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설아의 눈물이 끝내 떨어지고 말았다. 평생의 눈물은 오직 배나은을 위해 흘릴 줄만 알았는데 지금 이렇게 배서준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그는 오랜 세월을 사랑해온 사람이었고 온 마음을 다해 헌신해온 사람이었으며 심지어는 모든 걸 참고 견뎌줄 수도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설마 이런 사람이 사람답지도 못한 인간일 줄은 정말 몰랐다.그 입에서 나오는 말은 온통 손익 계산뿐, 자연의 법칙이라며 감정이라고는 전혀 없었다.마치 배나은이 사람이 아니라 한 마리 개처럼, 아니, 그보다도 못한 존재인 것처럼, 없어져도 그만인 한낱 풀잎에 불과한 것처럼 여기고 있었다.그 마음속엔 단 한 번도 딸을 품은 적이 없었다. 배나은이란 존재는 배서준의 인생에서 단 한 줄의 흔적도 남기지 못했다.“당신이 날 한 번도 사랑한 적 없다는 건 알아요. 날 미워해도 좋아요. 하지만 나은이는, 그 아이는 아무 잘못도 없었어요!”“서준 씨, 내가 이 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게 뭔지 알아요? 당신과 함께 나은이를 낳은 것, 그리고 당신이 나은이의 친아빠라는 사실을 바꿀 수 없다는 거예요!”남설아의 머리카락은 흐트러지고 눈가는 부어오를 대로 부어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지옥에서 올라온 아귀처럼 일그러져 있었다.남설아는 그동안 수년간 배서준 앞에서만큼은 늘 감정을 억제해온 사람, 한 번도 이렇게 미친 듯이 소리친 적 없던 사람이었다.그런데 지금의 표정은 너무나 처절했고 그 광기 어린 모습에 배서준은 혐오를 드러냈다.“배씨 가문 사모님으로서 언제든 침착함을 유지해야 하는 게 마땅해.”“딸은 죽었고 우리 아버지는 반신불수가 됐어. 이걸로 서로 비긴 거야. 그러니까 너는 나랑 돌아가. 넌 여전히 배씨 가문 사모님이야.”배서준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 다음 수순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에게 있어 지금 남설아가 붙들고 있는 이 감정들은 전혀 중요한 게 아니었다.중요하지 않은 아이 하나, 죽으면 그만이라는 식이었다.그 말을 들은 순간 남설아는 완전히 깨달았다.이 사람
남설아가 끝까지 체면을 버린 이상, 배서준도 더는 봐줄 생각이 없었다. 회사로 돌아가자마자 그는 지시를 내렸다.“당장 남도일을 찾아와.”“대표님, 남도일은...”비서인 천기준은 난처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그러나 배서준의 날카로운 눈빛에 결국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남도일은 지금 복역 중입니다.”‘감옥에 있다고?’그 말에 배서준은 다소 놀란 기색을 드러내더니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무슨 일이야?”“예전에 빚이 있었는데 수표가 부도 처리되자... 남설아 씨가 빚 대신 넘겼다고 들었습니다. 그 일로 강연찬 쪽에서 손가락 하나를 잘라버리고 감옥에 보냈다고 하더군요.”천기준은 이런 건 솔직히 말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뭐라고?”배서준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왜 나는 몰랐지?”그의 날 선 질문에 천기준은 입을 다물고 말았다. 할 말이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마누라가 어떤 사람인지도 제대로 모르면서 지금 와서 직원한테 화풀이하면 뭐가 달라지나?’“나가.”배서준은 이를 악물고 손을 휘저었다.‘남도일이 분명 남설아를 쥐고 흔들 수 있는 약점이라 생각했는데 그 끈이 이미 끊어졌다고?’강연찬은 배서준에게 있어서 진짜 재수 없는 재앙 그 자체였다.창가로 다가가 복잡한 도로를 내려다보며 배서준은 굳은 얼굴로 중얼거렸다.“남설아, 이 모든 건 네가 날 이렇게 만든 거야.”한편 남설아 역시 미친 듯이 원고를 써 내려가고 있었다.반드시 배서준을 사회적으로 끝장낼 작정이었다.사람은 자신의 죗값을 반드시 치러야 한다. 특히 배서준 같은 자는 더욱 그래야 했다.그가 무슨 자격으로 이 모든 걸 피해갈 수 있단 말인가?그때 강연찬이 문을 열며 안으로 들어왔다.그러고는 손에 들린 배달 음식을 책상 위에 내려놓으며 말했다.“배서준, 반격 시작했어.”“반격?”남설아는 예상치 못한 말에 눈을 떴다.“어떤 반격?”“네가 그때 얼마나 온갖 수를 써가며 그와 결혼했는지, 어떻
