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지는 이지훈이 자기를 동정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대표님이 찾으시는데, 안 들어갈 수가 없네요.”“...”나태현이 고은지를 부른 것이라는 것을 안 이지훈은 나태현이 쓰레기라고 생각했다.이건 선을 넘었다!아무리 불만이 가득하다고 해도 이지훈은 도와줄 수가 없었다.“그러면 조심하세요.”“감사합니다.”말을 마친 고은지는 바로 사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이지훈은 그런 고은지의 뒷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약간 아팠다.나태현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왜 이러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본인에게 딸이 있었다는 걸 알고는 아예 다른 사람이 되었다.전에는 고은지를 살리려고 애썼던 것 같은데.지금 태도를 보면 고은지를 증오하는 것만 같았다.사무실의 문을 열자마자 고은지의 눈에 들어오는 건 어지러운 바닥이었다.고은지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들어와서 서류를 테이블에 놓았다.“여기 쓰인 대로 하면 되는 거죠? 지씨 가문에서는 다른 요구가 없었나요?”“...”나태현은 차가운 눈빛으로 고은지를 쳐다보았다. 사무실의 온도는 수직으로 내려가는 것만 같았다.나태현이 대답하지 않자 고은지는 여유롭게 물었다.“아니면 다른 요구라도 있나요?”나태현과 지신혜의 약혼식을 준비하는데 이렇게 친절하게 요구까지 물어보다니.참으로 대단한 여자다.“고은지, 정말 대단해.”나태현이 입을 열었다.“전에는 네가 이렇게 고집이 세다는 걸 왜 몰랐을까. 너무 고집에 세니까 꼭 꺾어보고 싶잖아.”“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나 대표님.”고은지의 표정은 여전히 평온했다. 눈빛 또한 흔들림이 없었다. 나태현은 그런 고은지의 말에 신경이 긁혔다.“꺼져!”고은지와 대화를 나누다가는 심장병으로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나태현은 화가 났다.지금 당장 고은지의 목을 졸라 죽여버리고 싶었다.이 차가운 모습은 마치 하나의 가면 같았다.고은지를 건드려도 고은지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지금도 마찬가지다. 나태현이 꺼지라고 화를 내도 고은지는 무표정으로 서류를
나태현과 고은지 사이에는 딸이 하나 있지 않은가. 그래서 이지훈은 나태현이 이렇게 과한 명령을 하지 않았으면 했다.두 사람 사이에는 아이가 있으니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이지훈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본 나태현은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그렇게 하기만 해봐!”“...”그 협박에 이지훈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이제는 나태현이 화를 내는 게 다 고은지 때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하지만 왜 그러는지는 알 수 없었다.결국 이지훈은 나태현의 마음을 알 수 없었다.이지훈은 나태현의 차가운 눈빛을 보면서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가서 고은지 씨를 찾아오겠습니다.”말을 마친 이지훈은 얼른 몸을 돌려서 떠났다. 마치 도망가는 듯한 속도였다.고은지가 자리에 앉자마자 전화기가 또 울렸다.하지만 전화를 받기도 전에 이지훈이 뛰어왔다.고은지는 감정을 읽을 수 없는 차가운 눈으로 이지훈을 바라보았다.이지훈은 약간 겁이 났다.“고은지 씨, 나 대표님이 사무실을 청소하라고 하셨습니다.”사무실 청소라니.고은지는 미간을 찌푸렸다.“청소부는요? 장식인가요?”이지훈은 표정이 굳어버렸다.“그건 아닙니다만, 나 대표님이 지시한 일입니다.”사무실을 그렇게 난장판으로 만들어놓고 고은지더러 정리하라니.하지만 천락 그룹에서는 나태현이 일인자이니 모두가 나태현의 말을 따라야 한다.그러니 고은지를 불러 사무실을 청소하게 한 것도 모두 고의적인 이이다.고은지는 더 반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 바로 갈게요.”“네.”이지훈이 대답했다.고은지를 보면서 저도 모르게 동정심이 들었다.병원에서 죽어가다가 겨우 살아 돌아왔는데 이런 이상한 상사를 만났으니...이지훈이 먼저 떠났다.고은지의 핸드폰이 계속 울리고 있었다. 고은지는 숨을 돌린 후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고은지입니다.”“은지야, 나야.”전화기 너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고은지는 그 목소리에 몸이 흠칫 굳었다.머릿속도 새하얘졌다.“너...”고은지
