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16화

Author: 유진
임유진의 몸은 저도 모르게 굳어버렸다. 매번 두 사람의 이름을 들을 때마다 유진의 기억은 유진을 다시 악몽 속으로 끄집어들이곤 한다.

유진도 당연히 그 6캐럿짜리 핑크 다이아에 대해 알고 있다. 뉴스에도 대문짝만한 사진까지 첨부하며 보도해 댔으니 모를 리 없었다. 게다가 그런 기사는 읽고 싶지 않아도 핸드폰을 켜고 웹페이지를 확인할 때면 계속 맨 위에 나타난다.

오래전, 유진이 민준과 쥬얼리숍을 구경할 때 그 핑크 다이아를 본 적이 있다. 그때 민준은 유진에게 마음에 들면 결혼반지로 사주겠다고 약속까지 했었다.

하지만 민준도, 그 핑크 다이아도 결국은 유진의 것이 아니게 됐다.

그렇게 잠시 추억에 잠겨 있던 그때.

“유진 씨, 혹시 지금 집에 가려고요?”

웬 남자의 목소리가 유진의 귓가에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맑으면서도 약간의 부끄러움이 섞여 있었다.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30살 전후로 보이는 남자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남자는 짧은 스포츠머리에 직업복을 입고 있었고 얼굴을 살짝 붉히며 유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사람 곽동현 씨 아닌가?’

놀라기도 잠시, 유진은 이내 남자의 물음에 대답했다.

“네.”

“그러면 제가 집까지 모셔다드릴게요. 저 지금 마침 시간 있거든요.”

곽동현은 어렵게 용기를 낸 것처럼 입을 열었다.

동현의 말을 듣는 순간 유진은 상대가 자기한테 관심이 있다던 미옥의 말이 생각났다. 그렇다는 건 지금 눈앞의 남자가 유진에게 작업을 걸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금의 유진은 연애를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제 차 있으니 유진 씨도 편할 거예요.”

유진은 완곡히 거절했지만, 동현은 한 번 더 기회를 쟁취하기 위해 다급히 말했다.

하지만 도구를 정리하고 있던 방현주가 먼저 끼어들었다.

“흥. 그깟 차 한번 태워주는 걸로 어디 만족하겠어요? 유진 씨는 외제 차 아니면 취급 안 해요. 동현 씨도 6캐럿짜리 다이아 반지를 사다가 바치면 아마 좋아할지도 모르죠.”

동현은 순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그걸 본 유진은 옆에 있던 현주를 힐끗 바라봤다.

“그러면 현주 씨도 누가 데려주겠다고 할 때 거절하면 외제차를 원해서, 6캐럿짜리 다이아를 원해서 거절하는 거겠네요? 아니면 누구든 데려주겠다고 하면 거절하지 않나?”

“하--”

현주는 말문이 막혔는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유진을 매섭게 노려봤다.

그때, 유진은 이내 고개를 돌려 동현에게 인사했다.

“고마워요. 하지만 제가 사는 곳이 여기에서 그닥 멀지 않아요. 저도 걸어가는 게 더 익숙하고요.”

말을 마친 유진은 이내 몸을 돌려 사무실을 나가버렸다.

집으로 가는 길에 유진은 장을 봤다. 위가 아픈 지혁에게 돼지고기 야채죽을 해주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식사하는 도중 유진은 걱정 가득한 말투로 먼저 지혁의 상태를 확인했다.

“위 오늘도 아파?”

“이제 안 아파.”

“그래도 약은 하루 더 먹어. 효과 확실히 보려면. 그리고 앞으로 하루 세 끼 거르지 말고 꼭 제때 챙겨 먹고. 전단지 돌리는 일도 오래 하기 좋은 직업도 아닌데 안정적인 직업을 찾아보는 건 어때? 아니면 내가 인터넷에서 한번 찾아볼까?”

“아니야, 내가 직접 찾아볼게. 내가 안정적인 직업을 찾는 게 누나가 원하는 거라면 그래야지.”

“착하네.”

유진은 참지 못하고 손을 뻗어 지혁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입가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남동생이 있다는 게 이런 기분인가 하는 기분에 마음이 따뜻했다.