사실 지금의 배건 그룹은 이미 껍데기만 남은 상태였다.심지어 적자도 꽤나 쌓여 있었다.그러니까 만약 정말 정면 충돌하게 된다면 남설아가 얻을 수 있는 건 고작 망가진 회사를 떠안는 것뿐이었다.하지만 이 결과는 그녀가 아무것도 모를 때에나 가능한 얘기였다.지금처럼 모든 것을 알아버린 이상, 절대 배서준 뜻대로 되게 둘 수는 없었다.“오빠, 이것 좀 흘려줘. 사람들이 내 사생활에 관심이 많은지 아니면 이쪽에 더 관심이 많은지 한번 보자고.”남설아는 비웃듯 콧소리를 내며 옆에 있는 강연찬을 올려다봤다.강연찬은 넘겨받은 자료를 훑어보았다. 비록 핵심 자료는 아니었지만 충분히 실체를 드러낼 수 있는 수준이라 판단이 됐다.“역시 내 후배답네. 대단해.”그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바로 노트북을 꺼내 작업을 시작했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설아는 어쩐지 조금 민망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걸 자기 앞에서 바로 해버리는 건 좀 아닌 것 같았다.‘자신을 피해자인 양 포장하려고? 그럼 더더욱 그렇게 못하게 만들어야지.’얼마 지나지 않아 인터넷에는 새로운 폭풍이 휘몰아쳤다.처음엔 많은 네티즌들이 또 하나의 재벌가 막장극인가 하고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지만 곧 전문가들이 등장해 이상한 낌새를 감지하기 시작했다.그들은 하나둘씩 실마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이거, 회사 자산을 빼돌린 거 아닌가요?][데이터가 완벽하진 않아서 단정하긴 어렵지만 느낌이 그래요.][헐... 이게 진짜면 콩밥 먹으러 가는 거 아님?][결혼해서도 전 여자친구랑 엮인 거야 그렇다 쳐도 이건 감정이 아니라 돈 문제잖아.이건 선 넘은 거지.]점점 거세지는 여론은 곧바로 배건 그룹의 이사회에까지 닿았다.배씨 가문이 절대적인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해도 다른 주주들이 없는 건 아니었다.이들은 평소엔 경영에 크게 관여하지 않았지만 그들이 들고 있는 주식의 영향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그 시각, 남설아는 자신이 보유한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고 강연찬에게 그 자금을 맡
원하는 게 분명하다면 그만큼의 대가는 감수해야 했다.아마 배서준에게 너무 깊이 상처받았기에 지금은 목적이 확실한 사람이 오히려 덜 두렵고 감정에 휘둘려 움직이는 사람이 더 두려웠는지도 몰랐다.남설아가 안도한 듯한 표정을 짓자 강연찬은 울컥한 듯 그녀의 코를 꼬집으며 툴툴댔다.“너 진짜 무심하긴 무심하다!”“아야!”남설아는 즉시 반격하며 그의 손을 탁 쳐냈다.아직 해야 할 일들이 많기에 강연찬은 아쉬움을 뒤로한 채 자리를 떴고 남설아는 그를 배웅하려고 문을 열었다.하지만 그 순간 카메라와 마이크, 질문들이 쏟아졌다.“사모님, 여기가 바람피운 장소 맞습니까?”“옆에 있는 이 남성과의 관계는요? 정말 혼인 중에 외도를 한 건가요?”기자들의 질문은 시작부터 칼날 같았다.남설아는 단박에 알아챘다. 이 기자들, 그리고 자신이 있는 이 주소까지, 전부 배서준의 작품이었다.그는 분명 지금 컴퓨터 화면 너머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내가 망신당하고 눈물 흘리며 허둥대는 장면을 기대하고 있겠지. 언제나 그랬듯 그 사람 눈에 난 무능한 존재일 뿐이었으니까.’하지만 안타깝게도 배나은이 세상을 떠난 그 순간부터 남설아는 더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그녀는 흔들림 없이 기자들을 마주했고 오히려 강연찬을 은근슬쩍 보호하는 태도까지 보였다.“여러분,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네요. 저와 배서준 씨는 이미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은 상태입니다.”“그리고 이분은 제 선배이자 파트너인 강연찬 씨입니다. 저희 둘이 함께 IT 회사를 운영하고 있어요. 필요하신 분들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제가 직접 할인도 해드립니다.”기자들이 진흙을 던지는 와중에도 남설아는 이 상황을 홍보 기회로 바꿔버렸다.“사모님, 그렇게 말씀하시는 건 결국 본인이 혼인 중 외도를 인정한 거 아닌가요? 그래서 이혼까지 간 거고?”“회장님이 물려준 지분도 결국 이 남자한테 다 퍼주신 거 아닙니까?”기자는 집요하게 파고들며 남설아를 수치스러움의 중심에 세우려 했다.그러나 남설아는 결코
“사과는 필요 없어요. 변호사한테 받을 서류나 기다리시죠.”강연찬은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차갑게 내뱉고는 그대로 지나쳐 나가버렸다.남설아는 오히려 그녀를 동정하듯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기자님, 시간 되시면 강씨 가문 법무팀 수준 좀 알아보시는 게 좋을 거예요.”그러고는 문을 쾅 닫았다.이제 배씨 가문은 체면도 실속도 완전히 잃었다. 반격도 엉망진창으로 망해버렸다.배건 그룹, 홍보팀.“대체 일을 어떻게 한 거야!”“쓸모없는 것들 같으니라고!”평소의 냉철하고 침착한 이미지는 온데간데없이 배서준의 얼굴은 시커멓게 질려 있었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문서를 그대로 책상 위에 내던졌다.홍보팀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얼어붙었다.하나같이 억울한 심정이었다.누가 이런 사태를 예상했겠는가? 결정적으로 이 사단은 자기네들이 만든 것도 아니지 않은가?‘못된 짓들은 다 자기가 해놓고 왜 지금 와서 책임을 우리한테 떠넘기는 거야?’아무도 말을 하지 않자 배서준의 표정은 점점 더 어두워졌고 목소리는 점점 더 낮아지다가 폭발했다.“다 죽은 거야? 왜 말을 안 해? 