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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4화

Author: 이소문
정다인은 계단 입구를 벗어난 후 배윤제를 똑바로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윤제 씨가 차마 자신을 외면하지 못하고, 돌아가서 자신을 구해줬다는 걸 강하율 씨가 알게 된다면, 그동안의 정 때문에라도 강하율 씨는 마음이 흔들릴 거예요.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면... 시간이 흐르면서 결국에는 마음도 약해지겠죠.”

배윤제는 벽에 기댄 채로 정다인을 유심히 바라봤다.

그동안 그가 정다인에게 깜빡 속았던 것도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정다인의 연기는 그만큼 수준급이었으니 말이다.

배윤제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 한 번만 더 믿어줄게. 만약 이번에도 또 나를 속인다면 너뿐만이 아니라 너희 집안까지 가만두지 않을 줄 알아.”

“윤제 씨, 이런 상황에서 제가 어떻게 감히 또 윤제 씨를 속이겠어요?”

“방으로 돌아가.”

말을 마친 배윤제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떠날 준비를 했다.

정다인은 방으로 돌아간 뒤 침대 끝에 털썩 주저앉았다.

“미친놈. 진짜 미친놈이야.”

아래층으로 내려간 배윤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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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억을 잃은 척할 때는 언제고   제365화

    강하율은 확신이 서지 않았다.배윤호가 말했다.“정말 뭔가를 숨기려 했다면 절대 쉽게 찾을 수 없는 곳에 숨겨뒀을 거야. 너희 집에 왔던 사람들은 돈이 될 만한 것들을 가지러 온 거니까 굳이 다른 걸 찾으려고 하지는 않았을 거야.”배윤호의 말에 강하율은 문득 무언가를 떠올렸다.그녀는 눈을 감고 말했다.“예전에 부모님이랑 숨바꼭질을 한 적이 있어요. 그때 분명 뭔가를 봤는데... 한 번 아팠던 이후로는 기억이 흐릿해져서 그곳에 어떻게 들어갔었는지 기억이 안 나요. 지금 기억나는 건 제가 아래층에서 한 바퀴 달렸고 부모님은 저를 찾는 척했다는 거예요. 저는 그 기회를 틈타 부모님의 뒤로 돌아가 몰래 위층으로 올라갔었고...”강하율은 기억을 더듬으며 위로 올라가다가 중간에 멈춰 섰다.“아니, 여기서 멈춰 섰던 것 같아요. 그런데 왜 멈췄었는지 기억이 안 나요.”“강하율, 진정하고 주위를 둘러봐. 예전에 집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복기한 뒤에 다시 한번 살펴봐.”배윤호가 차분한 목소리로 강하율을 달랬다.강하율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집의 옛 모습이 새록새록 떠올랐지만 특별히 이상한 점은 없었다.“여기가 아니에요. 저는 분명 뭔가를 발견했을 거예요.”“그러면 이 위치에서 또 어디가 보이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봐.”배윤호가 말했다.강하율은 그의 말대로 다시 시선을 옮기다가 별안간 멈췄다.옆에는 큰 유리창이 있었고 마침 유리창 너머로 정원의 연못이 보였으며 연못 주위에는 석가산이 있었다. ‘석가산... 석가산이라...’강하율은 속으로 되뇌며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았어요. 저 석가산을 보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던 것 같아요...”강하율은 정원으로 천천히 향했고 아까 보았던 연못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다.연못에는 물이 없어 생기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아름답지도 않아서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배윤호는 연못을 한 바퀴 돌았다.“이 석가산이 10년 넘게 변함이 없다는 건

