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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장

Author: 달팽이 질주
서지헌의 처소에서 불길이 치솟는 것을 본 노부인 서씨는 아들이 걱정돼 황급히 달려왔다. 그런데 문 앞에 이르자마자 차마 믿기 힘든 진실을 듣고 말았다.

노부인은 지팡이를 짚은 채 몸을 떨며 서지헌 앞으로 다가갔다.

"노부인, 제 말씀을 들어 주십시오."

윤채령이 황급히 노부인을 막아서려 했지만, 노부인은 지팡이를 휘둘러 그녀를 밀어냈다.

노부인은 싸늘한 눈빛으로 서지헌을 노려봤다.

"방금 저 아이가 한 말이 사실이냐?"

서지헌은 차마 어머니의 눈을 마주하지 못한 채 힘겹게 입을 열었다.

"예. 사실입니다."

짝!

거센 손바닥이 서지헌의 뺨을 후려쳤다.

"서지헌! 어찌 그 아이에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었느냐? 해원이는 대하의 영웅이다. 그런데 네가 아흔아홉 번이나 흉괘를 꾸며 그 아이를 수많은 사람을 죽인 재앙 덩어리로 몰아세웠구나! 어려서부터 함께 자란 동생이자, 목숨을 걸고 너를 구한 은인인데 어찌 그럴 수 있느냐!"

뺨에는 붉은 손자국이 선명하게 찍혔지만, 서지헌의 얼굴은 오히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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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제의 생일 연회에는 술잔이 오가고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은은한 악기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곳곳에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그러나 불청객 하나가 갑자기 나타나 그 즐거운 분위기를 깨뜨렸다.오랫동안 자취를 감췄던 서지헌이 홀연히 모습을 드러냈다. 예전 국사의 화려한 관복을 차려입고 흐트러짐 없이 머리를 단정히 빗어 넘겼지만, 수척한 얼굴과 비정상적으로 들뜬 눈빛만은 감출 수 없었다. 그가 모습을 드러내자 대전은 순식간에 적막에 잠겼다. 황제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어지자 대신들은 숨을 죽였고, 누구 하나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하지만 서지헌은 얼어붙은 분위기를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사람들을 스쳐 지나 곧장 황제 곁에 앉은 강해원에게 닿았다.그는 한순간도 강해원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어전 앞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더니, 소름이 돋을 만큼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해원, 너와 혼인하러 왔다."순간 모두가 숨을 죽였다. 강해원 역시 믿기지 않는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서지헌은 공손히 큰절을 올린 뒤 두 손으로 비단 쟁반을 높이 들어 올렸다. 그 위에는 은은한 광택을 띠는 묵직한 옥패 아홉 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서씨 가문이 아홉 대에 걸쳐 대하 왕조에 충성을 다하며 세운 공을 상징하는 물건으로, 가문의 모든 영예와 기반이 담긴 상징이었다."폐하."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빛에는 모든 것을 내던질 각오와 광기 어린 집념이 서려 있었다."신이 지은 죄가 너무도 커 만 번 죽어도 갚을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서씨 가문 아홉 대의 공적을 바치겠사오니 부디 폐하께서는 명을 거두시고 해원을 다시 신에게 내려 주십시오!"그의 목소리가 대전 안에 울려 퍼졌고 모든 것을 걸겠다는 다짐이 보였다."이번에는 서씨 가문의 모든 선조를 걸고 맹세하겠습니다. 다시는 해원을 저버리지 않겠습니다!"황제는 굳은 얼굴로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보았다.'감히 짐의 면전에서 며느리에게 청혼을 하다니! 망할