이제 어떻게 할 거냐고!”마지막 한마디는 거의 고함이었고 홍보팀 사무실은 다시 침묵에 휩싸였다.모두 숨조차 죽인 채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지금 이 타이밍에 입을 열었다간 누구든 한 방에 잘릴 분위기였다.그때, 천기준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대표님, 이사님들이 모두 도착하셨습니다. 지금 회의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그 사람들이 지금 왜 온 건데!”배서준은 다시금 분노했다.그들이 왜 왔겠는가?말할 것도 없이 자산 유용 건을 따지러 온 것이었다.회사 통장이 텅 비어 있지는 않은지 그걸 확인하러 온 게 분명했다.그 시각, 남설아도 회의 참석 통보를 받았다.지금 그녀는 배건 그룹의 최대 주주이기에 이사회에 참여할 자격이 있었다.거울 앞에 선 그녀는 차분하게 검정 수트를 꺼내 입고 옅은 메이크업을 했다.분위기는 냉정하고 단호했다.눈빛은 더없이 매서운 것이 말 그대로
남설아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지금 모든 비난의 화살이 나에게 향하는 게 아니야. 배서준이지.”만약 배서준이 재산을 빼돌리고 배건 그룹을 무력화하지 않았다면 이 사람들은 당연히 그의 입장에서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를 질책하려고 온 상황이었다. 그리고 남설아는 단순히 전달자이자 증인일 뿐이었다.이렇게 생각하니 남설아는 가볍게 웃음을 지었다. 이제 정말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배서준이 궁지에 몰린 모습을 보고 싶어졌다.그를 처음 만난 이후 줄곧 높은 곳에 서 있던 배서준의 모습만 봐왔다. 남설아는 그런 모습을 이제 질릴 만큼 충분히 보았다.그녀가 이렇게 확신에 찬 모습을 보이자 강연찬은 만족스러워하며 미소 지었다.“그래, 이게 바로 너야. 우리 설아.”학창 시절 강연찬은 남설아를 ‘우리 설아’라고 불렀었다. 지금 다시 불러도 너무나 자연스러웠지만 정작 남설아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두 손으로 안전벨트를 꼭 움켜쥔 채 그녀는 무슨 감정인지 알 수 없는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하여 깊이 숨을 들이마신 뒤 얼굴을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곧 배건 그룹에 도착했다. 남설아는 차에서 내리기 전, 미리 준비해 둔 하이힐로 갈아신었다.그러고는 강연찬을 바라보며 살짝 웃어 보인 뒤, 바로 몸을 돌려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입구에서 자신의 이름을 말하자마자 천기준이 직접 내려왔다. 두 사람은 눈빛을 교환한 뒤, 함께 위층으로 향했다.“사모님...”“설아 씨라고 불러요.”남설아는 단번에 호칭을 정정했다.예전에도 밖에서는 ‘배씨 가문 사모님’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적이 없었다. 하물며 지금은 더더욱 그럴 필요가 없었다.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틀어진 사이인데 왜 굳이 가식적으로 예의를 차려야 한단 말인가?“설아 씨, 지금 모든 이사진이 회의실에 모여 있습니다. 대표님의 상황이 아주 좋지 않습니다. 도와주지 않으면 버티기 어려울 겁니다.”“버티든 말든 나랑 무슨 상관이에요?”남설아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비꼬듯
지금 남설아는 배건 그룹에서 배서준 다음으로 가장 많은 지분을 가진 최대 주주였다. 따라서 이 자리는 당연히 그녀가 앉아야 할 자리였다.그러나 한 남자가 이를 가로막으며 단호하게 냉소를 내뱉었다.“네가 뭔데? 그저 집에서 빨래나 하고 애나 보는 가정주부 주제에 지분 좀 있다고 다 할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하는 거야?”이 말은 분명 의도적으로 회의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들리도록 한 것이었다. 물론 주식 보유량도 중요했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능력이었다.배건 그룹이 지금의 위치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배서준의 뛰어난 사업 수완 덕분이었다. 그래서 여기 있는 이사진들 역시 속으로는 그에게 더 기대고 있었다.반면 남설아는? 그들의 눈에는 단지 집에서 빨래하고 요리하며 아이나 키우는 가정주부일 뿐이었다.조용히 집에서 편안한 삶을 누리고 있다면 모를까 경영에 간섭하려 한다니 어처구니가 없었다.그러나 남설아는 전혀 주저하지 않았고 옆에 있던 컵을 그대로 들어 올려 그 남자의 머리에 힘껏 내리꽂았다.“이제 좀 정신이 들어요?”남자는 아무리 생각해도 믿을 수 없었다. 그동안 순종적이고 나약하기만 했던 여자가 감히 이렇게 대놓고 폭력을 행사할 줄은 말이다.머리를 감싸 쥔 채 경악스러운 눈빛으로 그는 남설아를 바라보았다.“감히...!”“왜요? 내가 감히 못 할 것 같아요?”남설아는 반으로 깨진 컵을 단단히 쥐고 위협적으로 내밀었다.“더 맞아보고 싶으면 한 번 더 떠들어 봐요.”남자는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이를 악물었지만 여기서 더 나섰다가는 정말 들것에 실려 나갈 수도 있었다.결국 억울한 표정을 숨기지도 못한 채 이를 갈며 자리에서 일어났다.남설아는 전혀 개의치 않고 태연하게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다리를 꼬고 앉아 냉정한 시선으로 배서준을 바라보았다.“배 대표님, 이렇게 주주들을 모두 모아놓고 무슨 중요한 안건이라도 있나요?”“제가 알기로 오늘은 주주총회 일정이 아닌데요?”이 말 한마디가 배서준을 그대로 궁지로