사무실의 문을 열자 아까보다 더욱 난장판이 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이지훈은 고은지의 뒤에 서서 얘기했다.“대표님은 방금 나가셨습니다. 청소부를 부를까요?”“괜찮습니다.”고은지는 무표정으로 대답했다.이윽고 사무실에 들어가 바닥에 널브러진 것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이지훈은 그런 고은지의 모습을 보면서 한숨을 푹 내쉴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나태현의 곁을 오랜 시간 지킨 만큼, 이지훈은 나태현을 잘 알고 있었다. 이지훈이 아는 나태현은 선을 지키는 사람이었다.고은지가 고희주를 얼마나 아끼는지는 학교에서의 일만 보면 알 수 있다.그런데 지금 나태현이 고희주를 빼돌렸으니 고은지는 나태현이 하라는 일을 그대로 할 수밖에 없다.“아...”이지훈이 생각에 빠져있을 때, 고은지가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유리 조각에 손을 베인 것 같았다.이지훈은 바로 달려가서 물었다.“무슨 일이죠? 다쳤어요?”고은지는 손가락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약을 가져오라고 할게요.”말을 마친 이지훈은 사무실에서 나가 구급상자를 찾으러 갔다.이지훈이 떠나자마자 사무실에는 불청객이 들이닥쳤다.바로 지신혜였다.고은지가 나태현 사무실 소파에 앉아 휴지를 뽑고 있는 것을 본 지신혜가 차갑게 물었다.“뭐 하는 거야?”피를 닦던 고은지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이윽고 고개를 돌리지 지신혜가 차가운 눈으로 고은지를 바라보고 있었다.지씨 가문은 강성에서 유명한 가문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씨 가문 사람들은 항상 우월감을 느끼고 있었다.지신혜가 다가가서 물었다.“여기서 뭐 하는 거냐고 물었잖아.”고은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미간을 찌푸린 채 손가락을 보았다.지신혜도 고은지의 시선을 따라 손가락을 감싼 휴지에서 피가 스며 나오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그 모습에 지신혜는 입꼬리를 올리면서 비웃었다.“하, 정말 천박한 수단이네. 그 정도로 돈이 필요해?”지신혜는 눈앞의 사람이 고은지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그저 이 여자가 젊은 비서들처럼 젊
하지만 지신혜의 힘은 너무 셌다.지신혜가 힘을 더 주자 상처가 더욱 깊어졌다.“그래서, 그 옆자리를 노려보겠다는 거야? 네까짓 게?”나태현은 핸드폰을 챙기지 않아 사무실로 돌아왔다. 이윽고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이지훈도 약을 들고 돌아왔다.나태현의 뒤에 서 있던 이지훈은 그 장면을 보고 깜짝 놀라서 얼른 다가갔다.“지신혜 씨, 오셨군요.”이지훈이 입을 열자 팽팽했던 분위기가 조금 느슨해졌다.지신혜는 사무실 입구 쪽에 서 있는 나태현을 보고 그대로 굳어버렸다.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발을 치워버렸다.“태현 씨, 왔어요? 아까 어디 갔던 거예요.”말투도 순식간에 부드러워졌다.고은지를 대하던 태도와는 180도 달랐다.나태현은 미간을 찌푸린 채 지신혜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바닥에서 일어서는 고은지를 쳐다보았다.손의 상처는 아주 심해서 피가 카펫에 뚝뚝 떨어질 정도였다.이지훈이 얼른 고은지의 곁으로 왔다.“얼른 지혈부터 해요.”고은지는 차가운 표정으로 지신혜를 쳐다보았다.그리고 또 나태현을 바라보았다.나태현은 지신혜를 향해 부드럽게 위로를 건네고 있었다.“올 거면 온다고 먼저 얘기라도 하지. 저 여자가 널 괴롭힌 거야?”“상사의 약혼녀를 향한 존중이 느껴지지 않았어요. 말투도 차갑고요.”지신혜가 억울한 듯 얘기했다.지신혜는 아버지가 데려오는 사생아들이 본인을 깔보거나 존중하지 않을 때마다 화를 잔뜩 냈었다.그래서 지신혜는 위아래가 없는 사람들을 극도로 싫어했다.이 여자는 지신혜가 나태현의 약혼녀인 것을 알면서도 그런 태도로 지신혜를 대했으니, 이런 벌을 받아도 마땅하다고 생각했다.그 말을 들은 나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런 사람은 혼을 내야지.”그 말을 들은 이지훈과 고은지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이지훈은 붕대와 소독약을 찾아서 고은지에게 건네주었다. 고은지는 고맙다고 하면서 약을 받았다.고은지가 사무실을 나가려고 할 때, 나태현이 차갑게 입을 열었다.“사과해.”“.