  • 길을 달리한 우리   제15장

    강해원의 목소리는 끝까지 담담했지만, 그 말은 서지헌의 가슴을 깊이 후벼 팠다.서지헌은 이어지는 추궁을 더는 견디지 못하고 핏기 없는 얼굴로 털썩 주저앉았다. 무언가 해명하려 입을 열었지만, 이제는 변명할 말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그토록... 내가 미웠소? 단 한 번의 기회조차 주기 싫을 만큼?"강해원은 눈앞의 사내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고통과 후회가 가득 서려 있었다."서지헌, 저는 당신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은 너무나 힘드니까요. 그저 이승에서든 저승에서든 다시는 만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다시는 만나지 않겠다?'그 한마디가 마지막 선고처럼 서지헌의 가슴을 짓눌렀다.'어머니도, 강해원도 다시는 나를 만나고 싶어 하지 않다니.'"하..."그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서지헌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강씨 가문의 저택을 나섰다. 겨울의 찬바람이 얼굴을 매섭게 스쳤지만, 가슴속 공허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그때 검은 평복을 입은 사내가 그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키가 훤칠하고 걸음걸이가 힘찬 그 사내는 제법 재미있어 보이는 장난감을 몇 개 들고 환한 얼굴로 강씨 가문의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서지헌은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고 어딘가 낯익은 얼굴이었다.평소 자신을 차갑게 노려보며 짐승이라 욕하던 늙은 하인은 그 사내를 보자 반갑게 맞이했다. 직접 안채까지 안내한 뒤에는 다시 차가운 표정으로 돌아와 서지헌에게 어서 떠나라며 재촉했다. 대문은 서지헌의 등 뒤에서 세차게 닫혔다.서지헌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차림새를 보아하니 해원과 함께 변방에서 돌아온 무장으로, 상의할 일이 있어 찾아온 것이리라 여겼다.겨울의 묘지는 적막하고 고요했다.강해원과 이휘겸은 노부인 서씨의 묘 앞에 나란히 섰다. 향 세 자루에서 피어오른 연기가 하늘로 가늘게 흩어졌다.강해원은 묘비를 바라보며, 살아 계신 어른과 평범한 이야기를 나누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어머님, 이 사람은 제 부군 이휘겸입니다."잠시 말을 멈춘

  • 길을 달리한 우리   제14장

    강해원이 강씨 가문의 옛 저택으로 돌아오니, 뜰은 예전처럼 말끔히 정돈되어 있었다. 그녀가 살던 뜰의 매화나무도 정성껏 손질한 덕분에 가지마다 작은 꽃망울이 탐스럽게 맺혀 있었다.늙은 하인이 빗자루를 짚은 채 다가와 흰 눈썹을 찌푸리며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아가씨, 그 서씨... 놈이 아직도 대문 앞을 지키고 있습니다. 아무리 쫓아도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이 추위에 저러다 문 앞에서 얼어 죽기라도 하면 괜히 재수만 없을까 걱정입니다!"강해원은 뜨거운 찻잔을 들어 찻잎을 살짝 불어낸 뒤 한 모금 마시고는 담담히 말했다."들여보내거라."황성으로 돌아오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언젠가는 서지헌과 마주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어떤 인연은 직접 매듭을 지어야 했고, 어떤 관계는 마주 보며 끝을 맺어야 했다.은은한 차 향기가 피어오르는 가운데 두 사람은 마주 앉았다. 강해원은 주전자를 들어 그의 찻잔에 뜨거운 차를 따라 주었다. 손길은 자연스러웠지만 태도는 한없이 차가웠다."국사님,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철저히 거리를 두는 말투였다. 마치 동료를 대하듯 조금의 사사로운 감정조차 담겨 있지 않았다.'국사님.'낯선 호칭이 그의 가슴을 깊이 후벼 팠다."해원, 제발... 이렇게까지 차갑게 대하지는 말아 다오."그의 목소리에는 불안과 애원이 짙게 배어 있었다."지난 세월 내내 너무도 그리웠소. 조상 대대로 내려온 규율만 아니었다면 진작 변방으로 달려갔을 것이오. 다시는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해 다오. 나를 때려도 좋고 욕해도 좋소. 어떤 벌을 내리든 달게 받겠소. 그러니 제발... 다시는 어디 있는지도 모른 채 살아가게 하지는 말아 다오. 정말... 너무도 괴로웠소."강해원은 끝까지 덤덤한 표정으로 그의 말을 들었다. 그리고 앞의 찻잔을 들어 천천히 한 모금 마셨다."그 말씀을 하러 오신 것이라면 충분히 들었습니다. 이제 돌아가십시오."그녀가 자리를 정리하려 하자 서지헌은 다급히 입을 열었다."해원, 내 말을

