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윤단미와 지호건이 결혼한 지 2년째 되던 어느 날. 단미는 우연히 호건의 여동생이 던진 질문을 듣게 된다. “새언니랑 채림 언니가 동시에 오빠 앞에 서 있어. 둘 중 한 사람만 아내로 골라야 한다면 누구를 선택할 거야?” 호건의 대답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채림.” 그 한마디로 충분했다. 단미는 울며 남편에게 매달리는 대신, 누구보다 이성적으로 이혼을 선택했다. 하지만 협의이혼 숙려기간이 끝나는 날, 뒤늦게 임신 사실을 알게 된다. 하필 호건에게 현장에서 임신 사실을 들키고 만다. 단미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말했지만, 의사는 현재 몸 상태로는 임신중지를 권하기는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자 호건은 두 가지 선택지를 내놓았다. 첫째, 이혼을 취소하고 다시 부부로 돌아간다. 둘째, 예정대로 이혼한다. 아이는 단미가 키우되, 출산 전까지는 호건과 한집에서 지낸다. 단미는 망설임 없이 두 번째를 골랐다. 그렇게 그녀는 전남편과 기묘한 이혼 후 동거를 시작했다. 그런데 함께 살기 시작한 뒤, 호건이 달라졌다. 일 년 내내 쉬는 날도 없이 회사에 매달리던 남자가 매일 정시에 귀가했다. 틈만 나면 단미의 곁을 맴돌았고, 뱃속 아이에게 좋다는 핑계로 온갖 정성을 단미에게 쏟아부었다. 마치 이혼하기 전에는 미처 하지 못했던 일들을 이제야 하나씩 되돌리려는 사람처럼. 그리고 마침내 아이가 태어난 날. 아기를 품에 안은 단미를 호건이 조심스럽게 끌어안았다. 그녀의 이마에 오래도록 입을 맞춘 남자가 낮고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우리 아기는 네 거야.” 잠시 후, 단미의 허리를 감싼 팔에 힘이 들어갔다. “대신 넌 내 거고.”
View More이영숙은 직접 집게를 들어 버터간장 새우 한 점을 집어서 단미의 그릇에 올려 줬다.단미는 바로 두 손으로 그릇을 받쳤다.“감사합니다, 할머니.”요즘 단미는 기름진 음식이 전혀 당기지 않았다.하지만 어른이 직접 덜어준 음식을 손도 대지 않는 건 예의에 맞지 않았다.식탁에 앉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단미는 새우를 집어 한입 베어 물었다.진한 간장 양념에 버터와 기름 향까지 입안 가득 퍼졌다.윤희가 기대에 찬 얼굴로 물었다.“어때요, 새언니? 괜찮죠? 저 요즘 이거 제일 좋아해요.”좋은 걸 소개했다는 듯 눈이 반짝였다.단미는 억지로 삼켰다.곧바로 속이 뒤집힐 듯 울렁거렸다.하지만 여러 사람이 보고 있어 불편한 내색을 하지 않으려고 참고 윤희에게 웃었다.“네, 맛있어요.”호건은 단미의 그릇에 담백한 연근 초무침을 조금 덜어줬다.그러면서 남아 있던 새우는 자연스럽게 자기 그릇으로 가져갔다.윤희가 바로 물었다.“오빠, 왜 그래?”호건은 태연했다.“나도 먹으면 안 돼?”윤희가 어이없다는 듯 테이블을 가리켰다.“저기 접시에 많이 있잖아. 왜 꼭 새언니 그릇에서 가져가?”이영숙이 윤희를 나무라는 척 웃었다.“얘는 그런 것도 모르니.”“네 오빠랑 새언니가 서로 살갑게 챙기는 거잖아.”단미는 속이 더 심하게 울렁거리기 시작했다.입술을 꽉 다문 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입을 열었다가는 그대로 토할 것 같았다.호건은 단미가 불편해하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젓가락을 내려놓고 몸을 받쳐 주며 낮게 물었다.“아직 배 안 고프면 조금 있다 먹을까?”그 말을 들은 이영숙은 두 사람을 번갈아 봤다.미간을 찌푸린 채 견디는 단미까지 확인하자 표정이 달라졌다.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눈이 밝아졌다.이영숙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김혜정이 불만스럽게 말했다.“밥상에 앉은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안 먹겠다는 거니? 어른 앞에서 기본적인 예의는 지켜야지.”김혜정은 조금 전 채림 일 때문에 단미가 일부러 까다롭게 구는 거라고 생각했다.“욱...”
