 흘러 간 뒤 '구양진용결'의 공법에 따라 고독을 죽일 수 있었다.하지만 그런 방법이 있다고 했을 뿐 그걸 실제로 사용하는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그의 사부인 귀의조차 시도해 본 적이 없는 방법이었다. 윤구주도 이 방법을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현재로서는 유일한 방법이었다.윤구주의 팔뚝에서 흘러 내린 피가 소채은 의 입으로 흘러들어 갔고 그에 따라 신급의 힘을 담은 기운이 소채은에게로 흘러 들어갔다.그와 동시에 윤구주가 오른쪽 손바닥을 펼쳐서 소생술을 시
왜냐하면 더 이상 치료를 진행하면 그는 기린 화독에 의해 오장육부가 타들어갈 것이었다.윤구주는 죽는 게 두렵지 않았다. 단지 그가 죽은 뒤 사랑하는 소채운을 살릴 사람이 더는 없다는 사실이 걱정 되었을 뿐이다.그러니 지금 당장 그는 살아야 했다.윤구주가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운기를 하자 금빛 내력이 그의 몸에서 떠올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윤구주는 체내의 기린화독을 점점 억눌러 갔고 가슴쪽에 있던 독은 잠시 자취를 감췄다.온몸이 땀에 푹 젖은 그의 입가에는 여전히 검은색이 피가 묻어 있었다.하지만 그는 그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그의 머리 속에는 현재 소채은을 살리기 위해서는 일단 자신의 몸 상태를 최상으로 끌어 올려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그러려면 일단 자신이 중독된 기린화독을 해독해야 했다. 이 독이 체내에 있는 이상 그는 소 채은을 치료할 수 없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하는 윤구주가 주먹을 꽉 쥐었다....윤구주가 소채은을 치료하고 있을 때 한 검은색 BMW가 용인 빌리지를 향해 다가 오고 있었다."여보, 나 놀래키지마. 채은이 대체 무슨 일인데? 그리고 어젯밤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데? "소청하가 말했다.알고 보니 소채은에게 일이 생긴 후 천희수는 바로 소청하에게 달려가 그 사실을 알렸다.소청하는 자신의 딸이 공격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기절한 채 윤구주가 데려 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멍해졌다.그러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천희수와 함께 용인 빌리지로 떠났다.천희수가 울음을 더뜨리며 말했다."나도 몰라. 고모 할머니를 모시고 돌아 오려던 길에 당해서...""그럼 우리 딸은 지금 어떤데?"소청하가 엑셀을 더 세게 밟으면 다급하게 물었다."우리 딸은 기절했고 윤구주가 데려갔어."그 말을 들은 소청하가 약간 마음을 놓았다."그래, 윤구주가 데려 갔다니 그나마 마음이 좀 놓이네."소청하는 여전히 엑셀을 밟으며 빠른 속도로 용인 빌리지로 차를 몰았다.별장 아래, 검은 옷을 입은 수백 명의 사람들이 자리를 지키고 서 있
순식간에 많은 총이 자신을 겨누자 깜짝 놀란 천희수가 바닥에 주저 앉았다. 그녀는 지금 상황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소청하는 이 사람들이 전부 윤구주의 부하라는 걸 눈치 챘다."저는 제 사위 윤구주를 보러 왔습니다. 저는 소채은의 아버지이고, 이 사람은 소채은이 엄마입니다."소청하가 얼른 자기 소개를 했지만 암부원들은 소청하 부부를 몰랐기에 그저 큰 소리로 다시 말했다."누가 됐든 오늘 아무도 들이지 말라는 명령이 있었다. 무단침입하는 자는 바로 죽인다."소청하 부부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백경재가 사람들 틈에서 나오자, 소청하가 윤구주의 부하인 백경재를 알아 보고는 다급하게 앞으로 다가 갔다."백 대사님, 저는 소채은의 아버지입니다. 딸을 보러 왔는데 어떻게 좀 들여보낼 주실 수 없을까요? 그리고 사위도 만나 보고 싶어요."소청하를 알고 있던 백경재가 고개를 끄덕였다."전하는 지금 별장 안에 있습니다. 들어오시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허락을 받은 소청하 부부가 재빠르게 용인 빌리지 안으로 들어갔다.뒤따라가는 천희수는 무슨 상황인지 전혀 모르고 소청하의 옷깃을 잡은 채 검은 무리의 사람들을 둘러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여보, 저 사람들 다 뭐예요? 왜 총도 가지고 있어요?"소청하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다 우리 사위 부하들이지.""뭐라고요? 윤구주한테 부하가 있어요?"천희수가 깜짝 놀라서 물었다."그럼 당연하지. 이 여편네야. 내가 말하는데 앞으로 구주 앞에서 말 좀 조심해. 우리 사위 보통 사람 아니니까."그 말을 들은 천희수는 순간 멍해졌다. 그녀는 자신이 미워했던 윤구주가 그렇게까지 대단한 인물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부부가 별장으로 들어선 후 소청하가 빠르게 앞으로 다가갔다."우리 딸! 우리 딸은?"윤구주의 방문 앞을 지키고 있던 민규현과 정태웅 등은 그 소리를 듣고 살기를 풍기며 앞으로 나섰다."어느 미친 새끼가 이렇게 시끄럽게 굴어? 죽고 싶
