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서준도 어렴풋이 짐작은 하고 있었다.하지만 그 결과가 이 정도로 심각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그는 정말 몰랐다.남설아가 이렇게까지 능력 있는 사람이었고 할아버지를 완전히 휘어잡아 퇴로까지 마련해 놓았을 줄은 말이다.“이 유언장의 진위 여부, 검토할 필요가 있겠죠?”배서준은 냉소적으로 비웃었다.‘할아버지가 이렇게 어리석으실 리 없어. 그 여자는 교활하고 수단도 많잖아. 유언장 정도는 충분히 위조할 수 있을 거야.’그러나 법무팀장은 단호하게 말했다.“이런 유언장은 일반적으로 제삼자가 입회한 상태에서 작성되며 전체 과정을 녹음 및 촬영하기 때문에 위조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그 말은 곧 배서준이 어떤 방법을 써도 이 유언장을 뒤집을 수 없다는 뜻이었다.그의 모든 탈출구가 막혀버린 셈이었다.안색이 점점 어두워졌지만 배서준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저 손을 휘저으며 내보내라는 신호를 줬을 뿐이었다.법무팀 직원들은 조용히 자료를 정리한 후 회의실을 빠져나갔다.그러나 나가는 그들 역시 충격을 감추지 못한 얼굴이었다.이런 엄청난 사건이 터질 줄 누가 감히 예상이나 했겠는가.그렇게 배서준은 홀로 회의실에 남았다.그의 표정은 마치 폭풍 전야처럼 어둡고 스산했다.배씨 가문의 유일한 후계자였던 그는 정작 가문의 주도권을 쥐고 있지 않았다.그 모든 권한은 그가 평생을 무시했던 한 여자의 손에 있었다.이것은 곧 배서준에게는 치욕적인 도전이나 다름없었다.특히 병원에서 남설아가 던졌던 말들이 다시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자 그의 눈빛은 더욱 차갑게 변했다.“남설아, 어디 한번 보자고. 대체 얼마나 대단한 여자인지.”비웃음이 흘러나왔지만 그의 눈빛은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아무리 발버둥을 친다 한들 결국 손을 벌려 도움을 구할 수밖에 없는 가엾은 존재에 불과했다.그런 여자가 자신에게 도전한다니 웃기지도 않았다.한편, 남설아는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배건 그룹의 내부 상황을 면밀히 살피며 다가오는 주주총회에서 공식적으로 자신의 존재
“누나, 이제 어떻게 할 거야?”서도현이 한쪽에 느긋하게 기대앉아 태연하게 물었다.“아무리 허울뿐인 자리라고 해도 있는 게 없는 것보다 낫지 않겠어? 누나 난 아직도 누나가 배씨 가문 사모님 자리에서 내려와선 안 된다고 생각해.”비록 지분이 20%밖에 안 되더라도 그걸로도 평생 먹고살기엔 충분했다.그 말에 서유라는 짜증이 폭발했다.“닥쳐. 지금 네 꼴 좀 봐. 제대로 된 일 하나 못 하면서 어디서 훈수를 둬? 네가 언제 믿음직스러웠던 적 있어?”“누나, 사람 잘못 본 건 누나 잘못이지 내 잘못은 아니잖아?”“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내가 아니었으면 누나가 오늘까지 이 좋은 날들 누릴 수 있었겠어?”서도현은 비웃으며 고개를 젖히더니 눈을 휙 뒤집어 깠다.“잊지 마, 배서준이 우리한텐 마지막 구명줄이야. 누나가 배씨 가문 사모님 자리에서 내려오면 우리 집안이 어떻게 될지 누나도 잘 알잖아?”이번엔 단순한 충고가 아니었고 노골적인 협박이었다.서유라는 그 말에 치가 떨렸다.가족 때문이었다.그 때문에 이 모든 걸 감수해야 했고 그 때문에 이렇게까지 살아야 했다.그런데 이제 와서 저따위 태도로 자신을 몰아세운다니 어이가 없었다.“서도현, 내가 전생에 너한테 무슨 빚이라도 졌냐?”서유라는 이를 악물며 날카롭게 쏘아붙였다.‘온갖 비굴한 삶을 견디며 여기까지 왔는데... 겨우 이따위 결과를 받으려고 그랬던 건가?’그렇게 이를 갈던 서유라는 이내 뭔가 떠오른 듯 곧장 은행 카드를 들고 남설아를 찾아갔다.문을 연 남설아는 서유라를 보자마자 눈살을 찌푸리며 문턱에서 가로막았다.“나은이가 안에 있어. 나은이는 유라 씨를 보고 싶어 하지 않아.”“설아 씨, 왜 이렇게 가식 떠는 거야?”서유라도 더 이상 부드러운 척할 생각은 없었는지라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남설아는 피식 웃으며 그녀를 근처 카페로 데려갔다.“유라 씨가 아무 이유 없이 찾아올 리가 없겠지?”“맞아. 할 얘기가 있어서 왔어.”서유라는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내며 카드 한 장을 테
“설아 씨, 서준이는 단 한 순간도 설아 씨를 마음에 둔 적 없어. 이렇게까지 해봤자 서준이의 눈길 한 번 받을 수 없을 텐데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서유라는 마치 진심으로 걱정하는 사람처럼 설득하려 했다.그러나 그 말을 들은 남설아는 실소를 터뜨렸다.“내가 가진 배건 그룹 지분, 지금 시장에 내놔도 최소 6000억은 받을 수 있어. 그런데 고작 60억을 들고 와서 협상하려고? 내가 계산도 못 할 거로 생각하나?”“그리고 유라 씨, 배서준? 그 사람이 뭐 대단한 놈이라도 되나? 예전엔 아이 때문에 한 번쯤 더 쳐다봐 줄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지금은? 나은이는 없어. 이제 내 눈에 그 사람은 그냥 쓰레기일 뿐이야.”“난 배건 그룹의 51% 지분을 갖고 있어. 