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설아는 진지한 눈빛으로 송우민을 바라보며 진심 어린 목소리로 고맙다고 말했다.송우민은 당황스러웠다. 그동안 정성껏 판을 짜고 오래 준비해온 끝에 돌아온 게 고작 ‘고맙다’는 한마디라니.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는 얼굴을 찌푸리며 남설아를 바라봤다.“설마 진짜로 내가 너 위해서 그런 줄 아는 건 아니겠지?”“그게 뭐든 상관없어. 어쨌든 네 덕분에 진실을 알게 됐잖아. 그거면 됐어.”남설아는 그렇게 말하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너도 나랑 똑같잖아. 넌 부모님 때문에, 난 내 딸 때문에... 우리 둘 다 가슴속에 깊은 원한을 안고 살아. 그리고 우린 공교롭게도 적도 같아.”이렇게 말하는 그녀의 얼굴엔 묘한 열기가 돌기 시작했다. 어떤 감정이 끓어오르는 듯한 거의 흥분에 가까운 기색이었다.그런 모습을 보며 송우민은 자신이 사람을 잘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역시 이 여자야. 나랑 같이 가야 할 사람은 바로 이런 사람이어야 해.’이제 막 입을 떼려던 순간 누군가 훅 끼어들었다.강연찬이 두 사람 사이에 섰다. 이쪽저쪽을 번갈아 보던 그의 얼굴엔 어둠이 드리워져 있었다.곧장 앞으로 한 걸음 나와 그는 남설아 앞을 막아서더니 잔뜩 찌푸린 눈썹으로 송우민을 노려봤다.“내가 너한테 했던 말 다 귓등으로 들은 거냐?”“내가 누구를 만나든 그건 네가 참견할 일이 아니지 않나? 강연찬, 너 지금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송우민은 팔짱을 낀 채 등을 의자에 기대며 싸늘한 눈빛으로 강연찬을 바라봤다. 그를 전혀 무서워하지도, 대단하게 여기지도 않는 눈빛이었다.“선배, 괜찮아. 걱정 마. 이 사람 나한테 해코지한 거 없어.”남설아는 두 사람이 여기서 싸우기라도 할까 봐 불안했다.송우민은 그렇다 쳐도 강연찬은 지금 회사가 가장 중요한 시기라 어떤 말썽도 생기면 안 됐다. 일이 커지기라도 하면 회사 이미지에 큰 타격이 생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지금 너무 아파서 그러는데 선배가 데려다주면 안 돼?”그 말을 들은 강연찬의 표정이 단번에 달라졌다
강연찬은 한쪽에 서서 남설아가 이렇게 힘들어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조차 몰랐다.이 아이는 남설아에게 늘 마음속 응어리였다. 사실 지금 이렇게 살아서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전부 이 아이 덕분이었다. 이 아이가 아니었다면 아마 정신이 무너져도 벌써 무너졌을 것이다.“나은아, 네가 떠나기 전에 엄마한테 말했지. 엄마 이제 잘 살아야 한다고. 엄마도 그러겠다고 약속했잖아. 그런데 미안해, 엄마 그 약속 못 지킬 것 같아.”“너를 죽게 만든 건 바로 저 사람이야. 우리를 함정에 빠뜨린 것도 저 사람이야. 그런데 모든 죄를 우리한테 뒤집어씌웠어. 나은아, 우리 이렇게 조용히 있을 수는 없어. 엄마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나은아, 미안해. 정말 미안해.”아이는 세상을 떠난 지 꽤 되었지만 그 아이만 떠올리면 남설아의 가슴은 여전히 찢어질 듯 아팠다.남설아는 그냥 배나은의 묘비에 기대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눈물만이 눈가를 따라 천천히 흘러내렸다.그 모습은 금방이라도 산산이 무너질 것 같았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강연찬은 도무지 화를 낼 수가 없었다. 남은 감정은 오직 안쓰러움뿐이었다.그는 조용히 그녀 곁에 앉아 조심스레 손을 잡아주었다. 그녀의 슬픔을 방해하지 않았다. 그저 함께 슬퍼하고 그녀의 고통을 안타까워하며 마음속으로 배서준에게 반드시 뼈아픈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다짐했다.어느새 해가 져 버리고 남설아는 단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끝내 더는 앉아 있을 힘도 없이 그녀는 그대로 기절해버렸다.“설아야! 왜 그래!”“남설아!”깜짝 놀란 강연찬은 그녀를 얼른 안아 들고 정신없이 산 아래로 내려가 쉬지 않고 달려 병원에 도착했다.의사는 그녀를 진찰하자마자 버럭 소리를 질렀다.“내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어요? 이 환자는 지금 상태가 위험해서 절대 퇴원하면 안 된다고! 그런데 이 사람을 데리고 하루 종일 밖에 있었다고요? 갈비뼈가 부러진 게 얼마나 아픈 건지는 알기나 해요? 통증