시간이 흐른 후 방에서 갑자기 윤구주의 소리가 들려왔다."어머님 아버님더러 들어 오시라고 해."그 말을 들은 민규현이 고개를 돌려서 소청하 부부에게 말했다."전하께서 들어가시랍니다.""네네, 감사합니다."말을 마친 소청하가 아내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윤구주가 소채은의 옆에 앉아 있었고 침대 위에 누워있는 소채은은 윤구주의 피와 '구양진용결'의 진기를 받은 후 창백했던 혈색이 약간은 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깨어나지는 못한 채였다.방에 들어온 소청하 부부는 침대에 쓰러져 있는 소채은을 발견하고는 소리쳤다."채은아, 우리 딸! 이게 어떻게 된거야?"소청하가 달려오면 소리쳤고 천희수도 그 뒤를 따랐다.하지만 천시고독에 당한 소채은이 아무런 반응도 없자 소청하는 거기에 더 놀라며 목소리를 떨었다. "구주야, 빨리 말해 봐. 채은이... 채은이 대체 어떻게 된거야?""채은이는 천시고독에 당해서 잠시 동안은 깨어날 수 없어요."윤구주가 솔직하게 말했다."뭐 중독?"그 말을 들은 소청하가 깜짝 놀라며 딸꾹질을 했다."왜 우리 딸이 아무런 연고도 없이 갑자기 독에 당해?""대체 어떤 새끼가 우리 딸을 공격한 거야."곁에 있던 천희수가 눈물을 흘리며 소채은을 안고 소리쳤다."채은아 일어나, 일어나봐. 엄마야, 엄마가 너 보러 왔어."두 사람이 눈물을 흘리는 걸 본 윤구주가 그들을 위로했다. "어머님 아버님,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꼭 채은이를 살릴 거라고 약속 하겠습니다.""살려? 기억을 잃은 자식이 우리 딸을 어떻게 살려? "천희수가 화를 냈다."여보, 우리 당장 딸을 병원에 보내요. 여기서 더 지체했다가 진짜로 위험해 질 수도 있다고."천희수가 눈물을 흘리며 소청하를 다그쳤다."이 여편네가 진짜! 닥쳐 그냥, 구주 말 들어.""말을 들으라고? 당신 미쳤어? 기억을 잃은 놈 말을 들으라고? 당신 내 말 똑바로 들어. 만약 우리 딸이 위험해지기라도 하면 난 당신 평생 용서 안 할 거야."천희수가 노발대발 화를 냈고 두
서울 국방부.이황전.이곳은 문아름의 침궁이었다.금빛의 망포를 입은 그녀는 눈을 감은 채로 대전에 앉아 있었다.그녀의 뒤에는 목석같은 검을 안은 남자 독고명이 서 있었다.이때 누군가 빠르게 안으로 달려 들어왔다.“저하! 군형 삼마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안으로 달려 들어온 자는 다름 아닌 후방지원부대의 임진형이었다.군형 삼마에게서 연락이 왔다는 말에 문아름의 악랄한 두 눈동자가 천천히 떠졌다.“말해요.”임진형은 곧바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말했다.“저하, 군형 삼마는 계획대로 임무를 완수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소채은이라는 여자의 몸에 군형에서 가장 지독한 천시 고충을 심어뒀다고 합니다. 소문에 따르면 천시 고충은 군형에서 독성이 가장 독한 독충으로 이것을 치료할 방법은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이 고충에 당한 사람은 당장 죽는 것이 아니라 몸이 서서히 썩어 들어가면서 죽음보다도 더한 고통을 느끼게 된다고 합니다.”“하하하하!”임진형의 말에 문아름은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질 정도로 크게 웃었다.“잘했군요!”그렇게 말하더니 문아름은 악랄함이 번뜩이는 눈빛으로 먼 곳을 바라보았다.“윤구주, 이제 너도 괴로워지겠지? 네가 아무리 천하무적이라고 해도, 네가 화진의 왕이었다고 해도 그게 뭐가 중요해? 그래봤자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여자도 지키지 못하는 무능력한 인간인데 말이야. 하하하하! 딱 기다려, 난 네 여자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괴로움을 느끼게 해줄 거고, 네가 평생을 후회 속에서 몸부림치게 할 거야!”...시간은 물처럼 빠르게 흘러 곧 이틀이 지났고 마침내 10월 8일이 되었다.이날은 윤구주와 소채은의 결혼식이 있는 날이었다.그리고 온 도시가 윤구주와 소채은의 결혼을 축하하는 날이어야 했다.그러나 지금, 소씨 저택 앞은 더없이 썰렁했다.초대를 받은 친지들이 전부 떠난 뒤 소씨 저택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용인 빌리지는 경비가 아주 삼엄했다.산 아래에는 천하회와 암부 사람들뿐이었다.용인 빌리지
