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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개월 후에도 나의 검사 결과는 여전히 안정적이었다.내 기억은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아침에 보았던 영화의 결말을 까먹기도 했고, 머릿속에서 목요일이 갑자기 화요일로 착각하기도 했다하지만 나는 휴대전화 알람에 의존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되었고, 사소한 디테일을 하나 놓칠 때마다 내가 사라져가고 있다는 증거로 여겨 스스로를 괴롭히지도 않았다.여전히 6주마다 찾아오는 정밀 검사 결과는 우리의 숨통을 쥐고 흔들었다.그럴 때마다 로만과 나는 똑같은 규칙을 따랐다.대기실에서는 그 어떤 예측도 하지 않는 것.우리는 형편없는 TV 프로그램에 대해 티격태격 다투고, 자판기에서 파는 과자들의 순위를 매기고, 마치 결과 따위가 앞으로의 몇 시간에 그 어떤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다는 듯 저녁 메뉴를 계획하곤 했다.로만은 먹을 만한 아침 식사 세 가지를 요리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무언가를 주도하고 싶은 욕구가 밀려올 때마다 이렇게 묻는 법도 배웠다.“조언을 원해, 아니면 그냥 들어줄까?”시에나는 7번 부두 재단의 법률 자문 변호사가 되었다.엘리아스가 약혼했을 때, 로만은 그에게 25년산 스카치위스키 한 상자를 보냈다. 물론 엘리아스에게 한 번이라도 질투를 느낀 적이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인정하려 들지 않았지만 말이다.우리는 델루카 가문의 저택에서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다. 예식은 허드슨강변의 작은 식물원에서 30명도 안 되는 하객들만 초대해 조촐하게 치러졌다.아네모네도, 꿀빛 다이아몬드도, 머리 위를 맴도는 헬리콥터도 없었다.나는 흰색 목련과 로즈메리를 들었고, 내 반지는 안쪽에 네 단어가 새겨진 무광의 투박한 금반지였다.내가 식장에 들어서기도 전에 노라는 눈물을 터뜨렸다. 루카는 바람이 눈에 들어갔다고 시치미를 뗐다. 시에나는 바이스 박사 옆에 서 있었고, 엘리아스는 신랑이 자신에게 빚지는 것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처럼 로만을 보며 활짝 웃고 있었다.[네가 원한다면, 내일도.]서약을 나누기 앞서, 로만은 하객들 앞에서 내게 서
3개월 후, 로만과 나는 추적 검사를 위해 뉴욕으로 돌아왔다.델루카 가문의 저택은 달라져 있었다.동쪽 별채에 있던 치자나무 온실은 다시 지어지지 않았고, 그 자리에는 탁 트인 잔디밭이 펼쳐져 있었다.내 방은 더 이상 유리 진열대 안에 보존된 어린 소녀의 방처럼 보이지 않았다. 벽에 걸려 있던 감시용 단말기는 사라져 있었고, 문에는 나만 아는 비밀번호가 설정된 평범한 전자 도어락이 달려 있었다.노라는 눈물범벅이 된 채 나를 안아주더니, 혹여 나를 아프게 할까 봐 이내 황급히 몸을 뗐다.루카가 7번 부두의 새로운 소유권 서류를 들고 현관 계단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로만은 단순히 내 자산을 돌려준 것이 아니었다. 부모님이 수년 전에 강제로 포기해야 했던 해상 보험 권리까지 모두 되찾아 둔 것이었다.“보스께서는 이것이 선물이나 배려가 아니라 정당한 반환이라고 하셨습니다.”루카가 내게 말했다.“그 사람은 어디 있죠?”“지하 회의실에 계십니다. 오늘이 습격 사건에 대한 최종 청문회 날입니다.”나는 지하로 내려가지 않았다.예전의 나였다면 로만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기를 기다리며 다른 사람들이 흘린 자투리 정보로 진실을 끼워 맞추었을 것이다.하지만 이번에는 내 변호사를 직접 만났다.나는 7번 부두의 운영을 독립된 전문 경영인에게 맡기고, 강력 범죄 피해자들의 신경계 재활을 지원하는 재단을 설립했다.해가 질 무렵 집으로 돌아온 로만은 부엌에서 사과를 깎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청문회는 끝났어요?”내가 물었다.“끝났어. 습격을 공모했던 자들은 가문 평의회에서 영구 제명되었다. 관련 증거 자료들도 전부 연방 검찰에 넘겼고."마피아식 정의가 언제나 깨끗할 리는 없지만, 로만은 나를 향한 사랑의 증표로 피비린내 나는 처형을 가져다주지 않았다.그는 과거의 지저분한 사건들을 우리의 침실과 식탁에서 철저히 분리해 두는 쪽을 택한 것이다.“나도 오늘 7번 부두를 정리했어요.”나는 경영 위탁 계약과 재활 재단에 대해 설명했다.그는 단 하나의 질문만 던졌
