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설아는 웃음을 거두고 코코를 가볍게 고쳐 안으며 불쾌한 기색으로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보았다.“이 시간에 회사에 있어야 하는데 여기까지 무슨 일로 온 거야?”“서준이가 어젯밤에 과음했거든. 내가 밤새 간호했더니 나 힘들다고 오늘 하루 쉬라고 했어.”서유라는 일부러 옷깃을 잡아당기며 피부에 남아 있는 애매한 흔적을 드러냈다.아이를 낳아 본 남설아가 이런 의미를 모를 리 없었다.예전 같았으면 이런 걸 보면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겠지만, 지금은 그냥 헛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어젯밤에 그렇게 소리치느라 피곤했으면 조용히 쉬지, 여기에는 왜 온 거야? 설마 이 대낮에 여기서도 소리치고 싶다는 건 아니겠지? 아쉽겠지만 난 그런 취미 없어.”남설아는 서유라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입에서 쉴 새 없이 독설을 내뱉었다.어차피 저 두 사람은 더한 짓도 서슴지 않는 인간들인데, 자신이 이 정도 말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서유라는 깜짝 놀랐다. 예전에는 자기 앞에서 찍소리도 못하던 여자가 지금 감히 이런 말을 하다니.“너... 대낮부터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서유라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더 이상 침착한 척할 수 없었다.남설아는 거의 반사적으로 코코의 귀를 손으로 가린 채 서유라를 경멸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남의 남편이 몸에 남긴 흔적을 자랑스럽게 보여주면서 나보고 부끄러움도 모른다고? 요즘은 불륜녀들이 이렇게 당당한 세상이 됐나 보네?”“사랑에서는 사랑받지 못하는 쪽이 진짜 불륜녀야.”서유라는 이를 악물며 한 걸음 다가서더니 차가운 눈빛으로 남설아를 노려보았다.“당신이 우리를 손가락질할 자격이 있어? 당신도 다른 남자랑 놀고 있잖아.”남설아는 한 발짝 물러나 강연찬 옆에 섰다.그리고 일부러 그의 어깨에 머리를 살짝 기대며 장난스러운 눈짓을 보냈다.“맞아. 우리가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어. 뭐? 불만 있어? 네 남자인 배서준도 아직 나한테 뭐라 하지 않았는데 당신이 왜 난리야? 너야말로 여기서 난리 피울 시간 있으면 네 남자한테 잘
강연찬은 남설아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조금 전 그녀가 자신을 지키는 모습은 마치 당당한 여전사 같았다.강연찬의 진지한 눈빛을 보자 남설아는 미묘하게 눈썹을 찌푸리며 망설이더니 조심스레 물었다.“내가 행패 부리는 여자처럼 보이지는 않았어요?”“그게 어떻게 행패를 부리는 여자가 돼? 사람이 문 앞까지 찾아와서 모욕을 주는데 가만히 있는 건 온순한 게 아니라 무능한 거야.”강연찬은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우아함이니 품격이니 하는 건 다 헛소리였다. 서유라 같은 뻔뻔한 인간들 앞에서는 강하게 맞서는 게 정답이었다.강연찬의 말에 남설아는 왠지 코끝이 시큰해졌다.그녀는 과거에 조금만 목소리를 높여도 배서준에게 끝없이 꾸중을 들었다. 배씨 가문의 사람답지 않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지만 정작 배씨 가문의 사람이란 어떤 존재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상관없었다. 배씨 가문이 어떤지 그녀와는 더 이상 아무런 관계도 없었다.동물 병원에 도착하자 수의사는 코코의 작은 몸집을 보고 약간 놀란 기색이었다. 세심한 진찰 끝에 그는 설명했다. 코코는 엄마 뱃속에서부터 작았고 태어나서도 형제들 사이에서 젖을 충분히 먹지 못해서 작은 거지 건강에는 문제가 없었다. 잘 돌봐준다면 앞으로 튼튼하게 자랄 것이다.수의사의 말을 듣자 남설아는 활짝 웃으며 기뻐했다. 그녀는 바로 코코가 쓸 물건을 고르기 시작했고 심지어 분유도 최고급 제품으로 선택했다.그 와중에 강연찬은 가만히 서서 코코와 눈을 마주치고 서로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그는 동물을 무서워했지만, 이상하게도 코코와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공포감이 많이 사라졌다.“야옹!”“으악!”코코가 울자 강연찬도 반사적으로 소리를 질렀다.남설아는 깜짝 놀라 돌아와 코코를 품에 안고는 난감한 표정으로 강연찬을 바라보며 말했다.“좀 조용히 해요. 코코가 놀라요.”“남설아, 너 사람이야? 날 사람 취급은 하긴 해? 코코가 놀라면 안 되는데 나는 놀라도 되는 거야?”강연찬은 억울한 표정으로 외쳤다.그
