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실에서 격렬한 토론이 시작되었다.하지만 듣고 보면 별로 논쟁할 필요도 없는 것들이었다.“브레인 부전주님은 반보천인이자 리아성전 출신입니다. 이렇게 덕망 높은 분을 당연히 팀장으로 선발해야죠.”“저도 브레인 전주님을 선택하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물러서세요.”“저도 찬성입니다. 현지 고수들은 그럴 자격이 없습니다.”이 사람들은 전혀 다른 의견을 용납하지 않았다.먼저 말을 맞추고 연기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이미 팀장은 결정되었다.처음 작전에 참여한 팀원들이라면 브레인이 얼마나 무능한 지휘관인지 알 것이다.붉은 장미가 다시 일어서서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려 했지만 동행한 부대장이 그녀를 말렸다.“장미 대장, 다시 생각해 주십시오. 위에서 무슨 일이 있든 브레인을 지지하라고 했습니다.”동양국에서 이득을 받은 대가로 상대방이 이런 요구를 제시했을 것이다.“에휴.”붉은 장미는 한숨을 내쉬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속이 답답한 것이 말이 아니었다.그녀는 일개 관리일 뿐, 동양국을 대표할 수 없으니 명령에 따라야 했다.회의실이 점차 조용해졌다.이번 회의에서 임시 작전팀 대장으로 브레인이 선출되었다.얼굴이 활짝 핀 브레인은 소감을 발표하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여러분들이 믿어주셔서 감사…”쿵!말도 채 끝내지 못했는데 누가 회의실 문을 뻥차고 들어온 것이었다.염구준이 도착했다.주변을 둘러본 그는 대충 분위기를 알아차렸는지 피식 웃었다.“고작 작전팀장을 선발하겠다고 6시간 전에 회의를 열었습니까? 참 애를 쓰는군요.”그의 추측을 증명한 셈이었다.성조국에서 정보를 장악했다는 것은 브레인이 염구준을 피해 권력을 손에 넣고 이번 작전의 인도자가 되려는 속셈이었다.그 이유를 말하자면 이랬다.지난 바위성 작전에서 염구준이 큰 공을 세워 용하의 위신을 올렸으니 성조국에서 불만을 품은 것이다.“하하하. 염구준, 늦었어. 지금 팀장은 나고 너는 내 부하야. 그러니까 내 명령을 따라야 해.”브레인은 미친듯이 웃었다.속으로 염구준에게 엿을 먹여
동시에 옆에 있던 두 반보천인 고수들도 각자 기운을 끌어올렸다.굳이 밝히지 않아도 브레인의 편이었다.“리아성전의 성녀라면 잘 교육하세요. 죽으면 성녀가 사라지잖아요.”염구준은 협박하면서 경고를 주었다.“무례하다!”좌석에서 참다못한 리아성전의 부하가 무기를 들고 염구준에게 돌진했다.“멈춰라. 공격하면 안 돼!”브레인이 큰소리로 말렸지만 이미 늦었다.그도 염구준을 원망하고 있었지만 감히 나서서 공격하지 못했다.“푸압!”염구준이 검결을 휘두르며 공격하는 사람의 허리를 잘라버렸다.“살의를 품고 무기를 들었으면 죽을 각오도 했어야지!”가차없이 죽이는 것이 참 지독했다.그 장면을 본 무술인들은 또 한번 경악했다.브레인 앞에서 리아성전 부하를 죽이다니, 염구준이 이토록 강하게 나올 줄은 생각도 못했다.겨우 정신을 차린 김영영은 속으로 깜작 놀랐다.‘청해에서 아내 때문에 봐준 건가?’그런 생각에 왠지 소름이 돋았다.타악!브레인이 찻잔을 바닥에 던지면서 기운을 난폭하게 끌어올렸다.나머지 리아성전의 부하들도 싸울 자세를 취했다.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반보천인이 고작 세 명밖에 없으면서 뭘 그렇게 나대?”염구준은 검갑에서 구자검을 꺼내면서 기세 당당하게 말했다.지금 상황에서 누가 공격하든 전부 이 검으로 잘라버릴 것이다.“휴.”브레인은 여기가 용하라는 것을 깨닫고 속에서 타오르는 분노를 억눌렀다.그가 팔을 휘두르며 부하들에게 물러가라는 눈빛을 보냈다.“염구준, 임시 작전팀의 팀장은 나야. 지금 그게 무슨 태도야?”상대방이 겁에 질리자 염구준은 검을 거두며 대답했다.“팀장하고 싶으면 하세요. 난 그 따위 팀장 자리를 빼앗지 않아요. 거록의 행적을 알려주면 바로 갈게요. 당신들이 무엇을 하든 상관하지 않겠어요.”한 무리가 따라오지 않으면 발목을 잡는 사람이 없으니 오히려 움직이기 쉬웠다.“용하의 국경을 넘어서 북쪽으로 가.”브레인이 명쾌하게 말했다.거록 존주의 행적은 그만 알고 있으니 아무 말로 둘러댄 것이었다.“알았어
