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log in“그건 우리도 몰라. 사실 그 아이를 찾으려고 깊이 파봤는데 거의 S 시를 통째로 뒤졌는데도 흔적이 없었어.”임유진이 담담하게 말했다.“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현이 상태가 위중하다는 가짜 기사를 냈어. 출생 직후 건강에 문제가 생긴 것처럼. 그리고 그제야 그 아이가 나타나더라.”한지영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어딘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그렇구나... 난 직접 얼굴 보고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지나가 버리다니.”잠시 후 그녀는 옅 웃으며 덧붙였다.“어쩌면... 다시는 못 만날 수도 있겠네.”“아니야.”임유진의 목소리는 뜻밖에도 단호했다.한지영은 의아한 눈빛으로 친구를 바라봤고 옆에서 한지영 부모 역시 조용히 임유진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임유진은 잠깐 시선을 백이현에게로 옮겼다.막 우유를 먹고 잠든 아기는 이해영의 품에서 작게 숨을 고르며 자고 있었고 병상 옆에서는 백연신이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그게 말이지...”임유진은 머쓱한 듯 웃었다.“그 아이랑 백연신 씨 사이에 약속이 하나 생겼거든.”“약속?”한지영의 눈이 동그래졌다.“응. 그 아이가 말했어. 이현이가 자라서 결혼할 나이가 되면 자기가 데려가겠다고.”임유진은 최대한 조심스럽게 표현을 골랐다.“그래서... 아마 다시 보게 될 거야.”“잠깐만.”한지영은 완전히 얼어붙은 얼굴로 물었다.“설마... 그게 진짜 약속이야?”“응. 꽤 진지했어.”임유진은 급히 덧붙였다.“오해할까 봐 말해두는데 백연신 씨가 원해서 한 게 아니야. 그때는 정말 다른 방법이 없었어.”그리고 임유진은 그날 밤 있었던 일을 차분히 설명했다.대표님이라 불린 신비한 소년과 우씨 가문이라는 이름 그리고 강씨 가문과 이씨 가문까지 얽힐 뻔했던 대치 상황.그리고 결국...“연신 씨가 이현이를 안고 무릎을 꿇었어.”그 한마디에 병실 공기가 달라졌고 한지영의 눈가가 순식간에 젖어 들었다.백연신은 누구에게도 고개 숙이지 않던 사람이었다.그런데 자기 때문에 자기를 살
그의 ‘지저분함’은 모두 한지영 그녀 때문이었다.이 며칠 동안 백연신은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채 거의 쉼 없이 그녀 곁을 지켰다.지금 그의 몸이 얼마나 초췌한지는 곧 그가 한지영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말해주고 있었다.백연신은 마침내 외투를 벗고 바지를 정리한 뒤 조심스럽게 병상 위에 몸을 눕혔다.한지영은 자기 곁에 누운 남자를 바라보다가 부드럽게 말했다.“이제... 얼른 자요.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어요, 연신 씨.”그녀의 목소리는 그에게 있어 어떤 수면제보다도 강력했고 백연신은 금세 눈을 감았다.그동안의 피로가 얼마나 컸는지 눈을 감자마자 깊은 잠에 빠져들었고 이내 낮고 잔잔한 숨소리까지 흘러나왔다.한지영은 촉촉해진 눈으로 그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았다.그리고 아주 조금씩 몸을 옮겨 그의 이마에 입술을 가져다 대고는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연신 씨... 이번 생에선 절대 당신이랑 안 헤어질 거예요.”...다음 날 아침.임유진이 병문안을 왔을 때 병실 안 풍경은 전날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한지영은 이미 깨어 있었고 침대 머리를 살짝 세운 채 미음 같은 죽을 조금씩 받아먹고 있었다.열흘 넘게 아무것도 먹지 못했던 터라 지금은 아직 유동식밖에 먹을 수 없었다.한편 그녀의 옆에는 백연신이 여전히 깊이 잠들어 있었다.반대편에서는 이해영과 한종훈이 막 수유를 마친 외손녀를 안고 조심스럽게 트림을 시키고 있었다.갓 태어난 아기는 생각보다 얌전했다.배가 고플 때만 잠깐 소리를 내고 배를 채우고 나면 금세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임유진이 들어오자 한지영의 부모는 곧바로 다가와 물었다.“유진아, 어젯밤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어떻게 갑자기 지영이가 깨어난 거야?”한지영 역시 궁금하다는 듯 임유진을 바라봤다.그녀는 어젯밤 잠깐 깼을 때 병실이 몹시 소란스러웠던 기억은 있었지만 그때 그녀의 시선은 온통 백연신에게만 가 있었다.어렴풋이 예전에 봤던 그 신비한 소년도 있었던 것 같지만 그 아이가 무슨 말을
