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음양사들은 검은색의 긴 옷을 입고 있었고 가슴 쪽에 뱀이 그려져 있었다.“이자 신전의 나미 대신관님?”이노우에 마노는 요염한 여자를 바로 알아보았다.부성국에는 아메 신전, 이자 신전, 레나 신전, 그리고 가장 강한 태양 신전을 포함한 4대 신전이 있었다.4대 신전은 부성국에서 엄청난 지위를 누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각각 천 년 정도 되는 역사가 있었다.이자 신전의 여자가 나타나자 이노우에 마노는 곧바로 그녀를 향해 깊이 허리를 숙였다.그러나 나미 대신관은 이노우에 마노를 무시하고 천천히 붉은 머리의 무토 대신관 앞으로 걸어가서 몸을 살짝 수그리며 말했다.“무토 대신관님, 오랜만이네요!”붉은 머리의 무토 대신관은 기묘한 미소를 지었다.“그러네요. 오랜만이네요.”“아메 신전이 파괴된 일로 무토 대신관님까지 오시다니, 저 화진 사람 실력이 꽤 강한가 보네요.”나미 토모코는 웃으며 말했다.붉은 머리의 무토 대신관은 싸늘한 눈빛으로 하치카미 산을 바라보았다.“10개국 간의 전쟁 이후 우리 부성국은 화진으로부터 이렇게 큰 모욕을 겪은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화진 사람이 감히 우리 부성국에 쳐들어와서 파괴된 우리 부성국 신전에서 단약을 만들다니 정말 기막힌 일입니다.”“저 화진 사람 실력이 꽤 좋네요. 제가 알기론 그는 혼자서 아메 신전을 파괴하고 기타가와 신사를 몰살했어요.”나미 토모코가 말했다.“네? 그건 어떻게 안 겁니까?”무토 대신관이 물었다.나미 토모코는 기괴하게 웃더니 오른손을 움직여 말했다.“데려오거라.”그녀가 말하자 두 명의 음양사가 가녀린 여자를 데리고 왔다.자세히 보니 그녀는 야나가와 노아였다.“이 사람은 누구죠?”무토 대신관은 야나가와 노아를 바라보며 물었다.“야나가와 노아라고 기타가와 신사의 아가씨였습니다. 이번에 기타가와 신사의 수천 명 되는 문하생들이 죽었다죠. 야나가와 노아 씨가 그 광경을 직접 봤다고 합니다. 그리고 노아 씨는 그 화진 사람과 함께 지내기도 했었고요.”나미 토모코의 말 때문
“화진 사람은 그 사람 혼자뿐입니까?”이때 경비대 책임자 이노우에 마노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야나가와 노아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혼자서 천 년 역사를 지닌 아메 신전을 파괴했단 말입니까? 그게... 가능합니까?”“그러게 말입니다. 게다가 기타가와 신사도 파괴하고 수천 명의 문하생들을 죽였다면서요?”주위에 있던 군인들과 음양사들은 야나가와 노아가 고개를 끄덕이자 모두 표정이 달라졌다.그중 대부분은 믿기 어렵다는 표정이었다.“지금 보니 그 화진 사람은 아마도 화진의 신급 강자인 것 같군요.”붉은 머리의 무토 대신관이 갑자기 천천히 입을 열었다.“신급 강자요?”나미 토모코는 당황했다.“맞습니다.”무토 대신관은 말을 마친 뒤 머나먼 동쪽을 바라보면서 중얼대며 기억을 떠올렸다.“당시 저는 운이 좋게도 화진에 가서 아주 남다른 신급 강자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 신급 강자는 성이 문씨였어요. 화진의 오래된 세가 출신의 기인이었죠. 그 사람은 눈빛 한 번으로 제 마음속 무도를 간파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만 굳어버린 채 오후 내내 그곳에 서 있었죠. 그가 절 살려주지 않았더라면 전 아마도...”무토 대신관의 말을 듣자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다들 깜짝 놀랐다.눈앞의 무토 대신관은 부성국에서 10위 안에 드는 고수였다.“물론 그건 10년 전 일입니다. 이미 10년이 지났고 제가 수련한 신도술은 화진의 신급 강자와 엇비슷한 수준이죠.”무토 대신관의 입가에 자신감 넘치는 미소가 걸렸다.“하하하하!”이때 한바탕 웃음소리가 등 뒤의 어둠 속에서 들려왔다.아주 쩌렁쩌렁한 목소리였다.“무토 대신관님 말이 맞습니다. 상대가 신급 강자든 뭐든 우리 부성국 땅에서 죄 없는 사람들을 죽였으니 죽어 마땅하죠.”뒤이어 탱크 같은 체구의 거인이 십여 명의 음양사들을 데리고 사람들의 시야에 나타났다.“레나 신전의 사람이다!”“와! 레나 신전의 대신관까지 오다니!”뒤에 있던 군인들은 회색 옷을 입은 음양사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곧바로 그들을 알아보았다.