그럼 내가 어떤 남자를 원하든 못 가질 이유가 있나?”그동안 쓸데없는 것에 얽매여 살았다는 걸 깨닫자 이제야 비로소 눈앞이 환히 트였다.남설아는 앞으로의 삶이 훨씬 더 좋아질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뭐?”서유라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멍하니 그녀를 바라봤다.조용하고 순하던 남설아가 이런 말을 하다니 완전히 예상 밖이었다.그리고 그제야 깨달았다.지금까지 자신이 남설아를 무시할 수 있었던 건 배서준이 그녀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남설아가 배서준을 사랑했기 때문이였다고.하지만 이제 그녀가 배서준을 버린다면? 이 관계는 끝인 것이다.그렇다면 이제 자신이 무슨 말을 하든 어떤 상처를 주든 남설아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게 된다.그 순간 서유라는 모든 것이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음을 깨달았다.그제야 현실을 받아들인 서유라는 순간적으로 패닉에 빠졌고 곧바로 극단적인 행동을 택했다.그녀는 들고 있던 컵을 바닥에 내던지며 깨뜨렸고 그 조각을 집어 들자마자 자신의 손바닥을 깊이 그었다.이내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하지만 남설아는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커피를 마실 뿐이었다.그리고 예상대로 다음 순간 배서준이 번개처럼 뛰어 들어왔다.그러고는 거의 반사적으로 서유라의 손을 움켜쥐며
“닥쳐!”배서준은 남설아를 바라보며 뒷어금니를 악물고 내뱉었다.“내가 왜 닥쳐야 하는데요?”“서준 씨가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닥치라고 해요? 지금이 아직도 옛날 사회인 줄 알아요? 여자들은 진작에 해방됐어요. 꺼져요!”남설아는 남은 커피를 그대로 배서준의 몸에 확 끼얹고는 망설임 없이 돌아섰다. 그 동작은 그야말로 흐름이 막힘없는 자연스러움 그 자체였다.몸을 돌리는 순간 유리창 너머로 문 앞에 서 있는 강연찬이 보였다.조금 전까지 그렇게 당당했던 남설아는 막상 강연찬의 눈과 마주치자 왠지 모르게 어색함이 밀려왔다.걸음을 서둘러 밖으로 나가며 그녀는 눈살을 찌푸렸다.“여긴 왜 왔어?”“원래는 널 보호하러 왔는데 이제 보니까 내가 필요 없었네.”강연찬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리고 너 나한테 아직 샤브샤브 한 끼 빚졌어.”‘보호하러 온 게 아니라 빚 받으러 온 거 아니야?’남설아는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고 뒤돌아보지도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지금 먹으러 가자.”그러고는 아주 자연스럽게 그의 차에 올라 조수석에 앉았다.모르는 사람이 보면 정말이지 부부처럼 보였다.“아파.”서유라는 손이 으스러질 것만 같았다.배서준이 고개를 숙이고 보니 그녀의 손바닥은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순간 얼굴빛이 변했다.곧장 그는 서유라의 손을 잡고 밖으로 향했다.“손님, 아직 계산 안 하셨습니다!”서둘러 다가온 직원이 서유라를 붙잡고 돈을 요구했다.완전히 망신살이 뻗쳤다.그 순간, 몸이 경련을 일으키더니 서유라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배서준의 품에 쓰러졌다.직원은 당황스러웠지만 그보다는 불길한 기분이 먼저 들었다. 그는 배서준을 초조한 눈으로 바라보았다.배서준은 말없이 핸드폰을 꺼내 결제한 뒤, 그녀를 안아 들고 병원으로 향했다.밖으로 나오는 순간 막 강연찬의 차가 출발하는 것이 보였다.서로 스쳐 지나가는 순간 그는 선명하게 보았다.조수석에 앉아 있는 남설아를 말이다.그리고 단 한 번도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그 모습까지.가슴이
배서준의 차가운 시선을 마주한 순간, 서유라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가슴이 조여드는 긴장감이 들었다.‘혹시 서준이가 뭔가 눈치챘나?’“서준아... 왜 아무 말도 안 해?”서유라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그의 소매를 살짝 잡아당겼다.“유라야, 너 선을 넘었어.”배서준의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다.단, 말의 내용만 빼고 말이다.그 한마디가 서유라의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했다.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목이 메인 채 그녀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알아, 다 내 잘못이야. 하지만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어. 난 그저 널 도우려고 했을 뿐이야. 그리고... 설아 씨는...”“우리 일은 내가 알아서 해.”이번에는 가식적인 다정함조차 없었고 남은 것은 단 하나, 경고뿐이었다.그리고 그것은 마지막 경고였다.배서준은 자기 자신이 가장 소중한 사람이었다.