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도 밖의 어느 산봉우리에 한 그림자가 서 있었다.달빛을 빌어 얼굴을 살펴보았더니 앞장선 사람은 바로 흑풍 존주였다.“우리 사람은 전부 철수했어?”“보고합니다. 라누보와 왕비만 남고 핵심인물은 전부 철수했습니다.”옆에 있던 부하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그에게 보고했다.“신경 쓰지 마. 이미 버려진 패야.”흑풍 존주는 두 사람의 생사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그 둘은 일부러 시간을 끌기 위해 남긴 거라 죽어도 아깝지 않았다.염구준을 상대로 판을 벌이지 않으면 반드시 물고늘어질 것이다.이제는 뼛속까지 그를 두려워했다.부하는 더는 말하지 않고 명을 청했다.“흑풍 존주, 우리 지금 모든 구성원들이 모였는데 이대로 염구준을 치러 갈까요?”강력한 무술인과 운석강화인이 있으니 염구준을 죽일 자신이 생긴 것이다.그런데 흑풍 존주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을 돌렸다.“일단 염구준은 상관하지 말고 먼저 처리할 일이 있어. 그건 나중에 얘기하자.”“네.”부하들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하고는 어둠 속에서 조용히 사라졌다.왕실을 뒤돌아보던 흑풍 존주는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원망스럽게 쳐다보았다.“염구준, 다음에 반드시 네 목을 딸 거야!”그는 오래 머물지 않고 바로 이 나라를 떠났다.하지만 사라국의 싸움은 그저 시작에 불과했다.…왕실 로얄층.염구준은 국왕의 설명을 듣더니 안색을 굳히며 생각에 잠겼다.흑풍이 이러는 것은 사라국을 삼키는 것보다 더욱 큰 음모를 꾸미는 것 같았다.그 바람에 일이 또 복잡하게 되었다.지금까지 운석강화인을 조종하는 장본인은 흑풍 존주가 아니라 성조국이라 여겼는데 확실한 증거가 없어서 추측만 할 뿐이었다.“또 놓친 것이 있습니까?”염구준은 국왕을 보며 추궁했다.방금 설명했지만 전부 쓸데없는 말들이라 유용한 정보는 많지 않았다.흑풍 존주가 사라국에 숨은 은신처도 알지 못하여 참 답답했다.“없습니다. 이곳에 갇힌 후로 계속 감시를 당했어요.”국왕이 한사코 고개를 저었다.이렇게 되면 스스로 알아내는 수밖에 없었다.“나머
당황한 아라만이 밖으로 도망치려다 운석강화인의 발에 차여 구석에 나가떨어졌다.지금 상황에서 도망치는 것은 무리였다.“염구준! 날 살려준다고 약속했잖아요!”그는 다가오는 운석강화인을 노려보며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유일한 희망은 그분이 나타나는 것이었다.“하하하, 염구준은 오지 못해. 내가 백 명을 파견했거든. 일단 별장을 나오면 바로 내게 소식이 올 거야.”라누보는 호탕하게 웃으면서 자신의 작전이 완벽하다 믿었다.일단 소식이 오는 대로 왕실을 협박하여 연기하면 아무런 약점도 잡히지 않을 것이다.그는 말하면서 감시자에게 전화를 걸었다.“염구준은 지금 뭐 하고 있어?”“계속 별장 안에 있습니다.”휴대폰 너머로 흘러나오는 대답은 단호했다.라누보가 통화를 끊어버리며 비아냥거렸다.“들었지? 이제 희망을 버리고 그만 가!”“안 돼!”절망에 빠진 아라만은 가슴이 찢어지도록 외쳤다.“이런 곳에 누가 감히 나타나서 그를 구할 것인가?”쿵!바로 중요한 순간, 묵직한 소리가 들리더니 금속 대문이 천천히 쓰러졌다.한 그림자가 운석강화인의 멱살을 잡고 입구에 떡하니 서 있었다.바로 염구준이었다.“너…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갑작스러운 그의 등장에 라누보는 충격을 먹고 제대로 말도 하지 못했다.분명 별장 안에 있다는 보고를 받았는데 5초도 안 되어서 이곳에 나타나다니, 백 명의 무술인도 그를 잡지 못한 것이다.“뭘 그렇게 놀라?”염구준은 운석강화인을 저 멀리 던지면서 당당하게 말했다.지금 눈앞에 운석강화인 8명만 있고 무술인이 없어서 엄청 실망했다.이런 놈들은 그의 목표가 아니었다.“배후는 어디에 있어?”염구준이 싸늘하게 물었다.“저놈을 죽여!”라누보는 대답하지 않고 바로 명령했다.스스슥!무표정인 운석강화인은 필사적으로 염구준에게 달려들었다.두 명은 일반 반보천인, 여섯 명은 전신지상이었다.윙!염구준은 검명이 울리는 보검을 꺼내고는 1대8 상황에서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맞서 싸웠다.이 정도 실력으로는 정말 그의 상대
