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log in“나... 곡 하나를 연습했어. 그걸 네 생일 선물로 주고 싶어. 좋아해 줬으면... 좋겠어.”진해원의 목소리는 살짝 떨렸다.돈이 없어서 선물을 사줄 수 없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다.그가 줄 수 있는 건... 오직 이 곡 하나뿐이었다.하지만 현이의 얼굴에는 전혀 실망한 기색이 없었고 오히려 눈을 반짝이며 기대에 찬 표정을 지었다.진해원은 피아노 의자에 앉은 뒤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그리고 열 손가락으로 묵직하게 건반 위를 눌렀다.그가 선택한 곡은 난이도가 높은 클래식 곡이었다.예전에 우연히 녹음된 연주를 몇 번 들어본 게 전부였다.그 누구에게도 배운 적 없었고 그저 인터넷에서 악보를 찾아 혼자 손가락이 아프도록 따라 치며 익혔다.며칠 동안 몰래 연습했다.그녀에게 완벽한 연주를 들려주고 싶었다.그저 현이가 기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현이는 이런 곡 좋아하겠지... 어려운 곡을 칠 때마다 제일 즐거워하니까.’그는 지금까지 모든 음을 정확히 눌렀지만 그 안에 담겨야 할 감정은 표현해 내지 못했었다.그래서 그의 피아노 소리는 언제나 현이의 연주보다 어딘가 조금 부족했었다.애써 감정을 담아보려 했지만 그건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손끝은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물 흐르듯 매끄럽게 건반 위를 흘러갔다.연주 내내 진해원의 머릿속은 온통 현이로 가득했다.케익을 들고 방에 들어왔던 현이의 모습.“다음엔 내가 몰래 원이 생일 챙겨줄게.”그 말에 들어있던 따뜻한 웃음소리...그 모든 게 그를 미소 짓게 했다.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엄마가 저지른 끔찍한 일들이 그의 가슴을 조여왔다.‘만약 현이가 그걸 알게 된다면... 나를 미워하게 되겠지.’곡이 끝났을 때 진해원은 여전히 그 감정 속에 잠겨 있었다.그때 맑고 경쾌한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와... 원이, 너무 잘 친다! 진짜 멋져!”현이가 눈을 반짝이며 손뼉을 쳤다.“이 곡 엄청 어려운 건데! 그리고 오늘 네가 친 곡은 예전이랑 달라!”“달라?”
그의 엄마가 저지른 나쁜 일들은 너무 많았다.만약 현이가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그 생각이 떠오르자 진해원은 온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방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현이네 가족이 돌아온 걸까?‘현아, 생일 축하해.’진해원은 속으로 조용히 축하해 주었다.오늘 현이의 생일 파티는 아주 성대하다고, 많은 귀빈들이 참석했다고 사용인들이 이야기했다.현이가 나갈 때 입었던 핑크빛 드레스와 머리 위의 작은 왕관이 떠올랐다.정말 공주처럼 너무 예뻤다.‘파티장에서는 화려한 조명 아래 더 눈부셨겠지...’사실... 진해원도 정말 그 생일 파티에 가고 싶었다.가서 직접 준비한 선물을 주고 싶었지만 그건 값비싼 것도 아니고 그저 조그만 정성이 담긴 물건이었다.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갑자기 방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열리더니 핑크빛 드레스 차림의 작은 실루엣이 케익을 들고 들어왔다.“다행이다. 아직 안 자고 있었구나!”현이가 반짝이는 눈으로 웃으며 말했다.“자고 있었으면 이 케익은 내일에야 먹을 수 있잖아. 그럼 생일 케익이 아니게 되니까!”현이는 두 손으로 케익을 내밀며 말했다.“자, 이건 내 생일 케익이야. 내가 일부러 제일 큰 조각으로 남겨뒀어. 진짜 맛있으니까 얼른 먹어봐!”현이의 눈웃음에 진해원은 멍하니 바라보다가 한참 후에야 조심스레 손을 뻗어 케익을 받아 들었다.그리고 한 입, 또 한 입...입안에 달콤한 크림 향이 퍼졌다. 너무 달지도 않고 부드럽고 진한 맛이었다.현이는 두 손으로 턱을 괴고 눈을 반짝이며 진해원이 케익을 먹는 모습을 바라봤다.“나 엄마한테 말했거든. 내년에는 생일 파티를 좀 작게 하기로 했대. 사람도 많이 안 부르고 조용하게 할 거야. 그땐 꼭 와야 돼, 원아!”그때 케익을 먹고 있던 진해원의 손이 잠시 멈췄다.‘내년...’‘정말 현이의 생일파티에 갈 수 있을까?’‘아니면 앞으로도 계속... 그곳에 갈 수 없는 걸까?’“그리고 1월이 되면 원이 네 생일이잖아! 그때는
