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이영숙은 직접 집게를 들어 버터간장 새우 한 점을 집어서 단미의 그릇에 올려 줬다.단미는 바로 두 손으로 그릇을 받쳤다.“감사합니다, 할머니.”요즘 단미는 기름진 음식이 전혀 당기지 않았다.하지만 어른이 직접 덜어준 음식을 손도 대지 않는 건 예의에 맞지 않았다.식탁에 앉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단미는 새우를 집어 한입 베어 물었다.진한 간장 양념에 버터와 기름 향까지 입안 가득 퍼졌다.윤희가 기대에 찬 얼굴로 물었다.“어때요, 새언니? 괜찮죠? 저 요즘 이거 제일 좋아해요.”좋은 걸 소개했다는 듯 눈이 반짝였다.단미는 억지로 삼켰다.곧바로 속이 뒤집힐 듯 울렁거렸다.하지만 여러 사람이 보고 있어 불편한 내색을 하지 않으려고 참고 윤희에게 웃었다.“네, 맛있어요.”호건은 단미의 그릇에 담백한 연근 초무침을 조금 덜어줬다.그러면서 남아 있던 새우는 자연스럽게 자기 그릇으로 가져갔다.윤희가 바로 물었다.“오빠, 왜 그래?”호건은 태연했다.“나도 먹으면 안 돼?”윤희가 어이없다는 듯 테이블을 가리켰다.“저기 접시에 많이 있잖아. 왜 꼭 새언니 그릇에서 가져가?”이영숙이 윤희를 나무라는 척 웃었다.“얘는 그런 것도 모르니.”“네 오빠랑 새언니가 서로 살갑게 챙기는 거잖아.”단미는 속이 더 심하게 울렁거리기 시작했다.입술을 꽉 다문 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입을 열었다가는 그대로 토할 것 같았다.호건은 단미가 불편해하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젓가락을 내려놓고 몸을 받쳐 주며 낮게 물었다.“아직 배 안 고프면 조금 있다 먹을까?”그 말을 들은 이영숙은 두 사람을 번갈아 봤다.미간을 찌푸린 채 견디는 단미까지 확인하자 표정이 달라졌다.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눈이 밝아졌다.이영숙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김혜정이 불만스럽게 말했다.“밥상에 앉은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안 먹겠다는 거니? 어른 앞에서 기본적인 예의는 지켜야지.”김혜정은 조금 전 채림 일 때문에 단미가 일부러 까다롭게 구는 거라고 생각했다.“욱...”
호건이 할머니를 바라봤다.“어떤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회사 일은 네가 알아서 잘하니 내가 걱정할 게 없지.”이영숙은 눈을 가늘게 떴다.“내가 묻는 건 당연히 네 부부 일이다.”모든 걸 꿰뚫어 보는 듯한 할머니의 눈을 마주하자 호건은 조금 불편한 듯 시선을 옆으로 옮겼다.이영숙이 물었다.“말하기 싫어?”“할머니, 제 일은 제가 잘 처리할 수 있습니다.”“확실해?”“네.”이영숙은 더 몰아붙이지 않았다.“그래. 네 엄마한테는 충분히 말했으니 앞으로 채림이를 끌어들여 귀찮게 하는 짓은 못 하겠지.”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다가 호건 곁을 지나며 오늘 옷차림을 한번 살폈다.입가에 재미있는 웃음이 번졌다.“괜찮네. 이제는 정면으로만 밀어붙이지 않고 방법을 바꿀 줄도 알고.”이영숙은 손자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얼굴 잘생긴 것도 쓸 때는 써야지. 그렇게 꾸미고 다니면 네 아내한테 좀 먹힐지도 모르겠구나.”호건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거실.단미는 창가에서 돌아온 뒤 소파에 앉아 말없이 생각에 잠겨 있었다.윤희가 옆으로 가까이 와 달랬다.“새언니,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할머니가 새언니 편인데 우리 집에서 새언니 자리 누가 건드리겠어요.”“오빠도 아까 말했잖아요. 새언니는 계속 자기 아내라고.”윤희가 자신 있게 말했다.“그러니까 채림 씨가 이 집 며느리 될 일은 절대 없어요. 걱정 안 하셔도 돼요.”윤희가 보기에도 오늘 호건의 태도는 채림을 좋아하는 남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정말 마음이 있었다면 채림이 그렇게 창피한 얼굴로 집을 나가게 두었을 리 없다.채림이 앞으로 이 집에 들어올 수 있는지는 단미가 알 바 아니었다.단미가 확실히 아는 건 하나뿐이었다. 자신은 이미 이 집안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그러니 이 집안 일이 어떻게 되든 이제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었다.그래도 자신을 위로하는 윤희에게는 웃어 보였다.“네. 알아요.”단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화장실 문
