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집에 데려다주지 않는 거야?”남설아는 눈앞의 낯선 저택을 바라보며 당황해서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깊은 밤에 남녀 단둘이 있는 걸 누군가 사진이라도 찍으면 안 될 일이다.“내가 무슨 일 하는지 잊었어? 난 기술 쪽이 전문이야. 걱정하지 마, 여기선 아무도 우리를 찍을 수 없어.”강연찬은 그녀의 걱정을 단번에 알아차렸다.“지금 너랑 배 대표 사이가 엉망인 거 나도 잘 알아. 너도 집으로 가서 배 대표를 마주하고 싶지 않지?”“응, 고마워.”남설아는 한참 고민했지만 결국 고맙다는 말밖에는 더 할 말이 없었다.그녀는 미안한 듯한 얼굴로 강연찬을 바라보며 작게 말했다.“내가 계속 고맙다는 말밖에 못 하는 것 같아... 미안해.”“미안해할 필요 없어. 그리고 고맙다는 말도 안 해도 돼. 나는 성인이고 내가 한 행동에 책임질 수 있어.”그는 문을 열고 들어가 곧바로 담요 하나를 가져와 남설아에게 건넸다.오늘 그녀가 입은 옷이 너무 예쁘긴 했지만 동시에 꽤 노출이 심했다. 담요로 몸을 감싸고 나니 둘 다 훨씬 편하게 대화할 수 있었다.“오빠, 프로젝트는 어떻게 됐어?”“이미 계약했어. 이걸로 배건 그룹은 꽤 큰 타격을 입게 될 거야.”강연찬은 솔직하게 말했다. 그는 원래부터 기술 분야에 정통해 본업을 하는 것이지만 배건 그룹이 이쪽으로 사업을 확장하려고 하는 건 전환 시도다.특히 연훈 그룹의 프로젝트는 배건 그룹의 사업 전환에 핵심적인 요소였지만 결국 강연찬 쪽에서 먼저 낚아챘다. 배서준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한동안 분노와 좌절 속에서 지내야 할 터였다.이 말을 들은 남설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미소를 지었다.“잘됐네. 두고 볼 거야. 기존 자산에 기대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지. 더군다나 그 기존 자산 중 절반은 내 것이잖아.”강연찬은 그녀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설아야,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야?”“배건 그룹에 들어갈 거야. 그래야 핵심 문서를 손에 넣고 범죄 증거를 찾을 수 있어.”남설아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
강연찬은 생기 넘치는 남설아의 모습을 보며 완전히 빠져들었다.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녀가 이렇게 눈을 반짝이며 무언가에 집중하는 모습은 대학 시절 이후로 처음이었다.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엔 반드시 해내겠다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그런 남설아를 보니 강연찬은 저절로 화가 치밀었다. 결혼 생활 몇 년 만에 그녀의 빛을 완전히 빼앗아 간 배서준을 속으로 몇 번이고 욕하며 눈썹을 잔뜩 찌푸렸다.잠시 후, 남설아가 입을 열었다.“이제 가봐야겠어.”“간다고? 어디로?”“배씨 가문 저택으로.”남설아는 USB를 챙기며 미간을 치켜들고 강연찬을 바라보았다.“난 원래 이런 사람이야.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여기까지 몰리지 않았다면 자신이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전에는 도대체 왜 그렇게 체면을 차렸던 것인지 자신도 알 수가 없었다. 만약 진작에 이랬더라면 자신의 아이는 죽지 않을 수도 있었다. 나은이는 지금까지 행복하게 살아있을지도 몰랐다.나은이가 생각나자 남설아는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합법적인 방법으로 네 권리를 찾는 건 당연한 일이야. 그 누구도 뭐라고 할 수 없어. 안 그래?”강연찬은 다가가서 남설아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마치 대학 시절처럼 말이다.그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번졌고 따뜻한 목소리로 얘기를 건넸다.조명이 그의 얼굴을 은은하게 비췄고 남설아는 순간 시간이 거꾸로 흐른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과거로 돌아가 아직 모든 것이 무너지기 전, 그들이 아직 파릇파릇한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남설아는 천천히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어루만졌지만 이내 손을 거두고 아무 말 없이 그를 지나쳐 문밖으로 나섰다.강연찬은 그녀가 사라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녀의 손길이 닿았던 얼굴을 만지작거렸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기쁨이 차올랐다.남설아는 여느 때처럼 쓸쓸한 밤을 보낼 거로 생각했지만 뜻밖에도 집에 돌아오자마자 배서준을 마주쳤다.그
