登入그런데 기숙사 건물 아래에 도착하자마자 안혜슬의 엄마가 안혜슬의 팔을 잡고 그녀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강하율은 곧바로 차에서 내려 그들에게로 달려갔다.“이모, 여기 사람도 많은데 자꾸 이러시면 경비원한테 쫓겨날 수도 있어요.”“그게 무슨 말이니? 나는 얘 엄마야. 내가 내 딸 좀 보겠다는데 그것도 안 돼?”김지현이 불쾌한 기색을 내비쳤다.안혜슬이 말했다.“엄마, 저 진짜 돈 없어요. 1억짜리 차는 죽었다 깨나도 못 사요.”그 말을 듣고 강하율은 넋이 나갔다.‘1억이라니, 미친 거 아니야? 전에는 집을 사라고 하더니 이제는 1억짜리 차를 사달라고 해?’당시 집을 사면서 대출을 받았는데 매달 안혜슬이 절반을 갚고 있고, 나머지 절반은 안혜슬의 부모가 갚고 있었다.안혜슬의 오빠는 마트에 상품을 실어 나르며 매달 150만 원 정도 벌었고 번 돈은 전부 본인이 썼다.반대로 안혜슬은 남의 빚을 갚으려고 악착같이 돈을 아껴 썼다.강하율은 김지현을 바라보며 말했다.“이모, 혜슬이는 매달 월급의 대부분을 부모님께 드렸어요. 그런데 무슨 돈으로 차를 사겠어요?”김지현이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혜슬이 오빠가 그러더라. 요즘 대출이 잘 나온다고. 게다가 혜슬이는 여자라서 돈을 빌리기도 쉬울 거라고 했어.”그 말에 강하율과 안혜슬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안혜슬의 오빠는 인간 말종이었다.안혜슬이 반박했다.“돈을 쉽게 빌릴 수 있을 거라고요? 그게 어떤 건지 알고는 계세요? 이자율도 엄청 높고 돈을 갚지 못한다면 제 인생은 박살 날 거라고요!”“혜슬아, 뭘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해? 천천히 갚으면 되지. 너라면 분명히 방법이 있을 거야.”김지현이 말했다.“아니요. 저도 방법이 없어요. 돈도 없고요.”안혜슬이 단호하게 말했다.김지현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강하율이 차분하게 설명했다.“이모, 그건 사채예요. 불법이라고요. 게다가 큰돈을 빌리려면 옷을 다 벗고 나체로 사진을 찍어서 보내야 해요. 이모는 혜슬이 엄마
배윤제는 넋이 나간 채 그곳을 떠났다. 그리고 차를 타고 돌아가던 길에 하마터면 사고가 날 뻔했다.결국 차는 화단에 걸린 채 멈춰 섰는데 다행히 행인이 없어서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배윤제는 기운 없는 모습으로 핸들에 몸을 기댄 채 엎드렸다.그때 누군가 창문을 두드렸다.배윤제가 고개를 들어 슬쩍 보니 뜻밖에도 조윤서였다. 지금 그가 가장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바로 조윤서였다.그런데 조윤서가 다짜고짜 차 문을 열고 그를 차에서 끌어 내렸다.“술을 마시고 운전까지 해? 미친 거야?”“신경 꺼요!”배윤제는 차 문을 짚으면서 뒤로 물러났다.“어머니만 아니었다면... 제가 이 꼴이 됐을 리가 없어요!”조윤서는 입술을 깨물며 그를 바라보다가 배윤제의 앞을 막아섰다.“내 탓이 아니라 전부 강하율과 배윤호 탓이야! 둘이 손을 잡지만 않았어도 우리가 이렇게 됐을 리가 없다고! 처음부터 배씨 가문의 것은 전부 내 거여야 했어!”“그만하세요! 제가 정말 아무것도 모를 것 같아요? 배윤호는 예전부터 친자 확인 결과 보고서를 갖고 있었어요. 배윤호가 그동안 아무 얘기도 안 한 이유는 아버지가 그러라고 시켰기 때문이에요. 아버지는 사실 저를 신경 썼다고요! 저는 원래 배씨 가문의 둘째 도련님이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사생아인 데다가 일개 운전기사의 자식이 되어버렸죠!”“윤제야, 너희 아버지가 먼저 나를 배신했어.”“그래도 참아야죠! 아버지랑 결혼하겠다고 고집을 부린 건 어머니잖아요. 그리고 강씨 가문을 그 지경으로 만든 것도 아버지랑 결혼하기 위해서였잖아요. 왜 그걸 견디지 못해서 저까지 이런 결과를 떠안아야 하냐고요!”배윤제가 큰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조윤서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배윤제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이제 만족해요? 그 남자는 감옥에 가게 생겼고 저는 곧 범죄자의 아들이 되겠죠. 우리는 모든 걸 다 잃었어요.”말을 마친 뒤 배윤제는 다시 차에 타려 했다.그때 조윤서가 말했다.“우리가 모든 걸 다 잃었다고 누가 그래? 우리는 아