“어떻게 괜찮겠어. 고통 때문에 기절한 거잖아.”강연찬은 안쓰러움이 가득한 얼굴로 남설아를 바라봤다.“이제 그만 이렇게 스스로를 괴롭혀. 제발, 자신을 이렇게 힘들게 하지 마.”“설아야, 네가 원하는 거 뭐든지 다 해줄게. 그러니까 제발, 제발 이러지 마. 지금 네가 괴롭히는 건 너 하나만이 아니야. 나도 함께 무너져. 네가 어떻게 하든 나은이는 돌아오지 않아. 하늘에서 너 이러는 모습 보면 그 아이도 얼마나 가슴 아파하겠어.”강연찬은 알고 있었다. 지금 남설아의 눈에는 자신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오히려 자기에게 벌을 주듯, 자신을 망가뜨리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걸.그녀는 자신이 딸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이런 식으로라도 속죄하려는 것이었다.그 말을 들은 남설아는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나은이는 이 세상에서 제일 착하고 제일 예쁜 아이였어. 내 딸이었어. 그런데 내가 엄마라는 사람이, 그 아이를 지켜주지 못했어.”“그 아이는 그냥 어린애였어. 나를 그렇게 사랑했던 아이였어. 누구보다도 순수하고 아무 잘못도 없었던 아이였는데 왜 그런 일을 당해야 했던 거야?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가 있어?”“선배, 내가 얼마나 원망하고 있는지 알아?”남설아는 강연찬의 손을 꼭 잡고 더 참지 못하고 오열했다.아이를 떠나보낸 뒤로 그녀는 매일 눈물로 밥을 삼켰다. 일에 몰두하면서 조금씩 나아지는 듯했지만 지금은 다시 그때로 돌아가 버린 것 같았다.그녀의 그런 모습을 보며 강연찬은 깊게 숨을 내쉬고 이를 악물었다.“설아야, 말해줘. 송우민이 너한테 무슨 말 했어?”“아무것도 아니야. 서유라가 말해준 거야. 나은이의 존재 자체가... 애초부터 계략이었다고.”남설아는 코웃음을 치며 비웃듯 말했다.그동안 배서준은 아이 문제로 줄곧 그녀를 탓해왔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그 아이가 없었더라면 그는 지금 대표 자리에 앉을 수 있었을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서준은 남설아를 탓하고 혐오했다.그 잘난 듯한 얼굴을 떠올리기만 해도 남설아는 토할 것
“다른 남자 앞에선 그렇게 해맑게 웃더니 나 앞에선 꼭 죽을 상이더라. 대체 너 내 아내 맞아? 아니면 저 인간 마누라야?”배서준은 참다못해 남설아의 손목을 거칠게 움켜잡고 소리쳤다.강연찬은 그대로 앞으로 나아가 그의 손을 확 내치며 말렸다.“설아한테서 손 떼요. 그쪽이 무슨 자격으로 여기서 이런 말을 해요?”“우린 법적으로 부부예요!”배서준은 또다시 혼인신고를 내세워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하려 했다.하지만 이 병실 안에서 그 말은 그저 우스꽝스러운 농담에 불과했다.남설아는 그 뻔뻔한 얼굴을 보며 입을 열었다.“서준 씨, 우리 이혼해요.”“그래. 그렇게까지 나랑 이혼하고 싶은 게 결국 저 자식 때문이지? 대학교 때부터 쟤 좋아했지? 더러운 년, 싸가지 없는 년!”배서준은 이를 바득바득 갈며 남설아를 노려봤다.그는 최근 시간 동안 두 사람의 과거를 샅샅이 뒤졌고 대학 시절부터 두 사람 사이에 묘한 감정이 오갔다는 것까지 전부 알고 있었다.이제 두 사람만 같이 있는 걸 보기만 해도 머리 꼭대기가 다 녹아버리는 기분이었다.그 질투와 분노가 이글거리던 순간, 남설아는 그 모습을 보다 못해 갑자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러고는 담담하게 말했다.“맞아요. 우리 지금 만나요. 그게 어때서요? 당신이랑 나, 이미 부부라는 건 껍데기일 뿐이잖아요. 나은이는 죽었고 당신은 날 사랑하지도 않잖아요. 우리가 굳이 붙어있을 이유가 뭐가 있어요?”그 말에 배서준의 얼굴은 더더욱 시커멓게 굳었다.“또 애야? 또 그깟 애 얘기야? 겨우 여자애 하나 때문에 그렇게까지...”“쾅!”강연찬은 더는 참지 못하고 그대로 주먹을 날렸다.그 주먹이 정확히 배서준의 얼굴을 강타했다.배서준은 잠깐 멍하니 있더니 곧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강연찬을 쳐다보았다.그러고는 그대로 달려들며 병실 안에서 두 사람은 격하게 뒤엉켰다.“배서준, 난 네가 그저 남편이랑 아빠로서 자격이 없는 줄 알았어. 근데 아니야. 넌 사람으로서도 실격이야!”“그냥 죽어버려!”강연찬은 이를
강연찬은 조심스럽게 남설아를 부축해 병실로 돌아왔다.깨질듯한 소중한 보물 다루듯 움직임 하나하나마다 조심스러웠다.이불을 잘 덮어준 뒤 그녀는 머리맡 조명의 밝기를 다시 조절했다.희미한 노란 불빛이 남설아의 창백한 얼굴에 스며들자 그녀는 더욱 연약하고 가냘퍼 보였다.“너는... 참 고집이 세.”강연찬은 부드럽게 말하며 타박했지만 그 안에는 걱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배서준 같은 쓰레기한테 왜 그렇게 신경을 써? 전혀 그럴 가치 없어.”남설아는 애써 웃었지만 눈빛은 여전히 어두웠다.“선배, 나 괜찮아. 걱정하지 마.”괜찮다고 말하면서도 꽉 쥐어진 주먹과 떨리는 어깨가 그녀의 거짓말을 대신 증명하고 있었다.그 모습을 보며 강연찬의 마음은 더욱 아려왔다.겉으론 조용하고 평온해 보여도 그녀 마음속엔 끝없이 소용돌이치는 고통이 있다는 걸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배나은에 대한 진실들, 그 하나하나가 날 선 칼처럼 그녀 가슴에 꽂혀 있었다.