“네가 이렇게 함부로 행동하면 내가 널 다시 봐주기라도 할 줄 알았어?”배서준은 날카로운 눈빛을 하고 남설아의 목을 세게 움켜쥐었다.이렇게 감정을 격하게 드러내는 그는 처음이었다. 예전의 그는 늘 덤덤했고 감정이 없는 사람 같았다. 그건 성격이 차분해서가 아니라 그저 자신을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걸 남설아는 알고 있다.그런데 지금, 그가 이렇게까지 흥분한 모습을 보이니 남설아는 우습기 짝이 없었다.남설아는 목이 그의 손에 잡혀 있음에도 불안해하지 않았다. 그녀는 오히려 두 손으로 그의 손을 붙들며 말했다.“배서준, 그거 알아? 가끔은 네가 날 죽여줬으면 좋겠어. 죽어버리면, 더 이상의 고통은 없을 테니까.”“너...”배서준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앞의 여자를 바라보았다.그녀는 파티장에서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지금 가까이에서 보니 그때보다도 더 매혹적이었다.그녀의 아름다움을 예전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었다. 배서준은 지나온 시간 동안 자신이 놓쳐버린 것들이 너무 많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그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온종일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그 입술을 마침내 삼켜버렸다.배서준의 몸짓을 느낀 남설아는 격렬하게 저항했고 뺨을 힘껏 내리쳤다.“미친놈, 지금 뭐 하는 짓이야!”배서준은 자신이 이런 방식으로 거절당할 줄 생각지도 못한 듯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남설아를 바라보았다.“너야말로 왜 이러는 거야! 지금 미친 건 너야. 도대체 뭐 하자는 거야!”남설아는 본능적으로 가슴을 감싸 쥐며 이를 악물고 그를 바라보았다.그녀의 행동에서 느껴지는 건 명백한 경계심이었다. 그 모습에 배서준의 분노가 더욱 거세졌다.“너 나를 피하는 거야? 왜? 넌 내 아내야. 이건 내 권리라고!”배서준은 이를 악물고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러나 남설아는 이 모든 게 우습기 짝이 없었다. 이 관계를 무시하고 밖에서 여자들을 끼고 놀던 사람은 배서준이었다. 인제 와서 이 관계를 무기로 자신을 옥죄이는 사람 역시 배서준이었다.결국
욕실에서 남설아는 자동차가 떠나는 소리를 들었다. 그녀의 얼굴이 잠시 굳어졌다가 이내 긴 한숨을 내쉬었다.자신이 이 남자의 손길을 두려워하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원래 가장 가까운 사이였던 두 사람도 이렇게까지 멀어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왠지 남설아는 마음 한구석이 어쩐지 씁쓸했다. 남설아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고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몸을 깨끗이 씻고 난 후, 남설아는 침대에 몸을 눕혔다. 그녀는 잘 먹고, 잘 자고, 몸을 회복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해야만 나은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끝까지 해낼 수 있었고 나은이가 죽기 전에 했던 말처럼 살 수 있었다.나은이, 나은이의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남설아는 가슴이 미어졌다. 특히 나은이와 함께 지낸 소중한 공간인 이곳에는 그녀가 떠나기 전 모든 흔적을 지웠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눕자마자 온 방 안에서 나은이의 모습이 아른거렸다.나은이가 떠난 후, 그녀는 단 한 번도 숙면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이곳에 돌아왔기 때문인지, 나은이의 흔적이 남아있는 공간이라서 그런지 금세 잠이 들었다.한편, 서유라는 병원 침대에 단단히 결박된 채 두 눈이 빨개져서 눈앞의 남자를 노려보았다.“당장 날 풀어줘!”“풀어줄 때가 되면 당연히 풀어줄 거야. 근데 지금은 당연히 못 풀어줘. 너도 네가 저지른 일에 대해서 대가를 치러야지. 이제 알겠어? 배서준의 마음속에서는 너도 별거 아니야.”최두식은 그녀를 내려다보며 비웃듯이 말했다.지금 그녀의 모습은 초라하기 그지없어 가여운 사람 같아 보였다. 하지만 그녀가 저지른 일에 비하면 지금 이 처지가 된 게 모두 인과응보이다.그 말을 들은 서유라는 충격을 받고 눈이 휘둥그레졌다.“너... 너 남설아의 사람이었어? 네가 그 더러운 년의 사람이라니!”짝하고 거친 마찰음이 방 안을 울리고 서유라의 얼굴이 홱 돌아갔다.최두식의 눈빛이 사납게 일그러졌다.“남의 가정을 깨뜨린 너야말로 더러운 년이지! 불륜녀 주제에 감히 누굴 욕해? 뻔뻔한 년.”서유라는
지금 남설아에게는 어제 입었던 드레스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그때, 집 안에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남설아는 빠른 걸음으로 내려가 문을 열었다. 그녀는 문 앞에 서 있는 서진영을 보고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여긴 어쩐 일로 오셨어요?”“옷을 가져다주러 왔어요. 강 대표가 전해주라고 한 것입니다.”서진영은 조용히 가방을 내밀었다. 남설아를 쳐다보는 그의 시선이 복잡했다. 심지어 원망과 경계하는 감정까지 느껴졌다.“만약 그런 뜻이 없다면 괜한 희망을 주지 마세요. 모든 사람이 당신처럼 쉽게 빠졌다가 쉽게 빠져나올 수 있는 게 아니에요.”서진영은 강연찬과 동창이었다. 같이 해외에서 유학할 때도 늘 함께였기에, 강연찬이 남설아를 얼마나 애타게 그리워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결혼했을 때, 그가 얼마나 슬퍼했는지도 똑똑히 봤다.