윤구주는 그들을 쓱 훑어보더니 입을 열었다.“나랑 같이 로비로 가지. 할 얘기가 있어.”“네!”곧이어 다들 윤구주를 따라 로비로 향했다.커다란 로비 안, 윤구주는 제일 위쪽에 자리를 잡았고 박창용, 민규현, 원성일, 정태웅 등 사람들은 차례대로 아래쪽에 앉았다.모두 자리에 앉은 뒤에야 윤구주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오늘 자네들을 부른 건 아주 중요한 일을 통보하기 위해서야.”“말씀하십시오, 저하!”사람들이 말했다.윤구주는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을 쭉 둘러보더니 입을 열었다.“지금부터 다들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도록 해.”‘뭐라고?’그의 말에 사람들은 당황했다.“저하, 저희에게 가라고 하신 겁니까?”정태웅이 가장 처음 말했다.다른 사람들도 답답한 심정으로 윤구주를 바라보았다.윤구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맞아. 다들 돌아가. 용인 빌리지를, 강성을 떠나.”“저하, 왜입니까? 저희는 소채은 씨의 복수도 하지 못했고 저하의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저희가 어떻게 돌아갈 수 있단 말입니까?”민규현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윤구주가 대답했다.“지금 당장 결혼식을 진행하기는 어려워. 그리고 자네들을 돌려보내려는 이유는, 자네들이 더는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야.”“저하!”“저희는 돌아갈 수 없습니다! 소채은 씨 복수도 하지 못했지만, 그건 차치하더라도 저하의 곁은 꼭 지켜야겠습니다!”박창용마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윤구주가 말했다.“틀렸어! 난 지금 평범한 사람이니 자네들이 곁을 지켜줄 필요는 없어. 다들 자기 자신이 화진에서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지를 알아야지. 박창용 자네도 그래. 자네는 백만 대군을 호령하는 창용부대의 총사령관이야. 그리고 다른 세 명은 화진 암부의 3대 지휘사지. 자네들이 있다면 화진은 당분간 안전할 거야. 그러나 자네들이 없다면 화진은 혼란에 빠지게 될 거야. 그건 자네들도 잘 알겠지. 자네들을 지켜보는 건 국방부의 문아름뿐만이 아니야... 10국에서도 호시탐탐 자네들을 노리고
윤구주가 모두를 돌려보내자 다들 쓸쓸한 얼굴을 해 보였다.특히 정태웅은 눈시울이 빨개져서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저하, 그러면 저하를 언제쯤 다시 만날 수 있는 겁니까?”윤구주는 웃으며 말했다.“곧 만나게 될 거야.”윤구주의 위로에 정태웅은 엉엉 울었다.옆에 있던 민규현 역시 눈이 빨개졌다.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윤구주의 앞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그가 무릎을 꿇자 천현수, 원성일, 주세호 등 화진의 거물들도 잇달아 윤구주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오직 박창용만이 윤구주의 곁으로 걸어가서 감개하며 말했다.“저하! 그렇게 결정하셨으면 저희 모두 저하의 명령에 따르겠습니다!”“저희 80만 창용군은 언제나 저하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저하께서 서울로 돌아와 문씨 가문에 복수할 때까지 말입니다.”윤구주는 박창용을 바라보며 무겁게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그렇게 윤구주는 모두를 돌려보냈다.이별은 언제나 슬픈 법이다.특히 윤구주의 형제들이 그랬다.그들에게 있어 윤구주는 신일 뿐만 아니라 친형과 다름없는 존재였다.그러나 그들은 윤구주가 그들보다 더욱 슬퍼하는 걸 몰랐다.그들은 윤구주에게 있어 형제일 뿐만 아니라 가족이었기 때문이다.그러나 윤구주는 반드시 멀리 내다봐야 했다.그는 본인의 사리사욕 때문에 화진의 평화를 홀시하고 그들을 이곳에 남겨둘 수 없었다.화진은 그의 나라이자 집이었기 때문이다.형제들과 작별한 뒤 용인 빌리지는 조용해졌다.용인 빌리지에는 백경재, 주세호, 소청하 부부만 남았다.“저하, 민 지휘사님과 박 사령관님, 원성일 씨 모두 떠났습니다...”주세호가 말했다.강성 최고 부자인 주세호는 당연히 강성에 남아있을 생각이었다.“그래요.”윤구주는 형제들이 떠난 방향을 바라보다가 덤덤히 말했다.“저하, 제가 저하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주세호는 똑똑한 사람이었다. 그는 소채은의 중독으로 인해 윤구주가 틀림없이 괴로울 거라는 생각이 들어 물었다.“채은이를 위해 장거리 이동에 적합한 휠체어를 주문해 주세요.
