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졌어.”귀호가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상황에 염구준에게 덤비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어리석지 않았다. 지금은 한발 물러날 때였다. 세번째 경기가 시작되기 전, 양측 모두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염구준은 무표정한 얼굴로 경기장 밖으로 나갔다. “염 선생님, 수고 많으셨습니다.”제정도가 다가와 깊이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세번째 경기도 잘 부탁드립니다.”“별 말씀을요. 상대가 너무 약해서 제대로 즐기지도 못했는데요, 뭐.”염구준의 목소리엔 약간 실망스러움이 묻어 있었다.압도적인 무력을 가진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외로움, 그 말고 알 사람은 없었다.이때, 옆에 있던 제욱이 앞으로 걸어 나와 염구준을 향해 한쪽 무릎을 꿇었다.“아까 무례했던 점, 정말 죄송합니다. 무디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주세요.”비록 의견 차이는 있었지만, 그도 대염무관을 위해 한 일이었다. 무관 사람들은 평소 목숨보다 체면을 우선시하는 부문주가 이렇게까지 하자,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존경심이 더욱 치솟았다.“부문주님, 이러실 필요 없어요. 다 지난 일 아닙니까?”염구준이 그를 일으켜 세우며 괜찮다는 의사를 전했다. 남자란 자고로 사소한 것에 하지 않는 법, 시원스럽게 털어냈다. “하하!”그러자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제정도가 활짝 웃으며 기뻐했다. 더 이상 이 일 때문에 부문주와 불편해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우리는 준비 다 됐어. 이제 그쪽도 마무리하지?”귀호가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짜증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불길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우리도 다 됐어. 시작해.”제정도가 대답했다. 양측 인원이 입장하고, 세 번째 경기가 시작되었다.“여러분은 저쪽 가서 쉬고 계세요. 여긴 저 혼자면 충분합니다.”염구준이 앞으로 걸어 나가며 말했다. “염 선생님의 실력은 알지만, 그래도 저희가 없는 것보단 보탬이 되지 않을까요?”제욱이 조심스레 염구준에게 말을 꺼냈다. 결코 만만하게 볼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때, 가만히 있던 염구준이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상대가 그의 공격범위 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온 몸에서 강한 기류가 퍼지며 적은 물론 경기를 구경하고 있던 구경꾼들마저 압도했다. 거센 파도 같은 에너지가 온 공간에 퍼져 나가며, 적들에겐 충격은 아군과 구경꾼들에겐 놀라움을 선사했다. “아!”적들이 피를 토하며 순식간에 허공으로 튕겨져 나갔다. 기운을 흘린 것만으로도 상대를 제압한 것이었다. 바로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대염무관 사람들이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어어? 이긴 건가?”“그런 것 같아요!”“그래도 무성 강자인데, 이렇게 쉽게?”너무나도 쉽게 정리된 상황에 사람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무성 강자의 경지가 잘못된 건지 순간 헷갈렸다. 그만큼 너무나도 손쉽게 경기가 끝나버렸다. 그중에서도 가장 표정의 변화가 컸던 것은 귀호였다. 그는 피토하고 쓰러져 있는 아군들을 한번, 염구준을 한번, 연신 번갈아 보면서 질린 표정을 지었다. 일분 전까지만 해도 비웃는 입장이었는데, 손바닥 뒤집듯 상황이 역전되었다.“어떻게 이럴 순가… 아무리 전신 경지라고 해도, 무성 경지 열명을 이토록 쉽게 상대한다고?”일생에 한 번도 반보천인을 직접 본 경험이 없는 이들에겐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현상이었다. 모두가 놀라 굳어있는 사이, 염구준은 유유히 걸어가 계약서가 들어가 있는 가방을 집어 들었다. 이 계약서만 있다면 대염무관은 이 도시에서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터였다. 그건 용하국 사람들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잠깐!”귀호가 다급히 입을 열며 염구준을 붙잡았다. 이 계약서를 잃게 되면 그는 이 도시 절반 되는 사업장들을 잃게 된다. “또 왜?”염구준이 몸을 돌리며 차갑게 귀호를 쏘아붙였다. 그 시선에 귀로는 온몸이 오싹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수많은 전장을 경험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아찔한 살기, 두려움이 엄습했다. 귀호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얼른 하려던 말을 바꾸었다. “아, 그쪽이 아니라 제정
