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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방금 전까지 안하무인이던 장 비서의 눈동자가 공포로 급격히 흔들렸다.

‘뭐야.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 계집애인 줄 알았는데...’

방금 전, 하석훈이 일부러 목소리를 높인 이유는 그가 한 말이 단순히 장 비서 한 명에게 한 말이 아닌 유강엔터 직원 모두에게 날리는 경고장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기점을 시작으로 유강엔터에는 피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단 몇 시간만에 절반이 넘는 직원이 해고당하고 여유 넘치던 복도는 해고된 직원들의 애원, 슬픔 그리고 분노의 소리로 가득했다.

대한민국 대기업인 유강그룹, 그리고 그 계열사인 유강엔터의 중간 관리직으로서 다들 나름 사회적으로 지위를 인정받고 자신의 직장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던 이들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길거리를 떠도는 양아치처럼 입에 담기도 힘든 욕설을 쏟아내고 있었다.

잠시 후 회사에 도착한 육경서는 경비원들에게 끌려나가는 직원들을 보며 입을 떡 버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런 인맥도, 사업 경험도 없는 강유리라면 원로 직원들에게 제대로 한방 먹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부장급 직원들이 제발 한번만 봐달라고 애원하다 경비원들에게 끌려나가는 꼴이라니.

‘재밌다... 진짜 재밌는 사람이네.’

휴대폰을 꺼낸 육경서는 빠르게 이 광경을 영상으로 남긴 뒤 육시준에게 전송했다.

“우리 형수님 보통 분이 아니시네. 형이 왜 형수님을 마음에 들어하는지 알겠어. 잔인한 면이 아주 많이 닮았어.”

한편 LK그룹 대표 사무실.

동생이 보낸 영상과 문자를 확인한 육시준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회사의 기강만 갉아먹던 충치 같은 이사들, 그리고 유강그룹의 친인척들이 분노로 인해 벌개진 얼굴로 회사로 쳐들어가고 있는 모습, 그리고 그들을 막는 경비원들...

“사모님께서 첫 출근 날부터 부장급 이상 관리직들 그리고 이사들 중 절반을 해고하셨다고 합니다. 유강그룹에서 엔터회사는 아예 정리하려는 게 아니냐는 소문까지 돌고 있습니다.”

역시 옆에서 영상을 확인한 임강준이 한마디 덧붙였다.

워낙 이미지가 별로 좋지 않던 강유라인지라 이번 정리해고 역시 철없는 부잣집 아가씨의 갑질 정도로 치부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때 휴대폰을 내려놓은 육시준이 물었다.

“임 비서는 어떻게 생각해?”

갑작스러운 질문에 흠칫하던 임강준이 곧 솔직하게 대답했다.

“썩은 살을 도려내지 않으면 새 살이 돋아날 수 없죠. 깔끔한 처리방법이고 충분히 존경스럽습니다만...”

“다만 뭐?”

“아무런 백 없이 국내 엔터시장에서 살아남으실 수 있을지 걱정됩니다.”

비록 육경서라는 톱스타가 지원사격을 나서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금상첨화 정도의 느낌, 정말로 성과를 내려면 유강그룹의 입김에서 벗어나 모든 걸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도록 인력, 자본을 대줄 수 있는 강력한 뒷배가 필요한 게 현실이었다.

차분한 얼굴로 대답한 임강준이 육시준의 눈치를 살짝 살폈다.

‘제대로 대답한 거 맞겠지...?’

한편, 긴 손가락으로 펜을 가지고 놀던 육시준이 피식 웃었다.

“성홍주 대표 그리고 그 와이프에 딸까지 잘 지켜봐. 유리가 하는 일에 방해만 되지 않게 막고... 남은 건 유리가 알아서 하게 해둬.”

오늘 아침 자신만만한 얼굴로 모든 걸 되찾겠다고 말한 강유리다.

‘뭘 어떻게 하려는 건지 내가 똑똑히 지켜보겠어...’

유강엔터.

대규모 구조조정에서 살아남은 이사 및 부장들은 안도감을 느낌과 동시에 오늘 갑자기 부임한 낙하산 대표에 대한 불만이 점점 쌓여만 가기 시작했다.

게다가 방송국 PD들과의 인맥 관리, 연예인 스케줄 관리 등 업무를 담당하던 원태영 대표까지 잘라버렸으니 회사의 맥이 끊긴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다들 생각했다.

“대표님, 원태영 대표가 잘못한 건 사실이지만 지금 해고하시는 건 안 됩니다. 원태영 대표가 회사를 떠나면 오예라도 계약 해지할 거라고 날 뛸 거라고요.”

마침 오예라의 프로필을 넘겨보던 강유리가 피식 웃었다.

“이깟 삼류 연예인도 회사 기둥이라고 떠받들고 있던 겁니까? 그러니까 회사가 이 모양인 겁니다.”

그 뒤로도 이사들의 조언에 따박따박 말대꾸를 하는 강유리의 모습에 다들 혈압이 치솟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하는 대답마다 일리가 있는 말이라 반박할 거리가 없으니 더 화가 치밀었다.

“대표님께서 지금 국내 시장에 대해 잘 모르시는 것 같네요. 유학하시는 동안에도 영화연출과를 전공하셨다면서요. 외람된 말씀이지만 회사 경영과는 전혀 관련없는 학과 아닙니까?”

지난 1년간 오예라를 키우기 위해 들인 홍보 비용이 얼마인데 삼류 연예인이라는 말 한 마디로 그들의 노력을 부정해 버리다니. 화가 날만도 했다.

‘너 따위가 뭘 안다고 여기서 훈계질이야.’

이에 파일을 내려놓은 강유리가 방금 전 불만을 제기한 이사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맞습니다. 제가 경험이 부족한 건 사실이죠. 하지만 손해를 보는 프로젝트는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습니다. 투자비용 회수도 힘든 삼류 연예인 한 명과 계약 해지? 그게 뭐요? 그걸로 이 회사의 구린 구석을 전부 제거할 수 있다면 충분히 할 만한 짓 아닌가요?”

“소속 연예인 하나 없는 엔터회사가 회사입니까? 자꾸 삼류, 삼류 하시는데. 그러는 대표님은 섭외 가능하신 연예인이라도 있습니까?”

드디어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이사가 가식적인 가면을 벗어던진 채 대놓고 강유리에게 화를 내기 시작하고 다른 이사들도 그의 의견에 동의하는 듯 몰래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렇게 나와야지. 바로 수그러드는 건 너무 재미없잖아.’

지금 이 상황에서 그녀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만이 직원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라는 걸 강유리는 알고 있었고, 그랬기에 이미 만단의 준비를 해둔 상태였다.

“물론이죠.”

“...”

순간 회의실에 정적이 감돌았다.

이때 마침 하석훈이 회의실로 들어왔다.

“육경서 씨가 도착하셨습니다. 회의실로 모실까요?”

육 씨? 흔치 않은 성씨에 강유리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려왔다.

이때 하석훈이 설명을 이어갔다.

“로코의 정석이라고 불리는 톱 배우입니다. 아, 얼마 전 찍은 사극드라마로 최연소 연기대상까지 수상했고요.”

쿠궁!

하석훈의 대답에 이사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 육경서? 어쩐지... 자신만만하더라니.

게다가 로열 엔터 소속 연예인을 스카우트했단 말이야.

강유리 대표... 도대체 정체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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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
시간과 돈을 또 써야하니...답장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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