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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Penulis: 마음봄
하유의 한마디에 주변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하유가 진짜 아내였다.

남의 가정을 넘보는 사람이 무슨 낯짝으로 진짜 아내를 비꼬고 있냐는 사람들의 시선이 혜원에게 꽂혔다.

“언니, 어떻게 그런 말을...”

혜원의 뺨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금방이라도 울 듯이 승호를 바라보며 목소리를 낮췄다.

“형부, 언니가 어떻게 나를 그런 식으로 모함할 수 있어?”

혜원은 나오지도 않은 눈물을 훔치는 시늉을 했다.

“난 언니가 나한테 뭐라고 하는 건 괜찮아. 그런데 사람들 다 보는 데서 일부러 형부한테 저렇게 도전하는 건, 앞으로 형부를 마음대로 휘두르려고 그러는 거잖아.”

“오늘 한 번 뜻대로 되면, 앞으로 무슨 짓을 해도 형부가 다 맞춰 줘야 할 거고...”

그러면서 끝까지 다 말하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승호는 미간을 찌푸렸다. 차가운 눈으로 하유를 바라봤다.

“여기서 수작 부리지 말고 적당히 해.”

그러더니 곧바로 직원에게 시선을 돌렸다.

“세 배로 계산하죠.”

하유는 차갑게 웃었다.

‘임혜원이 몇 마디만 하면 저렇게까지 나서 주네.’

‘내가 예전에는 대체 뭘 보고 저런 남자를 좋아했던 거야?’

하유는 한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다섯 배.”

승호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일곱 배.”

하유도 바로 받아쳤다.

“여덟 배.”

“열 배.”

승호의 말이 떨어지자 하유는 바로 기세를 거뒀다.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좋아. 거래 성립. 당신한테 양보할게. 계산해.”

하유는 드레스를 가리키며 직원에게 말했다.

“저분이 열 배로 사신대요. 드레스는 저쪽에 주세요.”

승호는 여유롭게 웃는 하유를 바라보다 잠깐 멈칫했다.

“일부러 그런 거야?”

드레스 한 벌에 무려 10억 원이었다.

하유는 가볍게 웃었다.

“그렇게 말하면 섭섭하지, 우 대표. 다들 보고 있는데 설마 이제 와서 취소하겠다는 건 아니지?”

승호는 비웃었지만 표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카드를 꺼내 직원에게 내밀었다.

“결제하세요.”

직원은 두 손으로 카드를 받으면서 하유를 몰래 힐끗 봤다. 눈빛에는 감탄이 가득했다.

하유는 입꼬리를 올리고 돌아서려고 했다.

그때 세련된 차림의 여자가 매장으로 들어왔다.

“하유야, 이제야 왔네.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

하유가 고개를 들었다.

온 사람은 하유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이 쇼핑몰의 대표인 고현주였다.

현주는 곧장 하유에게 다가왔다.

목소리를 따라서 시선을 돌린 혜원의 눈이 커졌다.

‘고현주?’

‘업계에서 전설처럼 통하는 여성 사업가인데...’

‘평소 잡지나 기사에서만 보던 사람이 심하유를 알고 있다니...’

혜원은 불쾌함을 삼키고 서둘러 머리를 정돈한 뒤 앞으로 나섰다.

현주에게 예의를 갖춰 미소 지었다.

“고 대표님, 오랜만이에요. 저 임혜원이에요. 예전에 리셉션에서 뵌 적이 있는데...”

현주는 갑자기 끼어든 혜원을 보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누구세요? 지금 바빠서 인사 나눌 시간 없는데요.”

차갑게 말을 자르는 반응에 혜원의 표정이 굳어졌다. 곧 억울한 얼굴로 바뀌더니 승호의 소매를 살짝 흔들었다.

“형부...”

현주는 두 사람에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하유에게 갔다.

하유 앞에 도착하자 현주는 그대로 끌어안았다.

“너 진짜 너무 오래 안 왔어.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잖아.”

하유가 현주의 등을 토닥였다.

