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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1화

Author: 서린화
금영은 황제를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폐하."

식사가 끝나자 현청전에는 다시 길고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서야 황제가 먼저 입을 열었다.

"태자의 일은 짐이 다시 고려해 보마."

황제로서는 금영이 태자를 위해 나선 일이 못마땅했다. 하지만 그녀를 이곳으로 보낸 사람은 다름 아닌 서 황후였다. 이 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중간에 낀 금영만 난처해질 터였다.

금영이 곧장 예를 갖추며 말했다.

"다시 한번 황송하옵니다."

사실 금영은 황제가 태자의 벌을 거두든 말든 크게 개의치 않았다. 서 황후도 딱히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황제가 먼저 이렇게 말해 준 이상, 끝까지 연극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밤이 늦었으니, 이만 돌아가 보거라."

황제가 담담하게 말했다. 바로 그때, 금영은 문득 자신이 한 가지를 빠뜨렸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서둘러 무릎을 꿇었다. 황제의 시선이 다시 금영에게 향했다.

금영은 눈을 내리깔고 진심 어린 목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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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516화

    배경원이 위패를 제자리에 놓은 직후였다. 금영은 영안후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아버지, 어머니 슬하에는 아들이 없는 데다 저는 궁에 매인 몸이니, 훗날 향을 올리고 제사를 챙길 사람이 없을까 염려됩니다. 그러니 셋째 오라버니를 어머니 명의로 입적해 저의 친오라비로 삼아주십시오."영안후는 입술을 달싹이며 거절하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억눌렀다. 이제 금영은 함부로 대할 수 없는 황비의 신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이번에도 배경천이 참지 못하고 나섰다."배금영! 위패를 세우겠다는 것까지는 우리가 막지 않았지 않느냐! 그런데 이제 와서 제사를 받들 사람이 없다고? 엄연히 나와 큰형님이 있거늘, 어찌 또 셋째를 적자로 들이려 하는 것이냐!"금영은 그런 배경천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실소를 터뜨렸다."그러면 둘째 오라버니께서 제 어머니 명의 아래 들어가시겠습니까?"배경천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출신도 알 수 없는 천한 여인의 적자로 들어가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금영은 분개하는 그를 보며 속으로 차갑게 비웃었다.그녀는 배경천이 자신의 혈통에 대해 얼마나 대단한 자부심을 품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만에 하나 정말 제 어머니 밑으로 입적하게 만든다면, 아마 분통이 터져 죽으려 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애초에 그는 고려 대상조차 아니었다. 배경천 본인도 질색하겠지만, 금영이 더욱 원치 않았다. 험한 꼴을 보여 구천에 계신 어머니를 편히 쉬지 못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그녀가 후부로 돌아와 이 일을 벌이는 데는 분명 다른 목적이 있었다. 하지만 황제에게 말했던 것처럼, 직접 아이를 품는 고단함을 겪고 나니 자신에게 생명을 준 어머니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금영은 차갑게 코웃음을 치고는 다시 영안후를 바라보았다."아버지, 제 뜻에 따라 주실거죠?"금영은 거절 따위는 상상도 하지 않는다는 듯 여유로운 미소를 띠고 물었다. 영안후는 결국 체념한 듯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예… 마마의 뜻에 따르도록 하겠습니다."금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515화

    금영이 말했다."이제 모두 저와 함께 어머니께 예를 올리시지요."영안후가 위패에 이름을 적고 금영의 친모를 정실부인으로 올린 뒤, 향을 피우고는 뒤로 물러난 다음이었다. 금영은 앞장서 제사 단상 앞으로 걸어가 무릎을 꿇었다.배경연과 배경천, 배명월은 바로 그 뒤에 서 있었는데, 제각기 다르나 모두 이 상황을 매우 불쾌하게 여기고 있음이 여실히 드러나는 표정들이었다.배명월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먼저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배경연도 그 뒤를 따랐다. 하지만 배경천만이 목을 뻣뻣이 세운 채 끝까지 버텼다."나는 영안후부의 적자다. 어찌 천한..."하지만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영안후가 그를 뒤에서 걷어찼다."입 다물거라!"일이 이 지경이 됐는데도 분수를 모르고 말썽이라니, 영안후는 그가 정말 한심했다.금영은 몸을 돌려 배경천을 한 번 바라보았다. 배경천은 영안후에 의해 억지로 무릎이 꿇린 상태였다. 그녀는 아주 만족스럽게 다시 위패를 향해 향을 올렸다."어머니, 딸이 향을 올립니다."하지만 뒤에 꿇어앉은 이들은 벙어리가 된 듯 입만 뻥긋거리며 쉽사리 어머니라는 말을 내뱉지 못했다. 금영은 굳이 강요하지 않고 예를 마친 뒤, 해수의 부축을 받아 몸을 일으켰다.그리고 되었다는 의미로 손을 들어 올렸다. 그제야 형벌이라도 받듯 표정을 구기고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한편, 금영은 사당 밖 먼 곳을 바라보며 한 사람을 떠올렸다.'왜 아직도 오지 않지?'마침 이때, 먼지를 뒤집어쓴 채 한 사람이 사당 안으로 걸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상대는 다름 아닌 금영의 셋째 오라비, 배경원이었다.그는 도성으로 돌아온 뒤 서교대영에서 직책 하나를 얻었는데, 마침 막 영내에서 돌아온 참이었다.배경원이 금영을 보고 예를 올렸다."영비마마를 뵙습니다."금영은 그가 무릎 꿇기를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온화하게 말했다."셋째 오라버니, 앞으로 저를 보면 굳이 이렇게까지 예를 갖추실 필요 없습니다."부드럽게 셋째 오라버니라 부르는 목소리에 배경연과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514화