  • 길을 달리한 우리   제13장

    "장군, 황성에서 또 편지가 왔습니다."익숙한 필체를 보는 순간 강해원의 마음이 잠시 흔들렸다. 서지헌에 관한 일은 더는 알고 싶지 않았지만, 두 사람이 부부의 연을 끊은 일이 워낙 크게 알려진 탓에 그의 소식은 끊임없이 들려왔다.서지헌은 이제 국사의 허울만 있고 윤채령은 거열형에 처해졌다. 황제는 친히 조서를 내려 강해원 부녀의 공적을 인정했고 이제 더는 그녀를 재앙 덩어리라 부르는 사람은 없었다.강해원은 편지를 불길 속에 던져 버린 뒤, 앞으로는 서지헌의 편지를 가져오지 말라고 일렀다.'그가 후회한다 한들, 이제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강해원, 천막에 숨어 수를 놓고 있느냐? 왜 그리 꾸물거리느냐? 어서 나오지 않으면 천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유성우를 놓친다."천막 밖에서 얄미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이휘겸, 간이 부었구나."강해원은 채찍을 들고 곧장 뛰쳐나갔다. 곧 진영 곳곳에서 이휘겸의 애원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누님, 착한 누님, 이번 한 번만 살려 주십시오."그렇게 티격태격하는 사이 사 년이 흘렀다.덕승문의 청석길 위로 익숙한 수레바퀴 소리가 울려 퍼졌다.가느다란 손이 마차 문발을 걷어 올렸다. 강해원은 높이 솟은 성벽을 바라보다 잠시 넋을 잃었다. 살아생전 다시 황성을 밟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어머니."어린아이의 목소리에 강해원은 정신을 차렸다."아버지는 어찌 저희와 함께 성으로 들어오지 않으십니까?"강해원은 시선을 거두고 딸을 품에 안은 뒤 손가락으로 코끝을 살짝 건드렸다."지난번에 황성을 그냥 지나쳤다가 황조부님께서 몹시 노하셨단다. 이번에는 우리가 먼저 들어가자꾸나. 네가 황조부님의 마음을 풀어 드리면 아버지도 벌하지 않으실 게다."옆에서 또 다른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흥. 아버지께서는 사 년이 지나도 사람 화나게 하는 재주는 여전하시군요."강해원은 이마를 짚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딸은 얌전하고 조용했지만, 아들은 이휘겸을 꼭 빼닮았다. 이제 겨우 네 살인데도 변방에서는 벌써 이름