고은지는 저도 모르게 손을 뒤로 숨기고 말했다.“괜찮아요. 제가 가서 처리하면 됩니다.”“아까 피를 얼마나 흘린 건지 알아요?”이지훈이 진지하게 얘기했다.고은지는 손이 아픈지도 몰랐다.그저 심장이 몹시 아픈 것만 같았다.유리가 손바닥을 파고들던 고통이 심장에서 느껴지고 있었다.결국 이지훈은 고은지를 데리고 내려갔다.이지훈의 생각이 맞았다. 고은지의 상처는 아주 심했다. 이지훈이 고은지의 손바닥을 보려고 손을 폈을 때, 고은지는 아파서 몸을 바르르 떨었다.겨우 손을 다 펴자, 상처 안에 작은 유리 조각들이 가득한 것을 발견했다. 이지훈 같은 남자도 그 상처를 보고 놀라서 몸이 약간 굳을 정도였다.이지훈은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병원에 가서 처리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상처 안에 박힌 유리 조각들을 다 빼내야죠.”얼마나 많을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괜찮아요.”“...”이지훈이 뭐라 하기도 전에 고은지는 주먹을 폈다. 아까는 아파서 바들바들 떨던 그녀였지만 지금은 아무렇지 않은 것만 같았다.이윽고 고은지는 손톱으로 그 유리 조각들을 빼냈다.전문가가 아닌 데다, 아무렇게 처리하고 있으니 상처가 더더욱 커지고 깊어졌다.피도 더욱 많이 났다.“이건...”이지훈은 그 모습을 보고 그대로 굳어버렸다.하지만 고은지는 무표정으로 구급상자에서 솜을 꺼내 피를 대충 닦았다.“이러면 안 돼요. 유리 조각이 안에 있으면 어떡합니까.”이지훈이 물었다.이번 일은 지신혜가 선을 넘은 것이다. 천락 그룹에 찾아와 고은지에게 이런 짓을 하다니 말이다.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으면서 이러는 것을 보니 결혼하게 되면 얼마나 심해질지 몰랐다.이지훈은 속으로 화를 내면서 생각했다.고은지는 손가락으로 상처를 꾹 눌렀다.멎었던 피가 또 흘러내렸다.“지금 뭐 하는 거예요!”이지훈이 놀라서 고은지의 손목을 잡아챘다.본인이 어떻게 병원에서 퇴원한 것인지 잊은 건가? 이 피가 얼마나 소중한 건지 잊은 건가?“만져봤는데, 안에 남은 유리 조각은 없어요.”
나태현은 차가운 눈빛으로 이지훈을 쳐다보았다.이지훈은 그 눈빛을 마주하고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차가운 한기가 등골을 타고 올라오는 것만 같았다.하지만 꾹 참고 이어서 얘기했다.“고은지 씨는 그래도 대표님 아이의 엄마입니다.”고은지는 량천옥의 딸이기는 하나 그건 고은지가 선택한 일이 아니다.니테현이 고은지를 싫어한다고 해도, 고희주를 싫어한다고 해도 이런 과분한 짓은 하지 말았어야 한다.“그래서 마음 아파?”나태현이 차갑게 입을 열었다.이지훈은 그 생각에 온몸이 굳어버렸다.“그 누구라도 고은지 씨의 모습을 보면 동정심이 생길 겁니다.”이지훈의 말이 맞았다.천락 그룹에서는 고은지를 우습게 보는 사람이 없었다.고은지와 고희주가 무슨 일을 당했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은지가 조영수와 결혼해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는 아이를 임신했을 때, 고은지를 우습게 보던 사람들이 있었다.하지만 그 아이의 아버지가 나태현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 아무도 입을 열 수가 없었다.이지훈의 말이 맞았다. 감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고은지의 처지를 안타깝게 생각할 것이다.나태현은 그 말을 듣고 가볍게 웃었다.“동정한다고? 하하하... 고은지가 동정이 필요한 사람인가?”고은지는 량천옥의 딸이다.량천옥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데, 그런 량천옥의 딸이 동정을 얻고 산다니. 웃기지도 않은 소리다.이지훈은 비꼬는 듯한 나태현의 말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나태현은 고은지가 량천옥의 딸이라는 사실을 싫어했다.만약 고은지가 량천옥의 딸이 아니었다면 나태현은 고희주를 빼앗아 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하지만 고은지 씨는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량천옥 씨의 사랑을 받아온 것도 아닌데 지금은 량천옥 씨 때문에 복수의 대상이 되는 건 불공평하다고 생각됩니다.”이지훈은 결국 참지 못하고 모든 것을 얘기했다.량천옥은 나쁜 여자다. 강성에서도 유명한 나쁜 여자다.죄는 량천옥이 짓고 벌은 고은지가 갚는다.이건 누가 봐도 불공평한 일이었다.“모든 일이 공평할 수는 없지만 고
