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민재는 강연찬을 힐끔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정말이지 강연찬의 이번 수는 진짜말 독했다. 아마 서유라가 오래 버티지 못하고 곧 무너질 것 같았다.“저쪽 전문가들은 정신병 환자 다루는 데 있어서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으니까. 전문가들에게 봐줄 필요 없다고 잘 말씀드려. 어쨌든 미래의 사모님의 건강이 더 중요하니까.”말을 하다가 강연찬은 그만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이미 서유라가 어떤 꼴을 당할지 뻔히 예상할 수 있었는데 그야말로 우스꽝스러울 정도였다.그의 즐거워하는 표정을 보자 안민재도 안도하며 조용히 물었다.“대표님, 그럼 저희는 이제 어떻게 할까요?”“우리 할 일 하면 돼. 저쪽에서 도움이 필요하면 설아가 연락할 거야.”강연찬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 일에 집중했다.서유라를 겨냥한 건 의도된 일이었다. 그녀를 통제하고 절대 편하게 살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 그게 바로 그가 해야 할 일이었다.병상에서 눈을 뜨는 순간 남설아의 눈빛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그녀는 코끝을 스치는 소독약 냄새가 역겨웠다.나은이가 아팠을 때부터 병원이란 곳이 싫었고 증오에 가까운 감정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 그녀가 다시 병실에 누워 있었다.“깨어났네.”배서준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남설아는 더욱 기분이 나빠졌다.기절한 건 연기였지만 저혈당 증세는 사실이었고 순간적으로 정신이 흐려졌던 것도 사실이었다. 어쩌면 하늘에 있는 나은이가 엄마의 복수를 돕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네.”그녀는 무표정하게 몸을 일으켰고 배서준을 외면한 채 고개를 숙였다.그 순간 그녀의 눈앞에 불쑥 히아신스 꽃다발 하나가 들이밀어졌다.그 순간 남설아는 깜짝 놀랐다. 그녀는 히아신스를 좋아했지만 그 사실을 배서준이 알고 있다는 게 너무나도 당혹스러웠다.즉 그는 지난 세월 동안 그녀를 기쁘게 할 방법을 몰랐던 게 아니었다. 단지 해주고 싶지 않았을 뿐.그걸 깨닫는 순간 남설아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서는 어금니를 악물며 그를 노려봤다.“이게 무슨 뜻이죠? 지금 이 상황이 대체 뭔데
“진짜예요?”남설아가 고개를 들어 올리며 맑고 반짝이는 눈동자로 그를 바라봤다.배서준도 자신이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었다. 분명 그는 억지로 이 자리에 앉아 있었고 마지못해 고개를 숙인 것이었다.그런데 이상하게도 저 반짝이는 눈동자와 마주하자 독하게 내뱉으려던 말이 입안에서 맴돌기만 했고 결국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이 순간 남설아는 더욱 비웃고 싶어 졌지만 배서준을 더없이 뜨거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그 시선을 견딜 수 없었던 배서준은 회사를 핑계 삼아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이렇게까지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 건 처음이었다. 이전까지 그는 이 여자에게 관심조차 없었으니 언제나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도무지 스스로가 왜 이러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병실을 나오자마자 곧장 위층으로 향했다.침대에 처참하게 묶여 있던 서유라는 배서준이 들어오자마자 몸을 필사적으로 흔들며 눈물을 흘렸다.그는 다가가 그녀를 묶고 있던 끈을 풀어주고 입을 막고 있던 테이프도 떼어냈다.“서준아, 드디어 왔네, 나를 구하러 온 거야?"“다들 널 위해서야. 네 병이 심각해서 치료가 필요해.”그는 서유라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말했다. 눈빛엔 애정이 서려 있었지만 입에서 나온 말은 한없이 차갑고 가혹했다.“나 병 안 걸렸어. 우리 집에 가자, 응? 다시는 문제 안 일으킬게.”서유라는 다급하게 그의 팔을 꽉 움켜잡았다.“유라야, 넌 원래 날 곤란하게 하지 않잖아. 그렇지?”“너희 동생 일,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지금은 남설아가 필요해.”배서준은 어쩔 수 없는 무력감과 강요가 뒤섞여 있는 눈빛을 하고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손을 잡고 애틋하게 쓰다듬었다.그 눈빛은 마치 그조차도 억울한 상황이고 서유라는 알아서 순응해야 한다는 뜻과 같았다.서유라는 이 남자가 낯설게 느껴졌다. 어쩌면 자신이 지금껏 그를 제대로 이해한 적이 없던 걸지도 몰랐다.‘대체 왜? 어쩌다 이렇게까지 변한 거지?’‘맹세했던 사랑은 거짓이었
