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진성택에게 정말 문제가 생긴다면, 김영희와 진유경은 진정훈 때문에 힘들게 살아가야 할 것이다.진정훈이 이렇게 반항할 줄 알았다면 그때 차라리 고은영을 진씨 가문으로 데리고 왔어야 한다.진유경도 그렇게 생각했다.결국 한순간의 충동 때문에 일이 이렇게 된 것이다.“아니면 역시 고은영을 데리고 진씨 가문으로 돌아올까요?”김영희의 질문에 진유경이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고은영이 돌아오면 진유경에게 무슨 영향이 있는지, 진유경은 더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이미 고은영과 멀어진 사이 때문에 진씨 가문은 애를 먹고 있으니 말이다.어제 진정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진정훈은 돌아오지 않았다.그래서 두 사람은 아직도 진정훈을 만나지 못했다. 진정훈 또한 두 사람의 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을 것이다.진씨 가문은 이미 진정훈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김영희와 진유경은 문제의 원인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결국 고은영이 본질적인 문제라고 결론을 내렸다.고은영이 돌아오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다.물론 고은영보다 진성택이 더 믿을만한 사람이긴 하다.지금 진씨 가문의 위기는 진성택이 퇴원하기만 하면 자연스레 사라질 것이다.김영희는 눈을 꼭 감고 말했다.“고은영을 데려오는 것보다 진성택을 치료하는 게 더 빠를 거야.”“...”김영희는 여전히 자기 편이라는 것을 확인받은 진유경은 약간의 희열을 느꼈다.하지만 그것 또한 고은영이 굴러들어 오는 복을 걷어차서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김영희가 태도 불량인 고은영을 예뻐할 수가 없었다.배항준도 고은영을 싫어하지 않았던가. 배준우는 정말 눈이 멀어서 고은영과 결혼한 게 틀림없다.“하지만 고은영이 적합성 검사를 받지 않으면 큰오빠도 하지 않을 거예요. 어떻게 하죠?”김영희가 고은영을 싫어한다는 것에 기뻐하는 것도 잠시, 고은영이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떠올린 진유경이 조심스레 물었다.만약 다른 방법이 없다면 김영희는 어쩔 수 없이 고은영을 데리고 와야 할 것이다.적합성 검사 얘기를 들은 김영희는 화
정말 고은영을 지켜줄 사람 하나 없다고 생각한 것이었을까.”“내가 마음이 약하다고 해도 그건 상대를 봐가면서 하는 거야. 예를 들면 네 앞에서 마음 약해지는 거지.”“...”화가 잔뜩 나 있던 안지영은 고은영의 말을 듣고 갑자기 화가 사르르 풀렸다.“쳇, 그래도 양심은 있네.”“걱정하지 마. 진씨 가문의 일에는 양보하지 않을 거니까.”’“그러면 약속해. 진윤과 진정훈이 너를 설득해도 넘어가지 않겠다고.”안지영은 진윤과 진정훈이 고은영에게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지금은 짜증 나는 김영희와 진유경이 나타나서 허락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만약 진윤과 진정훈이 와서 고은영을 설득한다면?신장 수술은 간단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었다. 적합성 검사에 통과된 후에 수술을 거부한다면 수많은 비판을 받게 될 것이다.그러니 결론은 거절해야 한다는 것이다!고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 누가 얘기해도 소용없으니까.”“음, 그래. 이제야 마음에 드네. 만약 거절하기 힘들면 나한테 말해.”안지영은 그렇게 으름장을 놓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다. 고은영이 정말 신장을 내어줄까 봐 계속 걱정되었으니까 말이다.안지영은 진씨 가문 사람들이 어떤 족속인지 잘 알고 있었다.“너한테 뭐라고 하는 건 아닌데, 그래도 진씨 가문과는 많이 엮이지 마. 거기는 심보가 고약한 사람들이 가득하니까.”“...”“전에는 량천옥과 짜고 들면서 진유경과 배준우를 결혼시키려고 했잖아. 아마 진유경의 뜻을 이뤄주지 못해서 화가 잔뜩 나 있을걸?”“...”안지영은 진씨 가문에 대한 호감이 하나도 없었다. 고은영도 마찬가지였다.고개를 끄덕인 고은영이 대답했다.“응, 알았어!”“내가 잔소리하는 거 같아 보여도 들어! 넌 너무 순진해서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면 그걸 철석같이 믿잖아.”안지영은 고은영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배준우의 일에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하지만 지금 배준우는 고은영의 남편이니 고은영을 잘 지켜줄 수 있을 것이다.그래도 안지영은 마음이