점심. 한 레스토랑에서.고은지는 오랜만에 이현과 만났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고은지는 레스토랑에 들어서자마자 이현을 알아볼 수 있었다.이현도 고은지를 알아보았다.너무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약간 어색함을 느꼈다.고은지는 웃으면서 말했다.“몇 년이 지나도 넌 계속 그대로네.”“넌 조금 변한 것 같아.”이현은 그렇게 얘기하면서 고은지에게 물을 따라주었다.“고마워.”고은지가 잔을 들었다.이현은 고은지의 오른손에 붕대가 감겨있는 것을 보고 그대로 굳어서 물었다.“네 손, 무슨 일이야.”“조금 다쳤어. 지금은 괜찮아.”고은지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대답했다.마치 아까 사무실에서 있었던 일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처럼 말이다.이현은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무슨 일을 하는데 손을 다친 거야?”“그냥 평범한 비서 업무야. 칼날을 폐기 처리하다가 다친 거야.”“네가 왜 폐기 처리를 하는데.”“그대로 버리면 다른 사람이 다치니까.”“결국 네가 다쳤잖아.”이현은 불쾌하다는 듯 말했다. 이윽고 말을 이었다.“넌 여전히 어릴 때랑 다른 바가 없네. 본인 생각은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생각해 주잖아.”“...”그 말을 들은 고은지는 컵을 들고 있던 왼손을 바르르 떨었다.중학교 전까지만 해도 이현은 여름 방학마다 익산시에 와서 할머니와 함께 살았었다.익산시는 몹시 가난한 곳이었다.잘 사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이현은 고은지와 고은영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동생은?”이현이 물었다.사실 이현은 전에 익산시에 가서 고은지와 고은영을 찾으러 갔다.하지만 마을의 사람들은 고은지와 고은영이 강성에 갔다고 했다.그리고 조보은이 잘 못 지낸다고 얘기했다.이현은 조보은이 왜 그렇게 된 것인지 묻지 않았다. 그저 고은지와 고은영이 강성에 있다는 것을 듣고 바로 강성에 온 것이다.“결혼했어.”“결혼했다고?”“응. 나도 결혼했다가 이혼했어.”고은지가 말했다.“...”고은지가 결혼했다가 이혼했다는 말을 들은 이현
이현은 계속 해외에 있었다. 연구 때문에 계속 돌아오지 못했는데 겨우 연구를 끝낸 후 돌아오자마자 바로 익산으로 갔다.이현의 마음속에는 고은지와 고은영이 어렵게 살던 모습이 계속 남아있었다.“동생은 잘 지내?”고은지의 삶은 너무 우여곡절이 많았기에 이현은 먼저 고은영에 대해서 물었다.고은영을 떠올린 고은지는 마음이 편해져서 대답했다.“은영이는 잘 지내고 있어.”“그래?”이현은 약간 의심스러운 말투로 물었다.이현이 기억하는 고은영은 겁이 많은 아이라서 고은지의 보살핌이 필요했다.고은지가 고개를 끄덕였다.“응. 배씨 가문 며느리가 되었거든. 배준우 씨랑 결혼했어.”“배준우?”이현은 깜짝 놀랐다.고은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믿을 수 없다는 이현을 보면서 물었다.“아는 사람이야?”“당연하지.”배준우가 유학할 때, 그들은 항상 함께였다. 아는 사이일 뿐만이 아니라 아주 친했다.고은지는 깜짝 놀랐다.“이런 우연이 있다니.”“배준우와 결혼하다니. 좋네.”이현이 생각하다가 대답했다.배준우는 주견이 뚜렷한 사람이다. 그러니 아무리 배준우의 부모라고 해도 배준우의 일에 개입하지 못할 것이다.고은지는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배준우 씨도 은영이한테 잘해주니까.”그 덕분에 고은지는 마음 놓고 배준우에게 고은영을 맡길 수가 있었다.배준우가 고은영에게 잘해준다는 말을 들은 이현은 마음이 놓였다.고은지의 일도 묻고 싶었지만 조금 전 고은지의 표정을 떠올린 이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두 사람은 계속해서 많은 대화를 나눴다.고은지는 그제야 이현이 왜 중학교 이후부터 익산에 오지 않았는지 알게 되었다.유학 때문에 계속 해외에만 있었으니까 말이다.대화를 나누면서 이현이 원래 강성에서 자랐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헤어질 때 이현은 명함을 고은지에게 건네면서 무슨 일이 있으면 전화하라고 했다.그리고 또 좋은 변호사를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고은지는 법적으로 아이를 데려오지 못한다고 알려주었다.고은지는 이미 계획이 있었다....저