백연신의 시선은 단 한 순간도 병상 위에 누운 한지영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눈 한 번 깜빡이는 것조차 아까웠다.혹시라도 그녀에게 작은 변화라도 생길까 봐 그는 숨조차 조심스럽게 쉬고 있었다.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창밖이 희미하게 밝아올 즈음 한지영의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렸다.그리고 천천히 그녀가 다시 눈을 떴다.그 순간 백연신의 몸이 그대로 굳어버렸다.그는 멍하니 그녀의 눈을 바라보다가 참고 있던 감정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듯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왜 그래요... 나... 그냥 조금 더 잔 것뿐인데... 왜 울어요...”한지영은 힘겹게 말을 뱉으며 백연신의 눈물을 닦아주려 손을 들려 했지만 팔에는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그러자 백연신은 조심스럽게 한지영의 손을 잡아 자기 뺨에 가져다 댔다.“알았어. 안 울게. 그러니까... 안 울게.”그는 그렇게 말하며 한지영의 손등에 손가락 끝에 그리고 손바닥에 조심스럽게 입을 맞췄다.“유진이는요? 다들... 돌아갔어요?”“응. 어제 네 일 때문에 다들 밤늦게까지 있었어. 내가 먼저 돌아가라고 했어.아침 되면 또 올 거야. 요 며칠 동안... 매일 병원에 왔거든.”“요 며칠?”한지영은 그제야 시간이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흘렀다는 걸 느낀 듯 잠시 멍해졌다.“나... 얼마나 잤어요?”“열흘하고도 사흘. 13일.”백연신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또렷했다.그에게 이 13일은 분 단위 초 단위로 세어온 시간이었다.“벌써 그렇게나요...?”한지영은 놀란 듯 중얼거렸다.출산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이미 열흘이 훌쩍 지나 있었다니.그러다 문득 눈빛이 급해졌다.“맞다. 아기는요? 아기 어디 있어요?”분명 전에 잠깐 깼을 때는 아기가 병실에 있었는데 지금은 보이지 않았다.“아기는 간호사들이 잠깐 다른 방으로 데려갔어. 여기 있으면 너 깨울까 봐. 아침 되면 다시 데려오라고 해놨어.”그제야 한지영은 안도한 듯 작게 숨을 내쉬었다.“그럼... 이 13일 동안...연
한지영이 그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백연신은 또 한 번 실감하고 있었다.심지어 그는 한지영에게 질투심마저 느낄 정도였으니.“혁아, 고마워!”임유진은 감사한 마음을 담아 말했다.강지혁이 우씨 가문과 맞서 싸울 때 그녀를 위해 강씨 가문 전체를 걸었던 걸 알고 있었으니까.“유진아, 우리 사이에는 굳이 고맙다는 말을 할 필요 없어.”강지혁에게 있어 임유진의 바람이라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것이었다.한편 다른 곳에서는 이경빈이 탁유미를 분식점 앞까지 데려다주고 있었다.탁유미는 안전벨트를 풀었지만 바로 내리지 않고 이경빈을 바라보며 말했다.“오늘 도와줘서 고마워.”“아니야, 유미야. 안 나서도 그 소년이 결국 한지영 구했을 거야.”이경빈은 담담하게 말했다.그 소년에게 가장 중요한 건 백이현이었고 다른 건 모두 부차적이었다.결국 백이현이 울고 나면 그 소년은 한지영을 구할 테니까.“그래도, 고마워.”탁유미는 이제 문을 열며 내릴 준비를 했다.“유미야... 지금까지도 정말 이 아이를 낳겠다고 마음먹은 거야?”그런데 그때 이경빈이 조심스레 물었다.그는 최근 며칠 동안 한지영이 어떤 상황이었는지 그는 모두 똑똑히 보았다.“너도 방금 들었잖아. 지영 씨가 난산을 겪은 건 누군가가 일부러 손을 썼기 때문이야. 우리가 조금 더 주의한다면 위험한 상황은 피할 수 있을지도 몰라. 이 아이... 난 쉽게 포기 못 해.”탁유미는 그렇게 말하며 차에서 내렸고 이경빈은 잠시 멍해졌다.그녀가 방금 “우리”라는 단어를 쓴 것이 마치 수년 만에 처음으로 그와 자신을 같은 범주 안에 넣은 것처럼 느껴졌다.한 단어였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알 수 없는 기쁨이 일었다.혹시... 그녀가 조금씩 그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 걸까?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면 언젠가는...그녀가 조금씩 자신을 믿게 되지 않을까.그의 사랑을 믿게 되지 않을까.어쩌면...탁유미는 언젠가 그의 곁으로 돌아오고 싶어 할지도 몰랐다.그날이 이경빈에게는 너무 먼 미래처럼 느껴지더라도 그는