하지만 고은영은 그 차가움이 싫지 않았다.고은영은 심호흡을 하고 대답했다.“가지 않을 거야.”“은영아, 난 네가 잘 살았으면 좋겠어. 내 주변에서 행복할 수 있는 건 이제 너밖에 없어.”고은지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얘기했다.그 말을 들은 고은영은 금세 두 눈을 붉혔다.“걱정하지 않아도 돼. 사실 나...”“나 바빠서 이제는 끊어야 할 것 같아.”고은영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아는 고은지는 바로 전화를 끊었다.고은영은 이미 끊긴 전화를 보면서 마음이 아파졌다.그리고 고은지가 전에 한 말을 떠올렸다.고은지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은영과 고희주라고 말이다.이제 희주의 아빠도 찾게 되었고 고은지의 친모도 찾게 되었지만 고은지는 여전히 고은영과 고희주만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래서 나태현의 일에 고은영이 휘말리지 않기를 바랐다.고은지의 일 때문에 행복한 고은영의 삶에 영향을 끼칠까 바였다.나태웅의 함정은 아주 깊어서 바닥이 안 보일 정도였다. 고은지는 그런 함정에 고은영과 함께 빠지고 싶지 않았다.전화에서 들려오는 기계음 소리를 들으며 고은영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안지영을 바라보면서 대답했다.“우리 언니야.”“들었어. 그렇게 마음 약한 언니도 반대하는 일이야. 그러니 진씨 가문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 것 같아?”안지영에게 있어서 고은지는 마음 약한 사슴과도 같은 사람이었다.그런 고은지도 진씨 가문을 극도로 싫어하니 할 말 다 한 것이다.고은지가 마음 약한 사람이라는 것을 떠올린 고은영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지금의 고은지는 예전의 고은지와 다르다고 얘기하고 싶었다.안지영은 고은영을 보면서 물었다.“웬 한숨이야?”고은영은 고개를 저었다.“아무 일도 아니야. 그저 짜증도 나고, 우리 언니도 걱정되니까...”진씨 가문의 일은 고은영에게 있어서 중요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 걱정되는 건 고은지였다.고은영이 고은지에 대해서 얘기하자 안지영은 나이프와 포크를 내려놓고 얘기했다.“천락 그룹으로 간 이유가 나태현이
희주가 그렇게 된 건 량천옥 때문이니까 말이다.안지영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어휴, 이게 도대체 다 무슨 일이람.”정말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순간이었다.“나태현이란 량천옥 씨는 또 무슨 원한이 있길래.”“...”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고은영이 대답하기도 전에 안지영이 얘기했다.“하지만 량천옥 씨가 너무 겁 없이 살아와서 적을 많이 만들었어. 나씨 가문과 원한이 있는 것도 이상하지 않아.”어떤 원한인지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나태현과 고은지가 손을 잡을 정도니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닌 것 같았다.“이 일에는 신경 쓰지 마. 량천옥 씨가 복수를 당한다고 해도 그건 인과응보니까.”깊이 생각하던 안지영이 대답했다.안지영은 량천옥에게 호감이 전혀 없었다.전에 고은영을 죽이려고 달려들지 않았던가. 그래서 안지영은 영원히 량천옥을 용서할 수 없었다.고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응! 인과응보야!”전에 량천옥이 고은영에게 잘해줄 때, 고은영은 그 원한을 다 잊으려고 했다.하지만 후에 일어난 일 때문에 고은영은 량천옥을 용서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그래도 네 언니를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네 언니가 미워하는 건 량천옥뿐만이 아닐 것 같거든.”“...”그 말을 들은 고은영은 의문스러운 시선으로 안지영을 쳐다보았다.고은영의 세상에는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래서 놓치고 있는 일들이 있었다.하지만 안지영은 방관자로서 더 냉정하게 사건을 볼 수 있었다.“아마 나태현도 미울 거야. 나태현은 거의 폭탄을 곁에 둔 거랑 다름없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말이야.”“우리 언니는 부드러운 사람이라서 위협이 되지 않을 거야.”“순진하기는.”“...”순진하다는 말을 또 들은 고은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안지영이 이어서 얘기했다.“네 언니가 조영수와 이혼하고 희주가 폭력을 당한 건 다 나태현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는 걸 잊지 마. 그러니 나태현을 죽도록 미워하고 있을 거야.”“...”“원래 부드러운 사람이 화가 나