그는 오랫동안 보채성맹을 물리치고 이 도시 사업 주도권을 돌려받는 꿈을 꾸었다. 그는 항상 이 도시가 지금보다 좀 너 나은, 좀 더 평화로운 곳이 되길 바랐다. 하지만 늘 힘이 부족했기에 자신의 생각을 실천할 기회가 없었다. 그러니 절대로 이 어렵게 얻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알겠어. 이따가 후회하지 말아. 가자!”귀호가 경고하며 남은 부하들을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 그는 당장이라도 대염무관을 쓰러뜰이고 제정도와 느닷없이 끼어든 외부자를 죽여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제정도는 전신초기 경지였고, 외부자는 어쩌면 그보다 더 강했다. 지금 부하들이 모두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 덤볐다가는 전멸당하는 건 본인이 될 터였다. 귀호는 오늘은 일단 한발자국 물러나기로 마음먹었다. 보채성맹 사람들이 떠난 후, 제정도는 다시 한번 염구준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대염무관을 대표하여 염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염 선생님, 감사합니다!”다른 사람들도 함께 염구준에게 허리를 굽혔다. 그 와중에 갑자가 한 소녀가 다급한 모습으로 뛰어왔다.“아버지, 도와주세요! 주아가… 주아가…!”소녀의 이름은 제세라, 이제 막 스무살이 넘은 제정도의 둘째 딸이었다.“막내가 왜?”말을 꺼낸 것은 제정도 아닌 첫째 제만이었다.제만의 어머니는 막내 제주아를 낳은 뒤, 곧 세상을 떠났다. 제정도는 항상 무관 일로 항상 바빴기에 막내는 거의 그가 키우다시피 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남매 사이도 다른 집보다 훨씬 돈독했다.“막내랑 놀이공원에 갔는데, 갑자기 가면을 쓴 사람들이 나타나더니 함께 있던 삼촌들을 다 죽이고… 막내를… 막내를 납치해갔어요! 흑!”제세라가 눈물 범벅된 얼굴로 말했다.“울지 마, 상대가 누군지 알아?”제만이 황급히 물었다.“잘 모르겠어요….”제세라가 고개를 흔들며 답했다. 큰 일이었다. 막내를 구해야 하는데 어디서부터 찾아야 할지 난감했다. 이 대혼란의 지역, 무리안에서 어린아이가 사라졌다. 아이가 무슨 일을 당할지 알 수 없었다.
“저 호로 잡놈들이, 경기 결과가 어떻게 되든 처음부터 계약서를 넘길 생각이 없었던 거야. 감히 이런 더러운 술수를 쓰다니!”“저 귀호 놈을 그냥 보냈으면 안 됐는데, 이제 어떡하지?”사람들은 후회했지만, 때는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쪽지에 적힌 내용은 간단했다. 딸을 구하고 싶다면 오늘 밤 계약서를 챙겨 보채성맹 빌딩에 오라고 적혀 있었다. 수신인은 역시나 귀호였다.“지금 당장 주아를 구해야 해요!”사람들이 움직이지 않고 우물쭈물 거리자 제만이 등 뒤에서 무기를 뽑아내며 밖으로 향했다.“멈춰!”그런데 이때, 제정도가 그를 붙잡아 세웠다. 제만의 실력으로 보채성맹에게 덤비는 건 죽음을 자초하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그럴 수는 없어요. 막내는 어떻게든 제가 구해 올게요.”“저도 같이 갈래요!”“저희도요!”제만은 대염무관에서 꽤 신뢰를 받고 있는 사람이었다. 금세 몇몇 그를 따라 나서려 움직였다. 하지만 제정도는 허락할 수 없었다.“시끄럽다. 이 녀석들 움직이지 못하게 다 방에다가 가둬!”딸이 납치된 건 큰 일이었지만, 문주는 전체를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지금 움직이는 건 엄한 사람이 희생되는 것도 모자라 딸을 더 큰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었다.“문주님….”제욱이 설득하려 입을 열었지만, 제정도가 먼저 말을 끊었다.“문주는 나다! 명령에 따라!”제정도가 엄포를 하니, 사람들은 감히 명령을 어기지 못하고 제만 등을 잡으려 나섰다.“오늘 저를 막으면 그게 누구라도 가차없이 벨 것입니다.”하지만 그럼에도 제만은 물러서지 않고 완고히 말했다. 그는 당장이라도 전투를 치를 듯 검에 힘을 실었다.“어디서 감히 대들어!”제정도가 몸에서 기력을 개방하며 순식간에 제만 등을 찍어 눌렀다. 이틈을 타 다른 사람들이 제만을 제압하며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이거 놔! 당장 놓으라고!”제정도는 발버둥치는 아들의 모습에 가슴이 아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아버지로서 자식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희생은 적으면 적을수록 좋았다. 아들