남설아는 강연찬이 이런 비꼬는 말투를 쓸 줄은 정말 몰랐다.그의 모습이 어딘가 낯설어 피식 웃으며 말했다.“선배, 내가 기억하기로는 예전에 이렇게 독설적인 스타일 아니었는데?”“새로 생긴 버릇이야. 왜? 불법이라도 돼?”강연찬은 태연하게 받아쳤다.하지만 남설아는 뭔가 이상했다. 강연찬이 자기한테 말할 때마다 은근한 불만과 분노가 섞여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그를 의아하게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선배, 내가 기억하기론 선배한테 무슨 잘못한 일 없을 텐데? 근데 왜 나한테 이렇게 퉁명스럽게 말하는 거야?”“넌 배서준의 와이프잖아. 설령 나한테 잘못을 했다고 해도 그게 무슨 상관이야? 흥!”강연찬은 말할수록 기분이 상하는 듯했고 심지어 억울해 보이기까지 했다.그는 원래 남설아가 결혼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충격을 받았고 그녀가 이혼을 결심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속으로 몰래 기뻐했었다. 그런데 두 사람이 다시 부부 관계를 유지하기로 했을 줄 몰랐다.‘이게 무슨 일이래!’그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남설아는 대충 짐작이 가서 웃으며 말했다.“우리 둘은 원래 그냥 쇼였잖아. 그렇게까지 열받을 일은 아니지? 난 내 걸 다 찾아오면 그 인간을 가차 없이 차버릴 거야.”“좋아, 그럼 내가 네 걸 되찾아 주지, 어때?”강연찬은 재빠르게 다가와 그녀를 빤히 올려다보며 눈을 깜빡였다.그의 눈빛은 너무도 또렷하고 진지했다. 그대로 자신을 응시하는 시선이 왠지 모르게 당황스러웠다. 남설아는 거의 반사적으로 시선을 피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선배... 강연찬, 제발 이런 얘기하지 마.”“싫어. 꼭 해야겠어. 사실은 진작 했어야 했어. 남설아, 설아야, 나 너 좋아해.”강연찬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둘 사이에는 오랫동안 말로 표현되지 않은 감정이 존재했다. 학창 시절 내내 가벼운 불씨처럼 은근한 감정이 있었지만 끝내 서로에게 확실한 고백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강연찬이 유학을 떠났고 그 기회는 사라졌다.그리고 지금
남설아의 말을 들은 강연찬은 조용히 손을 거두고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좋아, 그럼 널 기다릴게.”이것이 배서준과 강연찬의 차이였다. 배서준은 오직 자기 자신만 생각했고 남들이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았다. 하지만 강연찬은 존중했고 기다려 주었다.그런 그를 바라보며 남설아의 마음은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스스로를 다잡기 위해 일부러 차갑게 말했다.“선배, 돌아가. 앞으로의 일은 내가 잘 처리할게요.”“응.”강연찬은 억지로 머물지 않았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용히 남설아의 뺨을 쓰다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문을 향해 걸어갔다.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남설아는 팔로 스스로를 꼭 감싸 안으며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이내 눈물이 조용히 흘러내렸다.다음 날 아침 배서준이 다시금 히아신스를 들고 찾아와서는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오늘은 어떤 것 같아?”그의 얼굴에는 한없이 다정한 기색이 서려 있었다. 마치 남설아가 그의 세상 전부라도 되는 것처럼.예전 같았으면 남설아는 이런 그의 태도에 마음이 설렜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그의 본모습을 알고 있는 이상 이런 가식적인 모습이 우스울 뿐이었다.늦어버린 사랑과 관심은 하찮기 짝이 없었다. 하물며 그마저도 가짜라면 아무 가치도 없는 법이었다.남설아는 무표정하게 입을 열었다.“대체 뭘 원하는 거예요?”“네가 아이를 원하는 거 알아.”“임신하게 해 줄게.”그는 마치 큰 결심이라도 한 듯 진지한 표정을 지었고 마치 그녀에게 크나큰 은혜라도 베푸는 듯한 태도로 말했다.그 오만한 모습이 역겨워 견딜 수 없었다!남설아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이를 악물었다.“난 지금 몸 상태가 안 좋아요. 아이 가질 수 없어요. 그리고… 당신도 아이 싫어하잖아요. 굳이 억지로 만들 필요 있겠어요?"“남설아, 대체 뭘 바라는 거야?”배서준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썹을 찌푸렸다. 그는 남설아가 전혀 기쁘지 않다는