    금영은 미소를 머금고 배명월을 바라보았다."명월아, 잠시 기다려 보거라. 내 어머니를 정실로 모시는 날인데 오라버니들과 네가 자리에 없어서야 되겠느냐? 함께 향을 올리고 예를 표해야지."금영이 가볍게 웃었다. 그동안 천출이라며 얼마나 손가락질을 해댔을지 불 보듯 뻔했다. 이제는 저들이 자신의 친모에게 예를 올릴 차례가 되었다. 금영은 자식으로서 도리를 다하는 동시에, 이것으로 저들의 기세를 제대로 꺾어놓고 싶었다."정말 정도를 모르고 날뛰는구나!"배명월이 이를 갈며 금영을 노려보았다.금영은 분노한 그녀를 평온하게 바라보다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내가 정도를 몰라 날뛰든 말든, 네가 무얼 할 수 있는데?"이 말이 떨어지자, 배명월은 속에서 활화산이 터진 듯했다. 정말 당장이라도 금영에게 달려들어 자신이 겪은 유산의 고통을 그대로 돌려주고 싶었다.금영은 배명월이 얼마나 자신을 증오하고 있을지 잘 알고 있었다. 이 정도로 끝낸 것만으로도 나름대로 조심한 것이었다. 게다가 그녀가 배명월을 자극하지 않는다고 해서 상대가 가만히 있을 위인도 아니었다. 이건 결국 둘 중 하나는 죽어야 끝날 악연이었다. 금영은 구천을 떠돌며 고통스러웠던 삼 년이라는 세월을 고스란히 배명월에게 겪게 해 주고 싶었다.그녀는 상석에 앉아 제각기 다른 표정을 짓고 있는 영안후부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아주 통쾌한 기분이 들었다. 권력의 맛이 얼마나 달콤한지 새삼 실감했다.이제 막 황비가 되었을 뿐인데도, 자신을 업신여기고 함부로 이용해 먹던 가족들을 아주 쉽게 짓밟을 수 있었다. 금영은 이 감각에 조금씩 매료되어 가는 자신을 느꼈다.그녀는 황후가 된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한 번도 그 자리에 앉아 본 적이 없어서 모두 알 수는 없겠지만, 비가 된 것만으로도 이만한 권력을 누릴 수 있는데 황후가 된다면 훨씬 큰 황홀함을 맛볼 수 있을 것 같았다.*사당 밖.금영은 미리 준비해 둔 빈 위패를 제사단상 위에 올려놓은 뒤, 영안후를 바라보았다."수고스러우시겠지만 이 위패의 이름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513화

    첩의 위패를 사당에 올린다는 것만 해도 상당히 불쾌한 일이었다. 하지만 뒷말이 이어지자, 사람들의 표정이 더 굳어졌다."배금영! 황비가 되었다고 어머니를 이리 모욕해도 된다고 착각하지 마라!"배경천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며 금영을 꾸짖었다.그러자 금영이 차갑게 웃었다. 고작 말 한마디에 이 정도로 반응하다니, 배경천은 정말 머리에 든 것이 없는 것 같았다. 이때, 해수가 입을 열기도 전에 채아가 먼저 일갈했다."마마의 존함을 함부로 부르다니! 이건 황실을 향한 모독입니다!"곧이어 영안후의 벼락같은 꾸짖음도 날아왔다."경천아, 당장 영비 마마께 사과드리지 못하겠느냐!"그러자 배경천이 핏대를 세우며 대들었다."제가 무슨 못할 말을 했습니까? 감히 어머니더러 첩이 되라고 하다니,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송정희같이 자존심이 강한 사람에게 정실부인의 자리에서 내려오라고 하는 것은 죽음보다도 더한 모욕이었다.금영도 물러서지 않고 반박했다."그러면 설마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고 돌아오는 것을 제가 허락할 거라 생각하셨습니까?"그리고는 다시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전 이치를 따지는 사람입니다. 둘째 오라버니께서 동의하지 않으신다면 이 일은 없는 것으로 하지요."송정희가 자음암에서 계속 고생하든 말든, 그녀에겐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하지만 송 부인과 상관없이 제 어머니의 위패는 사당에 세울 것입니다."금영이 사람들을 바라보며 단호한 목소리로 못을 박았다."어머니? 그 뜻은 설마..."영안후가 살짝 멈칫했다. 공식화하지 않았을 뿐이지, 금영이 이 호칭을 쓴다는 것은 이미 자신의 생모를 영안후부의 정실로 대우하겠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금영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어머니께서 비록 세상을 떠나시긴 했지만, 저를 열 달이나 품어 낳아주신 분이지 않습니까. 위패 정도는 당연히 모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말도 안 되는 소리! 아무리 황비가 되셨다 한들 첩을 정실 자리에 올릴 자격은 없습니다! 이건 윤리에 어긋나는 행동입니다!"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512화