고은영의 의아해하는 모습을 본 안지영이 이어서 얘기했다.“네 언니는 부드러워 보이지만 그 부드러움은 너에게만 주는 거야. 조영수와 이혼한 걸 보면 알 수 있어. 네 언니는 참기만 하는 성격이 아니라는 걸.”“...”고은영은 숨 쉬는 것이 점점 힘들어졌다.조영수와의 이혼은 고은지가 먼저 말을 꺼낸 것이다.홀로 희주를 키우는 것이 힘든 것을 알았어도 그런 힘듦을 고려할 처지가 아니었다.고은영은 고은지가 걱정되었다.안지영과 대화를 나눈 후에는 더욱 불안해졌다.나씨 가문의 사람도 장씨 가문의 사람처럼 깨끗하지 못했다. 만약 나태현에게 복수하려는 것이면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이다.“은영아?”고은영의 얼굴이 점점 파리해지는 것을 본 안지영이 손을 뻗어 고은영의 앞에서 손을 흔들었다.고은영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안지영을 멍하니 쳐다보았다.“무슨 생각해?”“나씨 가문의 사람들... 너무 괘씸해.”안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점에 대해서는 동의하는 바였다.나태웅도 한결같이 미친 짓을 벌이고 있으니, 그 가문 사람들은 괘씸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나태현은 괜찮은 사람 같아보아였거든. 그런데 왜 네 언니랑 이런 거래를 하게 된 건지 모르겠네.”안지영은 나태현에 대해서 잘 몰랐다.강성의 모든 사람이 나태현이 지신혜와 약혼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런데 이 시점에 고은지를 자기 곁에 두다니.고은지가 복수할 수도 있는데 말이다.아니면 나태현도 고은지가 연약한 사람이라, 복수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걸까?만약 그렇다면 나태현이 자만한 것이다. 혹은, 량천옥에 대한 원한이 너무 깊다고 생각할 수 있다.“글쎄. 모르겠어. 어쨌든 량천옥과 연관 있는 일이야.”고은영이 얘기했다.안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됐어, 이번 일에는 신경 쓰지 마. 어차피 네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확실히, 이건 고은영이 끼어들 수 있는 일이 아니다.두 사람의 이익 관계에 대해서도 대충 알고 있었다.다만 고은지가 나태현을 향한 증오가 어느
량천옥은 그 냉랭함 앞에서 숨도 쉬지 못했다.“앞으로 날 찾아오지 마요. 난 당신을 보고 싶지 않아요. 우리 관계도 인정하고 싶지 않고요.”“...”공기는 순식간에 차가워졌다.수년간 찾아 헤맨 아이한테서 이런 말을 들으니, 가슴이 아프지 않을 수가 없었다.량천옥은 그동안 자기 딸을 찾은 순간을 떠올렸다.그 세월을 어떻게 되돌려줄지, 어떻게 사랑을 줄지 말이다.하지만 그 딸이 본인 곁에 있을 줄은, 게다가 본인이 이미 그 딸을 상처입혔을 줄은 전혀 몰랐다.량천옥은 자기 딸을 죽일 뻔했고, 자기 손녀의 목숨도 앗아갈 뻔했다.“날 만나고 싶지 않아 하는 건 당연한 일이야. 나 때문에 너를 상처입히지 마.”“당신 때문에 나를 상처 입힌다고요? 당신 때문에?”고은지의 말투가 차가워졌다.량천옥을 비웃는 듯한 말투가 섞였다.그 말에 량천옥은 죄책감보다 더한 고통을 느꼈다.정말 너무 아팠다.“명심해요. 앞으로 절대 내 앞에 나타나지 않겠다고.”고은지는 일어서서 떠나려고 했다.량천옥과 더는 말을 섞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량천옥은 떠나려는 고은지를 보고 마음이 급해졌다.고은지가 량천옥의 곁을 지나갈 때, 량천옥은 고은지의 손목을 잡고 말했다.“내가 미안해. 그렇게 할게. 그러면 나태현과의 거래를 그만둬.”“...”“나 때문이 아니라면 그만둬!”량천옥은 이 거래가 고은지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잘 알고 있었다.량천옥과 나씨 가문의 원한은 결국 나태현이 알아냈다.나태현은 량천옥을 쉽게 놔주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고은지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고은지는 나태현의 아이를 낳은 사람이니까 말이다.나씨 가문 사람이 얼마나 매정한 사람인지 량천옥은 잘 알았다.량천옥의 요구에 고은지는 차가운 표정으로 량천옥의 손을 뿌리쳤다.“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그런 말을 해요?”“난 그럴 자격이 없지만 아이를 위해 생각해 봐. 나태현은 희주가 네 딸인 걸 알면서도 이 거래를 진행했어. 얼마나 무서운 놈이야!”량천옥은 무서운 것도 없었고 두려워하