스스럼없이 행동하는 유진과 달리 지혁은 조금 놀랐는지 잠시 멍하니 유진을 바라봤다. 그 눈빛은 마치 옅은 안개가 낀 듯 속을 알 수 없었다.

아이 취급하듯이 머리를 쓰다듬는 유진의 행동. 생각해 보니 어릴 적에 아버지가 지혁의 머리를 쓰다듬은 이후로 그 누구도 지혁의 머리를 쓰다듬은 적이 없었다.

그때 아버지는 지혁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꼭 강해져야 한다고, 자기처럼 이런 나약한 존재가 아닌 누구보다도 강한 존재가 되라고 당부했었다.

그 후로 지혁의 인생은 늘 그랬다. 누구보다도 강하고 독하게 살아왔다. 그래야만 자기가 원하는 걸 얻을 수 있고 아버지 같은 꼴이 나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지혁은 지금의 지혁이 되었다. GH 그룹을 지배하고, S시의 맨 꼭대기에 서서 자기가 원하는 걸 모두 손에 넣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혁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마치 아직도 뭔가를 원하는 것처럼.

‘내가 원하는 거…….’

지혁의 시선은 저도 모르게 눈앞에 있는 여자에게 옮겨갔다.

그러던 그때, 벨 소리가 갑자기 들리는 바람에 유진은 이내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지혁의 머리 위에 올려놓은 손이 자연스럽게 핸드폰으로 옮겨지자, 머리로 전해지던 여자의 온기도 함께 사라졌다. 그리고 그 순간 지혁은 눈살을 미세하게 찌푸렸다. 왠지 모르게 이러한 온기에 자꾸만 미련이 생기는 것 같았다.

핸드폰에 찍힌 번호는 저장되지 않은 생소한 번호였다. 그리고 유진이 수신 버튼을 누르는 순간 건너편에서 버벅거리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 유진 씨 맞죠? 저 곽동현이에요. 저기…… 그게, 오늘 방현주 씨가 한 말 너무 마음에 두지 마요. 유진 씨가 그런 속물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거 저도 알아요. 그리고 제 차가 물론 저렴한 소형차라지만 저도 노력해서 언젠간 좋은 차 구매할 거예요!”

말을 마친 동현은 유진의 대답도 듣지 않고 다급히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미 검게 변한 액정을 보며 유진은 순간 더 명확히 거절해야 하는 건가 고민에 빠졌다. 그래야 상대도 유진에게 시간과 감정을 낭비하지 않을 테니까.

그러던 그때.

“누구야?”

서늘한 목소리가 작은 방안에 울려 퍼졌다.

“환경위생과 동료.”

“남자 동료?”

유진이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대답하며 내려놓은 핸드폰을 지혁은 힐끗 바라봤다.

방금 통화할 때 스피커폰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가까이에 앉은지라 지혁은 상대의 목소리를 대충 들었다.

“응.”

“그 사람 혹시 누나 좋아해?”

지혁의 눈빛은 눈에 띄지 않게 어두워졌다.

“아마도.”

“그럼, 누나는? 누나는 그 사람 좋아해?”

“내가 감옥 갔었다는 거 말하는 순간 상대는 아마 바로 도망갈걸. 그러니까 내가 좋아하는지 아닌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

“감옥 간 게 뭐 어때서? 만약 정말 누나를 좋아한다면 그런 건 신경 안 쓸 거야.”

지혁의 말에 유진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물론 말은 그렇게 한다지만 이 세상에 그런 걸 신경 쓰는 사람은 수도 없이 많다. 마치 유진이 처음에 진심이라고 믿은 사랑도 한 번의 사고로 완전히 휴지 조각이 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만약 상대가 그런 거 신경 안 쓰면, 누나도 그 사람 좋아할 거야?”

지혁의 목소리는 또다시 고요함을 깨트렸다.

그 말에 유진은 순간 멍해졌다.

'누군가 이런 나라도 받아줄 수 있다면…….’

유진의 넋 나간 모습에 지혁은 불쾌했는지 유진의 손을 들어 손가락 끝을 살짝 깨물었다.