그 고통은 결코 말로 다 할 수 없었다.“설아야, 네 마음 아픈 거 다 알아.”강연찬은 그녀의 손을 잡고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하지만 기억해. 넌 혼자가 아니야. 내가 있어. 언제까지나 네 곁에 있을 거야. 널 지지하고 너 대신 반드시 정의를 바로 세울 거야.”그의 낮고 따뜻한 목소리는 마치 마법처럼, 남설아의 불안하고 뒤엉킨 마음을 서서히 진정시켜주었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그의 깊은 눈을 바라봤다.그 안에는 걱정과 다정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선배...”남설아의 목소리는 약간 떨리고 있었다.“고마워.”“바보야, 우리 사이에 뭘 그런 말을 해.”강연찬은 그녀의 코끝을 장난스럽게 톡 건드리며 웃었다.“우린 그런 사이 아니었어?”잠시 말을 멈추던 그는 이윽고 뜨거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설아야, 사실 나... 나 너 좋아했어. 대학 때부터.”“지금 네 마음속엔 나은이밖에 없고 복수밖에 없는 거 알아. 그래도 난 기다릴게. 네가 모든 걸 내려놓고 다시 시작할 수 있을 때까지.
“대표님, 걱정 마세요. 이미 전부 다 준비해뒀어요. 일이 끝나면 남 대표님이 준 돈 가지고 조용히 사라질게요. 다시는 안 돌아올 겁니다.”남설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 잘 되길 바라요.”자료를 건네받은 남설아는 가장 먼저 강연찬에게 연락했다.그리고 USB를 직접 전해주며 자신이 준비한 개선안을 함께 설명했다.“선배, 이게 배건 그룹 자료야. 내가 자세히 분석해봤는데 겉보기엔 완벽해 보이지만 실제론 문제투성이야. 특히 원가 관리랑 사후 유지 쪽은 완전히 구멍이 뚫려 있어. 말 그대로 밑 빠진 독이야.”강연찬은 USB를 받아들며 그녀의 분석을 진지하게 들었다.듣는 내내 놀람과 감탄이 이어졌다.이 짧은 시간 안에 배건 그룹의 계획서를 이 정도로 파악하고 거기다 실질적인 개선안까지 만들어낸 남설아의 능력에 그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설아야, 정말 대단하다!”강연찬은 진심으로 감탄했다.“이런 문제들은 나도 전혀 몰랐어. 네가 짚어주지 않았으면 큰코다칠 뻔했어.”“과찬이야.”남설아는 겸손하게 웃었다.“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걸 했을 뿐이야. 지금 우리는 이 프로젝트에서 충분히 승산이 있어.”“맞아!”강연찬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이 자료에 네가 제시한 개선안까지 더해지면 우리 쪽이 무조건 이겨. 배서준을 반드시 이길 수 있어!”그 뒤로 강연찬은 팀을 이끌고 밤낮없이 일에 매달렸다.남설아의 조언을 바탕으로 기존 제안을 전면적으로 보완하고 최적화해 최대한 완성도 높은 안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한편, 배서준 쪽에서도 남설아와 강연찬 사이가 심상치 않다는 걸 감지했다.질투와 분노가 동시에 폭발하며 그는 광기에 가까운 집착을 드러내기 시작했다.그는 송우민에 대한 조사를 더욱 강하게 밀어붙였다.“다 뒤져! 송우민이라는 놈, 뿌리까지 다 파헤쳐! 그리고 남설아랑 어떤 관계인지도 전부 알아 와!”배서준은 책상을 쾅 내리치며 천기준에게 소리쳤다.“감히 내 눈을 속이고 딴 남자랑 엮이다니... 내가 절대 그냥
서유라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졌다.“도현아, 그날 널 이렇게 만든 사람이 누군지 기억하지?”“당연히 기억하지.” 서도현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송우민 그 개자식,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그리고 남설아.” 서유라가 덧붙였다.“그 여자만 아니었으면 송우민도 너한테 손대지 않았을 거야.”“누나, 나한테 뭘 하라는 거야?”서도현이 서유라를 바라보며 물었다.“내가 말해주는 대로 해.”서유라가 서도현의 귀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낮은 목소리로 몇 마디를 속삭였다.서도현은 말을 들은 뒤 표정이 확 변했다.“누나, 이건... 이게 진짜 될까?”“걱정하지 마. 다 내가 책임질게.”서유라는 서도현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내 말대로만 하면 남설아는 반드시 망가질 거야.”서도현은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누나 말대로 할게.”서유라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그리고 병실을 나서며 송우민에게 전화를 걸었다.“여보세요, 우민 씨? 저 서유라예요.”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송우민의 목소리는 차가웠다.“무슨 일이야?”“그쪽이랑 한번 만나서 협력에 관해 얘기하고 싶어요.”