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을 들은 인해민은 너무 놀란 나머지 소리를 지르며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그녀의 아름다운 두 눈이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 휘둥그레졌다.머릿속에는 잘 생기고 우람한 윤구주의 모습이 바로 떠올랐다.“그... 호텔에 있던 잘생긴 그 남자 말이야?”“네! 맞아요.”장연희는 오늘 밤 윤구주가 설씨 가문의 모든 사람을 전부 죽여버린 사실을 말했다.그리고 윤구주가 호텔에서 자신을 구해준 사실도 알려줬다.나중에 윤구주가 그녀에게 설씨 가문의 본거지로 안내하라 했고 홀로 설씨 가문으로 쳐들어가 그들의 집을 부숴버리고 설씨 가문을 멸족했다고 알려주었다.장연희가 윤구주의 모든 일을 말하자 백화궁의 여자들은 놀라서 멍해졌다.인해민도 포함해서였다.“어머! 그 잘생긴 남자가... 혼자 힘으로 설씨 가문을 멸족하다니!”인해민은 감격한 나머지 말하는 목소리가 떨릴 정도였다.윤구주의 무서운 실력이 떠올랐고 그가 호텔에서 했던 말이 생각났다.그녀는 갑자기 머리를 두드리며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그 멋진 오빠가 정말 날 속인 게 아니었군! 정말로 5대 가족을 멸족하러 왔던 거야.”주변에 있던 백화궁 여자들도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혼자서 군형 5대 가족 중의 설씨 가문을 없애버리다니!”“세상에. 그게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야?”“그러게 말이야!”“게다가 내가 듣기로는 그 오빠가 엄청나게 잘생겼대.”“정말이야?”“그럼. 잘생긴 건 둘째 치고, 그 오빠는 타고난 왕처럼 뛰어난 기질을 가지고 있대. 못 믿겠으면 연희한테 물어보세요.”“아이고. 난 왜 그런 잘생긴 오빠를 본 적이 없지?”“으악! 그 오빠가 너무 좋아. 누가 그 잘생긴 오빠를 좀 소개해 줘봐. 한 번만이라도 만날 수 있다면 난 그걸로 만족해.”“나도, 나도!”오늘 밤.원래 백화궁의 여자들은 모두 슬픔에 잠겨져 있었다. 하지만 장연희가 설씨 가문이 멸족당했다고 하자 이건 복수를 한 것이었다.그리고 설씨 가문을 멸족한 사람이 바로 잘생기고 멋진 윤구주라는 말에 모든 여자는 몹시 흥
“휴. 아쉬운 건 그 잘생긴 자식에겐 여자가 있는 것 같더라고.”인해민은 갑자기 스스로 중얼거렸다.그녀는 머릿속에 윤구주의 방에서 본 소채은이 떠올랐다.비록 그녀는 소채은이 누구인지 전혀 몰랐지만 직감적으로 그 여자가 바로 윤구주의 여자 같았다.“쳇. 하지만 그의 아내가 될수 없다면 애인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잘생긴데다가 기질도 훌륭하지. 가장 중요한 건 그의 경지는 정말 놀랄 정도로 뛰어나단 말이야.”인해민이 자기 생각에 잠겼을 때 옆에 여자들이 물었다.“해민 언니, 설씨 가문의 사람들이 멸족을 당했다니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을 까요?”그러자 인해민이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설씨 가문이 멸족당했다 해도 절대 방심해서는 안 돼. 너희들도 알다시피 군형 5대 가문들끼리 서로 친하게 지내는 사이야. 그 잘생긴 녀석이 설씨 가문 사람들을 죽였다해도 다른 4대 가문이 있다는 걸 잊지말아야 해. 게다가 다른 4대 가문의 실력도 모두 약하지 않아. 그래서 내 생각이 맞다면 이제 곧 군형의 남의 4대 가문에서 그자식한테 추살령을 내릴거야!”“네? 그럼 어떡하죠? 우리 백화궁에서 그 잘생긴 오빠를 도와드려야 하지 않을 가요?”대전에 있던 여자들이 물었다.그 여자들은 지금 분명히 윤구주를 이미 자기 편으로 여기고 있었다.그러자 인해민이 대답했다.“도와야지. 물론 도와야해. 다만 이 일은 반드시 궁주님께 알려드려야 해. 군형의 다른 4대 가문들과 싸운다는 건 큰 일이야.”“해인 언니 뜻은 지금 바로 궁주님께 출관하시라고 통지를 보낼까요?”여자들이 묻자 인해민은 아름다운 눈으로 먼 곳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궁주님께서도 이젠 곧 출관하실 때가 되었어. 어찌 됐든 궁주님은 이미 화진 최고의 왕의 죽음을 위해 반년 동안이나 폐관했잖아. 휴.”...
