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자경에서 제일 곱다는 얼굴이, 항아리 속에 있었다. 십 년을 담 안에서만 살다 죽은 육가의 정실 심명주. 무엇을 잘못했는지 끝내 몰랐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고, 아무도 묻지 않았다. 그 몸에서 다시 눈을 뜬 것은 독과 약을 읽는 여자다. 다시 유월 초닷새, 모든 것이 시작된 아침. 「가마는 둬. 걸어갈 거야.」 얼굴은 그대로인데 사람이 다르다. 십 년 만에 아내가 낯설어진 남자는 뒤늦게 묻기 시작하고, 처음 만난 날부터 묻는 남자가 담 밖에서 그녀를 알아본다. 십 년을 기다린 남자는, 끝내 얻지 못한다.
View More마당에 친 무명 양붕 셋 아래로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그림자가 명주의 무릎을 스쳤다.
명주는 아침부터 정청 가운데 앉아 있었다.
해가 옮겨 가는 동안 종들이 탁자를 들어 그늘을 따라갔는데, 명주가 앉은 의자만 아침 자리 그대로였다.
목이 마르다고 느끼고 돌아보자 춘월이 바로 잔을 들어 왔다.
잔을 입술에 대어 주고 두 모금 넘기자 춘월이 다시 잔을 떼었고, 입가에 흐른 것을 단아가 수건으로 눌렀다.
넘기는 동안은 숨을 쉬지 못했고, 손이 물러나고 나서 숨이 돌아왔다.
잔이 탁자 위에, 팔을 뻗으면 닿는 자리에 놓였다.
옆 탁자에서 누가 말했다.
"오늘 밤에 온다면서."
명주가 고개를 돌렸을 때는 두 사람 다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무슨 연회인지도 아침에 한 번 들은 것이 전부였다.
아침에 시녀 셋이 한 벌씩 펼쳐 보였고, 육정이 고른 연둣빛을 입었다.
소매 끝에 은실로 넝쿨을 놓은 옷이었다.
머리를 낮게 틀어 백옥 비녀를 지른 것도 시녀들이 했다.
탁자 사이를 지나던 여자들이 정청 앞에서 걸음이 늦어졌다.
하나가 다른 하나의 소매를 당겼고, 당겨진 쪽이 무어라 하려다 말았으며, 둘이 두어 번 더 돌아보며 지나갔다.
돌아볼 때 눈이 명주에게 있지 않고 명주 뒤의 중문에 가 있었다.
명주는 그것이 제 외모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부인이십니까."
낯선 여자가 탁자 너머에서 몸을 기울였고, 명주가 반박자 늦게 고개를 돌렸을 때 여자는 이미 웃고 있었다.
"희다는 말만 듣고 왔는데, 목에 푸른 기가 도는 줄은 아무도 안 알려 주더군요."
여자의 눈이 눈매에서 목으로 내려왔다가 명주의 손에서 멎었다.
곁에 선 다른 여자가 참다 못해 소매로 입을 가렸다.
"언니. 부인께서 숨을 못 쉬시겠어요."
"어. 내가 무슨 말을 그리 했다고."
"손톱까지 가시려던 참이었잖아요."
"저 양붕 줄 좀 보셔요. 아침에 맨 건가…
아니, 어제 맸겠네."
명주도 웃었고, 웃으면서 손톱까지 갔으면 무어라 했을까를 잠깐 생각했다.
여자가 부채를 접고 코를 한 번 들었다.
"무슨 향입니까."
"…모릅니다."
"모르시는 향을 입고 계시네요."
여자가 탁자 위로 조금 더 몸을 기울였다.
"그래서, 오늘 밤에 오는 아이는 몇이나 되었답니까."
곁의 여자가 숨을 들이켰는데, 옆 탁자까지 들릴 만한 소리였다.
명주의 숨이 걸리고, 잠깐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예?"
여자가 명주의 얼굴을 넉넉히 보고 나서, 아까 접어 두었던 부채를 도로 폈다.
"…제가 잘못 들었나 봅니다."
여자가 몸을 뒤로 물리면서 웃었는데, 웃음이 아까와 같은 웃음이 아니었다.
낮 동안 양붕 줄이 두 번 고쳐 매어졌고, 두 번째에는 명주의 탁자가 반 자 옮겨져, 해가 마당을 건너가는 동안 명주의 자리에만 그늘이 그대로 있었다.