염구준이 제정도 옆으로 다가오며 덤덤히 말했다.“제가 어디로 가는지 아십니까?”제정도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따님 구하러 가는 거 아니에요?”염구준은 이미 모든 것을 간파하고 있었다. 제정도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었다. 낮에 딸을 구하러 가지 못하게 한 것은, 그들의 실력으로는 절대로 적을 상대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면 오직 아버지인 자신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하, 무관 사람들도 알아차리지 못한 걸 염 선생님이 간파하고 있을 줄이야, 놀랍네요.”제정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쓴웃음을 지었다. 속에서 형용할 수 없는 소용돌이가 불어왔다. 사람 일이란 한치 앞도 알 수 없다는 것이 바로 이런 걸 보고 말하는 것일까?“저도 같은 입장이 되어 본적 있어서 알아챌 수 있었던 것뿐입니다.”그 말과 함께 염구준은 몇 년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그때는 지금만큼 강하지 않을 때였다. 부하가 함정에 빠져 포로로 잡혔던 순간이 있었다. 그는 구하려 나서려는 사람들을 만류하고 홀로 몰래 부하를 구하러 나갔던 적이 있었다. 그의 행동 또한 지금의 제정도처럼 모두 소중한 사람들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염 선생님, 손 내밀어 주셔서 감사합니다.”제정도가 고마웠지만, 염구준에게 분명히 해둬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굳이 이런 모험 함께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늘 밤, 결코 쉬운 전투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하지만 염구준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오히려 그를 재촉하고 나섰다.“됐어요. 얼른 가요!”제정도는 그제야 마음을 굳히고 길을 앞장섰다. 그렇게 두 사람은 어둠속에 모습을 감추며 빠르게 보채성맹을 향했다. 그런데 가는 길, 염구준이 문득 떠오른 듯 말을 꺼냈다.“문주님, 저랑 거래 하나 할까요?”“거래요? 말씀하세요.”제정도가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염구준과 만난 뒤로 그는 항상 신세 지기만 했는데,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거래를 원하다니 의문스러웠다.“별거 아니에
제정도는 계속해서 들어오는 공격에 꽤나 곤혹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정도면 충분해요.”염구준의 신형이 흔들리더니 순식간에 폭탄이 쏘아진 지점으로 돌진했다. “이런! 각 팀들 주의해! 목표물 중 하나가 사라졌다!”야간 투시경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정찰원이 갑작스레 시야에서 사라진 염구준을 발견하곤 놀라 무전기에 외쳤다. 그리고 다급하게 염구준을 찾기 시작했다.“찾을 것 없어.”이때, 등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남자는 놀라 손에 들고 있던 총을 거의 떨어뜨릴 뻔했다. 놈이었다! 사려졌던 목표물, 염구준!그는 제대로 반격할 틈도 없이 목에 서늘한 느낌과 함께 바닥으로 추락했다. 어떻게 사람이 이토록 인기척이 없이 나타날 수가 있지? 죽기 직전까지 남자는 자신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자, 한 명.”염구준이 가볍게 말하며 다시 한번 어둠속에 사라졌다. 이들은 누가 봐도 미끼였다. 시간 끌기 위해 귀호가 배치해둔 희생양. 운 좋으면 제정도에겐 약간의 피해는 입을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염구준에겐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처음엔 끊임없이 들려오던 폭탄과 총탄 소리가 점차 줄어 들었다. 이제 제정도에게도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명령을 내리던 남자는 매우 당혹스러웠다.“야, 뭐하는 거야! 다들 빨리 발포하지 않고 뭐해?”남자가 적어진 공격 소리에 분노하며 무전기에 대고 소리쳤다. 그는 자신의 동료들이 이미 염구준에게 모두 처리되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렇게 남자를 마지막으로 모든 인원이 제거되었다. 모든 것이 채 몇 분도 되지 않아 일어난 일이었다. “다 처리했어요. 계속 가죠.”제정도 옆으로 돌아온 염구준이 기지개를 피며 말했다. “이렇게 빨리….”제정도는 놀라운 상황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염구준의 실력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강했다. 만약 아군이 아니라 적으로 만났다면, 아무리 전신 초기 경지라도 저들처럼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을 것 같았다. 잔챙이들이 모두 처리되자, 두 사람은 더 속도를 내