배서준이 떠난 후 남설아는 책상 위의 히아신스를 그대로 쓰레기통에 내던졌다. 보는 것만으로도 역겨울 따름이었다!하지만 남을 불쾌하게 만드는 일이라면 그녀도 꽤 능숙했기에 그대로 위층으로 올라가 서유라의 방으로 향했다.지금 그녀 주변의 모든 사람은 강연찬이 미리 손을 써 둔 상태였으니 서유라를 만나는 것도 문제없었다.방에 들어서자마자 남설아는 팔짱을 낀 채 의자에 앉아 서유라를 비웃듯 바라보았다.“배서준의 운명적 사랑이 되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었어?”“남설아, 이 천박한 년아! 넌 천하의 개자식이야! 잔인하고 간교한 악녀라고!”서유라는 남설아를 보자마자 치를 떨며 이를 갈았고 욕설도 모자라 그녀를 저주하기까지 했다.예전 같았으면 남설아는 묵묵히 참거나 애써 못 들은 척했을지도 있었다. 하지민 지금은 가만히 당하기만 할 남설아가 아니었기에 그녀는 한 걸음 성큼 다가가 그대로 서유라의 뺨을 후려쳤다.“천박해? 대체 누가 천박한 년인데? 배서준은 가정이 있고 와이프도 자식도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창피한 줄도 모르고 달라붙은 건 너야. 진짜 뻔뻔한 건 너라고!”“잔인하다고? 감히 그런 말이 네 입에서 나와? 네가 뭘 했는지 모를 거라고 생각해? 나은이가 떠난 날 일부러 배서준을 붙잡아 둔 거 다 알아!”남설아는 그 일들을 떠올리기만 해도 심장이 분노로 터질 듯했다.서유라는 평소에도 늘 약한 척 가련한 척하며 동정을 샀지만 남설아는 그녀가 겉으로만 착한 척할 뿐 속은 시커먼 위선자에 불과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그 모든 연약함은 고작해야 거짓된 가면일 뿐이었다.서유라는 눈앞의 남설아를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언제나 비굴하게 당하기만 하던 남설아가 이렇게까지 날카로운 칼날을 세울 줄이야.서유라는 분을 참지 못한 채 이를 악물고 쏘아붙였다.“남설아, 배서준의 마음속엔 오직 나뿐이야. 그런데 네가 감히 나한테 이런 수모를 주겠다고? 좋아, 두고 봐. 네가 이렇게 나오면 내가 직접 배서준에게 이혼하라고 시킬 거야!”“내가 이혼을 두
문 앞에 서서 안에서 들려오는 서유라의 비명 소리를 들으며 남설아는 온몸이 개운해지는 기분이었다. 배서준도 똑같이 당해봐야 마땅했다.자신의 병실로 돌아오자 네 명의 스타일리스트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들어서자마자 모두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고 그중에서도 가장 앞에 서 있던 남자가 다가와 말했다.“사모님, 저는 인성훈입니다. 오늘 스타일링을 맡게 되었습니다.”“이곳에 있는 모든 것이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드레스와 액세서리입니다. 마음에 드시는 걸로 고르시면 됩니다.”인성훈이 뒤에 준비된 물품들을 가리켰는데 모두 최고급 명품 브랜드의 제품이었고 보석들은 국보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값비싼 것들이었다.그것들을 바라보며 남설아는 이번 기자회견과 저녁 연회가 꽤 중요한 행사라는 걸 직감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배서준이 이렇게까지 공을 들일 리가 없었다.그는 철저한 사업가라 이익이 보장될 때만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그 사실을 떠올리자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가장 비싼 걸로 할게요.”이미 차려진 밥상이라면 기꺼이 누릴 생각이었다. 지금 당장 배서준을 어떻게 할 수는 없어도 엿 정도는 먹일 수 있으니까.인성훈은 순간적으로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이전까지 남설아는 언제나 소극적이었고 선택하는 것도 최대한 보수적이며 저렴한 것들이었다. 그 때문에 스타일리스트들 사이에서도 그녀가 촌스럽고 격에 맞지 않는다는 말이 종종 오갔다. 배서준의 와이프로서의 품격이 부족하다는 수군거림까지도 있었다!하지만 지금 그녀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고 풍기는 분위기부터가 예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강렬했다.그런 변화가 반갑기라도 하듯 인성훈은 망설이지 않고 강렬한 붉은색 드레스를 꺼냈다.이 드레스는 착용자의 몸매를 완벽하게 드러내는 디자인이었다. 노출이 상당한 편이었으며 특히 등이 거의 전부 드러나는 과감한 스타일이었다. 입어보지 않았는데도 남설아는 이 드레스가 얼마나 대담한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그녀는 앞으로 나아가 드레스를 바라보더니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
가볍게 화장을 마치자 더욱 완벽하고 세련된 얼굴이 드러났다. 인성훈은 자신의 작품을 보며 몹시 흡족해했다.그들은 분명 뛰어난 실력을 가진 스타일리스트였지만 그래도 타고난 외모가 좋은 사람을 손보는 게 더 즐거웠다. 없는 걸 창조하는 것보다 있는 걸 살리는 게 훨씬 쉬웠고 효과도 확실했으니까.마치 화장을 안 한 듯하면서도 완벽한 변화를 주는 것, 그게 바로 최고의 경지였다.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던 남설아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사실 그녀는 원래는 이렇게 눈에 띄는 색감을 좋아했었는데 배서준과 함께한 후부터 그의 취향에 맞추기 위해 점점 자신의 색을 지워나갔다. 그가 저속하다고 평가한 후 무의식적으로 그의 눈치를 보며 칙칙한 색의 옷들만 골라 입게 됐다. 이제 와 돌아보니 그때는 자신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걸 전혀 깨닫지 못했다.“이거 아주 마음에 드네요, 계산은 배서준한테 하라고 하세요.”남설아는 당당하게 말했다.이 정도 돈은 배서준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그녀는 그 이상의 가치를 돌려줄 터였고 배서준이 손해 보는 장사는 하지 않으니까.