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님과 헤어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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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8
By:  이리아Updated just now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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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완벽한 비서로, 밤에는 대표의 다정한 연인으로 살았던 지연. 3년의 연애 끝에 달콤한 청혼으로 영원할 줄 알았던 두 사람의 미래는, 지연의 목을 죄어오는 가정의 거대한 빚과 족쇄 앞에 무참히 부서진다. 하성을 지키기 위해 지연이 선택한 방법은 단 하나. '사랑하지 않는 여자'인 척, 차갑게 돌아서는 것. "저.. 사직서 내겠습니다." "지연아, 도대체 왜 그러는 건데? 혹시… 나랑 결혼하는 게 부담스러운 거야?" "대표님, 공과 사는 구분해 주세요." "……대표로서도 허락 못 해." 하성은 지연의 갑작스러운 변심 뒤에 뭔가 숨겨진 사연이 있음을 직감한다. 냉정하게 철벽을 치는 지연과, 제를 밀어내려는 이유를 기어코 찾아내어 그녀를 제 품에 붙잡아두려는 하성의 숨 막히는 추격전이 시작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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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1. 헤어질 결심

"우리 헤어지자."

"응? 오늘 만우절이라도 된 거야? 갑자기 무슨 농담을."

"농담 아니야. 내 짐은 내일 뺄게. 그리고 여기, 사직서."

지연은 마치 아무런 감정도 남지 않은 사람처럼 건조한 눈으로 사직서를 내밀었다. 단호한 기색에 하성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눈빛이 장난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왜 그래. 내가 뭐 잘못했어?"

"……질렸어. 오빠 같은 남자. 매일 바보같이 웃기나 하고, 내 인생에 도움도 안 되는 오빠는 이제 필요 없어."

"질렸다고?"

"응. 더 이상 만나지 말자."

"어머니 때문이야? 그런 거면 내가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어. 날 다시 한 번만 믿어줘, 지연아."

"늦었어."

지연은 더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 매몰차게 몸을 돌려 대표실을 빠져나왔다. 곧장 비상계단 문을 열고 들어간 그녀는 다리가 풀린 듯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뒤쫓아온 하성이 문을 거칠게 두드리며 이름을 불렀지만, 문 너머의 지연은 숨을 죽인 채 입술을 꽉 깨물 뿐이었다.

참아왔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 지독한 이별을 결심하기까지, 지연의 머릿속에는 며칠 전 그날의 기억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

.

.

온라인과 오프라인 매장을 아우르며 5년 만에 가파르게 성장한 라이프스타일 쇼핑몰 'ALL DAY'. 그 중심에는 대표 강하성과 그의 곁을 지키는 비서 이지연이 있었다. 명석한 두뇌로 로스쿨까지 졸업했으나 법전 파고드는 삶에 질색하며 과감히 개인 사업에 뛰어든 하성은, 남다른 수단과 감각으로 지금의 올데이를 일궈냈다. 그리고 하성이 작은 중소기업을 전전하던 시절부터 온라인 시스템 관리와 실무를 도맡아 하며 그의 곁을 든든하게 지켜온 건 다름 아닌 지연이었다.

"하연아, 커피 사 왔어."

"아, 고마워."

커피를 받아 든 지연의 입가에 사르르 눈웃음이 걸렸다. 하지만 그 웃음은 채 눈매까지 닿지 못한 채 굳어져 있었다. 3년을 함께 구른 연인이 눈앞에 있는데, 이 미세한 이질감을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뭐야? 표정이 왜 그래. 오늘 무슨 일 있었어?"

"으응? 아니~ 그냥 뭐…. 누가 오늘따라 일을 산더미처럼 줬잖아."

지연은 일부러 장난스럽게 웃으며 하성의 콧등을 툭툭 쳤다. 앙탈을 부리는 그 손길을 놓칠세라, 하성은 씨익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지연의 손목을 단숨에 끌어당겼다. 쪽, 하고 그녀의 손등에 짧은 입맞춤이 떨어졌다.

"아잇! 저기요, 대표라는 사람이 회사 한복판에서 이러면 어떡해요?"

"뭐 어때. 지금은 우리 둘만 있는데. 근데 표정 보니까 원래의 이지연으로 돌아왔네. 역시 나 밖에 없지?"

