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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9화

Author: 서한월
몇 걸음 옮기고 나서야, 승현은 뒤늦게 멈춰 섰다.

‘아니지. 지금 가면 안 돼!’

하지만... 유하가 사라진 방향을 한참 바라보다가 승현은 결국 고개를 돌려 차로 돌아갔다.

“전용기 한 대 준비해. 항로 신청하고... 아니, 그러면 늦어.”

승현은 말을 끊고 바로 지시를 바꿨다.

“Y국으로 가는 항공권 한 장. 지금 당장.”

차가 출발했다.

최대한 속도를 올려 공항으로 향했다.

...

‘대나무숲’ 주택단지에 들어서자마자, 유하는 준서가 청산 쪽에 있다는 게 떠올랐다.

그래서 자기 집으로 가지 않고 바로 맞은편 별장으로 향했다.

문을 열어 준 사람은 차동석이었고, 청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청산 선배 아직 안 왔어요?”

‘이 시간까지 바쁜 건가?’

“대표님은 아직 국정원 쪽에 계십니다. 아마 자정은 넘어야 돌아오실 것 같습니다.”

차동석은 사람을 안으로 들이며 말했다. 그러고는 웃으며 덧붙였다.

“유하 씨는 출입문 비밀번호 알고 계시니까, 다음부터는 그냥 들어오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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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무상.이 네 글자에 대해, 유하는 스스로 충분히 안다고 생각했다. 이해하고 있었고, 받아들일 준비도 되어 있다고 여겼다.유하의 삶은 원래부터 변덕과 우연으로 가득했다. 계획대로 흘러간 적이 거의 없었고, 완전한 결말을 맞은 일도 드물었다.그래도 괜찮았다.유하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소성란이 곁에 있고, 마음 터놓을 수 있는 몇 명의 사람이 주변에 있고,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지금까지의 삶은 오히려 기대보다 훨씬 넘쳤다.유하는 탐욕스러운 사람이 아니었다.단 한 번, 욕심을 부린 적이 있다면.소성란을 해치려 한 사람들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는 생각.그리고 그 욕심은 이루어졌다.이루어졌는데...푸른 하늘을 가르며 비행기가 긴 흰 꼬리를 남기고 날아가고, 도로 위를 차량이 속도를 높여 달렸다.유하는 병원의 긴 복도를 전력으로 달렸다. 앞을 가로막던 승현을 밀치고 병실 안으로 들어섰다.하얀 커튼이 흔들렸다.순백의 병실.침대 위에는 사람의 윤곽이 만들어져 있었고, 의료진이 막 흰 천을 덮은 직후였다.눈이 아플 만큼의 흰색.유하는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발이 바닥에 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고, 몇 미터 남짓한 거리인데도 끝없이 멀게 느껴졌다. 마치 평생을 걸어온 시간보다 더 긴 길처럼.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완벽한 정적이었다.숨이 막힐 정도로.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유하는 결국 침대 옆에 섰다. 침대 위에는 얼굴이 보이지 않는 흰 천만이 있었다.유하는 손을 뻗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서 있었다.사람이 아니라 기둥처럼.시간도 함께 멈춘 것 같았다.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느리게...거꾸로 흘러가서 유하가 Y국을 떠나기 직전, 소성란 곁에 있었던 그날에 멈춘다면.그걸로 충분했다.유하는 그 하루에 평생을 묶여 살아도 괜찮았다.“저 왔어요.”대답이 없자 유하는 이유를 알 수 없어 다시 말했다.목소리는