서남의 산악 지역.태양이 뜨겁게 비추고 있었다.몇 명의 아름다운 여자들이 서남의 유명한 성녀봉을 향해 굽이치는 산길을 걷고 있었다.성녀봉은 사방 100리 안에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였다.웅장하고 높이 솟아 풍경이 매우 아름다웠다.성녀봉으로 향해 걸어가고 있는 여자들은 다름 아닌 백화궁의 여자들이었다.선두에서 걷고 있는 여자가 바로 뛰어난 몸매를 자랑하는 잔혹한 나찰로 불리는 인해민이었다. 청록색 치마를 입은 그녀는 늘씬하고 하얀 다리를 드러냈다.비록 산길은 울퉁불퉁했지만 대가 3품의 경지인 그녀에게는 평지를 밟는 것처럼 식은 죽 먹기였다.그녀들이 이번에 성녀봉으로 가게 된 이유는 백화궁의 궁주를 출관시키기 위해서였다.반년 전.백화궁의 궁주는 갑자기 장례복을 입고 폐관을 시작했다.하지만 그녀가 왜 폐관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그녀가 누구를 추모하는지도 아무도 몰랐다.유일하게 들은 소문은 바로 그녀가 이번 생에 가장 사랑했던 남자를 위해 장례복을 입었다는 것이다.하지만 궁주의 남자가 누군지 백화궁의 여자들은 역시 아무도 몰랐다.나중에 인해민의 입에서 비로소 그녀들이 존경하는 궁주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 바로 천하제일의 왕일 뿐만 아니라 또한 화진의 9주 군신이라 불렸던 그 남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궁주가 천하제일의 왕을 위해서 폐관했다는 말을 듣자 그녀들은 비로소 깨달았다.그녀들의 궁주와 어울리는 남자가 있다면 무조건 구주왕 같은 전설적인 인물이어야 했다.연규비도 원래 전설 같은 인물이었기 때문이다.연규비에 관해서 떠도는 소문은 정말 너무 많았다.그녀를 화진의 제일 마녀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강호의 최강 여도살이라고 부르기도 했다.심지어 그녀가 기생집 출신이었으나 우연히 신비한 사람을 만나서 최고의 무술을 수련했다는 말도 있었다.아무튼 연규비에 대한 소문은 많고도 많았다.그녀는 과 에서 11위를 차지한 유일한 여자였다.또한 십국전쟁시기에 그녀는 국방부에 3년 동안 있었다.그 3년 동안 그
성녀봉 정상.구름과 안개가 둘러싸였고 아름다운 경치가 한눈에 안겨 왔다.정상 앞에는 백 미터가 넘는 폭포가 콸콸 쏟아지고 있었다.인해민은 몸을 날려 날아오르자 갑자기 숲속에서 큰소리가 터져 나왔다.“어느 놈이 감히 백화궁 금지구역에 침입했어!”차가운 소리와 함께 주변은 음산한 분위기로 변했다. 그리고 두 줄기의 강한 살의가 갑자기 숲속으로부터 확 나왔다.그러자 숲속에서 붉고 푸른 두 줄기의 빛이 튀어나왔다.“홍 할머니, 노 할머니, 저예요!”엄청 강한 기운의 두 사람이 나타나자 인해민은 다급히 입을 열었다.기괴한 붉은 도복과 녹색 도복을 입은 두 할머니가 인해민의 앞에 서 있었다. 그녀들은 얼핏 보기에 50대가 넘어 보였다.게다가 몸에서는 강자의 기운이 넘쳤다. 대충 보아도 모두 대가 경지가 되는 무인들이었다.“해민이구나.”붉은색 도복을 입고 얼굴에 진한 화장을 한 홍 할머니가 인해민을 보고 담담하게 웃으며 다가왔다.노 할머니도 인해민을 알아보고 살의가 천천히 사라졌다.그녀들은 바로 백화궁에서 이름 날린 홍 할머니, 노 할머니, 남 할머니였다.듣는 소문에 의하면 이 세 할머니는 모두 대가 5품 경지가 되는 고수였다.게다가 세 할머니는 항상 연규비와 함께 다니면서 그녀의 시중을 드는 부하들이었다.세 할머니는 백화궁에서 지위가 아주 높았기에 이번에 연규비가 폐관할 때도 할머니 셋이 직접 연규비를 지켜주는 역할을 맡았다.지금 인해민의 눈앞에 나타난 두 할머니가 바로 세 할머니 중의 홍 할머니와 노 할머니였다.“해민아, 왜 여기로 온 거야? 궁주님께서 너 보고 백화궁을 잘 지키고 있으라고 하지 않았어?”노 할머니가 인해민에게 묻자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노 할머니, 이번에 제가 이곳으로 온 게 바로 백화궁 때문이에요. 궁주님께서 하루빨리 출관하셔야 해요.”“출관이라고?”“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최근 설씨 가문 사람들이 갑자기 저희 백화궁에 쳐들어왔어요. 그래서 궁주님께 알리러 여기까지 왔어요.”인해민의 말을 들은
인해민이 그렇게 말하자 대가 경지의 홍 할머니와 노 할머니는 놀라서 멍해졌다.한참 지나서야 홍 할머니가 입을 열었다.“서남을 떠난 지 반년도 안 됐는데 벌써 이렇게 강한 사람이 나타났다고? 말도 안 돼.”“그러게 말이에요! 혼자서 군형 설씨 가문을 멸족했을 뿐만 아니라 태허 경지였던 그 늙은 변태 자식까지 죽였다니. 해민아, 네가 한 말이 사실이라면 그 사람의 경지는 최소 신급 강자가 아니야?”노 할머니가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져서 물었다.신급 강자!사람이 일단 신급 강자가 되면 전설급 신과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다는 말도 있었다.그래서 홍 할머니와 노 할머니가 그렇게 놀랐다.그러자 인해민이 말했다.“그의 실력은 솔직히 말해서 저도 전혀 추측할 수 없어요. 제 생각에 만약 제가 그와 싸운다면 아마 그의 공격 세 번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아니, 어쩌면 단 한 번에 제가 죽을 수도 있어요!”그녀의 말을 들은 두 할머니는 다시 한번 큰 충격을 받았다.