  • 길을 달리한 우리   제12장

    서지헌은 사람을 시켜 조사했고, 밝혀진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알고 보니 윤채령은 당시 노부인 서씨의 강요로 떠난 것이 아니라 한 협객과 사랑에 빠져 그를 따라 강호를 떠돌았던 것이다.이번에 황성으로 돌아온 것도 서지헌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 협객에게는 본처가 있었고, 본처가 윤채령의 임신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윤채령은 협객과 함께 황성으로 달아난 뒤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지만, 성문 앞에서 서지헌에게 붙잡혔다. 서지헌의 깊은 마음을 알아챈 그녀는 협객과 계책을 꾸몄다. 서지헌과 혼인해 뱃속 아이를 그의 아이인 것처럼 속이면 국사부의 막대한 재산은 그들의 것이 될 것이다.말로 다 할 수 없는 치욕을 느낀 서지헌은 검을 뽑아 협객을 베려 했다. 그 순간 윤채령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제 부군을 해치지 마십시오." 서지헌은 이를 악물었고 입가에서 어느새 피가 배어 나왔다."윤채령, 나는 한 번도 너를 박대한 적이 없다. 빈민굴에서 데려와 지금까지 먹이고 입히며 보살폈는데, 어째서 나를 속였느냐?" 윤채령은 서지헌을 밀쳐 낸 뒤 협객과 함께 뒤로 물러섰다. "서지헌, 네가 뭐 그리 대단한 사내인 줄 아느냐? 너와 혼인하면 평생 황성을 벗어날 수도 없는데, 강해원 같은 바보가 아니고서야 누가 그런 감옥에 제 발로 들어가려 하겠느냐? 내가 너를 속였다고? 내가 나를 위해 정절을 지키라 했느냐? 점괘를 바꾸라 시켰느냐? 강해원이 재앙 덩어리라는 소문을 퍼뜨리라 강요했느냐? 나는 국사부를 떠나 부군을 찾으려 했는데, 나를 붙잡아 보내지 않은 건 너였다. 기어이 나와 혼인하겠다 우긴 것도 너였지. 내가 너를 속인 것이 아니라, 네 스스로 덫에 걸어 들어온 것이다."그제야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고 우스운 사람이었는지 깨달은 서지헌에게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닥쳐! 닥치라고!"머리가 더욱 지끈거렸다. 서지헌은 더는 지난 일을 듣고 싶지 않았지만, 윤채령은 쌓였던 분노를 모조리 쏟아냈다."내가 일부러 물에 빠졌다는 걸 너도 알

  • 길을 달리한 우리   제11장

    한겨울 새벽, 노부인 서씨는 비녀를 빼고 머리를 풀어헤친 채 맨발로 서리 내린 청석길을 걸으며 쉰 목소리로 외쳤다."제가 자식을 잘못 가르쳤습니다. 제 아들 서지헌이 사사로운 욕심으로 점괘의 길흉을 바꾸어 강해원 장군의 명예를 더럽혔으니, 폐하께서 벌을 내려 주십시오."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국사가 한 여인을 위해 아흔아홉 번이나 점괘를 조작했다는 소문이 황성 전역에 퍼졌다.조정이 발칵 뒤집히자 황제는 크게 노해 질책하는 조서를 내렸다. 서씨 가문이 아홉 대에 걸쳐 나라에 충성을 다하지 않았다면 당장 죽이고 싶을 정도였다.우롱당한 백성들은 분노했고, 강해원을 비난했던 사람들은 더욱 깊은 죄책감에 빠졌다. 늘 공정하고 엄정하던 국사가 이런 짓을 저질렀을 줄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국사는 백성의 신뢰를 완전히 잃었고, 아홉 대에 걸쳐 쌓아 온 명성과 권위도 한순간에 무너졌다.노부인은 끝내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이틀 뒤 세상을 떠났다. 임종하는 순간까지도 손에는 강해원이 손수 지어 준 무릎보호대를 꼭 쥐고 있었다.아홉 대에 걸쳐 이어 온 가문의 기반은 서지헌의 손에서 무너졌고, 황제의 질책과 백성의 손가락질까지 받게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은 떠났고,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자 서지헌은 끝내 무너졌다.그는 이 순간만큼은 강해원이 곁에 있어 주기만을 간절히 바라며 시종을 불렀다."노부인의 부고를 변방으로 보내 부인께 알려라."'어머니는 어릴 적부터 해원을 가장 아끼셨으니... 분명 돌아올 것이다.'시종은 차마 그의 얼굴을 바라보지 못한 채 어렵게 입을 열었다."노부인께서 임종 전에 강해원 장군께는 부고를 전하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장군께서 장례에 오실 필요도 없다고 하셨습니다."그 말 한마디에 서지헌의 마지막 희망마저 산산이 무너져 내렸다.밤하늘은 먹물을 풀어놓은 듯 짙었고, 은하수는 머리 위로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강해원은 끝없이 펼쳐진 초원에 누워 자신을 든든하게 품어 주는 대지의 온기를 느꼈다.황성에서 멀어질수록 세상은 한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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