거울 속 자신을 다시금 찬찬히 바라보던 남설아는 문득 자신이 상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배건 그룹.배서준은 곧바로 도착한 4억의 명세서를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뭐야 이게?”“사모님께서 오늘 저녁 파티에 입을 드레스와 주얼리입니다.”천기준이 담담하게 보고했다.그는 오랫동안 배서준을 보좌해 왔지만 사모님이 이렇게 큰돈을 쓴 건 처음이었다.하지만 따지고 보면 같은 급의 사모님들은 매달 이 정도는 기본으로 지출하고 있었다.남설아가 배서준의 와이프로 살면서 감정적으로만이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얼마나 많은 희생을 했는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배서준은 눈썹을 잔뜩 찌푸리며 불쾌하게 중얼거렸다.“이제 돈 쓰는 재미라도 붙인 건가?”솔직히 그녀가 이 정도를 쓸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지금 그녀의 심기를 거스르면 자기한테도 좋을 게 없다는 걸 알기에 결국 마지못해 결제 서명을 했다.‘그래
“그래요? 이게 바로 방금 국제 슈퍼모델이 런웨이에서 입은 신상인데 뭐가 가볍다는 거죠?”“정말 고지식하다니까요.”남설아는 대놓고 눈을 굴리며 그의 가스라이팅을 단칼에 거절하고 한 마디로 맞받아쳤다.이건 정말 전례 없는 일이었다. 예전에는 배서준이 뭐라고 하면 그대로 따라야 했고 그는 온갖 방식으로 남설아를 깎아내렸지만 그녀는 감히 반박하지도 못했다. 심지어 스스로를 의심하며 자신이 정말 잘못한 게 아닌지 반성하곤 했다.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남설아는 더 이상 그렇게 어리석지 않았다. 그녀도 자신이 잘못한 게 아니라 그저 사람이 잘못됐을 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아까 스타일리스트들조차 예쁘다고 감탄했는데 유독 이 남자만 혼자 시커먼 얼굴을 하고 불만을 늘어놓고 있었다. 정말이지 감도 없고 분위기나 망치는 수준이었다.배서준도 자신이 단 두 마디 던졌을 뿐인데 이렇게나 많은 말을 되돌려 받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그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남설아, 이게 네 새로운 수법이야? 이렇게 해서 내 관심이라도 끌어보겠다고? 헛꿈 꾸지 마.”“대체 누가 꿈을 꾸는 건지 모르겠네요. 갈 거예요 말 거예요?”남설아는 완전히 인내심이 바닥났다.오늘 화장이 너무 잘 돼서 이미지 망가질까 봐 참는 거지, 아니었으면 지금 당장 배서준의 대가리에 하이힐을 내리꽂았을 것이었다.‘보는 눈 하고는? 안과나 좀 가보시지? 대표라는 사람이 병 보일 돈은 없는 거야?’돈은 그렇게 많으면서 병원 갈 생각은 안 하나?속으로 배서준을 온갖 욕설로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긴 후 그녀는 만족스럽게 입꼬리를 올리며 그를 그대로 지나쳤다.‘지금 여기 기자들도 없는데 쇼를 할 필요가 없잖아?’솔직히 남설아는 이제 배서준이 그냥 싫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혐오로 변해버렸다!이 남자와 닿기만 해도 역겨울 지경이었지만 배건 그룹의 핵심 자료를 손에 넣고 원래 자기 것이었던 걸 되찾기 전까지는 참아야 했다!남설아는 배서준 따위를 마음에서 지워버리기만 하면 인생이 이렇게도 평온할 수 있다
차 안으로 돌아온 서유라는 여전히 드레스를 고른 기쁨에 들떠 있었다.“서준아, 우리 이번 파티에서 가장 눈에 띄는 커플이 되지 않을까?”그녀는 기대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그럴 거야.”배서준이 대답했지만, 말투에는 영혼이 없었다.“다행이네.”서유라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서준아, 네가 이렇게 같이 와줘서 정말 좋아.”그녀는 배서준의 어깨에 기대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배서준은 말없이 그녀의 등을 가볍게 토닥였다.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계속 남설아의 모습이 떠올랐고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파티 당일,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행사장은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고 분위기 또한 고급스럽고 활기찼다.남설아와 강연찬이 모습을 드러내자 주변에서 작은 술렁임이 일었다.남설아는 연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단정하면서도 기품 있는 자태를 뽐냈고 강연찬은 깔끔한 검은색 정장을 입고 여유롭고 세련된 분위기를 풍겼다.두 사람은 함께 서 있는 것만으로도 시선을 끌었고 자연스럽게 주목받는 존재가 되었다.“남 대표님, 강 대표님, 파티에 오신 걸 진심으로 환영합니다.”서 회장 부부가 반갑게 맞이했다.“서 회장님, 사모님, 축하드립니다.”남설아가 미소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남 대표님께서 참석해 주시다니 저희가 정말 영광이에요.”서 회장의 부인인 차혜미가 남설아의 손을 잡으며 따뜻하게 말했다.“별말씀을요, 사모님.”남설아가 정중하게 답했다.“이분이 바로 강 대표님이시죠?”서기찬이 강연찬을 바라보며 물었다.“네, 서 회장님.”남설아가 소개했다.“저의 비즈니스 파트너이자 좋은 친구인 강연찬 대표님이에요.”“강 대표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서기찬이 손을 내밀었다.“반갑습니다, 서 회장님.”강연찬은 예의를 갖춰 악수했다.“두 분 안으로 들어가시죠. 자리를 미리 준비해두었어요.”서기찬이 손짓했다.“감사합니다.”남설아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세 사람은 함께 연회장 안으로 들어갔다.조금 떨어진 곳에 배서준과 서유라도 행사장