아무래도 두 사람 사이의 일이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강연찬이 아직도 그녀를 놓지 못하는 걸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도 더는 자신이 간섭할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그는 강연찬의 친구였기 때문에 당연히 친구의 생각과 감정을 챙기게 되었다. 그런데 이 말에 남설아는 화를 내지 않았고 오히려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알겠어요. 그 말 명심할게요. 앞으로는 신중할 거고 다시는 그 사람이 상처받는 일은 없을 거예요.”그가 자신의 앞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는 건 강연찬을 진심으로 생각해주는 친구라는 의미였다.그렇다면 화가 날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강연찬에게는 좋은 일이니 기뻐해야 했다.서진영은 그녀가 반박하거나 날카롭게 받아칠 거로 생각했는데 이런 태도일 줄은 예상치 못했다.그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역시 보통이 아니군요.”“맘대로 생각해요.”남설아는 어깨를 으쓱이며 시큰둥하게 말했다.나은이가 떠나기 전에는 이런 것들을 무척 신경 썼었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나쁜 여자라고 생각할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이 전혀 이런 것들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걸
남설아는 마음에 드는 차 한 대를 골라 탑승했다. 운전석에 올라타니 평소와는 확연히 다른 감각이 들어 남설아는 이를 갈았다.“망할, 내가 대체 그동안 무슨 고생을 하며 살았던 거야?”빠르게 운전해 도착한 곳은 배건 그룹 본사 앞이었다. 예전이라면 감히 발도 들이지 못했을 곳이지만 지금은 배서준의 차를 타고 왔기에 아무도 그녀를 막지 않았다.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갈 때 보안요원들조차 예전과는 180도 다른 태도로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그 순간, 남설아는 진정한 자존심은 스스로 지키는 것이지, 남에게 기대어 얻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그리고 또 하나, 과거에 자신을 무시했던 사람들은 어쩌면 당연한 반응을 보였을 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너무 착하게 굴었기에 그 업보였다. 사진은 배건 그룹 사모님이라는 타이틀의 무게조차 제대로 알리지 못했다.결혼한 몇 년 동안, 이곳에 온 적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배서준을 마음에서 지운 후에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으니 이 아이러니한 상황이 그녀를 씁쓸하게 만들었다.그러나 이 모든 것을 겪으면서 한 가지 확실해진 사실이 있다. 바로 배서준을 사랑하면 결국 불행해진다는 것이었다.그날의 주주총회는 시작부터 살벌한 분위기였다. 거의 모든 이들이 배서준을 향해 날을 세웠다.그동안 공들여 온 배건 그룹의 이미지가 그의 사생활 문제 하나로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었기 때문이다. 분노한 주주들은 마치 이성을 잃은 듯 그를 몰아세웠다.그런데도 배서준은 무표정하게 앉아 그들의 불만을 듣고 있다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제가 남설아 씨와 부부인 이상, 배건 그룹은 절대 무너지지 않아요. 도대체 뭘 그렇게 두려워하는 거죠?”그는 대표로 취임한 후 배건 그룹의 매출을 전례 없는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그렇기에 주주들도 그의 능력을 부정할 수 없었다.사생활 문제야 어찌 됐든 기업을 경영하는 핵심은 사생활이 아니라 결국 숫자와 실적이라는 것을 모두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최근 보도된 내용만 놓
“안녕하세요, 저는 남설아입니다. 오늘이 주주총회인 만큼 배건 그룹의 최대 주주로서 직접 참석하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남설아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번에는 굳이 앞자리로 나아가지 않고 회의실 구석 자리를 선택해 앉았다.그런데도 그녀의 존재감은 단연코 무시할 수 없었다. 그녀가 풍기는 강렬한 아우라와 자신감 넘치는 태도 덕분이었다.배서준마저도 이전과 전혀 다른 그녀의 모습에 적잖이 놀랐다.그리고 이런 그녀가 자신의 법적 배우자인 게 조금은 자랑스럽기도 했다.“배 대표님, 회의를 계속 진행해도 될까요?”남설아는 배서준이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것을 눈치채고 속으로는 불쾌했지만, 겉으로는 철저히 사무적인 태도를 유지했다.그제야 배서준은 정신을 차렸다. 그러나 그녀가 여기에 나타났다는 사실 자체가 큰 문제였다.그가 혼자 회의에 참석했다면 가족의 대표로서 의견을 결정할 수 있었지만, 남설아가 직접 나타난 이상, 회사의 주도권이 그녀에게 넘어갈 위험이 있었다. 그렇게 되면 상황을 통제하기가 어려워진다.“남설아, 여기엔 왜 온 거야? 전에 얘기했었잖아. 