남설아는 서유라가 오늘 배서준을 데리고 온 건, 오로지 자신에게 과시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그러나 남설아는 그저 웃음을 지었다. 왜냐하면 이제 그녀와 서유라는 더 이상 같은 경기장에 서 있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서유라의 시선은 여전히 남자에게 고정되어 있었지만, 남설아는 이제 오직 돈만을 원했다. 그리고 배서준이 차라리 죽지 못해 살기를 바랐다.“너! 남설아, 네가 이렇게 나온다고 내가 정말 아무것도 못 할 줄 알아? 이번 프로젝트를 따내지 못하면 네가 어떻게 배건 그룹에서 쫓겨나는지 두고 볼 거야.”배서준은 이를 악물었다.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어두운 면을 숨기지 못했다.평소에는 냉정하고 점잖은 모습을 유지했던 그가 지금은 분노로 이를 갈고 핏줄까지 서 있었다.그러나 그가 여기서 분노하다가 당장 숨이 끊어진다고 해도 남설아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그녀는 무심하게 어깨를 으쓱하며 덤덤하게 말했다.“서준 씨, 남을 탓하기 전에 먼저 본인부터 돌아보시죠.”그렇게 말한 뒤, 코코를 품에 안고 거침없이 밖으로 나갔다.그녀가 떠나자, 병원 안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동물 미용사조차 숨소리를 죽이며 혹시나 자신이 괜히 말려들까 봐 조심스러워했다.배서준의 감정이 격변하는 걸 느낀 서유라는 속으로 놀랐다.그녀는 배서준이 남설아 때문에 이런 감정 변화를 보일 줄은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서준아, 서준아... 괜찮아? 다 내 잘못이야. 내가 굳이 토리 사료 사러 오자고 하지 않았으면 설아 씨가 화를 내지 않았을 텐데.”서유라는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사과했다.“그 여자가 화를 내든 말든 나랑 무슨 상관이야.”배서준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짜증 어린 목소리로 소리쳤다.곧 서유라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그녀는 미세하게 몸을 떨었고 품에 안겨 있던 치와와마저 주인의 감정을 따라 조용히 흐느꼈다.그제야 배서준은 자신이 너무 심하게 말했음을 깨닫고 황급히 그녀를 다독였다.“미안해, 유
남설아를 지금까지 버티게 만든 것은 애정 같은 게 아니었다. 그녀를 지탱한 것은 증오였고 원망이었으며 끝없는 부정적인 감정들이었다.그녀는 자기 딸을 죽게 만든 사람이 멀쩡하게 잘 살아가는 걸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더군다나 그들이 서로 애정 어린 눈빛을 주고받으며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는 건 그녀에게는 지옥과도 같았다.만약 그들이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는다면 나은이는 대체 뭐가 되는 건가. 그리고 그녀 자신은 대체 뭐란 말인가.남설아는 단호한 눈빛으로 강연찬을 바라봤다.“오빠, 도와줄 거죠?”지금 그녀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강연찬뿐이었다. 남설아 또한 그에게 의지하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혼자 버티는 것이 너무나도 힘들었다.“도와줄게. 하지만 난 네가 잘 지내길 더 바랄 뿐이야.”강연찬은 그녀의 손을 잡으며 부드럽게 위로했다.그가 그녀를 돕겠다는 건 진심이었지만 그보다 더 두려운 건 그녀가 이 증오와 집착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이었다. 복수에 몰두하다가 결국 자신을 갉아먹는 걸 그는 원하지 않았다.“나 잘 지낼 거예요. 나은이에게 약속했거든요. 난 잘 살아갈 거라고요.”남설아는 살며시 웃으며 품속의 코코를 어루만졌다.그 모습을 본 강연찬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차를 몰아 그녀를 집으로 데려갔다. 그러다 문득 말을 꺼냈다.“남도일이 널 보고 싶어 해. 벌써 안에서 몇 번이나 자살 소동을 벌였어. 만날 거야?”“네.”남설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품속의 코코를 내려다보면서 확실히 그에게 해야 할 말이 있다고 느꼈다.남설아가 그렇게 쉽게 대답할 줄 몰랐던 강연찬은 잠시 멈칫했다가 덤덤하게 말했다.“그 사람 널 만나도 별로 좋은 말은 안 할 텐데. 마음 단단히 먹어.”“우리 사이는 어차피 끝을 내야 해요. 해야 할 말이 있고 밝혀야 할 일도 있어. 직접 마주 보고 확실히 끝내야죠.”남설아는 조용히 웃으며 그를 바라봤다.“오빠, 고마워요.”그녀가 지금 강연찬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고맙다는 말뿐이었다
