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대하국 황성에는 여장군 강해원이 혼인한 지 오 년이 지나도록 순결한 몸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떠돌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부군은 대하의 국사 서지헌이었다. 서씨 가문의 가법에 따르면 중대한 일은 반드시 국사가 직접 점을 쳐야 했다. 길괘가 나와야 진행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큰 재앙이 닥친다고 했다. 서지헌은 강해원과 합방하기 위해 아흔여덟 번 점을 쳤으나 길괘는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황성에는 차츰 온갖 소문이 퍼졌다. "강해원이 너무 많은 사람을 죽여 서씨 가문의 선조에게 인정받지 못한 것 아닐까!" "그러게. 여인이 전쟁터에 나가 날마다 군영에서 사내들과 뒤섞여 지냈으니, 진작 몸을 더럽힌 것 아니야?" 아흔아홉 번째 점을 치고 나서야 강해원은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란 부군이 줄곧 길괘를 흉괘로 몰래 바꿔 왔다는 거짓을 알게 되었다. 윤채령을 위해 정절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강해원은 곧바로 궁으로 들어가 황제에게 부부의 연을 끊어 달라고 청했다. 그녀가 떠나던 날, 서지헌은 뒤쫓아와 애원했다. "해원, 길괘가 나왔다."
View More황제의 생일 연회에는 술잔이 오가고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은은한 악기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곳곳에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그러나 불청객 하나가 갑자기 나타나 그 즐거운 분위기를 깨뜨렸다.오랫동안 자취를 감췄던 서지헌이 홀연히 모습을 드러냈다. 예전 국사의 화려한 관복을 차려입고 흐트러짐 없이 머리를 단정히 빗어 넘겼지만, 수척한 얼굴과 비정상적으로 들뜬 눈빛만은 감출 수 없었다. 그가 모습을 드러내자 대전은 순식간에 적막에 잠겼다. 황제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어지자 대신들은 숨을 죽였고, 누구 하나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하지만 서지헌은 얼어붙은 분위기를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사람들을 스쳐 지나 곧장 황제 곁에 앉은 강해원에게 닿았다.그는 한순간도 강해원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어전 앞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더니, 소름이 돋을 만큼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해원, 너와 혼인하러 왔다."순간 모두가 숨을 죽였다. 강해원 역시 믿기지 않는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서지헌은 공손히 큰절을 올린 뒤 두 손으로 비단 쟁반을 높이 들어 올렸다. 그 위에는 은은한 광택을 띠는 묵직한 옥패 아홉 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서씨 가문이 아홉 대에 걸쳐 대하 왕조에 충성을 다하며 세운 공을 상징하는 물건으로, 가문의 모든 영예와 기반이 담긴 상징이었다."폐하."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빛에는 모든 것을 내던질 각오와 광기 어린 집념이 서려 있었다."신이 지은 죄가 너무도 커 만 번 죽어도 갚을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서씨 가문 아홉 대의 공적을 바치겠사오니 부디 폐하께서는 명을 거두시고 해원을 다시 신에게 내려 주십시오!"그의 목소리가 대전 안에 울려 퍼졌고 모든 것을 걸겠다는 다짐이 보였다."이번에는 서씨 가문의 모든 선조를 걸고 맹세하겠습니다. 다시는 해원을 저버리지 않겠습니다!"황제는 굳은 얼굴로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보았다.'감히 짐의 면전에서 며느리에게 청혼을 하다니! 망할
강해원의 목소리는 끝까지 담담했지만, 그 말은 서지헌의 가슴을 깊이 후벼 팠다.서지헌은 이어지는 추궁을 더는 견디지 못하고 핏기 없는 얼굴로 털썩 주저앉았다. 무언가 해명하려 입을 열었지만, 이제는 변명할 말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그토록... 내가 미웠소? 단 한 번의 기회조차 주기 싫을 만큼?"강해원은 눈앞의 사내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고통과 후회가 가득 서려 있었다."서지헌, 저는 당신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은 너무나 힘드니까요. 그저 이승에서든 저승에서든 다시는 만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다시는 만나지 않겠다?'그 한마디가 마지막 선고처럼 서지헌의 가슴을 짓눌렀다.'어머니도, 강해원도 다시는 나를 만나고 싶어 하지 않다니.'"하..."그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서지헌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강씨 가문의 저택을 나섰다. 겨울의 찬바람이 얼굴을 매섭게 스쳤지만, 가슴속 공허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그때 검은 평복을 입은 사내가 그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키가 훤칠하고 걸음걸이가 힘찬 그 사내는 제법 재미있어 보이는 장난감을 몇 개 들고 환한 얼굴로 강씨 가문의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서지헌은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고 어딘가 낯익은 얼굴이었다.