서요산 검객들이 모두 그 무인의 정체를 궁금해하자 진인도 더 이상 뜸 들이지 않고 말했다.“저분은 구주왕 휘하의 화진 군신이자 국방부 대장 백호 장군이시다.”검객들은 모두 입이 벌어진 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군신의 명성은 당연히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보호하는 영웅이었으니까.“정말 구주왕 휘하의 군신이라니!”“역시 저런 굳센 의지가 그냥 나온 게 아니었어! 수많은 전장을 누빈 명장다운 모습이다!” 서요산 검객들은 백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현재 백호는 이미 삼백이십 계단을 돌파한 상태였다. 백호가 혼자 주목을 독차지하는 걸 본 청해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고 계단에 발을 내디뎠다.처음 백 계단은 청해도 육신의 힘으로 버텼다. 하지만 백 계단을 넘자 육체만으로는 견디기 어려워졌다. 그는 술법으로 대응하려 했지만 평소 쓰던 빙신전의 신술이 계단 위 술법에는 통하지 않았다.“역시 화진의 서요산 검종은 보통이 아니구나. 이 등천로에선 일반 술법이 먹히지 않으니 천지 영기에 대한 깨달음으로 맞설 수밖에 없겠어.” 청해는 몸을 감싸고 있던 현빙을 거두고 오로지 자신의 속성 영기로만 버티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막상 올라 보니 이 등천로가 얼마나 어려운지 제대로 실감했다. 이백 계단쯤 오르자 벌써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계단마다 한계를 시험하는 느낌이었다. 올려다보니 백호는 여전히 계단 위로 나아가고 있었다. 청해도 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서요산 검객들도 청해의 수준을 알아보고 속삭였다. “저 이역인은 정말 대단한 내력의 소유자다! 기운이 이미 진인 급에 가까워! 극 신급 절정의 수련자임이 분명해!”이에 대해 진인은 신비롭게 꾸미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 “저자는 곤륜 구역 빙신전의 부 전주 청해다. 경지가 매우 높지. 지금 빙신전은 우리 화진에 귀속되었고 청해 역시 구주왕 휘하의 부하가 되었다. 얼마 전 서울 방어전에서 청현과 목숨까지 걸고 사투를 벌인 끝에 죽을 고비를 넘겼으
백호는 아직도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어느덧 이백오십 계단까지 올라왔다. 이 단계부터는 실체화된 술법이 몸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계단 하나를 오를 때마다 바람, 불 번개와 같은 속성의 영기가 점점 강해졌다. 여기서부터는 육신 횡련의 수련자는 강력한 체질로 버티고 술도 재능이 뛰어난 수련자는 천지 영기를 다루는 능력으로 버텨야 했다. 한마디로 각자의 능력에 따라 갈리는 구간이었다. 어느 한 분야라도 특출나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백호는 술도에는 재능이 없었기 때문에 오로지 강인한 육체 하나로 견디고 있었다.웅!성수의 피가 진동하며 백호의 몸을 지탱했다. 각종 속성의 영기가 몰아쳤지만 백호는 성수혈의 힘을 빌려 억지로 앞으로 나아갔다.수련자에게 있어서 성수의 혈맥이나 법보 등은 모두 신체 외적인 재능으로 간주하지만 그렇다고 이것들이 꼼수나 편법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천 가지 변화와 만 가지 신통력이 있어도 결국 만법은 한 가지로 귀결된다. 법기든 혈맥이든 이를 감당하는 것은 결국 본인의 몫이다. 천지 영기를 이용한 술법도 결국은 그 힘을 감당할 수 있어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며 감당하지 못하면 반드시 반작용을 맞게 된다. 따라서 수련의 길에는 애초에 편법이란 존재하지 않았다.성수 혈맥 같은 천지의 보물은 보통 사람이 함부로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윤구주의 도움을 받았다 하더라도 결국 이를 감당하는 건 백호 자신이었다. 성수 혈맥의 힘을 온전히 감당하며 백호는 결국 삼백 계단까지 올라섰다.계단의 꼭대기 근처에는 이미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이 여럿 서 있었다. 서요산 검종은 근대에 들어 삼백 계단을 넘는 인재가 드물었다. 최근 백 년 동안 삼백 계단을 넘은 사람이 고작 열 명 남짓이었고 그중 대부분이 삼백여 계단에서 멈췄다. 그런데 지금 백호는 삼백이십 계단까지 올라선 것이다. 이 정도면 서요산 검종 전체가 떠들썩해질 만한 성과였다.이런 제자가 나타난다면 종문 전체가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래서 서요산의 진인들까