“아닙니다. 본론만 얘기하세요.”염구준은 잡담을 나눌 기분이 아니었다.방금 붉은 장미는 상황 때문에 말하기 불편했는데 지금은 하고 싶은 말을 전부 털어놓을 생각이었다.“염 선생님, 이번 작전 보기보다 위험해요. 조심하세요. 그리고 방금 브레인이 말했는데 지금 거록 존주의 실력이 급증해서 엄청 강해졌대요.”유용한 정보는 이것뿐이고 나머지는 쓸데없는 말들이었다.“고마워요. 브레인과 움직일 때 조심하세요. 뭐든 따라서 하지 말고요.”답례로 염구준이 주의를 주었다.브레인의 실력은 강하지만 부하들 지휘하는 것이 형편없어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네. 알아서 할게요.”붉은 장미가 단호하게 대답했다.두 사람은 간단하게 얘기한 후 통화를 끊어버렸다.서로 다른 팀이니 염구준은 그들이 방해할까 봐 걱정되었다.앞으로 어떤 위험이 닥칠지 모르지만 날이 밝을 때까지 푹 자서 살 것 같았다.이튿날 아침, 그는 짐들을 챙기고 로비로 내려왔다.경호원에게서 브레인 일행이 아직 출발하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 확실히 깨달았다.그는 SUV차량을 대여하고 브레인이 알려준 곳으로 달렸다.한편, 호텔 어느 창가에서 누군가 커튼을 열고 염구준이 떠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멍청한 놈, 바로 믿네. 일행에게 통지해. 신속히 장비를 준비하고 임무를 수행하러 간다.”브레인은 염구준에게 엿을 먹인 것이 너무 상쾌해서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실은 염구준은 국경을 넘은 뒤, 호텔이 보이지 않자 바로 방향을 돌아서 남쪽으로 달렸다.뼈저리게 미워하는 사람에게 고민도 하지 않고 북쪽이라고 말했으니 반대방향으로 가는 것이 정확했다.가는 동안 붉은 장미에게 여러 번이나 연락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아마도 브레인이 미리 차단한 것 같았다.염구준은 어쩔 수 없이 황폐한 사막에서 단서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바로 거록 존주를 찾아가는 것은 왠지 비현실적이었다.황사가 날리는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환경에서 염구준은 몇 시간 만에 한 마을에 도착했다.마을 옆에 주차하고 전방을
”흑흑, 아빠, 엄마, 할아버지, 할머니, 누나 모두 죽었어요.”울음소리가 잦아들자 염구준이 물었다.“여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이미 거록 존주와 관련이 있다고 추측했지만 더 많은 정보가 필요했다.남자아이는 공포스러운 저녁을 회상하며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3일 전에 마을에서 잔치를 벌였어요. 모두 한 곳에 모여서 맛있게 먹고 즐겁게 놀고 있었어요. 그때 붉은 눈을 가진 요괴가 나타나서 닥치는 대로 다 죽였어요. 저는 물독에 숨어서 찾지 못한 거예요.”여기서 염구준에게 유용한 정보는 붉은 눈밖에 없었다.사술을 연마하고 과도하게 기운을 폭증시킨 상황에서 두 눈은 충혈된다.“다른 것은 또 없어?”염구준이 계속 물었다.“없어요. 그때 물독에서 호스로 숨을 쉬었어요. 그래서 밖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라요.”남자아이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이미 알고 있는 것을 전부 털어놓았다.“나랑 같이 가자. 너 혼자 여기서 살 수 없어.”염구준은 마을 입구에 주차한 차를 가리켰다.마을 주변은 황폐하여 황사 외에 황사밖에 없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남자아이는 촉촉한 눈동자를 깜빡이며 한참이나 그를 보며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알겠어요. 그런데 가기 전에 마을 사람들을 묻어주면 안 될까요?”“그렇게 해.”염구준은 흔쾌히 허락하고는 주먹으로 바닥에 무찔러 커다란 구멍을 만들었다.두 사람은 마을 사람들을 전부 구덩이에 넣고 묻어버렸다.그리고 염구준은 남자아이를 데리고 계속 남쪽으로 달렸다.“여기 근처에 또 마을이 있어?”염구준이 물었다.이곳은 지형이 복잡하고 황사가 깔려 있어서 내비게이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저쪽에 있긴 한데 엄청 멀어요.”남자아이는 이 지역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그가 가리킨 곳은 서남방향이었다.“안전벨트 잘하고 있어.”염구준은 주의를 주고 가속 페달을 힘껏 밟았다.광활한 사막에 사람과 차들이 없어서 과속해도 경찰에게 추적당할 걱정이 없었다.두 사람은 가는 동안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남자
