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그날 오후 미가탄의 공기는 햇살이 따갑게 내리쬐는데도 차갑게 느껴졌다. 이날 불어오는 바람도 제법 거셌다. 알테아는 몇 번이나 바람에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해야 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묘소에 도착한 순간, 알테아는 그 모든 것을 외면하기로 했다. 그녀는 어머니의 묘비 앞에 서서, 그 위에 놓인 꽃들이 시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찾아왔어요, 엄마.” 알테아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녀는 곧 손에 들고 있던 꽃으로 시든 꽃을 바꾸었다. “제가 이곳에 자주 오지는 못하지만, 늘 엄마를 기억하고 있어요. 언젠가는 우리가 다시 만나 함께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그녀의 손이 떨렸다. 어머
다음 날, 데이븐은 자신에게 잡혀 있는 일정으로 정말 바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심지어 그가 가장 좋아하는 커피를 여유롭게 즐기는 것조차 시간을 쪼개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평소와 마찬가지로 데이븐은 결코 불평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자신이 좋아하는 바쁨이었다. 자신의 삶이 돌아온 것이다. 적어도…… 계속해서 그의 생각을 괴롭히던 것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다.칼리스터 그룹의 회의실은 진지한 논의의 목소리로 가득했다. 프레젠테이션 보드에는 논의의 중심이 된 선시티 아파트 프로젝트의 세부 사항이 띄워져 있었다. 데이븐은 그곳에서 진행될 프로젝트 동안 자신이 추진하고자 하는 계획을 세세하게 설명했다.“콘셉트와 예산에 대해서는 이미 합의했습니다. 하지만 데이븐 씨.” 한 임원이 입을 열었다. “저희가 알고 싶은 건 이 프로젝트의 장기적인 목표가 정확히 무엇인지입니다. 인수 프로젝트라는 점을 고려하면 너무 위험한 것 아닙니까? 우리가 자주 진행하던 신규 프로젝트와는 다르지 않습니까.”데이븐은 프로젝터 화면을 바라보다가 기회를 꽤 날카롭게 읽어내는 이사 중 한 명인 리키에게 시선을 옮겼다. 데이븐은 그의 일하는 방식을 마음에 들어 했다. 조금 비판적이기는 하지만, 그가 하는 말은 충분히 합리적이었다.“모든 프로젝트에는 각자 나름의 위험이 있는 것 아닙니까?” 데이븐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프랑크푸르트 프로젝트도 마찬가지였죠. 오사카 프로젝트와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는
차가 병원 로비 앞에 멈춰 서자, 데이븐은 평소처럼 누군가가 문을 열어주기를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의뢰한 의사가 자신의 방문을 결코 외면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노아 선생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데이븐을 맞이한 직원 중 한 명이 말했다.그는 짧게 고개만 끄덕였다. 아침부터 흐트러진 채 매고 있던 넥타이의 매듭을 느슨하게 풀었다. 데이븐이 자신의 옷차림을 신경 쓰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오늘만큼은 그런 것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아, 드디어 오셨군요?” 여전히 몇 가지 서류를 확인하고 있던 노아가 그를 맞이했다. “앉으세요.”데이븐은 참을성 없는 눈빛으로 노아를 바라보았다.“아, 좀 진정해. 아르센에게 들었어. 방금 선시티에서 돌아왔다면서?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곧장 여기로 왔다고.”데이븐은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자신의 비서를 힐끗 바라보았다. 아르센은 그저 죄책감 어린 얼굴로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네가 휴식이 필요하지 않다고 해도, 너와 함께 일하는 사람은 휴식이 필요해, 데이브.” 노아가 태연하게 말했다.
