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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2화

Author: 서린화
황제가 더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금영도 굳이 눈치 없이 캐묻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그저 생글생글 웃으며 소녕전으로 돌아갔다.

공 상궁은 직접 상의국 사람들을 데리고 와 금영의 치수를 재게 했다.

금영은 예전에 예복 때문에 한 차례 곤욕을 치른 적이 있었다.

그래서 공 상궁을 바라보며 따로 당부했다.

“이번 예복은 서로 다른 색의 옷감으로 두 벌을 준비하게.”

공 상궁은 궁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노련한 사람이었다.

금영이 한마디만 해도 곧바로 그 뜻을 알아차렸다.

공 상궁이 공손히 예를 올렸다.

“마마, 염려하지 마시옵소서.”

금영은 온화한 눈길로 공 상궁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궁 안에서 공 상궁이 이렇게 손발을 맞춰 주니 확실히 적지 않은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었다.

다만 금영은 늘 마음 한구석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공 상궁은 요즘 들어 선 태비의 억울함을 풀어 달라는 말을 더는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엄숙하고 평온한 얼굴 아래에는 언제라도 터져 나올 듯한 뜨거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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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882화

    황제가 더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금영도 굳이 눈치 없이 캐묻지는 않을 생각이었다.그저 생글생글 웃으며 소녕전으로 돌아갔다.공 상궁은 직접 상의국 사람들을 데리고 와 금영의 치수를 재게 했다.금영은 예전에 예복 때문에 한 차례 곤욕을 치른 적이 있었다.그래서 공 상궁을 바라보며 따로 당부했다.“이번 예복은 서로 다른 색의 옷감으로 두 벌을 준비하게.”공 상궁은 궁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노련한 사람이었다.금영이 한마디만 해도 곧바로 그 뜻을 알아차렸다.공 상궁이 공손히 예를 올렸다.“마마, 염려하지 마시옵소서.”금영은 온화한 눈길로 공 상궁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궁 안에서 공 상궁이 이렇게 손발을 맞춰 주니 확실히 적지 않은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었다.다만 금영은 늘 마음 한구석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공 상궁은 요즘 들어 선 태비의 억울함을 풀어 달라는 말을 더는 꺼내지 않았다.하지만 그 엄숙하고 평온한 얼굴 아래에는 언제라도 터져 나올 듯한 뜨거운 용암이 억눌려 있는 것만 같았다.*이틀 뒤.황제는 소녕전에서 금영과 함께 아침 수라를 들고 있었다.그때 밖에서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황후마마 납시오!”서 황후는 그대로 전각 안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문 앞을 지키고 있던 손복안이 앞을 막았다.“황후마마, 폐하께서 안에 계시옵니다. 소인이 곧 들어가 아뢰겠사옵니다.”손복안이 정중하게 말했다.서 황후는 걸음을 멈췄다.목소리는 온화하고 현숙했으며 일국의 국모라는 위세는 조금도 내비치지 않았다.“수고하게. 본궁은 폐하를 뵈러 온 것이네. 귀비 책봉에 관한 일로 드릴 말씀이 있어서 말일세.”애초에 서 황후가 이곳까지 찾아온 목적부터가 황제를 만나기 위해서였다.이제 다시 중궁을 다스릴 권한을 손에 쥔 데다 황제에게 직접 귀비 책봉 의식을 맡아 치르라는 허락까지 받았다.덕분에 황제를 찾아올 그럴듯한 명분도 생긴 셈이었다.사실 손복안이 굳이 안으로 들어와 알릴 필요도 없었다.금영과 황제 역시 방금 이전이 외친 소리를 모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881화

