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금영은 원래도 오늘의 모든 일이 너무 순조롭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그런데 이곳에서 여비를 마주쳤고, 여비가 이런 말을 하니.원래부터 경계하고 있던 금영의 마음은 더욱 조심스러워졌다.금영은 여비를 바라보며 말했다.“여비의 충고에 감사드립니다. 본궁, 앞으로 더욱 몸가짐을 조심하겠습니다.”여비는 가볍게 비웃듯 콧소리를 내더니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금영의 감사 따위는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듯했다.하지만 금영은 여비의 마음을 받아들였다.이런 우연 같은 일이 몇 번이나 이어지니, 금영이 아무리 눈치가 없어도 알 수 있었다.여비의 날카롭고 독한 말들은 사실 자신에게 경고를 보내기 위한 것이었다.그렇지 않았다면 여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이 곤란해지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하면 되었을 것이다.금영은 멀어지는 여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후궁이라는 곳도 참으로 재미있는 곳이었다.겉으로는 온화하고 어진 사람처럼 보이는 이가, 사실은 벌의 꼬리에 숨겨진 독침보다 더 날카로운 마음을 품고 있었다.겉으로는 세상일에 욕심이 없는 듯한 이가, 사실은 야심과 꾀를 모두 가지고 있었다.겉으로는 까칠하고 모질며 독해 보이는 이가, 오히려 이 궁 안에서 유일하게 선한 사람이었다.그렇다면 자신은 어떠한가.자신 역시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순수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은 아니었다.그렇게 생각하니 금영은 문득 황제가 떠올랐고, 마음이 복잡해졌다.금영은 황제가 사실 참으로 힘든 사람이라고 생각했다.조정의 신하들이 모두 충심을 다하는 것도 아니거늘, 후궁 안에서 가장 가까워야 할 지밀한 사람들마저 하나같이 저마다 다른 속내를 품고 있었다.그런 생각이 들자 금영은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함과 미안함을 느꼈다.황제가 금영의 뒤에서 다가오다가 그 자리에 서 있는 금영을 보고 물었다.“어찌 이곳에 서 있느냐.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금영은 황제의 목소리를 듣고 몸을 돌려 황제를 바라보았다.황제는 검은빛 용포를 걸치고 있어 위엄이 더없이 짙었지
황제의 눈에는 본디 산천과 사계가 모두 담겨 있는 듯했다.그런데 지금 그 깊은 눈동자 안에는 오직 금영 한 사람만이 들어 있는 것 같았다.그리고 금영만을 눈에 담고 있는 이는 또 한 사람 있었다.태자는 계단 아래에 서 있었다.그는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황제가 귀비의 보관을 들어, 한때 자신의 정혼자였고 지금도 마음에 품고 있는 여인의 머리에 직접 씌워 주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하필 곁에 있던 이황자가 그런 태자의 속을 긁듯 한마디를 던졌다.“형님, 아바마마를 보십시오. 원 귀비마마를 정말 각별히 아끼시는 것 같지 않습니까?”“저희가 아들 된 도리로 아바마마를 위해 기뻐해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태자는 이황자가 일부러 자신을 도발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그런 말 따위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온 신경이 금영에게만 쏠려 있었다.눈부시도록 화사하고 존귀해진 금영을 바라보자 한 가지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떠올랐다.‘그때 우리 사이에 그 많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금영이 나와 혼인했더라면, 지금 금영의 곁에 서 있는 사람은 나였을 텐데.’그때 내관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의식을 모두 마쳤사옵니다!”황제는 금영의 손을 잡아 그녀를 일으켜 세운 뒤 봉천전 아래를 바라보게 했다.그 순간.계단 아래의 신하들과 후궁의 비빈들은 이미 일제히 무릎을 꿇고 있었다.“현 귀비마마를 뵈옵니다!”“원 귀비마마를 뵈옵니다!”서 황후가 웃으며 말했다.“폐하, 책봉 의식도 모두 끝났으니 이제 두 귀비를 봉선전으로 보내 역대 선조께 제를 올리게 해야 하지 않겠사옵니까.”귀비로 책봉되었으니 황실의 선조에게 이를 고하는 것은 당연한 절차였다.황제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가 보거라.”그러고는 서 황후를 한번 바라보았다.조금 전보다 목소리가 한결 누그러져 있었다.“오늘은 수고했구나.”서 황후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폐하의 근심을 덜어 드리는 것이 신첩의 본분이옵니다.”“지난 일 년 동안 신첩은 황후
