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그 말을 들은 윤태호의 안색이 살짝 굳었다.그가 이번에 무영산을 찾은 목적은 장경각에 들어가 무공 비급을 읽어 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젠장, 제대로 당했다.윤태호는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이 늙은 도사는 겉으로는 인자하고 선량해 보였지만, 속에는 검은 꿍꿍이가 가득했다.‘그야말로 음흉한 늙은이야.’윤태호는 울화가 치밀었다.“선배님, 저를 너무 높게 보셨습니다. 몇십 년 동안이나 찾지 못한 비급을 제가 무슨 수로 찾겠어요? 게다가 이미 60년도 넘게 지났어요. 당시 비급을 훔친 자들은 진작 세상을 떠났을지도 모르죠. 제가 아무리 돕고 싶어도 능력이 닿지 않습니다.”충허도인이 말했다.“사실 비급을 도난당한 뒤로 무영산은 줄곧 은밀히 조사해 왔네.”“한 갑자 동안 단 한 번도 포기하지 않았지.”“잃어버린 것이 비급 한두 권이 아니라 장경각의 비급 전부였으니 말일세.”“윤 문주는 모르겠지만, 내 사부님은 우화등선하시기 전 열사흘 동안 쌀 한 톨도, 물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은 채 좀처럼 눈을 감지 못하셨네. 자신이 장교로 있던 때 장경각이 도난당했으니, 무영산의 역대 조사들을 뵐 면목이 없다고 여기셨기 때문이지.”“내가 평생을 바쳐 비급을 되찾겠다고 맹세하고 나서야 사부님은 비로소 눈을 감으셨네. 그동안 내가 온갖 노력을 기울인 끝에 마침내 실마리를 조금 찾아냈지.”오?윤태호의 눈에서 정광이 번뜩였다. 그가 다급히 물었다.“선배님은 무엇을 알아내셨어요?”충허도인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나는 당시 비급을 훔친 복면인들이 자금성에서 온 고수들이라고 의심하고 있네.”윤태호가 물었다.“무슨 근거로 그렇게 판단하신 겁니까?”충허도인이 대답했다.“오랜 세월 추적했지만, 강호에서 외부인이 무영의 무공을 사용하는 모습은 한 번도 보지 못했네. 즉, 당시 그 사람들은 비급을 훔친 뒤 세상에 흩뿌리지 않았다는 뜻이지. 아마 다른 장소에 깊이 감춰 두었을 가능성이 크네.”“게다가 그 사람들의 무시무시한 실력
절을 모두 마쳤다.충허도인이 말했다.“윤 문주, 장경각 안에서 무공 비급을 단 한 권도 보지 못한 이유가 궁금한 게 아닌가?”윤태호가 고개를 끄덕였다.“네.”충허도인이 설명했다.“장경각이 오래전에 도난당해 안에 있던 무공 비급이 모조리 사라졌기 때문이네.”‘뭐라고? 세상에.’윤태호는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예로부터 무영산에서는 수많은 고수가 배출됐다. 대체 누가 장경각에서 비급을 훔쳐 갈 수 있단 말인가?절세고수가 남몰래 장경각에 잠입해 비급 한두 권을 훔쳤다면 모를까, 그 많은 비급을 한꺼번에 모조리 옮겨 갔다니. 그게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장경각 몇 층을 가득 채운 무공 비급이었다.아무리 적게 잡아도 수만 권은 됐을 터였다.트럭으로 실어 나르지 않고서야 어떻게 전부 가져갈 수 있겠는가?게다가 트럭까지 동원했다면, 무영산의 수많은 고수가 그걸 알아차리지 못했을 리도 없었다.알아차리고도 막지 않았단 말인가?그러니 윤태호는 믿을 수 없었다.“윤 문주는 내의 말을 믿지 못하겠는가?”충허도인이 쓴웃음을 지었다.“내 말에는 한 치의 거짓도 없네. 윤 시주를 속일 생각은 추호도 없었어.”“그 때문에 지난 한 60년 동안 무영산이 장경각을 단 한 번도 개방하지 않았던 것이네.”“예전에 최고 권력자인 당규언 어르신께서 무영산을 시찰하러 와 장경각을 구경하고 싶다고 하셨지만 내가 거절했지.”“이 안에는 비급이 단 한 권도 없었으니까. 전부 도난당했네.”윤태호가 물었다.“선배님, 대체 어떤 사람들이기에 몇 층을 가득 채운 비급을 모조리 훔쳐 갈 수 있었어요?”충허도인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이야기하자면 길다네.”“61년 전이야. 8월 보름이었지. 그때 나는 아직 어린 동자에 불과했네. 그날 밤은 먹구름이 뒤덮이고 천둥과 번개가 몰아치며 장대비가 쏟아졌어.”“한밤중에 용변을 보러 일어났다가 장경각 쪽에서 싸우는 소리를 들었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보려고 몰래 다가갔네.”“가까이 가서야 복면인 무리가