이영숙은 한때 강울시 재계를 주름잡던 여장부였으니, 역시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그래서 이영숙이 내뿜는 압박감은 단미에게 어딘가 익숙했다.조금 생각해 보니 이유가 떠올랐다.호건에게도 이영숙과 비슷한 기질이 있었다.“정말 답답하구나.”이영숙은 김혜정을 바라봤다. 눈에는 딸 같은 며느리가 왜 이렇게 생각이 짧냐는 답답함이 묻어났다.김혜정이 꾸민 일 정도는 이영숙에게 너무 뻔히 보였다. 굳이 캐묻지 않아도 채림이 이 집에 찾아오게 된 경위를 짐작할 수 있었다.“예전에 채림이네 집안과 우리 집이 혼담을 논의한 적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 왜 다시 그 집 딸을 끌어들여?”“네 며느리 면전에서 망신당하고 싶은 거야?”“누가 네 가족이고 누가 남인지 구분도 못 해?”창밖에서 듣던 단미의 마음이 울렸다.눈가까지 조금 뜨거워졌다.이영숙이 자신을 이렇게까지 감싸 줄 줄 몰랐다.윤정해와 살던 집에서 괴롭힘을 당했을 때는 누구도 단미 편에 서서 이렇게 지켜 준 적이 없었다.김혜정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잔뜩 움츠러들어 있었다.단미 앞에서 보이던 거만한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다.“어머님, 전 그런 뜻이 아니라...”김혜정이 작은 목소리로 설명했다.“호건이 정도 조건이면 더 좋은 집안의 배우자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채림이네도 전에 우리가 혼담 상대로 생각했던 집안이었잖아요.”이영숙이 바로 물었다.“네 아들이 지금 미혼이니?”목소리가 낮아졌다.“법적으로 아내가 있는 사람한테 다른 여자랑 또 결혼하라고 할 셈이야? 아니면 멀쩡한 아내 버리고 새 여자 데려오라고?”“우리 집안에 아내를 내쫓고 새 사람을 들이는 일을 당연하게 여긴 전례는 없어.”이영숙은 단호했다.“단미가 없었다고 해도 채림이 다시 우리 집안 며느리가 될 가능성은 없었어.”김혜정은 그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고개를 들어 물었다.“하지만 어머님, 예전에 채림이네를 혼담 상대로 직접 고르신 분도 어머님이잖아요.”“여러 집안 중 그쪽에도 기회를 줬던 건 맞아.”이영숙의 눈이
손님을 대하는 이영숙의 태도에는 빈틈 하나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자기 말도 정확히 지키는 사람이었다.차 한잔만 하고 가라고 하고 딱 그 한 잔의 시간만 허락했다.채림이 찻잔을 다 비우자 이영숙이 말했다.“인사하러 와 준 마음을 충분히 받았네.”말을 마친 뒤 아주 자연스럽게 선을 그었다.“이제 점심시간이 다 됐네. 오늘은 손주며느리가 일부러 나랑 밥 먹으러 왔거든.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지.”단순한 배웅이 아니었다.단미가 이 집의 손주며느리라는 사실을 채림 앞에서 대놓고 못 박는 말이었다.단미도 이영숙의 의도를 알아들었다.채림도 모를 수 없었다.채림은 바로 김혜정을 향해 도움을 청하는 눈빛을 보냈다.하지만 지금 김혜정이 이영숙의 뜻을 거스를 수 있을 리 없었다.빨리 돌아가라는 듯 조용히 눈짓했다.채림은 마지막으로 호건을 한번 봤다. 그의 표정은 이영숙보다 더 냉담했다.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네. 그럼 다음에 다시 찾아뵐게요.”말을 끝내고 빠른 걸음으로 집을 나갔다.거실이 조용해졌다.이영숙이 갑자기 불렀다.“장 집사.”집사 장수한이 바로 앞으로 나왔다.“네, 회장님.”“저 선물들 들고 나가서 돌려보내게. 우리 집은 그 선물 받을 필요 없어.”“알겠습니다.”장수한은 채림이 테이블 위에 두고 간 선물 상자들을 들고 바로 뒤를 따라 나갔다.집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이영숙은 단미에게 다정하게 웃었다.“단미야.”“너는 윤희랑 여기서 조금 놀고 있을래?”단미는 이영숙이 뭘 하려는지는 몰랐지만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네, 할머니.”이영숙은 김혜정과 호건을 돌아봤다.“너희 둘은 나 따라와.”말을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 서재로 향했다.호건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이 집안을 지탱한 사람은 이영숙이었다.지금은 공식적으로 집안의 실무와 사업 경영 일선에서 한발 물러났지만 가장 큰 어른으로서의 무게는 그대로였다.이영숙의 한마디는 이 집안에서 늘 가장 크게 작용했다.김혜정의 표정에 긴장이 스쳤다.호건