배서준은 서유라가 들뜬 모습으로 웃고 있는 걸 보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괜히 불편하고 답답했다.그는 말없이 남성복 코너로 가서 대충 눈에 들어오는 정장을 집어 들었다.“손님, 정말 안목이 좋으시네요. 이건 저희 매장에서 가장 최근에 들어온 신상이에요. 이탈리아산 원단으로 수제 재단된 제품이라 고객님 체형에 정말 잘 어울리실 거예요.”점원이 열정적으로 설명했다.배서준은 아무 말 없이 검은색 정장을 들고 탈의실로 들어갔다.정장을 갈아입고 거울을 바라본 그는 문득 거울 속 자기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저 사람이 정말 내가 맞아?’한때 야망으로 가득하고 세상을 거머쥘 듯 당당했던 배서준은 이제는 서유라의 기대와 기준에 맞춰 움직이는 꼭두각시처럼 보였다.“서준아, 다 입었어?”서유라가 탈의실 밖에서 재촉했다.“응.”배서준은 문을 열고 나왔다.“와, 서준아, 너 이 정장 입으니까 진짜 멋있다.”서유라는 마치 영화 속 배우를 보는 듯 눈에 감탄이 가득했다.“진짜 영화배우 같아.”배서준은 가볍게 웃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서유라가 이런 말들을 듣는 걸 좋아한다는 걸 알지만 지금은 그런 말을 할 기분이 아니었다.“이걸로 할게.”배서준은 피곤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때, 매장 입구 쪽에서 구두 소리가 들려왔다.남설아와 강연찬이 매장 안으로 들어왔다.눈이 마주친 순간, 공기가 얼어붙는 듯했다.배서준의 시선은 남설아에게 고정되었고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남설아는 연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단정하면서도 우아한 분위기를 풍겼다.드레스는 그녀의 몸매를 자연스럽게 살려주었고 살짝 올려 묶은 머리 사이로 드러난 목선과 쇄골은 고급스러움을 더했다.그녀는 마치 한 송이 활짝 핀 제비꽃 같았다. 요란하지 않지만, 눈에 띄는 아름다움이었다.배서준의 가슴이 순간 쿵 하고 내려앉았다.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는 예전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다.그녀의 당당함과 여유는 서유라가 따라올 수 없는 것이었다.“강 대표님과 설아 씨도 드레스 고르러
“그날 같이 가자.”“응.”강연찬은 고개를 끄덕였다.한편, 배서준 역시 서 회장 부부가 주최하는 파티의 초대장을 받았다.그는 원래 서유라와 함께 참석해 둘의 관계와 입지를 보여줄 생각이었다.“유라야, 서 회장 부부가 비즈니스 파티를 연대. 우리 둘 다 초대했어.”배서준은 초대장을 들고 서유라에게 말했다.“같이 갈래?”“당연히 가야지.”서유라는 웃으며 말했다.“이런 기회에 좋은 인맥도 많이 만들 수 있잖아.”“그래.”배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같이 가자.”“응.”서유라가 고개를 끄덕였다.“서준아. 넌 정말 다정해.”서유라는 배서준의 품에 기대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하지만 배서준은 남설아도 그 파티에 참석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마음속에 복잡한 감정이 피어올랐다.“뭐? 남설아도 간다고?”배서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네, 대표님.”천기준이 답했다.“서 회장 부부가 남 대표님도 초대했답니다.”배서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표정이 어두워졌다.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남설아가 강연찬과 함께 파티에 나타나는 모습을 상상하자 괜히 기분이 불편해졌다.“서준아, 무슨 일 있어?”서유라는 그의 이상한 기색을 눈치채고 물었다.“아니야.”배서준은 고개를 저었다.“그냥, 남설아가 올 줄은 몰랐어.”“오면 어때.”서유라가 말했다.“우리가 남설아를 무서워할 이유는 없잖아.”“무서워서 그런 게 아니야.”배서준이 대답했다.“그냥...”그는 어떻게 얘기했으면 좋을지 몰랐다. 그저 가슴이 무척 답답했다.“됐어, 너무 신경 쓰지 마.”서유라가 달래듯 말했다.“우리 둘이 함께 가서 보여주자. 우리가 얼마나 잘 지내고 있는지.”“그래, 그게 좋겠다.”배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유라야, 네가 있어서 정말 든든해.”서유라는 배서준과 함께 파티에 참석하겠다고 먼저 제안했다.“서준아, 이런 자리에는 내가 같이 가야지.”그녀는 부드럽게 말하며 따뜻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네 연인이니까 함께 이겨내야 할 책임이 있어.
