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자경에서 제일 곱다는 얼굴이, 항아리 속에 있었다. 십 년을 담 안에서만 살다 죽은 육가의 정실 심명주. 무엇을 잘못했는지 끝내 몰랐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고, 아무도 묻지 않았다. 그 몸에서 다시 눈을 뜬 것은 독과 약을 읽는 여자다. 다시 유월 초닷새, 모든 것이 시작된 아침. 「가마는 둬. 걸어갈 거야.」 얼굴은 그대로인데 사람이 다르다. 십 년 만에 아내가 낯설어진 남자는 뒤늦게 묻기 시작하고, 처음 만난 날부터 묻는 남자가 담 밖에서 그녀를 알아본다. 십 년을 기다린 남자는, 끝내 얻지 못한다.
더 보기차일 아래로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그림자가 명주의 무릎을 스쳤다.
명주는 정청 가운데 앉아 있었다.
아침에 그 자리에 방석이 놓였고 그 뒤로 아무도 방석을 옮기지 않았다.
마당에는 차일이 셋 섰다.
굵은 기둥에 줄을 매어 넓은 무명천을 하늘처럼 팽팽히 당겨 둔 것이라, 유월 볕이 거기서 한 번 걸러져 마당 절반이 옅은 그늘에 잠겼다.
그 그늘마다 상이 들어차고 상 위에 그릇이 놓이고 그릇마다 뚜껑이 덮였다.
뚜껑 틈으로 김이 새고, 기름에 지진 것들이 노랗게 포개지고, 꿀에 재운 과실이 볕에 윤을 냈다.
부엌 쪽에서 기름 냄새가 밀려왔다가 바람이 바뀌면 장독들 쪽의 짠 냄새로 바뀌었다.
무슨 연회인지 분명 누군가가 말해 주었으나, 말해 준 사람의 얼굴만 옅게 남고 정작 말은 기억나지 않았다.
치마가 연둣빛이었다.
아침에 시녀 둘이 들고 와 펼쳐 보인 것 중 육정이 고른 색.
소매 끝에 은실로 넝쿨을 놓았는데 그 실이 빛을 받으면 물처럼 흘렀다.
머리는 낮게 틀어 백옥 비녀 하나를 질렀고, 귀 뒤로 내려온 잔머리 한 올이 목의 푸른 기 위에 얹혀 있었다.
치맛자락이 움직일 때마다 백단에 매화 향이 얕게 번졌다.
가슴 아래를 두른 치마허리에서 은실 넝쿨이 가는 줄기를 치고 올라, 숨이 들 때마다 잎사귀 한 장이 옅게 부풀었다가 숨이 날 때 가만히 가라앉았다.
상 사이를 지나던 여자들이 정청 앞에서 걸음이 늦어졌다가, 일행이 소매를 당기고 나서야 두어 번 더 돌아보며 지나갔다.
명주는 그것이 제 외모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곱다는 말을 들었으니, 시집온 후에도 온 집안 식구들이 자신의 외모를 아름답다 하였으니, 나리도 내게 아름답다 하였으니.
"부인이십니까."
낯선 여자가 상 너머에서 몸을 기울였다.
명주가 그쪽을 향해 반박자 늦게 고개를 돌렸다.
여자는 이미 웃고 있었다.
"소문이 과하다 했더니 오히려 모자랐습니다.
그늘에서 기른 옥이 이런 빛일까요.
희다는 말만 듣고 왔는데 희기만 한 것이 아니라 푸른 기가 돌고, 눈매가 관자놀이까지 이리 길게 흐르는 줄은 아무도 말해 주지 않던데요."
여자가 제 말에 취해 부채로 입가를 가렸다.
부채 위로 눈이 명주의 얼굴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명주는 웃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웃으면 웃었다고 할 것 같고 안 웃으면 안 웃었다고 할 것 같았다.
목이 마르다고 느끼고 옆을 돌아보자 가까이 서 있던 삼월이 바로 잔을 들어 왔다.
잔을 입술에 대어 주고 두 모금 넘기자 삼월이 다시 잔을 입술에서 떼었다.
입가에 흐른 것을 단이가 수건으로 눌렀다.
명주는 잔이 어디에 놓이는지 보지 않았다.
볕이 차일 무명 위에서 느리게 끓었다.
기름 냄새와 단내가 섞인 더운 바람이 정청 안까지 늘어지게 드나들었고, 상 사이 어디선가 나른한 웃음소리가 일었다가 잦아들었다.