량천옥은 원래 고은지가 나태현을 떠나 행복하게 살았으면 했다.고은지가 무슨 대가를 원하든지 다 내어줄 생각이었다.하지만 량천옥은 그럴 수가 없었다.나태현은 지신혜와 약혼했다. 그리고 량천옥에게 복수한 후 고은지를 함정에 빠뜨릴 것이다.그것이 나씨 가문의 복수 방식이다.고은지가 나태현의 지옥 같은 복수에 동참하게 된 것이 아이 때문이라면...량천옥은 두 눈을 감고 차갑게 얘기했다.“그 아이를 찾아내.”“네!”정록담이 대답했다.무조건 찾아야 한다.원래는 나태현의 딸이니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찾지 않았는데 지금 보니 아이는 고은지의 약점과도 같았다.“그리고 지씨 가문 사람들도 지켜봐.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니까.”지씨 가문을 언급하는 량천옥의 말투는 아주 차가웠다.장씨 가문과 나씨 가문은 강성에서 라이벌 관계로 유명했다.그리고 앞뒤가 다르기로 유명한 가문은 바로 지씨 가문과 진씨 가문이었다. 그런데 나씨 가문이 지씨 가문과 결혼을 할 줄은 몰랐다.지씨 가문에서 고은지와 나태현의 관계를 안다면 고은지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정록담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그 순간 량천옥은 고은지를 전면적으로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은지가 나태현의 곁에 있는 것도 고희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다른 것에 대해서는 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한 시간 후.량천옥은 천락 그룹에 도착했다.원래 어제 나태현을 만나기로 했지만 고은지를 먼저 만나고 싶어서 나태현을 만나지 않았다.고은지가 나태현의 곁에 있는 원인이 궁금했다.하지만 고은지는 량천옥이 모든 대가를 내놓아도 나태현과의 거래를 취소하지 않으려 한다.나태현을 찾으러 가는 량천옥은 고은지 앞에서의 량천옥과 사뭇 달랐다.량천옥의 삶은 이미 피폐하지만 량천옥에게서는 차갑고 올곧은 힘이 느껴졌다.나태현 앞에 걸어온 량천옥이 차갑게 물었다.“아이, 어디에 보낸 거야.”물론 정록담을 시켜 알아보게 했지만 나태현에게 슬쩍 물어보는 것이었다.나태현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량천
자격?자격이라면 나태현과 량천옥 다 비슷했다.량천옥은 나태현 앞에서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었다.“...”이번에는 우울증이라는 단어가 나태현의 신경을 긁었다. 나태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백지장이 되었다.“그 아이를 상처입힌 걸 생각하면 우리 둘 다 비슷해.”고희주가 왜 아파트에서 자살하려고 했는가. 우울증에 걸려서 그런 것이다.그런 힘든 환경이, 고희주를 그렇게 만든 것이다.나태현은 질식할 듯한 시선으로 량천옥을 바라보았다. 량천옥은 약간 부드러워진 말투로 말했다.“복수하고 싶으면 나한테 해. 고은지는 건드리지 마. 아이와 은지를 만나게 해줘.”그 말투는 부탁하는 말투였다. 하지만 그 속에는 감출 수 없는 결연함이 있었다.마치 이게 마지막 양보이자 마지막 기회인 듯 말이다.나태현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량천옥이 말을 이었다.“무슨 대가를 원하는지 말만 해. 다 들어줄 테니까.”량천옥은 상응한 대가를 치르고 고은지가 남은 생을 편히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나태현도 량천옥이 대가를 치르기를 바라지 않는가.만약 량천옥이 대가를 치르지 않기를 바란다면, 강성의 사람들이 힘을 합쳐도 량천옥을 무너뜨릴 수 없을 것이다.그러니 이건 량천옥의 결정에 걸린 일이다.나태현이 손에 쥐고 있는 건 량천옥을 증오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기회이다.그러니 량천옥은 그 기회를 나태현에게 주려고 하는 것이었다.하지만 그런 기회 앞에서 나태현은 아무렇지 않아 했다.“대가를 치러서 이 모든 것을 끝내려고 하다니, 너무 쉽게 생각하는 거 아닌가요?”나태현이 차갑게 웃으면서 말했다.“...”나태현이 일어나서 량천옥을 바라보면서 경멸의 눈빛을 보냈다.“이제야 얼마나 두려운가 봐요? 아무것도 하지 못해서? 당신이 그녀를 괴롭혔을 때, 그녀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어요!”량천옥은 그 말을 듣고 차가운 눈빛으로 물었다.“그래서, 내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으면 좋겠어?”나태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핸드폰을 들어 전화를 걸 뿐이었다.