“그러니까, 사람 함부로 건드리는 거 아니야.”염구준이 손바닥으로 남자의 얼굴을 내리치며 말했다. 남자는 이빨은 물론 얼굴이 피떡이 되어 정신을 잃었다. 염구준은 남자를 한쪽으로 걷어 찬 뒤, 고개를 들어 빌딩 가장 꼭대기에 있는 귀호를 향해 중지를 내밀어 보였다. 국적불문, 만국공통 욕이었다.“이놈이! 두고 봐, 손가락 잘라버리겠어!”건물 꼭대기 층에서 귀호가 손에 들고 있던 와인을 원샷하며 분노가 가득 담긴 목소리로말했다. 오늘 밤, 그는 제정도를 죽이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귀호가 천천히 몸을 돌리며 뒤에 있던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건물 내부 장치들을 가동해. 일단 먼저 지치게 만든다.”“네!”그러자 그 즉시 누군가가 빠르게 답하며 문 밖으로 나갔다. 귀호는 전죽력이 강한 편은 아니었지만, 음모와 계략 측면에는 매우 뛰어났다. “우리까지 불러놓고서 이렇게까지 조심성 있게 해야겠어?”이때, 옆 소파에 앉은 채 여유롭게 와인을 마시던 두 사람 중 젊은 여자가 입을 열었다. “맞아. 제정도 하나 상대하는데 이렇게까지 큰 판을 벌릴 필요 있을까?”나머지 한 사람, 노인이 젊은 여자의 말에 동의하며 덧붙였다. 두 사람 모두 전신 경지에 오른 강자들이었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쉽게 갈 수 있다면, 쉽게 가는 게 좋잖아. 그리고 걱정 마. 여기까지 온 이상, 이따가 두 사람이 나설 일이 생기던, 생기지 않던 약속된 보수는 줄테니.”귀호가 싱긋 두 사람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그렇다면 뭐, 마음대로 해.”젊은 여자가 계속해서 와인을 음미하며 가볍게 대답했다. 귀호는 눈을 가늘게 뜬 채 계속해서 계획을 세워갔다. 아직 두 사람에겐 염구준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은 상태였다. 한편, 염구준과 제정도는 무사히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건물은 꼭대기 층과 엘리베이터를 제외하고 모두 불이 꺼진 채 매우 어두컴컴했다. 누가 봐도 이건 음모가 느껴졌다. “염 선생님, 계단으로 갈까요?”제정도가 조심스레 물었다. 대놓고 파
강한 유독물질, 염산!뿌려진 물체를 눈치챈 순간, 정제도는 망설임없이 전신 영역을 펼쳐 자신과 염구준을 감쌌다. 액체가 영역 외벽을 접촉하며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치직… 사방이 부식되어가는 소리. 산이 닿은 곳곳마다 녹이 쓰며 독성을 뿜어 댔다. 귀호는 이 함정을 위해 거액을 들였다. 하지만 염구준에겐 효과가 없었다. “불타올라라!”염구준이 외치자 몸에서 불꽃이 피어오르며 높은 온도로 인해 액체가 모두 증발했다. 거기에 스프링쿨러는 녹다 못해 모두 막혀 버렸다. 자연스레 뿜어져 나오던 액체도 멈췄다. 반보천인!제정도는 마음이 격하게 떨렸다. 좀 전에 염구준이 보여준 모습, 그건 가문의 고서에서나 본적 있었던 반보천인의 기술이었다. 그는 어리벙벙했다.“뭘 그렇게 쳐다봐요? 제가 아무리 잘생겼어도, 남자한테 그런 시선은 사양이에요. 얼른 계단이나 찾아요.”염구준이 장난스레 농담을 건네며 말했다. “아!”제정도는 순간 말문이 막혀 말 대신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계단 앞에 도착해보니, 입구가 무수히 많은 물건들로 꽉 막혀 있었다. 두 사람은 황당해 웃음이 나왔다. 겨우 이까짓 것으로 두 사람을 막으려 들다니, 너무 어이없었기 때문이다. 일반이었으면 몰라도 염구준에겐 이정도는 힘쓰는 것에도 속하지 않았다.“지루하네요.”염구준은 계단으로 가는 걸 포기하고, 그냥 바닥을 박차고 천장을 뚫었다. 마치 종잇장처럼 구멍 난 콘크리트, 제정도도 그 뒤를 따랐다. 다음 층에 도착하니, 이상한 냄새가 염구준의 코를 간지럽혔다. 잠시 고민하던 그의 머릿속에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 하나.이건 인! 일정한 농도에 도달하면 폭발하는 가연물이었다!이때, 쾅하고 무언가가 폭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엄청난 화력이 담긴 불꽃이 피어나며 순식간에 그들을 덮쳤다. 그 위력이 얼마나 강했는지, 잠시 건물이 흔들릴 정도였다. 참 대단한 시도였다. 정말 자칫했다가 건물이 날아갈 수도 있는 함정이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염구준에겐 아무런 타격도 줄 수 없었다. 폭발이 일
스스로 조소하던 로사는 카트 아래에서 가운을 꺼내 몸을 감쌌다.상대방이 이런 취향이 아닌데 계속 이러고 있으면 오히려 반감만 생긴다.솔직히 처음으로 당당하게 남자를 유혹하려 하는데 단번에 거절당해서 매우 부끄러웠다.한참이 지나도 말을 하지 않자 염구준이 소녀의 생각을 추측했다.“내가 대신 복수해줘? 탈출시켜줘, 아니면 무공을 알려줘?”“전부 다요!”로사는 그가 전부 맞힐 줄은 상상도 못했다.염구준은 별로 놀라는 기색이 없이 미리 쓴 원고를 던지며 말했다.“거기에 적힌 대로 하면 무공을 터득할 수 있어. 나머지는 너를 도와줄 의무가 없어.”그가 이렇게 호의를 베푸는 것은 소녀가 정말 무공을 배우기에 적합한 인재이기 때문이었다.로사는 실망을 감추지 못했지만 그래도 강요하지 않고 다른 방법을 시도했다.“그럼 내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어요?”“말해.”마침 염구준도 시간이 있기에 로사의 말을 들어주고 나중에 복수하는 것을 포기시킬 생각이었다.그러면서 음식을 먹는 것을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로사는 일단 생각을 정리하고 조리 있게 말하기 시작했다.“난 고아예요. 아주 어릴 때 고아원에 들어갔었죠. 그곳은 낙원일 줄 알았는데 원장이 나를 신비한 조직에 팔아버렸어요. 나랑 함께 그곳에 간 아이들은 혹독하고 잔인한 훈련을 받으면서 피비린내 진동하는 살인 도구로 살았어요.”“그러다 반 년 전에 내가 조직의 두목을 죽이고 도망쳤어요. 그곳을 이가 갈리도록 원망해요. 선배님은 실력이 강한 무술인이란 걸 처음 봤을 때부터 알았어요. 나를 가엽게 여기고 옆에 하인으로 있게 해주면 안 돼요?”예상하지 못한 말에 염구준은 흠칫 놀라더니 젓가락을 내려놓았다.“만약 네 말이 사실이라면 사정이 딱하긴 해. 그렇다고 난 도와주지 않아.”그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지만 로사는 용하인이 아니기에 더더욱 도와줄 이유가 없었다.그리고 곁에 하인을 두면 귀찮은 일만 생기기에 그럴 필요가 없었다.무공 수련법 한 장을 준 것도 의리를 다한 셈이었다.“그래도 나를 구