    예전에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하지만 불과 일 년이 지난 지금, 황후의 자리는 그대로인데 그에 걸맞은 체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다.“황후마마, 노여움을 거두시옵소서.”조씨가 곁에서 조심스럽게 달랬다.서 황후는 가까스로 감정을 가라앉혔다.그러나 이내 얼굴에 음울한 기색을 드리우며 싸늘하게 말했다.“귀비가 되기만 하면 제 아들이 본궁의 아들과 태자 자리를 다툴 수 있을 줄 아는 모양이구나.”“꿈도 야무지지!”“본궁이 언젠가는 반드시 그 천한 계집을 없애 버리고 말 것이다.”서 황후의 눈에 짙은 원한이 서렸다.“배금영 그 천한 계집도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것이야!”조씨가 곁에서 조심스럽게 일깨웠다.“하지만 황후마마, 태후마마께서 전에 당분간은 원비마마에게 너무 신경을 쏟지 말라고 하시지 않으셨사옵니까.”서 황후의 얼굴이 단숨에 차갑게 굳었다.그녀는 갑자기 고개를 돌려 조씨를 노려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조씨, 너는 본궁의 사람이냐, 태후의 사람이냐?”“아니면…… 서가의 사람인 것이냐?”조씨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하얗게 질렸다.곧바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황후마마, 노여움을 거두시옵소서!”“노비는 황후마마께 충성을 다하고 있사옵니다. 오직 황후마마 한 분께만 충성을 바치옵니다!”“조금 전에는 그저 황후마마께서 홧김에 일을 벌이셨다가 태후마마의 노여움을 사시게 될까 염려되어 그만……”조씨는 거기까지 말하고 감히 말을 잇지 못했다.서 황후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어마마마께서도 이제 연세가 드셨으니 매사 몸을 사리시는 게다.”“본궁이 태자의 등극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하나씩 모조리 치워 버리고 나면, 어마마마께서도 결국 본궁이 옳았음을 아시게 될 것이다.”*서봉전을 나온 뒤였다.황제는 조금 전까지 얼굴에 드리워져 있던 냉엄한 기색을 한결 거두고 웃음 어린 눈으로 금영을 바라보았다.“짐이 오늘은 좀 더 자라고 일러두지 않았느냐?”“그런데 그새 서봉전까지 와서 황후에게 문안을 드리고 있었구나.”금영이 생글생글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880화

    금영은 서 황후가 진심으로 자신과 현비를 축하하며 귀비 책봉 의식을 정성껏 준비해 줄 것이라고는 조금도 믿지 않았다.후궁을 다스리는 권한을 되찾으려는 속셈은 물론이고, 그 뒤에 또 무슨 꿍꿍이를 숨기고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하지만 황제는 서 황후의 청을 굳이 물리치지 않았다.서 황후는 그래도 오랫동안 어질고 현숙한 황후로 지내 온 사람이었다.황제 역시 서 황후를 견제하면서도 최소한의 체면은 세워 주고 있었다.“그 일은 황후의 뜻대로 하도록 하지. 잘 치러 낸다면 짐이 따로 상을 내리겠다.”그러다 황제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말끝에는 분명한 경고가 서려 있었다.“하지만 또 무슨 일이 생긴다면 황후는 계속 서봉전에 머물며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도록 하라.”서 황후는 눈을 살짝 내리깔았다.그러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는 눈가에 이미 옅은 웃음이 번져 있었다.“폐하께서는 염려하지 마시옵소서. 신첩이 반드시 폐하를 실망시키지 않겠사옵니다.”황제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폐하를 배웅하옵니다!”모두가 함께 몸을 낮춰 예를 올렸다.황제가 금영의 앞을 지나던 순간, 무심한 듯 한마디 던졌다.“아직도 따라오지 않고 무엇 하느냐?”말투만 들으면 제법 냉담했다.하지만 금영에게 따라오라고 한 행동 어디에도 냉담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금영이 황제를 따라 자리를 뜨자 현비가 부러운 기색을 감추지 않고 말했다.“본궁은 정말 금영 동생이 부럽군. 폐하께 이토록 총애를 받으니 말이야.”서 황후의 얼굴에 못마땅한 기색이 떠올랐다.“그리 부러우면 자네가 직접 폐하를 경춘궁으로 모셔 가면 되지 않겠나.”현비가 웃었다.“폐하께서는 서봉전에도 좀처럼 발걸음하지 않으시는데, 신첩에게 무슨 재주가 있어 폐하를 경춘궁으로 모셔 가겠사옵니까.”그 말은 정확히 서 황후의 아픈 곳을 찔렀다.서 황후의 얼굴빛이 한동안 어둡게 변했다가 밝아지기를 반복했다.그러다 겨우 다시 입가에 미소를 걸었다.“우리 두 사람은 폐하의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879화