“한 사람의 품성을 제대로 살피지도 않고 마구잡이로 그렇게 많은 수련자를 키워낸다면 결국 천하의 마인을 직접 만들어 내는 꼴이 아니겠어?”청현이 바로 그 실패한 예다. 서요산 검종 종주가 청현의 천재성을 아까워한 나머지 그의 인성을 무시하고 양성한 끝에 결국 역도를 만들어 낸 것이다.“그럼 저하 서요산에 입문한 무술 무인들은 평균적으로 몇 계단까지 오르는지 아십니까?” 백호가 호기심에 물었다. 윤구주는 잠시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무술 무인의 정확한 데이터는 모르지만 검종 종주와 잡담할 때 들어보니 검종 제자들의 수준이 갈수록 떨어져서 천 년 전만 해도 평균 삼백 계단 정도였는데 요즘엔 백 계단도 못 오른다고 하더구나. 가끔 삼백 계단을 오르는 자라도 나오면 검종 전체가 몇 년은 떠들썩할 정도라고 했어.”“구백구십구 계단까지 있는 시험인데 천 년 전 전성기에도 겨우 삼백 계단이요?” 백호는 입술을 삐죽이며 서요산 검종의 수준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때 한 번 도전해 볼 생각이야?” 윤구주는 흥미롭게 백호를 바라보았다. 백호는 당장이라도 도전하고 싶은 마음에 윤구주의 허락을 구한 뒤 바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한 계단 두 계단... 오십 계단까지는 아무 어려움도 없었다. 백호는 오십 계단에 서서 사람들을 향해 서요산 검종이 별것 아니라며 놀려댔다. 하지만 육십 계단쯤 올랐을 때 처음으로 압력을 느꼈다. 마치 몸 위에 작은 차 한 대가 올라탄 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백호에게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백 계단에 도달하자 압력이 갑자기 커졌다. 등에 작은 승용차 대신 소형 트럭이 올라탄 듯한 느낌이었지만 아직 백호의 한계에도 가지 못했다.“근래 사람들의 평균이 백 계단도 못 넘는 이유가 이제야 이해가 되네요. 예전의 무인 횡련은 황제도 오를 수 있었지만 요즘 무인 횡련은 죽어라 노력해도 소형 트럭 하나 못 버티는 수준이니 말입니다.”백호는 농담을 던지며 계속해서 계단을 올라
전에 임정설은 구오 지존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나라를 위해 힘쓰며 수모를 견뎌내고 살아남으려 했다.하지만 이제 황제가 된 그는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다.그 탓에 이번 관문 앞에서 그는 망설였다.살아 있는 자만이 통과할 수 있는 관문이었다.죽음을 마음에 품은 자는 절대로 넘어설 수 없는 관문이었다.그 자리에 있던 사람 중 청해만이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생각했다.‘황제가 되면 곤륜 구역에서 최고 경지에 도달하는 건데. 기뻐해도 모자랄 판에 왜 죽음을 택하려는 거지?’“저하, 국주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듯합니다. 저하도 사랑하던 이에게 배신당했어도 결국 극복해 나갔잖습니까.”백호도 이해하지 못했다.그는 여전히 국주보다는 왕이 더 낫다고 여겼다.“네가 뭘 안다고 그런 말을 함부로 내뱉느냐.” 윤구주가 단호하게 말했다.백호는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그는 어리숙하고 말솜씨도 없기에 생각나는 대로 말했을 뿐이다.“내가 문아름에게 배신당한 건 억울한 일이지만 나는 그녀에게 잘못한 게 없다. 오히려 그녀가 날 배신한 거다. 하지만 국주는 그 반대였지. 그가 그녀를 저버린 거야. 정이 깊으면 오래가지 못하고 지혜가 지나치면 오히려 상처를 입는다. 