“은인님, 돈은 많지 않지만 작은 성의이니 부디 받아주세요.”“정말 괜찮습니다. 그냥 몇 가지 대답해 주시면 됩니다.”염구준은 노인의 손을 밀면서 돈을 받지 않았다.남자아이를 구할 때도 보답을 바라지 않았었다.“그럼요.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얼마든지 물어보세요.”셋째 할아버지도 강요하지 않았다.남자아이의 가족들이 전부 죽었으니 앞으로 부양하려면 돈이 많이 필요할 것이다.“방금 말했던 붉은 눈 악마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염구준은 알고 싶었다.그 말에 노인의 눈가에 두려움이 스쳤다.최근 본 것과 들은 것을 종합한 후 설명하기 시작했다.“그 악마가 나타난 것은 3개월 전이었어요. 처음에 우리 지역에 한 마을이 도륙당했는데 붉은 눈의 악마 짓이라고 했어요. 그 뒤로 마을이 참살당하는 비극은 끊기지 않았죠. 운이 좋게 살아남은 사람들이 말하길 전부 붉은 눈을 가진 악마라고 했어요.”“나중에 실력이 강한 사냥꾼들이 팀을 이루어서 그 악마를 잡으러 갔는데 한 명도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어요. 그 순간부터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고 아무런 대책도 마련할 수 없었어요.”노인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말을 이어갔다.스스로 지킬 능력도 없고 주변에 그들을 지켜줄 고수들도 없었다.“슬퍼하지 마세요. 그럼 악마의 행적은 알고 있습니까?”염구준은 더는 위로하지 않고 계속 질문했다.“은인님께서 악마를 잡으러 가시려고요?”말이 이상했는지 노인이 바로 되물었다.“맞습니다. 이번에 온 것도 그 악마를 처단하기 위해서 왔어요.”염구준은 인정하면서 눈에서 살기를 뿜었다.노인의 설명과 전에 들었던 것을 종합하면 거록 존주는 이미 이성을 잃은 것 같았다.“안 됩니다. 은인님, 그놈은 너무 사악해서 찾아가면 바로 목숨을 잃을 겁니다.”노인이 한사코 설득했다.“이미 패배한 놈입니다. 위치만 알려주세요. 제가 바로 가서 멸망시키겠습니다.”염구준의 언행을 보아 붉은 눈의 악마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았다.솔직히 그는 자신이 있었다. 그놈의 행적만 알았
“내려오세요. 지금 가야 합니다.”염구준은 차 앞에 다가와 좋게 말했다.옆에서 그 장면을 보던 노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고 있었다.“차키 남기고 가. 차는 우리 거야!”그때 차에 올라간 험상궂게 생긴 남자가 염구준을 노려보며 말했다.아무리 대놓고 약탈해도 염구준의 차를 탐내다니 정말 배짱에 탄복했다.“철구야, 이분은 내 은인이야. 얌전히 내려와!”노인은 용기를 내서 부탁했다.철구는 마을에서 소문난 깡패였다. 자주 약한 사람들을 괴롭혀서 마을 사람들은 피해서 다녔다.“꺼져! 누가 내 돈줄을 막으면 바로 죽일 거야!”철구는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염구준이 만성시에서 대여한 SUV는 꽤 가격이 나가서 철구의 눈에 금덩어리처럼 보였다.그때 철구의 쫄따구가 염구준의 신발을 보더니 눈빛을 반짝거렸다.“대장, 저놈 신발 멋진데요. 저한테 주면 안 돼요?”그러자 철구가 염구준을 노려보면서 당당하게 말했다.“들었어? 신발 벗어. 그냥 옷도 벗고 팬티만 입고 가.”“하하하.”그 말에 옆에 쫄따구들이 깔깔 소리내면서 웃었다.염구준은 입꼬리를 올려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그의 몸에서 살의가 뿜어져 나왔다.“당장 내 차에서 내려. 한번만 경고한다!”“어허, 건방지네. 본때를 보여줘야겠네.”철구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부하에게 지시했다.오늘 부하들이 많으니 그들 앞에서 위세를 부리기 딱 좋았다.그들은 염구준의 정체도 모르고 비수를 꺼내 혀로 쓱 핥더니 재빠르게 공격하기 시작했다.“죽어도 싼 놈들!”염구준은 사나운 기운을 폭발시키며 가운데를 향해 돌진했다.그렇게 일격으로 모든 깡패들을 전부 쓰러트렸다.옆에서 구경하던 마을 사람들은 충격을 먹고 입을 떡 벌렸다.스스슥!염구준은 한 줄기 기운을 뿌려 차 위에 있는 철구를 날려버렸다.그리고 말없이 차문을 열었다.행패를 부리고 다니던 철구는 이번에 큰 망신을 당하자 여기서 가만있지 않았다.“개 자식, 무슨 요상한 술법을 쓴 거야. 널 가만두지 않겠다!”철구는
“앞으로 감히 저 어르신과 아이를 괴롭히는 놈 있으면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게 만들어 줄 테니까, 알아서 해.”“네, 네, 절대로 건드리지 않겠습니다!”사람들은 몸을 간신히 일으키며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염구준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이 모습을 본 마을 사람들은 처음엔 놀랐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나쁜놈이 사라진 것을 기뻐하며 박수갈채를 보냈다. 심지어 원한이 깊은 몇몇은 죽은 이의 시체를 향해 발길질을 하며 분을 풀기도 했다.염구준은 차에 올라타면서 어린 소년에게 웃으며 말했다.“앞만 보고 살아. 네 셋째 할아버지 잘 보살펴 드리고.”“네!”“저는 강민우라고 하는데, 아저씨 이름은 뭐예요? 이 은혜는 제가 커서 꼭 갚을게요.”어린 나이임에도 철이 든 소년은 염구준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하며 말했다.“내 이름은 염구준이야. 인연이 있다면 언젠간 만날 수 있겠지.”