“폐하?”서 황후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황제를 바라보았다.황제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그리 한가하거든 수강궁에 가 어마마마를 모시고 불경이나 베껴 쓰거라.”“한가하지 않다면 더더욱 제 할 일을 해야지. 여기 남아 무엇 하느냐?”황제는 조금도 숨기지 않고 서 황후와 거리를 두고 있었다.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 서 황후의 얼굴에 순간 난처한 기색이 스쳤다.“신첩은 이만 물러가겠사옵니다.”일국의 국모인 자신은 이제 폐하와 잠시 함께 있을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이런데 어찌 배금영이라는 천한 계집을 눈앞에 두고 참을 수 있겠는가.그 생각에 이르자 서 황후가 싸늘한 목소리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앞으로 보름…… 그 정도면 충분하겠어.”조씨는 그런 서 황후를 바라보며 몇 번이나 입술을 달싹였다.무언가 충고하고 싶었지만 결국 감히 입을 열지는 못했다.*시간은 빠르게 흘렀다.눈 깜짝할 사이 보름이 지나갔다.이른 아침부터 금영은 예복으로 갈아입고 현비와 함께 봉천전으로 향했다.귀비를 책봉하는 일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황실의 큰 행사였다.대개 황후가 황제의 총애를 받고 있다면 황제가 굳이 귀비를 새로 책봉하는 일은 드물었다.그런데 이번에는 한 명도 아닌 두 명을 한꺼번에 귀비로 올렸다.다행히 책봉 의식에서는 금영이 걱정했던 일 가운데 단 하나도 벌어지지 않았다.손복안이 엄숙한 목소리로 교지를 펼쳐 들었다.먼저 현비에게 내리는 교지였다.“현비는 성품이 어질고 덕망이 높으며 근면하고 온화하다. 또한 황자를 훌륭히 길러 낸 공이 크므로 특별히 현 귀비로 책봉한다!”손복안은 교지를 곁의 내관에게 넘겼다.내관은 두 손으로 교지를 받들어 현비에게 가져갔다.현비는 무릎을 꿇은 채 공손히 예를 올리며 황제의 은혜에 감사했다.이어 손복안의 시선이 금영에게 향했다.그가 더욱 공손한 태도로 두 번째 교지를 읽었다.“배금영은 예를 알고 총명하며 마음이 맑고 선덕을 갖추었다. 복과 은덕이 오래 이어져 짐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였
서 황후가 안으로 들어오자 가장 먼저 시선이 향한 곳은 금영이었다.금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서 황후에게 예를 올렸다.“신첩이 황후마마를 뵈옵니다.”일부러 그런 것인지, 아니면 정말 우연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금영이 살짝 고개를 돌리는 순간 목덜미에 남은 붉은 흔적 하나가 고스란히 드러났다.지난밤 정을 나눈 뒤 남은 흔적이었다.붉은 매화 한 송이가 피어난 듯 선명한 자국이 서 황후의 눈을 사정없이 찔렀다.하지만 눈보다 더 아픈 곳이 어디인지는 서 황후 자신만이 알고 있었다.가슴이었다.서 황후는 그토록 황제의 사랑을 갈망했다.황제에게 시집온 지도 벌써 이십 년이었다.하지만 지난 이십 년 동안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는 누구보다 그녀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황제가 그녀에게 내어 준 것이라곤 황후로서의 체면뿐이었다.한 번도 마음을 주지 않았고, 사랑한 적은 더더욱 없었다.그토록 원하고 또 원했으나 끝내 얻지 못했던 것을 배금영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너무도 손쉽게 손에 넣었다.서 황후도 알고 있었다.지금 자신이 온 신경을 쏟아야 할 상대는 현비라는 것을.하지만 도저히 마음을 다스릴 수가 없었다.배금영이라는 천한 계집이 입궁해 비가 되어 자신과 태자의 체면을 짓밟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도저히 억누를 수 없는 질투와 증오가 그녀를 집어삼키고 있었다.서 황후는 한동안 그 감정에 빠진 채 금영에게 일어나라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그때까지도 황제는 손에 찻잔을 들고 있었다.황제가 찻잔을 내려놓았다.탁.맑고 날카로운 소리가 울리자 서 황후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원비, 그만 일어나거라.”그러고는 조금 민망한 듯 황제를 바라보며 웃었다.“원비가 요즘 들어 전보다 더욱 고와진 듯하여 신첩도 모르게 잠시 넋을 놓고 보았사옵니다.”그럴듯한 변명이었다.황제도 굳이 그 일을 문제 삼지는 않았다.그저 공적인 태도로 물었다.“말해 보거라. 무슨 일이냐?”서 황후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원비와 현비의 귀비 책봉 의식에 관한 일