백화궁의 사람으로서 두 할머니는 인해민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지금 인해민이 이렇게 말하자 두 할머니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해민아, 실력이 대단한 그 자식 때문에 궁주님을 찾으러 온 거였어?”홍 할머니가 묻자 인해민은 고개를 끄덕이었다.“네!”“알았어. 우리를 따라와. 궁주님이 계시는 곳으로 가자.”“해민아, 따라와.”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갑자기 몸을 날려 밀림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그리고 인해민이 그 뒤를 따랐다.그녀들은 밀림을 지나 큰 동굴 앞에 도착했다.동굴 앞에는 파란 옷을 입은 할머니가 꼼짝도 하지 않고 바위처럼 앉아 있었다.그 할머니는 바로 백화궁의 세 할머니 중의 남 할머니였다.그녀들이 동굴 앞에 도착하자 앉아 있던 남 할머니가 마침내 천천히 눈을 떴다.“아이고. 해민이가 돌아왔구나.”키가 훤칠한 남 할머니가 미소를 지으며 일어섰다.“남 할머니, 그동안 잘 계셨어요?”인해민도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드렸다.“그럼. 반년 만에 보니 몸매가 더 좋아
“궁주님, 용서해 주세요! 백화궁에 큰일이 생겨서 폐를 끼치게 됐네요.”인해민은 그녀가 화를 낼까 봐 다급한 어조로 말했다.검을 베일을 쓰고 있던 연규비는 담담하게 말했다.“말해봐. 무슨 일이야?”“궁주님, 군형 5대 가족 중의 설씨 가문 사람들이 어제 갑자기 백화궁으로 쳐들어왔어요.”인해민은 어제 일을 사실대로 말했다.“그런 일이 있었다고? 군형 5대 가족 중의 설씨 가족?”“네! 궁주님.”“쳇. 이 오랑캐들이 감히 내가 없는 틈을 타서 백화궁을 침범하다니!”연규비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하지만 궁주님께서는 화를 내실 필요는 없어요. 그 망할 설씨 가문은 이미 멸족당했어요. 제가 오늘 이곳으로 온 이유는 오직 한 사람 때문이에요.”인해민이 다급히 말하자 연규비도 살짝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뭐라고? 설씨 가문이 멸족당했다고?”“네. 그것도 한 남자가 혼자 설씨 가문 사람들을 전부 죽여버렸어요.”인해민은 요 며칠 윤구주에 관한 일들을 전부 연규비에게 알려주었다.그녀는 윤구주가 사람들 앞에서 설씨 가문의 장로와 도련님을 죽였다고 말했다.그리고 하룻밤 사이에 설씨 가문을 멸족한 사실도 전부 알려주었다.서남에 이렇게 강한 사람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들은 연규비는 마침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비록 그녀의 얼굴에는 검은 베일을 쓰고 있었지만 뛰어난 외모와 기질은 감출 수가 없었다.“혼자서 설씨 가문 사람들을 전부 죽인 데다가, 설씨 가문의 장로까지 다 죽였다고?”연규비의 목소리에는 의아함이 가득했다.“네. 궁주님. 그 사람의 실력은 제가 보이게는 적어도 신급 강자 이상이에요. 그래서 제가 궁주님께 찾아온 거예요.”‘신급 강자?’그 말을 들은 연규비의 두 눈이 반짝거렸다.“현재 신급 강자는 거의 없을 정도로 드물 텐데. 서남에 그 류씨 늙은 괴물 외에는 신급 강자가 거의 없어. 그 사람이 신급 강자인 게 확실해?”연규비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네.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경지는 너무 소름 끼칠 정도로 뛰어나요. 온몸에서
“만 장로님, 안으로 들어오십시오.”여씨 가문 구성원들은 만장로의 존귀한 신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서둘러 그를 안으로 모셨다.커다란 염씨 문전 안에는 음산한 기운이 맴돌았다. 20여 명의 경비원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만 장로님, 여기서 잠시 쉬세요. 제가 우리 족장님을 모셔 오겠습니다. 한 여씨 가문 책임자가 말했다.“그래.”여씨 가문 구성원들이 떠난 후, 만장로 일행은 대전에 앉아 족장님이 오기를 기다렸다.“한해야, 류씨, 길씨, 전씨 가문 쪽은 소식이 없어?”만장로는 자리에 앉더니 옆에 있던 부하에게 물었다. 사실 설씨 가문이 멸족된 후, 만장로는 즉시 다른 군형 4대 가족에게 연락했다. 그리고 4대 가문 족장님을 초대하여 윤구주를 대항할 방법을 논의하려고 했다.“길씨, 전씨 가문과는 연락이 닿았습니다. 하지만 류씨 가문에서만 아직 소식이 없는 상태입니다.”“흥! 잘난 체하는 구류족들, 오만하게 자신의 실력이 최고라고 믿고 우리 네 종족을 멸시하다니. 정말 가증스럽기 짝이 없구나.”만장로가 엄하게 말했다.군형 5대 가문에서 류씨 가문 실력이 가장 강하다. 그리고 류씨 가문은 군형 구류족의 후예이다. 제일 오리지널한 혈통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실력도 5대 가문 중에서 제일 강했다. 심지어 신급 경지인 강자 한 명을 보유하고 있다.비록 만장로가 투덜거리는 척했지만 감히 정말 류씨 가문을 건드릴 수는 없었다.“족장님 오셨습니다.”이때 갑자기 우렁찬 소리가 들려왔다. 여씨 족장이 도착하자 홀에 앉아 있던 만장로가 얼른 일어섰고 뒤에 있던 부하들도 모두 공손히 일어섰다.그리고 잠시 후 검은 가운을 입고 온몸에 사악한 기운을 드러낸 염씨 가문 구성원들이 걸어들어왔다. 제일 앞에 서 있던 사람이 바로 염씨 일가 족장이었다.그는 알록달록한 여씨 가문 전통 복장을 하고 손목에는 금으로 된 장신구를 주렁주렁 달았다. 그리고 그의 뒤에는 가문 장로급인 인물 10여 명이 뒤따랐다.5대 가족 중의 하나인 여씨 일가 족장이 도착하자 만장로는 빠른