배서준이 회사로 돌아왔을 때, 그를 반긴 것은 직원들의 열렬한 환영이 아니라 책상 위에 산처럼 쌓인 서류들과 불안으로 가득 찬 얼굴들이었다.그는 자신이 자리를 비운 동안 회사의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내가 없는 동안 내가 지시한 대로 진행됐어?”배서준이 천기준에게 물었다.“네, 대표님.”천기준은 서둘러 대답했다.“지시에 따라 주가 일부는 안정시켰고 마케팅도 강화했습니다. 하지만...”“하지만 뭐?”배서준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하지만 남 대표님 쪽의 공세가 너무 강해서... 우리가 제대로 대응을 못 하고 있습니다.”천기준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배서준은 말없이 책상 앞으로가 높게 쌓인 서류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지금 뭔가를 하지 않으면 배건 그룹은 정말로 무너질 수도 있다는 불안이 그를 짓눌렀다.“각 부서의 팀장들에게 10분 후에 회의실로 모이라고 전해.”배서준이 말했다.“네, 대표님.”천기준은 얼른 대답하고는 회의 소집을 위해 나갔다.배서준은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지금은 감정이 아니라 이성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어떻게든 회사를 다시 일으켜야 했다.10분 후, 회의실은 이미 각 부서의 팀장들로 가득 차 있었다.배서준은 회의실 중앙에 앉아 익숙한 얼굴들을 바라보며 복잡한 심경을 숨겼다.그 순간, 서유라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스쳤다.“서준아, 나는 널 믿어. 넌 반드시 배건 그룹을 다시 일으킬 수 있을 거야.”“고마워, 유라야.”배서준은 서유라와의 대화를 떠올리고 있었다.“네가 곁에 있어 줘서 난 두렵지 않아.”한편, 남설아의 회사는 강연찬과 송우민의 지원을 받으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그녀의 기업은 빠르게 시장 점유율을 넓혀가고 있었고 그에 따라 많은 비즈니스 파트너들에게 인정받으며 여러 초청도 받게 되었다.이날, 남설아는 서 회장 부부가 주최하는 상류층 비즈니스 파티 초대장을 받았다.서 회장 부부는 재계의 거물로, 남설아의 회사와도 협력 관계에
“그럼 됐어.”서도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누나, 나한테 시킬 일 있으면 뭐든 말해.”“응.”서유라가 말했다.“당분간은 여기 남아서 나 잘 챙기고 배서준도 잘 감시해. 남설아랑 접촉 못 하게 해야 해.”“알겠어. 걱정하지 마.”서도현은 단호하게 말했다.한편, 배서준은 회사로 복귀하자마자 긴급회의를 소집했다.“여러분, 최근 우리 회사의 상황은 매우 심각합니다.”회의실 중간 자리에 앉은 배서준은 굳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우리는 지금 즉시 대응책을 세워서 상황을 돌려놔야 합니다.”“배 대표님, 계획이 있으신가요?”한 주주가 물었다.“이미 여러 가지 대응 방안을 준비해 두었습니다.”배서준이 말했다.“첫째, 주가를 안정시켜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해야 합니다. 둘째, 마케팅을 강화해서 잃어버린 시장 점유율을 되찾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내부 정비를 통해 운영 효율을 높이겠습니다.”“말씀은 좋은데 구체적으로는 어떻게 실행하실 건가요?”또 다른 주주가 질문했다.“제가 직접 나서서 추진하겠습니다.”배서준이 단호하게 말했다.“최대한 빨리 세부 계획을 수립해서 여러분께 공유하고 논의하겠습니다.”“저희는 배 대표님을 믿을 것입니다.”한 주주가 말했다.“하지만 이전 행동들로 인해 실망한 것도 사실입니다.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랍니다.”“맞습니다, 배 대표님.”또 다른 주주도 덧붙였다.“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회사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합니다.”“여러분, 제가 실망하게 한 점은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배서준은 진지하게 말했다.“하지만 저를 다시 한번 믿어 주십시오. 반드시 배건 그룹을 이 위기에서 구해내겠습니다.”“기대합니다.”한 주주가 말했다.“대표님, 잘 지켜보겠습니다.”회의가 끝난 후, 배서준은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왔다.그는 통유리창 앞에 서서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며 복잡한 감정에 잠겼다.잠시 후, 그는 휴대폰을 꺼내 서유라에게 전화를 걸었다.“유라야, 괜찮아? 나 회사 도착했