  • 기억을 잃은 척할 때는 언제고   제364화

    정다인은 계단 입구를 벗어난 후 배윤제를 똑바로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윤제 씨가 차마 자신을 외면하지 못하고, 돌아가서 자신을 구해줬다는 걸 강하율 씨가 알게 된다면, 그동안의 정 때문에라도 강하율 씨는 마음이 흔들릴 거예요.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면... 시간이 흐르면서 결국에는 마음도 약해지겠죠.”배윤제는 벽에 기댄 채로 정다인을 유심히 바라봤다.그동안 그가 정다인에게 깜빡 속았던 것도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정다인의 연기는 그만큼 수준급이었으니 말이다.배윤제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좋아. 한 번만 더 믿어줄게. 만약 이번에도 또 나를 속인다면 너뿐만이 아니라 너희 집안까지 가만두지 않을 줄 알아.”“윤제 씨, 이런 상황에서 제가 어떻게 감히 또 윤제 씨를 속이겠어요?”“방으로 돌아가.”말을 마친 배윤제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떠날 준비를 했다.정다인은 방으로 돌아간 뒤 침대 끝에 털썩 주저앉았다.“미친놈. 진짜 미친놈이야.”아래층으로 내려간 배윤제는 이제 막 안으로 들어오던 장천우와 마주쳤다.“무슨 일이야?”장천우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양지원 씨가 차에 치여서 혼수상태입니다.”“양지원 씨? 또 호텔과 관련된 일인 건가?”배윤제가 낮게 말했다.“그때 그 사건과 관련이 있는 거야?”“현재로선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설탐정이 알아낸 정보에 의하면 강 대표님께서 제정신이었을 때 강하율 씨에게 뭔가를 남겼다고 하셨대요. 그 뒤 양지원 씨는 강하율 씨와 통화한 직후 교통사고를 당하셨고요.”장천우가 사실대로 보고했다.배윤제는 창가로 가서 담배를 꺼냈다.강씨 가문이 억울하게 그런 일을 겪었었던 거라면 강하율이 신분을 되찾을 가능성이 커진다.그렇게 되면 강하율의 성격에 절대 배윤제를 만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배윤제는 몸을 돌려 장천우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양지원 씨를 철저히 감시해. 그리고 양지원 씨에 관한 것들을 전부 다시 조사하도록 해.”“네.”배윤제는 창밖을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강씨

  • 기억을 잃은 척할 때는 언제고   제363화

    “네, 알겠습니다. 감사해요.”강하율은 그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휴대폰을 내려놓으려는데 또다시 전화가 걸려 왔고, 낯선 번호인 걸 본 강하율은 본능적으로 전화를 받았다.“강하율, 너 어디야? 윤제가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바에서 잠을 잤어. 계속 네 이름만 부르고 있는데 제발 부탁이니까 여기로 한 번만 와줘.”“배윤제는 곧 결혼할 사람이야. 그런데 나를 부른다고? 나는 배윤제 뒤치다꺼리할 생각은 없으니까 두 번 다시 이런 일로 나한테 연락하지 마.”강하율이 쌀쌀맞게 대꾸했다.“강하율, 너 진짜 배윤제를 신경 안 쓰는 거야?”“응. 끊는다.”강하율은 전화를 끊었다.그녀는 배윤제가 자신의 말을 들었는지, 듣지 못했는지 알 수 없었으나 그가 들었든 못 들었든 상관없었다.세수를 하고 양치를 한 뒤 강하율과 배윤호는 약속대로 집 밖에서 만나서 함께 강씨 가문 별장으로 향했다....바 안.배윤제는 술을 마시면서 강하율이 한 말을 곱씹다가 코웃음을 쳤다.그는 강하율과 이렇게 허무하게 끝났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강하율은 분명 나를 좋아하는데. 이건 전부 정다인 탓이야.’배윤제는 술잔을 내팽개치더니 바를 떠나 차를 타고 별장으로 돌아갔다.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정다인은 방에서 나가기도 전에 배윤제에게 밀쳐져 침대 위에 쓰러졌다.“꺅! 윤제 씨, 지금 뭐 하는 거예요?”“정다인, 다 너 때문이야! 하율이는 이제 나랑 말조차 안 섞으려고 해.”“하하.”정다인은 차갑게 웃었다.“윤제 씨가 하율 씨 신분이 별로라고 싫어했으면서 왜 이제 와서 제 탓을 하는 거죠?”정다인은 그렇게 말하면서 배를 쓰다듬었다.정다인이 대외적으로 임신했다고 발표하여 배윤제는 차마 그녀에게 손을 댈 수가 없을 것이다.그런데 배윤제는 정다인을 힐끗 보더니 그녀를 끌고 계단 쪽으로 걸어갔다.“우리 집 바닥은 주기적으로 왁스 칠해서 관리해. 네가 여기서 실수로 미끄러져서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유산하게 된다면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 기억을 잃은 척할 때는 언제고   제362화