말을 마친 뒤, 염구준은 차를 몰고 남쪽의 석굴암 유적지를 향해 떠났다.어떤 사람들은 그저 살면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중 한 명일 뿐이기 때문에 염구준은 이 일을 크게 마음에 두지 않았다.다만 수년 후, 국외에 강민우라는 이름을 가진 강자가 나타났고, 그도 염구준이라는 이름이 무엇을 대표하는지 알게 되었다.하지만 이는 모두 나중의 이야기므로 우선 미뤄 두기로 하자.염구준은 남쪽으로 향하는 길 내내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순리롭게 달렸다.‘이 속도라면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석굴암에 도착할 수 있겠네.’‘많은 정보를 쥐고 있는 브레인 일행은 어느 정도까지 움직였을까?’석굴암 유적지는 과거에 한 고대 왕국이 자리 잡고 있던 곳으로, 어찌 된 일인지 하루아침에 왕국 전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황폐해진 곳이었다.이것에 관해 수많은 소문들이 도는 탓에, 이곳에 와서 유적을 조사하고 발굴하는 사람들과 탐험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는데, 오늘은 특히 북적거렸다.브레인이 거록 존주를 처단하기 위해서 200여 명의 사람들을 이끌고 왔기
“공격해!”붉은 장미는 힘차게 외치며 무기를 꺼내 돌진하려 했으나 브레인은 손을 들어 그녀를 막으면서 미소를 지었다.“여러분들은 굳이 나설 필요 없습니다. 이건 저희 리아 성전에서 알아서 처리할 테니, 뒤에서 지원만 해주시면 돼요.”말투는 공손했지만, 결국엔 공을 독차지하려는 속셈이었다.다른 세력들은 서로 눈치를 살피다가 한 발 물러나며 행동으로 그의 말을 따랐다.말을 마친 뒤, 브레인은 또 다른 반보천인과 함께 거록 존주에게로 돌진했다. 한편, 남은 한 명의 반보천인은 그들과 같은 편이 아니었기에 뒤에서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그만 죽어라, 거록 존주!”브레인은 복잡한 전략적 기교 없이 정면으로 장풍을 날렸다.쾅!이에 거록 존주 역시 주먹을 날렸고, 붉은 혈기의 기운이 사방으로 퍼지며 순식간에 폭발적인 힘을 냈다.둘이 정면으로 맞붙은 결과, 실력이 한 수 아래인 브레인이 뒤로 몇 발자국이나 밀려나갔다.다른 반보천인은 거록 존주에게 붙잡혀 그의 공격을 막아내기에만 몰두하느라 반격할 기회를 찾지 못했다.지금의 거록 존주는 그들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을 정도로 강했다.‘내가 너무 큰소리친 것 같네.’슉!브레인은 생각을 마치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다시 한번 기운을 끌어올려 공격에 나섰다. 이기지 못할 걸 알면서도 도와달라는 말을 하지 않은 건, 이미 허세를 부린 이상 끝까지 책임져야 했기 때문이었다. 아니면 체면이 깎이게 될 테니까 말이다.그렇게 싸움은 계속됐고, 브레인과 그의 동료는 협력하며 거록 존주와 대치했다.브레인이 나서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관전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정도를 모르는 어떤 사람들은 해바리기씨를 까먹으면서 유유히 구경했다.한편, 브레인과 그의 동료는 합이 매우 잘 맞았는데, 브레인이 공격을 하고 그의 동료는 옆에서 서포트를 하며 싸움에서 우위를 점했다.‘이렇게 시간을 끌면 반드시 이길 수 있어.’상황이 어느 정도 분명해지자 마음을 놓은 브레인은 다시 득의양양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의 재력이라면 대형 수영장을 만들어 향유고래를 키울 수도 있지만 바다가 고래의 고향이라 그러지 않았다.“선장, 고래가 엄청난데 잡지 않아요?”갑판에서 몸이 건장한 흑인 선원이 불만을 토로했다.눈앞에서 헤엄치며 돌아다니는 것이 전부 돈이니 그럴만했다.“독수리, 주둥이 닥쳐!”선장은 아직도 누군가 향유고래에 미련을 두자 버럭 화를 냈다.염구준이 어디 출신인지 모르겠지만 그가 발산하는 기운은 보는 사람이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독수리가 염구준을 힐끗 보고는 어쩔 수 없이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나머지 선원들도 감히 반박하지 못하고 선장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저기, 아직 볼일이 남았어요?”선장은 염구준이 조용히 앉아 있자 조심스럽게 물었다.“여기서 가까운 부두로 데려다줘요.”염구준은 끝없는 바다를 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이곳은 바닷가와 멀리 떨어져 있어 일단 상륙한 후에 어떻게 할지 계획을 세울 생각이었다.“그게…”선장은 난처한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어려우면 말씀하세요. 