  • 그들이 나를 버릴 때, 나는 세상을 가졌다   제840화

    “왜요, 엄마?”준서는 한참을 고민하는 표정이었다.“이건 꼭 필요한 일이야. 네가 받아들이기 힘들면, 여기 남아도 돼. 엄마는... 괜찮아.”“그러면 엄마를 못 보게 되는 거예요?”“그래.”“싫어요! 그럼 저는 엄마랑 갈래요.”“정말 잘 생각한 거야?”이번엔 유하 쪽이 흔들렸다.“결정한 거면, 내일이나 모레 바로 떠나야 해.”“이렇게 빨리요?”준서는 얼굴을 찡그렸다.“저 아직... 아직 몇몇 친구들이랑 인사도 못 했어요.”“그럼 청산 아저씨 집에 잠깐 더 있어도 돼. 근데 엄마는 내일 꼭 가야 해.”유하는 단호했다.“엄마가 집 떠난 지 너무 오래됐어. 엄마의 고모할머니가 많이 걱정돼.”그건 사실이었다.퇴원 전부터, 요 며칠은 뭘 하든 유하는 소성란 생각이 먼저 났다. 집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더 커졌다.준서만 아니었다면, 유하는 이미 비행기에 올랐을지도 몰랐다.소성란을 이렇게 오래 마음에 두고 있었던 만큼, 예전 일 때문에 말로는 준서를 못마땅해했어도, 유하는 알고 있었다. 소성란은 아이를 좋아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처음 만났을 때 그렇게 값비싼 선물을 준서에게도 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마저도 부족하다고 했을 사람이다.하루쯤 늦어지더라도 준서를 데리고 가면 소성란은 분명 기뻐할 것이다.소성란이 기쁘면, 유하도 기뻤다.“엄마... 제가 가도 괜찮을까요?”준서의 목소리가 조금 작아졌다.“증고모할머니, 아직 저 화나 계신 거 아니에요?”준서는 예전에 소성란에게 받은 선물을 잃어버리고 망가뜨린 일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 조심스러웠다. 혹시 소성란이 자신을 싫어하게 된 건 아닐지, 그게 마음에 걸렸다.“가서 제대로 사과드리면 돼.”유하는 준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마음 한쪽은 묘하게 불편했다.‘그 일이 없었더라면...’유하는 고개를 저었다.‘그만하자. 원인은 이미 감옥에 있으니까.’그런 생각을 하자 기분이 갑자기 가라앉았다.준서에게 이야기를 조금 읽어 주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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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걸음 옮기고 나서야, 승현은 뒤늦게 멈춰 섰다.‘아니지. 지금 가면 안 돼!’하지만... 유하가 사라진 방향을 한참 바라보다가 승현은 결국 고개를 돌려 차로 돌아갔다.“전용기 한 대 준비해. 항로 신청하고... 아니, 그러면 늦어.”승현은 말을 끊고 바로 지시를 바꿨다.“Y국으로 가는 항공권 한 장. 지금 당장.”차가 출발했다.최대한 속도를 올려 공항으로 향했다....‘대나무숲’ 주택단지에 들어서자마자, 유하는 준서가 청산 쪽에 있다는 게 떠올랐다. 그래서 자기 집으로 가지 않고 바로 맞은편 별장으로 향했다. 문을 열어 준 사람은 차동석이었고, 청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청산 선배 아직 안 왔어요?”‘이 시간까지 바쁜 건가?’“대표님은 아직 국정원 쪽에 계십니다. 아마 자정은 넘어야 돌아오실 것 같습니다.”차동석은 사람을 안으로 들이며 말했다. 그러고는 웃으며 덧붙였다.“유하 씨는 출입문 비밀번호 알고 계시니까, 다음부터는 그냥 들어오셔도 됩니다.”“아, 네. 감사합니다.”말은 그렇게 했지만, 유하는 그럴 생각은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미리 인사는 해야 했다.“엄마!”유하가 막 준서가 어디 있는지 물으려던 참에, 위층에서 고함이 들렸다. 얼굴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아이가 그대로 달려 내려왔다.몸통 박치기처럼 안겨 오는 바람에 차동석이 재빨리 한 번 막아 주지 않았다면, 아문 지 얼마 안 된 복부를 다시 다칠 뻔했다.‘큰일 날 뻔했네.’유하는 품에 안긴 준서를 끌어안고 등을 토닥이며 웃었다.“엄마 없던 동안, 어른들 말씀 잘 듣고 지냈어?”“당연하죠!”준서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숙제도 다 했고요, 진짜로 엄청 착했어요. 밖에 나가서도 안 돌아다녔고요. 근데 엄마는요, 왜 이렇게 오래 일만 해요? 혹시 그 성 림... 아니, 청산 아저씨랑 놀러 다니신 거 아니에요? 저만 빼고!”“아니거든.”유하는 웃음을 유지하며 말했다.“엄마, 중간중간 전화도 했잖아.”“그걸로는 부족해요!”준서는 단호했다