3대 신전의 사람들이 산으로 향하려고 할 때 한 차례 굉음이 다시 한번 하치카미 산꼭대기에서 들려왔다. 그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붉은 구름이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붉은 기운 중에서 짙은 단약 향기가 나기도 했다.단약 향기가 나자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몸을 흠칫 떨면서 다시금 하치카미 산꼭대기를 바라보았다.“단약이네요!”“화진 사람이 단약을 만들고 있어요!”“젠장, 그 화진 사람 대체 무슨 단약을 만들고 있길래 이렇게 어마어마한 기운을 발산하는 거죠?”미나 토모코는 심각한 눈빛으로 하치카미 산꼭대기를 바라보았다.“무슨 단약이든 상관없어요. 오늘 우리 3대 신전의 대신관들이 전부 모였는데 화진 사람 하나 죽이지 못하겠어요?”오카다 지로가 말했다.붉은 머리의 무토 대신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싸늘한 시선으로 산꼭대기를 바라보았다.“갑시다!”그 말과 함께 대신관 세 명은 각자 데리고 온 음양사들과 함께 산꼭대기로 향했다.하치카미 산꼭대기.윤구주는 온몸에서 금빛을 번쩍이면서 책상다리하고 청색 솥 앞에 앉아 있었다.엄청나게 짙은 단약 향기가 청색 솥에서 흘러나왔다.“드디어 성공한 건가?”윤구주는 눈을 번쩍 떴고 두 개의 빛이 솥으로 쏘아져 나갔다. 윤구주는 손을 들었고 곧 휙 소리와 함께 붉은색 단약이 청색 솥에서 날아와 윤구주의 손바닥 안에 떨어졌다.그것은 피갈기 단약이었다.엄지손가락만 한 크기의 피갈기 단약은 단약 전체가 핏빛이었고 나타나자마자 주변 온도가 바로 낮아졌다.피갈기 단약이 드디어 완성된 것이다.손바닥 안의 단약을 본 윤구주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반짝였다.이 피갈기 단약을 만들기 위해 윤구주는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이 피갈기 단약은 윤구주 체내의 기린화독을 없앨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실력을 전성기 때로 되돌려 놓을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건 기린화독을 없앤다면 사랑하는 소채은을 살릴 수 있다는 점이었다.그런 생각이 들자 윤구주는 갑자기 시선을 들면서 먼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채은아, 조금만 기다려
이때 위패들 앞에는 흐릿한 노인의 허상이 꼼짝하지 않고 책상다리를 한 채 앉아 있었다.노인의 몸에서는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영혼 같았다.노인이 책상다리하고 앉아 있을 때 갑자기 그의 미간이 번쩍이더니 신기하게도 눈에 보이는 화염 표식이 그의 미간에 나타났다.“음?”그 화염 표식이 나타난 순간, 노인은 돌연 눈을 번쩍 떴다.그는 오른쪽 눈의 동공이 번쩍였고 왼쪽 눈에는 회색 안개가 껴있었다.눈을 뜨는 순간, 노인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말했다.“큰일이네! 기린화독에서 이상한 움직임이 발견됐어. 설마... 그가 우리 문씨 일가의 화독을 해독한 걸까?”노인은 놀란 목소리로 말하더니 훌쩍 일어나 눈을 크게 뜨고 손으로 자신의 미간에 나타난 화염 표식을 만졌다.자신의 미간에 확실히 화염 표식이 나타난 걸 확인하게 되자 노인의 표정이 유달리 심각해졌다.이때 쿵 소리와 함께 진동이 느껴졌고 곧 사당 전체가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그리고 곧 사당 아래쪽에서 무너지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넓은 사당 중앙에 아주 거대한 균열이 하나 나타났다.그 균열은 마치 지진처럼 사당을 두 쪽으로 나누었고 곧 나이든 목소리가 아래에서부터 들려왔다.“역시 화진의 왕이야! 화진의 천명을 타고난 놈다워! 우리 문씨 일가의 기린화독을 해독한 걸 보면 말이야!”땅속에서부터 소리가 울려 퍼지자 노인은 곧바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조상님, 깨어나셨군요!”노인은 깜짝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땅속의 목소리가 대답했다.“우리 문씨 일가에서 가장 강력한 기린화독조차 천하제일의 왕을 억누르지 못하는구나! 놀라워!”그의 목소리는 감탄하는 것 같기도, 탄식하는 것 같기도 했다.“조상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기린화독을 없앴다고 해도 지금은 한낱 쓸모없는 인간에 불과합니다. 현재 화진의 왕은 우리 문씨 일가 사람이 아닙니까?”땅속의 목소리가 말했다.“아니, 넌 틀렸다. 구주왕은 비록 죽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는 여전히 자타가 공인하는