그렇다고 폭행을 휘두르면서 강요하지 않으니까.”염구준은 선장의 태도가 이상한 걸 눈치채고 분명하게 말했다.선박은 어부들 것이니 강제로 빼앗지 않을 것이다.그의 말에 선장은 솔직하게 말했다.“우리는 고래를 잡아서 생계를 유지해요. 이제 나와서 한 마리도 잡지 못했는데, 이대로 돌아가면 손해가 엄청납니다.”그들은 염구준이 무섭지만 돈을 벌지 못해 가족들이 굶는 것이 더 무서웠다.“그런 거라면 어렵지 않아요. 얼마를 원하세요? 육지에 도착하면 내가 줄게요.”염구준에게 있어 돈으로 해결하지 못할 일은 없었다.“100만 달러.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선장은 믿지 않는지 거액의 가격을 부르면서 떠보았다.듣기에 높은 가격이지만 따져보면 수리비용, 연료, 인건비 등등 모두 제외하면 얼마 남지 않으니 합리적인 가격이었다.“이걸로 담보할게요. 어차피 당신네 선박에 있으니까 도망치지 않아요.”염구준은 상대방이 걱정하는 걸 알아차리고 딸에게 선물하려고 주은 주먹
이튿날, 미지의 바다에서 향유고래 한 마리가 헤엄치고, 등에 한 사람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그 사람은 바로 염구준이었다.사방에 온통 푸른 바다라 지금 어느 곳에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지금은 고래가 바닷가로 데려가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었다.“고래야, 잘 부탁한다.”“우웅!”둘은 서로의 말을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수시로 교류했다.염구준이 눈을 감고 운기조식하다가 배고프면 심해의 눈물로 에너지를 보충했다.신기한 것은 한 방울만 먹어도 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뿌우우우웅!그때 멀리서 선박 소리가 들렸다. 염구준은 눈을 번쩍 뜨고 소리를 질렀다.“저기요! 여기 사람 있어요!”목소리에 기운을 담았더니 쩌렁쩌렁한 소리를 지를 때마다 수면이 음파에 진동하는 것 같았다.어디선가 나타난 선박에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슥!그런데 선박에 다가간 순간, 상대방이 고래를 잡는 쇠고랑을 발사하는 것이었다.염구준은 재빨리 검기로 밧줄을 잘라버렸다.선박은 그를 구하러 온 것이 아니라 향유고래를 잡으러 온 것이었다.생각하지 않아도 고래의 용연향을 얻기 위함일 것이다.스스슥!선박에 있는 사람들은 고장난 줄 알고 이번에 작살을 던졌지만 역시 염구준에게 잘려서 바다 밑으로 들어갔다.상대방과 가까워지자, 염구준은 그들의 선박에 번쩍 뛰어올라 엄숙하게 경고했다.“멈춰. 아니면 무력으로 대응할 거야.”선원들은 대부분 기운이 없는 평범한 어부였다.그들은 염구준이 먼 곳에서부터 뛰어올라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는지,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여기서는 고래를 잡는 걸 허락해요.”한참 뒤, 선장은 국제 감독기관에서 온 줄 알고 시큰둥하게 대답했다.“이 고래는 내 친구예요. 어떻게 할지 잘 알겠죠?”염구준은 선장을 노려보며 차갑게 되물었다.“알았어요. 이 사람 말을 못 들었어? 당장 작살을 내려놔!”선장은 상대방이 보통이 아니란 걸 눈치챘는지 바로 선원들에게 지시했다.그러자 당황한 선원들은 정신을 차리고 지시대로 작살을 내려놓았다.염구
감히 그의 전우나 다름없는 고래를 잡아먹으려고 하다니,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만약 향유고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지금쯤 심해 밑에서 죽었을 것이다.“염 선생님, 안 돼요!”당황한 노신기 일행이 다급히 나서서 말렸지만 염구준은 듣지 않았다.그는 요트를 타고 서해충에게 다가가 검을 휘둘러 공격했다.“당장 토해!”염구준은 두 손으로 검을 들고 번쩍 뛰더니 위에서 서해충을 자르려고 했다.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고래를 살려낼 것이다.“하악!”뿔난 서해충이 나지막하게 울부짖더니 커다란 입을 벌이고 염구준을 통째로 삼키고는 물속으로 들어갔다.그 장면을 본 사람들은 모두 경악하고 말았다.심지어 천기문의 고위층들도 진정할 수 없었다.“염 선생님!”“안 되겠어. 모든 음성탐지기를 던져!”노신기는 당황한 마음에 맞서 싸우려고 명을 내렸다.유동심연의 사방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이번에 오면서 대량의 음성탐지기를 챙겼었다.그러나 워낙 위력이 강한 무기라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염 선생님, 제발 잘 버텨줘요.’촤아악!이제 막 음성탐지기를 내려놓고 가동하려고 할 때 눈앞에서 거센 물보라가 솟구치는 것이었다.해저 지진으로 거센 파도가 밀려오면서 일으킨 쓰나미였다.“다들 선실로 들어가!”위급한 상황에서 노신기는 어쩔 수 없이 먼저 가문을 지켜야 했다.선박 세 척은 쓰나미에 밀려 먼 곳까지 흘러갔다.한편, 바다 밑은 난리도 아니었다.서해충 체내에 들어간 염구준은 선사 시대의 바다 생물과 전력을 다해 싸우고 있었다.그가 공격할 때마다 서해충은 심한 고통을 느꼈는지 커다란 몸집을 꿈틀거렸다.실은 서해충이 삼킨 것이 아니라 그것이 도망칠까 봐 염구준이 스스로 잡혀 먹힌 것이었다.한참 공격하면서 돌진했더니 드디어 향유고래가 있는 곳까지 다가갔다.“구자검법! 검일참공!”그는 기운을 폭증시켜 강력한 살술로 서해충의 몸에 길이가 10미터되는 상처를 냈다.잘린 부위에서 바닷물이 역류하여 들어올 때, 염구