백연신은 자신이 모든 걸 완벽하게 준비했다고 믿었다.하지만 결국...단 한 번의 방심이 틈이 되었고 그 작은 틈 하나가 한지영의 목숨을 앗아갈 뻔했다.피가 아주 조금씩 한지영의 입안으로 흘러 들어갔다.처음엔 시간이 오래 걸릴 거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금방이었다.나중에는 그녀가 무의식중에도 그 피를 찾는 듯 스스로 삼키기까지 했다.모든 피를 다 먹인 뒤 백연신은 떨리는 손으로 아내의 입가를 조심스럽게 닦아주었다.그리고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 채 한지영의 얼굴을 바라봤다.임유진과 탁유미 역시 마치 숨을 참고 있는 사람들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신비한 소년이 마지막 희망이라는 건 알았다.하지만 정말로... 저 피 몇 방울로 사람이 깨어날 수 있을까?확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그렇게 약 십 분쯤 지났을까.한지영의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렸다.그리고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그녀가 천천히 눈을 떴다.“지영아...!”백연신의 얼굴이 단번에 밝아졌다.“깼어? 지영아, 깼구나!”한지영은 아직 상황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듯 멍한 눈으로 수척하고 초라해진 남편을 바라봤다.잠시 후 마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내가 애 하나 낳았다고 연신 씨가 이렇게 늙을 줄은 몰랐네요.”그리고 급히 덧붙였다.“아기... 아기는요? 우리 아기 괜찮아요?”“괜찮아.”백연신은 거의 울먹이듯 말했다.“이현이... 아주 건강해. 정말 괜찮아.”그는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한편 강지혁은 즉시 의사와 간호사를 불러 한지영의 상태를 다시 확인하도록 했다.그렇게 한바탕 소동이 지나고 나니 어느새 밤도 깊어 자정이 가까워지고 있었다.의사의 1차 소견은 긍정적이었다.“현재 상태는 상당히 안정적입니다.”그리고 한지영은 깨어난 지 약 삼십 분 만에 다시 잠들었다.그 순간 백연신의 얼굴이 다시 굳었다.‘혹시... 또다시 깨어나지 못하는 건 아닐까.’그의 불안을 읽은 듯 임유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괜찮을 거예요. 그 아이가 저 피로 살릴 수
순간 병실 안의 공기는 얼어붙었고 모두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신비한 소년을 바라봤다.그러나 소년은 아기를 안은 채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었다.“아기 엄마를 살려주면 이현은 내 거야.”짧고 단순한 말이었지만 그 한마디가 가진 무게는 너무도 컸다.“만약 어른이 돼서 같이 있으려면 결혼해야 한다면 그럼 커서 내가 이현이랑 결혼할 거야.”소년은 고개를 들고 단호하게 말했다.“나 말고 다른 사람이랑은 결혼 못 해.”순간 주변에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잇따랐다.“대표님... 정말 사람을 구하실 생각이십니까?”옆에 서 있던 육중원이 놀란 얼굴로 조심스럽게 물었다.그러나 소년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시선은 오직 백연신에게 고정돼 있었다.“대답해. 동의하냐고?”백연신의 머릿속은 그야말로 폭풍이었다.동의하면...딸의 미래를 아직 얼굴도 모를 이 아이에게 맡기는 셈이었다.사랑할지 미워할지 어떤 사람이 될지도 모르는 상대에게 아이의 인생을 약속으로 묶어버리는 것.하지만 거절하면...한지영은 이대로 깨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아내는 평생 침대 위에 누운 채 숨만 쉬는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선택지는 없었다.백연신은 결국 이를 악물고 고개를 들었다.“좋아.”목이 메어 겨우 나온 목소리였다.“네가 정말 지영이를 살릴 수 있다면 이현이가 자라서 네 곁을 선택한다면 나는 막지 않겠다.”소년은 곧고개를 끄덕였다.마치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그럼 됐어.이제 나 데려가.”그렇게 모두가 한지영의 병실로 이동했다.침대 위에 누운 그녀는 각종 기계에 둘러싸인 채 너무도 창백했고 숨은 쉬고 있었지만 살아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소년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말했다.“이거 다 떼.”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봤고 그러던 중 백연신이 간호사를 불러 몸에 부착된 각종 측정 장비들이 하나둘 제거됐다.잠시 후 소년은 손을 내밀자 육중원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깨끗한 그릇을 준비하고 품에서 단도를 꺼냈다.“대표님, 조금만 참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