이 세상에서 가장 쓰라린 후회는 가진 뒤 잃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생사를 달리하게 되는 것이다.” 윤구주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만약 소채은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자신도 제정신이 아닐 거라고 느꼈다.“그럼 복수하면 되지 않나요?” 백호가 어리둥절하게 물었다.이때 청해가 눈치를 채고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상대가 너무 강해서 못 이기는 거지. 황제에 오르기 전까진 제대로 맞붙을 힘도 안 돼. 오르고 나서도 이길 수 있을지 장담 못 하고.”윤구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딱 그 말이 맞았다.“그럼 우리가 국주님 대신 복수해 드리면 되잖아요? 국주님은 제 왕이기도 하지만 제 윗사람이기도 하잖아요.”백호가 고개를 갸웃했다.“하하! 만약 세상 사람들이 다 너처럼 솔직하다면 이런
인간이 나쁜 짓을 거듭해 양심을 잃으면 부끄러움도 사라진다. 예전 같으면 아무렇지 않았을 테지만, 지금은 윤구주를 따라 명예심이 생기면서 죄책감도 느끼게 된 청해에게 이 원한의 전법은 고통스럽기만 했다. 물론 곤륜역 한 신전의 부전주로서 정신이 붕괴할 정도는 아니었다.네 사람은 이 원한의 전법도 가볍게 넘어섰다.이때 전법에 관심을 가졌던 임정설이 무언가를 눈치챘다.“구주야, 서요산의 전법은 우연히 들어온 자를 쫓아내는 동시에 수련자의 의지를 시험하는 것이었어. 서요산은 의지력이 확고한 자들만 끌어들인다는 것을 미리 들어 알고 있다. 이게 바로 서요산이 제자를 선발하는 방식인가 보구나.”“그렇습니다. 매년 화진 무도계 사람들이 서요산에 찾아오지만 성공한 자는 극히 드뭅니다. 실패자들 중 십중팔구는 산기슭에서 죽음을 맞이하죠. 어떤 문턱은 넘지 않는 것이 복이 될 때가 있습니다. 모르는 것이 약이죠. 현실을 알고도 바꾸지 못하는 것이 가장 괴로운 법이니까요. 이 관문을 넘는다고 해도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면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입니다.”윤구주의 말이 끝나자 세 번째 전법이 나타났다.첫 번째와 두 번째 전법은 이곳에 들어온 이들을 돌려보내려고 만든 것이지만 세 번째 전법은 달랐다. 이 전법은 살기로 가득 찬 죽음의 전법이었다.평범한 사람들은 여기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이곳까지 온 자들도 앞길의 위험을 보고 함부로 들어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눈 앞에 펼쳐진 죽음의 길을 보고도 들어가는 자는 스스로 죽음을 원하는 자라서 그런 자들에게 죽음을 내리는 것은 오히려 덕을 쌓는 일이었다.하지만 무도로 도를 깨우치려는 수련자라면 이 관문을 넘기 위해 반드시 목숨을 걸어야 한다. 버텨내야만 수도의 길에 들 수 있고 실패하면 그 후과를 받아들여야 한다.전법 안은 살기로 가득했다. 생기와 영기가 세상을 이롭게 하지 못할지라도 살기와 죽음의 기운은 목숨을 앗아갈 것이 분명했다.진법 내부에는 수많은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무도계에 이름을 날렸던 강자들의 유해
네 사람은 비석을 지나자마자 환각의 전법에 부딪혔다. 이 전법은 우연히 들어오거나 경고를 무시한 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결국 서요산 밖으로 나가게 만드는 것이었다.의지력으로 환각의 전법을 통과하면 다음 전법이 기다리고 있었다.당연히 네 사람에게 환각의 전법은 통하지 않았다. 윤구주와 임정설은 물론, 백호와 청해도 곤륜에서 강자로 존경받는 존재들이었다.다음은 섭혼 전법이었다.전법에 들어가기 전부터 하늘을 찌를듯한 원한의 기운이 밀려왔다.그 기운을 느낀 임정설이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수년간 왕궁에서 비술을 연구해서 알아본 건데. 이곳은 인간의 힘으로 만들어진 거야. 반경 수천 리 이내의 원한의 기운이 모두 이곳에 모여있어. 내 치하에서도 억울하게 죽은 자들이 이렇게나 많았구나. 그걸 내가 몰랐다니.”그는 깊은 자책에 빠졌다.“국주님, 인간이 있는 곳에는 분쟁은 끝나지 않습니다. 