“아!”

유진은 순간 정신이 번쩍 들어 자기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남자의 예쁜 눈을 바라봤다.

“그러면 그 사람 좋아할 거냐고?”

지혁은 마치 이 문제에 유독 집착하는 것 같았다.

“아니. 나한테 동현 씨는 그저 평범한 직장 동료일 뿐이야.”

게다가 지금 유진은 연애할 마음도 없었다.

유진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지혁은 씩 웃었다. 원래도 잘생긴 얼굴로 이렇게 웃으니 너무나도 눈부셨다. 게다가 물결처럼 빛나는 지혁의 눈을 보고 있자니 유진은 저도 모르게 빨려 들어가 지혁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러던 그때 지혁의 기분 좋은 목소리가 유진의 귓가에 들려왔다.

“그럼, 앞으로도 계속 평범한 직장 동료 사이로 지내.”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Comments (1)
goodnovel comment avatar
이은미
오타가 많아서 읽을때마다 불편하네요
VIEW ALL COMMENTS

Latest chapter

  • 길에서 주운 노숙자가 알고보니 유명그룹 대표님?!   제1739화

    경비원은 잠시 망설였지만 여전히 출입을 거부했다.“죄송합니다. 이대로 사모님을 들여보내면 저희는 회장님께 죽을지도 모릅니다.”“나중에 질책당할 게 겁나서 그러는 거면 내가 대신 해결해줄 테니 걱정하지 말아요. 약속하죠. 그러니 비키세요.”하지만 임유진의 설득에도 경비원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경비원을 억지로 떼어내 안으로 가려고 해도 커다란 대문이 잠겨있어 들어갈 수가 없었다.시간은 1분, 2분 흘러가고 있고 임유진은 마음은 불안과 초조함으로 재가 되어가고 있었다.‘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혁이한테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데!’“문 열어. 지금 당장 이 문 열라고! 만약 혁이한테 무슨 일 생기면 그때는 내가 당신들 가만 안 둬!”설득이 안 돼 협박까지 해보았지만 경비원들은 아예 고개를 돌리며 대화 자체를 거부했다.임유진은 고집스러운 그들의 태도에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아까 이곳으로 오는 길에 강지혁에게 전화를 걸어봤지만 아예 전원이 꺼져있는 상태였다.‘안 돼. 여기서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어!’임유진은 그 생각에 다시 차로 돌아갔다. 조수석이 아닌 운전석으로 말이다.“고 비서님, 차 키 줘요.”“네? 네.”고이준은 그녀가 뭘 하려는 건지도 모른 채 일단은 키를 건네주었다.임유진은 운전석에 앉고는 심호흡을 한번 했다.운전을 안 한지 너무 오래됐던 터라 심장이 쿵쿵 뛰고 손이 덜덜 떨렸다. 기억을 잃은 5년 동안에도 그녀는 운전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조수석에 앉아 핸들을 잠깐 만진 것만으로도 식은땀이 흐르고 두려움부터 앞섰으니까.그때는 기억을 잃었을 때라 그 두려움이 왜 생겼는지 몰랐지만 기억을 완전히 되찾고 보니 왜 두려움부터 느꼈는지 알게 되었다.진애령의 교통사고와 절벽 사건, 그 두 사건 모두 그녀에게 뿌리 깊은 공포를 심어줬던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아무리 두려워도 어떻게든 별장 안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강지혁이 전처럼 두통으로 입술까지 물어뜯으며 괴로워할지도 모르니까.이대로 계속 멍청하게 기다리면 평생을