서유라가 말했다.“협력? 우리 사이에 무슨 협력이 더 필요하지?” 송우민이 비웃듯 말했다.“필요하죠.”서유라가 담담하게 말했다.“그쪽이 어떻게든 배서준을 끌어내리고 싶어 한다는 거 알아요. 그리고 난 그걸 도와줄 수 있어요.”“오? 그래?”송우민이 흥미가 생긴 듯 말했다.“그럼 어떤 협력인지 말해봐.”“전화로는 힘들어요. 직접 얘기해요.”서유라는 덧붙였다.“내일 오전 10시에 블루스 카페에서 봐요.”전화를 끊은 후, 서유라는 입꼬리를 천천히 올리고 싸늘하게 웃었다.그녀는 송우민이 반드시 나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그는 배서준을 쓰러뜨릴 기회를 너무나도 갈망하고 있었고 자신은 그에게 가장 알맞은 미끼였다.다음 날 오전, 서유라는 약속한 시각에 맞춰 블루스 카페에 도착했다.그녀는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조용히
“다신 나한테 연락하지 마. 난 너 같은 인간이랑 협력할 생각 없어. 넌 남설아 발끝만큼도 못 해.”그 말을 남긴 채 송우민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카페를 나갔다.그의 거절에 서유라는 뺨을 세게 맞은 듯한 충격을 느꼈다.그녀가 공들여 준비한 협력 제안은 그가 보기에 하찮기 그지없었고 심지어 과거의 더러운 짓거리들보다도 더 부질없는 것으로 취급되었다.분노와 수치심이 독사처럼 서유라의 마음을 쥐어짰다.“송우민, 넌 반드시 후회하게 될 거야.”서유라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날 거절했다고 날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아? 꿈도 꾸지 마!”서유라가 벌떡 일어나자 의자가 거칠게 밀려나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하지만 서유라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대로 카페를 떠났다.그녀는 한 사설 탐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남설아랑 송우민 둘의 관계를 전부 조사해. 언제부터 얽혔는지, 어떻게 엮였는지, 그리고 둘의 약점, 더러운 비밀까지도 다 알아봐.”전화를 끊은 후, 서유라의 얼굴은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져 있었다. 이제 더는 우아함도 체면도 필요 없었다.그녀의 머릿속에는 오직 하나, 복수였다. 남설아, 송우민, 그리고 그녀를 불편하게 만든 모든 인간에게 모두 복수할 것이다.한편, 배서준 역시 서유라와 송우민의 만남 소식을 들었다. 그는 핸드폰에 담긴 사진을 바라보았다.사진 속, 서유라는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카페를 나서고 있었다. 그는 미간을 깊게 찌푸렸다.‘이 여자가 또 무슨 짓을 꾸미는 거지?’그는 서유라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남설아와 관련된 일이라면 절대 가만히 있을 여자가 아니었다.“남설아를 계속 주시해.”배서준은 천기준에게 전화를 걸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특히 송우민이랑 엮이는 부분은 하나도 놓치지 말고.”“네, 대표님.”천기준은 곧장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한숨을 내쉬었다.대표님이 요즘 이상하다. 남설아가 이혼을 언급한 후로 점점 더 날카롭고 이해할 수 없는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다.그 시각 병실에 있
그는 줄곧 자신과 남설아는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 생각해왔지만 지금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강연찬이 회복되자 모두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고 특히 남설아는 그동안 불안했던 마음을 비로소 내려놓을 수 있었다.한편, 멀리 리조트에 머무르고 있던 서유라는 무척 불안하고 초조했다.서도현은 자신이 보낸 사람들이 전부 체포되어 한 명도 빠짐없이 구속되었다는 정보를 이미 입수했다. 남설아가 다치지 않은 것도 모자라 다친 사람마저 회복되었으니 그동안 벌인 모든 일이 헛수고가 되고 만 것이다.“뭐라고? 강연찬이 회복했다고?”서유라의 목소리는 고막을 찢을 듯 날카로웠다.“그 사람들이 엄청 대단하다고 하지 않았어? 어떻게 여자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남설아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여자잖아. 그런데도 그 여자 하나 못 건드려서 이 지경이 된 거야? 돈을 그렇게 많이 받고는 뭐 하겠다는 거야? 적은 돈이 아니었잖아.”서도현은 배서준의 감시를 피해 몰래 리조트 안으로 숨어들어와 서유라와 만났다.그의 얼굴엔 짜증이 가득했고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누나, 나도 최선을 다했어. 