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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Author: 이소문
강하율은 화면을 한참 들여다봤다. 이름이 배윤호로 떠 있는 걸 확인하고도 프로필에는 해 뜨는 사진만 달랑 걸려 있어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너무 흔한 감성 계정 같아서 이게 정말 배윤호가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강하율은 괜히 시간을 끌 수 없어 바로 수락을 눌렀다.

잠깐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메시지도 보냈다.

[오빠, 죄송해요. 제가 실수로 재킷을 세탁했다가 망가뜨렸어요. 얼마든지 물어드릴게요.]

곧바로 답이 왔다.

[2천만.]

[...]

그 숫자를 보는 순간, 강하율은 숨이 턱 막혔다.

요즘 강하율은 2천만 원은커녕 천만 원도 당장 꺼낼 돈이 없었다.

대학생 때는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생활비를 해결하면서 몸이 좋지 않은 아버지 쪽도 챙겨야 했다.

취업하고 나서는 벌어들이는 돈 대부분을 아버지 억울한 누명을 벗기는 데 쏟아부었다. 일을 하면서도 당시 증인을 찾겠다고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시간이 쌓이니 업무도 자꾸 밀렸다.

지배인은 그런 강하율 사정을 알아채고 어떤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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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억을 잃은 척할 때는 언제고   제363화

    “네, 알겠습니다. 감사해요.”강하율은 그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휴대폰을 내려놓으려는데 또다시 전화가 걸려 왔고, 낯선 번호인 걸 본 강하율은 본능적으로 전화를 받았다.“강하율, 너 어디야? 윤제가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바에서 잠을 잤어. 계속 네 이름만 부르고 있는데 제발 부탁이니까 여기로 한 번만 와줘.”“배윤제는 곧 결혼할 사람이야. 그런데 나를 부른다고? 나는 배윤제 뒤치다꺼리할 생각은 없으니까 두 번 다시 이런 일로 나한테 연락하지 마.”강하율이 쌀쌀맞게 대꾸했다.“강하율, 너 진짜 배윤제를 신경 안 쓰는 거야?”“응. 끊는다.”강하율은 전화를 끊었다.그녀는 배윤제가 자신의 말을 들었는지, 듣지 못했는지 알 수 없었으나 그가 들었든 못 들었든 상관없었다.세수를 하고 양치를 한 뒤 강하율과 배윤호는 약속대로 집 밖에서 만나서 함께 강씨 가문 별장으로 향했다....바 안.배윤제는 술을 마시면서 강하율이 한 말을 곱씹다가 코웃음을 쳤다.그는 강하율과 이렇게 허무하게 끝났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강하율은 분명 나를 좋아하는데. 이건 전부 정다인 탓이야.’배윤제는 술잔을 내팽개치더니 바를 떠나 차를 타고 별장으로 돌아갔다.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정다인은 방에서 나가기도 전에 배윤제에게 밀쳐져 침대 위에 쓰러졌다.“꺅! 윤제 씨, 지금 뭐 하는 거예요?”“정다인, 다 너 때문이야! 하율이는 이제 나랑 말조차 안 섞으려고 해.”“하하.”정다인은 차갑게 웃었다.“윤제 씨가 하율 씨 신분이 별로라고 싫어했으면서 왜 이제 와서 제 탓을 하는 거죠?”정다인은 그렇게 말하면서 배를 쓰다듬었다.정다인이 대외적으로 임신했다고 발표하여 배윤제는 차마 그녀에게 손을 댈 수가 없을 것이다.그런데 배윤제는 정다인을 힐끗 보더니 그녀를 끌고 계단 쪽으로 걸어갔다.“우리 집 바닥은 주기적으로 왁스 칠해서 관리해. 네가 여기서 실수로 미끄러져서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유산하게 된다면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 기억을 잃은 척할 때는 언제고   제362화