  • 그들이 나를 버릴 때, 나는 세상을 가졌다   제838화

    밤이 내려앉았다.롤스로이스 팬텀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외곽의 ‘대나무숲’ 주택단지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차 안은 조용했다.조수석에 앉은 유하가 먼저 침묵을 깼다.“아이 문제는...”“아이를 너한테 두는 거, 난 상관없어.”승현은 핸들을 잡은 채 시선을 앞에 둔 채 말했다.“다만 집안 어른들이 보고 싶어 하니까, 가끔은 얼굴 한 번씩 보여줘야지. 한... 한 달에 한 번 정도면 돼.”‘상관없다고?’유하는 속으로 기가 막혔지만, 한동안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잠시 후, 원래 하려던 말을 이어갔다.“준서가 남을지, 너랑 갈지, 본인이 선택하게 할 거야.”“본인이?”승현이 짧게 웃었다.“그럼 애가 남겠다고 하면, 너는? 그냥 두고 가겠다는 거야?”잠깐 멈췄다가 덧붙였다.“그렇게 내가 싫어? 아니면... 아예 준서까지도 필요 없는 거야?”“지금 나 비난하는 거야?”유하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아니.”승현이 웃었다.“또 화났네. 난 감히 그럴 생각 없어.”‘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유하는 승현의 말에 반박하려다가 조금 전 교도소에서 연우가 했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입을 열었다가 결국 닫고, 고개를 돌려 창밖으로 스쳐 가는 야경을 바라봤다.‘이제 그만하자.’싸우고 싶지도 않았고, 그럴 힘도 없었다.그렇게 말없이 달리다, 어느새 차는 ‘대나무숲’ 주택단지 앞에 멈춰 섰다.유하는 문을 열고 내리려 했다.그때 옆에서 손이 뻗어 나와 문을 다시 닫았다. 동시에 몸이 당겨지며, 은은한 냉단 향기가 밴 품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유하는 잠시 멈칫했다가 밀어내려 했지만, 허리를 감싼 팔이 단단했다.“가만 있어.”승현은 한 손으로 좌석 등받이를 짚고, 다른 손으로 유하의 등을 끌어안은 채 고개를 유하의 목께 묻었다. 목소리는 낮고 잠겨 있었다.“아무것도 안 해. 그냥... 잠깐만 안고 있을게. 진짜로 잠깐만.”그리고 조용히 물었다.“이번에 가면, 다시는 안 보게 되겠지?”뜨거운 숨이 목덜미에 닿았다. 미세한