“하지만...”“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아. 형도 충분히 고민하고 혜슬 씨한테 다가간 거야. 나는 오히려 혜슬 씨가 더 걱정돼. 혜슬 씨는 그런 쪽으로는 아예 생각조차 안 하고 있는 것 같거든.”배윤호의 대꾸에 강하율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맞아요. 혜슬이는 나해준 씨랑 하루 종일 같이 있었으면서도 자기가 그냥 가사 도우미인 줄 안다니까요.”배윤호가 말을 이었다.“그 일은 형한테 얘기해 둘게.”강하율이 또 물었다.“그런데 민성운 씨랑은 어떻게 알게 된 거예요? 세 분은 성격이 진짜 안 맞을 것 같던데요.”“처지가 비슷해서 그런 걸지도 모르지. 우리 모두 신분이 애매하거든.”배윤호는 덤덤히 말했다.“민성운은 사생아야. 그 집안에서는 가장 더러운 일을 전부 민성운한테 떠넘겼어. 민성운이 그냥 그렇게 살다가 죽어버리길 바란 거지. 하지만 민성운은 악착같이 버텨서 새로운 길을 만들었어. 그리고 형은 우리랑은 달라. 그 집안의 독자라서 집안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지. 그런데 부모님 두 분 다 통제 욕구가 엄청 강해. 그래서 형은 그동안 꼭두각시처럼 살았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사랑받으며 행복하게 산 것 같겠지만 사실은 진짜로 형을 아껴주는 사람은 없었어. 그래서 모든 게 따분하게 느껴졌겠지.”강하율은 그 말을 듣고 적잖이 놀랐다. 그녀는 나해준과 민성운에게 그런 사정이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차가 농장 앞에 멈춰 섰다.강하율은 배윤호의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가 사람들에게 인사한 뒤, 자연스럽게 바구니를 하나 들고 채소를 따기 시작했다.마침 그곳에 있던 사장이 강하율을 보자 손을 흔들었다.“하율아, 왔어? 이 사람이 네가 그렇게 입에 달고 살던 남자 친구야?”강하율은 고개를 숙인 채 채소를 따며 조금 쑥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네...”사장은 배윤호를 위아래로 훑어봤다.배윤호가 이상함을 느끼고 물었다.“왜 그러세요?”강하율이 설명하려는 찰나, 사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어머, 몰랐어요?
강하율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안에서 나왔다.배윤호가 팔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았다.“왜 그래?”강하율은 그를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이렇게 찾아와도 괜찮은 거예요?”“안 괜찮을 게 뭐가 있어. 드디어 내가 꿈꾸던 걸 이뤘는데 당연히 사람들한테 알려야지.”배윤호는 주변의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그의 표정을 보니 아주 당연하다는 듯한 모습이었다.강하율은 한편으로는 감동을 받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게 당연한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그녀는 배윤호를 향해 미소 지은 뒤 동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그럼 저희는 먼저 가볼게요.”그제야 동료들은 정신을 차렸다.“네, 네. 들어가세요. 그러면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맞아요. 즐거운 데이트 되세요.”강하율은 웃음을 거두고 배윤호의 팔에 팔짱을 끼고 사무실을 나섰다.떠나기 전, 그녀는 누군가 자신을 바라보는 느낌이 들었으나 잠깐 생각해 보더니 대수롭지 않게 걸음을 옮겼다.“오빠, 이건 좀 과한 거 아니에요? 집에서 뭐라고 하면 어쩌려고요.”“나한테 뭐라 할 사람이 있겠어? 나는 이날을 위해 여기까지 온 건데 말이야.”배윤호는 위험해 보일 만큼 날카로운 얼굴로 달콤한 말을 내뱉었다.강하율은 그제야 배윤호의 미래에 자신이 늘 존재했다는 걸 깨달았다.사실 이것이 바로 그녀가 원하던 삶이었다.배윤호가 조윤서를 상대로 이길 수 있든 없든, 배윤호가 자신을 원한다면 그녀는 끝까지 그와 함께할 생각이었다.그러나 배윤제는 달랐다. 그는 애초에 강하율을 완전히 배제하거나 숨기려고 했고, 그녀를 자신의 소유물로 만들려고 했다.강하율을 인간으로서 존중하지 않은 것이다.호텔에서 나온 뒤 강하율은 배윤호와 바로 떠나지는 않았다.“잠깐만요. 저 어디 좀 들르고 싶어요.”“어디?”“근처 농장이요. 거기 채소가 싸고 신선하거든요. 거기서 장을 좀 보려고요.”강하율은 그곳을 무척 좋아했다.배윤호는 고개를 끄덕인 후 그녀와 함께 농장으로 향했다.가는 길에 강하율이 일부러 얘기를 꺼냈다.“그..