    강하율은 차 안에서 다시 녹음 파일을 재생했고, 눈치 빠른 양승아는 한적한 길가에 차를 세운 뒤 시동을 껐다.비싼 차라서 그런지 방음 기능이 뛰어나 순식간에 차 안에서 미약한 숨소리만 들렸다.귀 기울여 들으니 녹음 파일에서 무엇인가를 닫는 듯한 아주 작은 딸깍 소리가 들렸다.그러나 경선희의 숨소리와 분노 어린 목소리 때문에 무슨 소리인지 정확히 판단하기 어려웠다.배윤호가 말했다.“내가 전문가에게 분석을 맡길게. 잡음을 제거하면 더 잘 들릴 거야.”강하율은 고개를 끄덕였다.“고마워요.”어느새 아파트에 도착했지만 강하율은 여전히 넋이 나간 상태였다. 김혜은의 죽음과 양지원의 사건 때문에 그녀는 자꾸만 두려움이 생겼다.비록 강하율은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배윤호는 그 점을 완벽히 꿰뚫어 보았다.배윤호는 강하율의 집 현관문을 막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같이 술 한잔할래?”“괜찮아요.”강하율이 입술을 짓씹었다.“새로 가져온 거야. 한 병에 4천만 원짜리인데.”“4천만 원이요? 그렇게 비싸요? 그러면 맛 좀 볼게요.”강하율은 곧바로 몸을 돌려 배윤호의 집으로 들어갔고, 배윤호는 입꼬리를 올리며 강하율을 뒤따라 안으로 들어갔다.30분 뒤, 강하율은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소파에 기대앉았다. 그녀가 취기를 느끼고 있을 때 갑자기 배윤호가 담요를 덮어줬다.눈을 뜨고 가까이 다가오는 배윤호를 본 강하율은 손을 뻗어 그를 잡아당기더니 그에게 완전히 몸을 기댔다.“향이 엄청 좋네요. 우리 어디서 본 적 있지 않아요?”“글쎄.”“언제였더라...”강하율은 열심히 떠올려보았지만 머릿속이 엉망진창이라 얼마 지나지 않아 배윤호에게 몸을 기댄 채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배윤호는 팔을 뻗어 강하율을 안은 뒤 그녀에게 담요를 덮어주며 고개를 숙여 강하율을 바라보았다.“하율아, 다 괜찮을 거야.”강하율은 그 말을 들은 건지 편안한 마음으로 깊이 잠들었다....다음 날 아침, 강하율은 낯선 주변 환경에 의아해하다가 의자에 걸쳐 있는 옷을 보