평소 자신을 차갑게 노려보며 짐승이라 욕하던 늙은 하인은 그 사내를 보자 반갑게 맞이했다. 직접 안채까지 안내한 뒤에는 다시 차가운 표정으로 돌아와 서지헌에게 어서 떠나라며 재촉했다. 대문은 서지헌의 등 뒤에서 세차게 닫혔다.서지헌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차림새를 보아하니 해원과 함께 변방에서 돌아온 무장으로, 상의할 일이 있어 찾아온 것이리라 여겼다.겨울의 묘지는 적막하고 고요했다.강해원과 이휘겸은 노부인 서씨의 묘 앞에 나란히 섰다. 향 세 자루에서 피어오른 연기가 하늘로 가늘게 흩어졌다.강해원은 묘비를 바라보며, 살아 계신 어른과 평범한 이야기를 나누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어머님, 이 사람은 제 부군 이휘겸입니다."잠시 말을 멈춘
강해원이 강씨 가문의 옛 저택으로 돌아오니, 뜰은 예전처럼 말끔히 정돈되어 있었다. 그녀가 살던 뜰의 매화나무도 정성껏 손질한 덕분에 가지마다 작은 꽃망울이 탐스럽게 맺혀 있었다.늙은 하인이 빗자루를 짚은 채 다가와 흰 눈썹을 찌푸리며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아가씨, 그 서씨... 놈이 아직도 대문 앞을 지키고 있습니다. 아무리 쫓아도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이 추위에 저러다 문 앞에서 얼어 죽기라도 하면 괜히 재수만 없을까 걱정입니다!"강해원은 뜨거운 찻잔을 들어 찻잎을 살짝 불어낸 뒤 한 모금 마시고는 담담히 말했다."들여보내거라."황성으로 돌아오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언젠가는 서지헌과 마주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어떤 인연은 직접 매듭을 지어야 했고, 어떤 관계는 마주 보며 끝을 맺어야 했다.은은한 차 향기가 피어오르는 가운데 두 사람은 마주 앉았다. 강해원은 주전자를 들어 그의 찻잔에 뜨거운 차를 따라 주었다. 손길은 자연스러웠지만 태도는 한없이 차가웠다."국사님,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철저히 거리를 두는 말투였다. 마치 동료를 대하듯 조금의 사사로운 감정조차 담겨 있지 않았다.'국사님.'낯선 호칭이 그의 가슴을 깊이 후벼 팠다."해원, 제발... 이렇게까지 차갑게 대하지는 말아 다오."그의 목소리에는 불안과 애원이 짙게 배어 있었다."지난 세월 내내 너무도 그리웠소. 조상 대대로 내려온 규율만 아니었다면 진작 변방으로 달려갔을 것이오. 다시는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해 다오. 나를 때려도 좋고 욕해도 좋소. 어떤 벌을 내리든 달게 받겠소. 그러니 제발... 다시는 어디 있는지도 모른 채 살아가게 하지는 말아 다오. 정말... 너무도 괴로웠소."강해원은 끝까지 덤덤한 표정으로 그의 말을 들었다. 그리고 앞의 찻잔을 들어 천천히 한 모금 마셨다."그 말씀을 하러 오신 것이라면 충분히 들었습니다. 이제 돌아가십시오."그녀가 자리를 정리하려 하자 서지헌은 다급히 입을 열었다."해원, 내 말을
"장군, 황성에서 또 편지가 왔습니다."익숙한 필체를 보는 순간 강해원의 마음이 잠시 흔들렸다. 서지헌에 관한 일은 더는 알고 싶지 않았지만, 두 사람이 부부의 연을 끊은 일이 워낙 크게 알려진 탓에 그의 소식은 끊임없이 들려왔다.서지헌은 이제 국사의 허울만 있고 윤채령은 거열형에 처해졌다. 황제는 친히 조서를 내려 강해원 부녀의 공적을 인정했고 이제 더는 그녀를 재앙 덩어리라 부르는 사람은 없었다.강해원은 편지를 불길 속에 던져 버린 뒤, 앞으로는 서지헌의 편지를 가져오지 말라고 일렀다.'그가 후회한다 한들, 이제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강해원, 천막에 숨어 수를 놓고 있느냐? 왜 그리 꾸물거리느냐? 어서 나오지 않으면 천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유성우를 놓친다."천막 밖에서 얄미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이휘겸, 간이 부었구나."강해원은 채찍을 들고 곧장 뛰쳐나갔다. 곧 진영 곳곳에서 이휘겸의 애원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누님, 착한 누님, 이번 한 번만 살려 주십시오."그렇게 티격태격하는 사이 사 년이 흘렀다.덕승문의 청석길 위로 익숙한 수레바퀴 소리가 울려 퍼졌다.가느다란 손이 마차 문발을 걷어 올렸다. 강해원은 높이 솟은 성벽을 바라보다 잠시 넋을 잃었다. 살아생전 다시 황성을 밟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어머니."어린아이의 목소리에 강해원은 정신을 차렸다."아버지는 어찌 저희와 함께 성으로 들어오지 않으십니까?"강해원은 시선을 거두고 딸을 품에 안은 뒤 손가락으로 코끝을 살짝 건드렸다."지난번에 황성을 그냥 지나쳤다가 황조부님께서 몹시 노하셨단다. 이번에는 우리가 먼저 들어가자꾸나. 네가 황조부님의 마음을 풀어 드리면 아버지도 벌하지 않으실 게다."옆에서 또 다른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흥. 아버지께서는 사 년이 지나도 사람 화나게 하는 재주는 여전하시군요."강해원은 이마를 짚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딸은 얌전하고 조용했지만, 아들은 이휘겸을 꼭 빼닮았다. 이제 겨우 네 살인데도 변방에서는 벌써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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