그 미남계에 안지영은 결국 어느샌가 넘어가고 말았다.장선명은 안열한테 안지영이 좋아하는 디저트를 가져오라고 했다. 안열은 그제야 두 사람이 사무실에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장선명은 다른 일로 바빠서 먼저 자리를 떠났다.안열은 디저트를 들고 오면서 안지영의 눈치를 보았다.“왜요?”“선명 도련님이 무슨 짓을 한 건 아니죠?”“잘못을 저질러놓고 나한테 무슨 짓을 한다면 그건 짐승이죠!”안지영이 씩씩대면서 얘기했다.그 말을 들은 안열은 입가를 씰룩이면서 얘기했다.“하지만 선명 도련님은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이 아닌데요.”장선명과 오랜 시간 함께 일하면서 장선명이 잘못을 사과하는 건 본 적이 없다.장선명이 잘못을 했다고 해도 그건 없었던 일로 될 테니까 말이다.“...”안지영은 안열의 말을 듣고 눈썹을 꿈틀거렸다.‘그럼 아까 한 말도 거짓말이었나?’안열이 안지영 앞으로 와서 안지영 목에 난 키스 마크를 발견했다.안지영이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나며 물었다.“왜 갑자기...”“도련님이 이런 방식으로 사과한 겁니까?”“네?”“격렬하네요. 이렇게 안 대표님을 입막음하다니...”“...”안지영은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무거워졌다.아무리 둔감하다고 해도 안열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는 알 수 있었다.안지영은 얼른 핸드폰 카메라를 켜서 본인의 모습을 확인했다.목에 난 키스 마크들을 본 안지영은 그대로 숨을 들이켰다.“이...”하마터면 욕설을 뱉을 뻔할 정도였다.이 상태로 밖으로 나간다면 창피해서 얼굴을 못 들고 다닐 정도다.‘왜 하필 이런 집착남을 만나게 된 거지...’“좀... 과하긴 하죠?”안열은 안지영이 장선명 때문에 화가 나서 안열에게 화풀이할까 봐 약간 걱정이 되었다.오후 세 시가 되었는데 이제야 나오다니.두 사람이 얼마나 오랜 시간 붙어있었는지, 얼마나 격렬한 사랑을 나누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안지영은 단단히 화가 나서 케이크를 크게 한입 떠먹었다.안열은 장선명이 제대로 해명하지 않아 안지영의 화가 덜 풀린 것인
“나태웅이 두려워하는 게 뭐 있어요!”안지영이 화를 내면서 얘기했다.나태웅은 장선명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안지영에게 있어서 나태웅도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게다가 나태웅이 좋아하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이게 사람 맞나 싶을 정도였다.“나태웅은 극단적인 거지 멍청한 건 아니야.”나태웅은 본인에게 유리하고 불리한 것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늘 안지영 앞에 나타난 걸 떠올리면... 장선명은 그런 나태웅을 가만히 둘 수 없었다.“그래도 이 사진들은 다 사실이죠.”“네가 이 사진 때문에 화를 내는 건 기쁜 일이지만 너한테 제대로 얘기해야 할 게 있어.”거기까지 얘기한 장선명이 말을 끊었다.안지영이 고개를 들고 물었다.“뭐요?”장선명과 결혼 준비를 하면서 안지영은 이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소문 속의 장선명은 냉철하고 칼같은 사람이라고 했지만 안지영 앞의 장선명은 항상 웃는 얼굴로 자상하게 안지영을 대해주었다.그래서 안지영은 장선명이 도대체 왜 본인과 결혼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분명 비즈니스 때문에 시작한 부부 연기인데 말이다!사실 처음부터 안지영은 장선명이 왜 본인을 도와주는 건지 알 수 없었다.나태웅이 가져온 사진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장선명은 안지영의 목을 부드럽게 감싸고 코끝으로 안지영의 코끝을 가볍게 눌렀다.“그 사람이 살아있다고 해도 내가 사랑하는 건 너야.”“...”그 말을 들은 안지영은 심장이 순간 멎는 것 같았다.“정, 정말이에요?”‘잘못 들은 건가? 그 사람이 선명 씨한테 엄청 중요한 사람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과거는 과거일 뿐이야. 현재의 나는 네가 없으면 안 돼. 그 사람을 이미 다 잊었으니까 너랑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거야.”장선명은 진지한 말투로 얘기했다. 안지영은 믿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장선명을 쳐다보더니 심호흡을 한 후 얘기했다.“그렇게 많은 여자들이랑...”“나랑 그 사람들은 아무 사이도 아니야. 안열이 전에 얘기해줬을 텐데.”“그래도 남자들
“얘기해 봐. 어떻게 해야 화를 풀 거야.”“하, 다른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걸 정도였다면서요! 내가 화를 안 내고 배겨요?”안지영이 차갑게 얘기했다.“...”장선명은 약간 어리둥절해하면서 물었다.“내가 누구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는 거야? 나는 왜 모르겠지.”“이...”안지영은 인정하지 않는 장선명의 모습을 보면서 더욱 화가 났다.“정말 화가 난 거야?”“당연하죠. 난 대용품이 되고 싶지 않다고요!”장선명은 화가 난 안지영을 보면서 본인이 왜 안지영에게 빠진 것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안지영은 느낀 것을 그대로 얘기하는 솔직한 사람이었다. 가식적으로 돌려 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그래서 장선명은 그런 안지영이 좋았다.“누가 그래, 네가 대용품이라고. 나태웅이 그래?”장선명이 안지영의 두 볼을 가볍게 꼬집으면서 얘기했다.그 말투는 마치 딸을 대하는 아버지처럼 부드러웠다.안지영은 장선명을 힐긋 보더니 얘기했다.“수많은 사진이 증명하고 있잖아요.”그 사진만으로도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었다.“그 사진들은 아무것도 아니야. 절대 나태웅을 믿지 마. 응?”“흥.”“아직도 화가 난 거야? 