  • 그들이 나를 버릴 때, 나는 세상을 가졌다   제837화

    결국 연우는 무기징역형을 받았다.마치 하지철을 보며 자라서 배운 것처럼 연우에게는 정상적으로 살고 제대로 일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생각이 박혀 있는 듯했다. 꼭 누군가 하나를 붙잡고, 살을 뜯고 피를 빨아야만 숨을 쉴 수 있는 것처럼.유하는 그 사고방식을 이해하지 못했다.아주 오래전부터 유하는 알고 있었다. 누구에게도 기대서는 안 된다는 것, 누구도 나 대신 살아 주지 않는다는 것.길은 걷는 것은 결국 내 힘으로 걸어야 했다.말을 마치자 연우는 고개를 숙인 채 한동안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며 유하는 더 말할 마음이 사라졌다.‘이제 와서 무슨 말을 더 하겠어.’유하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그때, 낮고 갑작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그 애, 죽었어.”유하는 걸음을 멈추고 되물었다.“누가?”연우가 고개를 들었다. 예전에는 생기가 넘치던 눈은 이제 탁하게 가라앉아 있었다.“그 사생아. 심부전으로 며칠 전에 병원에서 죽었어.”유하는 말문이 막혔다.‘심부전... 하지철에게 심장이 안 좋다던, 이제 겨우 네 살이었던 그 아이가... 죽었다고?’연우는 갑자기 웃었다. 웃음에는 독기가 가득했다.“아버지가 완전히 무너졌겠지? 그렇게 원하던 아들이었잖아. 그렇게 바라던 아들인데, 죽었어. 하하하하하하... 죽었다고.”연우는 웃음을 터뜨렸다.하지만 눈가에는 붉은 기운이 번졌고, 눈물은 고여 있었다. 떨어지지 않게 이를 악물고 버티는 모습이었다.연우는 유하 앞에서 약해지고 싶지 않았다.조금도.연우는 눈을 크게 뜨고 눈물을 억누른 채 유하를 노려봤다.“내가 왜 귀국했는지 알아? 사실은 승현이가 불러들인 거야. 이유가 궁금하지 않아?”유하는 미간을 찌푸렸다.“뭐가?”“거래.”연우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승현이랑 나, 거래했어.”그제야 연우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입꼬리는 억지로 올라가 있었고, 울면서 웃고 있었다.“우리 사이는 거래였어... 소유하.”연우는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나... 네가 진짜

  • 그들이 나를 버릴 때, 나는 세상을 가졌다   제836화

    연우에게는 더 이상 갈 길이 없었다.없어졌다.정말로... 끝난 걸까?‘하연우. 너... 원래 좋은 패를 쥐고 있었어.’가장 듣기 싫던 사람의 목소리가, 아무 예고 없이 머릿속에서 울렸다. 연우는 숨을 들이켜며 정신을 차렸다. 멍하니 고개를 들고, 유리 너머의 유하를 바라봤다.“그때 네가 했던 말, 무슨 뜻이야?”“뭐가?”유하는 고개를 갸웃했다.“그날 병실에서. 내가 찾아갔을 때, 네가 말했잖아. 내가 좋은 패를 가지고 있었다고.”연우의 목소리는 거칠었다.“그게 무슨 말이었어?”‘아, 그 얘기.’연우가 아직도 그 말을 붙잡고 있을 줄은 몰랐지만, 유하는 잠시 생각하다가 차분히 말했다.“하연우, 너는 말이야...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네.”“넌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어릴 때부터 지원이라는 걸 충분히 받으면서 컸어. 배운 것도 많고, 스스로 쌓은 것도 있고. 예술 쪽도, 비즈니스 쪽도.”유하는 예전에 한 번 연회장에서 연우가 하프를 연주하며 노래하던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었어도, 유하도 그 실력만큼은 부정할 수 없었다. 연우는 기본이 단단했고, 노력의 흔적도 분명했다.해외 유학도 마찬가지였다. 세계적인 명문대에서의 수학은 돈만 쓴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고, 연우의 지도교수 역시 국내외 기업과 연결된 인맥을 다수 가진 인물이었다.그건 유하도 알고 있었다.“네 아버지가 어떤 인간이든, 널 어떻게 이용하려 했든, 어쨌든 너는 실력을 갖추게 됐어.”“유학 마치고 돌아와서, 네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걷지 않았더라면, 그 일들에 손대지 않았더라면, 일찍 빠져나왔더라면 말이야. 나중에 집안일이 터져서 연루됐어도, 몇 년 살다 나오면 끝이었어. 키워준 대가라고 생각하면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었겠지.”“근데 넌 그러지 않았어.”유하의 시선은 담담하게 연우에게 닿아 있었다.“넌 가진 걸 다 가지고도, 네 손으로 자기 길을 이렇게 만들어 버렸어.”평생을 감옥 안에서 보내야 하는 삶.철창 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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