집안일은 네가, 바깥일은 내가 맡기로. 약속된 거 아니었어?”배서준은 불만스럽게 남설아를 쳐다보며 타박했다.이전 같았으면 남설아는 그의 타박에 주눅 들어 고개를 숙였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은은한 미소를 띠며 담담하게 말했다.“맞아요. 이전엔 아이를 키우느라 그랬죠. 하지만 이제 아이도 없고 저도 다시 직장에 복귀해야 하겠어요. 집에만 머물면서 시간을 허비할 순 없잖아요?”“너 같이 평범한 가정주부가 무슨 직장 복귀야? 네 직장은 집이고 네 전쟁터는 주방이야. 그러니까 얼른 집으로 돌아가.”그의 말투에는 진한 경멸과 혐오가 담겨 있었다.배서준은 정말 눈앞에 있는 이 여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꾀는 많았지만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가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몸을 쓰는 것밖에 없었다.“저는 명문대 졸업생이
남설아는 배건 그룹의 최대 주주였다. 그녀가 회사에 복귀하는 데 있어 누구의 허락도 필요하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그녀는 배서준의 의견을 고려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배서준의 의견 따위 그녀에게 있어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뭐?처음에 주주들은 배서준을 향해 공격을 퍼붓고 있었지만, 남설아의 발언을 듣고 순식간에 타깃이 그녀로 바뀌었다. 그들은 회사 일은 전혀 모르는 그녀가 직장에 나온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설령 말단 직원이라도 허락할 수 없었다.“사모님께서는 그냥 집에서 빨래나 하고 요리나 하시는 게 좋겠어요.”“회사 운영에 대해선 하나도 모르시잖아요. 지금 회사 사정도 어려운데 괜히 더 일을 어렵게 만들지 마세요.”주주들의 비아냥과 비판이 쏟아졌지만, 남설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이미 더 힘든 일들을 버텨왔다. 고작 이런 말 몇 마디에 흔들릴 리가 없다.“다시 한번 강조하죠. 저는 배건 그룹의 최대 주주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온 건 통보하는 것이지, 허락을 구하려는 게 아닙니다. 만약 제가 회사 일에 참여하는 걸 반대하신다면 제 손에 있는 40%의 지분을 매각하겠습니다. 그러니 잘 생각해보세요.”남설아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 앉아 팔짱을 낀 채 주주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이들은 겉으로 충성하는 척하지만 사실 속은 이기적인 사람들이라 돈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만약 정말 40%의 지분을 매각한다면 새로운 투자자가 들어올 것이고 이는 배건 그룹의 모든 업무에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주게 될 것이다. 가족 경영의 치명적인 단점이 바로 이런 순간에 드러났다. 가족 내부의 문제가 고스란히 회사 운영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그들은 항상 위축되어 있던 소심한 사모님이 이런 배짱이 있을 줄 생각도 못 했다.주주들은 당황한 눈빛으로 배서준을 바라보았다. 그들에게는 해명이 필요했고 해결책이 필요했다.“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그는 빠르게 걸어가 남설아의 팔을 억지로 잡아끌었다.그러나 남설아는
차 안으로 돌아온 서유라는 여전히 드레스를 고른 기쁨에 들떠 있었다.“서준아, 우리 이번 파티에서 가장 눈에 띄는 커플이 되지 않을까?”그녀는 기대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그럴 거야.”배서준이 대답했지만, 말투에는 영혼이 없었다.“다행이네.”서유라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서준아, 네가 이렇게 같이 와줘서 정말 좋아.”그녀는 배서준의 어깨에 기대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배서준은 말없이 그녀의 등을 가볍게 토닥였다.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계속 남설아의 모습이 떠올랐고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파티 당일,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행사장은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고 분위기 또한 고급스럽고 활기찼다.남설아와 강연찬이 모습을 드러내자 주변에서 작은 술렁임이 일었다.남설아는 연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단정하면서도 기품 있는 자태를 뽐냈고 강연찬은 깔끔한 검은색 정장을 입고 여유롭고 세련된 분위기를 풍겼다.두 사람은 함께 서 있는 것만으로도 시선을 끌었고 자연스럽게 주목받는 존재가 되었다.“남 대표님, 강 대표님, 파티에 오신 걸 진심으로 환영합니다.”서 회장 부부가 반갑게 맞이했다.“서 회장님, 사모님, 축하드립니다.”남설아가 미소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남 대표님께서 참석해 주시다니 저희가 정말 영광이에요.”서 회장의 부인인 차혜미가 남설아의 손을 잡으며 따뜻하게 말했다.“별말씀을요, 사모님.”남설아가 정중하게 답했다.“이분이 바로 강 대표님이시죠?”서기찬이 강연찬을 바라보며 물었다.“네, 서 회장님.”남설아가 소개했다.“저의 비즈니스 파트너이자 좋은 친구인 강연찬 대표님이에요.”“강 대표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서기찬이 손을 내밀었다.“반갑습니다, 서 회장님.”강연찬은 예의를 갖춰 악수했다.“두 분 안으로 들어가시죠. 자리를 미리 준비해두었어요.”서기찬이 손짓했다.“감사합니다.”남설아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세 사람은 함께 연회장 안으로 들어갔다.조금 떨어진 곳에 배서준과 서유라도 행사장