“나태웅이 두려워하는 게 뭐 있어요!”안지영이 화를 내면서 얘기했다.나태웅은 장선명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안지영에게 있어서 나태웅도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게다가 나태웅이 좋아하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이게 사람 맞나 싶을 정도였다.“나태웅은 극단적인 거지 멍청한 건 아니야.”나태웅은 본인에게 유리하고 불리한 것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늘 안지영 앞에 나타난 걸 떠올리면... 장선명은 그런 나태웅을 가만히 둘 수 없었다.“그래도 이 사진들은 다 사실이죠.”“네가 이 사진 때문에 화를 내는 건 기쁜 일이지만 너한테 제대로 얘기해야 할 게 있어.”거기까지 얘기한 장선명이 말을 끊었다.안지영이 고개를 들고 물었다.“뭐요?”장선명과 결혼 준비를 하면서 안지영은 이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소문 속의 장선명은 냉철하고 칼같은 사람이라고 했지만 안지영 앞의 장선명은 항상 웃는 얼굴로 자상하게 안지영을 대해주었다.그래서 안지영은 장선명이 도대체 왜 본인과 결혼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분명 비즈니스 때문에 시작한 부부 연기인데 말이다!사실 처음부터 안지영은 장선명이 왜 본인을 도와주는 건지 알 수 없었다.나태웅이 가져온 사진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장선명은 안지영의 목을 부드럽게 감싸고 코끝으로 안지영의 코끝을 가볍게 눌렀다.“그 사람이 살아있다고 해도 내가 사랑하는 건 너야.”“...”그 말을 들은 안지영은 심장이 순간 멎는 것 같았다.“정, 정말이에요?”‘잘못 들은 건가? 그 사람이 선명 씨한테 엄청 중요한 사람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과거는 과거일 뿐이야. 현재의 나는 네가 없으면 안 돼. 그 사람을 이미 다 잊었으니까 너랑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거야.”장선명은 진지한 말투로 얘기했다. 안지영은 믿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장선명을 쳐다보더니 심호흡을 한 후 얘기했다.“그렇게 많은 여자들이랑...”“나랑 그 사람들은 아무 사이도 아니야. 안열이 전에 얘기해줬을 텐데.”“그래도 남자들
“얘기해 봐. 어떻게 해야 화를 풀 거야.”“하, 다른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걸 정도였다면서요! 내가 화를 안 내고 배겨요?”안지영이 차갑게 얘기했다.“...”장선명은 약간 어리둥절해하면서 물었다.“내가 누구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는 거야? 나는 왜 모르겠지.”“이...”안지영은 인정하지 않는 장선명의 모습을 보면서 더욱 화가 났다.“정말 화가 난 거야?”“당연하죠. 난 대용품이 되고 싶지 않다고요!”장선명은 화가 난 안지영을 보면서 본인이 왜 안지영에게 빠진 것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안지영은 느낀 것을 그대로 얘기하는 솔직한 사람이었다. 가식적으로 돌려 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그래서 장선명은 그런 안지영이 좋았다.“누가 그래, 네가 대용품이라고. 나태웅이 그래?”장선명이 안지영의 두 볼을 가볍게 꼬집으면서 얘기했다.그 말투는 마치 딸을 대하는 아버지처럼 부드러웠다.안지영은 장선명을 힐긋 보더니 얘기했다.“수많은 사진이 증명하고 있잖아요.”그 사진만으로도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었다.“그 사진들은 아무것도 아니야. 절대 나태웅을 믿지 마. 응?”“흥.”“아직도 화가 난 거야? 제발 내 말 좀 들어줘.”“안 들을래요!”안지영은 아예 고개를 홱 돌렸다.안지영은 너무나도 솔직하고 가감 없는, 상대방에게 본인이 왜 화가 났는지 잘 알려주는 사람이었다.장선명은 화가 나 등을 돌린 안지영을 보면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원래는 좀 더 놀려주고 싶었지만 반응을 보니 그만해야 할 것 같았다.“알았어. 설명할게.”한숨 자고 일어났지만 여전히 이 일로 화를 내는 걸 보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았다.안지영은 장선명의 말을 듣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니요. 됐어요. 설명하지 마요. 듣고 싶지 않으니까요.”진실이 두려워서 듣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장선명은 웃으면서 얘기했다.“왜? 내가 널 잡아먹을까 봐 무서워?”그 말에 안지영은 또 참지 못하고 장선명을 가볍게 때렸다.오전에 있었던 일을 생각