회사로 돌아온 강연찬은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깊은 생각에 잠겼다.어떻게 하면 빠르고 강하게 배건 그룹을 차지하면서도 배서준을 무너뜨리고 자신에게 피해가 없도록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서진영은 그가 멍하니 있는 모습을 보고 짜증 난 듯 책상을 쾅 내리쳤다.“형, 내가 업무 보고하고 있는데 도대체 뭘 그렇게 멍때리고 있어요? 딴생각 중이죠?”“아니야, 듣고 있어.”강연찬은 바로 정신을 차리고 서진영을 향해 웃어 보였다.하지만 그의 태도를 보니 딱 봐도 대충 얼버무리는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서진영은 한숨을 내쉬었다.“우리 한 달 안에 이 두 가지 기술적 난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형은 요즘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만 하고 도대체 해결책은 생각해 본 거예요?”“사실 난 설아한테 한 번 보여주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걔가 더 잘할걸?”강연찬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남설아의 능력을 인정하는 서진영이었지만 지금 상황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그는 곧바로 얼굴을 찌푸리며 단호하게 말했다.“형, 우리 배건 그룹이랑 경쟁 관계라는 걸 잊은 거예요? 내가 알기로 위화 그룹이 배건 그룹이랑 아주 잘 지내고 있다고 해요. 이미 첫 번째 소프트웨어 샘플까지 넘겼다고 하더라고요. 우리랑 경쟁이 심한 상황에서 지금 우리 핵심 기술 문제를 남설아한테 넘긴다는 건 우리 손으로 무기를 내려놓고 항복하는 거나 다름없잖아요. 난 절대 반대예요.”기술 분야는 자그마한 차이가 큰 결과를 불러오는 곳이다. 이런 치열한 경쟁 속에서 리스크를 감수하는 건 위험했다.강연찬은 그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난 설아를 믿어. 걘 절대 우리 정보를 넘기지 않을 거야.”“형은 남설아를 믿는 거예요? 아니면 부부 관계를 믿는 거예요? 둘 사이에 감정이 어떻든 간에 법적으로는 부부고 여전히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사이라는 걸 잊지 말아요. 우리 회사는 이제 막 시작한 단계고 이렇게 무모한 짓을 할 여유는 없어요.”그제야 강연찬은 남설아가 왜 자기 회사로 오길 꺼렸는지 깨달았다
장숙자는 남설아가 나은이를 떠올리는 걸 보며 마음이 편치 않았다.그녀는 깊이 숨을 들이마신 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설아 씨, 나은이는 이제 없어요. 부디 너무 힘들어하지 마세요.”남설아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나은이에게 약속했어요. 잘 살아가겠다고. 난 그 약속을 지킬 거예요.”그녀는 고개를 들어 벽에 걸린 나은이의 사진을 바라보았다.“나는 절대 거짓말하지 않을 거예요. 반드시 잘 살아갈 거예요.”남설아의 태도가 이렇다 보니 장숙자는 더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너무 많은 말을 해봤자 그녀의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들 뿐이었다.결국 장숙자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렇다면 다행이에요. 설아 씨, 전 정말 설아 씨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그때 배서준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남설아 품에 안긴 작은 생명체를 보곤 얼굴을 찡그리며 혐오스럽다는 듯 말했다.“더러워 죽겠네.”남설아는 반사적으로 코코를 꼭 끌어안고는 눈살을 찌푸린 채 배서준을 바라보았다.이 남자는 도대체 요즘 왜 이러는 걸까, 예전에는 그렇게 집에 돌아오라는 부탁에도 코빼기도 안 보이더니 요즘은 왜 이렇게 뻔뻔하게 찾아오는 건지 알 수 없었다.자기는 이미 이 집을 나왔는데 대체 왜 이토록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건지, 정말 지긋지긋했다.“서준 씨, 왜 또 왔어요?”남설아는 코코를 안고 일어서며 불쾌하다는 듯 물었다.“나는 네 남편이야. 내가 여기 안 오고 어디 있어야 하는데?”배서준은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어 헤치며 짜증스러운 기색을 보였다. 그는 남설아가 품 안의 작은 고양이를 보호하려는 듯한 태도를 보이자 더욱 기분이 상했다.“회사에 출근한다고 한 게 다 빈말이었나 보네. 이제 보니까 역시 네 성격은 절대 안 변하는구나. 고작 고양이 한 마리에 정신이 팔려서는, 네가 말하던 꿈이니 뭐니 하는 것들도 결국 다 허울뿐이었네.”배서준은 의자에 털썩 앉아 남설아를 내려다보며 비꼬았다.사실 이런 말다툼은 지난 몇 년 동안 두 사
남설아는 비웃으며 차갑게 말했다.“마치 내가 이혼을 원하지 않는 것처럼 말하네요? 배서준 씨, 솔직히 말해줄게요. 우리 부부 관계는 이미 끝났어요. 우리가 왜 아직 이혼하지 않고 있는지는 서준 씨도 잘 알잖아요. 그러니까 조용히 있는 게 좋을 거예요. 아니면 정말 끝장을 보게 될 거예요.”그녀의 눈빛이 점점 날카로워졌다.“나한테 어떻게 하겠다고? 네가 나한테 대체 뭘 할 수 있는데? 네가 날 어떻게 할 수나 있어?”인제 와서 보니 어차피 자신에게 남은 건 목숨 하나뿐이었다. 망설일 것도 없이, 그냥 밀어붙이면 될 일이다.“너, 네가 어떻게 이렇게 변할 수가 있어? 역시 유라가 말한 대로였어. 너 연기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하는구나.”