"어이가 없어서. 저리 가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지연의 하얀 볼이 금방 복숭아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하성은 그 귀여운 반응을 놓치지 않고 검지손가락으로 그녀의 발간 볼을 꾹 쓰다듬었다.

바로 그때, 복도 쪽에서 투명한 엘리베이터 벨 소리가 울렸다.

둘은 빛의 속도로 서로를 밀어내며 정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지연은 황급히 엑셀 창이 띄워진 컴퓨터 화면에 눈을 박았고, 하성은 마른기침을 으흠, 하고 뱉으며 대표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3층 대표실에서 내려온 사람은 마케팅팀의 고주영이었다.

"이 비서님, 결재 서류 가져왔는데요."

"아, 대표님 지금 안에 계세요."

주영은 서류를 품에 안은 채 지연의 얼굴을 빤히 응시했다.

"근데 비서님, 어디 아프세요? 볼이 왜 그렇게 빨갛지?"

"아뇨. 히터 바람 때문에 더워서요."

"그래요? 아, 그리고 비서님. 지난번에 부탁드린 건 어떻게 됐나요?"

지난번의 부탁. 강하성 대표에게 애인이 있는지, 혹은 마음에 품은 사람이 있는지 알아봐 달라는 끈질긴 청탁이었다. 비밀연애라는 사실을 티끌만큼도 들킬 수 없는 지연으로서는 미치고 팔짝 뛰 노릇이었다.

"글쎄요. 대표님 워낙 사생활을 철저히 중시하셔서 저도 잘…."

"하긴, 그렇겠죠? 아무튼 감사해요."