땅 밑 조상의 목소리가 완전히 사라졌다. 노인은 조금 전 그곳에 대고 예를 갖춘 뒤 순식간에 어두운 사당 속에서 사라졌다.서울, 국방부 이황전.이곳은 화진의 새로운 왕 문아름의 침궁이었다.이때 커다란 침궁 안에는 정갈한 옷차림을 한 아름다운 문아름이 수련을 하고 있었다.그녀는 온몸에 검붉은색 기운이 감돌았다. 문아름이 백옥 같은 손으로 수인을 맺자 검붉은색의 기운이 마치 갑옷처럼 그녀의 몸을 뒤덮었다.자세히 보니 그녀의 미간에 작은 화염 표식이 있었다.그것은 문씨 세가의 기린 혈맥의 표식이었다.그 표식을 얻었다는 것은, 문아름이 문씨 세가 혈맥의 힘을 각성했다는 것을 의미했다.혈맥의 힘이 점차 각성하면서 문아름의 내공 또한 무서운 속도로 치솟고 있었다.문아름이 수련하고 있을 때 갑자기 음산한 바람이 불어왔다.“누구냐?”문아름은 차갑게 코웃음 치더니 오른손을 움직여 주변 검붉은 기운들을 칼처럼 날카롭게 만들어 뒤로 날려 보냈다. 쿵 소리와 함께 그것은 뒤에 있는 견고한 벽에 부딪혔고, 벽에는 1m 넘는 움푹 파인 자국이 생겼다.“좋아. 역시 우리 문씨 세가의 미래 기둥답네. 혈맥의 힘을 6할 정도 각성했구나.”음산한 목소리가 문아름의 뒤에서 들려왔고 곧 노인 한 명이 그녀의 앞에 나타났다.“할아버지세요? 문아름, 할아버지를 뵙습니다!”문아름은 상대를 확인한 뒤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예를 갖추었다.노인은 손을 저었다.“예를 갖출 필요는 없다.”그러고는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할아버지, 갑자기 오신 걸 보니 단순히 제 수련을 보기 위해서만은 아니죠?”문아름은 노인이 자리에 앉자 물었다.“네 짐작이 맞다. 내가 널 찾아온 이유는 그 자식이 우리 문씨 일가의 기린화독을 없앴기 때문이야. 내 예상대로라면 곧 내공이 전성기 때만큼 회복될 거야.”노인이 다시 말했다.‘뭐?’“할아버지... 혹시 윤구주 말씀하시는 거예요?”문아름의 아름다운 얼굴에 놀라움이 드리워졌다. 그녀의 질문에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이렇게 빨리 없앴
비록 전성기 때 실력이 되었다고 해도 아무렇게나 공개할 수는 없었다.그가 살아있다는 소식이 퍼져나간다면 화진의 국방부, 문벌, 종문, 문파들이 혼란에 빠질 테니 말이다.화진에 내란이 생기면 10국은 분명 그 기회를 틈타서 설욕하려고 할 것이다.그래서 윤구주가 살아있다는 소식은 아직 알려져서는 안 되었다. 그 때문에 윤구주는 지금껏 자신의 정체를 감추고 있었다.“어찌 됐든 전성기 때 실력이 되었다면 우리 문씨 일가에는 그의 상대가 될 사람이 없겠네요. 그에게는 봉왕팔기와 구양진용결이 있으니 그에 대적할 만 한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문아름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괜한 걱정을 하는구나. 비록 윤구주는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명을 타고난 인재가 맞아. 하지만 우리 문씨 일가의 저력은 네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강하단다.”노인은 의미심장하게 말한 뒤 오른손을 휘저으며 말했다.“나오거라!”그렇게 말하자 두 명의 검은 인영이 방 안에 나타났다.두 사람 중 한 명은 흰색 옷을, 다른 한 명은 검은색 옷을 입고 있었다.흰색 옷을 입은 사람은 선비처럼 생겼고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은 귀신처럼 못생겼다.두 사람은 마치 지옥에서 올라온 이들처럼 온몸에서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죽음의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유명전, 흑백무상 문아름 씨를 뵙습니다!”유명전이라는 세 글자에 문아름은 몸을 흠칫 떨었다.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눈앞의 흑백무상이라고 자신을 칭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내공이 무시무시했고 대충 짐작해 보니 둘 다 신급 강자인 듯했다.“그... 유명전 사람이라고요?”문아름은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그래. 게다가 유명전의 사람일 뿐만 아니라 우리 문씨 세가의 에이스라고도 할 수 있지.”노인은 웃으며 말했다.그의 말에 문아름은 다시 한번 놀랐다.유명전은 아주 오래된 은밀한 조직으로 화진의 4대 문파 위에 군림했다.유명전에 대한 전설은 너무 많았다.누군가는 유명전의 강대함이 오래된 홍문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했고
노인의 전부 죽이라는 말에 금색 옷을 입은 문아름은 몸을 흠칫 떨었다. 그리고 곧 그녀의 눈동자가 뜨겁게 불타올랐다.“할아버지 말씀대로 하겠습니다!”사실 문아름은 오래전부터 자신에게 대적하는 사람들을 없애 왕의 지위를 굳히고 싶었다. 그런데 드디어 할아버지가 제거 작전을 진행하자고 하자 무척 기뻤다.노인은 서늘한 눈빛을 하면서 계속해 말했다.“국방부를 통합하려면 반드시 눈엣가시인 암부를 없애야 해. 당시 암부는 윤구주가 직접 설립했어. 3대 지휘사도, 여단장들도 전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윤구주에게 충성을 다하겠다고 맹세했었어. 그러니까 암부가 쓰러진다면 윤구주를 따랐었던 국방부의 장교들도 전부 우리 편에 서게 될 거야.”“할아버지 말씀이 맞아요. 하지만 암부의 3대 지휘사는 전부 신급 강자예요. 특히 그 민규현이라는 자 말이에요. 소문에 따르면 그의 호마공은 윤구주가 직접 지도한 적이 있어서 동일한 경지에서는 그 호마공을 이길 자가 없대요.”문아름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그녀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세상에 널리 이름을 떨친 화진 암부의 3대 지휘사인 민규현, 정태웅, 천현수의 실력은 명불허전이었다.