호건이 할머니를 바라봤다.“어떤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회사 일은 네가 알아서 잘하니 내가 걱정할 게 없지.”이영숙은 눈을 가늘게 떴다.“내가 묻는 건 당연히 네 부부 일이다.”모든 걸 꿰뚫어 보는 듯한 할머니의 눈을 마주하자 호건은 조금 불편한 듯 시선을 옆으로 옮겼다.이영숙이 물었다.“말하기 싫어?”“할머니, 제 일은 제가 잘 처리할 수 있습니다.”“확실해?”“네.”이영숙은 더 몰아붙이지 않았다.“그래. 네 엄마한테는 충분히 말했으니 앞으로 채림이를 끌어들여 귀찮게 하는 짓은 못 하겠지.”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다가 호건 곁을 지나며 오늘 옷차림을 한번 살폈다.입가에 재미있는 웃음이 번졌다.“괜찮네. 이제는 정면으로만 밀어붙이지 않고 방법을 바꿀 줄도 알고.”이영숙은 손자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얼굴 잘생긴 것도 쓸 때는 써야지. 그렇게 꾸미고 다니면 네 아내한테 좀 먹힐지도 모르겠구나.”호건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거실.단미는 창가에서 돌아온 뒤 소파에 앉아 말없이 생각에 잠겨 있었다.윤희가 옆으로 가까이 와 달랬다.“새언니,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할머니가 새언니 편인데 우리 집에서 새언니 자리 누가 건드리겠어요.”“오빠도 아까 말했잖아요. 새언니는 계속 자기 아내라고.”윤희가 자신 있게 말했다.“그러니까 채림 씨가 이 집 며느리 될 일은 절대 없어요. 걱정 안 하셔도 돼요.”윤희가 보기에도 오늘 호건의 태도는 채림을 좋아하는 남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정말 마음이 있었다면 채림이 그렇게 창피한 얼굴로 집을 나가게 두었을 리 없다.채림이 앞으로 이 집에 들어올 수 있는지는 단미가 알 바 아니었다.단미가 확실히 아는 건 하나뿐이었다. 자신은 이미 이 집안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그러니 이 집안 일이 어떻게 되든 이제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었다.그래도 자신을 위로하는 윤희에게는 웃어 보였다.“네. 알아요.”단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화장실 문
이영숙은 한때 강울시 재계를 주름잡던 여장부였으니, 역시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그래서 이영숙이 내뿜는 압박감은 단미에게 어딘가 익숙했다.조금 생각해 보니 이유가 떠올랐다.호건에게도 이영숙과 비슷한 기질이 있었다.“정말 답답하구나.”이영숙은 김혜정을 바라봤다. 눈에는 딸 같은 며느리가 왜 이렇게 생각이 짧냐는 답답함이 묻어났다.김혜정이 꾸민 일 정도는 이영숙에게 너무 뻔히 보였다. 굳이 캐묻지 않아도 채림이 이 집에 찾아오게 된 경위를 짐작할 수 있었다.“예전에 채림이네 집안과 우리 집이 혼담을 논의한 적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 왜 다시 그 집 딸을 끌어들여?”“네 며느리 면전에서 망신당하고 싶은 거야?”“누가 네 가족이고 누가 남인지 구분도 못 해?”창밖에서 듣던 단미의 마음이 울렸다.눈가까지 조금 뜨거워졌다.이영숙이 자신을 이렇게까지 감싸 줄 줄 몰랐다.윤정해와 살던 집에서 괴롭힘을 당했을 때는 누구도 단미 편에 서서 이렇게 지켜 준 적이 없었다.김혜정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잔뜩 움츠러들어 있었다.