제발 내 말 좀 들어줘.”“안 들을래요!”안지영은 아예 고개를 홱 돌렸다.안지영은 너무나도 솔직하고 가감 없는, 상대방에게 본인이 왜 화가 났는지 잘 알려주는 사람이었다.장선명은 화가 나 등을 돌린 안지영을 보면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원래는 좀 더 놀려주고 싶었지만 반응을 보니 그만해야 할 것 같았다.“알았어. 설명할게.”한숨 자고 일어났지만 여전히 이 일로 화를 내는 걸 보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았다.안지영은 장선명의 말을 듣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니요. 됐어요. 설명하지 마요. 듣고 싶지 않으니까요.”진실이 두려워서 듣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장선명은 웃으면서 얘기했다.“왜? 내가 널 잡아먹을까 봐 무서워?”그 말에 안지영은 또 참지 못하고 장선명을 가볍게 때렸다.오전에 있었던 일을 생각
안지영은 오후 두 시에 중요한 회의가 있었다. 하지만 안열은 사무실에서 안지영을 발견하지 못했다.‘설마 내가 한눈판 사이에 두 분이 나간 건가?’1시 30분이 되었지만 여전히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안열은 급한 마음에 얼른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전화를 받은 건 장선명이었다.“무슨 일이야.”그 말에서 안열은 이미 장선명의 짜증을 읽어냈다.안열은 약간 놀랐다.“선, 선명 도련님? 30분 뒤 안 대표님이 참석하셔야 하는 중요한 회의가 있습니다. 지금 안 대표님은 어디에...”휴게실에 있는 장선명은 고개를 숙이고 품에서 자고 있는 안지영을 쳐다보았다.오전에 너무 과했던 탓일까, 안지영은 계속 쭉 자고 있었다.“그냥 회의를 취소해.”“네? 그건...”“무슨 문제라도 있어?”“아, 아니요. 오늘 회의는 부승호도 참석하는 회의라... 알잖습니까.”부승호는 바로 하늘 그룹을 배신한 사람이다. 그러니 이번 회의가 얼마나 중요한지 장선명은 바로 알 수 있었다.장선명이 차가운 눈빛으로 얘기했다.“부승호한테 얘기해. 오늘 저녁 날 만나러 오라고.”“직접 나서서 안 대표님을 대신하실 생각입니까?”안열이 놀라서 물었다.예전에는 안지영이 성장할 수 있게 혼자 내버려두지 않았던가.그래서 안열과 장선명 다 안지영의 뒤에서 묵묵히 안지영의 성장을 지켜보고 있었다.그동안 안지영은 많은 일을 혼자서 해결했다.부승호와 마주하는 것도 안지영에게 있어서는 그동안의 실력을 검증할 가장 좋은 기회다.“무슨 문제라도 있어?”그 말에 안열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아닙니다!”안열은 여전히 장선명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저 장선명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로 했다.안열은 얼른 눈치껏 전화를 끊었다. 장선명은 전화가 끊긴 것을 확인하고 바로 폰을 꺼버렸다.안지영은 이미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장선명은 안지영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지금 몇 시예요?”“피곤하면 그냥 자.”장선명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얘기했다.안지영은 눈
테이블에는 다른 사진이 더욱 많았다.나태웅은 정말 이를 갈고 해외로 간 것이 틀림없었다.이것까지 다 알아내다니...이건 장선명의 가장 어두운 과거이자 다시는 들추고 싶지 않은 일들이다.하지만 그 일들이 지금은 나태웅 때문에 다시 밝혀지게 되었다.그동안 장선명이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마주할 수 없었던 과거들이었지만, 안지영이 건네준 사진을 보면서 장선명은 어느새 그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내려놓았다는 것을 발견했다.지금 와서 과거의 일을 돌이켜보니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그 여자가 누구인지 얘기하라고요!”안지영이 화가 난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러면서 장선명의 품에서 나오려고 안간힘을 썼다.하지만 장선명은 여전히 안지영을 꾹 잡고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그리고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더니 안지영의 앞에서 사진을 바로 불태워버렸다.“뭐, 뭐 하는 거예요!”안지영이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장선명은 불에 탄 사진을 그대로 재떨이 속으로 던져버렸다.담배를 피우는 장선명을 위해 안열이 준비해 둔 재떨이였다.안지영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아 그동안은 쓸모가 없었지만 지금은 아주 유용했다.테이블 위의 사진은 다 재떨이 안으로 들어가 활활 타올랐다.안지영은 멍해서 물었다.“그렇게 변명도 하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변명? 이건 다 지나간 일일 뿐이야. 너무 오래전 일이라서 다 잊었고. 뭐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 생각도 안 나네.”“...잊었다고요?”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안열이 그러지 않았던가.장선명에게 아주 중요한 사람이었다고.사진 속의 여자들이 모두 비슷하게 생긴 걸 보면 장선명은 정말 그 여자를 아주 사랑한 것 같았다.그런데 그걸 잊다니.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그런 안지영의 모습을 본 장선명은 환하게 웃으면서 안지영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또 입술을 맞췄다.“읍... 아니, 읍...”‘미남계를 쓰겠다는 거야?’안지영은 약간 화가 났다. 원래 이런 건 그냥 두면 찝찝한 편이다. 사실을 알지 못하면 마음에 걸리니까 말이다.