서유라는 그에게 조금은 특별한 존재였을지 몰라도 그 기준에서 벗어날 만큼은 아니었다.이제야 서유라는 알았다.자신이 배서준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라고 믿었던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착각이었는지를.결국 그는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다.철저하게 깨달아버린 그 사실이 서유라를 절망하게 만들었다.“그래, 알겠어. 다시는 그런 일 없을 거야.”그녀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뚝뚝, 눈물이 손등 위로 떨어졌다.붉게 물든 콧날, 새빨개진 눈가, 누가 봐도 안쓰러울 만큼 애처로운 모습이었다.하지만 서유라는 스스로의 장점을 잘 알고 있었고 배서준이 어떤 모습에 약한지도 잘 알고 있었다.그러니 이 눈물조차도 서유라에게 있어서는 자신이 살아남기 위한 무기였다.역시나 배서준의 태도는 이내 부드러워졌다.“됐어. 푹 쉬어. 회사에 일이 있어서 가봐야 해. 저녁에 다시 올게.”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조심스레 서유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그러고는 미련 없이 돌아섰다.그가 병실을 나서는 순간, 서유라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어졌다.쾅!옆에 있던 물컵을
남설아가 뛰어난 사람이라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이나 그녀가 아직은 무력한 상태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그도 그럴 것이 남설아는 줄곧 집에서 아이를 키우느라 사회생활에 대한 경험이 부족했다.“적이 오면 막고 물이 넘치면 둑을 쌓으면 돼. 이건 꼭 되갚아야겠어.”남설아는 주먹을 꽉 쥐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사실 그녀는 이런 일에 연연할 사람이 아니었다.배씨 가문의 재산 따위에도 관심이 없었다.그러나 배서준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눈앞에서 그들의 아이가 죽어가는 걸 보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배나은을 잃게 만든 장본인을 가만히 둘 수는 없었다.그렇게까지 무력하다면 자신은 어머니로서의 자격도 없었다.‘배서준이 가장 아끼는 것이 ‘이익’이라면 그걸 하나씩 빼앗아주겠어. 가장 소중한 걸 빼앗아버린 뒤, 그 사람한테 대체 뭐가 남는지 끝까지 지켜보겠어.’남설아의 결연한 눈빛을 확인한 강연찬은 그제야 안심했다.내심 그녀가 마음 약해질까 걱정했으니 말이다.“좋아. 그럼 조심해. 난 먼저 간다. 회사에 회의가 있어서.”핸드폰을 확인한 강연찬이 자리에서 일어났다.그 말에 남설아는 순간 불안한 기색을 보였다.“설마 서준 씨가 오빠를 압박하는 거야?”“그 녀석한테 그럴 힘은 없어.”강연찬은 비웃듯이 낮게 웃었다.배건 그룹이 대단하긴 해도 그들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었다.지금 이 순간에도 강연찬은 여전히 잘 살아 있지 않은가.그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 남설아는 문득 그 시절이 떠올랐다.햇살처럼 밝게 웃던 그 소년이 말이다.시간이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었다.많은 게 바뀐 것 같지만 또 많은 게 그대로였다.강연찬이 떠나고 곧바로 배서준이 도착했다.그를 보는 순간 남설아의 표정이 차갑게 식었다.“여긴 왜 온 거예요?”무의식적으로 그녀는 배나은의 사진을 바라보았다.그 순간 이 남자가 얼마나 불길한 존재인지 다시금 깨달았다.‘감히 나은이 앞에 설 자격이 있기나 해?’“지금 회사가 여론 압박을 받고 있어. 네가 나와서 해명
“X발!”남설아는 참지 못하고 그대로 욕설을 내뱉었다.이 세상에 이렇게까지 뻔뻔한 인간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대체 어떻게 하면 저런 말을 태연하게 말할 수 있는 거지?’과거의 남설아라면 참았을 것이다.모든 걸 속으로 삭이고 묵묵히 감내했을 것이다.하지만 이제는 아니다.남설아는 망설임 없이 물리적으로 공격했다. 거침없이 손을 휘둘러 따귀를 한 대 올려붙인 것이다.그리고 그의 멱살을 단단히 움켜쥐었다.그러고는 있는 힘껏 끌어당겨 배나은의 영정 앞에 그를 내던졌다.“똑바로 봐요. 나은이를 보고도 당신이 방금 했던 말을 다시 한번 할 수 있어요?”배서준은 예상치 못한 힘에 순간 당황했다.그녀가 이렇게까지 강할 줄은 몰랐다.그리고 마주한 배나은의 사진, 맑고도 천진난만한 웃음을 한 아이가 영정 속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그러나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고 오히려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그때 치료를 했더라도 단순히 생명을 연장하는 것뿐이었어. 완치할 수 있는 병이 아니었잖아. 살아 있었다 해도 결국 고통뿐이었을 거야.”“맞아요, 나은이는 고통스러웠죠.”남설아는 그의 말을 끊고 차갑게 응수했다.하지만 그녀가 덧붙인 말은 완전히 달랐다.“하지만 그 고통은 병 때문이 아니었어요. 