단미 앞에서 보이던 거만한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다.“어머님, 전 그런 뜻이 아니라...”김혜정이 작은 목소리로 설명했다.“호건이 정도 조건이면 더 좋은 집안의 배우자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채림이네도 전에 우리가 혼담 상대로 생각했던 집안이었잖아요.”이영숙이 바로 물었다.“네 아들이 지금 미혼이니?”목소리가 낮아졌다.“법적으로 아내가 있는 사람한테 다른 여자랑 또 결혼하라고 할 셈이야? 아니면 멀쩡한 아내 버리고 새 여자 데려오라고?”“우리 집안에 아내를 내쫓고 새 사람을 들이는 일을 당연하게 여긴 전례는 없어.”이영숙은 단호했다.“단미가 없었다고 해도 채림이 다시 우리 집안 며느리가 될 가능성은 없었어.”김혜정은 그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고개를 들어 물었다.“하지만 어머님, 예전에 채림이네를 혼담 상대로 직접 고르신 분도 어머님이잖아요.”“여러 집안 중 그쪽에도 기회를 줬던 건 맞아.”이영숙의 눈이
손님을 대하는 이영숙의 태도에는 빈틈 하나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자기 말도 정확히 지키는 사람이었다.차 한잔만 하고 가라고 하고 딱 그 한 잔의 시간만 허락했다.채림이 찻잔을 다 비우자 이영숙이 말했다.“인사하러 와 준 마음을 충분히 받았네.”말을 마친 뒤 아주 자연스럽게 선을 그었다.“이제 점심시간이 다 됐네. 오늘은 손주며느리가 일부러 나랑 밥 먹으러 왔거든.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지.”단순한 배웅이 아니었다.단미가 이 집의 손주며느리라는 사실을 채림 앞에서 대놓고 못 박는 말이었다.단미도 이영숙의 의도를 알아들었다.채림도 모를 수 없었다.채림은 바로 김혜정을 향해 도움을 청하는 눈빛을 보냈다.하지만 지금 김혜정이 이영숙의 뜻을 거스를 수 있을 리 없었다.빨리 돌아가라는 듯 조용히 눈짓했다.채림은 마지막으로 호건을 한번 봤다. 그의 표정은 이영숙보다 더 냉담했다.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네. 그럼 다음에 다시 찾아뵐게요.”말을 끝내고 빠른 걸음으로 집을 나갔다.거실이 조용해졌다.이영숙이 갑자기 불렀다.“장 집사.”집사 장수한이 바로 앞으로 나왔다.“네, 회장님.”“저 선물들 들고 나가서 돌려보내게. 우리 집은 그 선물 받을 필요 없어.”“알겠습니다.”장수한은 채림이 테이블 위에 두고 간 선물 상자들을 들고 바로 뒤를 따라 나갔다.집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이영숙은 단미에게 다정하게 웃었다.“단미야.”“너는 윤희랑 여기서 조금 놀고 있을래?”단미는 이영숙이 뭘 하려는지는 몰랐지만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네, 할머니.”이영숙은 김혜정과 호건을 돌아봤다.“너희 둘은 나 따라와.”말을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 서재로 향했다.호건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이 집안을 지탱한 사람은 이영숙이었다.지금은 공식적으로 집안의 실무와 사업 경영 일선에서 한발 물러났지만 가장 큰 어른으로서의 무게는 그대로였다.이영숙의 한마디는 이 집안에서 늘 가장 크게 작용했다.김혜정의 표정에 긴장이 스쳤다.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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