배서준은 분노에 찬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손을 내밀었다.“지금 당장 금고 열쇠 내놔. 네가 가질 자격 없는 것들이야.”남설아는 이 말을 듣고 웃음이 터질 뻔했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배서준의 손바닥을 세게 내려쳤다. 그 충격에 그녀의 손도 저렸지만 개의치 않았다.“그건 할아버지가 내게 물려주신 유산이에요. 서준 씨 것이 아니라고요. 내가 가질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는 이미 결정된 일이에요. 내가 안 주겠다면 어쩔 건데요? 그렇게 화가 나면 어디 한번 죽여봐요.”이를 악문 그녀는 머리를 성큼 배서준 앞에 들이밀었다.갑작스러운 행동에 배서준은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그러다 발이 엉켜 소파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당황한 그의 얼굴에는 경악과 이해할 수 없다는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그는 믿을 수 없었다. 늘 자기 말에 고분고분하던 그 여자가 이렇게까지 달라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이 여자가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지?’배서준의 난감한 모습에 남설아는 속이 다 시원했다.“서준 씨, 내 거는 내 거예요. 내가 죽더라도 서준 씨한테는 절대 내놓는 일 없어요. 필요하면 직접 금고나 따 보시지 그래요? 할아버지께서 내게 남긴 것들, 난 하나도 포기 안 해요. 그리고 두 번 다시 나 건드리지 말아요. 괜히 나
“아니. 남설아가 반성할 시간을 줘야지.”배서준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다시 넥타이를 매고는 콧방귀를 뀌며 건방지게 말했다.마치 자신이 남설아를 냉대하는 것처럼 보이려 했지만 정작 남설아는 그에게 한 번도 시선을 주지 않았다.장숙자는 묵묵히 현관문을 열며 공손하게 말했다.“안녕히 가십시오, 대표님.”이 정도면 대놓고 쫓아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배서준이 이걸 모를 리 없었다.그는 장숙자의 모습을 보며 별안간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남설아는 대단한 여자다.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 완전히 바꿔놓았으니 말이다.배서준은 코웃음을 치며 성큼성큼 집을 나섰다. 원래는 자신의 분노가 장숙자를 두렵게 만들 줄 알았는데 돌아온 건 그녀의 공포가 아니라 문을 쾅 닫아버리는 소리였다.“어디서 감히! 완전히 날 무시하는구나!”그는 문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화를 냈지만 정작 아무도 그의 분노 따위 신경 쓰지 않았다. 혼자서 난리를 치는 꼴이었다.창가에 서 있던 남설아는 코코를 품에 안은 채 그 모습을 바라봤다.배서준이 혼자 허공에 대고 소리치다가 결국 차를 타고 떠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어찌나 유치하고 우스운지 헛웃음이 나왔다.그 순간, 남설아는 자신이 과거에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문득 깨달았다. 지금의 그녀는 예전의 자신이 왜 저런 사람을 좋아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도대체 저 남자가 뭐가 좋았던 걸까?'겉으로만 강한 척할 뿐, 속은 텅 비어 있는 미성숙한 남자였다. 평생을 오만하게 살아가고, 평생을 유치하게 굴며, 평생을 철들지 못하는 남자다.그녀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나은이의 아빠로 이런 사람을 선택하다니 그야말로 최악의 선택이었다.코코를 침대에 올려놓은 뒤, 그녀는 다시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첫 번째 시안은 이미 보내 놓았지만, 아직 피드백이 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녀는 자기 결과물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이제 남은 건, 최대한 빨리 프로그램을 완성하는 것뿐이었다.[데이터 분석은 어디까지 됐어요?]남설아는