여씨 대장로는 설만수가 이토록 당황해하는 걸 보자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설만수가 설씨 멸족에 대해 말하려 할 때 갑자기 밖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하하하! 뭘 또 그렇게 서둘러요. 우리 전씨 가문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어두컴컴한 그림자가 대전 앞에 나타났다. 그들은 하나같이 우람진 체격을 가졌다. 그리고 모두 짐승 가죽을 외투로 삼았고 노출된 구릿빛 피부에는 이상한 타투가 새겨져 있었다.“전씨 가문이야?”그들이 나타나자 대전에 있던 모든 사람이 일어섰다. 이 사람들은 바로 군형 5개 가문 중 하나인 전씨 가문이다.“아이고 전 족장님, 오랜만이네!”전씨 가문 사람들이 나타난 후, 여씨 족장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면서 백발의 건장한 노인에게 시선을 돌렸다. 노인은 우람진 체격에 호랑이 같은 카리스마를 뿜어냈다.그는 호랑이 가죽을 외투로 입고 있었고 근육 진 두 팔뚝에는 눈에 거슬릴 정도로 기괴한 요술 타투가 새겨져 있었다.그 노인이 바로 전씨 가문 족장이었다.“오랜만이야. 여 족장님. 갈수록 젊어지네!”“아니야, 하하하! 여봐라, 족장님에게 자리를 마련해.”두 사람이 수다를 떠는 사이 여씨 가문 구성원들은 서둘러 전씨 족장에게 자리를 내어주었다.지금 군형 5대 가문 중 3개 가문이 모였다. 아직 길씨와 류씨 가문이 도착하지 않았다.“길씨 뱀할매도 부르긴 불렀죠?”전씨 가문 장로들이 자리에 앉은 후 족장이 설만수에게 물었다. 그러자 설만수는 공손하게 대답했다.“족장님, 이미 뱀할매에게 연락을 드렸습니다.”“그래! 그럼 곧 도착하겠네!”그리고 전씨 족장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십여 분이 지난 후, 갑자기 비린내가 진동하면서 거센 바람이 대전을 향해 휘몰아쳤다. 바람은 역겨운 냄새를 풍기며 불어왔다. 바람이 스치자 사람들은 현기증이 나기 시작했다.그때 전씨 족장이 갑자기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길씨네가 왔네!”대전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자 사람들은 일제히 그곳을 향해 쳐다봤다. 그러자 몸집이 나무
“저하,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그를 죽여야 합니까? 저자의 기운이 이토록 흉악한데 성수의 혈기로 진압할 순 없습니까?” 백호는 이미 싸우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안 된다. 너희 네 명이 함께라면 잠시나마 억누를 수는 있겠지만, 너희는 그저 성수의 정혈을 가졌을 뿐이니 마인을 완전히 없애려면 성수가 직접 나타나야 한다. 지금 이 세상에 성수가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스럽다.”윤구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말을 마친 윤구주는 곧장 진요탑 쪽으로 향했다.백호와 임정설, 청해가 함께 가서 돕고자 했으나 장인 대진인이 그들을 가로막았다.“이 마인은 오직 구주만이 상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중요한 임무가 있습니다. 국주님, 곧 전투가 시작될 터인데 서요산의 진법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 호법의 중임을 몇 분께 맡기겠습니다.”장인 대진인이 임정설에게 경건하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좋다. 오늘 이 자리에서 목숨을 바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저 마인을 죽이고야 말겠다.” 임정설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황자의 위엄을 한껏 드높였다.화진의 존망이 걸린 일이라면 임정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하지만 마기가 몰려와 서요산 전체를 뒤덮고 세상이 오직 흑백 두 가지 색깔만으로 변해버리며 그 끔찍한 살기가 강림했을 때 임정설마저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떨렸다.“이 마인의 기운이 이렇게까지 무서울 줄이야.” 임정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마기로 가득 찼고 윤구주마저 그 기세에 눌리고 있었다.진요탑에서 흘러나온 마기는 실체가 되어 넘쳐흘렀다. 마기가 나타나자 서요산을 지키는 모든 검종 제자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어떤 제자는 순간적으로 십여 년을 늙어버렸다.수련이 부족하면 수명으로라도 채워야 하는 참혹한 상황이었다.웅웅.하늘에는 먹구름이 밀집했고 그 안에서 요괴의 번개가 끊임없이 터졌다.“이젠 영기조차 요기로 변하고 있다. 풍수 비술로 보건대 머지않아 이곳에서 요마가 출현하겠구나.” 임정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요산 외부에서 짙은 요기