사무실에 들어간 장선명은 안지영이 그를 등지고 의자에 앉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이미 뒷모습에서부터 안지영의 화난 모습이 보였다.앞으로 다가가 의자를 돌린 장선명이 두 손으로 의자의 손잡이를 잡았다.그리고 웃는 눈으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안지영이 화가 나서 씩씩 대는 모습을 보았을 때도 더욱 환하게 웃었다.하지만 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을 보면서 더욱 화가 났다.“웃겨요?”“질투하는 거야?”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안지영은 장선명의 말을 듣고 약간 놀랐다.“화 안 났어요. 난 화를 잘 안 내는 사람이에요.”“그래?”“...”질투냐고?안지영은 질투가 뭔지 몰랐다.하지만 눈앞의 이 남자가 다른 여자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속이 좋지 않았다.생각에 잠겨있을 때 갑자기 안지영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장선명이 안지영을 번쩍 안아 들고 의자에 앉은 것이었다.장선명은 웃음기 가득한 시선으로 안지영을 바라보고 있었다.안지영은 놀라서 허둥대면서 얘기했다.“이거 놔요!”하지만 장선명은 움직이는 안지영을 놔주지 않고 그대로 입술을 가져갔다.안지영이 버둥댈수록 장선명은 더욱 깊게 안지영의 입술을 머금었다.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결국 안지영이 숨을 쉬지 못하자 장선명이 안지영을 풀어주었다.안지영이 손을 들어 장선명의 뺨을 치려고 할 때, 장선명이 안지영의 손목을 잡고 웃으면서 물었다.“화났어?”“흥.”안지영은 화가 났다.그것도 단단히 화가 났다.안지영은 장선명이 점심 전에 도착한 것이 분명 그 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안열이 알려줬을 테니까 말이다.그런데 와서 아무 해명도 하지 않고 입술부터 들이미니, 너무 미웠다.장선명은 그런 안지영을 보면서 짜증스러운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오히려 속 편히 웃으면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그리고 마지막에는 한숨까지 푹 내쉬었다.“그렇게 화가 난 거야?”말을 마치고는 안지영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안지영은 이제 더는 참을 수 없었다.“오자
“네? 그게 무슨 뜻이에요?”안지영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안열을 바라봤다. 안열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어휴, 됐어요. 더 얘기해 봤자 짜증만 나요.”더 말했다간 정말 참지 못하고 화를 낼 것 같았다.나태웅에 대해 할 욕은 이틀 밤을 새워도 모자랄 정도였다.“...”사람을 화나게 만드는 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말을 하다가 마는 것이고...안지영은 뾰로통해진 채로 안열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안열은 휙 돌아서 사무실을 나갔다.지금 안열의 머릿속에는 나태웅에 대한 욕뿐이었다.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감히 또 안지영을 찾아오다니.도대체 무슨 낯짝으로 온 건지......사무실에 홀로 남겨진 안지영은 아까 안열이 한 말을 떠올렸다.그게 도대체 무슨 뜻이지?평소에는 똑 부러지고 영리한 안지영이지만, 이번만큼은 안열의 말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뻔뻔하다는 뜻이라면... 나태웅은 원래부터 그렇게 뻔뻔했다.하지만 이번은...안열은 복잡한 생각에 머리를 휙 털었다.그리고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장선명에게 전화를 걸었다.원래는 장선면은 점심쯤에 안지영을 데리러 올 예정이었지만, 안지영의 전화를 받고 바로 달려왔다.안지영의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장선명은 안열이 자리에 앉아 아이스팩을 발 위에 올려놓은 것을 발견했다.“다리는 왜 그래?”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안열은 깜짝 놀라 손에 쥔 아이스팩을 떨어뜨릴 뻔했다.장선명을 보자, 안열은 얼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읏...!”하지만 고통을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어떻게 된 거야?” 그렇게 묻는 장선명의 목소리는 차가웠다.안열을 이렇게 만든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 힘들었다.안열은 고개를 숙였다. 차마 나태웅 때문이라는 말은 꺼내지 못해 그저 둘러댔다.“그냥... 실수로 넘어진 거예요.” “어떻게 넘어졌길래 거기만 그렇게 다치는 거야?” 장선명의 시선은 예리했다.보통 넘어진다면 무릎이 먼저 다치기 마련인데 안열은 무릎은 멀쩡하