‘수상해.’역시 염구준이 추측한 것처럼 아라만은 그를 속이지 않았다.사라국에서 반년 동안의 총생산액을 원했는데도 흔쾌히 대답하는 것을 보니 너무 수상했다.국왕도 통제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설명했다.염구준은 가격만 부르고는 다른 조건은 제시하지 않았다.“이 일은 이번 한 번뿐입니다. 다음에 돈으로 해결하지 못할 겁니다.”“그럼요. 우린 용하를 건드릴 배짱이 없습니다.”국왕은 마치 큰 걱정거리를 내려놓은 것처럼 한숨을 내쉬면서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염구준은 배상금이 입금된 것을 확인하고는 자신의 계획을 얘기했다.“사라국에 온 후로 계속 바빠서 제대로 쉬지 못했습니다. 왕실에서 며칠 지내면서 관광지를 다녀볼 생각입니다.”이것은 의논할 여지가 없다는 뜻이었다.아직 운석강화석 사건을 처리하지 않았으니 절대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그것이…”국왕이 머뭇거리더니 시선을 돌려 라누보를 쳐다보다가,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다시 입을 열었다.“좋습니다. 편하게 지내다 가세요. 저는 아직 병이 낫지 않아서 이만 물러가겠습니다.”국왕은 말하면서 용하식 인사를 건넸다.“괜찮습니다. 저 혼자서도 충분히 먹을 수 있어요.”염구준은 수상한 것을 찾아냈지만 까발리지 않았다.국왕이 의사 결정을 하는데 비서의 눈치를 보다니, 확실히 문제가 있었다.모든 사람이 철수한 뒤, 염구준은 혼자 독상을 차지하고 편하게 식사했다.다행히 국왕은 음식에 독약을 타는 비열한 짓은 하지 않았다.그는 식사를 마치고 하인들의 안내에 따라 단독주택으로 들어가서 휴식을 취했다.온종일 바쁘게 뛰어다녔더니 눕자마자 쿨쿨 잠들었다.어느새 해가 지고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염구준은 일어서서 새벽 3시인 걸 확인하고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일어날 때가 되었네. 저것들이 무슨 수작을 부리는지 봐야겠어.”그가 사라국에 나타난 순간, 수많은 사람들이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할 것이다.염구준은 문 뒤에 숨어서 호흡 소리과 심장박동 소리를 느꼈다.지금 별장 근처에 100명 되는 무술인들이
“병신들! 누가 함부로 움직이라고 했어?”탕!흑풍 존주는 주먹으로 벽을 치면서 포효했다.눈 하나와 팔 하나를 잃었지만 그가 내뿜는 기운은 여전히 살벌했다.“흑풍 존주, 노여움을 푸세요.”한 사람이 분위기가 심상치 않는 것을 알아채고 나서서 설득했다.흑풍 존주가 전에 화풀이로 동료를 죽인 적이 있어서 다들 몸 사리고 있었다.“휴.”흑풍 존주가 긴 한숨을 내쉬며 참을 인자 세 번을 속으로 읽었다.방금 유력한 장수를 잃어서 함부로 사람을 죽이지 않을 것이다.“설리번이 내게 이곳을 맡긴 이상 너희들은 나를 믿고 따라야 해! 염구준은 괴물이야. 내가 그놈과 싸우다가 이 꼴이 되었어. 그러니까 절대 오늘처럼 멋대로 공격하지 마!”이번에는 사람을 죽이지 않고 한사코 설득했다. 일행은 흑풍 존주의 화가 가라앉은 것을 보고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방금 돌아온 동료에게서 염구준이 몇 초만에 실력이 막강한 동료를 살해했다는 소문을 들었었다.“흑풍 존주, 그럼 우리 이제 어떡합니까?”한 사람이 궁금해서 질문했다.지금 많은 정보가 누출되어서 상황이 좋지 않았다.흑풍 존주가 한참 생각하더니 이내 결정을 내렸다.“철수하자! 모든 무술인, 운석강화인은 먼저 왕실을 떠나고 예비 작전을 실행하자!”오래된 숙적으로서 잠시 염구준과 정면 충돌하고 싶지 않았다.지금 흑풍 존주도 일극 반보천인 경지에 도달했지만 그 악마를 이길 자신이 없었다.“알겠습니다.”모든 부하가 이구동성으로 대답하고는 빠른 걸음으로 별장에서 물러났다.염구준이 이미 이쪽을 오고 있으니 시간이 없었다.조금이라도 꾸물거리다가 전부 죽을 수도 있었다.…왕실 밖.염구준이 왕실 입구에서 사람들이 평범하게 드나드는 것을 바라보았다.만약 아라만의 말이 진짜라면 상대방의 배치와 통제력은 프로 급일 것이다.그때 두 병사가 급히 다가왔다.그들에게서 무술인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자, 염구준은 미리 기운을 끌어내어 언제든 공격할 준비를 했다.그런데 두 병사는 공격하지 않고 무릎을 꿇는 것이었다.“
