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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Penulis: 수박빙수
아림은 걸음을 멈추고 헛웃음을 흘렸다.

“우리 부모님께서 박 대표에게 충분히 설명했을 것 같은데요?”

로아의 친부모는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때 로아는 아직 갓난아이였고, 곧 보육원으로 보내질 처지였다.

아림은 혼자 남겨진 아이를 차마 외면하지 못해 입양하기로 결심했다.

이헌은 아림을 몇 초 바라보다가 담배를 눌러 껐다. 긴 다리로 성큼성큼 아림 곁까지 걸어왔다.

“그때 우리는 임신 준비 중이었어. 임신했을 가능성이 있었고, 로아 나이도 딱 맞아떨어져. 의심하는 게 당연하지 않나?”

이헌의 내려다보는 눈빛에는 살피는 기색이 담겨 있었다. 여전히 윗자리에 선 사람의 태도였다.

“확인할 방법이야 얼마든지 있지만, 네 입으로 직접 듣고 싶었어.”

아림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속에서 치미는 짜증을 눌러 앉힌 채 이헌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아니야.”

“로아의 출생에 대해선 더 설명하고 싶지 않아. 당신이 어떻게 확인하든 내가 막을 수도 없겠지. 다만 반대로 생각해 봐. 우리 부모님이 최지희를 얼마나 아끼는지 당신도 알잖아.”

“로아가 정말 당신 아이였다면, 두 분이 나와 로아를 어디 깊숙한 곳에 숨겼을 거야. 우리를 밖으로 내보내 당신과 최지희의 결혼에 흠집을 내게 둘 리 없잖아.”

아림은 팔짱을 끼고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갔다. 입가에 차가운 웃음이 스쳤다.

“게다가 당신은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나오지? 내가 바람난 전남편의 아이라도 낳았을까?”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주변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이헌은 서늘한 눈빛으로 아림을 깊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팽팽한 침묵 사이로 아래층에서 지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밥이 다 됐어. 얼른 내려와.”

아림은 이헌 너머로 시선을 던졌다. 마당에서 지희가 유빈을 안은 채 옥상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곱게 다듬은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긴장감이 가득했다.

아림은 무심히 시선을 거두고 돌아섰다.

막 방으로 들어서려던 때, 뒤에서 이헌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로아가 네 말대로 입양아이길 바라. 확인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하지만 정말 내 딸이라면, 아무도 없이 네 곁에 놔두진 않을 거야.”

말을 마친 이헌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곧장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

30분 뒤, 아림이 캐리어를 끌고 내려왔을 땐 이미 식사가 한창이었다.

이헌은 그릇을 들고 아기 의자에 앉은 유빈에게 차분히 밥을 먹이고 있었다.

최태성 부부는 지희의 접시에 쉴 새 없이 반찬을 올려 주고 있었고, 집 전체가 화목한 분위기로 가득했다.

로아만이 한쪽에서 작은 고개를 폭 떨군 채, 서러움 가득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왜, 왜 우리 엄마 안 기다려요?”

대꾸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헌만 로아를 무심히 한번 훑고는, 고개를 돌려 도우미더러 로아에게 밥을 먹이라고 일렀다.

식사 내내 지희의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예전에 지희는 익스트림 스포츠를 하다 팔을 다쳤고, 다 나은 뒤로도 해외 공연 때마다 팔이 제멋대로 떨려 실수를 반복했고, 그 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민혜정은 속상해하며 곧장 지희의 손을 잡고 안타까워했다. 그러고는 이헌을 탓하듯 말했다.

“그때 뮤엔병원에서 초청장을 받았다면서? 박 서방, 지희를 데리고 백요한 교수님에게 진료받게 하지 않았나?”

지희는 입술을 깨물었다. 눈가가 희미하게 붉어졌지만, 이헌을 감싸듯 낮게 말했다.

“엄마, 이헌 오빠 탓 아니에요. 뮤엔은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정신건강의학 연구기관이라, 일반 외래 진료는 보지 않는대요.”

“우리가 갔을 때도 직원이 초청 명단에 우리 이름이 없다는 걸 확인했고, 아무리 부탁해도 안으로 들여보내 주지 않았어요.”

“이번에 돌아온 것도 이헌 오빠가 금령 컨벤션센터에서 세계적인 정신건강의학 국제학술대회가 열린다는 걸 알아봐 줬기 때문이에요. 백요한 교수님과 연구팀도 참석한대요.”

“최근 연구팀에 새로 합류한 제자 중에 ‘제니’라는 분이 있는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그러니까 PTSD를 전문으로 연구한대요.”

“그분 논문은 임상적 가치도 아주 높다고 했고, 제 해외 주치의도 그분에게 치료받을 수만 있다면 제 병이 좋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했어요.”

“다만 워낙 조용히 활동하는 분이라, 실제로 본 사람이 거의 없대요.”

제니 이야기가 나오자 지희의 눈에 동경하는 빛이 어렸다.

지희는 조심스레 이헌을 바라보며 속으로 다짐했다.

‘반드시 다시 무대에 설 거야. 그래야 이헌 오빠 곁에 어울리는 사람이 될 수 있어.’