그놈들이 이런 일 하나도 제대로 못 할 만큼 이렇게 쓸모없을 줄은 누가 알았겠어. 그래도 다행인 건 그놈들이 입이 무지하게 무겁다는 거야. 지금껏 한마디도 안 했어. 나도 계속 지켜볼 거니까 우리한테 불똥이 튀게 두진 않을 거야.”“쓸모없는 놈들! 전부 다 쓸모없어!”서유라는 온몸을 떨며 분노했다. 그녀는 탁자 위에 놓인 찻잔을 집어 들어 바닥에 힘껏 내던졌다.“이제 어떡해? 강연찬이 회복됐다고? 혹시 이 일을 남설아한테 말하면 어쩌려고? 남설아가 알게 되면, 나는...”“누나, 진정해봐.”서도현은 급히 달래며 말했다.“강연찬이 회복됐다고 해도 우리가 한 짓이라는 증거는 없어. 게다가 그 킬러들은 내가 따로 구한 사람들이라서 우리랑 직접적인 연결 고리는 없어.”“그래도...”서유라는 여전히 불안했다.“남설아 그 여자는 워낙 교묘해서 무슨 단서라도 찾아내게 되면 우리는 순식간에
“알겠어.” 송우민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너희가 그렇게 말한다면 따를게.”“우민아, 고마워.” 남설아가 말했다.“네가 얼마나 복수를 원하고 있는지 알아. 하지만 우리는 냉정해야 해. 감정에 휘둘리면 안 돼.”“응, 알아.” 송우민이 고개를 끄덕였다.“너희 계획에 최선을 다해 도울게.”“좋아.”남설아가 미소 지었다.“우린 반드시 해낼 수 있을 거야.”세 사람은 구체적인 세부 사항을 더 논의한 후, 각자 맡은 일을 하기 위해 흩어졌다.연회가 끝난 후, 남설아는 사무실로 돌아와 밀린 서류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그때 강연찬이 따뜻한 우유 한 잔을 들고 들어왔다.“설아야, 우유 좀 마시고 일찍 쉬어.”강연찬이 우유를 건네며 말했다.“요즘 너무 무리하고 있어. 몸을 챙겨야지.”“응, 고마워, 오빠.”남설아가 우유를 받아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오빠도 일찍 쉬어.”“난 안 피곤해.” 강연찬이 말했다.“너 일 마칠 때까지 같이 있어 줄게.”“괜찮아, 오빠. 몸도 아직 완벽히 회복된 건 아니잖아. 푹 쉬는 게 좋아.”남설아가 말했다.“이 서류들은 나 혼자서도 처리할 수 있어.”“그래도 옆에 있어 줄게.”강연찬이 말했다.“너도 너무 늦지 않게 마무리하고 쉬어.”“응, 알겠어.”강연찬이 나간 뒤에도 남설아는 계속해서 일을 처리했다.그녀는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었다. 더 강해져야만 배서준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나은이를 위해 복수할 수 있었다.깊은 밤이 되어서야 남설아는 마침내 모든 서류를 정리했다.그녀는 기지개를 켜면서 창가로 가서 불빛이 번쩍이는 도시를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나은아, 보고 있어?”남설아는 혼잣말처럼 속삭였다.“엄마가 반드시 복수할 거야. 기다려줘.”다음 날, 남설아는 이른 아침부터 회사에 출근했다.그녀는 회사의 핵심 팀을 소집해 다음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여러분, 우리 그동안 좋은 성과를 거뒀지만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남설아가 말했다.“배건 그룹은 지금 위기에 처해 있지만
“선배...”남설아는 강연찬을 바라보며 가슴 깊이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꼈다.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송우민은 두 사람 사이의 다정한 분위기에 묘한 감정이 밀려왔다.기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마음 한편이 허전했다.연회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던 중, 남설아가 잔을 들어 모두와 함께 축하의 건배를 하려는 찰나 강연찬이 재빨리 손을 내밀어 그녀를 막았다.“설아야, 요즘 너무 무리했잖아. 술은 좀 줄여.”강연찬의 목소리엔 진심 어린 걱정이 담겨 있었다.남설아는 그의 따뜻한 눈빛을 마주하며 마음이 포근해졌다.하여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들고 있던 술잔을 내려놓고 대신 주스를 들었다.“알겠어. 선배 말 들을게.”남설아는 웃으며 말했다.그 광경을 본 송우민은 잔을 들고 조용히 다가왔다.“남설아, 내가 한 잔 올릴게.”송우민은 잔을 들며 말했다.“이번 성공, 정말 축하해.”남설아는 주스를 들고 잔을 맞댔다.“고마워, 우민아.”남설아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네 도움이 없었으면 이렇게 빠르게 결과를 얻진 못했을 거야.”“우린 친구잖아. 서로 도와야지.”송우민은 웃으며 말했다.“근데 정말 대단하다. 네가 이렇게 멋진 사람일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우민아, 너무 띄우지 마.”남설아는 조금 쑥스러워하며 웃었다.“운이 좋았을 뿐이야.”“그건 아니지.”송우민은 단호히 말했다.“너의 실력, 결단력, 배짱, 모두 내가 본 사람들 중 최고야.”“그 얘기는 그만하고...”남설아는 말을 돌리며 미소 지었다.“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해보자.”“좋아.”송우민이 고개를 끄덕였다.“남설아, 내 생각엔 지금이 기회야. 우리가 배건 그룹을 한 방에 무너뜨리고 배서준한테 확실하게 복수해야 해!”그의 눈빛에는 분노와 집념이 가득했다.마치 지금 당장이라도 배서준을 단죄하고 싶은 듯했다.그러나 강연찬은 조용히 눈살을 찌푸렸다.“난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해.”“왜?”송우민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지금 배건 그룹은 거의 끝장난 상태잖아. 이