“그 사람은 내 아버지가 아니야.”배윤제가 강조했다.“그래요. 어쨌든 저랑은 상관없어요. 저는 제 삶이나 잘 살고 싶을 뿐이에요.”강하율이 말했다.“네 삶? 아니면 배윤호와의 삶?”배윤제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이미 오래전에 나한테 질렸구나. 그래서 나랑 다시 만나려고 하지 않았던 거네.”강하율은 한숨을 쉬었다.“제가 배윤제 씨랑 다시 만나려고 하지 않은 이유는 배윤제 씨가 항상 이런 식으로 말하기 때문이에요. 어렸을 때는 그래도 우리 꽤 잘 지냈잖아요. 그거면 충분해요.”어린 시절 이야기가 나오자 배윤제의 표정이 달라졌다.“하율아, 나를 구해준 건 너였어. 나는 그동안 정다인한테 속았던 거야. 그래서 내가...”“배윤제 씨, 정다인 씨가 당신을 속인 건 맞아요. 하지만 저한테 가장 큰 상처를 준 사람은 바로 배윤제 씨예요. 배윤제 씨는 자신을 구해준 사람이 제가 아니라는 이유로 바람을 피웠고, 저를 상처 입혔죠. 그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 사이가 틀어진 건 사실상 그것 때문이라고요.”강하율은 예전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는 뜻으로 고개를 저었다.배윤제는 멍하니 있다가 이내 천천히 말했다.“미안해.”“그래요. 마음은 알겠어요. 저는 제가 구한 사람이 배윤제 씨인 것도 몰랐어요. 상대가 누구였든 저는 똑같이 구했을 거예요.”말을 마친 강하율은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려 했다.배윤제가 그녀를 붙잡았다.“잠깐만. 나랑 조금만 더 얘기해. 오늘 얘기 끝나면 바로 떠날게.”강하율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배윤제가 씁쓸하게 웃었다.“하율아, 미안해.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지? 나는 우리가 절대 헤어지지 않을 거라고 믿었어. 그래서 너보다 항상 내가 더 우선이었던 것 같아. 나는 진짜 이런 일들이 생길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 하율아, 미안해. 나는 우리 어머니가 그런 짓까지 했을 줄은 몰랐어. 부디 나한테 속죄할 기회를 줬으면 해. 나는 네가 겨울 몇 달 만에 배윤호를 사랑하게 돼서 우리 사이의 모든 걸 지울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
오늘 강하율은 평소보다 일찍 호텔에 도착했다. 내일이면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그녀는 의욕이 넘쳤다.강하율은 안혜슬과 구내식당에서 만나 간단히 아침을 먹었다.그런데 안혜슬이 왠지 모르게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린 것 같았다.“왜 그래? 아침부터 기운이 없네.”“내가 제일 무서워하던 일이 터졌거든. 오빠가 결혼하겠대. 그래서 엄마가 나한테 오빠 차를 사주라고 하더라. 대출이라도 받아서 말이야.”안혜슬이 기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미친 거 아니야? 너는 평소에도 악착같이 돈을 모아서 얼마 안 되는 월급까지 전부 가족들한테 바쳤어. 그런데 너한테 대출까지 받으라고 했다고? 대출을 받으면 무슨 수로 돈을 갚으라는 거야?”“그러니까 말이야. 그래서 거절했어. 나 잘했지?”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안혜슬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혜슬아, 무슨 문제 생기면 꼭 나한테 말해.”“응. 참, 동료들 얘기를 들어보니까 배윤제가 아직 여기 묵고 있대. 그런데 결제 권한은 다 막았다고 하더라.”즉 외상은 불가능하고 배윤제가 직접 돈을 내야 한다는 의미였다.강하율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그래? 나는 신경 안 써.”아침을 먹은 뒤 두 사람은 헤어졌다. 그런데 강하율은 사무실 앞에서 배윤제를 마주쳤다.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랐기 때문에 여전히 배윤제를 공손히 대하고 있었다.배윤제가 그녀를 보며 말했다.“커피 한잔하자.”강하율은 거절했다.“지금은 근무 시간이라서요.”“그러면 너 쉴 때, 그래도 안 되면 퇴근 후에 같이 마시자. 언젠가는 나랑 커피 한잔하겠지.”배윤제의 의도는 분명했고 강하율은 어쩔 수 없이 말했다.“일단 나가 있으세요. 업무 처리하고 갈게요.”양지원이 치료 중이라서 강하율이 처리해야 일들이 산더미였다.배윤제는 정중히 말했다.“알지? 내가 계속 기다릴 거라는 거.”강하율은 고개를 끄덕였다.사무실로 돌아온 뒤 강하율은 배윤호에게 문자를 보냈다.[배윤제가 커피를 마시자고 했어요.][내가 질투할까 봐 알려주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