바로 당신 때문이었지!”“나은이가 가장 힘들었던 이유는 당신 같은 인간이 아빠였기 때문이에요!”“당신이 대체 뭔데 나은이의 운명을 결정해요? 무슨 권리로?”남설아는 있는 힘껏 그의 옷깃을 움켜쥐며 분노를 터뜨렸다.그녀는 배서준이 자신을 증오하는 것쯤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하지만 단 하나, 이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어떻게 자신의 딸에게조차 이렇게 냉정할 수 있는지 말이다.그럼에도 배서준은 미동도 없이 차가운 눈빛으로 남설아를 바라볼 뿐이었다.그리고 마침내 배서준이 입을 열었다.“내가 아빠니까.”‘뭐?’이 말에 벼락이라도 맞은 듯 남설아의 온몸이 굳었다.수많은 가능성을 생각했었다.수십, 수백 개의 대답을 예
“배건 그룹 일? 난 신경 안 써요. 온라인에서 무슨 난리가 나든 그것도 상관없어요.그리고 당신이 말하는 그따위 해명? 나랑 아무 관련 없어요!”“당신이 스스로 한 짓이잖아요. 그에 대한 대가는 당연히 당신이 감당해야지!”“내기에서 졌으면 깨끗이 인정하고 물러나. 사랑이랍시고 방종한 대가, 이제 당신도 치를 때가 됐어.”남설아의 목소리는 단호했고 한 마디 한 마디가 마치 비수처럼 날아갔다.그 말 속에는 단 한 점의 감정도 없었다.오직 차가운 냉소와 경멸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그녀는 이제 이 남자에게 철저히 절망했고 완전히 질려버렸다.한때 그는 체면을 위해 남편이라는 사람에게 애써 다가가며 ‘다정한 부부’인 척 연기했다.지금 생각해 보면 그야말로 한심하고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남설아, 후회하지 마.”배서준은 여전히 거만한 태도를 유지했다.그는 여전히 믿고 있었다.이 여자가 자신을 너무 사랑해서, 이 모든 행동이 결국 자신을 붙잡기 위한 발악일 뿐이라고.“네가 협조만 한다면 당장은 이혼을 얘기하지 않아도 돼.”그는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면서도 뒤로 한 걸음 물러서는 듯한 말을 던졌다.하지만 남설아는 더 이상 몇 년 전의 순진한 바보가 아니었다.그의 속셈이 뻔히 보였다.여전히 자신이 우위에 있다고 믿고 있었지만 그것 자체가 얼마나 한심하고 가소로운 착각인지 배서준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그녀는 가볍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당신이 이혼하지 않으려는 이유가 뭐겠어요? 바로 지분 때문이잖아요. 할아버지의 유언, 당신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잖아요. 그런데도 지금까지 내 앞에서 연극을 한 거예요?”“그동안 나랑 부부로 사는 게 그렇게 끔찍했으면서 돈 때문에 참고 견뎌 줬다 이거죠?”남설아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마치 비수가 되어 배서준의 가면을 산산조각냈다.그녀의 목소리는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냉정하고 비웃음이 가득했다.“참 대단하네요. 당신 정말 대단해요.”“그렇게까지 참고 버티면서 살아왔으니 참
차 안으로 돌아온 서유라는 여전히 드레스를 고른 기쁨에 들떠 있었다.“서준아, 우리 이번 파티에서 가장 눈에 띄는 커플이 되지 않을까?”그녀는 기대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그럴 거야.”배서준이 대답했지만, 말투에는 영혼이 없었다.“다행이네.”서유라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서준아, 네가 이렇게 같이 와줘서 정말 좋아.”그녀는 배서준의 어깨에 기대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배서준은 말없이 그녀의 등을 가볍게 토닥였다.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계속 남설아의 모습이 떠올랐고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파티 당일,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행사장은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고 분위기 또한 고급스럽고 활기찼다.남설아와 강연찬이 모습을 드러내자 주변에서 작은 술렁임이 일었다.남설아는 연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단정하면서도 기품 있는 자태를 뽐냈고 강연찬은 깔끔한 검은색 정장을 입고 여유롭고 세련된 분위기를 풍겼다.두 사람은 함께 서 있는 것만으로도 시선을 끌었고 자연스럽게 주목받는 존재가 되었다.“남 대표님, 강 대표님, 파티에 오신 걸 진심으로 환영합니다.”서 회장 부부가 반갑게 맞이했다.“서 회장님, 사모님, 축하드립니다.”남설아가 미소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남 대표님께서 참석해 주시다니 저희가 정말 영광이에요.”서 회장의 부인인 차혜미가 남설아의 손을 잡으며 따뜻하게 말했다.“별말씀을요, 사모님.”남설아가 정중하게 답했다.“이분이 바로 강 대표님이시죠?”서기찬이 강연찬을 바라보며 물었다.“네, 서 회장님.”남설아가 소개했다.“저의 비즈니스 파트너이자 좋은 친구인 강연찬 대표님이에요.”“강 대표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서기찬이 손을 내밀었다.“반갑습니다, 서 회장님.”강연찬은 예의를 갖춰 악수했다.“두 분 안으로 들어가시죠. 자리를 미리 준비해두었어요.”서기찬이 손짓했다.“감사합니다.”남설아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세 사람은 함께 연회장 안으로 들어갔다.조금 떨어진 곳에 배서준과 서유라도 행사장