첫 번째 백신 치료가 끝난 후, 진행된 MRI 검사에서 종양 부위가 안정적인 상태라는 결과가 나왔다.나는 완치된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죽음에게서 그저 시간을 빌렸을 뿐이었고, 그 시간을 언제 돌려줘야 하는지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그리고 병원에서 나와 로만의 아파트로 거처를 옮겼다. 우리는 각자 다른 침실을 썼고, 그는 밤 9시 이후에는 절대 문을 두드리지 않는다는 규칙을 지켰다.매일 아침, 그는 부엌의 화이트보드에 그날의 일정을 적어 두었다.약 복용, 물리 치료, 산책.그리고 암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작고 소소한 일 한 가지.월요일, 호숫가에서 백조들에게 먹이를 주었다.화요일, 대서양 바닷물 같은 맛이 나지 않는 오트밀 만드는 법을 배웠다.수요일, 나를 취리히 트램에 태우고는 일부러 길 안내를 내게 맡겼다.나는 엉뚱한 정류장에서 우리를 내리게 만들었다. 낯선 동네를 정처 없이 헤매다 영어 메뉴판조차 없는 식당을 찾아냈고, 로만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주문하다가 실수로 디저트를 세 개나 시키고 말았다.그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느니 차라리 다 먹어 치우는 쪽을 택했다.웨이터는 그가 국제 뉴스에 나오던 인물임을 알아채고는, 눈에 띄지 않는 경호원들이 어디 있는지 찾아보려 연신 문가를 두리번거렸다.로만은 그 시선을 무시한 채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고는, 내가 그의 접시에서 마지막 한 입을 훔쳐 먹는 것을 내버려 두었다.내 24년 인생에서 평범한 하루에 가장 가까운 순간이었다.그날 저녁, 나는 그의 서재에서 잠긴 금속 상자를 발견했다. 로만은 아무런 설명 없이 내 앞에 열쇠를 내려놓았다.상자 안에는 내 삶에 대한 7년간의 기록들이 들어 있었다.보호자 지정 명령서, 등록금 영수증, 경호 보고서, 내 첫 단독 여행 일정표. 그리고 모든 것의 시작이었던 ‘사랑해’ 문자 메시지 출력본까지.그 위에는 부치지 않은 편지 한 통이 놓여 있었다. 6개월 전 날짜가 적혀 있었다.[나는 널 사랑하기 때문에 너를 떠나야 해. 하지만 내가 떠나는 일이 네게
종양 위원회에서는 내게 두 가지 선택지를 제시했다.표준 치료를 계속 이어가는 것. 부작용은 예상할 수 있지만 재발 확률이 너무나 잔인할 정도로 높았다.혹은 초기 단계의 맞춤형 백신 임상 시험에 참여하는 것. 이는 추가 조직 채취가 필요하고 심각한 면역 반응의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임상 시험을 받겠어요.” 내가 말했다.로만은 내 오른쪽에 앉아 있었고 끼어들지 않았다.바이스 박사가 그를 바라보았다.“가족으로서, 의견이 있으신가요?”“마라는 제 부속물이 아닙니다.”로만이 말했다.“마라의 의견이 곧 결정입니다. 저는 마라가 모든 위험 요소를 확실히 들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이 자리에 있는 것뿐입니다.”우리가 엘리베이터에 단둘이 남을 때까지 그는 기다렸다가 물었다.“무서워?”“네.”“나도 그래.”그 어떤 헛된 약속도, 세상이 자기 뜻대로 움직이니 나를 살려내겠다는 식의 보스다운 호언장담도 없었다. 그의 솔직함은 내 마음을 더 차분하게 다독여주었다.치료 3주 차에 루카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카루소 가문 내부의 누군가가 취소된 결혼식을 빌미 삼아 반란을 일으켰고, 공모자들은 내 부모님의 습격 사건과 연관된 오래된 장부들을 파헤쳐냈다.로만은 적어도 48시간 동안 뉴욕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상황이었다.통화가 끝났을 때, 그는 자신이 내린 결정을 내게 통보하지 않았다. 그저 이렇게 물었을 뿐이었다.“내가 여기 있길 원해?”예전의 로만이었다면 모든 세부 사항을 알아서 정리한 뒤 그 결과를 기정사실로 통보했을 터였다.그의 여권과 휴대전화는 이미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지만, 그는 그것들을 향해 손을 뻗지 않았다.어떤 자리에 가든 가장 강력한 권력을 쥐고 있던 그 남자가, 이번만큼은 나의 대답 때문에 자신의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 것을 기꺼이 감수하려 하고 있었다.말 한마디로 그를 내 곁에 붙들어 둘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오히려 내놓기가 더 쉬웠다. “다녀와요. 날 사랑한다는 걸 증명하겠다고 가문 전체를 잿더미로 만들 필요는 없으니