도가는 인연이라는 두 글자를 대단히 중히 여긴다.그의 한 번의 인연, 한 번의 생각은 곧 만백성의 생사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윤구주가 정상에 오르자 앞서 온 다른 이들과는 달리 서요산 검종의 모든 이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여 깊은 존경을 표했다. 그들이 경배한 대상은 단순한 한 인간이 아니라 구주의 저하, 화진의 인황, 오방 천지의 주재자였다.“모두 일어나십시오. 제가 오늘 서요산에 온 이유는 오직 진요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진요탑 안의 마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문 씨 세가의 역심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마인을 죽여야만 문 씨 세가의 야심도 함께 근절할 수 있습니다.”윤구주는 서요산 검종의 모든 제자를 향해 엄숙하게 말했다.이번 서요산 행차의 목적은 바로 문 씨 세가의 역심을 뿌리째 뽑는 것이었다.검종 제자들이 앞장서 일행을 이끌었고 모두가 금정을 지나 뒷산으로 향했다.뒷산에 막 들어서자마자 음산한 기운이 얼굴을 스쳤다.후산 중앙에는 높이 오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산이 서 있었는데 그 산은 무려 구백구십구 개의 쇠사슬로 단단히 봉인되어 있었다.이 쇠사슬은 그저 평범한 사슬이 아니었다. 절반은 땅속의 지맥과 연결되어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하늘 높이 떠올라 천지의 영기를 끌어모으고 있었다.이런 수준의 봉인이라면 설령 윤구주 자신이 여기에 갇혀 있다고 해도 빠져나가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이처럼 견고한 고진마저 지금은 마인의 사기로 조금씩 부식되어 가고 있었다. 본래는 영기가 흘러넘치는 명산이었으나 지금은 온 서요산이 마인의 기운에 물들어 음침하고 괴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이 강렬한 악기운을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모두 얼굴을 찌푸렸다.솟구치는 사기를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찌푸렸다.최근 몇 대에 걸쳐 입종한 서요산의 제자들은 이런 마인의 사기와 요마의 위협 속에서 수련해야 했다.천지의 영기조차 마인의 기운에 오염되어 수련에 큰 지장을 주었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남은 현
이 말을 듣자 모든 이들은 천 년 전 마지막으로 나타난 그 성인이 바로 서요산 검종에서 나왔음을 깨달았다.“짐은 서요산 검종의 선대 종주께서 우화등선하셨다고만 들었는데 그저 떠도는 신화 속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더니 은 성인의 경지에 이르신 것이었군.” 임정설이 깊은 감탄과 함께 말했다.구백 계단 윤구주는 이미 전설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하지만 그 전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구백삼십 계단 사십 계단을 오르면서 윤구주의 발걸음은 오히려 더욱 가벼워졌고 그가 세우는 기록은 사람들의 상식을 계속해서 뒤흔들었다.구백팔십 계단을 지나 정상까지 겨우 십여 계단만 남은 그 순간 윤구주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구백구십구 계단에 이르러 결국 완전히 멈추었다.드디어 한계에 도달한 것인가?모두가 숨을 죽이고 윤구주를 지켜봤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분명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시험일 터였다.윤구주는 미간을 찌푸린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십여 분을 견뎌냈다. 사람들은 그가 언제 다시 계단을 오를지 초조하게 기다렸다.마침내 윤구주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됐습니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넘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시험을 포기하지요.”말을 마치고 계단에서 내려서는 순간 청석 계단 아래에서 강력한 영기가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쳤고 곧바로 서요산을 감싸던 어둠의 기운을 깨끗이 몰아냈다.오랫동안 음울했던 서요산 상공은 순식간에 환해졌고 수백 킬로미터에 걸쳐 맑은 하늘이 펼쳐졌다.서요산의 모든 이들은 충격에 빠져 넋을 잃었다.그제야 그들은 윤구주가 왜 그토록 여유롭게 올라올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처음부터 서요산의 청석 계단이 가진 진법의 힘을 계속해서 억누르고 있었다.“참으로 대단하신 신위군요! 우리 서요산의 청석 진법마저 제압하셨다니! 마지막 한 걸음을 분명 넘으실 수 있었을 텐데 혹시 강제로 넘었다가 진법이 견디지 못해 영기가 새 나가고 진법이 무너져 진요탑까지 영향을 미칠지 걱정하신 건 아닌가요?” 장인 대진인이