동물의 감각은 때론 인간보다 훨씬 뛰어났다.특히 바다에서 자란 생물이라면, 웬만한 레이더보다도 훨씬 빨리 감지할 수 있었다.쿠쿵!혹시라도 싸울 수 있기 때문에 다들 몸에서 기운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아래쪽에서 뭔가 빠르게 올라오고 있어.”염구준은 날카로운 눈으로 바다밑을 바라보며 말했다. 작은 검은 점 하나가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었다.아직 수면까지 오지도 않았는데, 그 그림자는 이미 성체 향유고래와 맞먹는 크기였다.‘설마, 진짜 서해충이 있는 건가?’“목표가 공격 범위에 진입했습니다. 모든 작살 준비 완료했습니다.”대원들은 지시가 떨어지고 나서 3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내에 모든 준비를 마쳤다.“쏴!”노신기는 참을성 없이 바로 명령을 내렸다.‘망했다!’염구준은 말리려고 했지만 결국 말리지 못했다.물속의 거대한 생물체는 어선보다도 커서 자칫하다간 오히려 배가 끌려갈 수도 있었다.슥! 슥! 슥!고래를 잡을 수 있을 정도로 큰 세 척의 어선에서 수십 발의 대형 작살이 물밑의 검은 그림자를 향해 발사되었다.타겟의 몸집이 컸기 때문에 대부분의 작살이 정확하게 꽂힐 수 있었다.“끌어 올려!”노신기는 고래 잡이를 할 때 쓰던 방식을 운용하며 숙련하게 명령을 내렸으나 기계를 최대치로 올려도 타겟을 끌어오리지 못했다.이에 조타실에서 다급하게 소식을 전했다.“큰일입니다. 어선이 저것에 의해 유동심연 쪽 소용돌이로 끌려가고 있어요!”배는 엄청난 속도로 끌려갔다. 배 자체가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속도였다.“밧줄을 끊어!”염구준은 노신기의 무전기를 낚아채고 지휘권을 넘겨받았다.“속도가 너무 빠른 탓에 꽉 감겨서 끊을 수가 없습니다.”조타실에서 절박한 답변이 돌아왔다.현대식 어선은 전부 인공지능 시스템이라 이 상황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우웅!염구준은 결국 검기를 날렸고, 날카로운 검광이 연달아 번쩍이며, 단숨에 밧줄들을 잘라냈다.이에 배가 거대한 관성에 휘청이며 흔들렸고, 균
오늘 만약 염구준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그들은 전부 물고기들의 먹이가 되었을 것이다.“빨리 항행하라고 하세요. 뭔가 이상합니다.”염구준의 갑작스러운 말에 사람들은 이해가 되지 않아 어리둥절해졌다. “네, 말하고 오겠습니다!”그러나 눈치가 생긴 사람들은 염구준의 뜻을 알지 못해도 그대로만 하면 된다는 걸 알고 있어 곧바로 달려갔다.그들은 염구준을 한치도 의심하지 않았다.염구준은 흡족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수면을 바라보며 물었다.“스텔라성의 성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으십니까?”이번에 스텔라성의 성주는 두 개의 판을 짰는데, 하나는 겉면으로 보이는 부성주 베르였고, 다른 하나는 오랫동안 숨어있던 노대영이었다. 다른 걸 다 따지고 나서 판을 짠 것만 본다면 정말 훌륭한 계획이었다.그랬기에 염구준은 그를 중시했다.노신기와 아타는 미간을 찌푸리고 서로를 바라본 뒤, 늙은 아타가 입을 열었다. “성주의 이름은 노세입니다. 압도적인 실력의 소유자로, 진 적이 없습니다.”“하지만 지난 20년간, 외부에서는 그의 모습을 본 이가 없습니다. 폐관 중이라는 소문도 있고, 이미 사망했다는 이야기도 돌고 있지요.”“그의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라, 저희도 아는 게 많지 않습니다.”이야기를 들은 염구준은, 오히려 흥분한 듯한 웃음을 지었다.“흐음, 전부 사실이라면 꽤 괜찮은 상대가 되겠군요.”방금, 막 육체의 극한을 돌파한 염구준은 적당한 시험 상대가 필요했다.‘대단해.’주변 고위 간부들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염구준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다만 약간 이해가 되지 않을 뿐이었다.스텔라성 성주 같은 괴물은, 대부분 기겁하며 피하려 하는데, 정면 승부를 기대한다니까 말이다.“그나저나 염 선생님, 전에 올라오실 때, 인원이 적던데, 혹시 아래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노신기는 다른 걸 얘기하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아, 이거 아십니까?”그의 손에는 투명한 비닐에 담긴 작은 물방울이 들려 있었는데, 외부에는 진기가 감돌았다.‘어라?’조금 더