    강하율은 차 안에서 다시 녹음 파일을 재생했고, 눈치 빠른 양승아는 한적한 길가에 차를 세운 뒤 시동을 껐다.비싼 차라서 그런지 방음 기능이 뛰어나 순식간에 차 안에서 미약한 숨소리만 들렸다.귀 기울여 들으니 녹음 파일에서 무엇인가를 닫는 듯한 아주 작은 딸깍 소리가 들렸다.그러나 경선희의 숨소리와 분노 어린 목소리 때문에 무슨 소리인지 정확히 판단하기 어려웠다.배윤호가 말했다.“내가 전문가에게 분석을 맡길게. 잡음을 제거하면 더 잘 들릴 거야.”강하율은 고개를 끄덕였다.“고마워요.”어느새 아파트에 도착했지만 강하율은 여전히 넋이 나간 상태였다. 김혜은의 죽음과 양지원의 사건 때문에 그녀는 자꾸만 두려움이 생겼다.비록 강하율은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배윤호는 그 점을 완벽히 꿰뚫어 보았다.배윤호는 강하율의 집 현관문을 막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같이 술 한잔할래?”“괜찮아요.”강하율이 입술을 짓씹었다.“새로 가져온 거야. 한 병에 4천만 원짜리인데.”“4천만 원이요? 그렇게 비싸요? 그러면 맛 좀 볼게요.”강하율은 곧바로 몸을 돌려 배윤호의 집으로 들어갔고, 배윤호는 입꼬리를 올리며 강하율을 뒤따라 안으로 들어갔다.30분 뒤, 강하율은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소파에 기대앉았다. 그녀가 취기를 느끼고 있을 때 갑자기 배윤호가 담요를 덮어줬다.눈을 뜨고 가까이 다가오는 배윤호를 본 강하율은 손을 뻗어 그를 잡아당기더니 그에게 완전히 몸을 기댔다.“향이 엄청 좋네요. 우리 어디서 본 적 있지 않아요?”“글쎄.”“언제였더라...”강하율은 열심히 떠올려보았지만 머릿속이 엉망진창이라 얼마 지나지 않아 배윤호에게 몸을 기댄 채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배윤호는 팔을 뻗어 강하율을 안은 뒤 그녀에게 담요를 덮어주며 고개를 숙여 강하율을 바라보았다.“하율아, 다 괜찮을 거야.”강하율은 그 말을 들은 건지 편안한 마음으로 깊이 잠들었다....다음 날 아침, 강하율은 낯선 주변 환경에 의아해하다가 의자에 걸쳐 있는 옷을 보

  • 기억을 잃은 척할 때는 언제고   제361화

    그것은 최근에 녹음한 오디오 파일인 듯했는데 그 내용은 일기와 다름없었다.가만히 듣고 있다 보니 파일에 담겨있는 건 양지원의 개인적인 심정이었다.그러다 기소정과 김혜은이 호텔에 찾아온 그날, 수상한 점이 드러났다.“김혜은 씨가 오늘 호텔에 왔다. 김혜은 씨를 다시 보는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라 주체가 안 될 뻔했다. 선희 언니가 예전에 얼마나 잘해줬었는데... 사람들이 시골 출신 졸부라고 무시할 때 선희 언니는 김혜은 씨에게 예절 교사도 붙여주고, 다른 사람들이랑 어울릴 수 있게 김혜은 씨를 데리고 다니기도 했었다. 대표님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선희 언니가 가장 먼저 찾아간 게 바로 김혜은 씨였는데 김혜은 씨는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두 사람을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돈까지 챙겨서 도망쳤다.”돈을 챙겨서 도망쳤다는 말에 강하율은 의아해졌다.“무슨 돈을 말하는 걸까요?”배윤호가 미간을 찌푸렸다.“양지원 씨는 과거의 일들을 많이 알고 있는 것 같네.”그 이후로 양지원은 더 깊은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강하율은 자그마한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녹음 파일이 곧 끝날까 봐 불안해했다. 그런데 거의 끝나갈 무렵, 갑자기 쾅 소리가 들려왔다.“왜 나한테 이러는 거야? 대체 뭐 때문이야?”그건 강하율 어머니의 목소리였다.그러나 대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내가 잘 못 해줬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래서 그래? 왜 나를 함정에 빠뜨린 거야? 이렇게 한다고 해서 내가 굴복할 것 같아? 이 함정이 완벽할 거라고 착각하지 마. 네 존재 자체가 허점이니까. 언젠가 사람들은 진실을 알게 될 거야.”탁.그 말이 끝이었다.강하율은 복잡한 심경으로 녹음기를 손에 꽉 쥐었다.“저희 엄마는 분명 증거를 찾았을 거예요. 그래서 살해당한 거겠죠. 그리고 저는 그 이후로 다른 사람 말에 속아서 그 비서의 가족들을 조사했어요. 사실 그들에게서는 아무런 정보도 얻을 수 없는데 말이에요.”강하율은 그동안 시간을 허비했다는 사실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 기억을 잃은 척할 때는 언제고   제360화