전각은 매우 웅장했다.모두 5층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들보와 기둥에는 정교한 조각과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오랜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채 장엄한 분위기를 풍겼다.윤태호가 고개를 들어보니 전각 대문 위에는 동으로 만든 현판 하나가 걸려 있었다.그 위에 세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장경각.]“윤 문주, 여인은 장경각에 들어갈 수 없네.”충허도인이 말했다.“상령과 상진에게 이 아가씨를 모시고 산을 둘러보게 하면 어떻겠나?”윤태호가 소이안을 바라보았다.소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충허도인이 상령진인에게 눈짓했다.상령진인과 상진진인은 소이안을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윤태호는 주변을 훑어보았지만 경비나 숨어 있는 감시자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의아해진 그가 물었다.“선배님, 장경각은 무영산의 중대한 기밀 장소인데 왜 지키는 사람이 없어요?”충허도인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그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말했다.“윤 문주, 따라오게.”두 사람은 장경각의 문 앞으로 갔다.문에는 아주 크고 오래된 동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충허도인은 무복 소매 안에서 긴 열쇠를 꺼내 자물쇠를 열고 문을 밀었다.순간 오랫동안 갇혀 있던 곰팡이와 먼지 냄새가 한꺼번에 밀려 나왔다.“미안하네. 장경각이 오랫동안 열리지 않아 먼지가 좀 많군.”충허도인이 안으로 들어가라는 손짓을 했다.“윤 문주, 들어오게.”그는 먼저 장경각 안으로 들어갔다.곧 수많은 무공 비급을 보게 된다는 생각에 윤태호는 가슴이 벅찼다.그는 빠른 걸음으로 뒤따라 들어갔다.그러나 문을 넘은 순간 윤태호는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넓은 방 안에는 수없이 많은 책장이 빽빽하게 놓여 있었지만 모든 책장이 텅 비어 있었다.책 한 권조차 없었다.‘무공 비급은 어디에 있지?’윤태호는 의아해 위층을 바라보았다.‘비급은 위에 있는 건가?’그런 생각을 하던 순간 충허도인이 말했다.“윤 문주, 따라오게.”충허도인은 나무 계단을 밟고 윤태호를 데리고 장경각 2층으로 올라갔다.이 층도 일 층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윤태호 뒤의 세 줄기 선천진기를 바라보았다.이 세 갈래의 진기는 마치 살아 있는 진룡처럼 신비로웠다.한참 뒤에야 충허도인이 감탄했다.“수천 년 동안 선천진기를 수련해 낸 사람은 하나같이 무도의 천재였네. 윤 문주의 무도 재능은 나조차 부러울 정도야.”윤태호는 진기를 거두고 웃었다.“선배님께서 과찬하셨습니다. 선배님은 오래전부터 청룡 랭킹 2위 고수셨지요. 제 짐작이 맞는다면 지금 실력은 신급 랭킹에서도 5위권 안에 드실 텐데요?”윤태호는 충허도인을 처음 본 순간부터 그의 수련 경지를 살피고 있었으나 뜻밖에도 그의 경지를 전혀 알아볼 수 없었다.보통 여섯 줄기 진기를 수련한 분이라면 절대 윤태호의 눈을 속일 수 없었다.그렇다는 것은 충허도인의 실력이 바다처럼 깊다는 뜻이었다.‘대체 도인님은 몇 줄기의 진기를 수련한 거지?’충허도인은 미소만 지을 뿐 윤태호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다.대신 시선을 소이안에게 돌렸다.잠시 그녀를 살펴본 뒤 충허도인이 말했다.“마치 물에서 갓 피어난 연꽃 같구려. 윤 문주, 복이 참으로 많네.”순식간에 소이안의 얼굴이 붉어졌다.윤태호는 굳이 설명하지 않고 곧장 무영산을 찾아온 목적을 말했다.“선배님, 지난번 명강에서 상령진인께 들었습니다. 선배님께서 저를 위해 무영산 장경각을 사흘간 열어 주겠다고 하셨다는데 사실입니까?”“물론이지.”충허도인이 웃었다.“다만 장경각은 이미 60년 동안 외부인에게 개방하지 않았지. 이번에 윤 문주에게 문을 열어 주는 데는 조건이 하나 있네.”윤태호는 진작 예상하고 있었다.자신이 그토록 쉽게 장경각에 들어갈 수 있을 리 없었다.장미진인은 과거 당 어르신, 당규언조차 장경각을 구경하고 싶어 했지만 거절당했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그런 곳을 자신에게만 사흘이나 열어 준다는 것은 확실히 이상했다.“무슨 조건이죠?”“윤 문주가 나를 위해, 아니, 무영산을 위해 한 가지 일을 해 주었으면 하네.”윤태호가 진지하게 말했다.