낮 동안 종 둘이 와서 차일 줄을 두 번 고쳐 맸다.
두 번째에는 상째 반 자를 옮겼다.
해가 마당을 건너가는 동안 명주의 자리에는 그늘이 그대로 있었다.
누가 시킨 일인지는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손이 등 뒤로 왔다.
육정이었다. 언제 왔는지 명주는 몰랐다.
그의 손이 등 아래쪽, 옷끈 매듭이 있는 자리에 놓였다.
손바닥이 닿은 데서 옷이 얕게 눌리고, 그 아래로 숨이 한 번 들어갔다 나왔다.
손의 온기가 비단 두 겹을 지나 살에 닿기까지, 잠깐이 걸렸다.
"먼 길에 고단하셨겠습니다."
육정이 여자 쪽을 보고 말했다.
"안사람이 사람 많은 데를 오래 못 견딥니다."
"아이고, 그럼 제가 실례를."
"실례랄 것 있습니까.
저기 새 상을 봐 두었으니 그리로 가시지요."
여자가 웃으며 물러갔다.
명주가 고개를 들었다.
육정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눈썹 사이가 조금 좁아져 있었다.
십 년 동안 그가 무언가를 살필 때 그랬다.
"덥소?"
"아니오."
"목이 마르오?"
"아니오."
"그럼 뭐가 하고 싶소."
명주가 잠시 생각했다.
"들어가고 싶습니다."
육정이 손을 뗐다.
그리고 종을 불렀다.
명주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 안채로 걸었다.
지나가는 자리마다 이야기가 끊겼다가 지나가고 나면 다시 이어졌다.
무슨 이야기인지는 들리지 않았다.
섬돌 앞에서 신을 벗었다.
삼월이 받아 들었다.
치맛단이 흙에 닿을 뻔했으나 단이가 먼저 걷어 올렸다.
◇
해가 기울고 손님이 다 빠진 뒤에도 명주는 창가에 앉아 있었다.
마당에서 상 걷는 소리가 났다.
그릇이 포개지고, 차일 줄이 풀리고, 천이 접히는 소리.
소리가 하나씩 줄다가 마지막에는 비질 소리만 남았다.
비질 소리는 오래 갔다.
등이 켜졌다. 행랑 쪽에 둘, 중문에 하나.
중문에서 소리가 났다.
내다보니 육정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 뒤로 반 걸음 떨어져, 아이 하나가 그의 그림자를 밟듯 붙어 왔다.
여자아이였다. 열대여섯쯤.
적삼 어깨가 젖어 있었고 신도 젖어 있었다.
비는 오지 않았다.
걸을 때마다 신에서 찌걱, 찌걱, 소리가 났다.
물 밟은 신이 마른 흙을 디딜 때 나는 소리.
그 소리가 하나씩 마당을 건너와 마루 앞에서 멎었다.
명주가 마루로 나갔다.
아이가 마당 가운데서 멈췄다.
중문의 등이 아이의 왼쪽에 있어서 얼굴 반이 어두웠다.
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얼굴에 흙이 한 줄 묻어 있었다.
왼쪽 뺨, 광대 아래로.
손등으로 닦은 자국.
육정은 명주를 보지 않았다.
등 뒤의 아이도 보지 않았다.
중문과 안채 사이 어디쯤에 시선을 둔 채로 입을 뗐다.
"오늘부터."
"이 아이가 이 집에 있을 것이오."