배서준은 서유라가 들뜬 모습으로 웃고 있는 걸 보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괜히 불편하고 답답했다.그는 말없이 남성복 코너로 가서 대충 눈에 들어오는 정장을 집어 들었다.“손님, 정말 안목이 좋으시네요. 이건 저희 매장에서 가장 최근에 들어온 신상이에요. 이탈리아산 원단으로 수제 재단된 제품이라 고객님 체형에 정말 잘 어울리실 거예요.”점원이 열정적으로 설명했다.배서준은 아무 말 없이 검은색 정장을 들고 탈의실로 들어갔다.정장을 갈아입고 거울을 바라본 그는 문득 거울 속 자기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저 사람이 정말 내가 맞아?’한때 야망으로 가득하고 세상을 거머쥘 듯 당당했던 배서준은 이제는 서유라의 기대와 기준에 맞춰 움직이는 꼭두각시처럼 보였다.“서준아, 다 입었어?”서유라가 탈의실 밖에서 재촉했다.“응.”배서준은 문을 열고 나왔다.“와, 서준아, 너 이 정장 입으니까 진짜 멋있다.”서유라는 마치 영화 속 배우를 보는 듯 눈에 감탄이 가득했다.“진짜 영화배우 같아.”배서준은 가볍게 웃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서유라가 이런 말들을 듣는 걸 좋아한다는 걸 알지만 지금은 그런 말을 할 기분이 아니었다.“이걸로 할게.”배서준은 피곤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때, 매장 입구 쪽에서 구두 소리가 들려왔다.남설아와 강연찬이 매장 안으로 들어왔다.눈이 마주친 순간, 공기가 얼어붙는 듯했다.배서준의 시선은 남설아에게 고정되었고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남설아는 연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단정하면서도 우아한 분위기를 풍겼다.드레스는 그녀의 몸매를 자연스럽게 살려주었고 살짝 올려 묶은 머리 사이로 드러난 목선과 쇄골은 고급스러움을 더했다.그녀는 마치 한 송이 활짝 핀 제비꽃 같았다. 요란하지 않지만, 눈에 띄는 아름다움이었다.배서준의 가슴이 순간 쿵 하고 내려앉았다.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는 예전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다.그녀의 당당함과 여유는 서유라가 따라올 수 없는 것이었다.“강 대표님과 설아 씨도 드레스 고르러
“그날 같이 가자.”“응.”강연찬은 고개를 끄덕였다.한편, 배서준 역시 서 회장 부부가 주최하는 파티의 초대장을 받았다.그는 원래 서유라와 함께 참석해 둘의 관계와 입지를 보여줄 생각이었다.“유라야, 서 회장 부부가 비즈니스 파티를 연대. 우리 둘 다 초대했어.”배서준은 초대장을 들고 서유라에게 말했다.“같이 갈래?”“당연히 가야지.”서유라는 웃으며 말했다.“이런 기회에 좋은 인맥도 많이 만들 수 있잖아.”“그래.”배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같이 가자.”“응.”서유라가 고개를 끄덕였다.“서준아. 넌 정말 다정해.”서유라는 배서준의 품에 기대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하지만 배서준은 남설아도 그 파티에 참석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마음속에 복잡한 감정이 피어올랐다.“뭐? 남설아도 간다고?”배서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네, 대표님.”천기준이 답했다.“서 회장 부부가 남 대표님도 초대했답니다.”배서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표정이 어두워졌다.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남설아가 강연찬과 함께 파티에 나타나는 모습을 상상하자 괜히 기분이 불편해졌다.“서준아, 무슨 일 있어?”서유라는 그의 이상한 기색을 눈치채고 물었다.“아니야.”배서준은 고개를 저었다.“그냥, 남설아가 올 줄은 몰랐어.”“오면 어때.”서유라가 말했다.“우리가 남설아를 무서워할 이유는 없잖아.”“무서워서 그런 게 아니야.”배서준이 대답했다.“그냥...”그는 어떻게 얘기했으면 좋을지 몰랐다. 그저 가슴이 무척 답답했다.“됐어, 너무 신경 쓰지 마.”서유라가 달래듯 말했다.“우리 둘이 함께 가서 보여주자. 우리가 얼마나 잘 지내고 있는지.”“그래, 그게 좋겠다.”배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유라야, 네가 있어서 정말 든든해.”서유라는 배서준과 함께 파티에 참석하겠다고 먼저 제안했다.“서준아, 이런 자리에는 내가 같이 가야지.”그녀는 부드럽게 말하며 따뜻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네 연인이니까 함께 이겨내야 할 책임이 있어.