만약 속 빈 강정이었다면 화진의 가장 비밀스럽고 가장 높은 지위를 가진 암부의 지휘사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하지만 노인은 기묘하게 웃었다.“걱정하지 말거라. 그 세 지휘사를 어떻게 상대할지는 이미 생각해 두었으니까 말이야. 이번에는 흑백무상을 제외하고 가장 강한 에이스가 한 명 더 있다.”“누굽니까?”문아름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노인은 싱긋 웃더니 뒤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나오거라!”곧이어 노인의 뒤로 거대한 그림자가 나타났다.그 그림자는 아주 위험한 기운을 띤 채로 어둠 속에서 한 걸음 한 걸음 나왔다.쿵.쿵.쿵.그가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위험한 기운이 점점 더 짙어졌다.문씨 일가 혈맥의 힘을 각성한 문아름조차도, 아주 위험한 기운을 감지하게 된 순간 저도 모르게 숨이 막힐 정도로 두려워졌다.마치 이제 곧 나타날
“윤구주, 미안해! 네가 힘들게 설립한 암부는 이제 곧 내 손에 무너질 거야.”문아름의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지어졌다....부성국 하치카미 산.밤이 되자 수십 명의 강자들이 산꼭대기에 접근하고 있었다.선두에 선 사람은 태양 신전의 무토 대신관이었다.붉은 머리의 대신관인 그는 신급 강자로 부성국에서는 10위 안에 드는 정상급 인물이었다.그의 뒤에 있는 이자 신전의 나미 토모코는 비록 무토 대신관보다는 실력이 약했지만 그녀의 환술은 아주 기묘하고 대단했다.가장 뒤에 있던 레나 신전의 오카다 지로는 부성국에서 무적의 육체로 불렸고 레나 신전의 수화술을 수련한 무시무시한 광인이었다.3대 대신관은 부성국에서 모두 정상급이었다.현재 세 명의 대신관은 윤구주를 상대하려고 했다.무토 대신관이 수십 명의 사람들을 데리고 산꼭대기에 가까워지고 있을 때 갑자기 산꼭대기에서 엄청난 진동이 느껴졌다. 그 진동은 마치 산사태가 일어나기 직전과도 같았다.“젠장, 저 화진 사람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걸까요? 단약을 만드는 거 아니었나요? 왜 인기척이 점점 더 커지는 거죠?”말한 사람은 나미 토모코였다.그녀는 자줏빛 동공을 반짝이면서 심각한 표정으로 하치카미 산꼭대기를 바라보았다.“토모코 씨, 너무 간이 작은 거 아닙니까? 일개 화진 사람이 뭐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할 수 있겠어요?”레나 신전의 오카다 지로가 경멸에 차서 말했다.나미 토모코는 그의 말을 무시했다.그녀의 자줏빛 동공은 가장 앞에 서 있는 무토 대신관을 바라보고 있었다.“두 분 조심하는 게 좋겠습니다. 저 화진 사람이 감히 혼자서 우리 부성국에 왔다는 건 실력이 절대 약하지 않다는 걸 의미하니까요.”무토 대신관이 말했다.오카다 지로는 비록 표정에 경멸이 차 있었지만 무토 대신관의 말을 듣고 결국 침묵했다.쿵.쿵.세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하치카미 산에서 다시 한번 굉음이 들려왔고, 곧 엄청난 흡입력이 산꼭대기에서 느껴졌다. 잠시 뒤, 하치카미 산 주변의 자연의 기운이 전부 산꼭대
“저하,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그를 죽여야 합니까? 저자의 기운이 이토록 흉악한데 성수의 혈기로 진압할 순 없습니까?” 백호는 이미 싸우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안 된다. 너희 네 명이 함께라면 잠시나마 억누를 수는 있겠지만, 너희는 그저 성수의 정혈을 가졌을 뿐이니 마인을 완전히 없애려면 성수가 직접 나타나야 한다. 지금 이 세상에 성수가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스럽다.”윤구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말을 마친 윤구주는 곧장 진요탑 쪽으로 향했다.백호와 임정설, 청해가 함께 가서 돕고자 했으나 장인 대진인이 그들을 가로막았다.“이 마인은 오직 구주만이 상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중요한 임무가 있습니다. 국주님, 곧 전투가 시작될 터인데 서요산의 진법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 호법의 중임을 몇 분께 맡기겠습니다.”장인 대진인이 임정설에게 경건하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좋다. 오늘 이 자리에서 목숨을 바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저 마인을 죽이고야 말겠다.” 임정설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황자의 위엄을 한껏 드높였다.화진의 존망이 걸린 일이라면 임정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하지만 마기가 몰려와 서요산 전체를 뒤덮고 세상이 오직 흑백 두 가지 색깔만으로 변해버리며 그 끔찍한 살기가 강림했을 때 임정설마저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떨렸다.“이 마인의 기운이 이렇게까지 무서울 줄이야.” 임정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마기로 가득 찼고 윤구주마저 그 기세에 눌리고 있었다.진요탑에서 흘러나온 마기는 실체가 되어 넘쳐흘렀다. 마기가 나타나자 서요산을 지키는 모든 검종 제자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어떤 제자는 순간적으로 십여 년을 늙어버렸다.수련이 부족하면 수명으로라도 채워야 하는 참혹한 상황이었다.웅웅.하늘에는 먹구름이 밀집했고 그 안에서 요괴의 번개가 끊임없이 터졌다.“이젠 영기조차 요기로 변하고 있다. 풍수 비술로 보건대 머지않아 이곳에서 요마가 출현하겠구나.” 임정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요산 외부에서 짙은 요기