주영이 대표실 안으로 사라지자마자, 지연은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며 의자에 주저앉았다. 그때, 모니터 우측 하단에서 메신저 알림 소리가 울렸다. 하성이 보낸 메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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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엄마의 전화
[일 너무 많으면 나한테 좀 넘겨도 돼.] [아니야. 원래 내가 해야 하는 일인데 뭐.] [그럼 내가 사 온 커피 마시면서 힘내야겠네? 내가 사 온 거니까, 평소보다 일 2배는 더 열심히 해.] [말 안 해도 그러고 있거든요?]지연은 툭툭 내뱉듯 답장을 보내면서도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렸다.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시 키보드에 손을 올리려는 찰나,—띠리링.소름이 돋을 만큼 익숙한 벨소리가 울렸다. 묘하게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 발신자는 엄마였다.휴대폰 화면에 찍힌 두 글자를 보는 순간, 지연의 얼굴에서 피기가 사정없이 가셨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거절 버튼을 누르려다, 이내 깊은 한숨과 함께 통화 버튼을 짓눌렀다."여보세요. 왜 전화했어." "아니…. 엄마가 문자 보냈는데 읽고 답장이 없길래." "……바빴어." "그래? 별일 아니야. 다름이 아니라, 엄마가 이번에 재혼을 좀 하려고 하는데. 네가 딸로서 좀 도와줘야 하지 않겠어?"또다시 시작되는 돈 이야기와 뻔뻔한 요구. 지연은 더 듣고 싶지도 않다는 듯 황급히 전화를 끊어버렸다. 쿵쾅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썼지만, 머릿속은 온갖 복잡한 생각들로 하얗게 멍해졌다. 하지만 오늘까지 끝내야 하는 결산 업무가 산더미였다. 그녀는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다시 키보드를 두드렸다.시간은 더디게만 흘렀다. 마치 합격 통보를 기다리던 면접 날처럼. 불안에 입술을 꽉 깨물었더니 어느새 비릿한 피 맛이 났다. 떨리는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리며 대표실 문을 흘끗거렸다. 당장이라도 그에게 달려가 품에 안기고 싶었다. 하지만 이 지독한 가정사를 털어놓는 순간, 하성은 어떻게든 자신이 돈을 구해주거나 개입하려 들 것이 뻔했다. 그에게 짐이 되기 싫어 지연은 애써 고개를 내저으며 마음을 다잡았다.그렇게 속을 태우는 사이 시계바늘은 이미 저녁 6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결국 끝내지 못한 서류를 가방에 대충 쑤셔 넣은 지연은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대표실 문을 노크했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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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밤키스
오늘도 어김없이 두 사람이 향한 곳은 하성의 집이었다. 고소한 치킨 냄새가 거실을 채울 무렵, 하성은 자연스럽게 지연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슬금슬금 옆으로 밀착해 왔다."오늘 무슨 일 있었지?" "응? 아니. 무슨 일은." "서운하려고 하네. 이지연, 나 못 믿어? 나 네 남자친구이기도 하지만 이 회사 대표야. 명령이니까 말해."지연은 입술을 꾹 다문 채 잠시 깊은 고민에 잠겼다. 정말 이 이야기를 꺼내도 될까. 하지만 숨기기엔 제 속이 너무 문드러지고 있었다. 결국 지연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엄마한테 전화 왔었어." "지난번에 말했던 그 돈 때문에?" "응. 미안해…. 너한테까지 걱정 끼치고 싶지 않았는데." "걱정 좀 끼치면 어때. 그러려고 나랑 사귀는 거 아니야?" "그래도. 오빠는 나처럼 이런 짐 짊어지고 살지는 않잖아." "사람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뭐. 둘 다 아무 일 없으면 금방 질려, 바보야. 설마 내가 돈 준다고 하면 또 화낼 거지?" "당연하지. 그건 절대 안 돼." "그럼 당분간은 그쪽 연락 아예 받지 마."하성은 지연의 마른 어깨를 토닥이더니, 냉장고에서 맥주캔을 따서 그녀의 손에 쥐여주었다. 지연은 마땅찮은 듯 고개를 으쓱이며 캔을 입에 가져다 대었다. 원래는 취하는 걸 지독하게 싫어했다. 알딸딸해지는 감각도, 다음 날 기억이 끊기는 것도 질색이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제정신으로 버티기 버거울 만큼 취하고 싶었다."걱정 마, 난 너보다 돈 많아서 돈 달라고 안 해. 물론 내가 너한테 주는 건 몰라도." "뭐야? 농담도 참…. 그럼 나 1억만 줘. 회사 때려치우게." "안 되지. 이지연 없으면 내가 무슨 낙으로 회사 다녀." "뭐래, 진짜. 대표라는 사람이."지연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들자 하성과 눈이 딱 마주쳤다. 마주 닿은 시선 속에 온기가 번지며 하성이 장난스럽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리고 눈이 마주친 그 찰나의 순간, 하성이 천천히 상체를 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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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같이 맞이하는 아침