근대에 들어 큰 전쟁은 사라졌지만 소규모 충돌은 끊이지 않았죠.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게다가 이곳에 모여진 원한의 기운은 억울한 죽음뿐만 아니라 극형을 받은 흉악범들의 원한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을 갈구하는 마음은 죽어도 사라지지 않죠. 사랑 때문에 미워하고, 미움 때문에 미쳐버리는 것이 바로 인간입니다.”윤구주의 말을 듣고 임정설이 한마디 물었다.“구주야, 너는 문아름을 미워하지 않느냐?”문아름의 이름을 들은 윤구주의 눈에서 짙은 살기가 번뜩였다.“당연히 미워하죠. 저 윤구주는 순수하게 사랑하고 미워하는 인간입니다. 사랑은 사랑, 증오는 증오에요. 그녀를 위해 변명 같은 건 하지 않겠습니다. 문아름이 저를 배신했으니 저에게 당연히 미워할 권리가 있죠. 하지만 문아름을 사랑한 걸 후회하지는 않아요. 문아름이 제게 사랑이 무엇인지, 인심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었으니깐요. 가려는 길이 다르면 미래를 함께할 수 없죠. 저희는 처음부터 다른 길을 걸었어요. 저희의 만남 자체가 잘못이었지만 문아름이 저를 구주왕으로 만든 것도 사실이죠. 그리고 제가 문아름을
“저하와 생사를 함께할 수 있다니. 그건 제 영광입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만약 전하와 제가 정말로 서요산에서 죽게 되면 청룡이 돌아온다 해도 성수가 한자리 비게 되는 건데 그분을 어떻게 소환하시렵니까?”백호가 의혹이 담긴 표정으로 물었다.윤구주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그걸 설명하려면 너를 실험체로 삶고 실험을 진행할 때부터 얘기해야 해. 정확히 말하면 청룡, 현모, 주작의 몸속에는 네 피가 흐르고 있어. 네가 성수의 피를 융합한 첫 번째 수련자야. 예로부터 지금까지 오직 너만이 진정한 융합에 성공했지. 네 피를 빌려 그들에게 성수의 정수를 주입했던 거야.”“백호, 내가 너를 이렇게 만든 거다. 네가 이런 괴물 같은 모습이 된 건 전부 내 탓이야. 그러니 나를 원망해도 좋아.”백호는 웃으며 대답했다.“제가 어떻게 저하를 원망하겠습니까? 게다가 당시 저하께서는 제 목숨을 구하려고 그러신 거였잖아요. 제가 고마워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첫 번째로 융합에 성공한 수련자는 제가 아닐건데요? 저하께서도 성수의 피를 다루시지 않았습니까?”그 말을 들은 윤구주가 고개를 저었다.“아니. 달라. 그건 그냥 성수의 피를 통제하는 것 뿐이야. 진짜 융합했으면 나도 네 꼴이 됐을 거야.”백호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됐다. 옛날얘기는 그만하고 얼른 서요산으로 떠날 준비나 해.”며칠 후, 윤구주는 임정설 국주, 청해, 백호와 함께 서요산으로 향했다.비 오는 밤, 연기를 뿜는 수송기가 짙은 구름을 뚫고 산을 향해 돌진했다.비행기가 산에 충돌하기 직전, 수많은 바람의 부적이 나타나 비행기를 강제로 선회시켜 간신히 산기슭에 착륙했다.비행기가 막 착륙하자 비행기 문이 누군가의 주먹 한 방에 박살 났다. 멀미로 비틀거리던 청해가 나오더니 몸을 움츠린 채 구토를 멈추지 못했다. 뒤이어 내린 임정설도 배를 움켜쥐며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억지로 참는 모습이었다.그들과 달리 윤구주는 멀쩡한 상태로 내려와 시원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백호의 질문에 윤구주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네가 진짜라 믿는다면 그것은 진짜야. 초심을 잃지 않아야 길이 열리는 법이지.”이 말은 백호에게만이 아닌 자신에게도 하는 것이었다.서울의 위기는 해결되었지만 윤구주는 이 모든 것이 문씨 가문의 그 여자의 계획 중 하나임을 알고 있었다.“국주님, 이제 서요산으로 갈 때입니다.”그가 임정설을 바라보며 말했다.“서요산을 지키려는 거니? 마인이 나타날 거란 말이야?”임정설이 눈살을 찌푸렸다. 진요탑 아래에는 천년 동안 갇힌 수많은 마인들이 있었다.“맞아요. 서요산의 지맥 영기가 거의 고갈되었습니다. 만약 진요탑이 무너지면 큰 재앙이 찾아올 것입니다.”