윤희는 호건을 향해 입을 삐죽였다.김혜정은 호건이 단미 편을 드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호건아, 너 지금...”“됐다.”이영숙이 김혜정을 바라봤다.“너 이 집에 시집온 지 몇 년인데 나한테 명절 선물을 따로 챙겨 준 적이 몇 번이나 있니?”“네 며느리가 이번에 딱 한 번 못 챙겼다고 그게 그렇게 불만이냐?”괜히 단미를 지적했다가 자기 흠만 들추게 된 김혜정은 민망해졌다.목소리도 바로 작아졌다.“어머님, 저는...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이영숙은 더 상대하지 않았다.대신 주머니에서 붉은 종이로 된 작은 부적 하나를 꺼내 단미 손에 올려 줬다.“이거 받아. 할머니가 절에서 너 주려고 받아 온 거야.”단미는 두 손으로 받았다.“감사합니다, 할머니.”윤희가 옆에서 몸을 기울여 구경했다.“어? 할머니, 제가 받은 거랑 새언니 거랑 다르네요?”“네 건 평안 부적이고, 단미 건 부부화합 부적이니까 다르지.”이영숙은 말하면서 단미 것과 똑같은 부적을 하나 더 꺼내 호건에게 건넸다.“이건 네 거다.”윤희가 궁금한 듯 물었다.“부부화합 부적이 뭐예요?”“부부가 서로 마음 맞춰 잘 지내라고 기원하는 부적이지.”그 말을 듣자 단미는 손에 든 종이가 갑자기 뜨거워진 것처럼 느껴졌다.반대로 호건은 거리낌없이 부적을 받아 주머니에 넣었다.“감사합니다, 할머니.”단미가 부적을 들고 아무 반응도 못 하자 이영숙이 웃으며 덧붙였다.“스님이 기도까지 정성껏 올려 준 거라 영험할 거야.”단미는 더 난감해졌다.이걸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기도 전에 큰 손이 부적을 가져갔다.호건이었다.“내가 가방에 넣어 줄게.”단미가 반응할 틈도 주지 않고 안쪽 포켓에 넣었다.그때 집안 직원 한 명이 거실로 들어왔다.“회장님, 찾아오신 손님이 있습니다.”이영숙이 의아해했다.“내가 돌아왔다는 건 아직 밖에 알리지도 않았는데 누가 왔니?”“주채림 씨입니다.”단미의 표정이 굳었다.반사적으로 호건을 한번 바라봤다.‘그래서 오늘 저렇게 차려입은
본가로 향하는 차 안.단미는 다시 옆의 호건에게 시선을 줬다.아무리 봐도 오늘 옷차림은 일부러 신경 써서 꾸민 것 같았다.단미가 갑자기 물었다.“오늘 본가에 다른 손님도 와?”“아니.”호건은 이유를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왜?”“그냥.”예전에는 본가에 갈 때 굳이 이렇게까지 옷과 머리를 신경 쓰지 않았다.오늘은 왜 저러나 싶었다.그러다 호건이 오늘 하루 쉰다는 말을 떠올리자 단미의 눈꺼풀이 가볍게 움직였다.“설마 오늘 본가에 하루 종일 있는 거야?”“응.”호건은 입꼬리를 조금 올렸다.“할머니한테 오늘 쉰다고 말씀드렸어. 하루 종일 같이 있어 드릴 수 있다고.”단미의 표정이 바로 달라졌다.‘본가에 하루 종일 있다니.’‘우리 이미 이혼했다는 걸 누군가 눈치채기라도 하면 어쩌려고?’“당신 왜...”호건이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할머니가 너 많이 보고 싶어 하셨어. 네가 하루 같이 있어 드릴 거라고 하니까 정말 좋아하시더라.”단미가 하려던 말이 그대로 막혔다....차가 본가 저택에 도착했다.두 사람은 함께 내렸다.호건은 단미 곁으로 가 손을 잡으려 했다.단미가 피하자 단미의 귀 가까이로 몸을 숙여 낮게 말했다.“할머니 눈치 빠르신 거 알잖아. 평소보다 조금 친하게 보여야 안 들켜.”이영숙은 오랫동안 사업을 이끌어 온 사람답게 사람의 작은 변화도 잘 읽었다.쉽게 속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단미가 잠깐 망설이는 사이 호건은 손을 잡았다.가느다란 손가락을 가볍게 눌러 쥐며 말했다.“가자, 여보.”단미는 입술만 꾹 다물었다.‘진짜 바로 몰입하네.’호건에게 손을 잡힌 채 집 안으로 들어갔다.거실에는 김혜정이 일인용 소파에 앉아 있었다.긴 소파에는 이영숙이 앉아 있었고 윤희가 바로 옆에 친근하게 붙어 있었다.윤희는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보여 주고 있었고 두 사람은 함께 웃고 있었다.윤희가 말했다.“할머니, 이거 진짜 웃기죠? 우리 과 친구가 찍은 영상이에요.”이영숙이 웃었다.“친구가 재주가 있구나.