“서준아, 나 너무 힘들어...”서유라는 침대에 누운 채 핏기없는 얼굴로 힘없이 중얼거렸다.“유라야, 어디 아파?”깜짝 놀란 배서준은 침대로 다가가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나도 잘 모르겠어. 그냥 온몸이 다 불편하고 아파...”서유라는 고통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얼른 의사 부를게!”배서준은 급히 몸을 일으키며 나가려 했다.“안 돼...”하지만 서유라가 급히 그의 손을 붙잡았다.“의사 부르지 마. 나 병원 가기 싫어...”“근데 지금 상태가... 그냥 둘 수 없잖아.”배서준은 여전히 불안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정말 괜찮아. 그냥... 네가 곁에 있어 주면 돼...”서유라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알겠어, 옆에 있을게.”그렇게 배서준은 서유라의 손을 살며시 잡고 말했다.“아무 데도 안 갈게. 여기서 널 지킬 거야.”“응...”서유라는 그의 품에 기대며 살짝 웃었고 그 입가엔 희미하지만 분명한 만족감이 스쳐 지나갔다.배서준은 서유라의 달콤한 말과 애정 어린 행동에 완전히 빠져 있었고 그녀의 진짜 속내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여전히 지극정성으로 돌보고 있었다.한편, 남설아의 세심한 간호 아래 강연찬의 몸은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다.그는 점차 회사 일에도 다시 참여하기 시작했고 남설아와 함께 나란히 전선에 서며 경영에 힘을 보탰다.그 사이 남설아는 잇따라 중요한 프로젝트들을 따내며 사업적으로 완전한 전성기를 맞이했다.그녀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성과가 이어졌고 배건 그룹은 연일 밀려 고전을 면치 못했다.이러한 성과를 기념하고 고생한 직원들을 격려하기 위해 남설아는 대규모의 축하 연회를 열기로 했다.연회는 고급 호텔에서 성대하게 개최되었고 현장은 화려하게 꾸며졌으며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직원들은 모두 정장을 차려입고 참석했고 모두의 얼굴엔 성취와 기쁨이 가득했다.그들은 서로 잔을 부딪치며 축하했고 성공의 기쁨을 나누었다.남설아는 우아한 드레스를 입고 한가운데에 서서 환한 미소를 머금은 채
천기준은 조용히 배서준의 현재 상황과 결정을 남설아에게 전했다.“대표님, 이제 배 대표님은 완전히 사방에서 외면당하고 있습니다.”천기준의 말투에는 깊은 체념과 실망이 묻어났다.“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그 여자 곁에 붙어 있으려 하네요.”“후, 그야말로 자업자득이죠.”남설아는 비웃듯 차가운 웃음을 흘렸다.“자기가 아직도 예전처럼 뭐든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다고 착각하나 본데 지금의 배서준은 그냥 여자한테 정신 팔린 멍청이일 뿐이에요.”“대표님,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천기준이 물었다.“지금처럼 그 사람이 회사에 없는 틈이야말로 우리가 움직일 절호의 기회입니다.”“당연히 병들었을 때는 끝장내는 게 기본이죠.”남설아의 눈빛엔 싸늘한 결의가 번뜩였다.“이젠 그 인간도 잃는 게 뭔지 뼈저리게 느껴봐야 해요.”“역시 대표님답습니다.”천기준이 말했다.“지시하신 대로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좋아요.”남설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한 듯 말했다.“기억해요. 이번엔 반드시 속전속결로, 숨 돌릴 틈도 주지 마요.”“네, 대표님!”남설아와 송우민이 손을 잡고 본격적으로 움직이자 배건 그룹의 위기는 한층 더 깊어졌다.남설아의 회사는 굶주린 늑대처럼 배건 그룹의 시장을 빠르게 잠식했고 원래 배건 그룹 쪽에서 따냈던 주요 프로젝트들마저 차지해버렸다.그 결과, 배건 그룹의 주가는 폭락했고 시가총액은 대폭 줄어들었으며 고객사들은 잇따라 이탈했고 사내 분위기는 혼란과 불안으로 가득 찼다.주주들의 손실은 상상을 초월했고 배서준에 대한 불만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배서준, 진짜 쓸모없네!”“회사를 이 지경으로 만들고도 어떻게 대표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지?”“당장 끌어내려야 해!”“그래! 더는 회사 말아먹게 놔두면 안 돼!”분노한 주주들의 외침은 마치 화산처럼 폭발해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천기준은 그 상황을 남설아에게 보고했고 남설아는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명령을 내렸다.“계속 감시해요. 그 둘이 무슨 짓을