  • 길에서 주운 노숙자가 알고보니 유명그룹 대표님?!   제1738화

    임유진이 요셉에 대해 알고 있는 건 기억을 잃었을 당시 꽤 많은 상담도 받아보고 직접 해외의 유명한 논문도 찾아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다만 요셉은 해외에서 근무하는 사람이라 예약을 잡는 게 하늘의 별 따기 급으로 어려웠다. 게다가 그때는 현이도 키워야 했기에 모든 걸 다 제쳐두고 해외로 날아가 온전히 치료만 받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그래서 계속 속으로만 치료를 받아야겠다 하고 생각하다 어느 순간부터는 기억을 되찾는 일에 대해 완전히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는데 요셉의 사진을 강지혁의 책상 위에서 보게 될 줄이야.“설마...”임유진은 미간을 한번 찌푸리더니 서류를 활짝 펼쳤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는 요셉의 과거 이력이 가득 적혀있는 자료가 있었고 일주일 일정표까지 적혀있었다.일정에 따르면 요셉은 엊그제 S 시에 도착했다고 한다.“요셉이 S 시로 왔다고?!”임유진은 눈을 크게 뜨며 놀라다가 무슨 생각 하나가 떠오른 듯 서류를 쥐고 있는 손을 꽉 말아쥐었다.그때 사무실 문이 열리고 고이준이 복잡하고도 다급한 표정으로 들어왔다. 그러고는 무언가를 말하려는데 임유진이 먼저 물었다.“요셉이 왜 여기로 와요? 설마 혁이 기억을 찾아주려고 온 거예요?”고이준은 그 말에 흠칫하다가 임유진의 손에 들린 서류를 보고 더 이상 감출 수 없을 것 같아 모든 걸 다 얘기해주었다.“네... 사모님 말씀대로 회장님은 지금 요셉 선생과 함께 있습니다. 오늘 기억을 되찾는 최면을 받을 거라고 하셨어요.”임유진은 그 말에 심각한 얼굴로 고이준의 앞으로 걸어갔다.“그래서 지금 두 사람은 어디 있죠?”“회장님 명의로 된...”임유진은 고이준이 뭐라 답을 하기도 전에 그의 팔을 끌고 사무실 밖으로 뛰쳐나갔다.“지금 당장 그곳으로 데려다줘요!”“네, 알겠습니다.”차 안.임유진은 운전석에 앉은 고이준을 보며 물었다.“그런데 왜 나한테는 얘기 안 했어요?”“사모님께서 아시면 걱정하신다고 함구하라고 하셨습니다.”사실 고이준은 끝까지 숨길 생각이었지만 임유진

  • 길에서 주운 노숙자가 알고보니 유명그룹 대표님?!   제1737화

    백연신이 한지영에게 헤어짐을 고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고은채는 어느 날 어디서 구한 건지도 모를 작은 벌레 같은 것을 가지고 왔고 백연신이 방심한 틈을 타 그에게 벌레를 넣은 음료를 먹였다.이상한 느낌에 백연신이 바로 게워내 보려고 했지만 나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연신 씨 배속으로 들어간 그 벌레는 혈충이라고 몸에 기생하는 벌레예요. 연신 씨 벌레는 특별히 한지영 씨의 피를 섭취한 적이 있는 벌레죠. 혈충은 한번 마신 피의 냄새를 평생 기억해서 피의 주인이 가까이 다가오면 지금 기생해 살고 있는 숙주의 몸을 무척 고통스럽게 만들어요. 즉, 연신 씨가 한지영 그 여자와는 함께할 일은 영원히 없다는 뜻이죠.”고은채는 그때 악랄한 얼굴로 웃으며 이 말을 했었다.그녀의 말은 사형선고나 다름없었고 백연신은 한때 그 일로 깊은 절망감에 빠졌었다. 한지영을 해하려고 했던 인간들을 다 처리해도 결과적으로 그녀와 이어질 수 없게 되어버렸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혈충은 평생 몸에 기생하는 것이 아닌 원하면 제거할 수 있는 것이었다. 다만 혈충을 처음 발견했던 마을도 지금은 사라지고 없고 그에게 혈충에 관한 정보를 줬던 사람도 제거하는 건 기술자가 아니면 못한다고 말하며 난색을 보였다.그래서 백연신은 원래 짰던 계획을 살짝 틀어 고은채가 자기 입으로 혈충을 제거해주겠다는 말을 꺼내게 했다.한지영과 함께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몸속에 있는 벌레를 제거해야만 했다.아마 한지영은 모를 것이다. 그날 차 안에서 서로 살결이 맞닿았을 때 백연신이 얼마나 힘들어했는지.그녀의 포옹 한 번에 그는 바늘로 온몸이 쿡쿡 찔리는 것 같았고 그녀의 입맞춤 한 번에 그는 살이 다 깎이는 것 같았다. 세포 하나하나가 다 그녀 가까이에 가지 말라고, 그녀와 맞닿아있지 말라고 울부짖는 듯했다.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그녀를 안고 있는 손을 놓지 않았다. 고통이 미친 듯이 몰려와도 닿아있는 것에 그는 기쁘기만 했다.아까도 마찬가지였다. 한지영을 품에 끌