윤구주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진요탑이 붕괴하여 마인들이 쏟아져 나오면 윤구주라도 그들을 처리하기 힘들 것이다.“좋아. 내가 같이 가주마. 이 늦은 재앙은 언젠가 닥칠 운명이니 우리가 짊어져야 해. 지금의 희생은 후손들을 위한 것이야.”임정설의 눈빛이 강철처럼 단단해졌다. 화진을 위해, 백성들을 위해 그는 언제든 목숨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었다.윤구주는 현모에게 연락을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뭐라고요? 저하께서 서요산으로 가신다고요? 그렇다면 저희도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요?”현모와 주작의 목소리에서 초조함이 느껴졌다. 특히 주작은 서요산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다. 천년 동안 축적된 재앙을 겨우 수십 년 수련한 윤구주 혼자서 떠맡기엔 버거웠다.“괜찮아. 너희에게는 따로 시킬 일이 있어. 내가 서요산에 있는 동안 너희는 국경을 지켜줘. 청룡의 행방은 잠시 접어두고 내가 시킨 일에 몰두해. 난 문아름을 그 여자를 잘 알고 있어. 문아름은 일이 내 뜻대로 되게 놔두지 않을 거야.”“추가로 부탁이 있는데 만약 내가 전사한다면 그때쯤 청룡이 모습을 드러낼 거야. 청룡을 불러내는 게 복인지 화인지는 나도 알 수 없지만. 그 상황이 오면 너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을 거야. 문아름이 결정을 내리겠지. 그러니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둬.”유언을 남기는 듯한
‘헐, 대박.’진동왕이 하늘을 우러러보며 윤구주를 신처럼 떠받들었다.‘이게 진짜 신이지. 곤륜에 있는 그 자식들은 모두 가짜 신들이었어. 허위적이기 그지없지.’오늘 밤 그는 여러 강자의 싸움을 직접 목격하고 강자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문경우도 아주 강했지만 윤구주가 나타나자 문경우는 도망조차 제대로 치지 못하고 영혼마저 산산조각이 났다. 윤구주의 술법에 의해 영혼도 남기지 못하고 진정한 죽음을 맞이했다.승리는 결국 화진에게 돌아갔다. 화진을 무너뜨리려는 역적들은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 윤구주는 자신의 힘으로 화진의 막강한 실력을 전 세계에 알렸다.문경우를 처단한 윤구주는 즉시 임정설의 치료에 돌입했다.“짐은 별일 없으니 먼저 왕숙과 네 친구를 치료해줘라.”임정설이 임성진과 청해를 가리키며 말했다.청해는 이미 정신을 차렸다. 비록 상처가 심해 반쯤 죽은 상태였지만 화진 국주에게 인정받은 첫 순간이었다. 묘한 영예감이 그의 마음을 꽉 채우며 날아갈 듯 기뻤다.“이 두 사람 모두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은 아닙니다. 오히려 국주님이 더 위험하십니다. 경지를 무리하게 넘어서셨고 섭혼번 아래서 정기를 너무 많이 잃으셨습니다. 지금 국주님의 기운이 안정하지 않으니 제 도움이 없다면 폭주 할수도 있어요. 그때가 되면 저도 방법이 없습니다.”윤구주가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임정설은 결국 윤구주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도 자신의 몸 상태를 알고 있었다. 윤구주의 치료를 거부한 이유는 목숨을 내던질 각오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황자급 경지에 오르긴 했지만 예전보다 죽음에 대한 집착이 강해져 있었다. 윤구주는 임정설에게 풀지 못한 원한이 있음을 눈치채고 치료를 해주며 화진으로 압박했다.“국주님께서 직접 해결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는 걸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화진에게는 국주님이 필요합니다. 국주님은 30년 동안 화진을 지켜오셨잖아요. 지금 승부가 달린 이 중요한 시점에서 사적인 감정에 휘둘리시면 안 됩니다.”임정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