그는 줄곧 자신과 남설아는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 생각해왔지만 지금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강연찬이 회복되자 모두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고 특히 남설아는 그동안 불안했던 마음을 비로소 내려놓을 수 있었다.한편, 멀리 리조트에 머무르고 있던 서유라는 무척 불안하고 초조했다.서도현은 자신이 보낸 사람들이 전부 체포되어 한 명도 빠짐없이 구속되었다는 정보를 이미 입수했다. 남설아가 다치지 않은 것도 모자라 다친 사람마저 회복되었으니 그동안 벌인 모든 일이 헛수고가 되고 만 것이다.“뭐라고? 강연찬이 회복했다고?”서유라의 목소리는 고막을 찢을 듯 날카로웠다.“그 사람들이 엄청 대단하다고 하지 않았어? 어떻게 여자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남설아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여자잖아. 그런데도 그 여자 하나 못 건드려서 이 지경이 된 거야? 돈을 그렇게 많이 받고는 뭐 하겠다는 거야? 적은 돈이 아니었잖아.”서도현은 배서준의 감시를 피해 몰래 리조트 안으로 숨어들어와 서유라와 만났다.그의 얼굴엔 짜증이 가득했고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누나, 나도 최선을 다했어. 그놈들이 이런 일 하나도 제대로 못 할 만큼 이렇게 쓸모없을 줄은 누가 알았겠어. 그래도 다행인 건 그놈들이 입이 무지하게 무겁다는 거야. 지금껏 한마디도 안 했어. 나도 계속 지켜볼 거니까 우리한테 불똥이 튀게 두진 않을 거야.”“쓸모없는 놈들! 전부 다 쓸모없어!”서유라는 온몸을 떨며 분노했다. 그녀는 탁자 위에 놓인 찻잔을 집어 들어 바닥에 힘껏 내던졌다.“이제 어떡해? 강연찬이 회복됐다고? 혹시 이 일을 남설아한테 말하면 어쩌려고? 남설아가 알게 되면, 나는...”“누나, 진정해봐.”서도현은 급히 달래며 말했다.“강연찬이 회복됐다고 해도 우리가 한 짓이라는 증거는 없어. 게다가 그 킬러들은 내가 따로 구한 사람들이라서 우리랑 직접적인 연결 고리는 없어.”“그래도...”서유라는 여전히 불안했다.“남설아 그 여자는 워낙 교묘해서 무슨 단서라도 찾아내게 되면 우리는 순식간에
“알겠어.” 송우민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너희가 그렇게 말한다면 따를게.”“우민아, 고마워.” 남설아가 말했다.“네가 얼마나 복수를 원하고 있는지 알아. 하지만 우리는 냉정해야 해. 감정에 휘둘리면 안 돼.”“응, 알아.” 송우민이 고개를 끄덕였다.“너희 계획에 최선을 다해 도울게.”“좋아.”남설아가 미소 지었다.“우린 반드시 해낼 수 있을 거야.”세 사람은 구체적인 세부 사항을 더 논의한 후, 각자 맡은 일을 하기 위해 흩어졌다.연회가 끝난 후, 남설아는 사무실로 돌아와 밀린 서류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그때 강연찬이 따뜻한 우유 한 잔을 들고 들어왔다.“설아야, 우유 좀 마시고 일찍 쉬어.”강연찬이 우유를 건네며 말했다.“요즘 너무 무리하고 있어. 몸을 챙겨야지.”“응, 고마워, 오빠.”남설아가 우유를 받아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오빠도 일찍 쉬어.”“난 안 피곤해.” 강연찬이 말했다.“너 일 마칠 때까지 같이 있어 줄게.”“괜찮아, 오빠. 몸도 아직 완벽히 회복된 건 아니잖아. 푹 쉬는 게 좋아.”남설아가 말했다.“이 서류들은 나 혼자서도 처리할 수 있어.”“그래도 옆에 있어 줄게.”강연찬이 말했다.“너도 너무 늦지 않게 마무리하고 쉬어.”“응, 알겠어.”강연찬이 나간 뒤에도 남설아는 계속해서 일을 처리했다.그녀는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었다. 더 강해져야만 배서준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나은이를 위해 복수할 수 있었다.깊은 밤이 되어서야 남설아는 마침내 모든 서류를 정리했다.그녀는 기지개를 켜면서 창가로 가서 불빛이 번쩍이는 도시를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나은아, 보고 있어?”남설아는 혼잣말처럼 속삭였다.“엄마가 반드시 복수할 거야. 기다려줘.”다음 날, 남설아는 이른 아침부터 회사에 출근했다.그녀는 회사의 핵심 팀을 소집해 다음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여러분, 우리 그동안 좋은 성과를 거뒀지만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남설아가 말했다.“배건 그룹은 지금 위기에 처해 있지만
“선배...”남설아는 강연찬을 바라보며 가슴 깊이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꼈다.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송우민은 두 사람 사이의 다정한 분위기에 묘한 감정이 밀려왔다.기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마음 한편이 허전했다.연회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던 중, 남설아가 잔을 들어 모두와 함께 축하의 건배를 하려는 찰나 강연찬이 재빨리 손을 내밀어 그녀를 막았다.“설아야, 요즘 너무 무리했잖아. 술은 좀 줄여.”강연찬의 목소리엔 진심 어린 걱정이 담겨 있었다.남설아는 그의 따뜻한 눈빛을 마주하며 마음이 포근해졌다.하여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들고 있던 술잔을 내려놓고 대신 주스를 들었다.“알겠어. 선배 말 들을게.”남설아는 웃으며 말했다.그 광경을 본 송우민은 잔을 들고 조용히 다가왔다.“남설아, 내가 한 잔 올릴게.”송우민은 잔을 들며 말했다.“이번 성공, 정말 축하해.”남설아는 주스를 들고 잔을 맞댔다.“고마워, 우민아.”