하성은 지연을 가볍게 안아 올려 거실 쇼파 위에 부드럽게 눕혔다. 그리고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다시 한번 깊게 입을 맞췄다. 입술이 부딪히는 은은한 소리와 함께 지연의 하얀 뺨이 사과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하성의 손길이 옷자락을 스쳐 조심스럽게 허리선을 쓸어내리자, 지연은 흠칫 놀라며 그의 어깨를 살짝 밀어냈다. 그러자 하성은 도망가지 못하게 지연의 허리를 꾹 잡아 제 쪽으로 단단히 끌어당겼다. 갑작스러운 힘에 지연의 미간이 살짝 일그러졌다. "으아…. 아파." "아, 미안. 내가 너무 흥분했나 봐. 다치지 않으려면 내 품에서 멀어지지 마, 지연아." "이럴까 봐 내가 밀어낸 거야. 오빠는 진짜 흥분하면 무슨 짐승처럼……." "짐승? 내가 언제? 억울한데." "말도 마. 눈빛부터 달라지면서 사람 잡아먹을 것처럼 굴잖아." 지연의 툴툴거리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성이 낮게 웃음을 터뜨리며 다시 그녀의 입술을 진득하게 파고들었다. 겹쳐진 입술 사이로 뜨거운 숨결이 얽혀들었고, 두 사람의 템포는 점점 더 깊고 진해졌다. "읍…. 오빠, 숨……." "숨 쉬게 해줄 시간 없는데. 네가 먼저 자극했잖아." "내가 언제 먼저 자극했어……." "이렇게 예쁘게 눈 뜨고 나 쳐다보면서 그런 말 하면, 진짜 더 못 참고 넘어가." 하성의 장난기 어린 목소리에 지연은 얼굴을 붉히며 그의 가슴을 툭툭 쳤다. 하지만 밀어내려 애써도 결국 자꾸만 하성의 품 안으로 파고드는 스스로가 지연은 속상하면서도 싫지 않았다. 마치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자연스럽게 그의 넓은 가슴에 얼굴을 묻게 되는 자신이였다. "나한테 질릴까 봐 무섭다며." "……갑자기 그 얘기는 왜 해." "질리기는커녕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판인데. 이지연, 너 나한테 감히 그런 생각이나 하고 말이야." "누가 그런 생각 하고 싶어서 했나……." "그럼 내 눈 똑바로 보고 말해 봐. 너도 나 안 떠날거라고." "못 떠나게 굴면서 무슨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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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나에게만 보이는 모습
쾅, 하고 싱크대 모서리에 허리를 부딪힌 하성이 인상을 찌푸렸다. 하루 이틀 겪는 일이 아니라는 듯, 두 사람은 금세 머쓱해져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미안, 맨날 겪는 일인데도 이 토스트기 소리는 적응이 안 되네." "아냐, 다치지 않았으면 됐어. 그나저나 깜짝 놀라 튀어 오르는 게 아주 토끼 같네. 귀여워 죽겠어." "진짜…. 아팠지? 미안해." "그럴리가. 그 조그만 손으로 힘주어 밀어낸다고 내가 아프겠어? 어서 먹기나 하자." 하성은 토스트기에서 노릇하게 구워진 빵을 꺼내 와 그 위에 달콤한 딸기잼을 듬뿍 발라 지연의 입에 쏙 넣어주었다. 지연은 햄스터처럼 입안 가득 빵을 물고 오물오물 씹으면서도, 이번에는 하성을 위해 고소한 버터를 듬뿍 바른 토스트를 그의 입에 들이밀었다. "오빠, 근데 빵은 역시 잼이지. 이게 훨씬 맛있지 않아?" "글쎄. 난 원래 느끼하고 고소한 거 좋아하잖아? 버터가 훨씬 진하고 좋던데." "어우, 버터는 너무 느끼해서 그 맛을 도저히 못 보겠던데 말이야." "보면 볼수록 너랑 나는 취향부터 입맛까지 진짜 달라도 너무 달라." "그러게. 사귀기 전에는 맨날 티격태격하면서 진짜 원수처럼 생각했는데." 지연은 5년 전, 코피를 쏟아가며 함께 야근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이어 배가 고플 하성을 위해 큼직한 그릇에 시리얼을 붓고 우유를 타서 툭 건네주었다. 하성은 고맙다는 뜻으로 지연의 이마에 쪽 하고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든든하게 아침을 해치운 두 사람은 철저히 타인의 얼굴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같은 차를 타고 회사 지하 주차장에 도착한 후에도, 혹시라도 눈에 띌까 일부러 5분의 텀을 두었다. 지연이 먼저 내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뒤, 하성이 그 뒤를 따르는 식이었다. 사무실에 출근하자마자 지연은 프로페셔널한 표정으로 하성이 아메리카노를 내리는 동안 오늘치 스케줄을 읊어 나갔다. "오늘은 오후 3시에 마케팅팀 정기 회의 있는 거 잊지 않으셨죠?"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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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멍청한 생각
