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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03화

Author: 송언희
고은지가 그렇게까지 말하자 량천옥의 마음도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고은지를 외국으로 보내겠다는 말도 꺼내지 않았다.

량천옥은 그제야 문득 깨달았다. 고은지와 나태현 사이의 일이 끝난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말이다. 그러자 그녀는 오히려 두 사람의 사이가 이렇게 끝나지 않기를 바라게 되었다.

만약 모든 게 끝나버린다면 지금까지 고은지를 버티게 해준 마지막 기둥이 무너질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희주는 그녀의 목숨과도 같았다. 지금의 고은지는 희주를 위해서 버티고 있는 것이다. 복수가 끝나버린다면 고은지도 함께 무너질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이 들자 량천옥의 가슴은 더욱 격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

다음 날 아침, 고은지는 평소처럼 천락 그룹으로 출근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어떤 감정도 비치지 않았다. 마치 모든 걸 다 정리한 사람처럼 냉정하고 차분했다.

고은지가 출근하고 나서야 량천옥은 오랜만에 본가의 저택으로 돌아왔다.

병원에서 나태범과 만난 후로 그곳에 발을 들인 건 처음이었다.

량의는 그녀를 보고 숨을 길게 들이쉬며 물었다.

“왜 이제 와서 돌아왔어?”

량천옥은 맥없이 대답했다.

“지금... 마음이 너무 복잡해서요.”

“무슨 일이야? 설마 나씨 가문 쪽 일이야?”

량의가 보기에 량천옥이 신경 쓸 일이라고는 딱 하나, 나씨 집안과의 분쟁뿐이었다. 게다가 나태현과 대립 중인 상황이었기에 과거의 일이 세상에 까발려지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량의의 물음에 량천옥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나씨 가문 때문이 아니라 은지 때문에 그래요.”

그녀가 진짜로 신경 쓰는 건 더 이상 나씨 집안이 아니었다. 그 일이 어떻게 되든 그녀에겐 이미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가 조심스러웠던 건 그 일이 고은지에게 영향을 끼칠까 봐 걱정했기 때문이었다. 그녀 자신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량의는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은지가 왜?”

량천옥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지금 은지가 나태현을 향해 복수를 준비하고 있어요.”

“은지가 그 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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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지호가 도착했을 때, 나태현은 어두운 방 안에서 담배를 손에 쥔 채 앉아 있었다. 그 작은 불꽃 하나가 이 공간에서 유독 선명하게 빛났다.양지호가 불을 켜자 나태현의 얼굴은 짙게 가라앉아 있었다.양지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도 무겁고 복잡했다. 그가 들고 온 서류를 본 나태현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찾았어?”양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네.”“줘 봐.”그의 말투는 담담했다. 마치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말이다.양지호가 앞으로 다가가 서류를 건넸고 나태현은 그것을 받아 들고는 바로 펼쳐서 읽기 시작했다.거기에는 량천옥이 처음 강성에 도착했을 때의 사소한 행적들이 기록되어 있었다.그리고 그녀가 어떻게 나태범과 알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까지 담겨 있었다.마지막 장에 다다랐을 때, 나태현은 그날 량천옥이 나씨 가문에서 겪은 일과 어머니가 죽게 된 진실을 알게 되었다.순간, 그는 손을 주체하지 못하고 부르르 떨었다. 얼굴빛은 순식간에 새까매졌고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그는 서류를 세게 덮어버렸다.양지호는 할 말을 잃었다. 그는 침묵 속에서 입술만 살짝 달싹일 뿐 완전히 굳어 있는 듯했다.나태현은 눈을 감았다. 찰나의 순간, 그의 눈빛 속에 스친 건 실망, 그리고 서늘한 위험이었다.주위는 어느새 완전히 얼어붙은 것처럼 싸늘해졌다.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나태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먼저 가 봐.”“네.”양지호는 고개를 끄덕인 뒤 조용히 몸을 돌렸다.그는 이 결과가 나태현에게 얼마나 큰 충격일지 잘 알고 있었다. 나태현은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누구보다도 존경했으니까 말이다.하지만 진실이 이토록 참혹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양지호가 떠나고 그 공간엔 오직 나태현 혼자만 남았다. 그는 급하게 담배를 꺼내어 불을 붙였고 한 모금, 또 한 모금, 깊고 거칠게 들이마셨다. 지어는 불을 붙이는 손마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의 마음은 도무지 진정되지 않았다.다시 담배에 불을 붙이려 했으나 연거푸 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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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날밤, 상사의 아이를 임신했다   제1618화

    나태범은 나태현이 의심을 품고 조사를 시작한 건 고은지와 나태현 사이에 무언가 있다고 한 희주의 말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역시 같은 나씨 가문 사람이었어. 자기가 비열하니 주변 사람들을 그렇게 의심하잖아.’“량천옥!”“네가 원하든 원치 않든 나태현은 이미 의심을 시작했어. 분명히 진실을 밝히려 할 거라고.”“아니, 그게 너한테 뭔 이득이 되는데?”“난 강성 사람들 사이에서 뻔뻔하다고 소문난 여자야. 이젠 그런 소문 하나둘쯤이야 신경 안 써.”‘이득이라? 그동안 량천옥이 이득을 본 적 있었나?’전에 배준우 집에 있을 때는 사모님의 신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밖에서 떠다니는 소문에 신경을 썼지만 이젠 배씨 가문과도 관계가 끊겼고 배행풍도 그녀를 버렸으니 더는 무서운 것이 없었다.그보다 고은지 때문에 걱정이 많았다. 그 사건 때문에 고은지가 자신을 싫어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은지는 그딴 거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래서 지금의 량천옥에게는 신경 쓸 것도 두려워할 것도 없다.“너, 너 정말 미쳤구나.”나태범이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자 량천옥은 더는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으니 주위는 조용해졌지만 그녀의 마음은 전혀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반대편에 앉아 있는 고은지를 보며 량천옥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뭐라 말하고 싶었지만 끝내 입을 열지 못했다....한편, 병원에 있는 나태범은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삐 소리에 더욱 화가 치밀었다. 단집사가 곁에서 계속 달랬다.“어르신, 진정하십시오. 흥분하지 마세요.”“태현이와 신혜 일 빨리 처리해. 그놈이 모든 걸 밝혀내기 전에 결혼하는 게 최선이야.”나태범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그는 고은지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다고 하는 나태현의 말을 믿지 않았다.그는 량천옥이 그렇게 뻔뻔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뻔뻔할 뿐만 아니라 체면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그 사건은 그녀에게 영웡한 상처로 남았고 나씨 가문에 큰 손실을 입혔다. 이제는 모든 걸 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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