도가는 인연이라는 두 글자를 대단히 중히 여긴다.그의 한 번의 인연, 한 번의 생각은 곧 만백성의 생사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윤구주가 정상에 오르자 앞서 온 다른 이들과는 달리 서요산 검종의 모든 이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여 깊은 존경을 표했다. 그들이 경배한 대상은 단순한 한 인간이 아니라 구주의 저하, 화진의 인황, 오방 천지의 주재자였다.“모두 일어나십시오. 제가 오늘 서요산에 온 이유는 오직 진요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진요탑 안의 마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문 씨 세가의 역심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마인을 죽여야만 문 씨 세가의 야심도 함께 근절할 수 있습니다.”윤구주는 서요산 검종의 모든 제자를 향해 엄숙하게 말했다.이번 서요산 행차의 목적은 바로 문 씨 세가의 역심을 뿌리째 뽑는 것이었다.검종 제자들이 앞장서 일행을 이끌었고 모두가 금정을 지나 뒷산으로 향했다.뒷산에 막 들어서자마자 음산한 기운이 얼굴을 스쳤다.후산 중앙에는 높이 오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산이 서 있었는데 그 산은 무려 구백구십구 개의 쇠사슬로 단단히 봉인되어 있었다.이 쇠사슬은 그저 평범한 사슬이 아니었다. 절반은 땅속의 지맥과 연결되어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하늘 높이 떠올라 천지의 영기를 끌어모으고 있었다.이런 수준의 봉인이라면 설령 윤구주 자신이 여기에 갇혀 있다고 해도 빠져나가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이처럼 견고한 고진마저 지금은 마인의 사기로 조금씩 부식되어 가고 있었다. 본래는 영기가 흘러넘치는 명산이었으나 지금은 온 서요산이 마인의 기운에 물들어 음침하고 괴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이 강렬한 악기운을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모두 얼굴을 찌푸렸다.솟구치는 사기를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찌푸렸다.최근 몇 대에 걸쳐 입종한 서요산의 제자들은 이런 마인의 사기와 요마의 위협 속에서 수련해야 했다.천지의 영기조차 마인의 기운에 오염되어 수련에 큰 지장을 주었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남은 현
이 말을 듣자 모든 이들은 천 년 전 마지막으로 나타난 그 성인이 바로 서요산 검종에서 나왔음을 깨달았다.“짐은 서요산 검종의 선대 종주께서 우화등선하셨다고만 들었는데 그저 떠도는 신화 속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더니 은 성인의 경지에 이르신 것이었군.” 임정설이 깊은 감탄과 함께 말했다.구백 계단 윤구주는 이미 전설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하지만 그 전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구백삼십 계단 사십 계단을 오르면서 윤구주의 발걸음은 오히려 더욱 가벼워졌고 그가 세우는 기록은 사람들의 상식을 계속해서 뒤흔들었다.구백팔십 계단을 지나 정상까지 겨우 십여 계단만 남은 그 순간 윤구주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구백구십구 계단에 이르러 결국 완전히 멈추었다.드디어 한계에 도달한 것인가?모두가 숨을 죽이고 윤구주를 지켜봤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분명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시험일 터였다.윤구주는 미간을 찌푸린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십여 분을 견뎌냈다. 사람들은 그가 언제 다시 계단을 오를지 초조하게 기다렸다.마침내 윤구주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됐습니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넘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시험을 포기하지요.”말을 마치고 계단에서 내려서는 순간 청석 계단 아래에서 강력한 영기가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쳤고 곧바로 서요산을 감싸던 어둠의 기운을 깨끗이 몰아냈다.오랫동안 음울했던 서요산 상공은 순식간에 환해졌고 수백 킬로미터에 걸쳐 맑은 하늘이 펼쳐졌다.서요산의 모든 이들은 충격에 빠져 넋을 잃었다.그제야 그들은 윤구주가 왜 그토록 여유롭게 올라올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처음부터 서요산의 청석 계단이 가진 진법의 힘을 계속해서 억누르고 있었다.“참으로 대단하신 신위군요! 우리 서요산의 청석 진법마저 제압하셨다니! 마지막 한 걸음을 분명 넘으실 수 있었을 텐데 혹시 강제로 넘었다가 진법이 견디지 못해 영기가 새 나가고 진법이 무너져 진요탑까지 영향을 미칠지 걱정하신 건 아닌가요?” 장인 대진인이