“남설아!”배서준이 갑자기 폭발하듯 소리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성큼성큼 그녀를 향해 돌진해왔다.남설아는 애초에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다.배서준이 평소에도 이성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여 그녀는 주머니에 미리 숨겨두었던 전기충격기를 꺼내더니 그대로 배서준의 배에 찔러 넣었다.전류가 흐른 소리와 함께 배서준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았다.“배 대표님, 여긴 회사입니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지금처럼 폭력적인 행동을 반복한다면 정식으로 신고하고 법적으로 대응하겠습니다.”남설아는 싸늘한 눈빛으로 배서준을 내려다보며 차분하고도 단호하게 경고했다.이제는 감정이 아니라 철저하게 ‘공과 사’를 구분하는 태도였다.회의실 안의 사람들은 이미 배서준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고 모두들 일제히 노트북을 열고 메일함을 확인하며 그녀가 보낸 자료들을 검토하기 시작했다.그러자 순식간에 회의실 안의 공기가 무거워졌다.처음엔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들이 과장된 소문이라고 생각했던 이사들이 실제 자료를 보며 얼굴빛을 하나둘 굳히기 시작한 것이다.정작 온라인에서 퍼졌던 건 전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고 실제 상황은 훨씬 더 심각했다.천기준이 다급히 달려와 바닥에 쓰러진 배서준을 부축했다.“대표님, 괜찮으십니까? 병원에 가보셔야...”하지만 배서준은 그 손을 거칠게 뿌리치고 남설아를 노려보며 이를 악물었다.“왜?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야? 너랑 나는 부부잖아! 내 것이 곧 네 거 아냐?”“그래요? 그럼 당신 말이 맞는지, 당신 양심에 한번 손 얹고 생각해봐요.”남설아는 냉소를 띠며 한마디 한마디를 또렷하게 쏘아붙였다.“만약 당신 것이 내 거였다면 왜 내 딸은 고작 1억 2000만 원의 치료비 때문에 죽어야 했을까요?”1억 2000만은 남설아에겐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고통의 숫자였다.딸이 병원에서 죽음의 문턱에 서 있을 때, 배서준은 똑같은 돈으로 다른 여자를 위해 불꽃놀이를
차 안으로 돌아온 서유라는 여전히 드레스를 고른 기쁨에 들떠 있었다.“서준아, 우리 이번 파티에서 가장 눈에 띄는 커플이 되지 않을까?”그녀는 기대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그럴 거야.”배서준이 대답했지만, 말투에는 영혼이 없었다.“다행이네.”서유라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서준아, 네가 이렇게 같이 와줘서 정말 좋아.”그녀는 배서준의 어깨에 기대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배서준은 말없이 그녀의 등을 가볍게 토닥였다.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계속 남설아의 모습이 떠올랐고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파티 당일,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행사장은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고 분위기 또한 고급스럽고 활기찼다.남설아와 강연찬이 모습을 드러내자 주변에서 작은 술렁임이 일었다.남설아는 연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단정하면서도 기품 있는 자태를 뽐냈고 강연찬은 깔끔한 검은색 정장을 입고 여유롭고 세련된 분위기를 풍겼다.두 사람은 함께 서 있는 것만으로도 시선을 끌었고 자연스럽게 주목받는 존재가 되었다.“남 대표님, 강 대표님, 파티에 오신 걸 진심으로 환영합니다.”서 회장 부부가 반갑게 맞이했다.“서 회장님, 사모님, 축하드립니다.”남설아가 미소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남 대표님께서 참석해 주시다니 저희가 정말 영광이에요.”서 회장의 부인인 차혜미가 남설아의 손을 잡으며 따뜻하게 말했다.“별말씀을요, 사모님.”남설아가 정중하게 답했다.“이분이 바로 강 대표님이시죠?”서기찬이 강연찬을 바라보며 물었다.“네, 서 회장님.”남설아가 소개했다.“저의 비즈니스 파트너이자 좋은 친구인 강연찬 대표님이에요.”“강 대표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서기찬이 손을 내밀었다.“반갑습니다, 서 회장님.”강연찬은 예의를 갖춰 악수했다.“두 분 안으로 들어가시죠. 자리를 미리 준비해두었어요.”서기찬이 손짓했다.“감사합니다.”남설아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세 사람은 함께 연회장 안으로 들어갔다.조금 떨어진 곳에 배서준과 서유라도 행사장