천기준은 눈앞의 광경을 보며 깊은 무력감에 휩싸였다.소파에 앉은 배서준은 잔뜩 찡그린 얼굴로 고민에 잠겨 있었고 서유라는 그의 곁에 꼭 붙어 앉아 힘없이 기대어 있었다.“대표님, 이대로는 안 됩니다!”천기준의 목소리에는 다급함이 묻어 있었다.“지금 회사 상황 대표님도 아시잖아요. 더 늦기 전에 돌아가셔서 직접 수습하셔야 합니다. 이러다 진짜 배건 그룹이 무너집니다!”“근데 유라가 지금 몸이 안 좋아. 어떻게 이럴 때 내가 유라를 혼자 두고 가겠어.”배서준의 말투에는 깊은 피로와 한숨이 묻어 있었다.“하지만 대표님...”천기준이 설득을 이어가려던 순간, 서유라가 조용히 말을 가로막았다.“서준아, 천 비서님 탓하지 마.”서유라의 목소리는 마치 곧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나약했다.“회사 일이 중요한 건 나도 알아. 그냥 돌아가. 난 괜찮아.”“유라야, 무슨 소리야.”배서준은 그녀를 안쓰럽게 바라보며 말했다.“지금 제일 중요한 건 네 건강이야. 내가 어떻게 널 놔두고 가.”“그래도...”서유라의 눈가엔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듯한 눈물이 맺혀 있었다.“내가 네 일에 방해가 되는 것 같아서 미안해.”“바보야, 너 하나보다 더 중요한 게 어디 있어.”배서준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속삭였다.“회사 일은 내가 방법을 찾을게.”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천기준은 속으로 실소를 터뜨렸다.‘정말 기가 막히네. 내가 본 배 대표님 중에 제일 한심한 버전이야. 예전엔 그렇게 단호하고 냉정했던 사람이 이젠 여자가 곁에만 있으면 정신줄을 놓고 있잖아.’“대표님, 진짜 더는 미룰 수 없습니다.”천기준은 다시 입을 열었다.“주주들은 이미 인내심의 한계에 도달했어요. 계속 이렇게 계시면 정말로 해임당합니다!”“알아, 나도 알아.”배서준은 초조한 듯 머리를 감싸 쥐었다.“그렇지만 유라가...”“서준아, 돌아가.”서유라가 조용히 말했다.“나 혼자서도 괜찮아.”“유라야, 너 지금...”배서준은 놀란 눈으로 서유라를 바라봤다.“정말
“네.”남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명심해요. 이 일은 최대한 시끄럽게 만들어요. 배서준이 모두의 표적이 되도록 말이에요.”“알겠습니다, 대표님. 바로 처리하겠습니다.”천기준은 고개를 숙이고 자리를 떠났다.남설아는 사무실에 홀로 남아 싸늘한 눈빛으로 창밖을 바라봤다.‘배서준, 당신이 의리를 저버렸으니 나도 더는 자비를 베풀지 않을 거야.’곧이어 배서준이 리조트에서 서유라와 밀회를 즐기고 있다는 소문이 각종 언론을 통해 퍼지기 시작했다.여론은 순식간에 들끓었고 배서준의 이미지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무능하다’, ‘책임감 없다’는 비난이 쏟아졌다.“배서준, 진짜 너무하네!”“회사는 지금 무너지고 있는데 밖에서 여자나 만나고 앉았어?”“이런 사람을 어떻게 대표 자리에 앉혔는지 이해가 안 가.”“저 사람한테 회사를 맡긴 게 큰 실수였지.”“이참에 그냥 물러나게 해야 돼!”결국 회사는 긴급 주주총회를 소집했다.얼마 전, 배서준이 자신의 자금을 담보로 위기를 넘기겠다고 한 뒤 감쪽같이 사라졌고,오히려 남설아가 한발 물러나 시간을 벌어준 덕분에 간신히 버텨온 상황이었다.하지만 정작 의사결정을 할 실권자는 자리에 없고 남은 이사들은 완전한 권한도 없는 상태라 회사 운영은 갈수록 마비되어가고 있었다.거기에 이번 스캔들까지 터지자 회의장은 아수라장이 됐다.“이게 지금 어느 땐데 여자를 챙겨?! 본인 위치도 잊었나?!”“천 비서님, 배 대표님 떠나기 전에 천 비서님한텐 아무 말도 안 하고 갔어요?”천기준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사실 함께 일한 지 오래됐지만 배서준이 모든 걸 공유하진 않았다.“지금 당장 리조트로 가서 배 대표님 데려와요!”한 이사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어떻게든 끌고 와야 해요. 회사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요!”“네, 이사님. 바로 다녀오겠습니다.”천기준은 피곤함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답했다.‘정신적으로 남 대표님한테 매일 시달리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그 두 사람을 만나러 내가 가야 한다고? 이게 대체 무