배서준이 회사로 돌아왔을 때, 그를 반긴 것은 직원들의 열렬한 환영이 아니라 책상 위에 산처럼 쌓인 서류들과 불안으로 가득 찬 얼굴들이었다.그는 자신이 자리를 비운 동안 회사의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내가 없는 동안 내가 지시한 대로 진행됐어?”배서준이 천기준에게 물었다.“네, 대표님.”천기준은 서둘러 대답했다.“지시에 따라 주가 일부는 안정시켰고 마케팅도 강화했습니다. 하지만...”“하지만 뭐?”배서준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하지만 남 대표님 쪽의 공세가 너무 강해서... 우리가 제대로 대응을 못 하고 있습니다.”천기준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배서준은 말없이 책상 앞으로가 높게 쌓인 서류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지금 뭔가를 하지 않으면 배건 그룹은 정말로 무너질 수도 있다는 불안이 그를 짓눌렀다.“각 부서의 팀장들에게 10분 후에 회의실로 모이라고 전해.”배서준이 말했다.“네, 대표님.”천기준은 얼른 대답하고는 회의 소집을 위해 나갔다.배서준은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지금은 감정이 아니라 이성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어떻게든 회사를 다시 일으켜야 했다.10분 후, 회의실은 이미 각 부서의 팀장들로 가득 차 있었다.배서준은 회의실 중앙에 앉아 익숙한 얼굴들을 바라보며 복잡한 심경을 숨겼다.그 순간, 서유라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스쳤다.“서준아, 나는 널 믿어. 넌 반드시 배건 그룹을 다시 일으킬 수 있을 거야.”“고마워, 유라야.”배서준은 서유라와의 대화를 떠올리고 있었다.“네가 곁에 있어 줘서 난 두렵지 않아.”한편, 남설아의 회사는 강연찬과 송우민의 지원을 받으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그녀의 기업은 빠르게 시장 점유율을 넓혀가고 있었고 그에 따라 많은 비즈니스 파트너들에게 인정받으며 여러 초청도 받게 되었다.이날, 남설아는 서 회장 부부가 주최하는 상류층 비즈니스 파티 초대장을 받았다.서 회장 부부는 재계의 거물로, 남설아의 회사와도 협력 관계에
“그럼 됐어.”서도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누나, 나한테 시킬 일 있으면 뭐든 말해.”“응.”서유라가 말했다.“당분간은 여기 남아서 나 잘 챙기고 배서준도 잘 감시해. 남설아랑 접촉 못 하게 해야 해.”“알겠어. 걱정하지 마.”서도현은 단호하게 말했다.한편, 배서준은 회사로 복귀하자마자 긴급회의를 소집했다.“여러분, 최근 우리 회사의 상황은 매우 심각합니다.”회의실 중간 자리에 앉은 배서준은 굳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우리는 지금 즉시 대응책을 세워서 상황을 돌려놔야 합니다.”“배 대표님, 계획이 있으신가요?”한 주주가 물었다.“이미 여러 가지 대응 방안을 준비해 두었습니다.”배서준이 말했다.“첫째, 주가를 안정시켜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해야 합니다. 둘째, 마케팅을 강화해서 잃어버린 시장 점유율을 되찾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내부 정비를 통해 운영 효율을 높이겠습니다.”“말씀은 좋은데 구체적으로는 어떻게 실행하실 건가요?”또 다른 주주가 질문했다.“제가 직접 나서서 추진하겠습니다.”배서준이 단호하게 말했다.“최대한 빨리 세부 계획을 수립해서 여러분께 공유하고 논의하겠습니다.”“저희는 배 대표님을 믿을 것입니다.”한 주주가 말했다.“하지만 이전 행동들로 인해 실망한 것도 사실입니다.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랍니다.”“맞습니다, 배 대표님.”또 다른 주주도 덧붙였다.“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회사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합니다.”“여러분, 제가 실망하게 한 점은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배서준은 진지하게 말했다.“하지만 저를 다시 한번 믿어 주십시오. 반드시 배건 그룹을 이 위기에서 구해내겠습니다.”“기대합니다.”한 주주가 말했다.“대표님, 잘 지켜보겠습니다.”회의가 끝난 후, 배서준은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왔다.그는 통유리창 앞에 서서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며 복잡한 감정에 잠겼다.잠시 후, 그는 휴대폰을 꺼내 서유라에게 전화를 걸었다.“유라야, 괜찮아? 나 회사 도착했