남설아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네 도움이 없었으면 이렇게 빠르게 결과를 얻진 못했을 거야.”“우린 친구잖아. 서로 도와야지.”송우민은 웃으며 말했다.“근데 정말 대단하다. 네가 이렇게 멋진 사람일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우민아, 너무 띄우지 마.”남설아는 조금 쑥스러워하며 웃었다.“운이 좋았을 뿐이야.”“그건 아니지.”송우민은 단호히 말했다.“너의 실력, 결단력, 배짱, 모두 내가 본 사람들 중 최고야.”“그 얘기는 그만하고...”남설아는 말을 돌리며 미소 지었다.“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해보자.”“좋아.”송우민이 고개를 끄덕였다.“남설아, 내 생각엔 지금이 기회야. 우리가 배건 그룹을 한 방에 무너뜨리고 배서준한테 확실하게 복수해야 해!”그의 눈빛에는 분노와 집념이 가득했다.마치 지금 당장이라도 배서준을 단죄하고 싶은 듯했다.그러나 강연찬은 조용히 눈살을 찌푸렸다.“난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해.”“왜?”송우민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지금 배건 그룹은 거의 끝장난 상태잖아. 이
“서준아, 나 너무 힘들어...”서유라는 침대에 누운 채 핏기없는 얼굴로 힘없이 중얼거렸다.“유라야, 어디 아파?”깜짝 놀란 배서준은 침대로 다가가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나도 잘 모르겠어. 그냥 온몸이 다 불편하고 아파...”서유라는 고통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얼른 의사 부를게!”배서준은 급히 몸을 일으키며 나가려 했다.“안 돼...”하지만 서유라가 급히 그의 손을 붙잡았다.“의사 부르지 마. 나 병원 가기 싫어...”“근데 지금 상태가... 그냥 둘 수 없잖아.”배서준은 여전히 불안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정말 괜찮아. 그냥... 네가 곁에 있어 주면 돼...”서유라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알겠어, 옆에 있을게.”그렇게 배서준은 서유라의 손을 살며시 잡고 말했다.“아무 데도 안 갈게. 여기서 널 지킬 거야.”“응...”서유라는 그의 품에 기대며 살짝 웃었고 그 입가엔 희미하지만 분명한 만족감이 스쳐 지나갔다.배서준은 서유라의 달콤한 말과 애정 어린 행동에 완전히 빠져 있었고 그녀의 진짜 속내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여전히 지극정성으로 돌보고 있었다.한편, 남설아의 세심한 간호 아래 강연찬의 몸은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다.그는 점차 회사 일에도 다시 참여하기 시작했고 남설아와 함께 나란히 전선에 서며 경영에 힘을 보탰다.그 사이 남설아는 잇따라 중요한 프로젝트들을 따내며 사업적으로 완전한 전성기를 맞이했다.그녀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성과가 이어졌고 배건 그룹은 연일 밀려 고전을 면치 못했다.이러한 성과를 기념하고 고생한 직원들을 격려하기 위해 남설아는 대규모의 축하 연회를 열기로 했다.연회는 고급 호텔에서 성대하게 개최되었고 현장은 화려하게 꾸며졌으며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직원들은 모두 정장을 차려입고 참석했고 모두의 얼굴엔 성취와 기쁨이 가득했다.그들은 서로 잔을 부딪치며 축하했고 성공의 기쁨을 나누었다.남설아는 우아한 드레스를 입고 한가운데에 서서 환한 미소를 머금은 채
천기준은 조용히 배서준의 현재 상황과 결정을 남설아에게 전했다.“대표님, 이제 배 대표님은 완전히 사방에서 외면당하고 있습니다.”천기준의 말투에는 깊은 체념과 실망이 묻어났다.“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그 여자 곁에 붙어 있으려 하네요.”“후, 그야말로 자업자득이죠.”남설아는 비웃듯 차가운 웃음을 흘렸다.“자기가 아직도 예전처럼 뭐든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다고 착각하나 본데 지금의 배서준은 그냥 여자한테 정신 팔린 멍청이일 뿐이에요.”“대표님,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천기준이 물었다.“지금처럼 그 사람이 회사에 없는 틈이야말로 우리가 움직일 절호의 기회입니다.”“당연히 병들었을 때는 끝장내는 게 기본이죠.”남설아의 눈빛엔 싸늘한 결의가 번뜩였다.“이젠 그 인간도 잃는 게 뭔지 뼈저리게 느껴봐야 해요.”“역시 대표님답습니다.”천기준이 말했다.“지시하신 대로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좋아요.”남설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한 듯 말했다.“기억해요. 이번엔 반드시 속전속결로, 숨 돌릴 틈도 주지 마요.”“네, 대표님!”남설아와 송우민이 손을 잡고 본격적으로 움직이자 배건 그룹의 위기는 한층 더 깊어졌다.남설아의 회사는 굶주린 늑대처럼 배건 그룹의 시장을 빠르게 잠식했고 원래 배건 그룹 쪽에서 따냈던 주요 프로젝트들마저 차지해버렸다.