누가 시켰는지는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손이 등 뒤로 왔다.
육정이었다. 명주는 그가 언제 곁에 와 섰는지 알지 못했다.
그의 손이 등 아래쪽 옷끈 매듭 자리에 놓이자 옷이 얕게 눌리고, 그 아래로 숨이 한 번 들어갔다 나왔다.
손의 온기가 비단 두 겹을 지나 살에 닿기까지 잠깐이 걸렸다.
"먼 길에 고단하셨겠습니다."
육정이 여자 쪽으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안사람이 사람 많은 데를 오래 못 견딥니다."
"아이고, 그럼 제가 실례를."
"실례랄 것 있습니까.
다만 저 아래 새로 차린 탁자에 오른 것이 오늘 아침 강에서 올라온 것이라, 지금 아니면 식습니다.
지금, 지금 가셔야 합니다."
여자가 웃으며 물러가자 명주가 고개를 들었다.
육정이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고, 눈썹 사이가 조금 좁아져 있었다.
십 년 동안 그가 무언가를 살필 때 그랬다.
"덥소?"
"아니오."
"목이 마르오?"
"아니오."
"그럼 뭐가 하고 싶소."
명주가 잠시 생각했다.
"들어가고 싶습니다."
육정이 등에서 손을 떼고 나서 종을 불렀다.
명주가 일어섰다. 일어서는 데는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다.
사람들 사이를 지나 서하당으로 걸었고, 지나가는 자리마다 이야기가 끊겼다가 다시 이어졌다.
무슨 이야기인지는 들리지 않았다.
---
해가 기울고 손님이 다 빠진 뒤에도 명주는 창가에 앉아 있었다.
마당에서 그릇이 포개지고 양붕 줄이 풀리는 소리가 하나씩 줄다가 마지막에는 비질 소리만 남았다.
비질 소리는 오래 갔다.
하방 쪽에 둘, 중문에 하나, 등이 차례로 켜졌다.
중문에서 소리가 났다.
내다보니 육정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 뒤로 반 걸음 떨어져, 아이 하나가 그의 그림자를 밟듯 붙어 왔다.
열대여섯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였는데, 단삼 어깨가 젖어 있었고 신도 젖어 있었다.
비는 오지 않았다.
걸을 때마다 신에서 찌걱, 찌걱,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하나씩 마당을 건너오다가 멎자 명주가 회랑으로 나갔다.
아이가 마당 가운데서 멈춰 섰는데, 중문의 등이 아이의 왼쪽에 있어서 얼굴 반이 어두웠다.
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아이의 얼굴 왼쪽 뺨, 광대 아래로 흙이 한 줄 묻어 있었다.
손등으로 닦은 자국.
육정은 명주를 보지 않았다.
등 뒤의 아이도 보지 않았다.
중문과 서하당 사이 어디쯤에 시선을 둔 채로 입을 뗐다.
"오늘부터."
"이 아이가 이 집에 있을 것이오."
등록방에 불을 하나 켜 놓고 늙은 심약이 화로 앞에 앉아 있었다.화로 재가 식어서 손을 대도 안 뜨거웠다.한경이 들어와 문을 닫았다.닫고 나서 화로 건너편에 앉았다."영감님. 스무 해면 등록 첩이 두 권이잖아요.한 권에 열 해씩이니까.""두 권입니다.""한 권은 여기 있고요.""…한 권은 없습니다.없습니다, 여기에는.""태후 마마 처소 바깥방에 등초가 스무 권 넘게 있어요.옮겨 적은 것만 있고 원본은 하나도 없고요.여기서 없어진 한 권이 거기 옮겨 적혀 있으면 저는 그걸 바깥방에서 볼 수 있어요.""…등초에도 없을 겁니다.""보셨어요?""안 봤습니다. 그런데 없을 겁니다.