염구준은 육신이 극한에 도달한 이후로 공격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너… 악!”촤아악!바다의 유령은 말도 제대로 못하고 비수를 든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순식간에 뒷목에 서늘한 것이 스치는 것을 느끼다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버렸다.나머지 여섯 명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른 채, 피바다에 고꾸라졌다.“내가 준 기회를 소중히 여기지 않은 자신을 탓해.”염구준은 검을 한바퀴 돌려 피를 털어버리고 검갑에 집어넣었다.그 동작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깔끔했다.“다… 당신 사람을 죽였어.”먼 발치에서 사람이 죽는 장면을 본 선장은 너무 놀라 주저앉았다.로사는 그나마 무덤덤하고 나머지 선원들도 많이 놀랐는지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솔직히 일곱 명의 무술인이 어떻게 죽었는지 제대로 보지 못했다.“은혜도 모르는 놈들 죽어 마땅하지 않아요?”염구준은 의아해하며 되물었다.이런 악당들이 죽으면 아무도 자신들을 해치지 않아서 기뻐해야 할 마당에 선장은 바닥에 쓰러진 시체를 보고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그… 그래도 사람이잖아요.”이제 보니 선장은 그동안 잔인하게 고래를 잡았으면서 사람에게 관대했다.만약 염구준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로사는 비참하게 당했을 거고, 선장 일행은 비참하게 죽었을 것이다.그때 독수리가 기회를 잡고 맞장구를 쳤다.“저 사람들은 당신을 노리고 왔어요. 그러니까 오히려 우리가 억울하게 당한 거라고요. 당장 우리 선박에서 내려요!”“…”독수리의 말에 선원들은 경악하며 쳐다보았다.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정말 멍청하다고 해야 할지 용감하다고 해야 할지 적당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았다.촤아악!염구준이 인상을 찌푸리며 날카로운 검기를 내리치자 다들 너무 무서워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안 돼요. 아직 아이란 말이에요.”분위기가 살벌해지자 로사가 반쯤 드러난 가슴을 감싸고 독수리의 앞을 막았다.구자검의 검기는 소녀의 옆을 스쳐 바다 표면에 물보라를 일으켰다.염구준은 공격하지 않고 협박투로 말했다.“또 나한테
드디어 구명보트를 탄 일행이 선장의 도움으로 선박으로 올라왔다.모두 여덟 명으로 그동안 먹지를 못했는지 몸은 수척해지고 탈수 증상이 있었다.“주방에서 음식들 갖고 와. 그리고 링겔을 놔줘.”선장은 일행은 관찰한 후 응급처치를 하기 시작했다.“그런데 음식은 그분한테 줘야 하는데요.”염구준을 무서워하는 선원 한 명이 작은 소리로 일깨워주었다.그러자 선장이 엄숙한 표정으로 손사래를 쳤다.“일단 이 사람들 주고, 다시 만들어서 보내면 돼.”만약 염구준이 있었다면 일행을 전부 알아보았을 것이다.두 시간의 응급처치를 거쳐서 여덟 명은 드디어 혈색이 돌아왔다.아직 몸이 많이 허약하지만 그래도 목숨을 부지해서 참 다행이었다.“큰일은 없으니까 한동안 쉬면 괜찮아질 겁니다.”선장은 웃으면서 선원들에게 안으로 모셔서 쉬게 하라 일렀다.모두 마음이 어진 어부들이라 바다에서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보고도 구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지금이야!”바로 그때, 돌변상황이 발생했다.구조된 일행 중에서 누군가 소리치자 여덟 명이 동시에 기운을 끌어올려 선원들을 공격했다.평범한 선원들은 저항하지도 못하고 단번에 제압당하고 말았다.“악!”로사는 모두가 방심한 틈을 타 종사지경에도 도달하지 못한 무술인의 목을 베었다.그런데 방금 공격으로 이미 기진맥진했다.“대장, 여자가 있어.”“가만히 있어. 내가 상대할게.”그들은 동료가 죽은 것도 개의치 않고 모두 로사의 몸매만 쳐다보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쿵!대장이라는 무술인이 기운을 폭발시키더니 갑자기 덮쳐서 로사를 제압했다.“발버둥쳐. 반항해 봐. 그럴수록 더 흥분되니까. 하하하.”이렇게 혈기왕성한 모습이라니, 방금 전에 죽을 것처럼 시들시들하던 인간 같지 않았다.그 장면을 본 선장은 가슴이 칼로 에이는 것 같았다.지금까지 어부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이런 악당들을 만났다.“너희들 뭐하는 짓이야? 방금 우리가 너희를 살렸어.”선장은 은혜를 원수로 갚는 놈들의 행위가 이해되지 않았다.“우리를 구했다고?