그 결과, 배건 그룹의 주가는 폭락했고 시가총액은 대폭 줄어들었으며 고객사들은 잇따라 이탈했고 사내 분위기는 혼란과 불안으로 가득 찼다.주주들의 손실은 상상을 초월했고 배서준에 대한 불만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배서준, 진짜 쓸모없네!”“회사를 이 지경으로 만들고도 어떻게 대표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지?”“당장 끌어내려야 해!”“그래! 더는 회사 말아먹게 놔두면 안 돼!”분노한 주주들의 외침은 마치 화산처럼 폭발해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천기준은 그 상황을 남설아에게 보고했고 남설아는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명령을 내렸다.“계속 감시해요. 그 둘이 무슨 짓을
천기준은 눈앞의 광경을 보며 깊은 무력감에 휩싸였다.소파에 앉은 배서준은 잔뜩 찡그린 얼굴로 고민에 잠겨 있었고 서유라는 그의 곁에 꼭 붙어 앉아 힘없이 기대어 있었다.“대표님, 이대로는 안 됩니다!”천기준의 목소리에는 다급함이 묻어 있었다.“지금 회사 상황 대표님도 아시잖아요. 더 늦기 전에 돌아가셔서 직접 수습하셔야 합니다. 이러다 진짜 배건 그룹이 무너집니다!”“근데 유라가 지금 몸이 안 좋아. 어떻게 이럴 때 내가 유라를 혼자 두고 가겠어.”배서준의 말투에는 깊은 피로와 한숨이 묻어 있었다.“하지만 대표님...”천기준이 설득을 이어가려던 순간, 서유라가 조용히 말을 가로막았다.“서준아, 천 비서님 탓하지 마.”서유라의 목소리는 마치 곧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나약했다.“회사 일이 중요한 건 나도 알아. 그냥 돌아가. 난 괜찮아.”“유라야, 무슨 소리야.”배서준은 그녀를 안쓰럽게 바라보며 말했다.“지금 제일 중요한 건 네 건강이야. 내가 어떻게 널 놔두고 가.”“그래도...”서유라의 눈가엔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듯한 눈물이 맺혀 있었다.“내가 네 일에 방해가 되는 것 같아서 미안해.”“바보야, 너 하나보다 더 중요한 게 어디 있어.”배서준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속삭였다.“회사 일은 내가 방법을 찾을게.”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천기준은 속으로 실소를 터뜨렸다.‘정말 기가 막히네. 내가 본 배 대표님 중에 제일 한심한 버전이야. 예전엔 그렇게 단호하고 냉정했던 사람이 이젠 여자가 곁에만 있으면 정신줄을 놓고 있잖아.’“대표님, 진짜 더는 미룰 수 없습니다.”천기준은 다시 입을 열었다.“주주들은 이미 인내심의 한계에 도달했어요. 계속 이렇게 계시면 정말로 해임당합니다!”“알아, 나도 알아.”배서준은 초조한 듯 머리를 감싸 쥐었다.“그렇지만 유라가...”“서준아, 돌아가.”서유라가 조용히 말했다.“나 혼자서도 괜찮아.”“유라야, 너 지금...”배서준은 놀란 눈으로 서유라를 바라봤다.“정말
“네.”남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명심해요. 이 일은 최대한 시끄럽게 만들어요. 배서준이 모두의 표적이 되도록 말이에요.”“알겠습니다, 대표님. 바로 처리하겠습니다.”천기준은 고개를 숙이고 자리를 떠났다.남설아는 사무실에 홀로 남아 싸늘한 눈빛으로 창밖을 바라봤다.‘배서준, 당신이 의리를 저버렸으니 나도 더는 자비를 베풀지 않을 거야.’곧이어 배서준이 리조트에서 서유라와 밀회를 즐기고 있다는 소문이 각종 언론을 통해 퍼지기 시작했다.여론은 순식간에 들끓었고 배서준의 이미지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무능하다’, ‘책임감 없다’는 비난이 쏟아졌다.“배서준, 진짜 너무하네!”“회사는 지금 무너지고 있는데 밖에서 여자나 만나고 앉았어?”“이런 사람을 어떻게 대표 자리에 앉혔는지 이해가 안 가.”“저 사람한테 회사를 맡긴 게 큰 실수였지.”“이참에 그냥 물러나게 해야 돼!”결국 회사는 긴급 주주총회를 소집했다.얼마 전, 배서준이 자신의 자금을 담보로 위기를 넘기겠다고 한 뒤 감쪽같이 사라졌고,오히려 남설아가 한발 물러나 시간을 벌어준 덕분에 간신히 버텨온 상황이었다.하지만 정작 의사결정을 할 실권자는 자리에 없고 남은 이사들은 완전한 권한도 없는 상태라 회사 운영은 갈수록 마비되어가고 있었다.거기에 이번 스캔들까지 터지자 회의장은 아수라장이 됐다.“이게 지금 어느 땐데 여자를 챙겨?! 본인 위치도 잊었나?!”“천 비서님, 배 대표님 떠나기 전에 천 비서님한텐 아무 말도 안 하고 갔어요?”천기준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사실 함께 일한 지 오래됐지만 배서준이 모든 걸 공유하진 않았다.“지금 당장 리조트로 가서 배 대표님 데려와요!”한 이사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어떻게든 끌고 와야 해요. 회사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요!”“네, 이사님. 바로 다녀오겠습니다.”천기준은 피곤함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답했다.‘정신적으로 남 대표님한테 매일 시달리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그 두 사람을 만나러 내가 가야 한다고? 이게 대체 무