있으면 이 방 사람이 벌써 찾아냈습니다."늙은 심약이 자리를 고쳐 앉았다.고쳐 앉으면서 무릎에 손을 얹었다가 도로 내렸다.* * *"소인이 이 담 안에 든 것이 스물두 해입니다.""…""든 해에 서쪽 방에 사람이 있었습니다.여자였고 의녀였습니다.소인보다 먼저 들었고 나이도 위였습니다.""…""말이 없었습니다.소인이 아침에 들어가면 늘 문을 등지고 앉아 있었어요.문이 열려도 안 돌아봤습니다."한경이 화로 재를 한 번 봤다."그 사람이 여기 등록방에도 왔어요?""왔습니다. 소인이 갓 들어서 첩 적는 걸 못 했는데 그 사람이 옆에서 봐 줬습니다.넉 줄을 어떻게 채우는지, 난 날을 언제 적는지를 그 사람한테 배웠습니다.""…""소인이 그때 왜 이런 걸 다 적느냐 하였더니, 등록은 세는 게 아니라 남기는 거라고 그 사람이 그랬습니다.""…""소인이 그때는 그 말을 못 알아들었습니다.스물두 해 걸렸습니다."늙은 심약이 화로 재를 뒤적였다.뒤적이다가 부젓가락을 놓쳤고, 놓친 것이 재 위로 떨어져 재가 조금 일었다."…손이 곱아서요.""아유. 괜찮아요, 그거 저도 오늘 두 번 놓쳤어요."늙은 심약이 픽 웃었다.웃으면서 어깨가 한 번 흔들렸다.* * *"어느 날 아침에 그 방이 비었습니다.""…""그 뒤로 그 방에 사람을 안
태후 처소 바깥방에 화로가 둘 있었다.하나는 문 옆에 있고 하나는 안쪽 방 문지방 앞에 있었는데, 문지방 앞의 것에는 숯이 안 들어 있었다.바깥마당을 건너오는 동안 눈이 신 안으로 들어왔다.섬돌 위에서 버선을 두 번 털었는데 젖은 데는 안 털렸다.류 상궁이 문 안쪽에 서서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의녀. 오래 서 계셨습니까.""아침부터 저 아래 섰다가요.""…소인이 나와 보았어야 했는데.""아니에요. 나오시면 상궁고고도 같이 서 계셔야 하잖아요.""등록이 났습니다.""…""바깥방까지입니다.""안쪽 방은요.""바깥방까지입니다."류 상궁이 같은 말을 두 번 했다.두 번째에는 눈을 피했다.한경이 무릎을 굽혔다가 펴고 문지방을 넘었다.넘는 데까지 아무도 안 막았다.* * *바깥방은 넓고 비어 있었다.시렁이 벽 하나를 다 차지했고 그 위에 첩이 여럿 얹혀 있었다.한경이 시렁 앞으로 갔다.첩 겉장마다 등초라고 적혀 있었다.등초 아닌 것은 하나도 없었다.한경이 첩 하나를 내려 폈다.옮겨 적은 것이라 줄이 곧고 사이가 고르고 고친 자리가 하나도 없었다."이거 한 권 옮겨 적는 데 며칠 걸려요.""…한 권에 이레쯤 걸립니다.""어. 여기 스무 권이 넘는데요.그럼 넉 달이에요.넉 달 동안 사람 하나가 이것만 했다는 거고요.""…둘이 했습니다.""여기 있는 건 다 옮겨 적은 거네요.""예.""의녀.""예.""바깥방에서 보실 것은 저 시렁이 전부입니다.등초는 누가 보든 적지 않습니다.""…적는 건 사람만이네요.""…""원본은 안쪽 방에 있고요.""…소인이 답할 자리가 아닙니다.""상궁고고.""예.""제가 여쭌 게 아니라 셈을 한 거예요.옮겨 적은 게 밖에 있으면 옮겨 적힌 데가 안에 있는 거니까요."류 상궁이 발을 한쪽으로 옮겨 디뎠다가 도로 옮겼다.* * *안쪽 방 문이 닫혀 있었다.문지방 나무가 가운데만 닳아서 얕게 파였고, 파인 자리가 검게 윤이 났다.한경이 그 앞까지 갔다.갔다가 반