  • 길에서 주운 노숙자가 알고보니 유명그룹 대표님?!   제1736화

    한지영은 자신을 꼭 감싸는 그의 품이 너무 따뜻해 이대로 몸을 맡긴 채 아무런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하지만...“당장 팔 풀어요. 아니면 때릴 거예요?!”한지영은 입술을 꽉 깨문채 협박성 말을 꺼냈다.이에 백연신은 피식 웃더니 쇄골에 파묻고 있던 얼굴을 떼어내고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때려.”한지영은 마음껏 때리라고 일부러 힘을 풀어 거리를 살짝 벌려주는 그의 행동에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이대로 손만 뻗으면 바로 뺨을 내리칠 수 있는데 이상하게도 손이 들리지 않았다.그때 그의 뺨을 때렸던 느낌이 여태 손바닥에 남아있기 때문인가?“지영아, 내가 지금처럼 널 이렇게 안고 있으려면 얼마나 많은 통증을 이겨내야 하는지 알아?”백연신은 장난스러운 분위기를 지워내고 조금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한지영은 그 말에 그제야 그의 얼굴색이 안 좋다는 것을 눈치챘다. 심지어 그의 이마에는 땀이 한층 맺혀있기도 했다.“어디... 아픈 거예요?”한지영의 질문에 백연신은 대답이 아닌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이어갔다.“하지만 괜찮아. 통증이 따라도 널 이렇게 안을 수 있다면 뭐든 괜찮아. 내가 제일 두려운 건 너랑 함께할 수 없는 거야.”한지영은 그 말에 윗몸을 천천히 일으키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아니. 정말 그랬다면 나한테 헤어지자는 얘기를 안 했겠죠. 백연신 씨, 당신이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는 건 나랑 함께하지 못하는 것 따위가 아니에요. 당신은 처음부터 끝까지 당신이 쥐고 있는 권력과 재부, 그걸 잃는 걸 가장 두려워했었어!”백연신도 어두운 얼굴로 상체를 일으켰다. 그러고는 한지영과 마찬가지로 조금 격앙된 말투로 얘기했다.“널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었어. 왜 그걸 몰라!”백연신은 연인 관계가 단지 사랑으로만 돌아가고 세상도 사랑만 있으면 뭐든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누구보다 더 권력과 재부를 손에 넣는 것에 집착했고 한지영까지 확실하게 지킬 수 있는 남자가 되려고 노력했다.“날 지켜주기 위해 그랬다