도법의 깊이는 워낙 심오해서 임정설조차 제대로 가늠할 수 없었다.“쉽게 말씀드리자면 구주는 천지의 운기를 완전히 장악한 데다가 하늘이 직접 영광을 내리신 거죠.” 장인 대진인이 말했다.임정설은 이 말을 듣고 비로소 이해한 듯 말했다.“대진인의 말은 윤구주가 바로 하늘이 점지한 사람이라는 뜻인가?”“맞습니다. 우리 화진 사람들은 운명의 갈림길에 서면 본심에 따라 도법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깁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사는 다하고 하늘의 뜻을 따르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윤구주는 분명 큰 복을 타고났지만 그 엄청난 복을 감당할 힘도 필요합니다.”대진인이 설명했다.말이 끝날 무렵 윤구주는 이미 육백삼십 계단을 거뜬히 올라와 있었다.한 걸음도 멈추지 않고 더욱 확고한 걸음으로 계속 전진했다.그의 발걸음마다 천지의 기운이 응축되었다.어느 순간 서요산의 계단조차 윤구주의 기세를 가두지 못했다. 그는 마치 천지를 밟으며 오르는 듯했다.곧이어 그는 칠백 계단마저 돌파했다.칠백 계단이란 천 년 전 서요산의 전성기에도 극소수만이 도달할 수 있었던 경지였다. 지금 만약 윤구주가 구주왕이 아니라 일반 수련자였다면 이 기록만으로 서요산 전체가 들썩였을 것이다. 만일 윤구주가 서요산에 입문을 원했다면 서요산은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 그를 키웠을 것이며 서요산 검종의 다음 종주 자리는 당연히 그에게 돌아갔을 것이다.그러나 이미 칠백 계단에 이르렀음에도 윤구주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칠백오십 계단 팔백 계단 팔백오십 계단!그는 끊임없이 정상의 기록을 깨며 전설을 써 내려갔다.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윤구주 앞에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을 것 같았다. 이쯤 되자 장인 대진인조차 감히 그를 함부로 평가할 수 없었다.왜냐하면 자신도 과거에 겨우 칠백 계단에 그쳤으니 팔백 계단을 오른 사람을 감히 평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윤구주는 멈추지 않고 계속 올라갔다. 마치 천지를 흔들어 이 강산을 뒤엎어버리겠다는 기세였다.그리고 마침내 구백 계단에 이르렀다.“구백
하지만 한 계단씩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난관들도 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만약 윤구주와 맞서야 하는 적의 입장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차분히 계단을 오르는 윤구주는 마치 깊은 심연 그 자체였을 것이다.그의 강력함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가 올라올수록 위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압박감에 휩싸였다.검종의 검객들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윤구주는 이미 사백 계단까지 올라와 있었다.하지만 사백 계단쯤으로는 아무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화진의 또 다른 황자 구주왕의 후계자였으니까.윤구주가 오백 계단을 밟는 순간 모든 이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응시했다.눈길을 떼지 못한 채 그의 오름을 지켜보았다.오백일…… 오백이십! 오백오십! 오백구십구!“마침내 구구관에 도달했다.”“칠구는 수겁이요 구구는 극히 넘기기 어려운데.”진정한 고수들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과연 윤구주가 이 한 걸음을 쉽게 넘을 수 있을지 모두가 궁금해했다.윤구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그가 본 것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마치 화진의 온 세상 같았다.한눈에 화진의 대지와 산천이 모두 담겼다.눈앞에 펼쳐진 화진의 아름다운 대지는 숨 막히는 광경이었다.하지만 동시에 이 끝없는 강산 곳곳에 묻혀 있는 수많은 해골도 함께 보였고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비장함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윤구주의 내면을 감지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이 곧바로 그의 곁에 나타났다.“구주야 화진의 산천을 잘 살펴봐! 천하의 용맥은 모두 화진에서 비롯되었고 이 한 획 한 획은 백성의 척추와 같다! 눈에 비치는 물의 맑고 흐림은 중요하지 않아. 지나치게 눈 부신 빛은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너무 어두운 밤은 희망을 앗아가기 마련이지.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화진의 이 산천은 영원히 굳건히 서 있을 거야. 왜냐하면 푸른 산마다 묻혀 있는 충신의 뼈와 넋들이 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까.”서요산 검종 종주는 윤구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 온