안지영은 오후 두 시에 중요한 회의가 있었다. 하지만 안열은 사무실에서 안지영을 발견하지 못했다.‘설마 내가 한눈판 사이에 두 분이 나간 건가?’1시 30분이 되었지만 여전히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안열은 급한 마음에 얼른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전화를 받은 건 장선명이었다.“무슨 일이야.”그 말에서 안열은 이미 장선명의 짜증을 읽어냈다.안열은 약간 놀랐다.“선, 선명 도련님? 30분 뒤 안 대표님이 참석하셔야 하는 중요한 회의가 있습니다. 지금 안 대표님은 어디에...”휴게실에 있는 장선명은 고개를 숙이고 품에서 자고 있는 안지영을 쳐다보았다.오전에 너무 과했던 탓일까, 안지영은 계속 쭉 자고 있었다.“그냥 회의를 취소해.”“네? 그건...”“무슨 문제라도 있어?”“아, 아니요. 오늘 회의는 부승호도 참석하는 회의라... 알잖습니까.”부승호는 바로 하늘 그룹을 배신한 사람이다. 그러니 이번 회의가 얼마나 중요한지 장선명은 바로 알 수 있었다.장선명이 차가운 눈빛으로 얘기했다.“부승호한테 얘기해. 오늘 저녁 날 만나러 오라고.”“직접 나서서 안 대표님을 대신하실 생각입니까?”안열이 놀라서 물었다.예전에는 안지영이 성장할 수 있게 혼자 내버려두지 않았던가.그래서 안열과 장선명 다 안지영의 뒤에서 묵묵히 안지영의 성장을 지켜보고 있었다.그동안 안지영은 많은 일을 혼자서 해결했다.부승호와 마주하는 것도 안지영에게 있어서는 그동안의 실력을 검증할 가장 좋은 기회다.“무슨 문제라도 있어?”그 말에 안열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아닙니다!”안열은 여전히 장선명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저 장선명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로 했다.안열은 얼른 눈치껏 전화를 끊었다. 장선명은 전화가 끊긴 것을 확인하고 바로 폰을 꺼버렸다.안지영은 이미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장선명은 안지영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지금 몇 시예요?”“피곤하면 그냥 자.”장선명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얘기했다.안지영은 눈
테이블에는 다른 사진이 더욱 많았다.나태웅은 정말 이를 갈고 해외로 간 것이 틀림없었다.이것까지 다 알아내다니...이건 장선명의 가장 어두운 과거이자 다시는 들추고 싶지 않은 일들이다.하지만 그 일들이 지금은 나태웅 때문에 다시 밝혀지게 되었다.그동안 장선명이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마주할 수 없었던 과거들이었지만, 안지영이 건네준 사진을 보면서 장선명은 어느새 그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내려놓았다는 것을 발견했다.지금 와서 과거의 일을 돌이켜보니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그 여자가 누구인지 얘기하라고요!”안지영이 화가 난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러면서 장선명의 품에서 나오려고 안간힘을 썼다.하지만 장선명은 여전히 안지영을 꾹 잡고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그리고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더니 안지영의 앞에서 사진을 바로 불태워버렸다.“뭐, 뭐 하는 거예요!”안지영이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장선명은 불에 탄 사진을 그대로 재떨이 속으로 던져버렸다.담배를 피우는 장선명을 위해 안열이 준비해 둔 재떨이였다.안지영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아 그동안은 쓸모가 없었지만 지금은 아주 유용했다.테이블 위의 사진은 다 재떨이 안으로 들어가 활활 타올랐다.안지영은 멍해서 물었다.“그렇게 변명도 하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변명? 이건 다 지나간 일일 뿐이야. 너무 오래전 일이라서 다 잊었고. 뭐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 생각도 안 나네.”“...잊었다고요?”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안열이 그러지 않았던가.장선명에게 아주 중요한 사람이었다고.사진 속의 여자들이 모두 비슷하게 생긴 걸 보면 장선명은 정말 그 여자를 아주 사랑한 것 같았다.그런데 그걸 잊다니.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그런 안지영의 모습을 본 장선명은 환하게 웃으면서 안지영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또 입술을 맞췄다.“읍... 아니, 읍...”‘미남계를 쓰겠다는 거야?’안지영은 약간 화가 났다. 원래 이런 건 그냥 두면 찝찝한 편이다. 사실을 알지 못하면 마음에 걸리니까 말이다.