상령진인은 윤태호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걱정스럽게 물었다.“윤 문주님, 몸이 불편하세요?”“조금 다친 곳이 있지만 큰 문제는 아닙니다.”윤태호는 적당히 둘러댔다.차마 스승님이 나이를 먹고도 점잖지 못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상령진인은 그 말을 그대로 믿었다.“무영산에는 상처를 치료하는 영약이 많습니다. 나중에 몇 가지 챙겨 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감사합니다.”잠시 뒤, 한 사람이 전각 안에서 걸어 나왔다.늙은 도사였다.나이는 70세를 훌쩍 넘은 듯했고 흰 무복을 입고 있었다. 머리카락과 수염은 눈처럼 희었지만 얼굴에는 혈색이 돌았다. 손에는 불진을 들고 있어 마치 늙은 신선처럼 보였다.얼굴은 인자하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것으로 보아 젊었을 때는 빼어난 미남이었을 것이 분명했다.늙은 도사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주변에 보이지 않는 도운이 감싸는 듯했는데 그 깊이를 전혀 가늠할 수 없었다.‘이분이 바로 무영산 장교인 충허도인인가? 역시 범상치 않은 분이야.’윤태호는 문득 장미진인이 충허도인을 언급할 때마다 늙은 도사라고 비꼬던 이유를 깨달았다. 아무래도 질투 때문이었던 모양이다.충허도인은 외모와 체격, 기품, 수련 경지를 비롯한 모든 면에서도 장미진인보다 한 수 위였다.게다가 천하 도문의 수장으로서 만인의 존경을 받고 있었고, 도문 안에서의 지위도 대단했다.장미진인이 어떻게 질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처지를 바꿔 생각해도 마찬가지였다.똑같은 도사인데 왜 저 사람만 나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나단 말인가? 대체 무슨 이유로?“스승님께 인사드립니다.”충허도인이 문을 나서자 상령진인과 상진진인이 황급히 허리를 숙여 예를 올렸다.“용문의 윤태호가 선배님께 인사드립니다.”윤태호도 두 손을 모아 허리를 숙이려 했다.충허도인은 무영산의 장교로서 덕망과 명성이 높았다.더구나 윤태호가 무영산을 찾아온 목적은 장경각에 들어가 무공 비급을 살펴보고 수련을 높이는 것이었다.부탁하러 온 입장이니 예의를 갖추는 것이 마땅했
“...”상령진인은 마치 전문 가이드처럼 끊임없이 무영산을 소개했다.윤태호는 이야기를 들으며 때때로 고개를 끄덕였다.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은 얼룩지고 오래된 돌계단을 따라 위로 올라갔다.오가는 길에 도복을 입은 도사들이 종종 눈에 띄었는데 그들은 상령진인을 발견할 때마다 멈춰 서서 정중히 예를 갖췄다. 상령진인 또한 일일이 답례하는 것으로 보아 무영파의 규율이 꽤 엄격한 모양이었다.그들은 계속 앞으로 걸었다.상령진인이 계속해서 설명했다.“윤 문주님께서는 모르시겠지만 무영산은 겉채와 안채로 나뉩니다. 겉채는 주로 관광객을 맞거나 큰 의식을 거행하는 곳이고, 안채는 본문 제자가 아니면 보통 들어올 수 없는 곳입니다.”“관광객들이 안채로 몰려들어 제자들의 수련을 방해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지요.”“참, 소개가 늦었습니다. 이쪽은 제 사제 상진입니다.”상령진인이 중년 도사를 윤태호에게 소개했다.“진인님, 반갑습니다.”윤태호가 웃으며 인사했다.상진진인도 반갑게 웃었다.“저는 윤 문주가 매우 젊다는 말을 오래전부터 들었습니다. 오늘 만나 보니 생각보다도 훨씬 젊으시군요.”