병리과 검사 결과는 그 누구의 예상보다도 심각했다.외과의사들이 눈에 보이는 것은 대부분 제거했지만, 암세포는 이미 신경 섬유를 따라 퍼져 있었다. 의사들이 내가 여전히 백신 임상 시험 자격을 갖추었는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6주 동안의 방사선 치료와 항암 치료를 받아야 했다.로만은 뉴욕에서 예정되어 있던 모든 공식 일정을 취소하고 가문의 일상적인 업무를 루카에게 넘겼다.그는 병원 맞은편에 평범한 아파트를 빌렸고, 매일 아침 7시면 아침 식사를 들고 찾아왔다. 그리고 밤 9시가 되면 그는 내 개인 병실 안으로 들여보내 달라는 말 한마디 없이 자리를 떴다.그가 가져오는 음식은 정말이지 끔찍했다.첫날에는 소금과 설탕을 혼동해서 오트밀을 망쳐 놓았다. 둘째 날에는 닭고기 스프에 썰지 않은 둥근 양파가 통째로 둥둥 떠 있었다. 셋째 날 아침에는 참다못해 간호사에게 아래층에 구내식당이 있다는 사실을 전해달라고 부탁했다.다음 날, 그는 새 요리책 한 권을 들고 나타났다. 표지에는 노란색 쪽지가 붙어 있었다.[보스도 훈련시키면 가능함.]나는 웃음이 터지지 않도록 입술을 깨물어야 했다.치료에는 낭만 따위라곤 조금도 없었다. 머리카락은 한 움큼씩 빠져나갔고, 입안이 헐어 물만 마셔도 고통스러웠다. 평범한 단어들이 예고도 없이 머릿속에서 증발해 버렸다.어느 날 오후에는 병원 정원에서 내 병실로 돌아오는 길을 찾지 못했다. 나는 눈밭에 쪼그리고 앉아 목이 쉴 때까지 흐느껴 울었다.로만이 나를 찾아냈지만, 나를 만지거나 두려워하지 말라고 다독이지 않았다.그는 내게서 2미터쯤 떨어진 곳에 쪼그리고 앉아 우리 사이 땅바닥에 휴대전화를 놓았는데, 화면에는 지도가 환하게 켜져 있었다.“네가 방향을 결정해라. 내가 따라갈게.”나는 세 번이나 길을 잘못 들었다. 그는 단 한 마디 타박도 없이 내가 고른 세 번의 틀린 길을 그대로 따라왔다.네 번째 시도 끝에 입원 병동의 유리문이 시야에 들어왔다.“길을 알고 있었잖아.”내가 말했다.“길을 안다고 해서 억지로 널 그곳으
새벽 4시.바이스 박사가 의료진과 함께 들어와 수술에 대해 설명했다.종양은 언어와 기억을 관장하는 신경 회로를 휘감고 있었다. 가능한 한 많은 기능을 보존하기 위해, 그들은 종양을 제거하는 도중 나를 깨워 그림의 이름을 대게 하고 익숙한 얼굴을 알아보는지 확인하겠다고 했다.만약 출혈을 멈추지 못하거나 뇌의 부종이 너무 심해진다면, 나는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었다.“수술 후 연락 받을 사람을 한 명 지정하셔야 해요.”간호사가 말했다.나는 엘리아스의 이름을 적으려 했지만, 펜이 종이 위에서 멈췄다. 문에 난 좁은 유리창 너머로 로만이 복도의 딱딱한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델루카 가문의 보스는 누구를 위해 기다리는 일은 결코 없었지만, 그는 내 방으로 걸려 오는 전화 한 통조차 허락하지 않은 채 7시간 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나는 바이스 박사의 이름을 적었다. 로만은 그 서류가 방 밖으로 나오는 것을 보고도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다.나를 수술실로 옮기기 직전, 그는 내 손바닥에 무언가 낡은 것을 쥐여주었다. 반지나 델루카 가문의 증표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저 모서리가 매끄럽게 닳아버린 지하철 토큰 하나였다.“네가 18살이었을 때, 경호원들을 따돌리고 혼자 지하철을 탄 적이 있었지. 집에 돌아와선 내 재킷 주머니에 이걸 쑤셔 넣으며 말했어. 내가 평범한 사람으로 사는 법을 좀 배워야겠다고.”나는 그런 짓을 했던 기억이 없었다.“만약 깨어났을 때 날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도 괜찮아.”그가 말했다.“그저 한때 네가 평범한 삶을 원했다는 것만 기억해 줘.”마취제가 혈관을 타고 흘러들어오기 시작했을 때, 수술실 문밖에서 그가 이탈리아어로 기도하는 소리가 아련히 들려왔다.수술은 11시간 동안 이어졌다.수술 도중 의료진이 나를 깨웠을 때, 바이스 박사가 사진을 한 장씩 들어 보였다.사과.다리.파란 자전거.처음 두 개의 이름을 댔지만, 3번째 단어는 혀끝에 닿기도 전에 사라져 버렸다.그러다 화면에 로만의 사진이 나타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