배서준은 서유라가 들뜬 모습으로 웃고 있는 걸 보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괜히 불편하고 답답했다.그는 말없이 남성복 코너로 가서 대충 눈에 들어오는 정장을 집어 들었다.“손님, 정말 안목이 좋으시네요. 이건 저희 매장에서 가장 최근에 들어온 신상이에요. 이탈리아산 원단으로 수제 재단된 제품이라 고객님 체형에 정말 잘 어울리실 거예요.”점원이 열정적으로 설명했다.배서준은 아무 말 없이 검은색 정장을 들고 탈의실로 들어갔다.정장을 갈아입고 거울을 바라본 그는 문득 거울 속 자기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저 사람이 정말 내가 맞아?’한때 야망으로 가득하고 세상을 거머쥘 듯 당당했던 배서준은 이제는 서유라의 기대와 기준에 맞춰 움직이는 꼭두각시처럼 보였다.“서준아, 다 입었어?”서유라가 탈의실 밖에서 재촉했다.“응.”배서준은 문을 열고 나왔다.“와, 서준아, 너 이 정장 입으니까 진짜 멋있다.”서유라는 마치 영화 속 배우를 보는 듯 눈에 감탄이 가득했다.“진짜 영화배우 같아.”배서준은 가볍게 웃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서유라가 이런 말들을 듣는 걸 좋아한다는 걸 알지만 지금은 그런 말을 할 기분이 아니었다.“이걸로 할게.”배서준은 피곤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때, 매장 입구 쪽에서 구두 소리가 들려왔다.남설아와 강연찬이 매장 안으로 들어왔다.눈이 마주친 순간, 공기가 얼어붙는 듯했다.배서준의 시선은 남설아에게 고정되었고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남설아는 연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단정하면서도 우아한 분위기를 풍겼다.드레스는 그녀의 몸매를 자연스럽게 살려주었고 살짝 올려 묶은 머리 사이로 드러난 목선과 쇄골은 고급스러움을 더했다.그녀는 마치 한 송이 활짝 핀 제비꽃 같았다. 요란하지 않지만, 눈에 띄는 아름다움이었다.배서준의 가슴이 순간 쿵 하고 내려앉았다.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는 예전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다.그녀의 당당함과 여유는 서유라가 따라올 수 없는 것이었다.“강 대표님과 설아 씨도 드레스 고르러
“그날 같이 가자.”“응.”강연찬은 고개를 끄덕였다.한편, 배서준 역시 서 회장 부부가 주최하는 파티의 초대장을 받았다.그는 원래 서유라와 함께 참석해 둘의 관계와 입지를 보여줄 생각이었다.“유라야, 서 회장 부부가 비즈니스 파티를 연대. 우리 둘 다 초대했어.”배서준은 초대장을 들고 서유라에게 말했다.“같이 갈래?”“당연히 가야지.”서유라는 웃으며 말했다.“이런 기회에 좋은 인맥도 많이 만들 수 있잖아.”“그래.”배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같이 가자.”“응.”서유라가 고개를 끄덕였다.“서준아. 넌 정말 다정해.”서유라는 배서준의 품에 기대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하지만 배서준은 남설아도 그 파티에 참석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마음속에 복잡한 감정이 피어올랐다.“뭐? 남설아도 간다고?”배서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네, 대표님.”천기준이 답했다.“서 회장 부부가 남 대표님도 초대했답니다.”배서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표정이 어두워졌다.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남설아가 강연찬과 함께 파티에 나타나는 모습을 상상하자 괜히 기분이 불편해졌다.“서준아, 무슨 일 있어?”서유라는 그의 이상한 기색을 눈치채고 물었다.“아니야.”배서준은 고개를 저었다.“그냥, 남설아가 올 줄은 몰랐어.”“오면 어때.”서유라가 말했다.“우리가 남설아를 무서워할 이유는 없잖아.”“무서워서 그런 게 아니야.”배서준이 대답했다.“그냥...”그는 어떻게 얘기했으면 좋을지 몰랐다. 그저 가슴이 무척 답답했다.“됐어, 너무 신경 쓰지 마.”서유라가 달래듯 말했다.“우리 둘이 함께 가서 보여주자. 우리가 얼마나 잘 지내고 있는지.”“그래, 그게 좋겠다.”배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유라야, 네가 있어서 정말 든든해.”서유라는 배서준과 함께 파티에 참석하겠다고 먼저 제안했다.“서준아, 이런 자리에는 내가 같이 가야지.”그녀는 부드럽게 말하며 따뜻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네 연인이니까 함께 이겨내야 할 책임이 있어.