서유라는 분노에 차 손에 들고 있던 태블릿을 바닥에 내던졌다. 태블릿의 화면이 산산조각이 났다.정교하게 화장한 얼굴이 일그러졌고 눈빛에는 분노와 공포가 뒤섞여 있었다.그녀는 서도현에게 먼저 나가보라고 한 뒤, 혼자 남아 배서준을 상대하기로 했다.혼자 방에 남은 서유라는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했다.그녀는 창가로 다가가 흐린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남설아, 너무 자만하지 마. 내가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며칠 뒤, 서유라는 대의를 위해 배서준에게 회사를 돌아가라고 설득했다.“서준아, 이제 돌아가.”서유라는 침대에 누운 채 창백한 얼굴로 힘없이 말했다.“회사가 더 중요해. 언제까지 내 곁에만 있을 수는 없잖아.”“하지만 네 몸 상태가...”배서준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난 괜찮아.”서유라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정말이야. 나 혼자서도 잘 챙길 수 있어.”“아니야, 네 곁에 있어야 마음이 놓여.”배서준이 고집을 부렸다.“서준아, 내 말 좀 들어봐.”서유라는 그의 손을 꼭 잡았다.“네가 날 걱정해주는 마음은 잘 알고 있어. 하지만 지금 회사 상황이 너무 안 좋아. 당신이 여기에 계속 있는 건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이야.”“그래도...”“돌아가.”서유라는 그의 말을 끊었다.“지금은 너만이 배건 그룹을 지킬 수 있어.”“유라야...”배서준은 감동한 듯 서유라를 바라보았다.“넌 정말 사려 깊은 사람이야.”“나는 네 여자니까 당연히 너를 위해 생각해야지.”서유라는 다정하게 말했다.“어서 돌아가. 내가 걱정하지 않게 해줘.”“그래.”배서준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회사 일은 내가 책임질게. 넌 꼭 건강 잘 챙겨야 해.”“응, 걱정하지 마.”서유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너도 무리하지 말고 몸조심해.”“그래.”배서준은 그녀의 이마에 다정하게 입을 맞췄다.“회사 일이 마무리되면 다시 올게.”“응, 기다릴게.”서유라는 잠시 오묘한 웃음을 지었다.배서준은 서유라를 데리고 함께 회사로
그는 줄곧 자신과 남설아는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 생각해왔지만 지금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강연찬이 회복되자 모두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고 특히 남설아는 그동안 불안했던 마음을 비로소 내려놓을 수 있었다.한편, 멀리 리조트에 머무르고 있던 서유라는 무척 불안하고 초조했다.서도현은 자신이 보낸 사람들이 전부 체포되어 한 명도 빠짐없이 구속되었다는 정보를 이미 입수했다. 남설아가 다치지 않은 것도 모자라 다친 사람마저 회복되었으니 그동안 벌인 모든 일이 헛수고가 되고 만 것이다.“뭐라고? 강연찬이 회복했다고?”서유라의 목소리는 고막을 찢을 듯 날카로웠다.“그 사람들이 엄청 대단하다고 하지 않았어? 어떻게 여자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남설아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여자잖아. 그런데도 그 여자 하나 못 건드려서 이 지경이 된 거야? 돈을 그렇게 많이 받고는 뭐 하겠다는 거야? 적은 돈이 아니었잖아.”서도현은 배서준의 감시를 피해 몰래 리조트 안으로 숨어들어와 서유라와 만났다.그의 얼굴엔 짜증이 가득했고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누나, 나도 최선을 다했어. 그놈들이 이런 일 하나도 제대로 못 할 만큼 이렇게 쓸모없을 줄은 누가 알았겠어. 그래도 다행인 건 그놈들이 입이 무지하게 무겁다는 거야. 지금껏 한마디도 안 했어. 나도 계속 지켜볼 거니까 우리한테 불똥이 튀게 두진 않을 거야.”“쓸모없는 놈들! 전부 다 쓸모없어!”서유라는 온몸을 떨며 분노했다. 그녀는 탁자 위에 놓인 찻잔을 집어 들어 바닥에 힘껏 내던졌다.“이제 어떡해? 강연찬이 회복됐다고? 혹시 이 일을 남설아한테 말하면 어쩌려고? 남설아가 알게 되면, 나는...”“누나, 진정해봐.”서도현은 급히 달래며 말했다.“강연찬이 회복됐다고 해도 우리가 한 짓이라는 증거는 없어. 게다가 그 킬러들은 내가 따로 구한 사람들이라서 우리랑 직접적인 연결 고리는 없어.”“그래도...”서유라는 여전히 불안했다.“남설아 그 여자는 워낙 교묘해서 무슨 단서라도 찾아내게 되면 우리는 순식간에