“알았어, 알았어. 그래서 왔잖아.”

하유는 현주의 귀에 가까이 대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대신 큰 매출 하나 만들어 줬어. 정상가 열 배.”

현주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럼 방금 그게 너였어?”

하유가 고개를 끄덕였다.

현주는 엄지를 치켜들었다.

“역시 내 친구. 이런 건 너밖에 못 한다.”

하유가 살짝 웃었다.

“됐고, 중요한 얘기. 그 ‘단 한 벌’ 들어왔어?”

현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왔지. 지금 보여 주려고 했어. 진짜 작품이야.”

현주가 직원에게 눈짓하자 직원이 상자 하나를 열었다.

안에는 드레스 한 벌이 놓여 있었다.

연한 스모키 그레이 실크 새틴 위에 작은 다이아 장식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조명을 받자 옷 위에 마치 은하수가 내려앉은 듯 반짝였다.

현주는 드레스를 하유에게 건네며 감탄했다.

“이건 정말 압도적이야. 내가 패션 업계에서 이렇게 오래 일했는데도 이 정도는 처음 봐. 비교할 만한 옷이...”

말이 끝나기 전에 뒤에서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혜원은 드레스에서 눈을 떼지 못하면서 눈동자에는 경탄이 가득했다.

“이거... ‘별빛 나라’잖아!”

‘별빛 나라’는 5년 전 세계적인 디자이너 에이미를 정상에 올려놓은 대표작이었다.

혜원은 예전에 비공개 업계 자료에서 사진을 한 번 본 적이 있었고, 그 아름다움을 아직까지 잊지 못하고 있었다.

진품을 이렇게 눈앞에서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진짜 너무 예쁘다...”

혜원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다가 승호를 바라봤다.

“형부, 이건 아까 드레스보다 급이 완전히 달라. 공모전 날 입기에도 훨씬 더 잘 어울릴 것 같아.”

반짝이는 드레스를 본 지연의 눈도 환해졌다.

지연은 하유를 향해 일부러 고개를 돌리고 큰 소리로 말했다.

“이 드레스는 이모한테 제일 잘 어울려! 이모는 뭘 입어도 예쁜데 엄마는 뭘 입어도 안 예뻐!”

아까 엄마가 자기를 무시한 게 아직도 화가 나서 턱까지 높이 치켜들고 말했다.

하유의 가슴이 둔하게 아파왔다. 숨을 고르면서 부녀 쪽은 보지도 않았다.

현주의 표정이 곧바로 굳어졌다.

“이 드레스는 판매하지 않습니다. 고객 개인 주문으로 제작된 단 한 벌뿐인 제품입니다.”

마음이 급해진 혜원이 승호의 소매를 잡았다.

“형부, 한마디만 해줘...”

승호의 시선도 드레스 위에 머물렀다. 감탄을 완전히 숨기지는 못했다.

승호가 조용한 목소리로 담담하게 말했다.

“고 대표님, 저도 디자이너 에이미 씨와는 인연이 있습니다. 저도 에이미 작품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 드레스는 저에게 넘겨주셨면 합니다. 두 배로 보상해드리겠습니다.”

“에이미?”

현주는 팔짱을 끼고 승호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눈에는 묘한 웃음이 어려 있었다.

“우 대표님, 정말 에이미를 아세요?”

‘우승호는 우리 하유가 바로 ‘에이미’라는 걸 전혀 모르는 모양이네.’

에이미가 자기 자신을 위해 만든 옷을 뺏으려고 하면서, 에이미와의 인연까지 억지로 만들어내고 있었다.

현주는 속으로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날 지경이었다.

“우 대표님.”

현주는 상자 뚜껑을 닫았다.

“다시 말씀을 드릴게요. 이 드레스는 고객 한 사람을 위해 맞춤 제작된 옷입니다.”

“치수, 패턴, 비율도 전부 그분 한 사람의 몸에 맞춰 만들어졌어요. 옷을 사 가셔도 다른 분은 입을 수도 없습니다.”