배서준은 서유라가 들뜬 모습으로 웃고 있는 걸 보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괜히 불편하고 답답했다.그는 말없이 남성복 코너로 가서 대충 눈에 들어오는 정장을 집어 들었다.“손님, 정말 안목이 좋으시네요. 이건 저희 매장에서 가장 최근에 들어온 신상이에요. 이탈리아산 원단으로 수제 재단된 제품이라 고객님 체형에 정말 잘 어울리실 거예요.”점원이 열정적으로 설명했다.배서준은 아무 말 없이 검은색 정장을 들고 탈의실로 들어갔다.정장을 갈아입고 거울을 바라본 그는 문득 거울 속 자기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저 사람이 정말 내가 맞아?’한때 야망으로 가득하고 세상을 거머쥘 듯 당당했던 배서준은 이제는 서유라의 기대와 기준에 맞춰 움직이는 꼭두각시처럼 보였다.“서준아, 다 입었어?”서유라가 탈의실 밖에서 재촉했다.“응.”배서준은 문을 열고 나왔다.“와, 서준아, 너 이 정장 입으니까 진짜 멋있다.”서유라는 마치 영화 속 배우를 보는 듯 눈에 감탄이 가득했다.“진짜 영화배우 같아.”배서준은 가볍게 웃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서유라가 이런 말들을 듣는 걸 좋아한다는 걸 알지만 지금은 그런 말을 할 기분이 아니었다.“이걸로 할게.”배서준은 피곤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때, 매장 입구 쪽에서 구두 소리가 들려왔다.남설아와 강연찬이 매장 안으로 들어왔다.눈이 마주친 순간, 공기가 얼어붙는 듯했다.배서준의 시선은 남설아에게 고정되었고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남설아는 연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단정하면서도 우아한 분위기를 풍겼다.드레스는 그녀의 몸매를 자연스럽게 살려주었고 살짝 올려 묶은 머리 사이로 드러난 목선과 쇄골은 고급스러움을 더했다.그녀는 마치 한 송이 활짝 핀 제비꽃 같았다. 요란하지 않지만, 눈에 띄는 아름다움이었다.배서준의 가슴이 순간 쿵 하고 내려앉았다.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는 예전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다.그녀의 당당함과 여유는 서유라가 따라올 수 없는 것이었다.“강 대표님과 설아 씨도 드레스 고르러
“그날 같이 가자.”“응.”강연찬은 고개를 끄덕였다.한편, 배서준 역시 서 회장 부부가 주최하는 파티의 초대장을 받았다.그는 원래 서유라와 함께 참석해 둘의 관계와 입지를 보여줄 생각이었다.“유라야, 서 회장 부부가 비즈니스 파티를 연대. 우리 둘 다 초대했어.”배서준은 초대장을 들고 서유라에게 말했다.“같이 갈래?”“당연히 가야지.”서유라는 웃으며 말했다.“이런 기회에 좋은 인맥도 많이 만들 수 있잖아.”“그래.”배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같이 가자.”“응.”서유라가 고개를 끄덕였다.“서준아. 넌 정말 다정해.”서유라는 배서준의 품에 기대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하지만 배서준은 남설아도 그 파티에 참석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마음속에 복잡한 감정이 피어올랐다.“뭐? 남설아도 간다고?”배서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네, 대표님.”천기준이 답했다.“서 회장 부부가 남 대표님도 초대했답니다.”배서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표정이 어두워졌다.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남설아가 강연찬과 함께 파티에 나타나는 모습을 상상하자 괜히 기분이 불편해졌다.“서준아, 무슨 일 있어?”서유라는 그의 이상한 기색을 눈치채고 물었다.“아니야.”배서준은 고개를 저었다.“그냥, 남설아가 올 줄은 몰랐어.”“오면 어때.”서유라가 말했다.“우리가 남설아를 무서워할 이유는 없잖아.”“무서워서 그런 게 아니야.”배서준이 대답했다.“그냥...”그는 어떻게 얘기했으면 좋을지 몰랐다. 그저 가슴이 무척 답답했다.“됐어, 너무 신경 쓰지 마.”서유라가 달래듯 말했다.“우리 둘이 함께 가서 보여주자. 우리가 얼마나 잘 지내고 있는지.”“그래, 그게 좋겠다.”배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유라야, 네가 있어서 정말 든든해.”서유라는 배서준과 함께 파티에 참석하겠다고 먼저 제안했다.“서준아, 이런 자리에는 내가 같이 가야지.”그녀는 부드럽게 말하며 따뜻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네 연인이니까 함께 이겨내야 할 책임이 있어.