벌써 사귄 지 3년. 하성에게 지연은 이미 2년 전부터 확고한 결혼 상대였다. 하지만 그녀를 옥죄는 가정사 때문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선뜻 다가서지 못했다. 혹시라도 자신이 건넨 청혼이 부담이 되어 그녀를 더 궁지로 몰아넣으면 어쩌지, 만약 자신을 찬다면, 가족 문제 때문에 악착같이 밀어낸다면…. 그런 두려움에 일부러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곁을 지키려 애썼다. 그러나 최근 들어 마음이 완전히 달라졌다. 지연 없는 삶은 단 하루도 상상할 수 없었다. 이 위태로운 여자를 제 품에 확실히 묶어두고 지켜줘야만 했다. ‘그래, 프러포즈를 위해서라도 오늘 일을 끝장내자.’ 하성은 급박하게 뛰는 마음을 애써 다잡으며 서류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평소보다 몇 배는 더 집중한 덕분에, 오후 3시 회의가 시작되기도 전에 산더미 같은 업무를 완벽하게 끝마칠 수 있었다. —똑똑. "들어와." "대표님, 곧 회의 시간입니다." "응. 지난번 회의록이랑 필요한 서류 다 챙겨놨으니까 바로 갈게." 미리 준비를 마쳐둔 덕분에 하성은 여유롭게 회의실로 향했다. 하성의 주도로 회의가 시작되자, 공과 사를 칼같이 구분하는 지연의 표정 역시 순식간에 프로페셔널하게 바뀌었다. 회의에 집중하는 그녀의 서늘하고도 지적인 모습은 언제 봐도 근사했다. "지난번에 신생 납품 업체에 대해 조사해 온 결과 어떻게 됐죠? 다른 회사 제품의 인기 상품이랑 리뉴얼해서 하자고 제안하고 각 팀에서 조사해 보기로 했던 거 같은데…. " "네, 소비자들은 인기 상품도 좋지만 좀 더 독특한 포인트를 원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인기 상품의 향에 빈티지한 요소를 섞는다든지 하는 식의 차별화 말입니다." "하기야, 다 똑같은 옷들이면 소비자들이 굳이 우리 걸 살 이유가 없지." 회의를 주도하는 하성의 낮고 단단한 목소리가 회의실을 채웠다. 그 모습을 보조하며 옆에서 묵묵히 서류를 넘기던 지연은, 문득문득 치밀어 오르는 감정에 심장이 쿵쾅거렸다. 대체 제 남자가 어쩜 저렇게 멋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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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프로포즈
화면에 찍힌 '하성'이라는 세 글자를 보자마자 지연은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일부러 태연한 척 목소리를 가다듬고 몇 초를 끌다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여보세요?"[지연아, 혹시 지금 2층 대강당 쪽으로 와줄 수 있어?]"응? 오빠 지금 경진 오빠랑 있는 거 아니었어? 갑자기 2층은 왜? 무슨 일 생겼어?"[아니, 건물 관리팀에서 천장에 물이 샌다고 연락이 와서. 지금 급해서 그러는데 네가 와서 상태 좀 확인해 줄래?]지연은 하성의 다급한 목소리에 속아 넘어가, 의심할 겨를도 없이 황급히 겉옷만 걸치고 2층 대강당으로 뛰어갔다.끼익—, 굳게 닫힌 강당 문을 열고 안으로 발을 디딘 순간.지연의 숨이 그대로 멎어버렸다.캄캄한 어둠 속 대강당 한가운데, 온통 은은한 보랏빛을 띠는 라벤더 꽃다발들이 바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 꽃밭의 정중앙에서, 하성이 로맨틱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향해 다정하게 손짓하고 있었다."이게 다 뭐야……? 아니, 물 샌다며?" "거짓말이야. 정말 눈치는 제로라니깐." "와, 뭐야 진짜…. 너무 예쁘다. 고마워, 오빠! 라벤더 향도 너무 좋아."지연은 동화 속 한 장면 같은 풍경에 홀린 듯 걸어가 라벤더 꽃다발 사이로 무릎을 쪼그리고 앉았다. 사방에 퍼지는 싱그러운 꽃향기를 맡으며 감탄하는 사이, 하성이 천천히 다가와 무릎을 굽히고 그녀의 앞에 섰다. 그리고 지연이 꽃구경에 온 정신이 팔려 있는 틈을 타,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바닥 위에 반짝이는 금반지를 슬쩍 쥐어주었다.한참 동안 꽃에 취해 있던 지연이 겨우 고개를 들며 제 손을 펴보았다. 순간, 손바닥 위에서 데굴데굴 굴러 떨어지는 영롱한 다이아몬드 반지를 발견한 그녀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커졌다."이게 뭐야? 언제 내 손에 들어왔어?" "네가 라벤더에 정신 팔려 있는 사이에." "이 반지… 오빠가 준 거야?" "나 말고 또 있겠어? 너한테 반지 줄 사람. 앞으로 평생 너랑 같이 살겠다고 조를 사람."하성은 천천히 허리를 숙여 지연과 눈높이를 맞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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