현주는 혜원을 한 번 훑어봤다.

“입고 싶다고 해도 체형이 맞지 않아요. 괜히 욕심내지 않는 게 좋겠네요.”

혜원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현주는 더 보지 않았다. 직접 상자를 안고 하유의 팔짱을 끼었다.

“하유야, 가자.”

하유는 끝까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뒤에서는 지연의 날카로운 울음 섞인 외침이 들렸다.

“엄마는 진짜 나쁜 사람이야! 못됐어! 나 이제 엄마랑 말도 안 할 거야!”

하유는 마치 듣지 못한 듯이 현주와 나란히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승호는 멀어지는 하유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마음 깊은 곳에서 처음 느끼는 낯선 감각이 꿈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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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끝내 내 차례가 왔다   제30화

    임정한은 입을 열려고 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문혜령도 침묵했다. 입술만 가볍게 떨렸다.혜원도 무슨 문서인지 궁금해서 가까이 오려고 했다. 하지만 임정한이 바로 서류를 접어 치우면서 내용을 보여주지 않았다.혜원은 물어보려다가 분노한 임정한의 표정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그래도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하유가 임정한을 제대로 화나게 만들었다.‘진짜 미쳤나 봐. 어떻게 부모한테 저럴 수 있어.’하지만 혜원의 속마음은 달랐다.‘그래. 더 미쳐 봐. 그래야 좋지.’임정한의 목소리가 잠겼다.“그래서 대체 뭘 원하는 거야?”하유가 임정한을 바라봤다.“원하는 거 없어요. 제 양아버지한테 아무 일도 생기지 않으면, 이 자료도 밖으로 나가지 않을 거예요.”“너...”임정한은 손가락으로 하유를 가리켰다. 손이 심하게 떨리고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지만, 한참 동안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했다.문혜령도 화가 나 온몸을 떨었다. 입술을 떨며 날카롭게 말했다.“하유야, 너... 너 정말 부모도 모르는 애구나!”하유는 입술을 다문 채 대꾸하지 않았다. 곧바로 돌아서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뒤에서는 임정한이 찻잔을 내던지는 소리와 문혜령의 울음 섞인 날카로운 욕설 소리가 들렸다. 하유는 옷깃을 여미고 계속 걸었다.임정한이 양아버지 문제로 하유를 협박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친가에 처음 돌아온 뒤부터, 임씨 가족은 갖가지 말로 하유를 가스라이팅하면서 자신들의 뜻대로 움직이려고 했다. 하유가 말을 듣지 않으면 늘 양부모를 건드렸다. 하유도 결국 언젠가는 맞서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래서 임정한의 노트북 시스템에 몰래 접속해 계정 기록과 내부 자료를 확인했고, 그 과정에서 여러 불법·규정 위반 증거를 찾아 따로 보관해 뒀다.예전에는 그래도 친부모라는 생각 때문에 그 증거는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이제는 너무 지쳤다.툭하면 임씨 가족의 협박을 받고, 아무 조건 없이 혜원에게 모든 걸 양보하라는 요구도 더는 견디고 싶지 않았다.하유