배서준이 회사로 돌아왔을 때, 그를 반긴 것은 직원들의 열렬한 환영이 아니라 책상 위에 산처럼 쌓인 서류들과 불안으로 가득 찬 얼굴들이었다.그는 자신이 자리를 비운 동안 회사의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내가 없는 동안 내가 지시한 대로 진행됐어?”배서준이 천기준에게 물었다.“네, 대표님.”천기준은 서둘러 대답했다.“지시에 따라 주가 일부는 안정시켰고 마케팅도 강화했습니다. 하지만...”“하지만 뭐?”배서준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하지만 남 대표님 쪽의 공세가 너무 강해서... 우리가 제대로 대응을 못 하고 있습니다.”천기준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배서준은 말없이 책상 앞으로가 높게 쌓인 서류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지금 뭔가를 하지 않으면 배건 그룹은 정말로 무너질 수도 있다는 불안이 그를 짓눌렀다.“각 부서의 팀장들에게 10분 후에 회의실로 모이라고 전해.”배서준이 말했다.“네, 대표님.”천기준은 얼른 대답하고는 회의 소집을 위해 나갔다.배서준은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지금은 감정이 아니라 이성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어떻게든 회사를 다시 일으켜야 했다.10분 후, 회의실은 이미 각 부서의 팀장들로 가득 차 있었다.배서준은 회의실 중앙에 앉아 익숙한 얼굴들을 바라보며 복잡한 심경을 숨겼다.그 순간, 서유라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스쳤다.“서준아, 나는 널 믿어. 넌 반드시 배건 그룹을 다시 일으킬 수 있을 거야.”“고마워, 유라야.”배서준은 서유라와의 대화를 떠올리고 있었다.“네가 곁에 있어 줘서 난 두렵지 않아.”한편, 남설아의 회사는 강연찬과 송우민의 지원을 받으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그녀의 기업은 빠르게 시장 점유율을 넓혀가고 있었고 그에 따라 많은 비즈니스 파트너들에게 인정받으며 여러 초청도 받게 되었다.이날, 남설아는 서 회장 부부가 주최하는 상류층 비즈니스 파티 초대장을 받았다.서 회장 부부는 재계의 거물로, 남설아의 회사와도 협력 관계에
“그럼 됐어.”서도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누나, 나한테 시킬 일 있으면 뭐든 말해.”“응.”서유라가 말했다.“당분간은 여기 남아서 나 잘 챙기고 배서준도 잘 감시해. 남설아랑 접촉 못 하게 해야 해.”“알겠어. 걱정하지 마.”서도현은 단호하게 말했다.한편, 배서준은 회사로 복귀하자마자 긴급회의를 소집했다.“여러분, 최근 우리 회사의 상황은 매우 심각합니다.”회의실 중간 자리에 앉은 배서준은 굳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우리는 지금 즉시 대응책을 세워서 상황을 돌려놔야 합니다.”“배 대표님, 계획이 있으신가요?”한 주주가 물었다.“이미 여러 가지 대응 방안을 준비해 두었습니다.”배서준이 말했다.“첫째, 주가를 안정시켜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해야 합니다. 둘째, 마케팅을 강화해서 잃어버린 시장 점유율을 되찾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내부 정비를 통해 운영 효율을 높이겠습니다.”“말씀은 좋은데 구체적으로는 어떻게 실행하실 건가요?”또 다른 주주가 질문했다.“제가 직접 나서서 추진하겠습니다.”배서준이 단호하게 말했다.“최대한 빨리 세부 계획을 수립해서 여러분께 공유하고 논의하겠습니다.”“저희는 배 대표님을 믿을 것입니다.”한 주주가 말했다.“하지만 이전 행동들로 인해 실망한 것도 사실입니다.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랍니다.”“맞습니다, 배 대표님.”또 다른 주주도 덧붙였다.“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회사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합니다.”“여러분, 제가 실망하게 한 점은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배서준은 진지하게 말했다.“하지만 저를 다시 한번 믿어 주십시오. 반드시 배건 그룹을 이 위기에서 구해내겠습니다.”“기대합니다.”한 주주가 말했다.“대표님, 잘 지켜보겠습니다.”회의가 끝난 후, 배서준은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왔다.그는 통유리창 앞에 서서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며 복잡한 감정에 잠겼다.잠시 후, 그는 휴대폰을 꺼내 서유라에게 전화를 걸었다.“유라야, 괜찮아? 나 회사 도착했