서유라는 분노에 차 손에 들고 있던 태블릿을 바닥에 내던졌다. 태블릿의 화면이 산산조각이 났다.정교하게 화장한 얼굴이 일그러졌고 눈빛에는 분노와 공포가 뒤섞여 있었다.그녀는 서도현에게 먼저 나가보라고 한 뒤, 혼자 남아 배서준을 상대하기로 했다.혼자 방에 남은 서유라는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했다.그녀는 창가로 다가가 흐린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남설아, 너무 자만하지 마. 내가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며칠 뒤, 서유라는 대의를 위해 배서준에게 회사를 돌아가라고 설득했다.“서준아, 이제 돌아가.”서유라는 침대에 누운 채 창백한 얼굴로 힘없이 말했다.“회사가 더 중요해. 언제까지 내 곁에만 있을 수는 없잖아.”“하지만 네 몸 상태가...”배서준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난 괜찮아.”서유라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정말이야. 나 혼자서도 잘 챙길 수 있어.”“아니야, 네 곁에 있어야 마음이 놓여.”배서준이 고집을 부렸다.“서준아, 내 말 좀 들어봐.”서유라는 그의 손을 꼭 잡았다.“네가 날 걱정해주는 마음은 잘 알고 있어. 하지만 지금 회사 상황이 너무 안 좋아. 당신이 여기에 계속 있는 건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이야.”“그래도...”“돌아가.”서유라는 그의 말을 끊었다.“지금은 너만이 배건 그룹을 지킬 수 있어.”“유라야...”배서준은 감동한 듯 서유라를 바라보았다.“넌 정말 사려 깊은 사람이야.”“나는 네 여자니까 당연히 너를 위해 생각해야지.”서유라는 다정하게 말했다.“어서 돌아가. 내가 걱정하지 않게 해줘.”“그래.”배서준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회사 일은 내가 책임질게. 넌 꼭 건강 잘 챙겨야 해.”“응, 걱정하지 마.”서유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너도 무리하지 말고 몸조심해.”“그래.”배서준은 그녀의 이마에 다정하게 입을 맞췄다.“회사 일이 마무리되면 다시 올게.”“응, 기다릴게.”서유라는 잠시 오묘한 웃음을 지었다.배서준은 서유라를 데리고 함께 회사로
그는 줄곧 자신과 남설아는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 생각해왔지만 지금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강연찬이 회복되자 모두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고 특히 남설아는 그동안 불안했던 마음을 비로소 내려놓을 수 있었다.한편, 멀리 리조트에 머무르고 있던 서유라는 무척 불안하고 초조했다.서도현은 자신이 보낸 사람들이 전부 체포되어 한 명도 빠짐없이 구속되었다는 정보를 이미 입수했다. 남설아가 다치지 않은 것도 모자라 다친 사람마저 회복되었으니 그동안 벌인 모든 일이 헛수고가 되고 만 것이다.“뭐라고? 강연찬이 회복했다고?”서유라의 목소리는 고막을 찢을 듯 날카로웠다.“그 사람들이 엄청 대단하다고 하지 않았어? 어떻게 여자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남설아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여자잖아. 그런데도 그 여자 하나 못 건드려서 이 지경이 된 거야? 돈을 그렇게 많이 받고는 뭐 하겠다는 거야? 적은 돈이 아니었잖아.”서도현은 배서준의 감시를 피해 몰래 리조트 안으로 숨어들어와 서유라와 만났다.그의 얼굴엔 짜증이 가득했고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누나, 나도 최선을 다했어. 그놈들이 이런 일 하나도 제대로 못 할 만큼 이렇게 쓸모없을 줄은 누가 알았겠어. 그래도 다행인 건 그놈들이 입이 무지하게 무겁다는 거야. 지금껏 한마디도 안 했어. 나도 계속 지켜볼 거니까 우리한테 불똥이 튀게 두진 않을 거야.”“쓸모없는 놈들! 전부 다 쓸모없어!”서유라는 온몸을 떨며 분노했다. 그녀는 탁자 위에 놓인 찻잔을 집어 들어 바닥에 힘껏 내던졌다.“이제 어떡해? 강연찬이 회복됐다고? 혹시 이 일을 남설아한테 말하면 어쩌려고? 남설아가 알게 되면, 나는...”“누나, 진정해봐.”서도현은 급히 달래며 말했다.“강연찬이 회복됐다고 해도 우리가 한 짓이라는 증거는 없어. 게다가 그 킬러들은 내가 따로 구한 사람들이라서 우리랑 직접적인 연결 고리는 없어.”“그래도...”서유라는 여전히 불안했다.“남설아 그 여자는 워낙 교묘해서 무슨 단서라도 찾아내게 되면 우리는 순식간에