    금영이 다시 입을 열었다.“폐하께서는 또 본궁더러 현비마마와 자주 왕래하라 하셨사옵니다. 훗날에는 이황자에게 본궁의 염아를 잘 보살펴 달라고 하시겠다 하셨고요.”그 말을 들은 서 황후는 하마터면 얼굴에 걸어 둔 평정을 잃을 뻔했다.‘폐하께서 대체 무슨 뜻으로 그런 말씀을 하신 거지?’‘설마 훗날 이황자를 태자 대신 세워 태자 자리에 앉히려는 것은 아니겠지?’‘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황자에게 배금영과 저 아이를 보살피라는 말씀까지 하셨겠어?’‘태자가 훗날 배금영과 그 아이를 괴롭힐까 염려하시는 건가?’현비는 금영을 바라보며 웃었다.“이황자와 태자 전하 모두 아기 황자의 오라버니가 아닌가. 이황자뿐 아니라 태자 전하께서도 당연히 아기 황자를 보살펴 주실 걸세.”현비가 그렇게 말했지만, 서 황후의 눈에 어린 냉기는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았다.금영은 현비를 바라보았다.자신을 서 황후에게 겨누는 창으로 쓰려는 것인가?금영 역시 당장이라도 서 황후를 그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다.그렇다고 남에게 이용당할 만큼 어리석지는 않았다.누군가의 손에 들린 칼이 되느니 차라리 자신이 먼저 서 황후와 현비 사이에 불을 지피는 편이 나았다.두 사람이 서로 물고 뜯는 동안 자신은 뒤에서 이득을 챙기면 그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몇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밖에서 황제가 들어왔다.황제를 보는 순간, 서 황후의 눈에는 금세 눈물이 차오를 듯했다.황제가 마지막으로 서봉전에 찾아온 것이 언제였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그런데 오늘은 마침내 황제가 직접 찾아온 것이다.황제는 막 조회를 마치고 온 듯했다.몸에는 여전히 검은 용포를 걸치고 있었고 머리에는 옥관을 쓰고 있었다.한눈에 보아도 범접하기 어려운 위엄이 느껴졌다.“신첩이 폐하를 뵈옵니다!”모두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올렸다.황제는 손을 가볍게 들어 올린 뒤 성큼성큼 안으로 걸어왔다.탁자 한쪽에는 서 황후가 앉아 있었고, 황제는 그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서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878화