사무실에 들어간 장선명은 안지영이 그를 등지고 의자에 앉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이미 뒷모습에서부터 안지영의 화난 모습이 보였다.앞으로 다가가 의자를 돌린 장선명이 두 손으로 의자의 손잡이를 잡았다.그리고 웃는 눈으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안지영이 화가 나서 씩씩 대는 모습을 보았을 때도 더욱 환하게 웃었다.하지만 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을 보면서 더욱 화가 났다.“웃겨요?”“질투하는 거야?”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안지영은 장선명의 말을 듣고 약간 놀랐다.“화 안 났어요. 난 화를 잘 안 내는 사람이에요.”“그래?”“...”질투냐고?안지영은 질투가 뭔지 몰랐다.하지만 눈앞의 이 남자가 다른 여자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속이 좋지 않았다.생각에 잠겨있을 때 갑자기 안지영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장선명이 안지영을 번쩍 안아 들고 의자에 앉은 것이었다.장선명은 웃음기 가득한 시선으로 안지영을 바라보고 있었다.안지영은 놀라서 허둥대면서 얘기했다.“이거 놔요!”하지만 장선명은 움직이는 안지영을 놔주지 않고 그대로 입술을 가져갔다.안지영이 버둥댈수록 장선명은 더욱 깊게 안지영의 입술을 머금었다.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결국 안지영이 숨을 쉬지 못하자 장선명이 안지영을 풀어주었다.안지영이 손을 들어 장선명의 뺨을 치려고 할 때, 장선명이 안지영의 손목을 잡고 웃으면서 물었다.“화났어?”“흥.”안지영은 화가 났다.그것도 단단히 화가 났다.안지영은 장선명이 점심 전에 도착한 것이 분명 그 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안열이 알려줬을 테니까 말이다.그런데 와서 아무 해명도 하지 않고 입술부터 들이미니, 너무 미웠다.장선명은 그런 안지영을 보면서 짜증스러운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오히려 속 편히 웃으면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그리고 마지막에는 한숨까지 푹 내쉬었다.“그렇게 화가 난 거야?”말을 마치고는 안지영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안지영은 이제 더는 참을 수 없었다.“오자
“네? 그게 무슨 뜻이에요?”안지영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안열을 바라봤다. 안열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어휴, 됐어요. 더 얘기해 봤자 짜증만 나요.”더 말했다간 정말 참지 못하고 화를 낼 것 같았다.나태웅에 대해 할 욕은 이틀 밤을 새워도 모자랄 정도였다.“...”사람을 화나게 만드는 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말을 하다가 마는 것이고...안지영은 뾰로통해진 채로 안열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안열은 휙 돌아서 사무실을 나갔다.지금 안열의 머릿속에는 나태웅에 대한 욕뿐이었다.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감히 또 안지영을 찾아오다니.도대체 무슨 낯짝으로 온 건지......사무실에 홀로 남겨진 안지영은 아까 안열이 한 말을 떠올렸다.그게 도대체 무슨 뜻이지?평소에는 똑 부러지고 영리한 안지영이지만, 이번만큼은 안열의 말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뻔뻔하다는 뜻이라면... 나태웅은 원래부터 그렇게 뻔뻔했다.하지만 이번은...안열은 복잡한 생각에 머리를 휙 털었다.그리고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장선명에게 전화를 걸었다.원래는 장선면은 점심쯤에 안지영을 데리러 올 예정이었지만, 안지영의 전화를 받고 바로 달려왔다.안지영의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장선명은 안열이 자리에 앉아 아이스팩을 발 위에 올려놓은 것을 발견했다.“다리는 왜 그래?”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안열은 깜짝 놀라 손에 쥔 아이스팩을 떨어뜨릴 뻔했다.장선명을 보자, 안열은 얼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읏...!”하지만 고통을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어떻게 된 거야?” 그렇게 묻는 장선명의 목소리는 차가웠다.안열을 이렇게 만든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 힘들었다.안열은 고개를 숙였다. 차마 나태웅 때문이라는 말은 꺼내지 못해 그저 둘러댔다.“그냥... 실수로 넘어진 거예요.” “어떻게 넘어졌길래 거기만 그렇게 다치는 거야?” 장선명의 시선은 예리했다.보통 넘어진다면 무릎이 먼저 다치기 마련인데 안열은 무릎은 멀쩡하
나태웅은 믿을 구석 하나 없는 사람이긴 하지만 나태웅이 가져온 정보 때문에 안지영은 더욱 속이 복잡해졌다.안열은 결국 고통을 참지 못하고 얘기했다.“약 좀 바르고 올게요.”그 말에 안지영은 생각이 끊겨버렸다.정신을 차린 안지영은 안열의 발등이 부어올랐다는 것을 발견했다. 장선명이 사랑하는 사람...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안열은 본 안지영은 결국 또 나태웅에게 화가 났다.“왜 이렇게 된 거예요. 정말 나태웅을 못 이기는 거예요?”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일방적으로 맞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다.밖에서 싸우는 소리도 듣지 못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안열은 아파서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제가 만약 나태웅과 싸워서 이길 수 있었다면 진작 죽여버렸을 겁니다.”