“알겠어.” 송우민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너희가 그렇게 말한다면 따를게.”“우민아, 고마워.” 남설아가 말했다.“네가 얼마나 복수를 원하고 있는지 알아. 하지만 우리는 냉정해야 해. 감정에 휘둘리면 안 돼.”“응, 알아.” 송우민이 고개를 끄덕였다.“너희 계획에 최선을 다해 도울게.”“좋아.”남설아가 미소 지었다.“우린 반드시 해낼 수 있을 거야.”세 사람은 구체적인 세부 사항을 더 논의한 후, 각자 맡은 일을 하기 위해 흩어졌다.연회가 끝난 후, 남설아는 사무실로 돌아와 밀린 서류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그때 강연찬이 따뜻한 우유 한 잔을 들고 들어왔다.“설아야, 우유 좀 마시고 일찍 쉬어.”강연찬이 우유를 건네며 말했다.“요즘 너무 무리하고 있어. 몸을 챙겨야지.”“응, 고마워, 오빠.”남설아가 우유를 받아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오빠도 일찍 쉬어.”“난 안 피곤해.” 강연찬이 말했다.“너 일 마칠 때까지 같이 있어 줄게.”“괜찮아, 오빠. 몸도 아직 완벽히 회복된 건 아니잖아. 푹 쉬는 게 좋아.”남설아가 말했다.“이 서류들은 나 혼자서도 처리할 수 있어.”“그래도 옆에 있어 줄게.”강연찬이 말했다.“너도 너무 늦지 않게 마무리하고 쉬어.”“응, 알겠어.”강연찬이 나간 뒤에도 남설아는 계속해서 일을 처리했다.그녀는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었다. 더 강해져야만 배서준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나은이를 위해 복수할 수 있었다.깊은 밤이 되어서야 남설아는 마침내 모든 서류를 정리했다.그녀는 기지개를 켜면서 창가로 가서 불빛이 번쩍이는 도시를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나은아, 보고 있어?”남설아는 혼잣말처럼 속삭였다.“엄마가 반드시 복수할 거야. 기다려줘.”다음 날, 남설아는 이른 아침부터 회사에 출근했다.그녀는 회사의 핵심 팀을 소집해 다음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여러분, 우리 그동안 좋은 성과를 거뒀지만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남설아가 말했다.“배건 그룹은 지금 위기에 처해 있지만
“선배...”남설아는 강연찬을 바라보며 가슴 깊이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꼈다.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송우민은 두 사람 사이의 다정한 분위기에 묘한 감정이 밀려왔다.기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마음 한편이 허전했다.연회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던 중, 남설아가 잔을 들어 모두와 함께 축하의 건배를 하려는 찰나 강연찬이 재빨리 손을 내밀어 그녀를 막았다.“설아야, 요즘 너무 무리했잖아. 술은 좀 줄여.”강연찬의 목소리엔 진심 어린 걱정이 담겨 있었다.남설아는 그의 따뜻한 눈빛을 마주하며 마음이 포근해졌다.하여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들고 있던 술잔을 내려놓고 대신 주스를 들었다.“알겠어. 선배 말 들을게.”남설아는 웃으며 말했다.그 광경을 본 송우민은 잔을 들고 조용히 다가왔다.“남설아, 내가 한 잔 올릴게.”송우민은 잔을 들며 말했다.“이번 성공, 정말 축하해.”남설아는 주스를 들고 잔을 맞댔다.“고마워, 우민아.”남설아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네 도움이 없었으면 이렇게 빠르게 결과를 얻진 못했을 거야.”“우린 친구잖아. 서로 도와야지.”송우민은 웃으며 말했다.“근데 정말 대단하다. 네가 이렇게 멋진 사람일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우민아, 너무 띄우지 마.”남설아는 조금 쑥스러워하며 웃었다.“운이 좋았을 뿐이야.”“그건 아니지.”송우민은 단호히 말했다.“너의 실력, 결단력, 배짱, 모두 내가 본 사람들 중 최고야.”“그 얘기는 그만하고...”남설아는 말을 돌리며 미소 지었다.“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해보자.”“좋아.”송우민이 고개를 끄덕였다.“남설아, 내 생각엔 지금이 기회야. 우리가 배건 그룹을 한 방에 무너뜨리고 배서준한테 확실하게 복수해야 해!”그의 눈빛에는 분노와 집념이 가득했다.마치 지금 당장이라도 배서준을 단죄하고 싶은 듯했다.그러나 강연찬은 조용히 눈살을 찌푸렸다.“난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해.”“왜?”송우민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지금 배건 그룹은 거의 끝장난 상태잖아.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