  • 끝내 내 차례가 왔다   제29화

    문혜령이 말을 이어 갔다.“혜원이 드레스를 네가 가져갔다며? 혜원이 공모전에서 입으려고 한 옷인데 왜 굳이 동생이랑 싸워? 네 옷장에 옷도 많잖아.”하유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그 드레스는 제 거예요. 혜원이가 제 걸 가져가려고 한 거고요.”혜원의 눈가가 바로 붉어졌다.“언니 말이 맞아... 내가 잘못했어. 내가 오랫동안 언니 자리에서 살았으니까 언니가 날 싫어하는 것도 당연해...”말을 하며 눈물을 흘렸다.문혜령은 마음이 아픈 듯 혜원을 품에 안고 하유를 노려봤다.“혜원이 뭘 잘못했는데? 그동안 이 아이가 우리 곁에 있어 줬으니까 우리가 버틴 거야!”하유는 가만히 선 채 손가락을 하나씩 움켜쥐었다.수없이 들었던 말이었다. 그런데 들을 때마다 가슴은 여전히 아팠다.하유가 문혜령을 바라봤다.“그래서 저는 언제나 다 양보해야 해요? 예전에는 아버지랑 엄마를 양보했고, 지금은 제 딸까지 그랬어요.” “맛있는 것, 좋은 물건, 집에서 저한테 준 차도 혜원이 한마디 하면 다 가져갔잖아요. 아직도 부족해요?”“그게 무슨 말버릇이야?”임정한이 식탁을 세게 쳤다.“네가 언니니까 동생한테 양보하는 게 당연하지. 드레스 한 벌 가지고 왜 이렇게 속이 좁아?”하유는 생물학적으로 자신의 아버지인 남자를 바라봤다. 마음에 남아 있던 마지막 온기마저 식어 갔다.“그 드레스는 저한테도 중요해요.”하유는 한마디씩 분명하게 말했다.“저도 참가할 공모전이 있어요. 그 옷은 양보하지 않을 거예요.”“너...”임정한이 화가 나서 자리에서 일어났다.“하유야, 이제 정말 제멋대로 하겠다는 거냐?”문혜령도 표정을 굳혔다.“너 예전에는 안 이랬잖아. 왜 이렇게 철이 없어졌니?”하유는 대답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도 이 집에서는 하유가 틀린 사람이 될 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임정한은 하유가 말없이 서 있는 모습에 더 화가 났다.“이렇게 말도 안 들을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널 찾지 말 걸 그랬다! 네 양아버지가 대체 너를 어떻게 키운 거야?”

  • 끝내 내 차례가 왔다   제28화

    하지만 하유는 정말 예전 같은 삶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승호도, 지연도 더는 붙잡지 않기로 했다.승호가 눈을 가늘게 뜨면서 물었다.“네가 지금 무슨 말 하는지 알아?”“알아. 아이는 당신이 맡아. 잘 키워.”하유는 망설이지 않았다.승호의 목소리가 더 차가워졌다.“심하유, 나한테는 밀당 안 통해.”하유는 작게 웃었다.‘이 사람은 정말 자기 중심적이네.’하유가 말했다.“그런 거 아니야. 재산 조건 다시 정리하고 아이 양육권은 당신이 갖는 걸로 작성해. 다 만들면 나한테 보내.”말을 마친 하유는 택시 문을 열고 올라탔다.승호는 멀어지는 차를 계속 바라봤다. 눈빛이 싸늘하게 굳었지만 표정은 쉽게 읽을 수가 없었다.하유는 뒷좌석에 앉은 채 반쯤 열린 창문 밖을 바라봤다. 가로등이 빠르게 뒤로 밀려났다. 오늘 있었던 일들이 머릿속에서 차례로 되풀이됐다.숨을 깊게 쉬었지만 가슴은 답답했다.그때 핸드폰이 울렸다.하유가 화면을 내려다봤다.임정한.이름 세 글자를 잠시 바라보다 받지 않았다.친가에 돌아간 뒤부터 그 집에 갈 때마다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갈 때마다 누군가의 편을 가르는 싸움이 벌어졌다.혜원은 언제나 모든 사람이 하유를 나쁜 사람으로 보게 만드는 방법을 찾아냈고, 친부모는 늘 혜원 편이었다.전화가 끊겼다가 다시 울렸다.하유는 숨을 고르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하유야, 어디니? 오늘 저녁 집에 와서 밥 먹자.]친모 문혜령의 목소리가 들렸다. 말투는 다소 무심했다.“엄마, 요 며칠 일이 좀 있어요. 다음에 갈게요.”하유는 정말 가고 싶지 않았다.말이 끝나기도 전에 전화 너머로 친부 임정한의 불쾌한 목소리가 들렸다.[집보다 중요한 일이 뭐가 있어? 밥 한 끼 먹을 시간도 없다는 거야?]하유는 숨을 고르면서 말했다.“정말 시간이 없어서...”[네 양아버지 직장 말이야. 내가 거기 윗사람하고 좀 친하거든.]임정한이 하유의 말을 끊었다. 느긋한 말투였다.[요즘 내부 승진 심사를 한다던데. 네 양아버지도 이제

