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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Author: 유진
임유진의 몸은 저도 모르게 굳어버렸다. 매번 두 사람의 이름을 들을 때마다 유진의 기억은 유진을 다시 악몽 속으로 끄집어들이곤 한다.

유진도 당연히 그 6캐럿짜리 핑크 다이아에 대해 알고 있다. 뉴스에도 대문짝만한 사진까지 첨부하며 보도해 댔으니 모를 리 없었다. 게다가 그런 기사는 읽고 싶지 않아도 핸드폰을 켜고 웹페이지를 확인할 때면 계속 맨 위에 나타난다.

오래전, 유진이 민준과 쥬얼리숍을 구경할 때 그 핑크 다이아를 본 적이 있다. 그때 민준은 유진에게 마음에 들면 결혼반지로 사주겠다고 약속까지 했었다.

하지만 민준도, 그 핑크 다이아도 결국은 유진의 것이 아니게 됐다.

그렇게 잠시 추억에 잠겨 있던 그때.

“유진 씨, 혹시 지금 집에 가려고요?”

웬 남자의 목소리가 유진의 귓가에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맑으면서도 약간의 부끄러움이 섞여 있었다.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30살 전후로 보이는 남자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남자는 짧은 스포츠머리에 직업복을 입고 있었고 얼굴을 살짝 붉히며 유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사람 곽동현 씨 아닌가?’

놀라기도 잠시, 유진은 이내 남자의 물음에 대답했다.

“네.”

“그러면 제가 집까지 모셔다드릴게요. 저 지금 마침 시간 있거든요.”

곽동현은 어렵게 용기를 낸 것처럼 입을 열었다.

동현의 말을 듣는 순간 유진은 상대가 자기한테 관심이 있다던 미옥의 말이 생각났다. 그렇다는 건 지금 눈앞의 남자가 유진에게 작업을 걸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금의 유진은 연애를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제 차 있으니 유진 씨도 편할 거예요.”

유진은 완곡히 거절했지만, 동현은 한 번 더 기회를 쟁취하기 위해 다급히 말했다.

하지만 도구를 정리하고 있던 방현주가 먼저 끼어들었다.

“흥. 그깟 차 한번 태워주는 걸로 어디 만족하겠어요? 유진 씨는 외제 차 아니면 취급 안 해요. 동현 씨도 6캐럿짜리 다이아 반지를 사다가 바치면 아마 좋아할지도 모르죠.”

동현은 순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그걸 본 유진은 옆에 있던 현주를 힐끗 바라봤다.

“그러면 현주 씨도 누가 데려주겠다고 할 때 거절하면 외제차를 원해서, 6캐럿짜리 다이아를 원해서 거절하는 거겠네요? 아니면 누구든 데려주겠다고 하면 거절하지 않나?”

“하--”

현주는 말문이 막혔는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유진을 매섭게 노려봤다.

그때, 유진은 이내 고개를 돌려 동현에게 인사했다.

“고마워요. 하지만 제가 사는 곳이 여기에서 그닥 멀지 않아요. 저도 걸어가는 게 더 익숙하고요.”

말을 마친 유진은 이내 몸을 돌려 사무실을 나가버렸다.

집으로 가는 길에 유진은 장을 봤다. 위가 아픈 지혁에게 돼지고기 야채죽을 해주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식사하는 도중 유진은 걱정 가득한 말투로 먼저 지혁의 상태를 확인했다.

“위 오늘도 아파?”

“이제 안 아파.”

“그래도 약은 하루 더 먹어. 효과 확실히 보려면. 그리고 앞으로 하루 세 끼 거르지 말고 꼭 제때 챙겨 먹고. 전단지 돌리는 일도 오래 하기 좋은 직업도 아닌데 안정적인 직업을 찾아보는 건 어때? 아니면 내가 인터넷에서 한번 찾아볼까?”

“아니야, 내가 직접 찾아볼게. 내가 안정적인 직업을 찾는 게 누나가 원하는 거라면 그래야지.”

“착하네.”

유진은 참지 못하고 손을 뻗어 지혁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입가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남동생이 있다는 게 이런 기분인가 하는 기분에 마음이 따뜻했다.

스스럼없이 행동하는 유진과 달리 지혁은 조금 놀랐는지 잠시 멍하니 유진을 바라봤다. 그 눈빛은 마치 옅은 안개가 낀 듯 속을 알 수 없었다.

아이 취급하듯이 머리를 쓰다듬는 유진의 행동. 생각해 보니 어릴 적에 아버지가 지혁의 머리를 쓰다듬은 이후로 그 누구도 지혁의 머리를 쓰다듬은 적이 없었다.