‘누구에게도 이헌 오빠를 빼앗기지 않을 거야.’

“이모님, 로아는 제가 먹일게요.”

아림의 목소리가 갑자기 들리자 다들 입을 다물었다.

로아가 아림을 보자마자 신이 나서 포동포동한 팔을 휘저었다.

아림은 도우미에게서 국을 받아 들고, 조심스럽게 식혀 한 숟가락씩 딸에게 먹였다.

식사 분위기는 곧 미묘하게 바뀌었다.

지희는 잠깐 멈칫하더니, 이내 미안한 척 자리에서 일어나 아림의 곁으로 다가왔다.

“언니, 그때 일은 제가 늘 미안하게 생각했어요. 그때 했던 말은 다 화가 나서 한 말이었어요. 언니를 다치게 하려고 한 생각은 정말 없었는데...”

“그리고 이헌 오빠가 절 위해서 언니한테 그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어요...”

사과라는 말과 달리, 지희의 눈가와 입매에는 감출 수 없는 달콤함과 우쭐함이 번졌다.

지희는 가볍게 아림의 팔을 잡았다.

“그래도 다 지난 일이잖아요. 언니도 뮤엔병원의 그분들을 만나고 싶겠죠? 이번 국제학술대회 초청장은 구하기가 정말 어렵대요.”

“이헌 오빠가 정말 애를 써서 겨우 두 장을 구했어요. 제가 백요한 교수님을 뵈면 언니 얘기 잘해 볼게요. 언니도 그런 분을 뵐 기회가 생기게요. 어때요?”

아림은 웃는 듯 웃지 않는 얼굴로 말했다.

“그래? 그럼 미리 고맙다고 해야겠네.”

“아니에요.”

지희는 달콤하게 웃고 다시 최태성 부부 곁으로 돌아가 앉았다.

최태성 부부는 지희가 착하고 배려심이 깊다며 연달아 칭찬했다.

최태성은 손을 크게 내저으며 지희를 달랬다.

“지희야, 걱정하지 마라. 돈은 문제가 아니다. 인맥도 우리가 찾으면 돼.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아빠 엄마가 꼭 그 ‘제니’라는 사람을 데려다가 네 병을 완전히 고쳐 주마.”

“우리 지희는 태어날 때부터 무대에서 꼭 설 사람이었으니까.”

...

아침 식사 뒤, 아림은 본가에 더 머물고 싶지 않았다. 가족에게 인사한 뒤 딸을 데리고 집을 나섰다.

로아를 차에 태우자마자 민혜정이 뒤따라 나와 아림을 한쪽으로 불렀다.

나무 그늘에서 민혜정은 아림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목소리에는 여러 뜻이 담겨 있었다.

“아림아, 지희와 이헌이는 사이가 좋아. 아이도 저렇게 컸고. 엄마가 한마디만 할게. 박 서방에게 더는 딴마음 품지 마라. 서로 상처만 될 뿐이야. 굳이 그럴 필요 없잖니.”

아림은 어이가 없었지만 민혜정의 의도를 곧 이해했다.

지희가 옥상에서 아림과 이헌이 단둘이 있던 일을 민혜정에게 말한 모양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버린 물건을 다시 줍는 취미 없어요. 남의 결혼을 건드리는 짓도 하지 않을 거예요.”

아림의 표현은 직설적이고 따가웠다.

민혜정의 표정이 조금 굳었지만, 잠시 뒤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다행이고. 엄마도 네가 걱정돼서 그래. 참, 기회가 있으면 네 동생 대신 그 ‘제니’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좀 알아봐 줘.”

아림이 입을 열기도 전에 민혜정은 혼자 피식 웃었다.

“됐다. 네가 운영하는 작은 병원에서 업계 탑급 의사를 알 리가 없지. 엄마가 괜한 생각을 했구나.”

아림은 잠깐 멈칫했다가 희미하게 웃었다.

“네, 맞아요. 로아가 기다리니까 먼저 가볼게요.”

아림은 로아를 무용학원에 데려다주었다. 수업이 끝나면 도우미가 데리러 가도록 부탁했고, 저녁에는 로아가 가장 좋아하는 식당에 데려가겠다고 약속했다.

그런 뒤 차를 몰고 병원으로 향했다.

오늘은 공휴일이었지만, 병원은 평소처럼 열려 있었다.

아림의 진료일이기도 해서, 여러 내담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휴일이라 길에 나온 사람이 많았고 도로는 유난히 막혔다.

차는 차량 행렬 속에서 거의 기어가듯 움직였다.

앞쪽으로 길게 이어진 차들의 후미등을 보며 아림은 마음이 급해졌다.

9시에 첫 상담이 시작되는데, 시간은 벌써 8시 50분이었다.

아림은 비서에게 먼저 내담자 검사를 진행하게 하려 했다.

그때, 둔탁한 충격음이 터졌다.

생각에 잠겨 있던 아림은 아무 대비도 하지 못했다.

충격에 몸이 앞으로 밀리며 운전대에 세게 부딪혔다.

묵직한 통증이 가슴께로 퍼졌다.

아림은 운전대를 꽉 붙잡고 숨을 골랐다.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룸미러를 보았다.

‘뒤차가 들이받은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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