“알겠어.” 송우민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너희가 그렇게 말한다면 따를게.”“우민아, 고마워.” 남설아가 말했다.“네가 얼마나 복수를 원하고 있는지 알아. 하지만 우리는 냉정해야 해. 감정에 휘둘리면 안 돼.”“응, 알아.” 송우민이 고개를 끄덕였다.“너희 계획에 최선을 다해 도울게.”“좋아.”남설아가 미소 지었다.“우린 반드시 해낼 수 있을 거야.”세 사람은 구체적인 세부 사항을 더 논의한 후, 각자 맡은 일을 하기 위해 흩어졌다.연회가 끝난 후, 남설아는 사무실로 돌아와 밀린 서류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그때 강연찬이 따뜻한 우유 한 잔을 들고 들어왔다.“설아야, 우유 좀 마시고 일찍 쉬어.”강연찬이 우유를 건네며 말했다.“요즘 너무 무리하고 있어. 몸을 챙겨야지.”“응, 고마워, 오빠.”남설아가 우유를 받아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오빠도 일찍 쉬어.”“난 안 피곤해.” 강연찬이 말했다.“너 일 마칠 때까지 같이 있어 줄게.”“괜찮아, 오빠. 몸도 아직 완벽히 회복된 건 아니잖아. 푹 쉬는 게 좋아.”남설아가 말했다.“이 서류들은 나 혼자서도 처리할 수 있어.”“그래도 옆에 있어 줄게.”강연찬이 말했다.“너도 너무 늦지 않게 마무리하고 쉬어.”“응, 알겠어.”강연찬이 나간 뒤에도 남설아는 계속해서 일을 처리했다.그녀는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었다. 더 강해져야만 배서준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나은이를 위해 복수할 수 있었다.깊은 밤이 되어서야 남설아는 마침내 모든 서류를 정리했다.그녀는 기지개를 켜면서 창가로 가서 불빛이 번쩍이는 도시를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나은아, 보고 있어?”남설아는 혼잣말처럼 속삭였다.“엄마가 반드시 복수할 거야. 기다려줘.”다음 날, 남설아는 이른 아침부터 회사에 출근했다.그녀는 회사의 핵심 팀을 소집해 다음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여러분, 우리 그동안 좋은 성과를 거뒀지만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남설아가 말했다.“배건 그룹은 지금 위기에 처해 있지만
“선배...”남설아는 강연찬을 바라보며 가슴 깊이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꼈다.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송우민은 두 사람 사이의 다정한 분위기에 묘한 감정이 밀려왔다.기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마음 한편이 허전했다.연회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던 중, 남설아가 잔을 들어 모두와 함께 축하의 건배를 하려는 찰나 강연찬이 재빨리 손을 내밀어 그녀를 막았다.“설아야, 요즘 너무 무리했잖아. 술은 좀 줄여.”강연찬의 목소리엔 진심 어린 걱정이 담겨 있었다.남설아는 그의 따뜻한 눈빛을 마주하며 마음이 포근해졌다.하여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들고 있던 술잔을 내려놓고 대신 주스를 들었다.“알겠어. 선배 말 들을게.”남설아는 웃으며 말했다.그 광경을 본 송우민은 잔을 들고 조용히 다가왔다.“남설아, 내가 한 잔 올릴게.”송우민은 잔을 들며 말했다.“이번 성공, 정말 축하해.”남설아는 주스를 들고 잔을 맞댔다.“고마워, 우민아.”남설아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네 도움이 없었으면 이렇게 빠르게 결과를 얻진 못했을 거야.”“우린 친구잖아. 서로 도와야지.”송우민은 웃으며 말했다.“근데 정말 대단하다. 네가 이렇게 멋진 사람일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우민아, 너무 띄우지 마.”남설아는 조금 쑥스러워하며 웃었다.“운이 좋았을 뿐이야.”“그건 아니지.”송우민은 단호히 말했다.“너의 실력, 결단력, 배짱, 모두 내가 본 사람들 중 최고야.”“그 얘기는 그만하고...”남설아는 말을 돌리며 미소 지었다.“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해보자.”“좋아.”송우민이 고개를 끄덕였다.“남설아, 내 생각엔 지금이 기회야. 우리가 배건 그룹을 한 방에 무너뜨리고 배서준한테 확실하게 복수해야 해!”그의 눈빛에는 분노와 집념이 가득했다.마치 지금 당장이라도 배서준을 단죄하고 싶은 듯했다.그러나 강연찬은 조용히 눈살을 찌푸렸다.“난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해.”“왜?”송우민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지금 배건 그룹은 거의 끝장난 상태잖아.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