하유은이 옆에 있으니 진해원은 정말 행복했다!...파티 내내 진해원이 보이지 않자 현이는 점점 더 시무룩해졌다.사실 현이는 오늘 생일 파티에서 진해원이 자신에게 줄 선물을 기대하고 있었다.게다가 이건 현이가 진해원과 친구가 된 이후 맞는 첫 번째 생일이기도 했다.“무슨 일이야? 기분이 안 좋아?”임유진이 딸에게 물었다.“엄마, 해원이는 왜 안 왔어?”임유진은 이유를 알고 있었다.진해원의 존재는 이미 강씨 가문에게는 늘 논란거리였다.만약 누군가가 그것을 부풀려 퍼뜨린다면 결국 아이에게 돌아오는 상처는 더 커질 것이 뻔했다.그녀는 잠시 멈칫하더니 어린아이가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말해 주었다.“오늘 우리가 나올 때 원이가 사람이 많은 곳은 싫다고 하지 않았어? 그래서 오고 싶지 않다고 했잖아.”현이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사람 많은 게 싫은 줄 알았다면 파티에 손님을 좀 줄이면 됐잖아. 여기 온 아저씨들 다 누군지도 모르겠어!”임유진은 딸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현아, 정말 원이가 생일 파티에 와주길 바랐니?”“응!”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원이는 내 가장 친한 친구야!”순수한 딸의 얼굴을 바라보며 임유진은 다시 한번 아이들의 세상이 얼마나 단순하고 아름다운지 감탄했다.그들이 자라서 어른들의 복잡한 감정과 원한을 알게 되더라도 여전히 서로 잘 지내길 바랄 뿐이었다.“그럼 나중에 원이를 위해 생일케익 남겨둘게. 집에 가져가서 같이 먹자. 너도 그때 같이 줄래?”임유진이 부드럽게 말했다.그 말에 현이는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좋아! 제일 큰 한 조각으로 꼭 남겨둘 거야!”...같은 시각 강씨 저택.진해원이 방구석에 웅크린 채 앉아 있었다.오늘 현이가 자신을 생일 파티에 데려가고 싶어 했지만 그는 “사람이 많아서 싫다”라는 핑계를 댔다.실제로는 생일파티에 참여하고 싶었지만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현이가 집을 떠난 뒤 사용인들의 아이들이 그를 조롱했다.“쟤 엄마 나쁜 사람이라서 파티에
화려한 생일 파티. S 시 상류 사회의 유명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강씨 가문 세쌍둥이 생일 파티.그야말로 도시의 모든 시선이 쏠린 가장 화려한 무대였다.하씨 가문 같은 평범한 집안이 이런 자리에 발을 들일 수 있었던 건 오직 한 사람 덕분이었다.강선겸... 정확히 말하자면 하유은 덕분이었다.만약 하유은 혼자 초대받았다면 사람들은 의아해할 터였다.그래서 하만수와 정가연 부부 그리고 하유은까지, 하씨 가문이 통째로 초대받은 것이었다.정가연은 눈앞에 펼쳐진 화려한 장면들에 그저 넋을 잃었다.황금빛 샹들리에, 반짝이는 대리석 바닥, TV 속에서나 보던 명사들이 바로 눈앞에서 웃고 있었다.심장이 빠르게 뛰었다.‘이게 진짜... 상류 사회구나.’입구에서부터 느껴지는 그 위압감.그녀는 속으로 되뇌었다.“이 세계에 발을 들이려면 무조건 강선겸을 꽉 붙잡아야 해.”그 아이만이 하씨 가문이 위로 올라갈 유일한 발판이었고 그 아이만이 자신 아들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열쇠였다.정가연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하유은의 손을 잡았다.“유은아, 가자. 오늘은 강씨 가문에서 우리를 초대한 날이잖니. 겸이 부모님께 인사드리고 세쌍둥이 생일도 꼭 축하해줘야지.”그녀는 말하면서 은근히 하만수를 향해 눈짓했다.하유은이라는 ‘보호막’이 있는 한 임유진과 강지혁이 자신들을 완전히 무시하지는 못할 거라고 믿었다.오늘 이 자리에서 사람들에게 ‘하씨 가문은 강씨 가문과 인연이 있다”라는 인상을 남기기만 해도 그것만으로도 큰 성공이었다.하만수도 그 의도를 알아차리고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유은아. 동생 손 잘 잡고. 겸이랑 그리고 겸이 부모님께 인사드리자꾸나.”하지만 하유은은 그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고 그저 넋이 나간 듯 주변을 바라봤다.눈부시게 반짝이는 홀.수많은 사람의 시선이 한 아이에게 쏠려 있었다.강선겸.그동안 하유은은 그를 지켜줘야 한다고 믿었다.아무도 없는 강선겸을 보호해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하지만 하유은은 곧 깨달았다.이제