“서준아, 제발 이번만은 내 말 들어줘, 응? 그냥 나를 위해서 우리 미래를 위해서라고 생각하고... 잠깐이라도 푹 쉬면 안 돼?”서유라는 눈물을 글썽이며 배서준을 올려다봤다.그 애처로운 눈빛에 배서준의 마음도 조금씩 흔들렸다.“알겠어, 네 말대로 할게.”결국 배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서유라는 곧장 환하게 웃으며 배서준을 꼭 껴안았다.“역시 나를 제일 아껴주는 사람은 서준이 너야.”배서준은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안아주었지만 눈빛은 복잡하기만 했다.회사의 상황은 이미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남설아와 송우민의 공격은 날이 갈수록 거세졌고 배건 그룹의 주가는 연일 하락 중이었다.시장은 빠르게 무너지고 있었고 내부는 불안과 불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이대로라면 배건 그룹은 정말 그의 손에서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서유라의 모습을 보면 차마 그녀 곁을 떠날 수가 없었다.배서준의 가슴속은 끝없는 갈등과 번민으로 뒤엉켰고 도대체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 알 수 없었다.그때, 그의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이번엔 천기준이었다.배서준은 잠시 고민하다가 전화를 받았다.“배 대표님, 도대체 언제 돌아오실 겁니까?”천기준의 목소리엔 조급함과 절박함이 가득 묻어났다.“지금 회사는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에요. 주주들도 다 대표님만 기다리고 있습니다!”“나, 나도 지금...”배서준이 무언가 말하려는 순간, 옆에 있던 서유라가 손을 뻗어 전화기를 낚아챘다.한편, 천기준은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통화 종료’ 소리에 분노를 억누르지 못했다.그는 핸드폰을 책상 위에 내리찍을 듯 내려놓으며 이를 악물었다.“이 서유라란 여자는 정말 재앙이라니까!”천기준은 이를 갈듯 말했다.“배 대표님도 왜 저 여자 말만 듣는 건지... 지금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도 모르나?”곁에 있던 다른 비서도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천 비서님, 우리 이대로 괜찮을까요? 주주들한테 뭐라고 설명해야 하죠?”“설명할 방법이 어딨어요...”천기준은 허탈하게 웃으며 고
“네, 송 대표님!”모두가 힘찬 목소리로 외쳤고 회의실 안은 결의에 찬 열기로 가득 찼다.송우민의 지휘 아래 남설아의 회사는 굶주린 늑대처럼 배건 그룹의 시장을 거침없이 잠식해 들어갔다.배건 그룹의 주가는 연일 하락했고 시가총액은 크게 줄어들며 내부 분위기는 극도로 혼란스러워졌다.흩어진 조직력에 동요하는 임직원들 사이로 불만이 번졌고 결국 주주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배서준에게 줄줄이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배 대표님, 도대체 언제 돌아오실 겁니까?”한 주주는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지금 회사 상황이 완전히 개판이에요! 더 늦으면 정말 끝장납니다!”“맞아요, 대표님! 이대로 가다간 정말 회복 불가능합니다!”또 다른 주주도 강하게 덧붙였다.“지금 당장 돌아와서 진두지휘하셔야 합니다!”끊임없이 쏟아지는 전화에 배서준은 머리를 싸매고 이마를 짚었다.그 역시 당장 회사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문제는 서유라였다.그녀는 절대 그를 보내려 하지 않았다.“서준아, 가지 마...”서유라는 창백한 얼굴로 침대에 누운 채 배서준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나 너무 힘들어. 옆에 있어 줘야 버틸 수 있어.”“유라야, 네가 힘든 거 알아. 하지만 회사도 지금...”배서준은 난처한 얼굴로 말을 흐렸다.“몰라! 나한테 중요한 건 네가 곁에 있어 주는 거야! 너 없이 나는 단 하루도 못 버텨!”서유라는 울먹이며 소리를 질렀다.“그런 말 하지 마.”배서준은 가슴 아프다는 듯 그녀를 껴안았다.“널 내버려 두고 갈 수 없지. 하지만 회사 쪽 상황도 정말 더는 미룰 수가 없어.”“결국 날 버릴 거지? 날 두고 가겠다는 거잖아!”서유라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떼를 쓰며 말했다.“내 몸은 누가 챙겨? 나 혼자선 아무것도 못 해... 넌 가면 안 돼!”“유라야, 그러지 마.”결국 배서준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좋아, 당분간은 여기 있을게. 회사 일은 전화랑 화상회의로 처리할 테니까 괜찮지?”“진짜지?”서유라는 눈물로 젖은 눈을 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