진인들은 말했다. 임정설이 만약 집념을 내려놓는다면 육백 계단까지도 오를 수 있을 거라고.장인 대진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집념을 놓는다면 더 이상 화진의 국주가 아니지. 바로 이런 끈질긴 의지가 있기에 그분이 화진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다른 진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운명이란 그런 법이다. 아마도 집념을 놓았다면 임정설은 오백 계단조차 오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이때 임정설은 아직 남아 있는 절반의 계단을 바라보며 씁쓸히 미소 지었다. “어쩌면 여기서 멈춰야겠구나.”임정설은 다시 뒤를 돌아 윤구주를 바라보았다. 그가 자기 자식이자 동료처럼 여기는 윤구주가 과연 몇 계단을 오를지 궁금했다.깊은 생각에 잠긴 임정설이 곧바로 말을 꺼냈다.“구주야 이제 네가 올라서 봐! 화진의 구주왕다운 실력을 보여줘! 적어도 나보다는 못하면 안 되지 않겠냐?”아래에 서 있던 윤구주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원래 그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국주의 바람이라면 흔쾌히 도전할 마음이었다.“명 받들겠습니다!” 윤구주는 말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계단을 밟아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기 시작했다.구주왕이 등천로에 도전했다는 소식에 서요산 검종 전체가 술렁였다.검객은 물론이고 잡일을 돕는 제자들까지 모두 금정에 모여들어 그의 모습을 보고자 했다.심지어 하늘 위 어둑한 구름 사이에서도 한 쌍의 법안이 열렸다. 바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 환영이었다.임정설이 먼저 정상에 올랐고 장인 대진인을 포함한 일곱 진인과 서요산의 모든 제자들은 화진의 황자를 향해 몸을 숙여 예를 갖추었다.“모두 일어나시오. 그대들이 없었다면 화진은 이미 혼란 속에 빠졌을 것이오. 진정 국가와 화진을 위해 헌신한 것은 바로 그대들입니다.” 임정설은 화진의 모든 백성을 대표할 순 없지만 왕실을 대표하여 임 씨 일족의 지도자로서 서요산 검종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국주께서 과찬입니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방식대로 묵묵히 힘썼을 뿐입니다. 화진의 백
일곱 진인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들은 국주가 이미 등황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사백 계단은 쉽게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과연 그들의 예상대로 임정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오르며 오백 계단을 가볍게 밟아 올랐다. “오백 계단을 밟으면 등황의 경지에 오를 수 있습니다. 우리 일곱 진인 중에서도 오직 장인 대진인께서만 과거에 오백 계단에 오르셨고, 현재 서요산에 살아계신 유일한 오백 계단 수련자이십니다. ” 한 진인이 감탄하며 말했다.이 말을 듣자 옆에 있던 백호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선임 도사님 그러면 그 도사님도 황자란 말씀입니까? ”“하하! 우리 서요산에서는 외부의 그런 칭호를 쓰지 않아요. 우리 사이에서는 그를 반신이라고 부릅니다.” 진인들이 웃으며 말했다.청해가 옆에서 덧붙였다. “서요산 검종에서 말하는 반선이 황자를 뜻하는 거야. 근데 그 서요산 반선 진짜 어마어마하게 강한 인물이거든. 예전에 곤륜 구역에서 귀한 영약 찾으러 들어왔다가 우리 빙신전 전주랑 빙황 두 명이 같이 상대했는데도 둘 다 거의 죽을 뻔했어. 결국 아사 신전한테까지 도움 요청해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지.”“뭐라고?”백호는 놀라서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진짜 그렇게 강한지 의문이 들었다.일곱 진인 중 가장 나이 많은 그 진인은 백호의 단순한 반응에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그가 바로 그 반선이었다. 다만 백호가 워낙 세상 물정에 둔감하여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놀라기만 하고 있었다.그사이 임정설은 이미 오백오십 계단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이 단계에 이르자 임정설도 거의 극한에 도달했다.“역시 직접 올라와 봐야 이 압력을 제대로 실감하는구나! 오백사십 계단까진 무리 없었는데 오백오십 계단에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구나.”지금 임정설을 압박하는 것은 단순한 술도의 압력만이 아니었다.과거의 온갖 기억들이 마장이 되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일곱 진인은 모두 임정설의 기운이 혼란스러워진 것을 느꼈다.“장인 사형, 국주님께서 심마에 걸리셨군