황제가 더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금영도 굳이 눈치 없이 캐묻지는 않을 생각이었다.그저 생글생글 웃으며 소녕전으로 돌아갔다.공 상궁은 직접 상의국 사람들을 데리고 와 금영의 치수를 재게 했다.금영은 예전에 예복 때문에 한 차례 곤욕을 치른 적이 있었다.그래서 공 상궁을 바라보며 따로 당부했다.“이번 예복은 서로 다른 색의 옷감으로 두 벌을 준비하게.”공 상궁은 궁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노련한 사람이었다.금영이 한마디만 해도 곧바로 그 뜻을 알아차렸다.공 상궁이 공손히 예를 올렸다.“마마, 염려하지 마시옵소서.”금영은 온화한 눈길로 공 상궁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궁 안에서 공 상궁이 이렇게 손발을 맞춰 주니 확실히 적지 않은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었다.다만 금영은 늘 마음 한구석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공 상궁은 요즘 들어 선 태비의 억울함을 풀어 달라는 말을 더는 꺼내지 않았다.하지만 그 엄숙하고 평온한 얼굴 아래에는 언제라도 터져 나올 듯한 뜨거운 용암이 억눌려 있는 것만 같았다.*이틀 뒤.황제는 소녕전에서 금영과 함께 아침 수라를 들고 있었다.그때 밖에서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황후마마 납시오!”서 황후는 그대로 전각 안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문 앞을 지키고 있던 손복안이 앞을 막았다.“황후마마, 폐하께서 안에 계시옵니다. 소인이 곧 들어가 아뢰겠사옵니다.”손복안이 정중하게 말했다.서 황후는 걸음을 멈췄다.목소리는 온화하고 현숙했으며 일국의 국모라는 위세는 조금도 내비치지 않았다.“수고하게. 본궁은 폐하를 뵈러 온 것이네. 귀비 책봉에 관한 일로 드릴 말씀이 있어서 말일세.”애초에 서 황후가 이곳까지 찾아온 목적부터가 황제를 만나기 위해서였다.이제 다시 중궁을 다스릴 권한을 손에 쥔 데다 황제에게 직접 귀비 책봉 의식을 맡아 치르라는 허락까지 받았다.덕분에 황제를 찾아올 그럴듯한 명분도 생긴 셈이었다.사실 손복안이 굳이 안으로 들어와 알릴 필요도 없었다.금영과 황제 역시 방금 이전이 외친 소리를 모
예전에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하지만 불과 일 년이 지난 지금, 황후의 자리는 그대로인데 그에 걸맞은 체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다.“황후마마, 노여움을 거두시옵소서.”조씨가 곁에서 조심스럽게 달랬다.서 황후는 가까스로 감정을 가라앉혔다.그러나 이내 얼굴에 음울한 기색을 드리우며 싸늘하게 말했다.“귀비가 되기만 하면 제 아들이 본궁의 아들과 태자 자리를 다툴 수 있을 줄 아는 모양이구나.”“꿈도 야무지지!”“본궁이 언젠가는 반드시 그 천한 계집을 없애 버리고 말 것이다.”서 황후의 눈에 짙은 원한이 서렸다.“배금영 그 천한 계집도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것이야!”조씨가 곁에서 조심스럽게 일깨웠다.“하지만 황후마마, 태후마마께서 전에 당분간은 원비마마에게 너무 신경을 쏟지 말라고 하시지 않으셨사옵니까.”서 황후의 얼굴이 단숨에 차갑게 굳었다.그녀는 갑자기 고개를 돌려 조씨를 노려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조씨, 너는 본궁의 사람이냐, 태후의 사람이냐?”“아니면…… 서가의 사람인 것이냐?”조씨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하얗게 질렸다.곧바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황후마마, 노여움을 거두시옵소서!”“노비는 황후마마께 충성을 다하고 있사옵니다. 오직 황후마마 한 분께만 충성을 바치옵니다!”“조금 전에는 그저 황후마마께서 홧김에 일을 벌이셨다가 태후마마의 노여움을 사시게 될까 염려되어 그만……”조씨는 거기까지 말하고 감히 말을 잇지 못했다.서 황후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어마마마께서도 이제 연세가 드셨으니 매사 몸을 사리시는 게다.”“본궁이 태자의 등극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하나씩 모조리 치워 버리고 나면, 어마마마께서도 결국 본궁이 옳았음을 아시게 될 것이다.”*서봉전을 나온 뒤였다.황제는 조금 전까지 얼굴에 드리워져 있던 냉엄한 기색을 한결 거두고 웃음 어린 눈으로 금영을 바라보았다.“짐이 오늘은 좀 더 자라고 일러두지 않았느냐?”“그런데 그새 서봉전까지 와서 황후에게 문안을 드리고 있었구나.”금영이 생글생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