도법의 깊이는 워낙 심오해서 임정설조차 제대로 가늠할 수 없었다.“쉽게 말씀드리자면 구주는 천지의 운기를 완전히 장악한 데다가 하늘이 직접 영광을 내리신 거죠.” 장인 대진인이 말했다.임정설은 이 말을 듣고 비로소 이해한 듯 말했다.“대진인의 말은 윤구주가 바로 하늘이 점지한 사람이라는 뜻인가?”“맞습니다. 우리 화진 사람들은 운명의 갈림길에 서면 본심에 따라 도법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깁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사는 다하고 하늘의 뜻을 따르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윤구주는 분명 큰 복을 타고났지만 그 엄청난 복을 감당할 힘도 필요합니다.”대진인이 설명했다.말이 끝날 무렵 윤구주는 이미 육백삼십 계단을 거뜬히 올라와 있었다.한 걸음도 멈추지 않고 더욱 확고한 걸음으로 계속 전진했다.그의 발걸음마다 천지의 기운이 응축되었다.어느 순간 서요산의 계단조차 윤구주의 기세를 가두지 못했다. 그는 마치 천지를 밟으며 오르는 듯했다.곧이어 그는 칠백 계단마저 돌파했다.칠백 계단이란 천 년 전 서요산의 전성기에도 극소수만이 도달할 수 있었던 경지였다. 지금 만약 윤구주가 구주왕이 아니라 일반 수련자였다면 이 기록만으로 서요산 전체가 들썩였을 것이다. 만일 윤구주가 서요산에 입문을 원했다면 서요산은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 그를 키웠을 것이며 서요산 검종의 다음 종주 자리는 당연히 그에게 돌아갔을 것이다.그러나 이미 칠백 계단에 이르렀음에도 윤구주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칠백오십 계단 팔백 계단 팔백오십 계단!그는 끊임없이 정상의 기록을 깨며 전설을 써 내려갔다.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윤구주 앞에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을 것 같았다. 이쯤 되자 장인 대진인조차 감히 그를 함부로 평가할 수 없었다.왜냐하면 자신도 과거에 겨우 칠백 계단에 그쳤으니 팔백 계단을 오른 사람을 감히 평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윤구주는 멈추지 않고 계속 올라갔다. 마치 천지를 흔들어 이 강산을 뒤엎어버리겠다는 기세였다.그리고 마침내 구백 계단에 이르렀다.“구백
하지만 한 계단씩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난관들도 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만약 윤구주와 맞서야 하는 적의 입장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차분히 계단을 오르는 윤구주는 마치 깊은 심연 그 자체였을 것이다.그의 강력함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가 올라올수록 위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압박감에 휩싸였다.검종의 검객들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윤구주는 이미 사백 계단까지 올라와 있었다.하지만 사백 계단쯤으로는 아무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화진의 또 다른 황자 구주왕의 후계자였으니까.윤구주가 오백 계단을 밟는 순간 모든 이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응시했다.눈길을 떼지 못한 채 그의 오름을 지켜보았다.오백일…… 오백이십! 오백오십! 오백구십구!“마침내 구구관에 도달했다.”“칠구는 수겁이요 구구는 극히 넘기기 어려운데.”진정한 고수들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과연 윤구주가 이 한 걸음을 쉽게 넘을 수 있을지 모두가 궁금해했다.윤구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그가 본 것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마치 화진의 온 세상 같았다.한눈에 화진의 대지와 산천이 모두 담겼다.눈앞에 펼쳐진 화진의 아름다운 대지는 숨 막히는 광경이었다.하지만 동시에 이 끝없는 강산 곳곳에 묻혀 있는 수많은 해골도 함께 보였고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비장함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윤구주의 내면을 감지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이 곧바로 그의 곁에 나타났다.“구주야 화진의 산천을 잘 살펴봐! 천하의 용맥은 모두 화진에서 비롯되었고 이 한 획 한 획은 백성의 척추와 같다! 눈에 비치는 물의 맑고 흐림은 중요하지 않아. 지나치게 눈 부신 빛은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너무 어두운 밤은 희망을 앗아가기 마련이지.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화진의 이 산천은 영원히 굳건히 서 있을 거야. 왜냐하면 푸른 산마다 묻혀 있는 충신의 뼈와 넋들이 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까.”서요산 검종 종주는 윤구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 온