정월에 족보를 손보는 자리에 명주가 불려 나갔다.장독들 옆방에서 정청까지 가는 동안 시녀가 붙지 않았다.길은 물을 것도 없었다. 십 년을 산 집.정청에 병풍이 둘러쳐지고 화로가 넷 놓였다.화로는 전부 어른들 쪽에 있어 명주가 선 가운데 자리에는 볕도 불기도 오지 않았다.육가 사람이 스물 남짓 모였고 명주는 가운데 섰다.누가 긴 글을 읽었으나 명주는 웅얼거리는 소리로만 들렸다.종이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명주의 이름을 짚으며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심씨.그 두 자가 나올 때마다 어른들 쪽에서 옷깃 스치는 소리가 났다.명주는 절반쯤에서 듣기를 그만두었다.칠거라는 말이 나왔다.일곱 가지를 버린다는 것인지, 일곱 번을 버린다는 것인지 명주는 한참을 고민했다.무자라는 말도 나왔는데 그것은 알아들었다.읽기가 끝나자 문중 어른 하나가 말했다."할 말이 있느냐?"스물 남짓한 얼굴이 명주를 빤히 바라보았다."저는."명주가 입을 떼자 모두 숨을 죽였다."저는… 무엇을 잘못했습니까?"할 말이 있느냐고 물었던 어른이 이내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명주의 이름에 힘을 주어 읽었던 사람이 이내 상 위에 펼친 족보를 쭉 훑다가 어느 부분에서 붓을 움직여 두 번 한 일 자를 그렸다.가로로 한 번, 또 한 번.먹이 마르기를 기다리는 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문진을 치우고 책을 덮자 또 한 어른이 말했다."이제 나가 보거라."명주가 단정히 절을 올렸으나 절을 받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그날 밤 명주는 별채에서 또다시 처소를 옮겼다.뒤뜰 끝, 장독들 옆에 붙은 방.원래 장 담그는 사람이 겨울에 자던 자리였을 그곳.문이 낮아서 고개를 숙여야 들어갈 수 있었다.방에서는 시고 짠 장 냄새가 났다.천장이 낮아 일어서면 작은 명주의 키조차 정수리가 닿았다.명주가 그 안에 들어가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바닥에는 자리 한 장이 깔려 있고 그 위에 이불 같은 것이 널브러져 있었다.쉰내가 올라왔고 이불귀는 해져서 솜이 비쳤다.명주는 그 이불 같
별채 문밖에서 웅성웅성 소란한 소리가 들려왔다.서재 앞에서 밤을 새워 육정을 만나고 온 지 사흘째 되던 아침.본디 명주의 머릿결은 타고나기를 물기를 머금은 탄력 있는 까만 머릿결이었다.제법 동경을 바라보며 스스로 머리를 빗어 내리는 그녀의 손이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명주가 문을 열자 찬 아침 빛이 확 밀려들었다.마당에 손님이 와 있었다.심가에서 온 애어멈이었다.그녀가 어릴 적, 작고 여린 명주를 늘 업어 재워 주던 사람.등에 업히면 마른 쑥 냄새가 나던 사람이었다.그 등이 이제 굽어져 더는 아이를 업을 수 없겠다고 명주는 속으로 생각했다.어멈의 발이 온통 흙투성이에 한쪽 신끈이 끊어져 새끼줄로 묶여 있는 것은 명주에게는 보이지 않았다.명주의 까맣고 순진무구한 눈동자를 보자 어멈은 가슴이 저렸다."아씨!"어멈은 그만 무릎이 꺾여 흙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대인께서….""아버지가?"명주가 버선발로 문지방을 넘어 어멈 앞에 서자 섬돌의 찬 기운이 발바닥에 쨍하게 올라왔다."대인께서 어제 새벽에 가셨습니다…. 흑… 끄윽….""어디로?"어멈은 그 물음에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어디로 가셨느냐?"끅끅 삼키다 터진 어멈의 울음이 이른 아침 별채를 지나 온 마당에 낮게 퍼져 나갔다.행랑 쪽에서 문이 하나 열렸다가 이내 다시 닫혔다.명주는 어멈이 왜 우는지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했다.어멈을 향해 고개를 숙이자 빗어 내리다 만 까만 머리카락이 아침 바람에 물결치며 흘러내렸다."나리께서 사람을 보내겠다고 하셨다."명주가 밝은 얼굴로 어멈의 어깨를 흔들며 말했다."약을… 누가 옥에 약을 넣어 드렸다 하옵니다."어멈이 고개를 들어 명주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말했다.명주는 고개를 머리칼이 흘러내린 쪽으로 기울이며 물었다."약을?"서리 내린 아침 빛 속에 선 아씨는 여전히 고왔고 여전히 맑았다.아비가 죽었다는 말조차도 이해하기 힘든 이 곱고 맑음이 어디에서 시작된 건지 어멈은 알고 있었다.어멈은 명주를 업어 주던