배서준이 회사로 돌아왔을 때, 그를 반긴 것은 직원들의 열렬한 환영이 아니라 책상 위에 산처럼 쌓인 서류들과 불안으로 가득 찬 얼굴들이었다.그는 자신이 자리를 비운 동안 회사의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내가 없는 동안 내가 지시한 대로 진행됐어?”배서준이 천기준에게 물었다.“네, 대표님.”천기준은 서둘러 대답했다.“지시에 따라 주가 일부는 안정시켰고 마케팅도 강화했습니다. 하지만...”“하지만 뭐?”배서준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하지만 남 대표님 쪽의 공세가 너무 강해서... 우리가 제대로 대응을 못 하고 있습니다.”천기준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배서준은 말없이 책상 앞으로가 높게 쌓인 서류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지금 뭔가를 하지 않으면 배건 그룹은 정말로 무너질 수도 있다는 불안이 그를 짓눌렀다.“각 부서의 팀장들에게 10분 후에 회의실로 모이라고 전해.”배서준이 말했다.“네, 대표님.”천기준은 얼른 대답하고는 회의 소집을 위해 나갔다.배서준은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지금은 감정이 아니라 이성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어떻게든 회사를 다시 일으켜야 했다.10분 후, 회의실은 이미 각 부서의 팀장들로 가득 차 있었다.배서준은 회의실 중앙에 앉아 익숙한 얼굴들을 바라보며 복잡한 심경을 숨겼다.그 순간, 서유라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스쳤다.“서준아, 나는 널 믿어. 넌 반드시 배건 그룹을 다시 일으킬 수 있을 거야.”“고마워, 유라야.”배서준은 서유라와의 대화를 떠올리고 있었다.“네가 곁에 있어 줘서 난 두렵지 않아.”한편, 남설아의 회사는 강연찬과 송우민의 지원을 받으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그녀의 기업은 빠르게 시장 점유율을 넓혀가고 있었고 그에 따라 많은 비즈니스 파트너들에게 인정받으며 여러 초청도 받게 되었다.이날, 남설아는 서 회장 부부가 주최하는 상류층 비즈니스 파티 초대장을 받았다.서 회장 부부는 재계의 거물로, 남설아의 회사와도 협력 관계에
“그럼 됐어.”서도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누나, 나한테 시킬 일 있으면 뭐든 말해.”“응.”서유라가 말했다.“당분간은 여기 남아서 나 잘 챙기고 배서준도 잘 감시해. 남설아랑 접촉 못 하게 해야 해.”“알겠어. 걱정하지 마.”서도현은 단호하게 말했다.한편, 배서준은 회사로 복귀하자마자 긴급회의를 소집했다.“여러분, 최근 우리 회사의 상황은 매우 심각합니다.”회의실 중간 자리에 앉은 배서준은 굳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우리는 지금 즉시 대응책을 세워서 상황을 돌려놔야 합니다.”“배 대표님, 계획이 있으신가요?”한 주주가 물었다.“이미 여러 가지 대응 방안을 준비해 두었습니다.”배서준이 말했다.“첫째, 주가를 안정시켜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해야 합니다. 둘째, 마케팅을 강화해서 잃어버린 시장 점유율을 되찾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내부 정비를 통해 운영 효율을 높이겠습니다.”“말씀은 좋은데 구체적으로는 어떻게 실행하실 건가요?”또 다른 주주가 질문했다.“제가 직접 나서서 추진하겠습니다.”배서준이 단호하게 말했다.“최대한 빨리 세부 계획을 수립해서 여러분께 공유하고 논의하겠습니다.”“저희는 배 대표님을 믿을 것입니다.”한 주주가 말했다.“하지만 이전 행동들로 인해 실망한 것도 사실입니다.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랍니다.”“맞습니다, 배 대표님.”또 다른 주주도 덧붙였다.“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회사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합니다.”“여러분, 제가 실망하게 한 점은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배서준은 진지하게 말했다.“하지만 저를 다시 한번 믿어 주십시오. 반드시 배건 그룹을 이 위기에서 구해내겠습니다.”“기대합니다.”한 주주가 말했다.“대표님, 잘 지켜보겠습니다.”회의가 끝난 후, 배서준은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왔다.그는 통유리창 앞에 서서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며 복잡한 감정에 잠겼다.잠시 후, 그는 휴대폰을 꺼내 서유라에게 전화를 걸었다.“유라야, 괜찮아? 나 회사 도착했