“맞아.”염구준은 소녀의 몸에서 악한 기운을 느꼈지만 덤덤하게 말했다.기운만 보아도 사람 몇 명을 살해한 것 같았다.“날 잡으러 왔어요?”로사는 비수를 꽉 쥐고 또 물었다.“아니야. 길이나 안내해.”염구준이 그 사이 소녀를 관찰한 결과, 무술을 배우기에 좋은 재목이었지만 아쉽게도 인도할 스승이 없었다.두 사람은 오늘 처음 만났으니 더는 소녀의 일에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휴, 무례하게 대해서 죄송해요.”그제야 로사는 비수를 넣으며 사과했다.소녀는 앞장서 가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방금 싸우려는 자세만 봐도 건장한 남자를 상대하는 것은 문제없어 보였다.선장 침실에 도착하자 로사는 이불을 바꾸고는 한마디만 하고 떠났다.“쉬세요. 음식이 되면 여기로 가져다 줄게요.”“그래. 볼일 봐.”쿵!염구준은 문을 닫고 침대에 쓰러져서 잠들었다.이런 포근함을 오랜만에 느끼는 것 같았다.그리고 머릿속에 그동안 발생했던 일들을 정리했다.황계웅에게서 옥패의 단서를 발견하고, 유동심연에 도착했을 때 나머지 세력이 따라온 덕에 비슷한 정보를 얻었다는 것을 알아냈다.이 정보는 어쩌면 같은 사람이 흘렸을 수도 있다.그리고 심해에서 봤던 가짜 옥패는 흑풍의 표식을 남긴 것을 보아 틀림없이 그놈의 짓이다.이 모든 상황을 종합해 볼 때, 상황은 이랬을 것이다.몇 년 전에 흑풍이 심해에서 진짜 옥패를 찾았는데 위험한 곳이란 걸 알고 적을 죽이려고 함정을 판 것이다.마침 강적을 만난 그는 시기가 되자 일부러 고대 옥패의 단서를 남겨 죽이려고 했는데, 계획과 다르게 적의 육신이 극한 경지에 도달하게 만들었다.…이런 생각을 하다가 염구준은 잠에 빠졌다.밖에 날씨가 화창하고 바람도 적게 불어 항행하기 딱 좋았다.이번은 선장이 직접 나서서 전속으로 달리고 있었다.지금 그는 빨리 부두에 도착하여 염구준의 돈을 받는 즉시 선박에서 내보낼 생각이었다.어쩐지 그는 사람이 아니라 핵폭탄 같았다.조종석에서 할 일이 없는 몇몇 선원은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잡
그의 재력이라면 대형 수영장을 만들어 향유고래를 키울 수도 있지만 바다가 고래의 고향이라 그러지 않았다.“선장, 고래가 엄청난데 잡지 않아요?”갑판에서 몸이 건장한 흑인 선원이 불만을 토로했다.눈앞에서 헤엄치며 돌아다니는 것이 전부 돈이니 그럴만했다.“독수리, 주둥이 닥쳐!”선장은 아직도 누군가 향유고래에 미련을 두자 버럭 화를 냈다.염구준이 어디 출신인지 모르겠지만 그가 발산하는 기운은 보는 사람이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독수리가 염구준을 힐끗 보고는 어쩔 수 없이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나머지 선원들도 감히 반박하지 못하고 선장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저기, 아직 볼일이 남았어요?”선장은 염구준이 조용히 앉아 있자 조심스럽게 물었다.“여기서 가까운 부두로 데려다줘요.”염구준은 끝없는 바다를 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이곳은 바닷가와 멀리 떨어져 있어 일단 상륙한 후에 어떻게 할지 계획을 세울 생각이었다.“그게…”선장은 난처한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어려우면 말씀하세요. 그렇다고 폭행을 휘두르면서 강요하지 않으니까.”염구준은 선장의 태도가 이상한 걸 눈치채고 분명하게 말했다.선박은 어부들 것이니 강제로 빼앗지 않을 것이다.그의 말에 선장은 솔직하게 말했다.“우리는 고래를 잡아서 생계를 유지해요. 이제 나와서 한 마리도 잡지 못했는데, 이대로 돌아가면 손해가 엄청납니다.”그들은 염구준이 무섭지만 돈을 벌지 못해 가족들이 굶는 것이 더 무서웠다.“그런 거라면 어렵지 않아요. 얼마를 원하세요? 육지에 도착하면 내가 줄게요.”염구준에게 있어 돈으로 해결하지 못할 일은 없었다.“100만 달러.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선장은 믿지 않는지 거액의 가격을 부르면서 떠보았다.듣기에 높은 가격이지만 따져보면 수리비용, 연료, 인건비 등등 모두 제외하면 얼마 남지 않으니 합리적인 가격이었다.“이걸로 담보할게요. 어차피 당신네 선박에 있으니까 도망치지 않아요.”염구준은 상대방이 걱정하는 걸 알아차리고 딸에게 선물하려고 주은 주먹