“먼저 집으로 돌아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데이븐 씨.” 아르센이 줄곧 도로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던 데이븐을 힐끗 바라보며 조언했다. 데이븐의 태도는 지나치게 침착했고, 선시티에서 미가탄으로 이동하던 때보다 훨씬 말이 없었다. 할머니의 묘를 다녀온 뒤라서 그런 것일까?알 수 없었다. 최근 데이븐의 삶에 놀라운 일들이 너무나 많이 벌어지고 있었기에 아르센으로서는 쉽게 짐작할 수 없었다. 심지어 자신의 입장이 되어 상사인 데이븐의 처지가 되었다면, 이미 갑작스러운 스트레스로 쓰러졌을지도 모른다.“제가 이미 부탁드린—”“그럴 필요 없어.” 데이븐이 짧게 대답했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긴장감이 짙게 배어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기다려왔는지 알잖아, 그렇지?”아르센은 입을 다물었다. 그는 데이븐이 그 어린 남자아이에게 다가갈 수 있는 틈을 얼마나 간절히 원했는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 기회가 활짝 열렸다. 데이븐이 조급해하는 것도 당연했다. 다만……“그 검사 결과를 빨리 확인하고 싶으신 마음은 이해합니다만—”데이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비서를 바라보았다.
바네사는 얼어붙었다. 제임스가 한 말 때문이 아니라, 그보다도……“아빠?”두 사람은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테오 블레이크가 문가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가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테오의 시선이 두 사람을 향하고 있는 모습—경악한 듯 눈을 크게 뜨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을 보아 방금 전의 대화를 분명히 듣고 있었음이 틀림없었다.“언제부터…… 거기 있었어?” 바네사는 애써 침착하게 말하려 했다. 자신이 긴장하고 불안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도록.“그걸 지금 나한테 묻는 거냐?” 테오가 다가왔다.“안녕하십니까, 테오 씨—”찰싹!테오가 제임스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 그 충격에 제임스의 몸이 휘청거렸고, 다행히 소파 등받이를 붙잡으며 간신히 몸을 지탱했다. 그러나…… 테오의 보행을 돕던 지팡이가 제임스를 향했다.테오는 제임스가 다치고 고통스러워하든 말든 연거푸 그를 내
“쓰레기 같아!”바네사는 TV 리모컨을 아무렇게나 집어던졌다. 아침부터 자신의 삶에 기분 좋은 소식이라고는 하나도 들려오지 않아 잔뜩 화가 나 있었다.특히 대븐에 관한 소식은 더더욱 그랬다.대븐의 관심을 다시 얻기 위해 이미 그 남자를 자극해놓았건만, 지금 이 순간까지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젠장!”바네사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욕설을 내뱉었다.“제임스가 잘못된 정보를 준 건가?”그녀는 가까이에 놓여 있던 가방을 거칠게 집어 들었다. 안에 있던 물건 일부가 바닥에 흩어졌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마음은 이미 잔뜩 상했고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내 휴대폰 어디 있어?”그녀가 다급하게 중얼거렸다. 대븐에 관한 다음 소식을 알아내려면 제임스에게 연락해야 했다. 그 남자가 자신의 협박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휴대폰은 이미 손에 들려 있었다.
도시 반대편에서는 대븐이 막 같은 묘지에 도착했다. 그의 손에는 하얀 꽃다발이 들려 있었다. 대븐은 천천히 걸으며 묘비들이 늘어선 길을 따라갔다. 그러다 오랫동안 찾아오지 않았던 한 묘 앞에 멈춰 섰다.“할머니.”그의 목소리가 쉬어 있었다.“이제야 찾아와서 미안해요. 많은 일이 있었어요…… 그런데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대븐은 할머니의 묘를 바라보았다. 그의 삶을 종종 성가시게 만들었던 중년의 여인을 향한 그리움이 크게 밀려왔다. 하지만 대븐은 한 번도 그것을 싫어하지 않았다. 할머니가 아무리 터무니없는 부탁을 해도 대븐은 늘 그녀의 말을 들어주었다.그만큼 대븐이 에블린 캘리스에게 품고 있던 사랑과 애정은 컸다.“아마…… 할머니는 천국에서 나를 비웃고 있겠죠.” 대븐이 씁쓸하게 비웃었다. “죽을힘을 다해 감싸줬던 여자가 오히려 나한테 그렇게 못되게 굴었으니까요. 적어도 바람을 피우고 싶었다면 나보다 나은 남자를 찾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대븐이 웃었지만 그 웃음에는 슬픔과 애절함이 묻어났다. 결국 그 웃음마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