    배윤호는 그런 강하율을 기특하다는 듯 바라보았다.“이제야 좀 말이 통하네.”“오늘 아침에 양 총괄님이랑 통화했는데, 그러고 나서 오후에 바로 사고가 났어요. 설마... 이것도 나 때문에 일어난 걸까요?”강하율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습니다. 걷잡을 수 없는 자책감이 그녀를 덮쳤다.“자책할 시간 있으면 차라리 움직여. 그게 훨씬 생산적이니까.”“저 양 총괄님 집 주소 알아요. 어쩌면... 거기에 뭔가 있을지도 몰라요.”말을 마친 강하율은 배윤호를 데리고 양지원의 집으로 향했다.하지만 건물 아래에 도착하자마자 또 다른 경찰 무리가 보였다.그녀가 걸음을 재촉하며 다가갔다.“무슨 일이죠?”곁에 있던 아주머니 한 분이 대답했다.“도둑이 들었대요. 이따가 관리사무소 가서 따져야지 원. 관리비를 그렇게나 많이 내는데 도둑놈이 쉽게 드나들어서 되겠냐고요.”강하율은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혹시 1201호인가요?”“어머, 아가씨가 그걸 어떻게 알았대?”아주머니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그녀를 쳐다보았다.강하율은 사람들을 헤치고 배윤호와 함께 서둘러 위층으로 올라갔다.경찰이 양지원에게 연락을 시도하는 듯 보이자, 강하율이 성큼성큼 다가갔다.“실례합니다. 양지원 씨가 지금 입원 중이라 제가 대신 물건을 좀 챙기러 왔어요.”말을 마치고는 신분증을 건네주었다.경찰은 신원을 확인한 뒤 병원 측에 양지원의 상태에 관해 물었고, 현재 의식 불명이라는 사실을 파악하고 나서야 강하율에게 상황을 설명했다.“여기 와보신 적 있어요? 저희도 지금은 뭐가 없어졌는지 확실히 알 수가 없어서요.”“네. 귀중품은 대부분 금고 안에 있을 거예요.”강하율이 구석의 장식장을 가리켰다.경찰이 다가가 겉에 걸려 있던 그림을 치우자 금고는 이미 통째로 사라진 상태였다.“없어진 물건이 뭔지 알 것 같군요. 실례지만 금고 안에 뭐가 들었는지 말씀해 주시겠어요?”강하율은 뜯겨 나간 벽면을 멍하니 바라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보통 도둑이라면 조용히 움직이기 마련인데, 소음이 날 걸