    금영이 손님을 맞는 외전에 도착했을 때, 현비는 이미 차 한 잔을 다 마신 채 한참을 기다리고 있었다.금영은 아직 가시지 않은 피로를 애써 떨쳐 내고 현비를 맞았다.“현비마마를 오래 기다리게 했사옵니다. 부디 탓하지 마시옵소서.”현비가 웃으며 말했다.“본궁이 잘못했지. 폐하께서 어젯밤 소녕전에 머무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아침부터 찾아왔으니.”“금영 동생이 본궁을 탓하지 않으면 다행이지, 본궁이 어찌 동생을 탓하겠나?”현비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황후마마의 금족이 어제 풀렸으니 오늘은 우리 모두 서봉전에 가서 문안을 드려야 하지 않겠나.”“마침 금영 동생과 함께 가면 좋겠다 싶어 미리 기별도 없이 찾아왔네.”“혹 지금 불편하다면 본궁이 먼저 서봉전으로 가겠네.”그 말을 들은 금영이 가볍게 웃었다.경춘궁에서 서봉전으로 가는 길에 굳이 소녕전까지 들러야 할 이유는 없었다.하지만 금영은 현비의 속셈을 굳이 들춰낼 생각이 없었다.“현비마마께서 이미 오셨는데 본궁도 딱히 불편할 것은 없사옵니다.”금영은 그렇게 말하며 먼저 가시라는 듯 손짓했다.두 사람은 나란히 서봉전으로 향했다.도착해 보니 여비가 이미 와 있었다.금영은 여비를 향해 가볍게 웃어 보였다.사실 금영은 겉으로 누구에게나 늘 부드럽고 예의 바르게 대하는 편이었다.하지만 여비는 금영의 호의를 받아 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홱 돌리며 못 본 척했다.금영과 현비는 함께 서 황후에게 문안을 올렸다.“황후마마께 문안드리옵니다.”서 황후가 미소를 지었다.“되었네. 다들 왔으니 앉아서 이야기나 나누도록 하지.”“감사하옵니다, 황후마마.”금영도 미소로 답했다.서 황후는 금영과 현비를 바라보며 웃었다.“그러고 보니 아직 두 사람에게 제대로 축하도 건네지 못했군.”그러다 다시 여비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다만 여비의 그 아이는 참으로 안타깝게 되었네. 그 아이가 무사했다면 이번 귀비 책봉에도 자네 몫이 있었을 텐데.”그 말을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877화

    풍등의 다른 쪽 면에는 또 다른 글귀가 적혀 있었다.다시는 사랑하는 이를 잃지 않기를.하지만 금영은 그 글귀를 보지 못했다.대신 조금 떨어진 곳에서 풍등 하나를 붙들고 씨름하는 위명이 눈에 들어왔다.위명은 워낙 손이 크고 거친 데다 풍등을 다루는 동작까지 요란했다.누가 봐도 일부러 사람들의 눈길을 끌려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금영은 무심코 풍등을 한번 흘끗 바라보았다.그 위에는 시커먼 글씨 몇 덩이가 떡하니 박혀 있었다.금영이 굳이 글씨를 두고 덩이라고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하지만 위명이 얼마나 힘을 주어 썼는지 획 하나하나가 지나치게 굵었고, 먹물까지 번져 서로 엉겨 붙어 있었다.그야말로 못생긴 글씨 덩어리 몇 개였다.금영은 눈을 가늘게 뜨고 간신히 글자를 알아보았다.봉급을 깎지 않기를.간신들을 쓸어버리기를.금영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위명의 소원은 지나치게 소박했다.하지만 소박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오늘 풍등을 살 돈조차 해수에게 빌려 온 사람이었다.남들은 주머니가 비면 동전 구르는 소리라도 난다지만, 지금 위명의 주머니에는 그 소리조차 낼 것이 없었다.금영은 몸을 돌려 황제를 바라보았다.“폐하, 위 총령은 폐하께 충심을 다하고 있지 않사옵니까. 이제 그만 봉급을 깎으시지요. 보고 있자니 너무 딱하옵니다.”그 말을 들은 위명은 금영을 바라보며 당장이라도 눈물을 글썽일 듯한 얼굴이 되었다.‘그렇지! 바로 그거다! 그렇게 폐하께 대신 말씀드려 주십시오!’황제는 위명을 한번 흘끗 바라보았다.훤칠한 키에 덩치까지 유난히 큰 위명이 두 눈 가득 기대를 품은 채 금영만 바라보고 있었다.황제의 눈썹이 살짝 치켜올라갔다.“금영아, 지금 다른 사내를 가엾게 여기는 것이냐?”조금 전까지만 해도 금영이 대신 사정을 해 주면 황제가 마음을 돌려줄지도 모른다고 기대하던 위명이었다.하지만 그 한마디에 혼이 쏙 빠져나갈 것 같았다.차라리 칼을 들어 스스로 태감이 되고 싶은 심정이었다.‘사내는 무슨 사내란 말인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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