서유라는 분노에 차 손에 들고 있던 태블릿을 바닥에 내던졌다. 태블릿의 화면이 산산조각이 났다.정교하게 화장한 얼굴이 일그러졌고 눈빛에는 분노와 공포가 뒤섞여 있었다.그녀는 서도현에게 먼저 나가보라고 한 뒤, 혼자 남아 배서준을 상대하기로 했다.혼자 방에 남은 서유라는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했다.그녀는 창가로 다가가 흐린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남설아, 너무 자만하지 마. 내가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며칠 뒤, 서유라는 대의를 위해 배서준에게 회사를 돌아가라고 설득했다.“서준아, 이제 돌아가.”서유라는 침대에 누운 채 창백한 얼굴로 힘없이 말했다.“회사가 더 중요해. 언제까지 내 곁에만 있을 수는 없잖아.”“하지만 네 몸 상태가...”배서준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난 괜찮아.”서유라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정말이야. 나 혼자서도 잘 챙길 수 있어.”“아니야, 네 곁에 있어야 마음이 놓여.”배서준이 고집을 부렸다.“서준아, 내 말 좀 들어봐.”서유라는 그의 손을 꼭 잡았다.“네가 날 걱정해주는 마음은 잘 알고 있어. 하지만 지금 회사 상황이 너무 안 좋아. 당신이 여기에 계속 있는 건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이야.”“그래도...”“돌아가.”서유라는 그의 말을 끊었다.“지금은 너만이 배건 그룹을 지킬 수 있어.”“유라야...”배서준은 감동한 듯 서유라를 바라보았다.“넌 정말 사려 깊은 사람이야.”“나는 네 여자니까 당연히 너를 위해 생각해야지.”서유라는 다정하게 말했다.“어서 돌아가. 내가 걱정하지 않게 해줘.”“그래.”배서준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회사 일은 내가 책임질게. 넌 꼭 건강 잘 챙겨야 해.”“응, 걱정하지 마.”서유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너도 무리하지 말고 몸조심해.”“그래.”배서준은 그녀의 이마에 다정하게 입을 맞췄다.“회사 일이 마무리되면 다시 올게.”“응, 기다릴게.”서유라는 잠시 오묘한 웃음을 지었다.배서준은 서유라를 데리고 함께 회사로
그는 줄곧 자신과 남설아는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 생각해왔지만 지금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강연찬이 회복되자 모두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고 특히 남설아는 그동안 불안했던 마음을 비로소 내려놓을 수 있었다.한편, 멀리 리조트에 머무르고 있던 서유라는 무척 불안하고 초조했다.서도현은 자신이 보낸 사람들이 전부 체포되어 한 명도 빠짐없이 구속되었다는 정보를 이미 입수했다. 남설아가 다치지 않은 것도 모자라 다친 사람마저 회복되었으니 그동안 벌인 모든 일이 헛수고가 되고 만 것이다.“뭐라고? 강연찬이 회복했다고?”서유라의 목소리는 고막을 찢을 듯 날카로웠다.“그 사람들이 엄청 대단하다고 하지 않았어? 어떻게 여자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남설아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여자잖아. 그런데도 그 여자 하나 못 건드려서 이 지경이 된 거야? 돈을 그렇게 많이 받고는 뭐 하겠다는 거야? 적은 돈이 아니었잖아.”서도현은 배서준의 감시를 피해 몰래 리조트 안으로 숨어들어와 서유라와 만났다.그의 얼굴엔 짜증이 가득했고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누나, 나도 최선을 다했어. 그놈들이 이런 일 하나도 제대로 못 할 만큼 이렇게 쓸모없을 줄은 누가 알았겠어. 그래도 다행인 건 그놈들이 입이 무지하게 무겁다는 거야. 지금껏 한마디도 안 했어. 나도 계속 지켜볼 거니까 우리한테 불똥이 튀게 두진 않을 거야.”“쓸모없는 놈들! 전부 다 쓸모없어!”서유라는 온몸을 떨며 분노했다. 그녀는 탁자 위에 놓인 찻잔을 집어 들어 바닥에 힘껏 내던졌다.“이제 어떡해? 강연찬이 회복됐다고? 혹시 이 일을 남설아한테 말하면 어쩌려고? 남설아가 알게 되면, 나는...”“누나, 진정해봐.”서도현은 급히 달래며 말했다.“강연찬이 회복됐다고 해도 우리가 한 짓이라는 증거는 없어. 게다가 그 킬러들은 내가 따로 구한 사람들이라서 우리랑 직접적인 연결 고리는 없어.”“그래도...”서유라는 여전히 불안했다.“남설아 그 여자는 워낙 교묘해서 무슨 단서라도 찾아내게 되면 우리는 순식간에