  • 기억을 잃은 척할 때는 언제고   제359화

    배윤호가 갑자기 다가오자, 무거운 숨결이 느껴졌다.“그건 네가 제일 잘 알지 않나?”강하율은 금세 꼬리를 내리더니 똑바로 앉고 창밖을 내다보았다.그때, 휴대폰 벨 소리가 울리며 미묘한 분위기를 깨뜨렸다.강하율은 번호를 확인하고 얼른 전화를 받았다.“총괄님?”그러다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네, 지금 바로 갈게요.”전화를 끊고 나서 그녀는 다급하게 배윤호를 바라보았다.“양지원 총괄님이 교통사고를 당하셨대요. 지금 병원에서 응급 수술 중이라는데, 아침에 저랑 통화한 기록이 있어서 경찰이 연락이 왔네요.”“경찰이? 가해 차량 운전자는?”배윤호가 핵심을 찔렀다.“도망쳤대요.”강하율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왠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배윤호가 그녀를 안심시키며 말했다.“일단 병원부터 가자.”이동하는 내내 그는 전문가들에게 연락해 병원으로 모이도록 조치했다.두 사람이 도착했을 때, 그들 역시 수술실로 막 들어간 참이었다.강하율을 보자 경찰이 다가왔다.“강하율 씨?”“네, 접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죠?”강하율이 다급하게 물었다.“호텔 쪽으로 가던 모양인데, 대형 트럭에 들이받혀 길가로 전복됐어요. 가해 차량 운전자는 겁이 났는지 도망쳤어요. 사고 지점에서 3km 떨어진 곳에서 해당 트럭을 발견했고, 확인 결과 폐차 직전의 노후 차량이었어요.”“폐차요...?”그녀는 의아한 듯 되물었다.경찰이 설명을 덧붙였다.“시골에서는 차 상태가 어떻든 굴러가기만 하면 그냥 모는 경우가 많아요. 사람을 쳤으니 배상하는 것보다 차를 버리고 튀는 게 낫다고 판단했겠죠. 너무 걱정 마세요. 저희가 계속 조사 중이니까.”강하율은 이게 절대 단순한 우연일 리 없다고 확신했다.이때, 배윤호가 끼어들었다.“CCTV에 찍힌 건 없어요?”“보통 그런 노후 차량 모는 사람들은 감시카메라 사각지대를 기가 막히게 피해서 다녀요. 이 트럭도 마찬가지고.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CCTV에 코빼기도 안 비쳤어요.”“그럼 운전자의 행방도 전혀 모른다는 건

  • 기억을 잃은 척할 때는 언제고   제358화

    정다인의 얼굴을 보자니 혐오감이 치밀었지만, 배윤제는 어쩔 수 없이 놓아주기로 했다.“정말로 날 속일 수 있을 거로 생각해?”“그게 무슨 말이죠?”정다인이 목을 감싸 쥐며 물었다.“네 뱃속에 있는 애, 아빠가 도대체 누구야?”“당연히 윤제 씨...”하지만 말을 끝내기도 전에 정다인은 살기등등한 배윤제의 눈빛을 마주쳤다.“저...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제발 살려주세요.”배윤제는 그제야 손을 놓았다.정다인은 연신 기침을 내뱉으며 겁에 질린 채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이미 들통 난 이상 아예 막 나가기로 결심했다.“맞아요. 윤제 씨 아이 아니에요. 근데 지금 세상 사람들이 다 윤제 씨가 아빠인 줄 알잖아요. 내가 바람피웠다고, 딴 남자 애 가졌다고 광고라도 할 거예요? 윤제 씨 자존심에 그 망신을 견딜 수 있겠어요?”“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제대로 협력이나 하죠? 어차피 당신도 마음속에 품은 그 여자 지키려는 심산이잖아요. 나랑 결혼해요. 그러다 나중에 적당한 구실 만들어서 조용히 갈라서요. 지난 몇 년 동안 당신 수발든 값이라고 치죠. 우리 둘 다 남들 입에 오르내리는 건 질색이잖아요? 윤제 씨는 대외적인 평판도 챙기고, 덤으로 배 대표님까지 상대할 수 있을 텐데.”정다인은 당당하게 말을 내뱉으면서도 속으로는 피가 마르는 기분이었다.배윤제가 얼마나 집요하고 비정상적인 사람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만약 그가 마음속에 품은 여자를 위해 배윤호를 끌어내릴 기회마저 포기하겠다고 나온다면 더 이상 승산이 없었다.하지만 그녀는 배윤제의 지독한 이기심을 과소평가했다.배윤제는 깊게 한숨을 내쉬며 손을 닦았다.“방금 네가 한 말, 토씨 하나라도 어기면 가만 안 둬.”그 말을 듣자 정다인은 자조 섞인 웃음을 터뜨렸다.“좋아요, 그렇게 하죠.”...강하율이 떠나려던 참에 마침 조윤서와 마주쳤다.다만 그녀는 화장실 쪽이 아니라 명혜숙의 방에서 걸어오는 중이었다.“이모가 왜 거기서...?”“아, 어머님이 갑자기 부르셔서 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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