  • 길에서 주운 노숙자가 알고보니 유명그룹 대표님?!   제1735화

    비서는 한지영이 들어간 후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다. 그는 자리로 돌아가며 속으로 백선 그룹의 안주인이 될 사람이 있다면 그건 분명히 한지영일 것이라고 확신했다.그도 그럴 것이 고은채와 함께였을 때는 한번도 허락 없이 들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으니까.게다가 고은채와 결혼 얘기가 오가던 와중에 한지영과의 일이 터진 것만 봐도 어떤 상황인지 대충 짐작이 갔다. 백연신이 진정으로 마음에 두고 있는 여자가 누군지 말이다.한편 사무실로 들어온 한지영은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백연신이 얇은 담요를 덮은 채 소파에 누워 잠을 자고 있었기 때문이다.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손에 땀을 쥐었는데 자고 있어서 천만다행이었다. 그리고 뭐가 됐든 직접 찾아온 건 맞으니 꼬투리 잡힐 일도 없었다.한지영은 한결 편한 마음으로 쇼핑백을 탁자에 내려놓은 후 다시 발걸음을 돌리려 했다. 하지만 떠나려는 그 순간 시선이 저도 모르게 백연신의 얼굴 위로 떨어졌다.백연신은 많이 피곤했던 건지 미동조차 하지 않은 채 고른 숨을 내뱉으며 자고 있었다. 편히 눈을 감은 채로 있는 모습이 천사가 따로 없었다.한지영은 그와 연인이었을 당시 백연신이 잘 때면 항상 옆으로 다가가 그의 말랑한 볼을 콕콕 찌른다던가 아니면 살짝 꼬집는다든가 하는 행동을 했었다.심지어 어떨 때는 일부러 옆에서 웃기는 포즈로 함께 사진을 찍고 나중에 혼자 그 사진을 보며 키득키득 웃기도 했었다.여느 커플처럼 두 사람은 너무나도 행복하고 즐거운 연애를 했었다. 물론 지금에 와서는 그게 다 두 번 다시 할 수 없는 과거가 되어버렸지만 말이다.‘그때로는 두 번 다시 돌아갈 수 없겠지. 그래, 그건 다 꿈이었던 거야. 이제는 꿈에서 깨어날 때도 됐지. 백연신이 이렇게 다시 눈을 뜬 것처럼... 응? 눈을 떴어?!’한지영은 멍하니 상념에 사로잡혀 있다가 그제야 백연신이 눈을 떴다는 것을 발견했다.의식의 흐름대로 그의 얼굴을 꼬집듯이 잡고 있던 바로 이때 말이다.‘이 미친년!’한지영도 설마 과거의

  • 길에서 주운 노숙자가 알고보니 유명그룹 대표님?!   제1734화

    “그런데 나 여기로 온 건 어떻게 알았어?”임유진이 물었다. 그도 그럴 게 소영훈을 찾으러 간다는 얘기는 한마디도 안 했으니까.“기사가 너 여기로 왔다고 얘기하길래 한번 와봤어. 조만간 가게 되면 같이 갈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왔네?”강지혁이 오른손으로 임유진의 손을 매만지며 말했다.“치료 시작하면 그때는 같이 와.”“됐어. 번거롭게 뭐하러 일하는 사람을 불러내. 나 혼자 갈게.”임유진의 말에 강지혁은 미간을 살짝 꿈틀하더니 이내 다시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다.“알았어.”차량이 저택 앞에 도착하고 임유진은 강지혁과 인사를 나눈 후 바로 안으로 들어갔다.하지만 강지혁은 그녀가 다 들어갔는데도 여전히 차량을 움직이지 않았다.강지혁은 손을 들어 조금 짜증스럽게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임유진이 사라지자 아까 병원 입구에서 강현수와 나눴던 대화들이 다시금 떠오르기 시작했다.“유진이가 절벽에서 떨어진 이유가 뭐야? 아무리 네가 기억을 잃었다 해도 네 곁에 있는 사람들 중 누군가는 그날 일에 대해 얘기를 해줬을 거 아니야. 네가 기억을 잃었다는 얘기도 나는 유진이가 다시 나타난 뒤에야 전해 들었어. 그런데 유진이가 왜 떨어졌는지는 얘기 안 해주더라. 그러니까 네가 얘기해봐. 대체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내가 왜 나랑 유진이 사이의 일을 너한테 얘기해줘야 하지?”“그럼 이것만 얘기해줘. 유진이가 절벽에서 떨어진 일과 진애령의 교통사고에 관한 진실을 알게 된 일 사이에 연관이 있는지 없는지.”두 사건이 연관이 있는지 없는지 미치도록 알고 싶은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강지혁이었다.하지만 고이준과 집사는 여전히 김재호가 진세령을 시켜 임유진을 납치했고 그러다 임유진이 사고로 절벽에서 떨어졌다는 소리밖에 해주지 않았다.두 사람 다 그것이 진실인 것처럼 얘기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라는 걸 강지혁은 알고 있다.강지혁은 이를 꽉 깨문채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이내 휴대폰을 들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계획대로 최면 진행하죠.”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