서유라는 분노에 차 손에 들고 있던 태블릿을 바닥에 내던졌다. 태블릿의 화면이 산산조각이 났다.정교하게 화장한 얼굴이 일그러졌고 눈빛에는 분노와 공포가 뒤섞여 있었다.그녀는 서도현에게 먼저 나가보라고 한 뒤, 혼자 남아 배서준을 상대하기로 했다.혼자 방에 남은 서유라는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했다.그녀는 창가로 다가가 흐린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남설아, 너무 자만하지 마. 내가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며칠 뒤, 서유라는 대의를 위해 배서준에게 회사를 돌아가라고 설득했다.“서준아, 이제 돌아가.”서유라는 침대에 누운 채 창백한 얼굴로 힘없이 말했다.“회사가 더 중요해. 언제까지 내 곁에만 있을 수는 없잖아.”“하지만 네 몸 상태가...”배서준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난 괜찮아.”서유라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정말이야. 나 혼자서도 잘 챙길 수 있어.”“아니야, 네 곁에 있어야 마음이 놓여.”배서준이 고집을 부렸다.“서준아, 내 말 좀 들어봐.”서유라는 그의 손을 꼭 잡았다.“네가 날 걱정해주는 마음은 잘 알고 있어. 하지만 지금 회사 상황이 너무 안 좋아. 당신이 여기에 계속 있는 건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이야.”“그래도...”“돌아가.”서유라는 그의 말을 끊었다.“지금은 너만이 배건 그룹을 지킬 수 있어.”“유라야...”배서준은 감동한 듯 서유라를 바라보았다.“넌 정말 사려 깊은 사람이야.”“나는 네 여자니까 당연히 너를 위해 생각해야지.”서유라는 다정하게 말했다.“어서 돌아가. 내가 걱정하지 않게 해줘.”“그래.”배서준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회사 일은 내가 책임질게. 넌 꼭 건강 잘 챙겨야 해.”“응, 걱정하지 마.”서유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너도 무리하지 말고 몸조심해.”“그래.”배서준은 그녀의 이마에 다정하게 입을 맞췄다.“회사 일이 마무리되면 다시 올게.”“응, 기다릴게.”서유라는 잠시 오묘한 웃음을 지었다.배서준은 서유라를 데리고 함께 회사로
그는 줄곧 자신과 남설아는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 생각해왔지만 지금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강연찬이 회복되자 모두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고 특히 남설아는 그동안 불안했던 마음을 비로소 내려놓을 수 있었다.한편, 멀리 리조트에 머무르고 있던 서유라는 무척 불안하고 초조했다.서도현은 자신이 보낸 사람들이 전부 체포되어 한 명도 빠짐없이 구속되었다는 정보를 이미 입수했다. 남설아가 다치지 않은 것도 모자라 다친 사람마저 회복되었으니 그동안 벌인 모든 일이 헛수고가 되고 만 것이다.“뭐라고? 강연찬이 회복했다고?”서유라의 목소리는 고막을 찢을 듯 날카로웠다.“그 사람들이 엄청 대단하다고 하지 않았어? 어떻게 여자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남설아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여자잖아. 그런데도 그 여자 하나 못 건드려서 이 지경이 된 거야? 돈을 그렇게 많이 받고는 뭐 하겠다는 거야? 적은 돈이 아니었잖아.”서도현은 배서준의 감시를 피해 몰래 리조트 안으로 숨어들어와 서유라와 만났다.그의 얼굴엔 짜증이 가득했고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누나, 나도 최선을 다했어. 그놈들이 이런 일 하나도 제대로 못 할 만큼 이렇게 쓸모없을 줄은 누가 알았겠어. 그래도 다행인 건 그놈들이 입이 무지하게 무겁다는 거야. 지금껏 한마디도 안 했어. 나도 계속 지켜볼 거니까 우리한테 불똥이 튀게 두진 않을 거야.”“쓸모없는 놈들! 전부 다 쓸모없어!”서유라는 온몸을 떨며 분노했다. 그녀는 탁자 위에 놓인 찻잔을 집어 들어 바닥에 힘껏 내던졌다.“이제 어떡해? 강연찬이 회복됐다고? 혹시 이 일을 남설아한테 말하면 어쩌려고? 남설아가 알게 되면, 나는...”“누나, 진정해봐.”서도현은 급히 달래며 말했다.“강연찬이 회복됐다고 해도 우리가 한 짓이라는 증거는 없어. 게다가 그 킬러들은 내가 따로 구한 사람들이라서 우리랑 직접적인 연결 고리는 없어.”“그래도...”서유라는 여전히 불안했다.“남설아 그 여자는 워낙 교묘해서 무슨 단서라도 찾아내게 되면 우리는 순식간에