이튿날, 미지의 바다에서 향유고래 한 마리가 헤엄치고, 등에 한 사람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그 사람은 바로 염구준이었다.사방에 온통 푸른 바다라 지금 어느 곳에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지금은 고래가 바닷가로 데려가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었다.“고래야, 잘 부탁한다.”“우웅!”둘은 서로의 말을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수시로 교류했다.염구준이 눈을 감고 운기조식하다가 배고프면 심해의 눈물로 에너지를 보충했다.신기한 것은 한 방울만 먹어도 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뿌우우우웅!그때 멀리서 선박 소리가 들렸다. 염구준은 눈을 번쩍 뜨고 소리를 질렀다.“저기요! 여기 사람 있어요!”목소리에 기운을 담았더니 쩌렁쩌렁한 소리를 지를 때마다 수면이 음파에 진동하는 것 같았다.어디선가 나타난 선박에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슥!그런데 선박에 다가간 순간, 상대방이 고래를 잡는 쇠고랑을 발사하는 것이었다.염구준은 재빨리 검기로 밧줄을 잘라버렸다.선박은 그를 구하러 온 것이 아니라 향유고래를 잡으러 온 것이었다.생각하지 않아도 고래의 용연향을 얻기 위함일 것이다.스스슥!선박에 있는 사람들은 고장난 줄 알고 이번에 작살을 던졌지만 역시 염구준에게 잘려서 바다 밑으로 들어갔다.상대방과 가까워지자, 염구준은 그들의 선박에 번쩍 뛰어올라 엄숙하게 경고했다.“멈춰. 아니면 무력으로 대응할 거야.”선원들은 대부분 기운이 없는 평범한 어부였다.그들은 염구준이 먼 곳에서부터 뛰어올라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는지,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여기서는 고래를 잡는 걸 허락해요.”한참 뒤, 선장은 국제 감독기관에서 온 줄 알고 시큰둥하게 대답했다.“이 고래는 내 친구예요. 어떻게 할지 잘 알겠죠?”염구준은 선장을 노려보며 차갑게 되물었다.“알았어요. 이 사람 말을 못 들었어? 당장 작살을 내려놔!”선장은 상대방이 보통이 아니란 걸 눈치챘는지 바로 선원들에게 지시했다.그러자 당황한 선원들은 정신을 차리고 지시대로 작살을 내려놓았다.염구
감히 그의 전우나 다름없는 고래를 잡아먹으려고 하다니,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만약 향유고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지금쯤 심해 밑에서 죽었을 것이다.“염 선생님, 안 돼요!”당황한 노신기 일행이 다급히 나서서 말렸지만 염구준은 듣지 않았다.그는 요트를 타고 서해충에게 다가가 검을 휘둘러 공격했다.“당장 토해!”염구준은 두 손으로 검을 들고 번쩍 뛰더니 위에서 서해충을 자르려고 했다.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고래를 살려낼 것이다.“하악!”뿔난 서해충이 나지막하게 울부짖더니 커다란 입을 벌이고 염구준을 통째로 삼키고는 물속으로 들어갔다.그 장면을 본 사람들은 모두 경악하고 말았다.심지어 천기문의 고위층들도 진정할 수 없었다.“염 선생님!”“안 되겠어. 모든 음성탐지기를 던져!”노신기는 당황한 마음에 맞서 싸우려고 명을 내렸다.유동심연의 사방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이번에 오면서 대량의 음성탐지기를 챙겼었다.그러나 워낙 위력이 강한 무기라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염 선생님, 제발 잘 버텨줘요.’촤아악!이제 막 음성탐지기를 내려놓고 가동하려고 할 때 눈앞에서 거센 물보라가 솟구치는 것이었다.해저 지진으로 거센 파도가 밀려오면서 일으킨 쓰나미였다.“다들 선실로 들어가!”위급한 상황에서 노신기는 어쩔 수 없이 먼저 가문을 지켜야 했다.선박 세 척은 쓰나미에 밀려 먼 곳까지 흘러갔다.한편, 바다 밑은 난리도 아니었다.서해충 체내에 들어간 염구준은 선사 시대의 바다 생물과 전력을 다해 싸우고 있었다.그가 공격할 때마다 서해충은 심한 고통을 느꼈는지 커다란 몸집을 꿈틀거렸다.실은 서해충이 삼킨 것이 아니라 그것이 도망칠까 봐 염구준이 스스로 잡혀 먹힌 것이었다.한참 공격하면서 돌진했더니 드디어 향유고래가 있는 곳까지 다가갔다.“구자검법! 검일참공!”그는 기운을 폭증시켜 강력한 살술로 서해충의 몸에 길이가 10미터되는 상처를 냈다.잘린 부위에서 바닷물이 역류하여 들어올 때, 염구