  • 끝내 내 차례가 왔다   제27화

    지연의 얼굴이 굳어졌다. 한참 생각하더니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엄마 둘 다 있으면 안 돼? 혜원 엄마는 나랑 놀아 주고, 엄마는 맛있는 거 해주면 되잖아. 그게 왜 안 돼?”하유의 가슴이 깊게 베이는 듯 아팠다.아이답고 솔직한 말이었지만 그 말은 오히려 하유의 마음을 더 차갑게 만들었다.열 달 동안 품어 낳은 딸을 바라보며 하유는 살짝 웃었다.“사람이 원하는 걸 전부 가질 수는 없어. 엄마도 하나뿐이야. 너도 하나만 골라야 해.”지연은 멍하니 서 있었다. 눈가가 천천히 붉어졌다.하유의 눈을 바라봤지만 무서울 만큼 차분했다. 예전처럼 자신만 바라보는 온기가 보이지 않자 지연은 겁이 났다.입을 열고 ‘엄마를 고를래’라고 하려 했다.하지만 말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혜원은 사탕을 사 줬다. 밤늦게까지 애니메이션도 같이 봐 줬고 맛있는 곳에도 데려갔다. 그리고 지연에게 잔소리하지도 않았다.반면 하유는... 사탕도 못 먹게 하고, 애니메이션 보는 시간도 정해 놓고, 이것저것 하지 말라는 게 너무 많았다.‘엄마는 너무 귀찮게 해.’지연은 고개를 숙이고 대답하지 않았다.하유는 잠시 기다리다가 몸을 돌렸다.“알았어.”더는 딸을 보지 않고 계단을 한 걸음씩 내려갔다.지연은 제자리에 서서 점점 멀어지는 엄마의 등을 바라봤다.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표정이 일그러졌다. 엄마를 부르고 싶었지만 목이 막힌 듯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손을 들었다가 다시 내렸다.‘엄마는 다시 오겠지?’예전에는 지연이 아무리 떼를 써도 엄마가 늘 돌아왔다.‘이번에도 분명 돌아올 거야.’지연은 그렇게 생각하며 코를 훌쩍였다. 몸을 돌려 할머니 방으로 뛰어갔다....하유가 막 택시를 잡았을 때 뒤에서 승호가 따라왔다.“심하유, 아직 서명 안 했어.”평소와 다름없이 차가운 목소리였다.하유의 마음도 차갑게 굳었다. 가장 가까워야 할 두 사람 중 딸은 다른 여자를 엄마로 삼고 싶어 했고, 남편은 첫사랑을 위해 자신과 이혼하려고 했다.‘됐어. 나