“알겠어.” 송우민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너희가 그렇게 말한다면 따를게.”“우민아, 고마워.” 남설아가 말했다.“네가 얼마나 복수를 원하고 있는지 알아. 하지만 우리는 냉정해야 해. 감정에 휘둘리면 안 돼.”“응, 알아.” 송우민이 고개를 끄덕였다.“너희 계획에 최선을 다해 도울게.”“좋아.”남설아가 미소 지었다.“우린 반드시 해낼 수 있을 거야.”세 사람은 구체적인 세부 사항을 더 논의한 후, 각자 맡은 일을 하기 위해 흩어졌다.연회가 끝난 후, 남설아는 사무실로 돌아와 밀린 서류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그때 강연찬이 따뜻한 우유 한 잔을 들고 들어왔다.“설아야, 우유 좀 마시고 일찍 쉬어.”강연찬이 우유를 건네며 말했다.“요즘 너무 무리하고 있어. 몸을 챙겨야지.”“응, 고마워, 오빠.”남설아가 우유를 받아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오빠도 일찍 쉬어.”“난 안 피곤해.” 강연찬이 말했다.“너 일 마칠 때까지 같이 있어 줄게.”“괜찮아, 오빠. 몸도 아직 완벽히 회복된 건 아니잖아. 푹 쉬는 게 좋아.”남설아가 말했다.“이 서류들은 나 혼자서도 처리할 수 있어.”“그래도 옆에 있어 줄게.”강연찬이 말했다.“너도 너무 늦지 않게 마무리하고 쉬어.”“응, 알겠어.”강연찬이 나간 뒤에도 남설아는 계속해서 일을 처리했다.그녀는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었다. 더 강해져야만 배서준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나은이를 위해 복수할 수 있었다.깊은 밤이 되어서야 남설아는 마침내 모든 서류를 정리했다.그녀는 기지개를 켜면서 창가로 가서 불빛이 번쩍이는 도시를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나은아, 보고 있어?”남설아는 혼잣말처럼 속삭였다.“엄마가 반드시 복수할 거야. 기다려줘.”다음 날, 남설아는 이른 아침부터 회사에 출근했다.그녀는 회사의 핵심 팀을 소집해 다음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여러분, 우리 그동안 좋은 성과를 거뒀지만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남설아가 말했다.“배건 그룹은 지금 위기에 처해 있지만
“선배...”남설아는 강연찬을 바라보며 가슴 깊이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꼈다.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송우민은 두 사람 사이의 다정한 분위기에 묘한 감정이 밀려왔다.기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마음 한편이 허전했다.연회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던 중, 남설아가 잔을 들어 모두와 함께 축하의 건배를 하려는 찰나 강연찬이 재빨리 손을 내밀어 그녀를 막았다.“설아야, 요즘 너무 무리했잖아. 술은 좀 줄여.”강연찬의 목소리엔 진심 어린 걱정이 담겨 있었다.남설아는 그의 따뜻한 눈빛을 마주하며 마음이 포근해졌다.하여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들고 있던 술잔을 내려놓고 대신 주스를 들었다.“알겠어. 선배 말 들을게.”남설아는 웃으며 말했다.그 광경을 본 송우민은 잔을 들고 조용히 다가왔다.“남설아, 내가 한 잔 올릴게.”송우민은 잔을 들며 말했다.“이번 성공, 정말 축하해.”남설아는 주스를 들고 잔을 맞댔다.“고마워, 우민아.”남설아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네 도움이 없었으면 이렇게 빠르게 결과를 얻진 못했을 거야.”“우린 친구잖아. 서로 도와야지.”송우민은 웃으며 말했다.“근데 정말 대단하다. 네가 이렇게 멋진 사람일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우민아, 너무 띄우지 마.”남설아는 조금 쑥스러워하며 웃었다.“운이 좋았을 뿐이야.”“그건 아니지.”송우민은 단호히 말했다.“너의 실력, 결단력, 배짱, 모두 내가 본 사람들 중 최고야.”“그 얘기는 그만하고...”남설아는 말을 돌리며 미소 지었다.“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해보자.”“좋아.”송우민이 고개를 끄덕였다.“남설아, 내 생각엔 지금이 기회야. 우리가 배건 그룹을 한 방에 무너뜨리고 배서준한테 확실하게 복수해야 해!”그의 눈빛에는 분노와 집념이 가득했다.마치 지금 당장이라도 배서준을 단죄하고 싶은 듯했다.그러나 강연찬은 조용히 눈살을 찌푸렸다.“난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해.”“왜?”송우민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지금 배건 그룹은 거의 끝장난 상태잖아.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