“고맙다고?”신정우가 웃으며 물었다.그리고 그의 시선이 현이에게로 향했다.바로 이 아이 때문이었다. 아들 진해원이 강씨 가문에서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네가 고마워할 일은 없어.”차가운 목소리가 공기를 갈랐다.그 말에 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갸웃했다.어쩐지 이 ‘아저씨’가 낯설면서도 묘하게 익숙했다.하지만 현이는 알지 못했다.하지만 그녀는 알지 못했다.그 묘한 이끌림이 바로 진해원과 신정우가 닮았기 때문이라는 걸.신정우는 다시 시선을 돌려 진해원을 똑바로 바라봤다.그 눈빛 속에는 묘한 거리감과 냉기가 함께 섞여 있었다.“다음에 나를 찾아올 땐 강씨 저택을 떠날 결심이 섰을 때여야 한다.”그 말이 떨어지자 현이는 멍하니 굳어버렸다.곧이어 본능적으로 진해원을 자신의 뒤로 감쌌다. 마치 어린 병아리를 품에 안은 어미 닭처럼.하지만 현이도 겨우 다섯 살짜리 아이였다.“해원이는 절대 우리 집을 떠나지 않을 거예요! 아저씨 도대체 누구예요?”현이의 어린 목소리에는 단호함이 서려 있었다.하지만 설명할 수 없는 불안감이, ‘이 아저씨가 해원을 데려갈지도 모른다’라는 예감이 현이를 덮쳐왔다.“나는...”신정우가 무언가 말하려던 순간.“난 절대 여기서 안 나가요!”진해원이 갑자기 큰소리로 외쳤다.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던 신정우는 이내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그래?”짧은 두 글자였지만 그 속에는 미묘한 비웃음과 씁쓸한 체념이 섞여 있었다.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등을 돌려 떠났다.현이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곧 진해원을 와락 안았다.“난 알아. 해원이는 절대 안 떠날 거야!”그녀는 아이답게 해맑게 웃었다.하지만 그 미소 속에는 애써 감춘 두려움이 배어 있었다.그 순간 옆에서는 율이가 조용히 신정우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아이답지 않게 깊은 눈빛이었다....그날 밤.현이는 또 작은 베개와 이불을 들고 진해원의 방으로 왔다.이제는 매일 밤 같이 자는 게 당연한 일처럼 되어 있었다.“해원아
“그래.”신정우는 단 한 마디만 남기고 통화를 끊었다.그리고 곧바로 차 문을 열고 내렸다.그의 시선이 향한 곳엔 인파 속에서도 유난히 작고 여린 실루엣 하나가 있었다.신정우가 아이와 그에게 도움을 준 여인 앞에 다가서자 여자는 순간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이렇게 빠르게 그리고... 이토록 눈부시게 잘생긴 아버지가 나타날 줄은 몰랐던 것이었다.“고맙습니다. 아들은 제가 데리고 가겠습니다.”신정우가 낮고 부드럽게 말했다.“아... 아닙니다.”그러자 여자의 볼이 희미하게 붉어졌다.그리고 신정우는 아무렇지도 않게 진해원의 손을 잡았다.“자, 가자.”진해원은 순순히 그의 손을 잡고 길옆에 세워진 검은 세단으로 향했다.차 안에 오르자, 신정우가 아무렇지 않은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그래서. 이제 마음 정했니? 나랑 함께 녹원시로 돌아갈 거야?”그 말에 작은 어깨가 움찔했다.하지만 진해원은 고개를 저으며 조심스레 말했다.“그게 아니라... 돈을 좀 빌려달라고 하려고요.”“돈을?”신정우가 낮게 웃음을 흘렸다.“나한테 돈을 빌리겠다고?”“네...”진해원은 어색하게 대답하고는 작은 입술을 불안하게 오므리더니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신정우가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나한테 돈을 빌리면... 뭘로 갚을 건데?”그 말에 진해원의 얼굴이 굳어졌다.그래. 자신은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다.돈을 벌 능력도 가진 것도 아무것도 없었다.거리의 악사들처럼 연주라도 해서 벌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에겐 피아노조차 없었다.신정우가 느긋하게 말을 이었다.“만약 네가 나랑 녹원시로 돌아가겠다고 한다면... 그땐 돈을 빌려줄 수도 있지.”“녹원시로요...?”순간 진해원의 작은 몸이 굳어졌다.그는 잠시 침묵하다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싫어요. 전... 안 갈래요.”그는 현이 곁에 있고 싶었다.“그렇게까지 강씨 저택에 머무르고 싶어?”그러자 신정우의 눈빛이 차가워졌다.“지금 네 꼴 좀 봐. 남의 집 신세나 지면서 좋아하는 애 선물 하나 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