  • 끝내 내 차례가 왔다   제26화

    하유는 잠깐 망설였지만 곧 다가가서 침대 옆에 앉았다.채화경은 안쓰러운 눈으로 하유를 바라봤다.“많이 힘들었지?”하유가 고개를 저었다.“할머니, 저 괜찮아요.”“뭐가 괜찮아.”채화경은 손을 뻗어 하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목소리가 조금 잠겨 있었다.“네가 우리 집에 들어온 지 6년이야. 이 늙은이가 다 봤어. 넌 좋은 아이야. 잘못한 건 우리 우씨 집안이야.”하유의 눈가가 따끔해졌다. 눈을 내리깔고 감정을 눌렀다.“그 못난 녀석.”채화경은 승호 이야기를 꺼내며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내 손자니까 성격을 내가 잘 알지. 본성은 나쁜 놈이 아닌데 사람 보는 눈이 없어. 누가 진심으로 잘해 주는지는 못 보고, 문제 일으키는 사람을 또 그렇게 감싸.”하유는 입술을 다물었다.채화경은 한숨을 쉬고 하유의 손을 잡아 토닥였다.“네가 이혼하고 싶다면 할머니는 네 편이야.”하유가 고개를 들었다. 예상하지 못한 말에 눈에 놀라움이 어렸다.채화경은 진지한 눈으로 하유를 바라봤다.“승호는 네 인생을 다 걸 만큼 좋은 남자가 아니야. 우씨 집안을 떠난 뒤에는 네 삶을 살아. 할머니는 네가 앞으로 조금이라도 더 행복했으면 좋겠어.”하유의 코끝이 시큰해졌다. 눈물이 떨어질 것 같았다.6년 동안 시어머니에게 모욕을 당하고, 시누이에게 무시당했다. 남편에게 외면받고, 딸에게까지 싫다는 말을 들어도 절대 울지 않았다.그런데 채화경의 몇 마디에 6년 동안 마음 안에 쌓아 둔 벽이 금이 가기 시작했다.“할머니, 감사합니다.”채화경이 하유의 손등을 두드렸다.“고맙기는. 내가 너한테 고마워해야지. 내 목숨을 네가 살렸잖니.”하유가 고개를 저었다.“당연히 할 일이었어요.”“세상에 당연한 건 없어.”채화경의 목소리가 진지해졌다.“넌 내 목숨을 살려줬는데 나는 널 제대로 지켜 주지 못했어. 할머니가 미안하다.”하유는 결국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손으로 얼굴을 닦고 숨을 고른 뒤 일어났다.“할머니, 푹 쉬세요. 저는 먼저 갈게요.”채화경은 고개를

  • 끝내 내 차례가 왔다   제25화

    하유는 입술을 다물었다.“할머니, 이 일은...”“알아.”채화경이 하유의 손등을 토닥이며 말을 끊었다.“나한테 다 생각이 있어.”채화경은 숨을 한 번 고르고 몸을 바로 세웠다.“김 집사.”오래 일한 김숙이 밖에서 들어왔다.“장미란 급여 정산해 주고 오늘 안으로 내보내.”무릎 꿇고 있던 장미란이 급히 머리를 숙였다.“회장님, 정말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제발 내쫓지 말아 주세요.”채화경은 손을 들고 그만하라는 뜻을 보였다.김숙은 장미란을 일으켜 거의 끌다시피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울음소리는 점점 멀어졌다.채화경의 시선이 다시 엄정숙에게 향했다.“승호 에미야.”엄정숙의 얼굴이 하얘졌다. 억지로 웃었다.“어머님, 지금은 쉬세요. 말씀하지 마시고...”“내일부터.”채화경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말 하나하나에 힘이 있었다.“회사에 이름만 걸어 두고 있는 자리, 전부 정리해.”엄정숙의 웃음이 굳었다.“어머님! 저도 회사에서 10년 넘게 일했어요. 공이 없더라도 고생한 건 있잖아요.”“무슨 고생을 했는지는 네가 제일 잘 알겠지. 내가 자료까지 꺼내 보여줘야 하니?”채화경이 감정 없는 눈으로 바라보자 엄정숙은 더 말하지 못했다.“세진아.”세진이 몸을 움찔했다.“할머니...”“지금부터 내년 오늘까지 용돈은 전부 끊는다.”세진의 눈이 커졌다. 입을 벌리고 항의하려다가 채화경의 표정을 보고 억지로 삼켰다.“하나 더.”채화경은 더 엄한 눈으로 세진을 봤다.“네 새언니한테 사과해.”세진의 표정이 굳어졌다.“지금. 바로.”거절할 수 없는 어조였다.세진의 얼굴은 붉어졌다가 하얘졌다. 억울해서 견딜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그래도 채화경의 차가운 시선 앞에서는 더 버티지 못했다.한참 뒤에야 하유 쪽으로 몸을 돌리더니 이를 악물고 내뱉었다.“미... 안... 해.”목소리는 작고 딱딱했다.사과라기보다는 억지로 굴욕을 참는 태도에 가까웠다.말을 마치자 하유를 매섭게 노려봤다.하유는 눈도 들지 않았다.처음부터 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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