“알겠어.” 송우민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너희가 그렇게 말한다면 따를게.”“우민아, 고마워.” 남설아가 말했다.“네가 얼마나 복수를 원하고 있는지 알아. 하지만 우리는 냉정해야 해. 감정에 휘둘리면 안 돼.”“응, 알아.” 송우민이 고개를 끄덕였다.“너희 계획에 최선을 다해 도울게.”“좋아.”남설아가 미소 지었다.“우린 반드시 해낼 수 있을 거야.”세 사람은 구체적인 세부 사항을 더 논의한 후, 각자 맡은 일을 하기 위해 흩어졌다.연회가 끝난 후, 남설아는 사무실로 돌아와 밀린 서류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그때 강연찬이 따뜻한 우유 한 잔을 들고 들어왔다.“설아야, 우유 좀 마시고 일찍 쉬어.”강연찬이 우유를 건네며 말했다.“요즘 너무 무리하고 있어. 몸을 챙겨야지.”“응, 고마워, 오빠.”남설아가 우유를 받아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오빠도 일찍 쉬어.”“난 안 피곤해.” 강연찬이 말했다.“너 일 마칠 때까지 같이 있어 줄게.”“괜찮아, 오빠. 몸도 아직 완벽히 회복된 건 아니잖아. 푹 쉬는 게 좋아.”남설아가 말했다.“이 서류들은 나 혼자서도 처리할 수 있어.”“그래도 옆에 있어 줄게.”강연찬이 말했다.“너도 너무 늦지 않게 마무리하고 쉬어.”“응, 알겠어.”강연찬이 나간 뒤에도 남설아는 계속해서 일을 처리했다.그녀는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었다. 더 강해져야만 배서준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나은이를 위해 복수할 수 있었다.깊은 밤이 되어서야 남설아는 마침내 모든 서류를 정리했다.그녀는 기지개를 켜면서 창가로 가서 불빛이 번쩍이는 도시를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나은아, 보고 있어?”남설아는 혼잣말처럼 속삭였다.“엄마가 반드시 복수할 거야. 기다려줘.”다음 날, 남설아는 이른 아침부터 회사에 출근했다.그녀는 회사의 핵심 팀을 소집해 다음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여러분, 우리 그동안 좋은 성과를 거뒀지만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남설아가 말했다.“배건 그룹은 지금 위기에 처해 있지만
“선배...”남설아는 강연찬을 바라보며 가슴 깊이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꼈다.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송우민은 두 사람 사이의 다정한 분위기에 묘한 감정이 밀려왔다.기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마음 한편이 허전했다.연회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던 중, 남설아가 잔을 들어 모두와 함께 축하의 건배를 하려는 찰나 강연찬이 재빨리 손을 내밀어 그녀를 막았다.“설아야, 요즘 너무 무리했잖아. 술은 좀 줄여.”강연찬의 목소리엔 진심 어린 걱정이 담겨 있었다.남설아는 그의 따뜻한 눈빛을 마주하며 마음이 포근해졌다.하여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들고 있던 술잔을 내려놓고 대신 주스를 들었다.“알겠어. 선배 말 들을게.”남설아는 웃으며 말했다.그 광경을 본 송우민은 잔을 들고 조용히 다가왔다.“남설아, 내가 한 잔 올릴게.”송우민은 잔을 들며 말했다.“이번 성공, 정말 축하해.”남설아는 주스를 들고 잔을 맞댔다.“고마워, 우민아.”남설아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네 도움이 없었으면 이렇게 빠르게 결과를 얻진 못했을 거야.”“우린 친구잖아. 서로 도와야지.”송우민은 웃으며 말했다.“근데 정말 대단하다. 네가 이렇게 멋진 사람일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우민아, 너무 띄우지 마.”남설아는 조금 쑥스러워하며 웃었다.“운이 좋았을 뿐이야.”“그건 아니지.”송우민은 단호히 말했다.“너의 실력, 결단력, 배짱, 모두 내가 본 사람들 중 최고야.”“그 얘기는 그만하고...”남설아는 말을 돌리며 미소 지었다.“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해보자.”“좋아.”송우민이 고개를 끄덕였다.“남설아, 내 생각엔 지금이 기회야. 우리가 배건 그룹을 한 방에 무너뜨리고 배서준한테 확실하게 복수해야 해!”그의 눈빛에는 분노와 집념이 가득했다.마치 지금 당장이라도 배서준을 단죄하고 싶은 듯했다.그러나 강연찬은 조용히 눈살을 찌푸렸다.“난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해.”“왜?”송우민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지금 배건 그룹은 거의 끝장난 상태잖아.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