동짓달에 사람이 왔다.별채 문밖에서 시녀가 누군가와 소곤소곤 말을 주고받았고, 명주가 가만히 창에 귀를 댔다."…심 대인이 하옥되셨다는데.""쉿.""세곡이라던가. 삼 년 치가 비었다고.""심가가 저리 되면 이 댁 뱃길은 어찌 된대.""그걸 우리가 왜.""쉿, 안에서 듣는다."명주가 문을 열었다.시녀가 놀라 돌아섰다."우리 아버지가.""부인.""우리 아버지가 어찌 되었다고."시녀는 대답하지 않고 물러갔다.명주는 문 안에 가만히 서 있었다.심가, 하옥, 세곡.들은 말들은 서로 이어지지 않은 채 흩어지고, 아버지가 옥에 있다는 것만 남았다.옥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 명주는 알 길이 없었지만 아버지에게 나쁜 일이 생긴 것임엔 틀림이 없었다.갑자기 마음이 까닭 모르게 조급해졌다.명주는 비뚤어진 옷끈 채로 안채로 달려 나갔다.별채에서 안채까지는 마당을 두 번 건너야 했다.바람이 담을 훌쩍 넘어와 마당에서 휘 돌았고, 서리 앉은 흙이 내딛는 자리마다 신 밑에서 버석버석 부서졌다.명주는 안채로 가는 그 길을 쭉 따라 허둥지둥 걸으며 아버지. 하옥.두 단어를 입으로 되뇌었다.지금 육정에게 고해야만 아버지가 괜찮을 것 같았다.안채에서 서재로 꺾어 드는 길목에서, 서재를 지키던 종이 명주를 가로막고 섰다."나리께서 안 계십니다."명주는 그제야 육정을 찾아서 아비의 일을 물어야겠다고 생각했다."기다리겠다."종은 고집을 부리는 옛 안채의 주인을 향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땀만 뻘뻘 흘렸다.명주는 다시 한 번 고집스럽게 말을 이었다."나리를 여기에서 기다리겠다."명주는 서재 앞 섬돌 위에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섬돌은 얼음장처럼 찼고 그 찬 기운이 치마를 지나 스멀스멀 허리께까지 올라오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해가 뉘엿뉘엿 기울었다.오가던 계집종들이 명주를 흘끔 돌아봤다가는 이내 눈을 돌렸다.추위에 핏기가 가신 낯이 저무는 빛 속에서 서리를 맞은 배꽃처럼 희게 피어났고 젖은 속눈썹이 깜빡일 때마다 남은 빛이 잘
별채는 마당 서쪽 끝에 있었다.원래 곳간으로 쓰던 자리에 방을 들인 것이라 창이 하나였고 그 창이 북쪽을 봤다.해가 들지 않아 낮에도 벽이 찼다.벽 아래쪽에 가마니 자국이 남아 있었다.무언가를 오래 쌓아 두었던 자리만 색이 옅었다.방을 들이면서 종이를 새로 발랐는데 그 자리만 풀이 덜 먹어 귀가 들떠 있었다.바닥은 아침에 데워지지 않았다.화덕이 멀어서 불기가 오다가 마는 방이었다.밤이면 벽지의 들뜬 귀가 제 숨에도 바스락거렸고, 이불 밖으로 나온 코끝이 시렸다.쪽창으로 담이 걸쳐 보였고 담 위로 하늘이 한 뼘 있었다.아침에는 그 한 뼘이 희고 저녁에는 붉었다.붉은색이 사라지고 나면 방 안의 하루는 그것으로 끝이었다.그 방으로 명주의 세간살이가 모두 옮겨졌다.옮기는 데 꼬박 반나절이 걸려서 장이 셋, 궤가 넷, 옷이 스무 벌 남짓 넘어왔으나 별채로 장은 들이지 못해 되돌아갔다.되돌아가는 장이 마당을 건널 때마다 안에서 무엇인가 데구루루 구르는 소리가 났다.명주는 단지 자리가 옮겨진 것 외에는 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시녀가 연둣빛 치마를 가져다 궤짝 위에 올려 두었고 명주는 그 옷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서란을 떠올렸다.별채에는 시녀가 한 명 붙었다.이름을 세 번이나 물었으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아 명주는 조금 슬펐다.아이는 물그릇이며 밥을 문지방 안에 내려놓고는 그대로 나가 버렸다.처음 며칠은 그것이 곤욕이었으나 익숙해지자 아침에 몸을 일으키면 먼저 문지방으로 물을 마시러 갔다.밤새 식은 물은 이가 시리게 찼고, 명주는 그릇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천천히 마셨다.생선을 발라 주는 이도 없었고 머리를 빗겨 주는 이도 없었다.십 년 동안 복기하듯 기억해 두었던 그녀의 일상이 뒤바뀐 것이 명주는 그저 어려웠다.명주는 사흘째에 젓가락으로 생선을 헤집어 보았다.하얀 살 속에서 잔가시가 은침처럼 일어섰다.가시를 삼켰고, 목에 걸린 것은 밤에야 내려갔다.그 뒤로는 등뼈를 먼저 걷어 내는 법을 혼자 익혔다.탕이 뜨거우면 식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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