한경이 등을 들고 서쪽 방 문설주 안쪽에 댔다.자국이 스물셋이었다.스물둘까지는 깊이가 다 같고 마지막 하나만 나무 결이 갈라져 있었다.갈라진 안쪽이 아직 흰빛이었다.한경이 그 마지막 자리에 손끝을 댔다.손끝이 그 안에 걸렸다."스물셋."소하가 뒤에서 등을 받쳐 들고 있었다.받쳐 든 팔이 떨려서 그림자가 문설주 위에서 흔들렸다."의녀님. 그거 날짜예요?""몰라.""날짜면 스물세 밤이잖아요.스물세 밤이면 한 달이 안 되는데. 아, 아니다.하루에 두 번 그었으면 열이틀이고요.""…""근데 왜 마지막 것만 깊어요?""…""의녀님. 저 무서워요.""의녀님. 그럼 이거 그은 사람이 저 방에서 스물세 밤 잔 거예요?""…""아유. 아유, 저는 여기 온 지 스물세 밤 넘었는데.""등 낮춰. 그림자 흔들려."방 안쪽 벽에 시렁이 하나 있고 그 아래 마루가 자리 넓이만큼 닳아 있었다.닳은 데가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다.하나는 창 쪽이고 하나는 문 쪽이었다.한경의 손끝이 식었다.* * *등록방에 등이 하나 켜져 있었다.젊은 서리가 화로 앞에 앉아 있다가 일어섰다."이 시각에는 안 됩니다.""서쪽 방 쓰던 사람만 보면 돼요.오래 안 걸려요.""…서쪽 방은 지난달까지 서리들이 썼습니다.""그 전에요."서리가 첩을 꺼내 넘겼다.넘기다가 한 군데서 멈추고 두 장을 도로 넘겼다.도로 넘긴 데를 손끝으로 두 번 짚었다."…없습니다.""이 첩에는 뭘 적어요.""방 이름하고 든 사람하고 든 날하고 난 날입니다. 넉 줄입니다.넉 줄이 다 차야 한 줄입니다.""넉 줄이 안 차면요.""안 찬 줄은 없습니다.있으면 소인이 맞습니다.""열 해 치를 다 보신 거예요?""열 해 치가 이 한 권입니다!방마다 든 사람 이름이 다 있는데 서쪽 방만 없어요.없는 걸 어떻게 있다고 합니까!"서리가 첩을 상에 내려놓았다.내려놓는 소리가 컸다.놓고 나서 화로 쪽으로 돌아섰다."…""…죄송합니다.""아니에요.""소인이 이 방
서쪽 방에 자리가 셋 비었다.저녁에 셋이 다 제 짐을 들고 나갔고 나가면서 아무도 인사를 안 했다.한경이 남은 자리에 앉았다.방에 불이 하나뿐이라 장을 넘길 때마다 종이를 등 쪽으로 기울여야 했다.문 밖에서 소하가 눈을 쓸다 말고 안을 들여다봤다."의녀님. 저 사람들 왜 갔어요?""돌아갈 데가 있어서 갔어.""…저는 돌아갈 데 없는데요.""응. 그러니까 여기서 자. 문 닫고. 눈 들어와.""예!""…""아 맞다. 저 사람들 자리 제가 치웠는데요, 하나가 이불을 두고 갔어요.이불은 어떡해요?""펴 놓고 네가 써.""…남의 건데요.""두고 간 건 남의 게 아니야."* * *늙은 심약이 첩 하나를 들고 왔다.겹옷 앞자락에 눈이 얹힌 채로 들어와서 방 안에서 그것이 녹기 시작했다."곳간에서 이걸 내주라 하였습니다.""약재는 이제 못 적어 내는데요.""적어 내는 것 말고 적어 낸 것입니다.""…""적어 낸 것을 도로 보는 건 칙첩하고 상관이 없습니다.태의원에 든 사람은 제 손으로 적은 것을 도로 봅니다.스무 해 넘게 그리 해 왔고, 그건 마마께서 주신 게 아니라서 마마께서 못 걷습니다.""어. 그게 여태 있었어요?""있었습니다. 아무도 안 찾아서 곳간 시렁 위에 있었습니다.먼지를 소인이 털었습니다."이게 남은 하나였네.한경이 마른침을 삼켰다.* * *한경이 첩을 폈다.열 달 치가 날짜대로 있었고 적어 낸 줄 옆에 나온 날이 적혀 있었다.나온 날이 없는 줄에는 아무것도 안 적혀 있었다.빈 자리가 셋이었다.세 가지가 열 달 내내 한 번도 안 나왔다."영감님. 열 달 치를 세면 적어 낸 게 백열네 줄이에요.나온 게 아흔한 줄이고요.안 나온 스물세 줄 가운데 스무 줄은 늦게라도 왔어요.""…""안 온 게 세 줄인데, 그 세 줄이 열 달 내내 같은 세 가지고요."늙은 심약이 한경 옆으로 와서 첩을 들여다봤다.등에 가까이 대느라 허리를 두 번에 굽혔다."영감님. 이 셋은 어디 있어요.""태의원 곳간
revi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