“사라국은 이미 망했어요. 흑흑…”그의 앞에서 사라국의 왕자 아라만은 통곡하며 울부짖었다.하늘이 무너지는 일을 겪어야 이런 절망적인 모습이 나오는 것이다.잠시 침묵하던 염구준은 사라국은 망한 것이 아니라 무슨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어쩌면 용하의 제경보다 더 시끌벅적할 사건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다 큰 사내가 그만 질질 짜고 지금 어떤 상황인지 말해줘요.”아라만은 눈물을 닦으며 애써 마음을 가다듬고는 말하기 시작했다.“지금 모든 상황이 거짓이에요. 한 달 전에 무술인들이 왔는데 하루 만에 사라국 전체를 통제했어요. 그놈들은 정보를 차단하고 우리 아버지를 체포한 것도 모자라 복종하지 않는 귀족들까지 감옥에 가두었어요.”“겉보기에 평범하고 치안도 정상적인 것 같지만, 사라국의 국민들은 해외로 나갈 수 없고 전부 그놈들의 말을 따르면서 살고 있어요…”그 다음의 말은 쓸데없는 말들이라 전부 생략할 것이다.이제야 호텔에서 여직원이 왜 그런 반응을 보였는지 이해가 되었다.일단 정보를 누출하면 바로 죽을 테니까.“왕도로 안내해.”염구준은 쓸데없는 말은 생략하려고 그의 말을 끊어버렸다.눈으로 직접 보지 않는 이상, 아직 아라만의 말을 완전히 믿지 않았다.이 청년은 국주가 말한 접선자가 확실하지만 그보다 국주를 더 믿었다.며칠을 못 봤다고 이렇게 큰 변화가 생겨서, 완전히 아라만을 믿을 수가 없었다.“거기 가면… 나 죽어요.”아라만은 당황하며 머뭇거리더니 이마에 식은땀까지 흘렸다.무술인들 실력이 얼마나 강한지, 그의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었다.“기회는 한 번뿐이에요. 왕자가 가지 않으면 나도 여기에 남을 이유가 없어요.”염구준은 자신의 입장을 확실히 밝혔다.미래의 국왕이 겁쟁이라면 그도 나서서 도와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그냥 운석강화인 사건만 조사하고 돌아가도 충분하니, 괜히 번거롭게 왕실의 일에 끼어들지 않아도 되었다.“알았어요.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면 거기서 죽을게요.”아라만은 결심했는지 눈을 부릅뜨고
“널 괴롭힐 방법은 얼마든지 있어.”염구준은 그녀의 사정을 봐주지 않고 손가락 끝에 한 줄기 검기를 감돌았다.아무리 미녀라도 손가을에 비교할 수 없었다.“응?”그때 뒤에서 기척을 느끼고 홱 돌아섰다.암야왕이 피투성이가 된 몸을 이끌고 이를 악물며 나오는 것이었다.“개자식아! 우리 같이 죽자!”그는 말하면서 손에 있는 리모컨을 눌렀다.“젠장!”위기를 느낀 염구준은 재빨리 호체 기운으로 자신을 보호하고 극한 육신의 힘으로 창문을 뚫고 밖으로 뛰쳐나갔다.우르릉 쾅!천지를 뒤흔드는 듯한 굉음이 울리며 암야클럽은 순식간에 무너지고 연기를 사방으로 내뿜었다.근처를 지나가던 행인들은 땅이 심하게 흔들리자 황급히 안전한 곳으로 도망쳤다.죄악으로 가득한 암야클럽이 철저히 무너졌다.위잉위잉!경보음이 곳곳에 울리더니 구급차와 현지 경찰들이 현장에 도착하여 대대적인 수사에 나셨다.암야클럽은 인간쓰레기들의 소굴이라 누구도 나서서 구해주지 않았다.이번 소동으로 현장은 난장판이 되었다.그때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멈추더니 라누보가 문을 열고 내려왔다.“다 죽어도 아까울 거 없어. 암야왕이 말을 안 들어서 골치 아팠던 참이었는데 차라리 잘 됐네.”그는 폐허가 된 암야클럽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날듯이 상쾌했다.몇몇 경찰들이 앞에 다가가 상황을 보고했다.“방금 염구준이 암야클럽에 들어가는 걸 보았는데 나오는 것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하하하. 알았어.”라누보는 뜻밖의 소식에 큰소리로 웃었다.꿈에서도 그가 죽길 바랬는데 정말 현실로 이루어질 줄은 몰랐다.경찰은 그의 속내를 알 수 없으니, 낮은 소리로 질문했다.“수색해서 구할까요?”촤아악!라누보가 갑자기 돌변하면서 뺨을 치더니 크게 꾸짖었다.“흥, 그놈이 죽기를 바랬는데 뭘 구해?”지금 이 기쁜 심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내가 죽으면 그렇게 좋습니까?”그런데 기쁨은 잠시, 희미한 연기 속에서 염구준이 저벅저벅 걸어서 나왔다.암야왕은 마지막 힘을 다해서 그를 죽이려고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