“서준아, 제발 이번만은 내 말 들어줘, 응? 그냥 나를 위해서 우리 미래를 위해서라고 생각하고... 잠깐이라도 푹 쉬면 안 돼?”서유라는 눈물을 글썽이며 배서준을 올려다봤다.그 애처로운 눈빛에 배서준의 마음도 조금씩 흔들렸다.“알겠어, 네 말대로 할게.”결국 배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서유라는 곧장 환하게 웃으며 배서준을 꼭 껴안았다.“역시 나를 제일 아껴주는 사람은 서준이 너야.”배서준은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안아주었지만 눈빛은 복잡하기만 했다.회사의 상황은 이미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남설아와 송우민의 공격은 날이 갈수록 거세졌고 배건 그룹의 주가는 연일 하락 중이었다.시장은 빠르게 무너지고 있었고 내부는 불안과 불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이대로라면 배건 그룹은 정말 그의 손에서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서유라의 모습을 보면 차마 그녀 곁을 떠날 수가 없었다.배서준의 가슴속은 끝없는 갈등과 번민으로 뒤엉켰고 도대체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 알 수 없었다.그때, 그의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이번엔 천기준이었다.배서준은 잠시 고민하다가 전화를 받았다.“배 대표님, 도대체 언제 돌아오실 겁니까?”천기준의 목소리엔 조급함과 절박함이 가득 묻어났다.“지금 회사는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에요. 주주들도 다 대표님만 기다리고 있습니다!”“나, 나도 지금...”배서준이 무언가 말하려는 순간, 옆에 있던 서유라가 손을 뻗어 전화기를 낚아챘다.한편, 천기준은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통화 종료’ 소리에 분노를 억누르지 못했다.그는 핸드폰을 책상 위에 내리찍을 듯 내려놓으며 이를 악물었다.“이 서유라란 여자는 정말 재앙이라니까!”천기준은 이를 갈듯 말했다.“배 대표님도 왜 저 여자 말만 듣는 건지... 지금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도 모르나?”곁에 있던 다른 비서도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천 비서님, 우리 이대로 괜찮을까요? 주주들한테 뭐라고 설명해야 하죠?”“설명할 방법이 어딨어요...”천기준은 허탈하게 웃으며 고
“네, 송 대표님!”모두가 힘찬 목소리로 외쳤고 회의실 안은 결의에 찬 열기로 가득 찼다.송우민의 지휘 아래 남설아의 회사는 굶주린 늑대처럼 배건 그룹의 시장을 거침없이 잠식해 들어갔다.배건 그룹의 주가는 연일 하락했고 시가총액은 크게 줄어들며 내부 분위기는 극도로 혼란스러워졌다.흩어진 조직력에 동요하는 임직원들 사이로 불만이 번졌고 결국 주주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배서준에게 줄줄이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배 대표님, 도대체 언제 돌아오실 겁니까?”한 주주는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지금 회사 상황이 완전히 개판이에요! 더 늦으면 정말 끝장납니다!”“맞아요, 대표님! 이대로 가다간 정말 회복 불가능합니다!”또 다른 주주도 강하게 덧붙였다.“지금 당장 돌아와서 진두지휘하셔야 합니다!”끊임없이 쏟아지는 전화에 배서준은 머리를 싸매고 이마를 짚었다.그 역시 당장 회사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문제는 서유라였다.그녀는 절대 그를 보내려 하지 않았다.“서준아, 가지 마...”서유라는 창백한 얼굴로 침대에 누운 채 배서준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나 너무 힘들어. 옆에 있어 줘야 버틸 수 있어.”“유라야, 네가 힘든 거 알아. 하지만 회사도 지금...”배서준은 난처한 얼굴로 말을 흐렸다.“몰라! 나한테 중요한 건 네가 곁에 있어 주는 거야! 너 없이 나는 단 하루도 못 버텨!”서유라는 울먹이며 소리를 질렀다.“그런 말 하지 마.”배서준은 가슴 아프다는 듯 그녀를 껴안았다.“널 내버려 두고 갈 수 없지. 하지만 회사 쪽 상황도 정말 더는 미룰 수가 없어.”“결국 날 버릴 거지? 날 두고 가겠다는 거잖아!”서유라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떼를 쓰며 말했다.“내 몸은 누가 챙겨? 나 혼자선 아무것도 못 해... 넌 가면 안 돼!”“유라야, 그러지 마.”결국 배서준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좋아, 당분간은 여기 있을게. 회사 일은 전화랑 화상회의로 처리할 테니까 괜찮지?”“진짜지?”서유라는 눈물로 젖은 눈을 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