그때 아버지는 지혁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꼭 강해져야 한다고, 자기처럼 이런 나약한 존재가 아닌 누구보다도 강한 존재가 되라고 당부했었다.

그 후로 지혁의 인생은 늘 그랬다. 누구보다도 강하고 독하게 살아왔다. 그래야만 자기가 원하는 걸 얻을 수 있고 아버지 같은 꼴이 나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지혁은 지금의 지혁이 되었다. GH 그룹을 지배하고, S시의 맨 꼭대기에 서서 자기가 원하는 걸 모두 손에 넣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혁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마치 아직도 뭔가를 원하는 것처럼.

‘내가 원하는 거…….’

지혁의 시선은 저도 모르게 눈앞에 있는 여자에게 옮겨갔다.

그러던 그때, 벨 소리가 갑자기 들리는 바람에 유진은 이내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지혁의 머리 위에 올려놓은 손이 자연스럽게 핸드폰으로 옮겨지자, 머리로 전해지던 여자의 온기도 함께 사라졌다. 그리고 그 순간 지혁은 눈살을 미세하게 찌푸렸다. 왠지 모르게 이러한 온기에 자꾸만 미련이 생기는 것 같았다.

핸드폰에 찍힌 번호는 저장되지 않은 생소한 번호였다. 그리고 유진이 수신 버튼을 누르는 순간 건너편에서 버벅거리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 유진 씨 맞죠? 저 곽동현이에요. 저기…… 그게, 오늘 방현주 씨가 한 말 너무 마음에 두지 마요. 유진 씨가 그런 속물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거 저도 알아요. 그리고 제 차가 물론 저렴한 소형차라지만 저도 노력해서 언젠간 좋은 차 구매할 거예요!”

말을 마친 동현은 유진의 대답도 듣지 않고 다급히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미 검게 변한 액정을 보며 유진은 순간 더 명확히 거절해야 하는 건가 고민에 빠졌다. 그래야 상대도 유진에게 시간과 감정을 낭비하지 않을 테니까.

그러던 그때.

“누구야?”

서늘한 목소리가 작은 방안에 울려 퍼졌다.

“환경위생과 동료.”

“남자 동료?”

유진이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대답하며 내려놓은 핸드폰을 지혁은 힐끗 바라봤다.

방금 통화할 때 스피커폰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가까이에 앉은지라 지혁은 상대의 목소리를 대충 들었다.

“응.”

“그 사람 혹시 누나 좋아해?”

지혁의 눈빛은 눈에 띄지 않게 어두워졌다.

“아마도.”

“그럼, 누나는? 누나는 그 사람 좋아해?”

“내가 감옥 갔었다는 거 말하는 순간 상대는 아마 바로 도망갈걸. 그러니까 내가 좋아하는지 아닌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

“감옥 간 게 뭐 어때서? 만약 정말 누나를 좋아한다면 그런 건 신경 안 쓸 거야.”

지혁의 말에 유진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물론 말은 그렇게 한다지만 이 세상에 그런 걸 신경 쓰는 사람은 수도 없이 많다. 마치 유진이 처음에 진심이라고 믿은 사랑도 한 번의 사고로 완전히 휴지 조각이 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만약 상대가 그런 거 신경 안 쓰면, 누나도 그 사람 좋아할 거야?”

지혁의 목소리는 또다시 고요함을 깨트렸다.

그 말에 유진은 순간 멍해졌다.

'누군가 이런 나라도 받아줄 수 있다면…….’

유진의 넋 나간 모습에 지혁은 불쾌했는지 유진의 손을 들어 손가락 끝을 살짝 깨물었다.

“아!”

유진은 순간 정신이 번쩍 들어 자기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남자의 예쁜 눈을 바라봤다.

“그러면 그 사람 좋아할 거냐고?”

지혁은 마치 이 문제에 유독 집착하는 것 같았다.

“아니. 나한테 동현 씨는 그저 평범한 직장 동료일 뿐이야.”

게다가 지금 유진은 연애할 마음도 없었다.

유진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지혁은 씩 웃었다. 원래도 잘생긴 얼굴로 이렇게 웃으니 너무나도 눈부셨다. 게다가 물결처럼 빛나는 지혁의 눈을 보고 있자니 유진은 저도 모르게 빨려 들어가 지혁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러던 그때 지혁의 기분 좋은 목소리가 유진의 귓가에 들려왔다.

“그럼, 앞으로도 계속 평범한 직장 동료 사이로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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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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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미
오타가 많아서 읽을때마다 불편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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