청해의 눈길이 자주색 도포를 입은 진인에게로 향했다.서요산검종에서 종주를 제외한 나머지 일곱 명의 진인이 가장 높은 수련을 가지고 있으며 평소 종문 내의 모든 일은 이들 일곱 명이 책임지고 있다.기세는 마치 대강의 파도가 넘실대듯 깊고 끝이 보이지 않는 산과 숲처럼 무한히 이어져 있었다. 그의 수련은 깊이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서요산 7대 진인의 수련이 극 신급 절정이라고 들었는데 지금 보니 그 말이 너무 가볍게 들리네요. 귀하의 수련은 적어도 극 신급 절정 후반에 다다랐군요.”청해는 세 명의 진인에게 경의를 표하며 몸을 굽혔다.“서요산의 전통은 천 년을 자랑하며 그 깊이는 변함없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반면 곤륜 구역은 스스로 신을 자처한 이후로 계속해서 내분을 일으켰습니다. 수련을 통해 세상을 떠난 후 도를 깨닫는다는 말처럼 곤륜 구역은 천하의 영기와 천물을 흡수했지만 제 생각에는 도를 얻지 못한 곳입니다. 지금 당신이 화진에게 올바른 수를 두는 것은 맞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극 신급 절정 후반도 절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한 진인이 답례하며 말했다.그때 몇몇 사람들은 서요산 검객들의 함성에 이끌려 사방을 살폈다. 백호가 사백 계단을 올라갔다는 소식이었다.“대단한데요. 서요산이 전성기였을 때도 사백 계단을 오른 이는 드물었어요. 우리 몇몇 진인들도 입문 시에 사백 계단을 넘은 적은 없었죠.”몇몇 진인들이 칭찬했다.이는 백호가 미래에 매우 큰 가능성을 지녔음을 의미했고 적어도 극 진경 후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극 진경 후반은 곤륜 구역에서 신전의 전주가 될 수 있는 실력이다.지금 사백 계단에 오른 백호는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 완전히 의지로 버티며 강력한 정신력으로 계속해서 오르고 있었다.그러나 아무리 강한 운명을 지녔다 해도 천지의 이치를 막을 수는 없다.사백오십 계단에 도달했을 때 백호는 결국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의식을 잃은 것은 시험이 끝났다는 신호였고 백호는 곧 깨어났다.“겨우 사백오십 계단이라니
서요산 검객들이 모두 그 무인의 정체를 궁금해하자 진인도 더 이상 뜸 들이지 않고 말했다.“저분은 구주왕 휘하의 화진 군신이자 국방부 대장 백호 장군이시다.”검객들은 모두 입이 벌어진 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군신의 명성은 당연히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보호하는 영웅이었으니까.“정말 구주왕 휘하의 군신이라니!”“역시 저런 굳센 의지가 그냥 나온 게 아니었어! 수많은 전장을 누빈 명장다운 모습이다!” 서요산 검객들은 백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현재 백호는 이미 삼백이십 계단을 돌파한 상태였다. 백호가 혼자 주목을 독차지하는 걸 본 청해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고 계단에 발을 내디뎠다.처음 백 계단은 청해도 육신의 힘으로 버텼다. 하지만 백 계단을 넘자 육체만으로는 견디기 어려워졌다. 그는 술법으로 대응하려 했지만 평소 쓰던 빙신전의 신술이 계단 위 술법에는 통하지 않았다.“역시 화진의 서요산 검종은 보통이 아니구나. 이 등천로에선 일반 술법이 먹히지 않으니 천지 영기에 대한 깨달음으로 맞설 수밖에 없겠어.” 청해는 몸을 감싸고 있던 현빙을 거두고 오로지 자신의 속성 영기로만 버티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막상 올라 보니 이 등천로가 얼마나 어려운지 제대로 실감했다. 이백 계단쯤 오르자 벌써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계단마다 한계를 시험하는 느낌이었다. 올려다보니 백호는 여전히 계단 위로 나아가고 있었다. 청해도 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서요산 검객들도 청해의 수준을 알아보고 속삭였다. “저 이역인은 정말 대단한 내력의 소유자다! 기운이 이미 진인 급에 가까워! 극 신급 절정의 수련자임이 분명해!”이에 대해 진인은 신비롭게 꾸미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 “저자는 곤륜 구역 빙신전의 부 전주 청해다. 경지가 매우 높지. 지금 빙신전은 우리 화진에 귀속되었고 청해 역시 구주왕 휘하의 부하가 되었다. 얼마 전 서울 방어전에서 청현과 목숨까지 걸고 사투를 벌인 끝에 죽을 고비를 넘겼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