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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윤구주가 남부 부대의 차량을 보며 감개무량해하는데 소채은이 윤구주의 표정을 발견하고는 물었다.

“기억을 잃은 윤구주 씨, 뭘 그렇게 열심히 봐요?”

윤구주는 재빨리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근데 그렇게 넋을 놓고 보고 있다고?”

소채은이 다시 캐물었다.

“그냥 익숙해서 뚫어져라 보는 거겠죠.”

“익숙하다고요?”

“기억을 잃은 사람이 남부 창용부대 차량을 보고 익숙할 게 뭐가 있어요. 혹시 전에 군인이었어요?”

소채은이 캐물었다.

그 물음에 윤구주는 어이가 없었다. 그는 군인만 한 게 아니었다.

윤구주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소채은이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내가 봤을 때 당신은 그냥 차량 정비 엔지니어였을 거예요.”

“시내로 돌아가면 꼭 큰 병원으로 데려가서 기억상실증 고쳐줄게요.”

“기억 돌아오면 꼭 차 자주 고쳐주면서 보답해야 해요.”

소채은의 말을 들으며 윤구주는 쓴웃음을 지었다.

3시간 뒤, 드디어 소채은은 윤구주를 데리고 강성시로 돌아왔다.

주변에 즐비하게 서 있는 고층 빌딩을 보며 윤구주는 침묵을 유지했다.

소채은은 시내로 돌아오자 서란의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채은아, 지금 어디야?”

전화를 받자마자 서란이 냉큼 물었다.

“베프”의 전화에 소채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나 이미 강성시로 돌아왔어. 서란아, 하나 물어볼게. 우리 집안과 아빠가 어떻게 내가 옛 본가로 간 일을 알고 있지? 혹시 네가 일러바친 거야?”

소채은은 바보가 아니었다.

“베프”와 통화를 하고 두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아빠가 사람을 데리고 옛 본가에 나타났다. 이걸 과연 우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

수화기 너머의 서란이 이걸 듣더니 다급히 해명했다.

“채은아, 미안해. 아버님이 계속 보채서 말할 수밖에 없었어... 채은아, 내 탓 하는 거 아니지?”

서란은 전화에 대고 불쌍한 척해댔다.

소채은은 원래 화가 잔뜩 나 있었지만 “베프”가 먼저 승인하자 한숨을 크게 내쉬더니 말했다.

“됐어. 이번 일은 이렇게 넘기자. 네 탓한 적 없어.”

“고마워, 채은아. 사실 나도 너를 걱정했던 것뿐이야.”

“말해 봐. 지금 어디야? 내가 마중 나가야지.”

서란이 말했다.

단순한 소채은이 곧이곧대로 말했다.

“집에 거의 와 가.”

“아아, 그래.”

“맞다, 채은아. 아버님이 아까 전화하셨는데 네가 낯선 남자와 같이 있다고, 게다가... 진짜야?”

서란이 또 질문을 던졌다.

소채은이 듣더니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아, 다 오해야. 됐어. 만나서 자세히 얘기해줄게.”

“그래, 채은아. 집에서 기다려. 조금 있다 건너갈게.”

이렇게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화려한 인테리어를 한 방에, 파마하고 호피 무늬 미니스커트를 입은 서란이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방안의 남자에게 요염하게 말했다.

“성훈 도련님, 이미 다 확인했어요. 약혼녀 곧 돌아온다네요.”

“근데 다른 남자와 같이 휴가 간 게 확실한 거 같아요.”

도련님이라고 불리는 남자는 중해 그룹의 아들 조성훈이었다.

음침한 표정으로 자기 약혼녀가 곧 돌아온다는 소식을 들은 조성훈은 군말 없이 자기 가방에서 수표를 몇 다발 꺼내 서란에게 던져줬다.

서란은 바닥에 놓인 수표는 거들떠보지도 않고는 말했다.

“성훈 도련님, 저 너무 얕잡아 보는 거 아니에요? 전에 그렇게 많은 정보를 알려줬는데 설마 이 푼돈을 받자고 그랬겠어요?”

조성훈은 이 말을 듣더니 야릇한 웃음을 지으며 그녀를 바라봤다.

“그럼 목적이 뭔데?”

서란은 잘빠진 엉덩이를 요리조리 흔들며 걸어오더니 손은 조성훈의 몸 아래로 향했다.

서란이 한 단계 더 들어가려는데 조성훈이 그녀를 한쪽으로 확 밀쳐냈다.

“미안한데, 조씨 가문 문턱 꽤 높아. X 년은 용납 못해.”

조성훈의 말을 들은 서란의 표정이 확 변했다.

“서란아, 다시 한번 말할게. 너와 몇 번 잤다고 해서 네가 나와 어울린다고 생각하지 마. 한번 X 년은 영원한 X 년이야. 그러니까 선 넘지 마.”

서란이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정리했다. 그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요. 나 X 년 맞아요. 근데 X 년이어도 떳떳한 X 년이에요. 당신 약혼녀처럼 내일모레 잘난 중해 그룹 도련님과 결혼하는데 낯선 남자와 몰래 바닷가로 여행 가지는 않는다고요!”

“남녀 단둘이 바닷가에 두세 날을 보냈어요. 성훈 도련님, 약혼녀에게 배신당한 거 알고나 있어요?”

서란이 이 말을 내뱉자마자 조성훈은 서란의 목을 졸랐다.

“이 X 년아, 죽여버리기 전에 다시 한번 말해 봐.”

서란은 목이 졸려도 두렵지 않은 듯 계속 말을 이어갔다.

“죽여요. 차라리 죽이라고요. 하지만 배신당한 건 내가 아니라는 걸 기억해요.”

이 말을 들은 조성훈의 눈빛에 잔인함과 살기가 가득 찼다.

그는 눈앞에서 알짱대는 서란을 죽일 듯이 노려보더니 결국 손을 풀었다. 그러고는 서란을 본 체도 하지 않고 문을 박차고 나갔다.

밖에는 고급 승용차 몇 대와 보디가드가 한줄로 서 있었다.

조성훈이 나오는 걸 보고 바로 예의를 갖춰 불렀다.

“성훈 도련님.”

조성훈은 표정이 어두웠다. 소채은과 낯선 남자가 같이 있는 장면만 생각해도 주먹에서 까드득 소리가 날 정도였다.

“빌어먹을 계집애, 감히 나를 배신하다니, 두고 봐.”

화가 단단히 난 조성훈이 이렇게 벼르더니 고급 승용차에 올라탔다.

“소채은 그 천한 계집애가 사는 곳으로 가.”

“그리고 아빠한테 전화 넣어. 소 씨 집안과의 모든 거래를 중단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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