동물의 감각은 때론 인간보다 훨씬 뛰어났다.특히 바다에서 자란 생물이라면, 웬만한 레이더보다도 훨씬 빨리 감지할 수 있었다.쿠쿵!혹시라도 싸울 수 있기 때문에 다들 몸에서 기운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아래쪽에서 뭔가 빠르게 올라오고 있어.”염구준은 날카로운 눈으로 바다밑을 바라보며 말했다. 작은 검은 점 하나가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었다.아직 수면까지 오지도 않았는데, 그 그림자는 이미 성체 향유고래와 맞먹는 크기였다.‘설마, 진짜 서해충이 있는 건가?’“목표가 공격 범위에 진입했습니다. 모든 작살 준비 완료했습니다.”대원들은 지시가 떨어지고 나서 3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내에 모든 준비를 마쳤다.“쏴!”노신기는 참을성 없이 바로 명령을 내렸다.‘망했다!’염구준은 말리려고 했지만 결국 말리지 못했다.물속의 거대한 생물체는 어선보다도 커서 자칫하다간 오히려 배가 끌려갈 수도 있었다.슥! 슥! 슥!고래를 잡을 수 있을 정도로 큰 세 척의 어선에서 수십 발의 대형 작살이 물밑의 검은 그림자를 향해 발사되었다.타겟의 몸집이 컸기 때문에 대부분의 작살이 정확하게 꽂힐 수 있었다.“끌어 올려!”노신기는 고래 잡이를 할 때 쓰던 방식을 운용하며 숙련하게 명령을 내렸으나 기계를 최대치로 올려도 타겟을 끌어오리지 못했다.이에 조타실에서 다급하게 소식을 전했다.“큰일입니다. 어선이 저것에 의해 유동심연 쪽 소용돌이로 끌려가고 있어요!”배는 엄청난 속도로 끌려갔다. 배 자체가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속도였다.“밧줄을 끊어!”염구준은 노신기의 무전기를 낚아채고 지휘권을 넘겨받았다.“속도가 너무 빠른 탓에 꽉 감겨서 끊을 수가 없습니다.”조타실에서 절박한 답변이 돌아왔다.현대식 어선은 전부 인공지능 시스템이라 이 상황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우웅!염구준은 결국 검기를 날렸고, 날카로운 검광이 연달아 번쩍이며, 단숨에 밧줄들을 잘라냈다.이에 배가 거대한 관성에 휘청이며 흔들렸고, 균
오늘 만약 염구준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그들은 전부 물고기들의 먹이가 되었을 것이다.“빨리 항행하라고 하세요. 뭔가 이상합니다.”염구준의 갑작스러운 말에 사람들은 이해가 되지 않아 어리둥절해졌다. “네, 말하고 오겠습니다!”그러나 눈치가 생긴 사람들은 염구준의 뜻을 알지 못해도 그대로만 하면 된다는 걸 알고 있어 곧바로 달려갔다.그들은 염구준을 한치도 의심하지 않았다.염구준은 흡족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수면을 바라보며 물었다.“스텔라성의 성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으십니까?”이번에 스텔라성의 성주는 두 개의 판을 짰는데, 하나는 겉면으로 보이는 부성주 베르였고, 다른 하나는 오랫동안 숨어있던 노대영이었다. 다른 걸 다 따지고 나서 판을 짠 것만 본다면 정말 훌륭한 계획이었다.그랬기에 염구준은 그를 중시했다.노신기와 아타는 미간을 찌푸리고 서로를 바라본 뒤, 늙은 아타가 입을 열었다. “성주의 이름은 노세입니다. 압도적인 실력의 소유자로, 진 적이 없습니다.”“하지만 지난 20년간, 외부에서는 그의 모습을 본 이가 없습니다. 폐관 중이라는 소문도 있고, 이미 사망했다는 이야기도 돌고 있지요.”“그의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라, 저희도 아는 게 많지 않습니다.”이야기를 들은 염구준은, 오히려 흥분한 듯한 웃음을 지었다.“흐음, 전부 사실이라면 꽤 괜찮은 상대가 되겠군요.”방금, 막 육체의 극한을 돌파한 염구준은 적당한 시험 상대가 필요했다.‘대단해.’주변 고위 간부들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염구준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다만 약간 이해가 되지 않을 뿐이었다.스텔라성 성주 같은 괴물은, 대부분 기겁하며 피하려 하는데, 정면 승부를 기대한다니까 말이다.“그나저나 염 선생님, 전에 올라오실 때, 인원이 적던데, 혹시 아래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노신기는 다른 걸 얘기하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아, 이거 아십니까?”그의 손에는 투명한 비닐에 담긴 작은 물방울이 들려 있었는데, 외부에는 진기가 감돌았다.‘어라?’조금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