진인들은 말했다. 임정설이 만약 집념을 내려놓는다면 육백 계단까지도 오를 수 있을 거라고.장인 대진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집념을 놓는다면 더 이상 화진의 국주가 아니지. 바로 이런 끈질긴 의지가 있기에 그분이 화진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다른 진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운명이란 그런 법이다. 아마도 집념을 놓았다면 임정설은 오백 계단조차 오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이때 임정설은 아직 남아 있는 절반의 계단을 바라보며 씁쓸히 미소 지었다. “어쩌면 여기서 멈춰야겠구나.”임정설은 다시 뒤를 돌아 윤구주를 바라보았다. 그가 자기 자식이자 동료처럼 여기는 윤구주가 과연 몇 계단을 오를지 궁금했다.깊은 생각에 잠긴 임정설이 곧바로 말을 꺼냈다.“구주야 이제 네가 올라서 봐! 화진의 구주왕다운 실력을 보여줘! 적어도 나보다는 못하면 안 되지 않겠냐?”아래에 서 있던 윤구주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원래 그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국주의 바람이라면 흔쾌히 도전할 마음이었다.“명 받들겠습니다!” 윤구주는 말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계단을 밟아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기 시작했다.구주왕이 등천로에 도전했다는 소식에 서요산 검종 전체가 술렁였다.검객은 물론이고 잡일을 돕는 제자들까지 모두 금정에 모여들어 그의 모습을 보고자 했다.심지어 하늘 위 어둑한 구름 사이에서도 한 쌍의 법안이 열렸다. 바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 환영이었다.임정설이 먼저 정상에 올랐고 장인 대진인을 포함한 일곱 진인과 서요산의 모든 제자들은 화진의 황자를 향해 몸을 숙여 예를 갖추었다.“모두 일어나시오. 그대들이 없었다면 화진은 이미 혼란 속에 빠졌을 것이오. 진정 국가와 화진을 위해 헌신한 것은 바로 그대들입니다.” 임정설은 화진의 모든 백성을 대표할 순 없지만 왕실을 대표하여 임 씨 일족의 지도자로서 서요산 검종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국주께서 과찬입니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방식대로 묵묵히 힘썼을 뿐입니다. 화진의 백
일곱 진인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들은 국주가 이미 등황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사백 계단은 쉽게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과연 그들의 예상대로 임정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오르며 오백 계단을 가볍게 밟아 올랐다. “오백 계단을 밟으면 등황의 경지에 오를 수 있습니다. 우리 일곱 진인 중에서도 오직 장인 대진인께서만 과거에 오백 계단에 오르셨고, 현재 서요산에 살아계신 유일한 오백 계단 수련자이십니다. ” 한 진인이 감탄하며 말했다.이 말을 듣자 옆에 있던 백호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선임 도사님 그러면 그 도사님도 황자란 말씀입니까? ”“하하! 우리 서요산에서는 외부의 그런 칭호를 쓰지 않아요. 우리 사이에서는 그를 반신이라고 부릅니다.” 진인들이 웃으며 말했다.청해가 옆에서 덧붙였다. “서요산 검종에서 말하는 반선이 황자를 뜻하는 거야. 근데 그 서요산 반선 진짜 어마어마하게 강한 인물이거든. 예전에 곤륜 구역에서 귀한 영약 찾으러 들어왔다가 우리 빙신전 전주랑 빙황 두 명이 같이 상대했는데도 둘 다 거의 죽을 뻔했어. 결국 아사 신전한테까지 도움 요청해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지.”“뭐라고?”백호는 놀라서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진짜 그렇게 강한지 의문이 들었다.일곱 진인 중 가장 나이 많은 그 진인은 백호의 단순한 반응에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그가 바로 그 반선이었다. 다만 백호가 워낙 세상 물정에 둔감하여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놀라기만 하고 있었다.그사이 임정설은 이미 오백오십 계단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이 단계에 이르자 임정설도 거의 극한에 도달했다.“역시 직접 올라와 봐야 이 압력을 제대로 실감하는구나! 오백사십 계단까진 무리 없었는데 오백오십 계단에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구나.”지금 임정설을 압박하는 것은 단순한 술도의 압력만이 아니었다.과거의 온갖 기억들이 마장이 되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일곱 진인은 모두 임정설의 기운이 혼란스러워진 것을 느꼈다.“장인 사형, 국주님께서 심마에 걸리셨군