“...”진작 죽여버린다니.그 ‘진작’은 과연 언제일까?다시 생각해도 나태웅은 정말 독설만 퍼붓는 사람이었다. 안열을 볼 때마다 개라고 욕하니까 말이다.그래도 전에 동영 그룹에서 출근할 때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안지영은 우물쭈물하면서 안열에게 물었다.“두 사람, 전에도 안 좋은 사이였어요?”안열과 나태웅이 만날 때마다 안열은 대수롭지 않아 했고 나태웅은 화를 냈었다.그러니 두 사람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그렇게 물으면서 안지영이 구급상자를 가져와 상처를 처리해 주었다.안열이 거의 소리를 지르면서 얘기했다.“앗... 아파요... 아파...”“...”안열은 평소에 고통에도 끄떡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아파하는 것을 보니 나태웅이 얼마나 아프게 때린 것인지 알 수 있었다.“제가 무슨 원한이 있겠어요! 한 것도 없는데...”“...”“굳이 꼽자면... 안 대표님 일로 원한이 있는 거죠.”“나요?”“네. 저는 안 대표님이 선명 도련님과 결혼하기를 바랐으니까요. 아마도 그것 때문에 저를 싫어하는 게 아닐까요?”안열을 말을 들은 안지영은 약간 마음이 복잡했지만 또 본인의 선택이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안열은 장선명의 부하로
“난 대체 누구의 대용품이었어요?”안지영이 바로 물었다.안열은 장선명과 오랜 시간 함께 했으니 사진 속의 사람이 누구인지 다 알 것이다. 그러니 장선명이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 것이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표정이 그대로 굳어버렸다.“그건...”“두 사람은 왜 헤어진 거예요?”안지영이 또 물었다.“...”안열을 그 어느 질문에도 대답할 수 없었다.안열은 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안지영이 얼마나 칼 같은 사람인지, 안열은 잘 알았다.물론 안지영과 장성명의 사이가 안지영 때문에 시작한 것이라고 하지만 장선명에게 설레지 않았다면 안지영은 장선명과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안열은 결국 또 속으로 나태웅을 욕했다.“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 선명 도련님이 안 대표님과 결혼하려는 건 안 대표님을 사랑해서지, 다른 사람의 대용품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니까요.”“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직도 연락해요?”“절대 아닙니다. 제가 맹세할게요!”안열이 진지하게 얘기했다. 안지영이 괜히 장선명을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다.안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안열을 쳐다보았다. 안열은 그런 눈빛을 마주하고 약간 긴장했다.“진짜예요. 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선명 도련님이 얼마나 칼 같은 분인지 잘 알잖아요.”“하긴, 안열 씨는 선명 씨 사람이니까 그편을 들겠죠.”“아니요, 전 안 대표님 편입니다. 같은 여자로서요.”“나도 그 어떤 여자의 대용품이었겠죠.”“그건 다른 거죠! 그 사람은 이미 죽었으니까요. 나태웅이 왜 갑자기 이 일을 들춘 건지는 모르겠지만... 죽은 사람까지 들먹일 줄은 몰랐어요!”안열은 정말 나태웅을 죽여버리고 싶었다.요즘 나씨 가문에 생긴 일을 보면 나씨 가문 사람들은 다 하나같이 쓰레기였다.“죽었다고요?”안지영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안열이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다들 모르는 일이잖아요!”안지영이 놀라서 얘기했다.장씨 가문 남자들은 하나같이 차갑고 냉정하다는 소문을
안지영은 약간 생각하더니 얘기했다.“그런데 그렇게 욕한 게 오늘이 처음인 건 아니지 않아요?”“...”안지영이 그렇게 얘기하자 안열은 더욱 화가 났다.“저를 볼 때마다 저한테 개라고 욕해요. 개자식... 개같은 건 본인이면서! 나씨 가문 전체가 그냥 다 개예요!”안지영은 이마를 짚으면서 그 말을 들었다.“안열 씨를 그렇게 욕하고서도 잘 살아있다니... 신기할 정도네요.”안열이 얼마나 성격이 더러운지, 이제는 안지영도 잘 알았다.하지만 나태웅은 번마다 안열을 욕하면서 멀쩡히 살아있으니, 안지영은 약간 놀라웠다.“못 이긴다니까요!”“...”도대체 나태웅의 실력이 얼마나 좋기에 안열도 상대할 수 없는 걸까.“됐어요. 나태웅 얘기하면 기분이 잡치니까 그만 해요.”나태웅은 그런 존재다.언급만으로도 눈살이 찌푸려지게 하는 사람이다.“그건 맞아요. 짜증 나는 사람이죠.”안지영은 나태웅이 정말 너무 싫었다.“그러니까 무조건 승소해요!”너무 화가 나니 아무리 나태웅 얘기를 꺼내지 말자고 해도 결국 나태웅 얘기를 꺼내게 된다.안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분명 승소할 겁니다!”안지영이 두 주먹을 꼭 쥐었다.안열뿐만이 아니라 안지영도 화가 난 상태다.안지영은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너무 화가 나서 이 화를 전부 나태웅에게 쏟아버리고 싶었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꼭 이기게 해줄게요!”나태웅을 고소하려던 건 안지영이었다.하지만 지금은 든든한 아군이 생겼다.그 뜻인즉슨 나태웅은 여태껏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건드렸다는 것이다.안열은 안지영 앞에 있는 사진을 슬쩍 보았다. 안에는 장선명도 있는 것 같았다.“뭘 보는 거예요?”그렇게 물으면서 사진을 확인하려던 때, 안지영이 빠르게 사진을 가져가려고 했다.하지만 안열이 그 중 한 장을 손에 넣었다.사진을 본 안열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안지영의 표정도 그대로 굳어버렸다.안 그래도 아까 일 때문에 화가 났는데, 나태웅이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