이 독에 중독된 무인은 일시적으로 기운이 흩어지고, 단전이 봉쇄되어, 꼼짝없이 폐인 신세가 될 수밖에 없었다.만약 과다 복용할 경우, 목숨까지 위험해질 수 있었다.“이런 희귀한 독약은 스텔라성 성주가 준 거겠지?”염구준이 흥미롭게 물었다.그는 이번에 처음으로 진짜 산기봉단을 보았고, 게다가 그 양이 상당했기 때문에 꽤나 관심이 갔다.“맞아. 얼른 저 녀석을 잡아!”노대영은 승리자처럼 손을 휘저으며 부하들에게 명령했다.그는 희귀한 독약인 산기봉단에 절대적인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에휴.”아타 등 사람들은 이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염구준마저 당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이제 구세주가 사라졌으니, 최악의 경우 전부 몰살당할 수도 있었다.“가서 두들겨 패! 나 아까 진짜 쫄아서 오줌 쌀 뻔했단 말이야!”몇몇이 소리치며 달려들었고, 염구준을 한껏 때려서 화풀이를 하려 했다.반보천인급 고수를 때릴 기회는 흔하지 않으니까 말이다.우웅. 그러나 그 순간, 검광이 번쩍이더니 달려들던 사람들 전부가 쓰러졌다. 그들의 목에는 옅은 혈흔이 있었는데, 상처는 아주 작았지만 모두 목숨을 잃었다.“이 독이 아무리 강해도, 나를 상대하려면 아직 한참 멀었어.”염구준은 조용히 진기를 운용하며, 체내에 남아 있던 독기를 모두 없애버렸다.육신이 이미 반보천인의 극한의 경지에 다다른 탓에 약물 저항성도 엄청나게 강해져 그는 산기봉단 같은 독약 따위를 두려워하지 않았다.“너... 이건 말도 안 돼!”노대영은 절규하듯 외쳤다.희망이 눈앞에서 산산조각 나자, 정신이 붕괴되기 직전이었다.곧 있으면 승리할 수 있었는데, 이젠 그게 다 물거품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그는 차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스텔라성 성주랑 뭘 꾸민 거지?”염구준은 서두르지 않고 물었다.해독제 같은 건 이제 관심 없었다. 상대가 정직하지 않으니까 말이다.“난 진작 그분의 문하로 들어갔어. 언젠가는 그분이 내 복수를 도와줄 거다!”“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는데, 내가 무슨 잘못이 있어
염구준은 주머니를 집어 들어 곁에 있던 그레이에게 휙 던져주며 분부했다.“먼저 기운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해독제를 나눠줘.”“네.”그레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분노에 찬 눈빛으로 노대영을 흉악하게 노려보았다.반보천인으로서 이런 함정에 걸려들었다는 게 조금 창피해서였다.노대영은 사태가 자신에게 불리하게 흘러가는 걸 감지하고,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할 말이 있습니다.”“해.”염구준은 싸늘한 표정으로, 단 한 마디만 툭 내뱉었다.그레이와 다른 이들이 힘을 회복하고 나면, 그는 절대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기에 곧 죽을 이의 유언쯤은 들어줄 수 있었다.노대영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얼른 말을 이었다.“자식으로서 아버지의 원수에게 복수하는 건 당연한 일이죠?”“그래.”염구준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딱히 다른 변수가 없다면, 이 말을 부정할 이유가 없어서였다.‘어라?’이에 주변 사람들은 놀라 눈을 크게 떴다.말투로만 보면, 염구준이 노대영의 편을 들어주려는 것 같아서였다.그러나 방금 전에는 또 그들을 구해주었기 때문에 그들은 염구준이 무슨 생각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노대영은 염구준의 마음을 돌린 줄 알고 속으로 기뻐하며 바로 말을 이었다.“이 도리를 알고 계시니, 그럼 행동에 옮겨도 되겠죠.”노대영은 혹여나 다른 변수가 있을까 두려워 단검을 꽉 쥐고 중상을 입고 바닥에 쓰러져 있던 노신기에게 달려들었다.그레이 등이 조금 있다가 어떻게 나올지는 크게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복수를 하는 게 우선이었으니까 말이다.쾅!하지만 달려가자마자 염구준의 발에 얼굴을 맞아서 옆으로 나가떨어졌다.그의 코와 입에서는 순식간에 피가 줄줄 흘렀다.“날 가지고 노는 거냐, 염구준!”“허, 내가 나설지 안 나설지 짐작이 안 됐나봐?”염구준은 비웃으며 말했다.그는 노대영의 말을 부정하진 않았지만 상대방의 행위를 몹시 혐오했다.아버지를 죽인 원수에게 대놓고 복수하는 건 괜찮지만, 그 아비가 악행을 일삼던 사람이고, 은혜를 원수로 갚는 방식에,