나태웅은 믿을 구석 하나 없는 사람이긴 하지만 나태웅이 가져온 정보 때문에 안지영은 더욱 속이 복잡해졌다.안열은 결국 고통을 참지 못하고 얘기했다.“약 좀 바르고 올게요.”그 말에 안지영은 생각이 끊겨버렸다.정신을 차린 안지영은 안열의 발등이 부어올랐다는 것을 발견했다. 장선명이 사랑하는 사람...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안열은 본 안지영은 결국 또 나태웅에게 화가 났다.“왜 이렇게 된 거예요. 정말 나태웅을 못 이기는 거예요?”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일방적으로 맞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다.밖에서 싸우는 소리도 듣지 못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안열은 아파서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제가 만약 나태웅과 싸워서 이길 수 있었다면 진작 죽여버렸을 겁니다.”“...”진작 죽여버린다니.그 ‘진작’은 과연 언제일까?다시 생각해도 나태웅은 정말 독설만 퍼붓는 사람이었다. 안열을 볼 때마다 개라고 욕하니까 말이다.그래도 전에 동영 그룹에서 출근할 때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안지영은 우물쭈물하면서 안열에게 물었다.“두 사람, 전에도 안 좋은 사이였어요?”안열과 나태웅이 만날 때마다 안열은 대수롭지 않아 했고 나태웅은 화를 냈었다.그러니 두 사람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그렇게 물으면서 안지영이 구급상자를 가져와 상처를 처리해 주었다.안열이 거의 소리를 지르면서 얘기했다.“앗... 아파요... 아파...”“...”안열은 평소에 고통에도 끄떡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아파하는 것을 보니 나태웅이 얼마나 아프게 때린 것인지 알 수 있었다.“제가 무슨 원한이 있겠어요! 한 것도 없는데...”“...”“굳이 꼽자면... 안 대표님 일로 원한이 있는 거죠.”“나요?”“네. 저는 안 대표님이 선명 도련님과 결혼하기를 바랐으니까요. 아마도 그것 때문에 저를 싫어하는 게 아닐까요?”안열을 말을 들은 안지영은 약간 마음이 복잡했지만 또 본인의 선택이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안열은 장선명의 부하로
“난 대체 누구의 대용품이었어요?”안지영이 바로 물었다.안열은 장선명과 오랜 시간 함께 했으니 사진 속의 사람이 누구인지 다 알 것이다. 그러니 장선명이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 것이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표정이 그대로 굳어버렸다.“그건...”“두 사람은 왜 헤어진 거예요?”안지영이 또 물었다.“...”안열을 그 어느 질문에도 대답할 수 없었다.안열은 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안지영이 얼마나 칼 같은 사람인지, 안열은 잘 알았다.물론 안지영과 장성명의 사이가 안지영 때문에 시작한 것이라고 하지만 장선명에게 설레지 않았다면 안지영은 장선명과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안열은 결국 또 속으로 나태웅을 욕했다.“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 선명 도련님이 안 대표님과 결혼하려는 건 안 대표님을 사랑해서지, 다른 사람의 대용품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니까요.”“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직도 연락해요?”“절대 아닙니다. 제가 맹세할게요!”안열이 진지하게 얘기했다. 안지영이 괜히 장선명을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다.안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안열을 쳐다보았다. 안열은 그런 눈빛을 마주하고 약간 긴장했다.“진짜예요. 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선명 도련님이 얼마나 칼 같은 분인지 잘 알잖아요.”“하긴, 안열 씨는 선명 씨 사람이니까 그편을 들겠죠.”“아니요, 전 안 대표님 편입니다. 같은 여자로서요.”“나도 그 어떤 여자의 대용품이었겠죠.”“그건 다른 거죠! 그 사람은 이미 죽었으니까요. 나태웅이 왜 갑자기 이 일을 들춘 건지는 모르겠지만... 죽은 사람까지 들먹일 줄은 몰랐어요!”안열은 정말 나태웅을 죽여버리고 싶었다.요즘 나씨 가문에 생긴 일을 보면 나씨 가문 사람들은 다 하나같이 쓰레기였다.“죽었다고요?”안지영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안열이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다들 모르는 일이잖아요!”안지영이 놀라서 얘기했다.장씨 가문 남자들은 하나같이 차갑고 냉정하다는 소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