청해의 눈길이 자주색 도포를 입은 진인에게로 향했다.서요산검종에서 종주를 제외한 나머지 일곱 명의 진인이 가장 높은 수련을 가지고 있으며 평소 종문 내의 모든 일은 이들 일곱 명이 책임지고 있다.기세는 마치 대강의 파도가 넘실대듯 깊고 끝이 보이지 않는 산과 숲처럼 무한히 이어져 있었다. 그의 수련은 깊이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서요산 7대 진인의 수련이 극 신급 절정이라고 들었는데 지금 보니 그 말이 너무 가볍게 들리네요. 귀하의 수련은 적어도 극 신급 절정 후반에 다다랐군요.”청해는 세 명의 진인에게 경의를 표하며 몸을 굽혔다.“서요산의 전통은 천 년을 자랑하며 그 깊이는 변함없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반면 곤륜 구역은 스스로 신을 자처한 이후로 계속해서 내분을 일으켰습니다. 수련을 통해 세상을 떠난 후 도를 깨닫는다는 말처럼 곤륜 구역은 천하의 영기와 천물을 흡수했지만 제 생각에는 도를 얻지 못한 곳입니다. 지금 당신이 화진에게 올바른 수를 두는 것은 맞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극 신급 절정 후반도 절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한 진인이 답례하며 말했다.그때 몇몇 사람들은 서요산 검객들의 함성에 이끌려 사방을 살폈다. 백호가 사백 계단을 올라갔다는 소식이었다.“대단한데요. 서요산이 전성기였을 때도 사백 계단을 오른 이는 드물었어요. 우리 몇몇 진인들도 입문 시에 사백 계단을 넘은 적은 없었죠.”몇몇 진인들이 칭찬했다.이는 백호가 미래에 매우 큰 가능성을 지녔음을 의미했고 적어도 극 진경 후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극 진경 후반은 곤륜 구역에서 신전의 전주가 될 수 있는 실력이다.지금 사백 계단에 오른 백호는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 완전히 의지로 버티며 강력한 정신력으로 계속해서 오르고 있었다.그러나 아무리 강한 운명을 지녔다 해도 천지의 이치를 막을 수는 없다.사백오십 계단에 도달했을 때 백호는 결국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의식을 잃은 것은 시험이 끝났다는 신호였고 백호는 곧 깨어났다.“겨우 사백오십 계단이라니
서요산 검객들이 모두 그 무인의 정체를 궁금해하자 진인도 더 이상 뜸 들이지 않고 말했다.“저분은 구주왕 휘하의 화진 군신이자 국방부 대장 백호 장군이시다.”검객들은 모두 입이 벌어진 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군신의 명성은 당연히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보호하는 영웅이었으니까.“정말 구주왕 휘하의 군신이라니!”“역시 저런 굳센 의지가 그냥 나온 게 아니었어! 수많은 전장을 누빈 명장다운 모습이다!” 서요산 검객들은 백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현재 백호는 이미 삼백이십 계단을 돌파한 상태였다. 백호가 혼자 주목을 독차지하는 걸 본 청해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고 계단에 발을 내디뎠다.처음 백 계단은 청해도 육신의 힘으로 버텼다. 하지만 백 계단을 넘자 육체만으로는 견디기 어려워졌다. 그는 술법으로 대응하려 했지만 평소 쓰던 빙신전의 신술이 계단 위 술법에는 통하지 않았다.“역시 화진의 서요산 검종은 보통이 아니구나. 이 등천로에선 일반 술법이 먹히지 않으니 천지 영기에 대한 깨달음으로 맞설 수밖에 없겠어.” 청해는 몸을 감싸고 있던 현빙을 거두고 오로지 자신의 속성 영기로만 버티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막상 올라 보니 이 등천로가 얼마나 어려운지 제대로 실감했다. 이백 계단쯤 오르자 벌써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계단마다 한계를 시험하는 느낌이었다. 올려다보니 백호는 여전히 계단 위로 나아가고 있었다. 청해도 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서요산 검객들도 청해의 수준을 알아보고 속삭였다. “저 이역인은 정말 대단한 내력의 소유자다! 기운이 이미 진인 급에 가까워! 극 신급 절정의 수련자임이 분명해!”이에 대해 진인은 신비롭게 꾸미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 “저자는 곤륜 구역 빙신전의 부 전주 청해다. 경지가 매우 높지. 지금 빙신전은 우리 화진에 귀속되었고 청해 역시 구주왕 휘하의 부하가 되었다. 얼마 전 서울 방어전에서 청현과 목숨까지 걸고 사투를 벌인 끝에 죽을 고비를 넘겼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