그러나 몸속에 독이 퍼진 탓에 기운을 끌어올릴 수가 없어 모두 답답하게 속만 태울 수밖에 없었다. 노대영이 혓바닥을 자르려고 할 때, 멀리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대영 문주님, 염구준인 것 같습니다!”이름을 듣자마자, 노대영의 얼굴에서 희열이 싹 사라지고, 이내 짙은 어둠이 드리웠다.기습에 성공한 후 바로 도망쳤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고래를 타고 쫓아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염구준 한 사람만으로 충분히 그들을 몰살할 수 있었다.“어서 고래잡이 작살이랑 그물 그리고 멀리에서 공격할 수 있는 무기들을 준비해.”노대영의 가슴 깊은 곳에서 두려움이 급속히 퍼져갔다.허겁지겁 지시를 내리긴 했지만 겨우 쇳조각 몇 개로 염구준을 막겠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휙휙!염구준은 하늘을 가르며 날아오는 작살, 그물, 조명탄 따위를 보며 입꼬리를 비웃듯이 끌어올렸다.아직 사격거리에도 들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공격을 했기 때문이었다.‘적지 않게 겁을 먹었나 보네.’그는 생각했다. 역시나 첫 번째 공격은 전부 허탕이었다.염구준은 거대한 향유고래를 타고 빠르게 이동했고, 이윽고 두 번째 공격이 시작됐다.커다란 작살 하나가 고래의 머리를 향해 곧장 날아들었는데, 맞으면 죽지 않더라고 심각한 부상을 입을 게 뻔했다.우웅!염구준은 검기 한 줄기를 내보내 날아오던 작살을 두 동강 낸 뒤, 작살에 묶인 쇠사슬 위로 몸을 던져, 빠르게 어선으로 돌진했다.풍덩!향유고래는 거대한 물보라를 일으키며 물속으로 잠수했다.노대영은 염구준이 미친 듯이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걸 보자마자 다급히 소리쳤다.“어서, 어서 배에 못 올라오게 사슬을 끊어!”그도 자신이 염구준과 맞서봤자, 단 한 줌의 승산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구자검법, 검일참공!”염구준은 배 위 인원들의 움직임을 보자마자 망설임 없이 강한 검술을 발동해 검기를 날렸다.제대로 검기를 축적하진 못했기에, 완벽하게 완성된 검일참공은 아니었고, 약간의 반동
파악!곧이어 물기둥이 하늘로 솟구치며 거대한 향유고래가 염구준과 멀지 않는 곳에 떨어진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마치 떠나기 아쉬워하는 듯했다.촤악!염구준은 몸을 날려 향유고래의 머리 위로 뛰어오른 뒤, 세 척의 어선 쪽으로 진기를 날려 물보라 일게 했다.이에 향유고래는 곧장 방향을 틀고, 어선을 향해 빠르게 헤엄치기 시작했다.말이 통하지 않아 이런 방식으로 밖에 교류할 수 없었지만 별로 큰 문제는 없었다.그 시각, 1호 어선은 다른 어선보다 조금 더 시끌벅적했다.노대영은 배의 지휘권을 장악한 뒤, 끝까지 저항한 소수만을 제거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전부 포로로 붙잡아두었다.물론 그가 자비로워서가 아니었다.그저 이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어떻게 복수하는지 지켜보게 하기 위해서였다.“대영 문주님, 준비 완료됐습니다. 언제든 시작 가능합니다.”노대영에게 붙은 아첨꾼 하나가 다가와 공손하게 말했다. 이번에 출정한 천기문 문도 중 절반 이상이 이미 노대영 편이었다.쿵!노대영은 부도 갑옷을 입은 채로 웃으면서 팔을 휘둘러 노신기를 바닥에 내던졌다.“악독한 놈. 네가 내 아버지를 죽였으니 난 오늘 아버지의 복수를 할 거다.”며칠 전에 대의를 위해서라면 혈연관계는 얼마든지 끊을 수 있다는 그의 말은 그저 노신기를 안심시키기 위함에 불과했다. 그의 가슴 속에 맺힌 복수심은 한순간도 식지 않았었다.“하아...”노신기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그의 창백한 얼굴엔 깊은 후회가 서려 있었다.‘그때 불쌍해 보인다고 해서 검은 머리 짐승을 거두는 게 아니었는데.’그는 생각했다. “모든 일은 내가 벌인 거니까 찢어죽이든, 뭘하든 나한테만 해. 상관없는 다른 사람들 건드리지 말고.”지금 이런 상황에 이른 이상, 그는 더 도리를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전에 이미 노대영에게 그의 출신을 말해주며 그의 아버지가 눈 깜빡하지 않고 살인을 저지르는 변태 악마라고 말해주었으나 그는 전혀 듣지 않았기 때문에 말해봤자 쓸모가 없다는 걸 알아서였다.스승과 제자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