  • 기억을 잃은 척할 때는 언제고   제361화

    그것은 최근에 녹음한 오디오 파일인 듯했는데 그 내용은 일기와 다름없었다.가만히 듣고 있다 보니 파일에 담겨있는 건 양지원의 개인적인 심정이었다.그러다 기소정과 김혜은이 호텔에 찾아온 그날, 수상한 점이 드러났다.“김혜은 씨가 오늘 호텔에 왔다. 김혜은 씨를 다시 보는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라 주체가 안 될 뻔했다. 선희 언니가 예전에 얼마나 잘해줬었는데... 사람들이 시골 출신 졸부라고 무시할 때 선희 언니는 김혜은 씨에게 예절 교사도 붙여주고, 다른 사람들이랑 어울릴 수 있게 김혜은 씨를 데리고 다니기도 했었다. 대표님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선희 언니가 가장 먼저 찾아간 게 바로 김혜은 씨였는데 김혜은 씨는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두 사람을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돈까지 챙겨서 도망쳤다.”돈을 챙겨서 도망쳤다는 말에 강하율은 의아해졌다.“무슨 돈을 말하는 걸까요?”배윤호가 미간을 찌푸렸다.“양지원 씨는 과거의 일들을 많이 알고 있는 것 같네.”그 이후로 양지원은 더 깊은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강하율은 자그마한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녹음 파일이 곧 끝날까 봐 불안해했다. 그런데 거의 끝나갈 무렵, 갑자기 쾅 소리가 들려왔다.“왜 나한테 이러는 거야? 대체 뭐 때문이야?”그건 강하율 어머니의 목소리였다.그러나 대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내가 잘 못 해줬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래서 그래? 왜 나를 함정에 빠뜨린 거야? 이렇게 한다고 해서 내가 굴복할 것 같아? 이 함정이 완벽할 거라고 착각하지 마. 네 존재 자체가 허점이니까. 언젠가 사람들은 진실을 알게 될 거야.”탁.그 말이 끝이었다.강하율은 복잡한 심경으로 녹음기를 손에 꽉 쥐었다.“저희 엄마는 분명 증거를 찾았을 거예요. 그래서 살해당한 거겠죠. 그리고 저는 그 이후로 다른 사람 말에 속아서 그 비서의 가족들을 조사했어요. 사실 그들에게서는 아무런 정보도 얻을 수 없는데 말이에요.”강하율은 그동안 시간을 허비했다는 사실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 기억을 잃은 척할 때는 언제고   제360화

    배윤호는 그런 강하율을 기특하다는 듯 바라보았다.“이제야 좀 말이 통하네.”“오늘 아침에 양 총괄님이랑 통화했는데, 그러고 나서 오후에 바로 사고가 났어요. 설마... 이것도 나 때문에 일어난 걸까요?”강하율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습니다. 걷잡을 수 없는 자책감이 그녀를 덮쳤다.“자책할 시간 있으면 차라리 움직여. 그게 훨씬 생산적이니까.”“저 양 총괄님 집 주소 알아요. 어쩌면... 거기에 뭔가 있을지도 몰라요.”말을 마친 강하율은 배윤호를 데리고 양지원의 집으로 향했다.하지만 건물 아래에 도착하자마자 또 다른 경찰 무리가 보였다.그녀가 걸음을 재촉하며 다가갔다.“무슨 일이죠?”곁에 있던 아주머니 한 분이 대답했다.“도둑이 들었대요. 이따가 관리사무소 가서 따져야지 원. 관리비를 그렇게나 많이 내는데 도둑놈이 쉽게 드나들어서 되겠냐고요.”강하율은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혹시 1201호인가요?”“어머, 아가씨가 그걸 어떻게 알았대?”아주머니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그녀를 쳐다보았다.강하율은 사람들을 헤치고 배윤호와 함께 서둘러 위층으로 올라갔다.경찰이 양지원에게 연락을 시도하는 듯 보이자, 강하율이 성큼성큼 다가갔다.“실례합니다. 양지원 씨가 지금 입원 중이라 제가 대신 물건을 좀 챙기러 왔어요.”말을 마치고는 신분증을 건네주었다.경찰은 신원을 확인한 뒤 병원 측에 양지원의 상태에 관해 물었고, 현재 의식 불명이라는 사실을 파악하고 나서야 강하율에게 상황을 설명했다.“여기 와보신 적 있어요? 저희도 지금은 뭐가 없어졌는지 확실히 알 수가 없어서요.”“네. 귀중품은 대부분 금고 안에 있을 거예요.”강하율이 구석의 장식장을 가리켰다.경찰이 다가가 겉에 걸려 있던 그림을 치우자 금고는 이미 통째로 사라진 상태였다.“없어진 물건이 뭔지 알 것 같군요. 실례지만 금고 안에 뭐가 들었는지 말씀해 주시겠어요?”강하율은 뜯겨 나간 벽면을 멍하니 바라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보통 도둑이라면 조용히 움직이기 마련인데, 소음이 날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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