    결국 배명월과 다른 사람들도 금영에게 예를 올릴 수밖에 없었다.금영은 얼핏 보이는 소매 안에서 배명월이 주먹을 꽉 쥔 모습을 발견했다. 쌓인 분노가 상당한 것 같았다. 곧이어 시선이 뒤에 있는 배경연과 배경천에게도 향했다. 배경연은 딱히 표정에 큰 동요가 없었지만, 배경천은 이 상황이 상당히 불만인 듯 표정이 좋지 않았다.금영이 영안후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아버지, 이제 일어나 말씀하십시오."당장은 그의 체면을 세워주어야 했다. 아직 그의 협조가 필요한 일들이 있으니, 너무 그를 깎아내리면 금영에게도 득이 될 것이 없었다. 너무 몰아붙였다가 그가 자포자기하면 곤란했다.영안후에게 일어나도 좋다는 말이 떨어지자, 다른 사람들도 함께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자 금영의 뒤에 서 있던 채아가 해수의 모습을 흉내 내며 날카롭게 꾸짖었다."영안후께 하신 말씀이지, 마마께선 아직 다른 분들께 일어나도 된다고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금영은 그런 채아를 힐끗 바라보긴 했으나, 별다른 제지는 하지 않았다. 결국 배명월과 다른 사람들은 굴욕스럽게 다시 무릎을 꿇어야 했다.이때, 누군가가 금영에게 의자를 가져다주었다.그녀는 우아한 기품을 뽐내며 태연히 자리에 앉았다. 이건 배명월이 백날 교육을 받아도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자태였다.영안후는 바닥에 무릎 꿇고 있는 세 사람을 힐끗 쳐다본 다음에 다시 금영에게 말을 걸었다."그런데 마마께선 오늘 어찌 이곳에 오신 것입니까?"어느새 호칭부터 달라져 있었다. 영안후는 황궁에 있어야 할 그녀가 갑자기 후부에 나타난 연유가 궁금했다. 황비가 된 여인이 다시 친정에 돌아오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기 때문이다.금영은 영안후를 힐끗 바라보았다. 바뀐 호칭이 가소롭긴 했으나,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영안후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다른 질문을 던졌다."방금 전에 명월이가 하는 말을 들어보니, 송 부인을 다시 후부로 모셔 오려는 생각인 것 같던데... 사실입니까?"영안후는 금영이 이렇게 묻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511화

    이때, 배경천이 옆에서 한마디 보탰다."아버지, 곧 후계자를 정해야 하지 않습니까? 이 일을 빌미로 어머니를 모셔 오는 건 어떻겠습니까?"거기까지 말한 배경천은 잠시 멈칫했다가 말을 이었다."이제 금영과 명월이 모두 황실로 시집을 갔는데, 설마 폐하께서 이 일로 저희 가문을 어찌하시기야 하겠습니까? 특히 금영의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저희를 함부로 벌하실 순 없을 겁니다."영안후는 잠시 고민하다가 확실히 일리가 있어 보인다고 생각했다. 어찌 되었든 금영도 영안후부의 핏줄이었다. 아무리 황제라도 함부로 그녀의 가문을 내치진 못할 터였다. 이렇게 결론이 나자 영안후는 말을 고르며 입을 열었다."내가 다시 한 번 고심해 보마..."바로 그때였다. 밖에서 걸어 들어오던 금영이 입을 열었다."고민하실 것 없습니다."금영은 일부러 통보도 없이 불쑥 찾아온 참이었다. 그녀의 목소리에 탁자에 둘러앉아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문가로 쏠렸다.아주 화려하고 귀하게 차려입은 금영이 해수의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못 본 지 불과 며칠 만에 그녀는 몰라보게 아름다워져 있었다. 본래도 빼어난 외모이긴 했다. 허나 영안후부에 있을 때는 사방이 가시밭이라 제대로 꽃을 피울 수 없었는데, 이제는 황제가 물과 거름을 듬뿍 주어 그 꽃봉오리가 완연하게 만개해 있었다."금영아, 네가 여기까지 웬일이냐?"영안후가 놀라면서도 내심 반색하며 다가가 그녀를 부축하려 들었다. 마치 회임한 딸을 진심으로 아끼는 다정한 아비처럼 말이다. 하지만 손이 닿으려던 순간, 금영이 미간을 찌푸리며 그 친근한 손길을 피했다.곁에 있던 해수가 주군의 심기가 불편해진 것을 눈치채고 재빨리 끼어들었다."영안후, 엄연히 신분의 차이가 있사옵니다. 아무리 마마의 부친이시라 하나, 황실의 법도에 따라 먼저 예부터 올리셔야 하지 않겠습니까?"영안후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렸다. 그제야 그는 금영이 혼자가 아니라 수많은 궁인들을 대동하고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차마 황궁 사람들이 지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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