“예로부터 청출어람이라고 하더니, 틀린 말이 아닙니다. 이젠 젊은이가 이 시대를 이끌어야지요.”“진인님, 과찬입니다.”윤태호가 겸손하게 대답했다.그렇게 걷다 보니 마침내 한 전각 아래에 도착했다.전각은 가파른 절벽 위에 산세를 따라 지어져 있었다. 몇 개의 나무 기둥으로 받치고 있으며 지면에서 적어도 30m는 떨어져 있어 몹시 험준했다.윤태호가 주위를 훑었지만 전각으로 올라가는 길은 보이지 않았다.대신 절벽에는 6m 간격으로 네모반듯한 돌이 벽돌처럼 튀어나와 있었다.“스승님께서는 위에 계십니다.”상령진인이 머리 위의 전각을 가리켰다.그리고 갑자기 몸을 날렸다.발끝으로 튀어나온 돌을 가볍게 밟자 몸이 다시 위로 솟구쳤다. 두 번째 돌을 디딘 뒤에는 눈 깜짝할 사이 전각 앞에 도착했다.“윤 문주님, 올라오세요.”상령진인이 위에서 손짓했다.윤태호가 소이안에게 물었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매장 안 사람들에게는 천둥처럼 울렸다.모두 동시에 매장 입구를 바라보았다. 잘생긴 청년이 서 있었고 미소를 띤 채 모두를 주시하고 있었다. “누구세요?”나현진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윤태호예요.”사실 윤태호는 조금 전부터 매장 안에 있었다.문서아에게 사과하려고 들어올 참이었는데 마침 이 장면과 맞닥뜨린 것이었다.나현진은 눈살을 더욱 찌푸렸다.“아마 제가 누군지는 모를 수도 있겠네요.”윤태호는 매장 안으로 들어와 문서아의 허리를 살며시 감싸 안으며 미소 지었다.“서아 씨 남자친구예요.”‘
원래라면 박태강이 신분을 드러내면 윤태호가 무릎 꿇고 빌어야 정상이었다.그런데 지금 무릎 꿇어 땅바닥에 엎드려 있는 건 박태강이었다.유계진은 놀라 손을 내저으며 그를 일으키려 했다.“태강아, 정신 차려. 왜 저 자식한테 무릎을 꿇어!”그러나 ‘파앗’ 소리와 함께 박태강의 손바닥이 곧장 유계진의 뺨을 갈겼다. 그리고 싸늘한 목소리가 따라왔다.“현무사님한테 또 무례를 범하면 네 혀부터 잘라버리겠다.”유계진은 뺨을 움켜쥐며 소리를 질렀다.“박태강, 너 미쳤냐? 윤태호가 적이잖아! 왜 걔를 안 때리고 나를 때려?”속으로는 외
“맞아요. 삼복 씨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어요. 착한 사람은 왜 이렇게 일찍 가는 걸까요... 나쁜 놈들은 천년을 살아도 안 죽고.”소이은이 한숨을 내쉬었다.윤태호는 살짝 고개를 돌려 소이은을 바라보았다.그녀의 말에는 단순한 탄식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았다.그때, 박만식이 간절한 목소리로 부탁했다.“자, 내가 이렇게 부탁하네. 제발 어떻게든 우리를 도와 이 사건을 밝혀주게.”윤태호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걱정 마세요, 이장님. 반드시 진실을 밝혀서 진삼복 씨와 다른 고인들의 명복을 빌겠습니다.”“고맙네.”
윤태호는 죄책감으로 얼굴이 굳은 채 겨우 입을 열었다.“서아 씨... 미안해요. 나...”짝!문서아의 손바닥이 그의 뺨을 세게 스쳤다.“윤태호, 넌 사기꾼이야.”분노에 떨리는 목소리였지만 그녀의 눈빛은 단호했다.“서아 씨...”윤태호가 더는 말을 잇지 못하자 문서아는 하은이를 안고 급히 계단을 내려갔다.“하은아, 우리 가자.”윤태호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입술을 몇 번 달싹였지만 끝내 아무 말도 내뱉지 못했다.그때 부엌에서 앞치마를 두른 전혜란이 나왔다.“무슨 일이야?”임다은이 억지로 웃으며 말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